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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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샬롯 브론테 / 민음사

 그 시대, 남성 필명으로 발표했던 소설

 

 

 

 

  아주 어렸을 때, 좋아하는 책의 이름을 댄다면 주저 없이 말했던 책이 『제인 에어』였다. 청소년을 위한 축약본이어서 두께가 완역본에 비해 4분의 1가량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책 속의 이야기와 상상하던 그 배경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이라면 '막장'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릴 정도로 경악스러운 이야기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인 에어'가 리드의 집, 그리고 학교에서 받은 핍박 같은 장면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로체스터의 곁에 그녀가 남는 장면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로맨스 소설이라 하면 그렇게도 말할 수 있다. 집 주인과 가정교사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날 이렇게 대한 건 니가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로맨스의 우스꽝스러운 공식, 밀고 당기며 오해하는 그들의 사랑 빼고 이 소설을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에서부터, 제목까지 낚아챈 '제인 에어'라는 이름은 분명 큰 힘을 갖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여자고, 남다른 여자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이 틀에 박혀있던 그 시대에도 그랬지만, 지금으로서도 그러하다. 물론 현재에 와서는 '고루하고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의 용감하고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제인 에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심술궂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맹랑하고 자신의 선택에 완고했던 제인 에어는, 사랑을 하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로체스터에게도 정신적으로 평등한 존재로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의 비밀을 알게 되고 나서, 그녀가 사랑을 잃을까 영혼을 잃을까의 문제에서는 결국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어디에도 종속하지 않는 '제인 에어'라는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한 선택. 그러한 고뇌는  『제인 에어』 2권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어렸을 때 읽었던 축약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에 남았다.)

  또한 책 속의 많은 대화는 (이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질문인)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중 한 대목은 이렇다. "여성이란 집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부분을 비롯하여 작품에서 드러난 제인 에어의 주체적인 행동과 결정, 그것은 여성으로서 소극적이고 순종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 시대 남자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소망이 구현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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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비슷한 감정을 내가 맛보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복수는 향기 좋은 포도주와 같아서 마실 때는 따듯하고 독특한 맛이 돌았다. 그러나 뒷맛은 쇠붙이 맛이 나고 입 안이 얼얼해서 흡사 독이라도 마신 것 같았다. 나는 당장 리드 부인에게로 달려가서 용서를 구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녀는 이중의 멸시로 나를 물리칠 터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성깔을 북돋우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절반은 경험으로 절반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거친 소리를 내뱉기보다는 보다 나은 정신 능력을 구사하고 싶었다. 음침한 분노보다도 무엇인가 부드러운 감정을 기르고 싶었다. (1권, 64p)

​`새로운 고생살이! 거기엔 무엇인가가 있어.`하고 독백을 했다. (마음속으로 했다는 것이지 크게 소리를 내서 했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있다는 걸 나도 알아.` 왜냐하면 그다지 구미를 당기는 말로는 들리지 않으니까. 자유니 흥분이나 쾌락이니 하는 말과는 다르다. 이런 말은 참으로 즐겁게 들린다. 하지만 나에겐 공허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처럼 공허하고 순간적인 것이어서 그따위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조차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고생살이!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이제 원하는 것은 어디 다른 곳에서 봉사하는 것이다. 그만한 일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 이것쯤은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할 수 있어. 할 수 있고 말고. 목적은 힘든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예리한 두뇌만 갖고 있다면. 이런 두뇌를 깨우쳐보려는 듯이 나는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쌀쌀한 밤이었다. 나는 숄로 어깨를 감싸고 열심히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1권, 154p)

그러나 젊음처럼 외고집을 부리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무경험처럼 맹목적인 게 또 어디 있을까? 로체스터 씨가 나를 보아주건 보아주지 않건, 그분을 다시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이라고, 젊음과 무경험은 단언하였다. 그리고 또 말하는 것이었다. `어서 가자! 어서! 곁에 있을 수 있을 때 곁에 있어야 해. 이제 앞으로 며칠, 기껏해야 몇주일, 그러곤 그분과는 영 이별이란 말이야!` 그러고 나서 나는 새로 생겨난 고민 - 내 것으로서 가지고 싶지도 않고 키우고 싶지도 않은 흉측한 그것 - 을 묵살해 버리고는 달음질쳤다. (2권, 13p)

