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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그레이엄 - 월가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 회고록
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김상우 옮김 / 굿모닝북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 사고의 명확함이 요구되면, 그에게 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만약 격려나 조언이 필요할 때면, Ben이 그곳에 있었다.
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다른 사람이 그 나무 아래서 쉬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면
Ben Graham이 그런 사람이었다.

 - 워렌 버펫,《Financial Analysts Journal》기고문(1976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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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의 아버지(Father of Value Investing)"라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현대적인 증권분석의 창시자로 널리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14년 컬럼비아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철학, 수학, 영문학의 교수직을 차례로 제안받았으나 거절했으며, 케펠 학장의 권유를 받고 월 스트리트에 진출하여 1956년에 은퇴할 때까지 42년간을 월 스트리트에서 보냈다. 그는 또 1926년 부터 1956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증권분석을 강의하며 워렌 버펫을 비롯한 숱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월 스트리트의 고전으로 손꼽히는《증권분석(Security Analysis)》과 대중적인 투자지침서인《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 재무분석의 기초를 다진《재무제표의 해석(Interpretation of Financial Statement)》등이 있다.

이 책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1976년에 사망한 이후 20년 만인 1996년에 출간된 책으로서, 그의 나이가 60대와 70대였던 1957년과 1965년 사이에 주로 회고록의 형식으로 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가치투자'에 대한 위대한 선각자의 가르침이나 투자의 지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보다는, 오히려 저자 자신의 '참된 인격'에 대한 귀중한 인식에 도달하게 해주는 내용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이 점에 관해 그 자신의 짧은 묘비명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이 사람은 모두가 잊어버린 것을 기억했고
모두가 기억한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그는 오래도록 공부했고, 열심히 일했으며, 많이 웃었다.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살찌웠고, 사랑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특히 어려서부터는 물론이고, 대학교에서도 수학, 철학, 영어, 그리스어, 음악을 공부했던 터여서 그의 자작시와 희곡 작품은 물론,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문학 작품과 시인, 극작가, 철학자들에 관한 얘기들이 책의 전반에 걸쳐 폭넓게 담겨 있어서 책을 읽는 흥미를 더해 준다. 틀림없이 그는 '문학적인' 회고록을 염두에 두었으며 이 회고록은 그의 문학적 성과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인 셈이다. 그는 위대한 저자들의 열렬한 독자였고 많은 저자들을 원어로 읽었으며, 이 책에 뚜렷이 나타나는 저자들은 주로 호머, 버질, 키케로, 유리피데스, 호러스, 루크레티우스를 비롯하여, 단테, 베이컨, 밀턴, 데카르트, 포프, 필딩, 기번, 레싱, 테니슨, 보들레르, 프로스트, 카프카, 스베보 등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저자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일들에서부터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너무나 솔직한'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자세히 들려주기 때문에, 마치 이 책을 읽는 독자들한테까지도 '나만이 아는 나의 비밀스런 얘기들'을 자꾸 떠올려보게 하는 묘한 재미들을 안겨준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은 그레이엄의 뛰어난 언어적.문학적 자질 때문에 향기롭게 느껴지며,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수많은 어린 시절의 풍경화같은 기억들을 되살려주는 시각적 즐거움까지 안겨주기도 했다. 이 책 속의 그런 이야기들로는 무수히 많은데, 특히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와 연애담 그리고 결혼생활의 위험한 시기에서의 혼외정사에 관한 부분들에 이르면 '너무 솔직해서' 읽기에 약간은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점들 또한 벤저민 그레이엄으로서는 "올바로 아는 것"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추구하는 자세에 비춰봐서는 전혀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 책 서문에서 세이모어 차트만 교수가 말한 대로 그레이엄의 회고록은 또한 많은 교사들이 의심스러워 하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가장 좋은, 그리고 오직 하나의 지속적인 교육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배웠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한 정신적 삶에 대한 그의 "타고난 성향"이 우세함에 따라 백만장자가 된 이후에도 사치를 좋아하지 않게 된 '물질적 풍요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가장 뛰어난 재정전략은 그 사람의 수입 범위 내에서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물론 투자자로서 그레이엄의 위대함에 관해서는 이 책에서 그다지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정으로, 또 겸손하게 "칭찬으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겸손함은 허영심과 구별이 전혀 불가능한 자존심의 표현이었으며, 호러스의 "자신의 정직을 의식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당연히 그가 이룬 업적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으며 거짓 겸손은 떨지 않았다. 그는 천성적으로 영리한 재담가였기 때문에 자신의 자랑이 지나치게 부풀어오를 때는 "이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실제 그가 월 스트리트에서 기록한 뛰어난 실적은 1929년의 끔직한 대공황과 수많은 증시 폭락을 겪으면서 이룩한 것이기에 더욱 빛난다. 그의 오랜 기간 동안의 연평균 수익율은 17%였다.

