뱁새족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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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욕망 무한, 실로 욕망 무한이로다 <뱁새족 - 박경리>

 

 

 

 

 

 

   우리나라에서 '뱁새'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아는 속담 때문에 부정적으로 얘기되는 경우가 많다. 박경리 작가의 <뱁새족>또한 그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골적인 비판의식이 담긴 책이며, 196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 산업화 시대의 경제성장으로 많은 이들은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자본주의 파도에 견뎌내기 위해 힘썼다. 그 중 지식인과 상류층을 대상으로 박경리 작가는 이 소설을 펴냈다. 작가는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미술평론가 (지적 욕망만을 꿈꾸는) 병삼의 입을 빌려 그 당시 상류층과 지식인들의 허세를 비판한다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답답해보이기까지 하는 병삼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의 속물적 욕망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 당시 서울의 가장 핫플레이스였던 공간에서 각자의 인물들이 대화를 통해서 드러내는 허세를 보면 참으로 다양하다. 실력도 없으면서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 지고지순하게 사랑에 목매는 사람, 학자 행세를 하는 사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입으로 삼키기도 하는 사람 등... 이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다리가 찢어질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마구 달리는 뱁새족들의 모습들이다. 말 그대로 욕망무한이다. 병삼은 이를 보고, 자신을 재능도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온 놈'이라고 욕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뱁새족을 비판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넘어 우스꽝스럽고 어이없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60년대의 뱁새족들이, 지금은 과연 없는 것일까? 결국 인간의 욕망과 허세는 시대에 발을 맞추기 위한 몸부림 끝에 어떻게든 따라오는 요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상황 서술보다는 대부분 인물들의 대화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특별한 사건들보다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그 시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실제로 있었던 시대의 산물인 영화와 소설 등의 이름은 문화 속에 투영된 사람들의 욕망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장치로 존재한다. 아직 박경리 문학의 핵심인 '토지'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박경리 작가의 소설 몇권을 읽어보니 이젠 약간은 박경리의 문체가 느껴지는 것 같다. 무언가 모르게 독특하다. 


 

  - 시뻘건 해는 빌딩 뒤편에 걸려 있었다. 꿈속의 풍경처럼 놀이깔린 시가는 너무 황홀하여 불안했다. 잇달아 밀려오는 차량, 그것들을, 전등 둘레를 미친 듯 선회하는 풍뎅이, 포도에, 건널목에, 구름다리 위에 군중들은 민적민적 떼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서로의 어깨를 비비며 떠밀며. 음향과 음향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 황혼의 도시는 무성영화와도 같이,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지나가는가, 자동차는 무슨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가, 짓눌린 침묵에 싸여 있는 것만 같았다. 병삼은 짙은 색채와 침묵이 덩어리로 엉켜, 그 덩어리가 전등 둘레를 미친 듯 선회하는 풍뎅이처럼 선회하는 것 같은, 광란의 의식에 쫓기며 길을 횡단한다. (51p)

 

  - '모두 허기가 들어서 저러는 거다. 눈앞에서 황금덩이가 번쩍번쩍하는데 구경만 하고 있으려니까, 답답하고 조갈증이 나서 저러는 거다. 욕망 무한, 실로 욕망 무한이로다.' 병삼은 묘하게도 자기 자신까지 슬퍼지는 생각이 들었다. (86p)

 

  - "가발 같지 않지? 글쎄, 말도 말어. 이젠 식모까지 미니컷이란다. 온 창피스러워서, 모두들 원숭이처럼 흉내는 자알 내지. 처지도 모르고, 어울리고 안 어울리는 것 가릴 것 없이, 줄에 엮은 동태처럼 너도나도야. 외국에선 유행이라면 상류사회를 돌다 마는 건데." (101p

 