"나는 나의 제인에게 공단과 레이스로 만든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장미를 꽂게 하겠소. 그리고 내 가장 사랑하는 그 머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베일을 씌워주겠소." "그 다음엔 저를 못 알아보시겠죠. 그리고 전 당신의 제인 에어가 아니고 어릿광대의 옷을 입은 원숭이 아니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남의 깃털을 빌려 단장한 어치가 되는거죠. 로체스터 님. 제가 궁정의 여인 같은 옷을 입기보다는 차라리 당신께서 무대 의상으로 잔뜩 장식하신 걸 보는 게 낫겠어요. 전 당신을 미남이라고는 하지 않아요. 하지만 전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어요. 너무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아첨도 할 수 없어요. 당신도 저에게 아첨하지 마세요." (2권, 44p)​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의 양심과 이성은 나에게 반역하고 내가 그에게 반항을 하는 것이 죄악이라고 나를 책했다. 양심과 이성은 거의 `감정`과 같이 드높은 목소리로 미친 듯이 외쳐댔다. `자, 승낙하라! 그의 비참한 꼴을 생각하라. 그가 직면한 위험을 생각하라. 그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의 상태를 생각하고 그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질을 명심하라. 절망에 뒤따르는 무모함을 생각하고, 그를 달래고 구원하고 사랑하라. 그리고 너는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의 것의 되겠노라고 말하라. 세상에 너를 걱정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 너의 행동으로 해를 입을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러나 대답은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걱정한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존경한다.

나는 하느님이 내려주시고 인간에 의해 인정된 법을 지키리라. 지금과 같이 미치지 않고 바른 정신일 때 내가 받아들이는 원칙대로 살아나가리라. 법이나 원칙은 유혹이 없을 때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지금과 같이 육체와 정신이 그 존엄성에 대해 반기를 들었을 때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법과 원칙은 엄청한 것이며 침범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나 개인의 편의를 위해 침범해도 좋은 것이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것들은 가치 잇는 것이다. 나는 항상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것을 믿을 수 없다면 그건 내 정신이 이상해진 탓이다. 아주 미쳐서, 혈관은 붙같이 달아오르고 심장은 박동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빨리 뛰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전부터 품어온 의견,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결심뿐이다. 나는 거기에 꿋꿋이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다.` (2권, 1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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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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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가장 짧지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표제작

 

 

  지금까지 작가의 책 중 네 번째로 만나게 되는 『깊이에의 강요』. 짧은 소설 한 편이 들어있을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더욱 짧은 소설 네 편이 들어있었고, 역시 소재의 특이성은 다른 작품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표제작을 빼놓고 말해보자면, 체스 게임에 대해 알지 못 했던 이전에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 했을 『승부』라는 작품과 『』'조개' 하나만으로 엄청난 수다를 떠는 『장인 뮈시르의 유언』 (마치 『콘트라 베이스』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하여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안심했던 장석주 시인의 책 한 구절이 떠올랐지만, 또 그 구절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문학적 건망증』이 있다.

  그러나 이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깊이에의 강요』라는 제목을 가진 표제작은, 가장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 "깊이가 부족하다."라는 (원래는 격려의 말이었다.) 누군가의 평가를 듣고는 트라우마인지 강박인지 어떤 무언가에 사로잡혀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만 여류 화가의 이야기. 아주 짧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깊이'라는 단어에 발목이 잡힌다. 계속해서 '깊이'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깊이'라는 주관적인 평가는 왜 그녀를 끝없는 위기로 끌고 갔을까? 그녀의 죽음은 단지 그 '깊이'라는 말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도대체 '깊이'는 누가 정한 것이며, 그 '깊이'의 정도는 어떻게 판단할까. 작품 속에서 다뤄진 예술작품을 보다 좁게, '문학작품'으로 돌려서, 그보다 좁게는 '작가의 문학작품'으로 돌려보면, 작가가 그리 많지 않게 써낸 그 작품들을 펴내며 비슷한 고민들을 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하게 된다.

