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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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길이면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보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나치던 고가 밑 도로, 동생을 데리러 가던 어린이집, 초등학교로 가는 표지판들을 깊숙이 살펴보지 않고 늘 스쳐가곤 했다. 몇 미터만 가면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애써 발길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히 느껴지는 노스탤지어와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오랜 시간 동안 직접 가까이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옛날 동네에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어, 저기다. 한번 가볼까? 오랜 추억을 함께 갖고 있는 언니와 즉흥적으로 핸들을 돌렸던 것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에 걷던 골목을 자동차의 속도로 스쳐갔다. 너무나 많이 변했고, 너무나 그대로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을 정리하기엔 버거웠다. 감정뿐일까. 그곳의 냄새도 기억한다. 바람도, 공기도. 그러나 완전히 행복한 기억만 떠오르지 않는다. 좋고 나쁜 분위기가 언뜻언뜻 떠오른다.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머뭇거리게 되는 어린 시절의 냄새는 시원하면서도 비릿한 수영장의 냄새와 닮았다. 시퍼런 책표지에 마음이 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민선의 하루를 그린 만화. 책은 ‘수영장’의 차갑고 비릿한 냄새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의 맞벌이, 늘 자신보다 뛰어났던 친언니, 친구들의 은근한 놀림과 조소,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민선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가능할 듯한 익사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39쪽)
“분명히 다들 나처럼 불편해하면서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127쪽)

조금 불쾌한 일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듯하지만 주인공 민선이 툭 던지는 말속에는 뼈가 숨어 있다. 어린이였다면 알지 못했을 뼈의 존재도, 어른이 된 내겐 분명하게 보인다.


민선의 하루는 책의 마지막, 세월을 건너뛴다. 동네의 작은 수영장은 어느새 큰 공간으로 확대된다. ‘가능한 손끝으로 입수하고, 가능한 오래, 물 안에서 머무른다.’ 차가운 물은 금세 적응된다. 물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그 차가움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차가워지고 식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수많은 민선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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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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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책을 시작할 땐 마음이 편안하다. 부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집중력,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온다. 추리력, 사실을 검증하고 정체를 밝히려는 호기심 또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런 것은 팩트고 저런 것은 거짓이다,라는 명제는 던져두자. 왜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따지지도 말자. 오로지 필요한 것을 하나만 정하라면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사랑의 감정,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될 것이다.

아, 그런데 이쯤에서 약간의 실수를 한 것 같다.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에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야 한다. 조금이 아니라 우주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쯤으로 말해야 할까. 등장인물은 자그마치 외계인이다. 게다가 권태기가 와 떠나버린 전남친의 몸을 빌려 변신했다. 여러 의미로 괴상망측한 존재인 외계인은 주인공 ‘한아’를 이용하거나 농락하러 온 것이 아니다. 단지 지구 저편에서 바라본 한아의 모습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웠을 뿐. 세계를 파괴하기를 넘어 서로를 파괴하기까지 하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며 살아가던 한아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띄었던 모양이다. 한아의 삶의 방식은 그의 직업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환생’이라는 빈티지 샵을 운영하며, 누군가의 삶이 맞닿은 옷들을 섬세하게 살펴 추억을 보존한 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소설 속에는 주인공 한아를 비롯해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지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람들 속에서 지구를 살리려 노력해보는 사람,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해 마땅히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 나만의 영원한 우상을 위해 평생을 사는 사람,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면 유별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누구도 그들을 나무랄 권리는 없으니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소설 속에 가득 담겨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왜 경민이 얼굴로 왔어? 물론 처음에 널 봤으면 꽤 놀랐겠지만…… 정우성 얼굴로 올 수도 있었잖아!”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도 물론이지만, 정세랑 식 유머는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게 되는 데 한몫을 한다. 현실에서 전혀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일들을 재치 있게 펼쳐나가는 뻔뻔함에 되려 기분이 좋아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소설. 요즘 이런 소설은 정말 많지 않다. 비슷한 온도와 가득 힘을 준 문장들로 개성을 찾기 힘든 한국 문학 속에서 일관성 있게 자신만의 문학을 밀고 나가는 정세랑 작가는 한아의 모습과 닮아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어찌되었건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 거야.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다들 날아가서 부딪치면 좋겠다. 한아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경민이 와준 건, 왠지 대놓고 인정하긴 싫었지만 행운이었다. 우주적 행운. 한 반광물 생명체의 획기적 진화. 대단한 희생을 기반으로 한 기적. 뭐라고 이름 붙이든 간에 한아는 망원경 앞의 저녁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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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 삼풍 -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서울문화재단 기획,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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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종종 텔레비전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를 보았을 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와르르, 몇 초 만에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땐, ‘건물은 이렇게 무섭게 무너지는구나’ 했고, 매몰되었지만 기적같이 살아난 생존자를 볼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건 그냥, 너무 큰 고통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되새기는 삼풍 백화점 사고에는 더 많은 생각들이 달라붙었다. 젊었던 엄마도, 대학생이었던 나도 백화점 건물 안에서 일했다. 만약 당시였다면 업무 도중 빠릿빠릿한 눈치로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을 감지한 뒤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1995년 서울, 삼풍>은 지은이 이름에 적힌 ‘기억 수집가’라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다양한 방면에서 사고를 접했던 이들의 기억을 꼼꼼하게 재조립한 책이다. 생존자, 희생자의 유족, 지인,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구조 작업을 담당했던 소방관, 민간 구조자, 건축업자, 기자, 의사, 봉사자……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힘썼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슬픔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현재까지 이어오는 고통에 대하여 상세하게 전한다. 구술자의 심리와 행동을 괄호 안의 지문으로 강조함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고의 정황 속에는 몰랐던 사실도 정말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함’을 감지했으나 갖가지 이유로 피하지 못했고, 역시나 주변 건물의 사람들과 민간 봉사자들은 직접적으로 수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절도를 목적으로 봉사에 합류한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고). 당시 응급 의학 자체가 미비한 상태여서 체계적인 제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일이 많았으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불과 몇 초 만에 무너진 건물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유족들이 있었고 난지도에 버려진 건물 잔해 속 부분 시신까지도 간절하게 바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었다.