  - 진실이 모욕이 되는 세상이죠. 뭐 오늘날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황새를 따라갈려는 뱁새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 희극이라는 데 있죠. 재능이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 온 놈을 위시하여 돈푼이나 긁어모은 상놈이 어느 명문 호적에 기재된 이름 석자밖엔 가진 것 없는 거지 처녀를 비단에 싸서 데려오는 위인, 졸업장 한 장 우물쭈물 얻어둔 덕택으로 학자 행세하게 된 인사, 남의 재산을 계산하고 장래의 대재벌을 꿈꾸는 사람, 사업가 호주머니 털어서 여자나 끼고 다니며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를 넘보는 건달이 (...) 그리고 또오...... 많죠. (1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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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랑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35
헤르만 헤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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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지와 사랑 - 헤르만 헤세> 

 

 

 

 

 

  자신의 체험을 위해 그보다 더 문학을 필요로 했던 작가는 없을 것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이 말처럼 <지와 사랑>도 그러했다. (사실 원제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제목이 더 좋다.) 그리고 많이 유명한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그 밖에도 그의 많은 문학에 헤세의 삶이 녹아들어있다. 그의 어린 시절과 방랑에의 갈망, 예술과 동양에 대한 관심, 수도원 생활 등 문학에 표현된 주인공들을 보면 헤세라는 사람의 형체가 하나하나 머리속에 입혀지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책들에 나타난 정신적 혼란과 철학적 고뇌 또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헤르만 헤세는 헤세의 문학을 읽는다가 아닌, ‘헤세를 읽는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헤세는 두 명의 매력적인 인물을 내세워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성적인 인물로 대변되는 수도원의 나르치스’,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인물인 골드문트’. 사람의 수많은 본성을 단순히 두 개로 나눈 것은 다소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첫부분에서 수도사와 학생 관계로 만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우연하게 이끌려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나르치스는 첫눈에 제자 골드문트의 숨겨진 본성을 느끼게 된다. 아니면 그의 눈빛이 그리고 있었던 감성을 읽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찌됐든 그러한 능력을 좀 더 자유롭게 분출시킬 수 있음을 골드문트에게 여러번 상기시킨다골드문트는 처음엔 그의 본성을 거스르려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역시 그 운명에 빠져들게 된다. 그는 여러 곳을, 여러 여자를, 여러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세계를 방랑하게 된다.

 

 골드문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존재가 소설 속에서 여러번 다뤄지는데 그것이 '어머니'라는 것이다. 그에게 어머니는 이브이며, 행복의 근원인 동시에 죽음의 근원이며, 세계의 끝에서 꿈꾸듯 앉아서 꽃을 한잎 한잎, 생명을 하나하나 따서 천천히 끝없는 심연으로 던지는 거인이다. 골드문트가 방랑하며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어머니의 형상이 있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모습까지 '모상'이 입혀진다. 결국 그에게 어릴 때 죽은 어머니는 복합적인 세계로 다가오는, 삶에서 떨쳐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이다.

 

  책에서는 골드문트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그의 자의식을 찾는 여정이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그가 자유롭게 본성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조력자이자 스승이자 친구인 나르치스가 있다. 중간중간 헤세의 철학적인 물음들이 이어지며 그러한 고뇌는 후반부에 가서 거의 폭발하듯 보여진다. 헤세는 그 둘의 본성을 모두 다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골드문트에 가깝다) 그 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대한 혼란을 가지고 있었을거라 추측해본다. 그래서 그의 이중성을 소설 속에 투영해놓은 것 같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사이에 시작된 이 새로운 우정은 실로 기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때로는 두 사람 스스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때가 많았다. 이 일로 인해 누구보다 괴로워하는 사람은 바로 사색가인 나르치스였다. 그에게는 일체의 모든 것이 정신이어서 사랑마저 그러했다. 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끌리는 대로 몸을 맡긴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이 우정에 있어서 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이끌어 가는 정신이었다. 그리하여 이 우정의 운명과 그 넓이와 의미를 확연히 자각하고 있는 이는 처음 얼마 동안은 나르치스 한 사람뿐이었다. 오랫동안 그는 사랑을 하면서도 고독을 느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벗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도록 이끌어주어야 그 벗이 자신의 진정한 벗으로 완성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골드문트는 열렬히 그 새로운 운명에 몸을 맡겼으며 나르치스는 그 높은 운명을 지각하고 책임있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42p)