  신작이 언제쯤이나 나올까 궁금하게 만드는 은둔형 작가인 '쥐스킨트'의 작품들은 자신의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작가의 성향만큼이나 우울하고 냉소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 것은, 절대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특별한 소재들을 가지고, 품고 있는 수많은 의미를 뒤로 한 채, 너무나도 가볍게 풀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상 그의 작품을 읽고선, 몇 문장 몇 문장을 쓰기가 버겁긴 하지만, 다시 다른 작품에 손이 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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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 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한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의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17p, 깊이에의 강요)

상상하는 것이거나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을 주장하고 있다고 여기에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해가 거듭될수록 네 몸이 화석처럼 굳어가고 무감각해지며 육체와 영혼이 메말라 가는 것을 너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가? 어린 시절에는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구부렸으며, 하루에 열 번 넘어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열번 일어났던 사실을 이제 잊었는가? 너의 보드라운 피부, 유연하면서도 건장한 근육, 양보하면서도 제압당하지 않은 생명력이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가?

지금 네 모습을 한번 보라! 피부는 크고 작은 주름살로 우글쭈글하고 얼굴은 식초병처럼 울퉁불퉁한데다가 마음의 고통으로 여위었으며, 네 육신은 뻣뻣하게 굳어 신음소리를 낸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고 한 걸음이라도 내딛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다. 바닥에 쓰러져 오지 그릇처럼 산산조각 나지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한다. 너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네 힘줄 여기저기서 그것, 네 안의 조개를 감지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것이 네 심장을 공격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그것은 벌써 네 심장을 반이나 에워싸고 있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72p)

나는 책상 앞 의자에 주저앉는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30년 전 나는 글 읽는 것을 배웠고, 그리 많지는 않지만 웬만큼은 읽었다. 그런데 고작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소설의 제2권에서 누군가가 권총으로 자살한다는 희미한 기억이다. 30년동안 읽은 것이 다 헛일이라니!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의 수천 시간동안 책을 읽으면서 보냈는데도, 망각 이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니. 그리고 이 불행은 나아지기는커녕 반대로 악화되고 있다. 지금 책을 한 권 읽으면, 결말에 이르기도 전에 나는 처음을 잊어버린다. 때로는 기억력이 책 한 페이지를 기억하기에도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단락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짚어 가며 읽어본다. 그러면 낱말 몇 마디는 의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그 낱말들은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는 어두운 전체에서 쏟아져 나와 읽는 순간 유성처럼 빛나고는, 곧 다시 완전한 망각이라는 레테의 강으로 깊이 가라앉는다. (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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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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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오에 겐자부로 / 문학과 지성사

 버려져 남겨진 사람들, 되살리지 못한 '인간애'

 

 

 

  '전쟁'이 끔찍한 이유는 여기저기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 일어나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야만적인 본성이 가장 자극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밑바닥에 남은 인간성마저 깡그리 없애버릴 것만 같은 전쟁, 우리는 언제나 평화를 부르짖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전투와 내전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전쟁을 더 끔찍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국가적 이익과 지배층들의 욕심 등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난을 가는 사람들, 가만히 있다가 큰 피해를 당하는 민간인들,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원래는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장병들.......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한 (물론 생애 절대로 경험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전쟁문학과 영화 등을 통해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본다. 그들이 보통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역시, 희생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끔찍한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인간애'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이 많은 작품들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며, 평화와 반전주의 작가로 잘 알려진 '오에 겐자부로'는 꽤 오랫동안 그런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는 그의 첫 장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인간성의 소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 드러나있는 작품이다. 소설 속 내용을 보자면,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집단적인 광기를 내뿜었던 그 시대에, '비행소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골라진' 많은 청소년들이 '감화원'이라는 곳에 갇힌다. 전쟁이 심각해지면서 그들은 어떤 산골 벽촌에 맡겨지는데, 그곳에서 갑자기 전염병이 퍼지게 된다. 사람들은 피난을 가게 되고, 상황을 진지하게 판단하지 못한 아이들은 마을에 버려진다.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야 하는 아이들, 어딘가에서 나타난 조선인 소년과 피난민 여자아이, 그리고 탈영 군인. 무시무시한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인간애'를 버리지 않는다. 순수한 아이들은 절대 그것을 놓지 않는다.