“건축은 의사, 변호사처럼 사회정의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축가나 건축계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면 그런 결과들이 초래됩니다. 고객이 이렇게 해달라 요구할 때 건축가가 이런 이유로 안된다 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았겠죠. 그런데, 네, 알아서 하세요. 도장 찍어줍니다.” 건축에 대한 이 한 마디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은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무언가를 만들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일들이 때때로 무시된다. 수많은 안타까운 사고의 시작이 작은 한 마디라고 생각하면 순간 섬뜩해진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기억’의 슬로건이 대두된 이후로, 2년 뒤 이 책이 출간되었다 (종종 구술자의 발언에서 세월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월호 유족들에 관련한 비방이 거세질 때, 지겹다는 말이 지나치게 많이 들려올 때, 세월호가 지겹다는 이들에게 삼풍 생존자가 쓴다는 글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링크).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인간의 예의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이다. 매번 기억하며 우울 속에서 살아갈 리 만무하지만, 감시의 역할로도 기억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기억을 이렇듯 온전히, 한숨과 말줄임표 하나까지 꼼꼼히 담아준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 친구가 무너지기 30분 전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백화점이 너무 덥다. 옥상에 균열이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에어컨이 멈췄다더라. 그런데 이상하다, 분위기가.’ 이 친구가 1층 로비 바로 앞에서 근무하니까 사람들이 나가는 게 보이잖아요. 윗사람들, 경영진들이 굉장히 급박하고 왠지 모르게 긴장된 모습으로 빠져나간다는 거예요. “이상해.” 계속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잖아요, 백화점이 무너질 거라는 걸. 저도 좀 이상한 느낌에 “너도 매장 두고 퇴근하는 건 어때?” 그랬어요. 그랬더니 “저 물건들 비싸잖아.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해. 내 책임이 될 텐데” 하더라고요.

평생 잊혀지지 않는 분이 계셨는데 아주 작고 왜소한 체구에 도배, 페인트 일하는 분이에요. 저희가 엄청난 먼지와 악취 속에서 숨쉬기도 힘들어하면서 작업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는지 커다란 널빤지를 가지고 오셨어요. 합판 부스러기인데 저희가 굴을 파고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바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기를 불어넣어주셨어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뒤에서 공기를 넣어주면요, 작업 환경이 정말 좋아져요. 작업하다가 뒤돌아보면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안경 고쳐 쓰고 닦아가면서 저희에게 계속 부채질을 해주시는 거예요. 저는 그 분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구조 대원들 모두 입 모아 말했어요. ‘저 아저씨는 상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활이 안 된다, 이 정도는 아닌데 무너질 걸 항상 대비하죠. 어디로 튈까, 그런 생각을 해요. 위에서 뭐만 떨어져도 무서워요. 이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뭐가 흔들리기만 해도 겁나고 바람이 불어서 문 같은 게 꽝 닫혀서 아래층이나 위층이 울리면 ‘아, 문 좀 잠가놓지’ 이런 생각 하죠. 고층도 싫어 못 살겠어요. 어쩌다 한번 누구네 집에 놀러가면 몰라도 고층에서는 못 살아요.