 

  -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그 본성으로 보아 서로 상충되는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가 상대방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그 둘 사이에는 이성의 언어와 더불어 영혼과 상징의 언어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어떤 두 채의 집 사이를 큰길이 하나 뚫려 말이나 마차가 다닌다고 가정한다면 그 옆에 다른 여러 개의 작은 길과 옆길과 샛길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어린이들이 노는 놀잇길, 애인들의 산책로, 개나 고양이만 다니는 눈으로 찾아보기 힘든 길이 생겨나듯이. (58p)

 

  - “너희들의 본질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거야. 너희들은 충일한 삶 속에서 사랑하고 체험하는 힘이 부여되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들 지성적인 사람들은 때때로 너희들을 인도하고 지배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충일한 삶을 살아가진 못하지. 우린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어. 넘치는 삶, 즙이 흐르는 과실, 사랑의 화원, 아름다운 예술의 나라는 모두 너희들의 소유야. 너희들의 고향이 대지라면 우리들의 고향은 관념이야. 너희들의 위험은 감각의 세계에서 헤매는 것이지만 우리들의 위험은 진공 상태에서 질식하는 거야. 너는 예술가이고 나는 사색가야. 너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잠을 자지만 나는 황야에서 잠을 자는 거야. 나의 눈은 태양을 보지만 너의 눈에는 달과 별들이 보이는 거야. 너의 꿈에는 소녀들이 나오지만 내 꿈에는 소년들이 나오는 거야. (64p)

 

  - 어느 예술이나 정신의 근원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무상에 몸서리치고 꽃이 시들고 잎이 지는 것을 슬픔으로 바라보며, 우리들 자신도 그처럼 덧없이 시들어 버리고 말리라는 것을 가슴속에서 확신하고 있다. 우리가 예술가가 되어 어떤 상을 만들거나, 사상가가 되어 법칙을 탐구하고 사상을 체계화한다면 그것은 그 크나큰 죽음의 무도에서 무언가 구해 내고 우리들 자신보다는 좀더 영속성을 지닌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리라. (201p)

 

  - “우리들의 사색은 끊임없는 추상이며, 감각적인 것에 대한 외면임과 동시에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의 건설을 위한 시도일세. 그러나 자네는 변하는 것과 유한한 것도 가슴에 받아들여 세계의 의미를 무상한 데에다 알려준다네. 자네는 무상한 것에서도 외면하지 않고 그것에 헌신하는데, 자네의 그런 헌신에 의해서 그것은 지고의 것으로도 될 수가 있고 영원의 비유로도 될 수가 있네. (369)”

 

 

 

골드문트는 그 이름 Gold(금), Mund(입) 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여자도 많다.

흔히말해 나쁜 남자 + 예술가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팜므파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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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도시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황보석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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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작을 읽고 다시 읽으러오겠어요 <유리의 도시 - 데이비드 마추켈리>

 

 

 

 

   책 선택 실패다. 읽고나서도 읽은 것 같지도 않은 그런 느낌. 책이 나빠서가 아니라, 원작을 읽고 봤어야 했다.

 

  저번에 이 책을 샀었을 때 폴 오스터의 원작을 그래픽 노블로 만든 것이라곤 알고 있었으나 '유리의 도시'라는 책이 있구나 하고 그냥 넘어갔드랬다. 언니가 집에 사다가 놓아둔 <뉴욕 3부작>에 실려있는 첫번째 단편이 '유리의 도시'라는 것을 절대 모르고서는. 단순히 나는 이 책의 겉모습에 취해서 뭔지도 모르고 사고 지금 읽은거다. 그래서 리뷰를 제대로 쓸 수가 없다. 미궁 속의 미궁, 꼬여있는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겉핥기 식으로 만화를 쭈욱 읽어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뉴욕 3부작>의 '유리의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그래픽 노블을 다시 읽고, 어떤 사람들은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가  <뉴욕 3부작>의 '유리의 도시' 또는 폴 오스터의 다른 소설들을 통해 그의 이야기들을 기억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둘다 속하지 않기에 너무 다 읽고난 순간 멍-했다. 이게 무슨 일이고.......... 그림의 느낌은 좋다. 클래식하게 편집되어있는 그래픽 노블도 맘에 든다! 꼭, 뉴욕3부작을 읽고 다시 읽어야지.