​  그러나 버려져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살아남으려고 했던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심판'의 장이었다. '절대 어른들이 버리고 떠나지 않았다'는 다짐을 받아내고자 하는 촌장,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이용한 어른들의 회유....... 그들은 말한다. "너 같은 놈들은 어릴 때 비틀어 죽이는 편이 나아, 칠푼이는 어릴 때 해치워야 돼. 우린 농사꾼이야, 나쁜 싹은 애당초 잡아 뽑아버려."다소 특이한 제목이라 볼 수 있지만, 당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상상할 수 없는 이 작품의 제목은 이 대사로부터 큰 의미를 부여받는다. 막 자라나고 있는 새싹, 어린아이들, 또는 아무것도 모르고 남겨진 사람들. 이들은 전쟁의 비참함과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희생자들인 것이다.

 "나는 소년 시절의 기억을 괴로운 것부터 감미로운 것까지 솔직한 형태로 이 소설의 이미지들 안에서 해방 시킬 수 있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소설이 가장 행복한 작품이었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세상을, 거리낌 없이 표현해 후련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는 내용 자체가 어둡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작가가 오랫동안 품고 있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숨겨두고 있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일본 문학의 대가라고만 생각했던 작가에 대한 이미지를 또 다른 면에서 훨씬 좋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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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빽빽이 웅크리고 앉은 동료들의 몸 사이로 팔을 내뻗어, 동생의 자그맣고 부드러운 손바닥을 더듬어 찾고는 단단히 거머쥐었다. 가녀린 힘을 주어 되잡는 동생 손가락의 따스함과 더불어, 그 어린 맥박이 다람쥐나 토끼의 그것인 양 나에게 재빠르고 탄력 넘치는 생명감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내 손바닥에서 동생에게로 전달되는 것이기도 할 터였다. 나는 내 입술을 움찔움찔 떨게 만드는 끝없는 불안이 피로와 한데 뒤엉켜 온몸으로 퍼져 나가, 꼭 잡은 그 손에서 동생에게로 흘러드는 것을 염려했는데, 어쩌면 동생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저항력을 잃은 개처럼 마구 부려져 위험한 운반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우리 동료들 모두가 불안감에 입술을 앙다물고 견디고 있었다. (34p)



​그곳은 어둡고, 사람한테 버림받은 숲의 일부를 닮았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생활의 훈훈함이 없고 다만 인간의 냄새가 이미 부패하면서 남아 있을 뿐이었다. 허름한 벽에도, 훤히 드러난 시커먼 대들보 바닥에 깔린 다다미에 기우뚱하니 처박힌 묵직한 가구에도, 우리가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갈 때 집 내부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타인의 눈이 들러붙어 있지 않았다. 그곳에는 타인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없었다. 그곳은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았다. (88p)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짙어지는 밤의 새로운 공기와 딱딱한 가루 같은 차가운 안개, 냉랭한 바람 속에서 어느 틈엔가 서로 몸을 바싹 붙이고 팔짱을 끼고, 침묵하는 긴말한 둥근 원이 되어 흙을 밟아 다졌다. 궁지에 몰린 우리들 사이에 굳은 결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개는 물론 우리의 닭살 돋은 피부보다도 더 한낮의 희미한 온기를 지닌 땅의 엷은 층 밑에는 어둡고 차가운 눈을 죽은 눈꺼풀로 덮은 사람들, 이미 다리며 가랑이 사이의 은밀한 부분에 구더기가 힘차게 꿈틀거리는 사람들이 팔과 다리를 구부리고 누워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발치에서 날아오르는 새 같은 공포를 일으켰으나 아직은 골짜기 저편, 바리케이드 뒤로 엽총을 그러안고 우리를 거부하는 어른들, 외부의 비열한 어른들보다는 우리에게 더 가까웠다. 밤이 와도 누구 하나 우리를 부르러 죽음의 거리에서 달려 나오는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입을 꾹 다문 채 참으로 오랫동안 흙을 계속 밟아 다졌다. (115p)