그레이엄이 겪은 투자와 관련된 시련 가운데에는 무엇보다도 1929년의 대공황 시절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맨 뒤에 덧붙여진〈벤저민 그레이엄 연보〉만 살펴봐도 그 시절의 고통과 낙담과 우울함의 나락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
1929년 펀드의 자본금이 250만 달러로 늘어남. 그 해 펀드는 20%의 손실을 기록.
1930년 펀드 최악의 해로 50% 손실. 이후 5년간 펀드에서 급여를 받지 못함.
1931년 펀드 16% 손실
1932년 펀드 3% 손실.(당초의 자본금 250만 달러 중 이 때까지 70% 손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주가 42를 기록.(1930년 고점 279)
1935년 대공황 시기의 손실을 전액 만회.
~~~~~~

그렇지만, 이 책의 13장 '대폭락의 시련을 넘어'에서 그레이엄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과 자작시들은 남다른 느낌들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요즈음의 현실 또한 '기록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IMF 때보다도 더 살기 힘든 상황' 또는 '투자의 실패 때문에 겪게 되는 참담한 심정에 휩싸인 투자자들의 모습'도 그 당시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그리 낯설게 않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그레이엄의 투자철학이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꽃피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재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1929년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당시 파산한 투기꾼들이 뗴를 지어 중개회사의 창문 밖으로 투신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사들은 대중의 공포감에 대한 호소나 "사형대 유머"가 그런 것처럼 당연히 크게 과장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파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어렵던 시기에 절망적인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이다. ...... 그러나 부와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다. 뉴욕의 가난뱅이가 캘커타에서는 부자일 수 있다, 그리고 사실상 재산의 5분의 4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에게 남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와는 관계없이 엄청난 재앙을 겪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의 괴로움은 재산이 줄어들었다기 때문이 아니라, 지리한 장기전과 함께 시장이 돌아섰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추락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실망, 대공황과 손실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더구나 내가 많은 친척과 친구들의 재산을 책임지고 있으며, 나와 다른 사람들이 나를 거의 끝까지 짓눌렀던 패배와 좌절감을 잘 이해하듯 그들 또한 나만큼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

그는 세 번 결혼했으며 혼외정사도 가졌지만, 그레이엄을 플레이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이다. 그는 여자를 숭배했고 연애를 즐겼다. 그가 했던 연애는 대부분 고상하고 지적이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그가 여성과 정서적으로 관계하는 법을 알게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현명한 투자자》의 제 10장에 나오는 재미난 부분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주식을 고르는 방식을 그들이 아내를 고르는 방식과 비교한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주식을 어떻게 고르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란 어렵다. A는 베들레헴 스틸 주식을 35달러에 사기로 결정하는 반면, B는 울워스 주식을 46달러에, C는 얼라이드 케미컬을 190달러에 선택하는 것은 정확히 어떤 심리과정에 의해서일까? 주식 거래는 아내를 선택하는 일과 비슷해 보인다. 많은 구체적인 사항들이 어느정도 세심하게 검토되어지고, 그런 다음 거기에 비합리적 편애(unreasoning favoritism)라는 강력하고도 지배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우리가 그레이엄의 성격에 관해 최종적으로 재발견하는 것은 그가 책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 특히 실수로부터 배우려고 했던 일생 동안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론적인 얘기는 그레이엄이 청소년 시절 부터 가슴깊이 각인된 인상적인 표현이 있다.