죽은 자와 산 자의 짐은 다릅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짐을 산 자한테 떠넘기고 가요. 살아 있는 자는 그 짐을 평생 지고 가는 거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짐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뭐냐, 내가 달라져요. 건장한 스무 살 짜리 애가 들던 짐의 무게와 지금 드는 짐의 무게가 똑같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옛날 생각하실 적에 더 아파하고 슬퍼하잖아요. 제가 남기고 싶은 말은요,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다, 몇십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가 아닙니다. ‘몇십 년 후에는 더 힘들어질 거다. (죽은 자가 남긴 짐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입니다. 그러나 꼭 남기고 싶어요 ‘그러나’라는 단어를요. 또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진행 중이라는 ‘ing’라는 단어를요. 견디고 또 참아내면 저희 세대로 끝나겠죠. 하지만 제 자식 세대가 그 짐을 들고 가게된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도시는, 특히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망각을 근본 원리로 하고 있다. 재난에 의하여 먼저 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상흔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하여 자연 치유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일종의 무책임한 운명론이 그 상흔들을 압도해버린다. 누군가가 기억을 하고자 하면, 왜 기억하는가, 무슨 의도로 기억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윽박지른다. 우연적인 사고로 축소하여 도시 일상의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대책은 고사하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힘들이 모든 상처 입은 자들과 고인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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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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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좋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고작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좋아하는 작가’라 말하기는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든다. 김애란은 내게 이런 기분으로 다가오는 작가였다. 연이어 단편집을 읽었고, 단편의 한 글귀를 입에서 오물오물 되뇌기도 했으나, 완전히 다 알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스무 살 즈음에 『침이 고인다』를 만났고, 중반 즈음에 『비행운』을 읽었다. 이후 『바깥은 여름』을 읽으면서 감동했다. 우연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만나게 된 김애란의 소설은 함께 연결되어 나이 드는 동질감을 느끼게 했지만, 그의 ‘처음’을 알지 못해 허전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2005년에 첫 출간된 소설집이 십여 년을 지나 새 옷을 입고 나왔다. 순서가 바뀌고 작가의 말도 새롭게 적어 넣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반가운 기회로 김애란의 풋풋한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만나게 되었다. 작가의 초기작을 만나는 것은 늘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이번에는 빠져 있던 퍼즐 조각을 찾은 듯 유독 즐거운 기분이다.

이십 대에 들어서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나는 전혀 어른이 된 것 같진 않지만 그때와 현저히 달라진 존재를 느낀다. 그때는 내 생애 가장 우습고도 밝은 시기였다. 마음은 조금 부풀어 있고 살짝 열려 있었다. 겁이 나도, 살짝 열린 틈으로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기회, 내가 하고 싶은 상상 속에 잠깐이라도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나이가 돼서야 볼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때의 나이에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풋풋한 스물,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또 한 번 나의 시간을 생각한다.

만나지 못했지만 늘 가슴 한편에 있는 동경의 대상을 생각한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 그리고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사랑의 인사>라는 단편들은 부재하는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는 면에서 비슷한 결을 가진 소설이었다. 그 누군가는 종종 아버지의 존재로 비춰졌다.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을 이야기할 때 면 조절하기 힘든 감정을 적당한 온도로 전하고 있었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탁월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단편들이었다. 건조하면서도 섬짓한 분위기의 이 소설들이 유독 좋았다. 글을 쓰는 존재로서의 고뇌가 느껴졌던 <영원한 화자>, <종이 물고기>도 기억에 남는다.

소설 속에는 작가의 책을 좋아한 이유이기도 했던, 문장의 신선한 표현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초기작의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첫’ 소설의 무거운 고뇌 또한 들어 있는 듯했다. 마치 뼈 있는 농담을 듣는 기분이라 할까. 물론 조금 더 매만져진 지금의 김애란이 나는 더 좋긴 하지만, 첫 소설의 매력을 느끼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었다.

