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개 낮은산 어린이 5
박기범 지음, 유동훈 그림 / 낮은산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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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발견하고 개, 고양이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서양 개, 고양이 얘기만 있어 서운하던 중 반갑게 만난 토속 동화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제목도 강아지, 누렁이가 아니라 <새끼 개> 라니!! 얼마나 정감있는 순수 우리말이란 말인가! 삽화 역시 곱슬곱슬한 털에, 왕방울 눈망울을 하곤 소파의 귀부인 무릎 위에서 우아 떠는 서양 견공이 아니라 짧은 다리, 뱁새 눈을 하곤 찌그러진 밥그릇 옆의 개 집에서 콧잔등 구겨가며 왁왁 짖어대는 우리 동네 누렁이가 아니란 말인가!! ^0^

그러나 정감있는 시골에서 아이들과 흙내음 맡아가는 우리네 얘기를 읽으려던 기대는 몇 장을 넘기며 충격으로 변했다. 책 내용인 즉, 포근한 어미 개의 품을 떠나 낯선 인간의 집에 보내진 후, 아이들의 장난감 노릇을 하다 보호소에 버려져 결국엔 길에서 죽어가는 가엾은 강아지의 일생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화답지 못하게(?) 인간이 사과나 반성을 하며 모두 용서되고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소외된 채 세상 한 구석에서 처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날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무릇 개란, 1만 2천년의 가축화 역사 내내 인간의 부속품으로 여겨졌기에 어미 개를 떠나는 (너무나 당연한) 새끼의 불안과 슬픔을 되짚어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작가의 시각은 누구나 보아 왔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강아지의 울먹임에 대한 낮은 목소리이다. 이 목소리를 듣고, 어린 시절 내겐 '아기보다 소중한' 내 새끼 개를 옆집 아기가 주물러 터뜨리는 것을 보고도 '개 VS 아기'라는 구도상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또 아무도 그 아기를 나무라지 않았던 데 대한 억울함을 조금은 위로받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한가지 서운한 점이 있는데, 동화 상에서 아이들이 개를 괴롭히는 것은 악의가 아니라 사랑의 방법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라는 점을 덜 짚어 주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입장바꿔 생각하는 법을 모르고, 그것을 어른들에게 학습 받아야 할 대상인데 책에서는 개가 주인공이다보니 사랑이란 이름의 횡포를 저지르는 아이들이 자칫 악역으로 묘사된 느낌이 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사랑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잘못 이해하고 있나를 조명해 보았으면 훨씬 더 포용력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을 보면서 누런 한지에 판화 형식으로 그려진 그림이나, 타협없이 다소 도전적인 내용이 얼핏 민중 소설의 느낌을 받았다. 작가를 잘 모르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낮은 목소리가 언제까지나 울려퍼지고, 또 모두에게 들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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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5-04-0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고, 저도 읽어 보았답니다^^* 좋은 책에 대한 리뷰 잘 보았습니다..
 
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정영문 옮김 / 해나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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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매일 같이 산책하고, 밥을 주며 적어도 1만 년 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개, '나는 얼마나 개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이 단순한 물음으로 저자는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다.

대충 7마리 이상의 개와 숲이나 원시림이 아닌 자신의 동네와 집에서 때론 무덤덤하게 때론 가슴 아픈 사건을 겪으며 그들의 삶을 관조한 개 관찰일기는 개를 기르거나,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아주 반가운 글이 아닐 수 없다. 또, 소재가 개이기 때문일까. 기존의 사자, 코끼리를 다뤘던 동물행동학 보고서에 비하면 문체도 내용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혀 더 좋다.

그러나, '개가 먼지묻은 뼈다귀를 인간이 탐낸다고 오해하고 으르렁 대듯, 인간이 다른 동물 종을 해석하는데 자신의 가치와 경험을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며 관찰에 자신의 감정이입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까닭인지, 아주 가끔은 보고 내용에 작가의 개입이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가 동물행동학을 학문으로 배우려는 게 아니라면 개에 대한 작가의 애정으로 눈감고 넘어가 줄 만 하다. 이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자연스런 개의 스케치도 한 몫을 하는데, 다소 긴장된 내용에서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엉덩이 테스트를 하는 개의 그림을 보다 보면 아침에 봤던 우리 개의 모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때때로 '왜 산책 할 때, 내가 개를 따르면 안되고, 개가 나를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같은 아주 당연하나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을 던지는데 이 모든 것이 인간이 개를 하나의 독립개체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부속품 정도로 여겼던 것 아니냐는 나즈막한 꾸짖음으로 들린다.