그 전에, 라고 말할 때, 남자는 목소리를 낮추고 모음을 강하게 울렸다. 그것은 그들 마을 사람들이 사건은 이미 완결되어, 전설적인 하나의 이야기, 지나가버린 천재지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확신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그 사건을 현실적 시간 속에서 살아내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에 질질 끌려들어 발목을 붙잡힌 채, 그것과 계속 싸워나가야 하리라.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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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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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 문학동네

좌절된 사랑의 신화, 그들은 왜 나무가 되려고 했을까

 

 

 

  그들은 왜 나무가 되고 싶었을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자신을 나무에 투시한 그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마치 나무처럼 사랑을 하던 그들이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남들은 그렇게나 쉬웠던 사랑을, 끝까지 울음을 참아가며 이어갔던 그들의 이야기가 애처로웠다.

  내용 자체부터 쉬이 읽어버릴 만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번 감탄하곤 했던 이승우 작가의 소설이었기에 '만만치 않음'을 기대하고서 읽어내렸다. 소설은 사창가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길에서 여자를 태우는 주인공, 그리고 이어지는 회상. 스크린 너머에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한 형을 업고 창녀들이 가득한 '연꽃 시장'으로 들어섰다.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채우려 하는 형을, 동생은 원망했고 그를 동물처럼 바라보았다.

  ​그러나 형이 되고 싶었던 것은 동물이 아닌, 식물 그리고 그중에서도 '나무'였다. 그렇게나 행복했던 사랑은 어떤 실수인지 운명일지 모를 함정에 의해 날아가 버리고, 소신껏 행했던 자신의 유일한 작업마저 그를 행복한 인생에서 끌어내리는 동기가 되었다. 역사의 풍파를 직격으로 맞아, 수많은 고문으로 앓게 된 후유증은 그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드러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형의 인생. 나무가 되고 싶었던 형의 인생에는 알고 보면 또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 엮여있었다. 형을 사랑했지만 오해로 인해 여러 세월을 놓쳐버리고 이제 그에게 힘을 주려는 순미, 철없는 사랑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형에게 잊지 못할 아픔을 준 주인공 기현, 담담하지만 필사적인 모성을 보여주었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오래된 연인. 그들은 이제, 마치 '성소'와도 같은 장소 '남천'에서 만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비극을 어느 정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한다.

  작가는 그들의 사랑을 신화에 빗댄다. '나무의 신화', 그들 모두 나무가 되어 형성한 '신화'는 당대의 아픈 역사 속에서 희생된 사랑의 신화이며, 어긋난 관계로 좌절된 사랑의 신화다. 그들은 '나무', 식물이 되기를 꿈꾸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해간다. 형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하면서, 철없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그들은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서로를 안아주고, 품어주는 나무, 그리고 숲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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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나무줄기가 날씬한 여자의 나신을 연상시켜." 형은 취한 것처럼 말했다. "정말 황홀한 것은 흰 꽃이지. 5월이니까 조금 있으면 꽃이 필 거야.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때죽나무의 흰 꽃들은 은종 같아. 그 아래 서 있으면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지." 그의 목소리가 깊은 바다에 떨어지는 닻처럼 어두운 숲속으로 유영해들어갔다. 나는 끼어들 수도 없었고, 끼어들 내용도 없었고,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헨젤과 그레텔의 숲을 연상시키는 주술적인 분위기의 검은 숲으로부터 빠져나온 사실만을 고마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47p)

형에 대한 내 감정은 날로 사나워졌다. 그녀에 대한 말 못할 사랑이 간절해질수록 형에 대한 미움도 커졌다.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허물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만 편집적으로 집착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나아가 바람직한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나는 사랑의 보편성에 매달렸다.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화된 사랑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랑이 유발되고 고백되고 실연되는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을 간과했다. 의도적인 눈감기, 필요가, 혹은 욕망이 어떤 진실에 대해 눈을 감게 하고 새로운 진실을 창출한다. (61p)