 

어머니는 발가벗은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을 큰 손으로 몇번이나 쓸어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39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한다는 점에서 무레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한 사람을 미워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내가 그동안 그것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 P127

“죄송합니다.” 나는 그가 건네는 포장 만두를 받아들었다. 볼일이 끝난 뒤에도 내가 계속 꼼짝 않자, 청년은 나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뭔가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그런데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 어물쩍 한마디 내뱉고는 큐마트를 나왔다. “문자 왔어요.”- P237

바람이 들고 날 때마다 모든 벽면이 바깥을 향해 천천히 부풀어올랐다 다시 원상태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럴 때면 다섯개의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이 일제히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자 더욱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방 전체가 하나의 종이 비늘이 달린 물고기가 되어 부드럽게 세상을 헤엄쳐 다니는 상상을 했다. 마치 자신이 물고기 지느러미 옆에 붙어 있는 것 같았고, 반대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기분도 느꼈다. 대체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알 수 없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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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시집 이미 1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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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잃어버린 작은 개가 길가에서 처참한 사체로 발견된 사진을 봤다. 머리만 집중적으로 훼손되어 길에는 피가 흘렀다. 주인이 개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고자 본 CCTV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남자 두 명이 개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차고, 결국엔 죽이고, 박수까지 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국민 청원이 열렸지만 확실한 해답이 나올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인간이 어디까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하루하루 시험하게 되는, 믿기 힘든 뉴스들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흘러나올 것이다.

차라리 귀를 닫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의 지나친 관여와 악담은 어떤 ‘약자’를 죽이고, 수그러드는 듯하다가도 금세 다시 타겟을 찾는다. 권력은 국가 위에 군림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다. “인간에겐 희망이 없어요.” 수많은 범죄를 목격하는 이수정 교수의 발언을 캡처해 돌아다니는 ‘짤’을 보고는 조금도 과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분노와 적의를 실어 나르는 우리는 / 누구를 가슴속에서 완전히 지우고도 /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술을 아는 우리는 // 지우개를 발명하고 / 사랑과 증오를 오려붙이고 /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은 차단하고 /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 심심해서, 라고 말하는 인류는 (97쪽, <쓰는 인류>)

환멸로 쓰인 시. 이 책의 모든 시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무튼 이 구절에서 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느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시집의 처음도 아마 그랬으리라. 등단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참아온 일들을 터뜨리고, 문단을 세차게 흔들어 놓은 시인의 하루는 너무나 고단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 <괴물>과 ‘미투’ 이후, 최영미 시인은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새 시집을 출간하려 했지만, 제안을 넣은 여러 출판사들에게 답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단 권력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그의 이름을 부담스러워했다고 시인은 밝혔다. “그럼 내가 내야겠네.” 시인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당찬 해답을 냈다. 그의 인터뷰 기사(링크)에는 그렇게 자기 손으로 신작을 만든 일련의 과정이 간단히 드러나 있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로 / 존재하지 않는 깊이를 표현하려는 / 욕망에서 시가 탄생했다 / 징그럽게 늙지 않는 얼굴들 / 깊이 없는 이름들, 검색어가 점령한 서울 /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는 전염병을 피해 / 바빌로니아를 발굴하려는 욕망으로 / 시가 뚱뚱해졌다. (62쪽, <깊은 곳을 본 사람>)

요즘의 시대에 최영미의 시를 읽는다는 건, 낯설고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최영미의 시는 너무도 솔직하기 때문이다. 더 아름답고 더 깊이 있고 더 아리송해지려 노력하는 듯한 시들의 모임 속에서 오히려 뚜렷한 개성을 드러낸다. 직접적인 언어들로 감정을 전달한다. 시가 달아나 떠오르지 않는 순간을,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는 지난한 일상을, 법원에서 소장을 받은 모욕적인 기억을, 스스로 출판과 경영을 하며 겪은 새로운 경험들을, 시인은 쓴다.

허공에 색을 덧칠한 언어들 / 말이 말을 낳고 / 은유가 은유를 복제하는 / 요사스러운 말의 잔치에 질려, 나무를 보고 / 눈을 떴다 감았다 / 초록에 굶주린 몸이 도서관을 나온다 / 시 따위는 읽고 쓰지 않아도 좋으니 / 시원하게 트인, 푸른 것들이 보이는 / 자그만 창문을 갖고 싶다 / 담쟁이넝쿨처럼 얽힌 절망과 희망을 색칠할 (85쪽, <꿈의 창문>)

허무와 현실 앞에서 지나친 꾸밈 따위는 어떤 소용도 없다고,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말하던 그의 솔직함과 당당함은 아직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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