청소년 시절 나는 율리시스의 방황과 시련이 그의 아내 페넬로페와의 극적인 재회로 끝나고, 마침내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기뻐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 뒤 테니슨의 유명한 시는 고국과 아내의 침대가 그의 귀향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정한 율리시스에게로 나를 인내했다. 그 시의 결론 부분은 내 자신의 가치와 야망,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어떤 인생에 대한 맹렬한 도전처럼 내 머리를 흔들어 놓았다. "노력하고, 구하며, 찾고,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말을 나는 얼마나 스스로에게 되풀이해 말했던가.

벤저민 그레이엄은 그의 회고록 뒷부분에 2편의 에필로그를 덧붙였는데, 그 중 하나는 1974년에 쓴《80세 생일 연설》이다. 이 책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에필로그에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제 마지막 말을 할 차례입니다. 그레이엄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내가 늘 암송해왔던 테니슨의《율리시스》의 마지막 시행들보다 더 나은 말을 내가 고를 수 있을까요:

가자 친구여, 새 세계를 찾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배를 띄우고, 줄 맞춰 앉아, 힘차게 노를 젓자
뱃머리가 물살을 가른다; 나의 목적을 위해
황혼과 서쪽 하늘의 별들의 바다를 너머, 내가 죽을 때까지
노를 저어라.
파도가 우리를 삼킬 수도 있으리라:
행복의 섬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아킬레스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많은 사람이 남았지만; 우리에게 비록
땅과 하늘을 움직이던 예전의 강인함은 이제 없지만;
그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지만;
시간과 운명에 의해 약해졌으나, 강인한 의지의,
영웅적인 용사의 침착함으로,
노력하고, 구하며, 찾고, 포기하지 않으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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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자본시장의 흐름을 바꾼 불후의 명저
    from Value Investing 2011-03-07 23:19 
    만약 사고의 명확함이 요구되면, 그에게 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만약 격려나 조언이 필요할 때면, Ben이 그곳에 있었다.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다른 사람이 그 나무 아래서 쉬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면Ben Graham이 그런 사람이었다.-워렌 버핏,《Financial Analysts Journal》기고문(1976년) 中에서* * * * *지금으로부터 116년 전인 1894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895년 부모님을 따라뉴욕으로 이주한 벤저민
  2. 60년 전에 쓰여진 투자에 관한 가장 훌륭한 고전
    from Value Investing 2011-03-16 17:27 
    만약 사고의 명확함이 요구되면, 그에게 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만약 격려나 조언이 필요할 때면, Ben이 그곳에 있었다.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다른 사람이 그 나무 아래서 쉬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면Ben Graham이 그런 사람이었다.-워렌 버핏,《Financial Analysts Journal》기고문(1976년) 中에서* * * *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인 1894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895년 부모님을 따라뉴욕으로 이주한 벤저민
  3. 진정한 '투자'의 핵심을 가르쳐 주는 책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30 
    1990년대 중반쯤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조금은' 어렵게 느껴져서 책을 완독하지 못했었다. 그 이후 주식시장의 극심한 등락을 경험하고 나니, 다시금 '투자'에 관한 '기본'을 가다듬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 시기에 다시 집어든 책이 바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대표적인 저서인 이 책이었다.1999년의 극심한 버블과 2000년의 참혹한 버블 붕괴를 겪고 난 이후, 다시금 시장이 (이라크 전쟁과 유가 급등과 북한의 서해안 침
  4. 자괴감이 드는 밤......