그들의 몸은 대칭을 이루며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마치 이제야 완전한 한몸을 찾은 것처럼 그들의 몸은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어쩌면 지하세계까지 관통하고 있을 한 그루의 야생의 나무가 감정과 감각의 체계를 헝클어놓았기 때문일까, 뻔뻔스럽다거나 혐오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뻔뻔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쪽은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그들은 현실 밖에 있었고, 나는 현실 속에 있었다. 현실 밖의 세계는 정결했고, 현실 안의 세계는 추했다. 온전히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라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나 자신이 너무나 수치스러워서 더이상 망원경을 눈에 대고 있을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130p)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감추거나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옳은 일이었는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의 진실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어떤 책에선가 행동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고, 상황 속에 들어 있거나 들어 있지 않은 진실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책에는 동기가 사랑이면 그 행동은 선이다, 하고 쓰여 있었다. 그 문장을 나는, 동기가 사랑이 아니면 그 행동은 선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었다. 동기가 사랑이면 아무리 나쁜 행동도 선이고 동기가 사랑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행동도 선이 아니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전에는 가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그 상황주의자의 특별한 주장을 정언적인 어떤 명령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그 상황주의자의 특별한 주장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받아들였다. 동기가 사랑이라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 사랑은 모든 상황과 문제에 대한 유일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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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 있던 자리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9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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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 문학과지성사

추억이 머물던 자리에서

 

 

 

 

   베스트 셀러 혹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책들에 대한 왠지 모를 기피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럴 경우 나는 작가의 전작부터 읽곤 하는데, 신경숙 작가의 경우에는 『​외딴방』이 내 마음에 큰 자국을 남긴 책이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오래전에 나온 『풍금이 있던 자리』는 나보다 책을 잘 아시는 분들께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는 이야기에, 작가의 책 중 두 번째로 읽기로 결심했다. 『외딴방』​의 이야기 자체가 한국 사람으로서는 감정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다소 충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 집중하게 되는 건 작가가 써 내려가는 한 줄, 한 줄이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이야기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는 듯 조용히 속삭이는 그녀의 글들은 여태껏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좋아하는 작가의 목록, 그 빈칸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그려냈을 듯한 『외딴방』의 수채화 같은 작품과 다르게, 아마도 『풍금이 있던 자리』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어디서나 드러낸 곳이 없었으나, 그 추억을 살려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꼭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느낌이어서 왠지 모를 묘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 참 이상한 책이었다. 여러 개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책이었지만, 한편으로 된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표제작인  『풍금이 있던 자리』 ​와 『직녀들』은 그 구성과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내게는 특별했던 소설이었고, 그 또다른 이유는 전혀 아름답지만은 않은, 혹은 별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엮어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쪽 언덕』 속에서는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 '개의 시선'으로 보는 추억 속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멀리, 끝없는 길 위에』서는 어느샌가 지나간 한순간, 그리고 언젠가 지나갈 한순간을 살아가는 꿈같은 추억이 아련했다. 또한 그 속에는 중간중간에 '글'에 대한 사유가 섞여있어서 "살아가면서 언젠가 이렇게나 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마저 들어서, 그 소중하게 적힌 작가의 글에 대한 애정은 더욱더 샘솟았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쉼표와 말 줄임표가 계속되는 작가의 문장이​었지만, 이제는 그 조용하고 고요한 글이 마치 목소리처럼 '들리고 있다'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강한 인상을 받은 작가의 전작들처럼 조금씩 세월이 흘러 꺼내진 책들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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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었어요. 오늘 이 치받침은 이렇게 삭혀질 수 잇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달리 삭힐 방법이 제겐 없습니다. 당신은 정말 떠날 것인가? 한 시간 전부터 저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여기 있었습니다. 시침이 오후 3시를 막 지나갈 때, 그토록 간절히 붙잡고 있던 당신과의 끈을 놓아버린 셈입니다. 제가 놓아버린 한 끝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잡고 있는 거기 한 끝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중인가요? 당신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거기 서계신가요? (40p, 풍금이 있던 자리)