 

  뭐, 너무 허탈하니깐, 책이 폴 오스터 문학에 빠져볼 기회를 준 셈이라고 생각해야지. (옛날부터 읽고 싶었잖아...ㅋㅋㅋㅋ)

 

 

 

 

 

원작을 읽고 다시 읽으러 오겠어요.................. 씨유어게인...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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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토커 - 달짝지근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 같은 인생이여
최광희 지음 / 마카롱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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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비 스토커? Movie's Talker! <무비스토커 - 최광희>

 

 

 

 

 

 

  최광희 평론가에 대해선 잘 몰랐었는데, 거침없는 입담으로 영화매니아 사이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TV에도 출연하기도 하고 유명한 김태훈 씨와도 짝을 맞추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최광희'라는 이름을 검색해보니 재밌고 솔직한 말들이 눈에 띄게 나온다. 이처럼 그의 지나치게 솔직한 생각들이 들어있는 <무비스토커>가 최근에 출간되었는데 나는 저자의 이름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영화의 목록이 익숙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이 책을 골랐다.

 

  이 책의 표지를 보는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Movie's Talker와 무비스토커 두가지의 의미로 이 책이 발음된다는 것. 그러나 이 책은 '무비스토커'보다 'Movie's Talker'에 가깝다. 저자는 맹목적으로 영화 자체를 사랑한다고 얘기한다기보다 좋은 영화는 좋다고, 나쁜 영화는 정말 싫다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추구한다. 영화를 영화 그 자체보다는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우리 인생의 많은 것들에 대한 것들로 넓은 시야의 폭을 가진다. 책 속에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그 사례의 영화들에 대하여 얘기하는 형식으로 이 책이 진행되는데, 가끔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과감해서 '이렇게 써도 되나'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일단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저자가 평하는 영화들이 비교적 최신영화로 되어있어서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영화 마니아가 아닌데도 이 책을 너무나 재밌게 읽었던 이유도 이 책의 여러 영화들을 이미 본 상태여서일 것 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영화들, 인셉션이나 다크나이트(이 영화들은 나말고도 수많은 팬들이 있겠지만.), 그랜토리노,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한 주제에 대한 영화평론이 조금 짧은 감이 있어서 조금 더 파고들고 싶어하는 독자들은 아쉬운 부분이 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의 필력은 짧은 문장들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읽다보니 '이 책은 그냥 믿을만한, 전문적인 영화리뷰를 묶어논 건가?'하는 들기도 했다. 주제에 맞는 많은 영화의 목록들을 제시하기 보다는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좀 더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 어쨌든 이 책의 가장 핵심은 중간에 '영화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영화를 통쾌하게 까는 부분! 까칠하고도 정확한 해석이 솔직하게 표현되어서 정말 재미난 부분이다. 영화를 제작한 쪽에서는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지만.

 

 

 

  - '장애인'이 등장하는 휴먼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볼 때면 심경이 복잡해진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고단한 삶 때문만은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척박한 우리의 환경 때문만도 아니다. 내 복잡한 심경의 이면에는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맴돈다. 쉬운 말로 '저들도 저렇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우리는 얼마나 오만한가!' 따위의 태도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장애인은 나의 삶에 용기를 불어넣는 일종의 도구로 작용한다. 장애를 가진 삶을 헤아려보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그들을 동정할 측은지심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는 데 장애를 동원한 셈이기도 하다. 재난영화를 보며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처럼 장애인의 삶이 비장애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전시물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곤 한다. (60p)

 