    from Value Investing 2012-03-16 03:38 
    증시가 연일 오르고 있다.증시가 이렇게 힘차게 솟아 오른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실컷(?) 상승한 뒤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결과를 놓고 그 원인들을 새삼 되짚어 보는 건 언제나 별 실익은 없는 경우가 많다.다만, 이런 증시의 상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늦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일말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첫째, 외국인은 정말로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지분을
 
 
 
황금의 지배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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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늘날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에서 지배적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자본주의에 있어서 그 근원적 매개라고 할 만한 '돈'에 관한 책이다. 단지, 돈이라는 다소 저속한 표현 대신에 '황금'이라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금속을 빌어 썼을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이 단순히 인간의 황금에 대한 탐욕의 역사에만 촛점을 맞춰 쓴 것으로 속단할 필요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화학기호 AU(빛나는 새벽Aurora에서 유래)로 채워진 금송아지를 만들어 저주받은 유대인들의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목구멍에 끓는 황금을 부어 살해당한 크라수스, 미다스의 손, 미 골드러시에 참여한 10만명중 400명만 부자가 된 얘기 등으로 이어지면서, 책의 중반부터는 금본위제에 이르기 위한 멀고도 험난한 여정과 브레튼 우즈 체제의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국제금융시스템과 통화제도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달러가 세계의 중심통화가 된 오늘날에 이르러서, 과연 달러 또한 과거 금본위제 시절의 황금이나 다름없이 흔들리는 위상을 예고하고 있지나 않은지에 대한 물음까지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물질문명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돈(황금)과 그 돈의 흐름을 다루는 금융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여길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인류 역사의 중대한 시기마다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황금을 통해 거대한 스케일로 다룬 인류경제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또한 번스타인의 저서인《리스크》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 이유는 황금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흥미로운 얘기거리를 만들어 왔으며, 황금을 둘러싼 얘기 하나 하나마다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일화의 다른 일면까지 세세하게 파헤쳐 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얘기는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왕 전설로부터 시작해 로마시대, 중세 흑사병의 전염과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인한 대변동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살펴보면 이 책의 밑바탕에 깔린 저자의 인식에는 항상 인간의 의지와 인간 능력의 한계에 대한 관점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점은 이 책의 원제목 아래에 '망상의 역사'(The History of an Obsession)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수많은 인용서적과 논문 리스트를 보면 학술서 같은 느낌도 없지 않으나, 주제는 오히려 '황금과 인간 이야기'에 가까워지는 묘한 매력을 던져주기도 한다.

반짝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황금이 인류경제의 중심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까닭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인간은 황금이 가진 능력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그것에 부여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돈은 수단에 불과할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보다 근원적이며 교훈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책 또한 번스타인의 방대한 참조 자료와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빛나는 금실로 얼기 설기 엮어 놓아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임에 틀림없다.
경제학자의 열정, 역사학자의 눈 그리고 사회학자의 분석력을 겸비한 번스타인은 늘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책 속에서>
약 100년 전에 존 러스킨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어떤 남자가 그의 전 재산인 금화가 가득찬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배를 탔다. 그런데 항해가 시작된 지 며칠 후 엄청난 폭풍이 몰려와서 배를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라는 경고가 터져나왔다. 그 남자는 가방을 허리에 동여매고 갑판으로 올라가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의 몸은 곧장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여기서 러스킨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자, 그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면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앞서 제기된 러스킨의 질문에 대한 번스타인의 답은 분명해진다. 러스킨의 주인공 자신이 금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금이 그를 소유했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 번스타인의 결론은 이렇다. “어쩌면 우리 이야기에서 가장 현명한 주인공들은 그들의 생명을 이어줄 소중한 소금을 침묵 속에서 금과 교환했던 젠느와 팀북투의 소박한 원주민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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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 리스크 관리의 놀라운 이야기
피터 L.번스타인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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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스크 통제권을 신의 영역으로부터 뺏어낸 영웅들의 이야기이며, 아울러 리스크 관리 능력을 신의 능력같이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싶어하는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 속에는 숫자와 확률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근·현대 이론들인 효율적 포트폴리오 이론, 옵션가격 결정 모형, 그리고 게임 이론과 파생상품에 이르기 까지 거의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책 읽는 재미가 가득하다.