지나간다는 것,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고국에서의 무기력한 날들을 그는 지나간다는 것에 기대어 보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80마일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저 모래 풍경들과 같이 다 지나갈 것이다. 첫사랑의 여자가 지나갔듯이, 청춘이 멍에 같은 가난한 고향을 둔 죄로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사이 지나갔듯이, 그 멍에를 지나서 고생했던 3년이 고국의 불타오른 부동산 바람에 공허히 지나갔듯이, 앞날도 그렇게 지나가리라,고 생각하니 못 견딜 일이 없었다. 그의 삶에서 열정이 환희가 빠져나가니까 울분도 광포해질 일도 같이 빠져나갔다. 다가와서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기로 했으므로 그것들이 어쩌다가 던져주고 가는 소소한 기쁨에 수다를 떨 권리도 그에겐 없었다. 인생은 나를 그렇게 대하기로 한 것이다, (93p, 멀어지는 산)

...... 소설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돌보지 않는다. 소설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 밤의 내가 보인다, 볏짚 속에서 칠흑의 하늘을 향해 눈을 뜨고 있는 짐승의 눈, 나의 눈. 거기, 그의 눈 속에 추수하는 벌판이 있다, 내가 있다, 농부의 아낙, 나의 어머니, 그의 딸. 청결하게 쏟아지는 햇빛, 아, 그의 눈은 영화관의 화면, 멍석을 깔아놓고 벼를 한줌씩 잡고 홀태질을 하는 여인들을 그의 눈은 펼쳐놓는다, 얼굴로 흘러내리는 기름진 땀방울까지. 홀태 밑으로 소복소복 쌓여가는 누런 낟알들은 당그래로 다시 긁어 모아져 가마니에 담겨 한쪽에 쌓여간다,

그의 눈 속에서, 낟알이 떨어진 지푸라기들도 쌓여쌓여 다발로 묶여져 산이 되어간다, 그의 눈 속에서. 방 빗자루를 만들 양으로 홀태에 감긴 결 고운 속 지푸라기들을 한줌씩 들고 있는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여전히 그의 눈 속에서. 들판에 넘치는 햇빛이 어린 나를 졸립게 한다. 그의 눈 속에서, 볏짚더미 어느 속에 들어가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사람들 속에 섞여 홀태질을 하는 나의 집, 어머니를 바라본다, 그의 눈 속에서. 이마에 땀방울, 그 반들거림, 밀짚모자 위의 노란 수건, 털어진 낟알들, 누렇게 빛나는 햇빛, 졸리웠던 게 아니라, 숨바꼭질을 했던 건 아닐까, 청명한 하늘이, 먼산의 능선이, 그의 눈 속의 나의 시선 속에서,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정지. 여기에서 그의 눈 속의 나, 움직임이 느려진다. (233p, 멀리, 끝없는 길 위에)

삶은 적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가기 위해서 쓰고 있는 것 같다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녀 얘길 써야 하지? 가만히 살다 간 그녀에게 무덤을 만들어줘보겠다, 이것이 내 생각인데 그대로의 그녀를 쓰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나는 나도 모르게 상황을 독특하게 만들고 때론 부풀리고 심지어는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그런 작위로 어떻게 그녀 속의 우연, 기미, 어찌할 수 없음, 이런 것들을 내가 짚어내느냐고? 놓쳐버린 것들, 그녀가 느꼈던 기미들. 내가 써보고 싶은 건 그것들인데 그런데 그런 것을 다 놓치고 지금 나는 뭘 적고 있는 것인가? 적어보려고 애쓰면서 사는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 내가 물어보는 거지. 이번에는 그녀의 기저음들을 그 시간의 결에 스며들었던 햇살이나 빗방울들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내 마음은 대답을 못 해. 이번에도 어느 부분은 과장될 것이고 어느 부분은 소멸될 것이야. 있는 그대로 쓰겠다고 해놓고, 그렇겠다고 해놓고는. (250, 멀리, 끝없는 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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