  - 이 재능 넘치는 감독은 아무 생각 없이 쿵쾅대는 숱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찌꺼기들로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인셉션>으로 다시 한 번 증명한다. 꿈속의 꿈, 그 꿈속의 꿈속의 꿈까지 탐험하며 무의식의 근저에 도달한다는 상상을 대관절 누가 이렇게 흥미롭고 맛깔난 모험 오락영화로 담아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프로이트가 살아 있다면 놀란에게 큰절이라도 올릴 일이다. '인간의 무의식에 새겨진 근원적 상처가 어떤 추악함을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은, 역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에서 잘 제시한 바 있다.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무의식의 소유권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더 보탠다. 무의식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외부 세계의 통제 시스템과 무의식과의 관계.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인식의 깊은 곳에 깔려 있는 무의식 역시 과연 진짜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보고자 하는 세계만 보고 싶어하는 우리의 습성을 이용해 누군가 당신의 무의식조차 지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도전적 가설을 말이다. (72p)

 

  -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좋았던 시절의 빛바랜 회고를 통해 스러져가는 자신을 위무하지 않는 대신 현재진행형인 폭력의 악순환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떠나고 남을 어린 세대가 살아가기에 여전히 위험천만한 세상을 안타깝게 껴안는다. 그러고는 미안하다고, 너희에게 이런 세상을 남겨서 너무 미안하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어른의, 그것도 아주 존경할만한 어른의 넉넉한 품이다. 묵직한 경외심이 돋는다. (80p)

 

  - 역사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든 필연적 동기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가정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팩션에서만큼은 어느 정도의 가정법이 허용된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 의해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 그 사건이 갖는 의미까지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집단 무의식에 무작정 편승해 역사적 회한이라는 거대한 유산마저 바꿔놓고 낄낄 거린다면, 그건 그냥 동네 아이들끼리 즐기는 고무줄총 놀이나 다름없어진다. 그러고 있기에 영화는 너무 비싼 작업 아닌가? (116p)

 

  - 결국 영화는 사회의 거울이다. 에로스와 포르노를 혼동하고, 앞에선 손가락질하고 뒤에선 음미하고, 수면 위에선 '에헴'하고 물 밑에선 욕정의 배설구를 찾는 위선적 성문화가 여전한 이상, 여배우들은 늘 몸을 사릴 것이기 때문이다.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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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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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가져다준, 먼 곳의 당신 이야기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변종모>

 

 

 

 

  이런, 감성이 풍부하다못해 철철 넘치는 여행 에세이를 읽는 건 사실 조금 괴롭다. 현재 신분이고 상황이고 뭐든지 나몰라라 내팽개쳐두고 훌쩍 떠나서, 여행객이란 이유 하나로 약간의 허세를 듬뿍 담고서 어딘가를 거닐고 싶어진다. '혼자 기차를 타고 지금 있는 곳에서 남해 저 맨끝까지 가볼까.' 아니면 '세상 모든 알려진 맛집들을 통달하는 여행!' 아니면, '한 손에 노트하나 들고서 감성이란 감성은 다 끌어올린 채 미친듯이 써내려가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망상이란 망상은 혼자 다했다. 역시나 여행의 유혹은 정말로 쉬지 않고 찾아온다. 우연히 만난 책 속에서까지 말이다.

 

  사실 여행의 참 묘미는 '맛'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친구와 첫 여행을 가면서 우리는 계속 이렇게 물었다. '여행 중에서 무전여행이 가장 이해가 안되'하고. 음, 어쨌든 무전여행이라고 하면 몇가지 목적이 있겠으나, 먹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무전여행은 맛있는 걸 먹지 못하는 고통'으로만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그만큼 여행을 하면서 먹는 음식은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또 어떤 많은 사람들에게도 먹는 행위의 즐거움을 넘어서 무언가 여행 안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행복감이 뿌려져있는 유혹적인 것이었다.