인간이 아라비아 숫자를 발견하기까지 고생했던 이야기, 0을 발견한 얘기, 오늘날 알고리즘이라는 말의 유래를 만들어 낸 아랍의 수학자 알 코와리즈미(빨리 발음해 보라)의 얘기도 흥미롭다.

한 때 수학에 무척 흥미를 지녔던 시절이 있었기에, 피타고라스의 정리,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유클리드의 기하학, 복식부기를 발견한 루카 파치올리, 서양의 숫자 이야기의 시작을 담당한 피보나치(황금비율을 발견했으며 이 비율은 신용카드의 모양은 물론 뉴엔 본부 빌딩에도 적용된 비율이다),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 스위스의 수학자 야코프 베르누이, 종형 곡선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정규분포구조를 제시한 아브라함 드 무아브르, 찰스 다윈의 친조카이자 수학자였으며「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를 발견한 프랜시스 골턴, 그리고 프랑스의 그 유명한 삼총사인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 슈발리에 드 메레의 이야기도 온통 호기심을 자극하는 얘기들이었다.

이들 얘기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얘기는,「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수학자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자신의 군대에게 피해가도록 명령했다는 천재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얘기가 아니다. 당사자는 찰스 다윈의 사촌이며 아마추어 발명가이자 사회적 속물에 가까웠던 골턴이다. 측정은 골턴의 취미였으며 취미라기보다는 집착에 가까웠다.『가능한 것은 무엇이건 측정하라.』그가 늘상 되뇌던 말이다.

확률의 발견과 도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로 하여금 혁명적인 확률 이론을 창출하도록 한 것도 다름아닌, 운에 맡기고 하는 승부, 즉 도박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질과 미래의 전망에 대한 그 무슨 심오한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는 찰리 멍거가 이들 수학자들의 사고를 닮으려고 애쓰는 이유도 짚어볼 만 하다.

   우리는 페르마(Fermat)와 파스칼(Pascal)처럼 사고하려 노력한다.
   설령 그들이 현대 금융이론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 찰리 멍거


시간은 철회할 수 없는 결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철회할 수 없는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러한 과제에 당면하여, 이 책은 분명 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리스크를 정복하려는 현대인의 프로메테우스적 시도를 매력적이고 이례적인 방식으로 조망하고 있기 때문이며, 쉽게 읽히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의 대응영역과 능력에 대해 무엇인가를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확률은, 확률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나올 때만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확률에 대한 의존은 확률을 어느 정도 고려해서「행동해야 한다」는 판단이 설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확률이 우리에게「인생의 지표」가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존 로크(Tohn Locke)가 말했듯이, 신은「우리의 관심사 대부분에」단지 미광(微光)만을 부여하셨다. 내가 여기에 부연해 덧붙인다면,「신은 우리에게 확률이라는 미광만을 부여 하셨다」라고 하겠다. 이는 가정하건대, 신이 우리를 놓고 즐거워하셨던「평범(Mediocrity)」과「수습기간(Probationership)」의 상태에 걸맞은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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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재 2004-04-1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님의 강력추천에 저도 '리스크'를 구입했습니다~^^

oren 2004-04-1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재님도 이 책을 구입하셨군요..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라며 또한 후회없는 선택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2theleft 2004-06-0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책은 너무나 감동입니다! 수학, 경제학, 통계학의 깊은 역사....... 초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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