 

 

   이 책을 쓴 변종모 작가 또한 음식에 대해 남모를 향수와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을 여행하다가 문득 떠오른 그 음식을 도저히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엔 직접 만들기까지 한다. 몇 퍼센트 부족하지만 기억 속의 그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 기어코 만들어 입에 한 술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는 점차 행복감을 맛본다. 낯선 곳에서의 익숙함, 그 미묘한 행복감을. 게다가 그에게는 신기하게도 음식운도 따르는데, 다른 나라에 가서 생전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따뜻한 식탁이 차려지고 또 한번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는 음식에 대한 느낌 말고도 인도, 아르헨티나, 시리아 등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그 속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 추억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멋진 사진들이 책의 많은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이야기는 또한번 따뜻한 식탁과 맛있는 냄새, 시원한 청량감과 만나게 된다. 달콤하고 시원한, 그리고 씁쓸한 맛, 그 여행의 기억이 또한번 음식의 향기와 마주한다. 이것은 이 책이 여느 '여행 에세이'와 같지 않다는 걸 알게 할 독특한 향기일 것이다.

 

 

  - 만두가 끓어오르는 수증기에서 냄새가 났다. 따뜻한 냄새. 이미 지나간 일들의 냄새라서 따뜻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저마다 살아온 수많은 사연이 보글보글 끓는 수증기처럼 팽창해, 어느 날 그 아픔들도 기억 속에서 환하고 따뜻하게 끓어오르리란 것을 안다. 추억이란 잡히지 않은 실체이지만, 이렇게 열렬하게 끓어오르는 수증기처럼 분명 서로의 입김이 맞닿아 그려내는 이야기이므로 그것이 향긋하다 생각한다. 지나간 일이므로 아픔은 웬만큼 증발되었을 것이다. 이제 뚜껑을 열고 한김 식힌 다음, 좋은 생각만 하면서 꿀꺽 삼키고 나면 과거는 사라지고 다시 미래만 남을 것이다. 그 든든한 포만감으로 나는 또 남은 길을 가리라. 내게, 늘 당신과의 추억은 허기지지 않다. (40p)

 

  - 삶이란 문득 이렇게 경건한 것이다. 버릇처럼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기꺼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 때로 외롭고 지루하거나 힘든 모든 것들은 스스로 이겨낸 뜨거운 마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내가 만난 한 가닥 한 가닥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걷는 일이 가까운 미래에 큰 포만감을 줄 것이다. 팔미라에서 처음 올리브 나무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때부터 그 작고 푸른 열매가 좋았다. 이유없이 좋았다. 그렇게 이유 없이 좋아하다 보면 끝내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왜 사랑하느냐고 묻지 마시라. 그냥 사랑하고 그냥 좋아하는 그 마음이 가장 순수한 것을. 그것을 의심하지 마시라. (99p)

 

  - 귓가에 들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눈에 보였다. 그 소리들을 보려면 눈을 감아야 했다.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것들. 어쩌면 그것이 진정 살아 있는 것임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지나간 과거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일은 대수롭지 않지만 지금 현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풍경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아프다. 그것은 온몸으로 경험하는 현재이므로. 지금 현재가 이처럼 강렬할수록 늘 우리에게는 추억도 선명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길을 신중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함이 곧 나를 위함이니.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이 나를 자주 취하게 만들었다. (124p)

 

  - 문득 말없이 떠났다가 떠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돌아왔을 때, 그대는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가? 나는 먼 곳으로 떠났지만 그대들을 생각하면 자주 가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갓 지은 한 끼의 식사처럼 소박한 그대들의 마음이 먼 곳에 나에게 달려와 자주 나의 발을 묶었다. 그렇게 절뚝거리며 다니던 길 위에서 그대와 같은 그대를 만나고 마침내 다시 그대들의 앞에 섰을 때, 그 누구도 변하지 않았음에 나의 마음은 또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그대는 아는가. 나는 여전히 그대들이 필요하다.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이유로 그대들이 필요하다. 흘린 밥풀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듯 살가운 그대들이 나는 그리웠다. (289p)

 

 

 작가님 블로그 http://maldive9.blog.me/

사진 글이 와, 진짜 많아요.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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