이런 인간의 오만은 개량 품종 이야기를 하며 좀 더 심각해지는데, 퍼그는 얼굴을 기형적으로 짧게 인위적으로 개량한 품종. 그 개들은 좁아진 얼굴에 기존의 뇌,뼈 등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 모든 기관들이 기형적인 두개골 속에 억지로 밀어넣어지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흥분하면 과도한 발작을 일으킨다던지, 조그만 충격에도 눈알이 튀어나온다든지, 평생 비염을 달고 살아야 하는 부작용을 갖고 있는데, (이는 과도하게 납작한 코를 가진 페르시안 고양이에게도 해당된다.) 이는 작가가 지적한대로 인간이 무릎꿇고 백배 사죄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심각하고 무거운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오랜 관찰 끝에 마침내 개들의 생각과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은총'의 순간을 갖게 되는데, 그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식스센스'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아 밝히지 않겠다. ^^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이 책의 내용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긴 했지만 개한테 우선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대목이다. 이는 기존의 인류학자들이 조수나, 가족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정작 관찰의 대상이 되어주고, 생활상을 보여주며, 귀찮은 질문에 대답해준 참을 성있는 토착 주민들에게 감사를 잊고 마는 인류학자들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요즘의 애완동물과 같이 과도한 애정표현이 아니라, 무미 건조한 친밀감으로 그들의 삶을 보여준 마리아, 미샤, 빙고...와 같은 그녀의 개들에게 독자로서도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PS. 두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는데 북극 원주민 집에서 온 암캐 코키를 보며 그녀의 과거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 한 부분은 자칫 북극 원주민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될 소지가 있을 듯 하며, 암컷 마리아가 짝짓기를 하는 부분에서 '한 마리 이상의 수컷에게 자신을 [허락]하거나 여러 날에 거쳐 다른 개들에게 [자신을 주는]' 이라는 표현은 눈에 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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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인형의 행복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11
가브리엘 벵상 글.그림 / 보림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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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때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이제는 어깨에 솜터지고, 꼬리에 실밥터져 길거리에 버려진 곰인형을 주워다 마지막 생을 같이 하는 어느 늙은 수리공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보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가만, 어린 시절...내 첫 곰돌이는 지금 어디에 있더라?' 개도, 말도, 코끼리도 아닌 왜 하필 곰인지는 모르겠지만 곰인형은 어린시절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있던 필수 아이템. 외출할 땐 안고, 잠잘 땐 베고, 무서울 땐 꼭 끌어안았던 절친한 친구 곰인형의 마지막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마도 꼬질꼬질 먼지가 쌓인 채 창고 속에서 몇 년을 박혀있다... 이사하는 날, 작아버린 옷더미 속에 묻혀 버려졌으리라.

책을 보면서 영화 '토이스토리 2'에서 여자 카우보이 인형 제시가 부르는 노래가 또 생각났는데

When somebody loved me
Everything was beautiful
....중략....
So the years went by
I stayed the same
But she began to drift away
I was left alone

아시겠지만 내용을 읊어보면, 소녀에게 사랑받던 여자인형이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라디오-> 친구 -> 매니큐어 -> 남자친구...등에 밀려 무관심 속에 버려지게 되고, 홀로 남겨진 채 아직도 아이를 사랑하며 그 날이 그립다고 부르는 노래이다. 여자 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처연하게 고왔던 것과 함께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뜨끔(!)하게 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게 당연하듯, 유년기를 넘겨버린 아이들에게 곰인형이 잊혀지는 것도 순리이겠지만, 지금의 어른의 수 만큼 많은 곰인형들이 버려졌을 걸 생각하면 웬지 모르게 서글퍼 지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리라.

이 책의 제목과 내용 자체는 버려진 곰 인형이 할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생을 안락하게 살아간다는 얘기인데 가브리엘 벵상의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근원적인 고독이 안개처럼 뭉개뭉개 스며있다. 다만 작품에 색채가 들어가 있어 '떠돌이 개'보다는 포근한 느낌이지만 흑백으로 처리되어 낡은 먼지 냄새가 풍겨도 좋았으리란 생각이 부질없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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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눈동자 미래그림책 17
에릭 로만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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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동화들을 보면 어쩜 이렇게 별 것 아닌 걸로 동화를 써냈을까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심지어 이 책은 <열 개의 눈동자>라는 제목조차 내용과 별 상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첫장면, 한 소년이 어떤 사연도 알려주지 않고 배를 타고 하늘을 난다. 그러다 적막한 바다에서 '별 계기 없이' 열개의 눈동자를 빛내는 호랑이(인지도 확실치 않다) 무리를 만난다. 그 후 '난데없이' 형형색색 물고기가 등장하고, '뜬금없이' 호랑이가 어울렁더울렁 모닥불에서 그림자 춤을 춘다. 그러다 '불현듯' 사라지는 물고기들. 그리고 밀려오는 적막과 고요...'아, 이렇게 소년이 고독을 배우는가보다' 생각하는 순간, 소년과 호랑이는 특별한 이별의 의식도 없이 눈물나는 감정의 낭비도 없이 각자가 왔던 곳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곤 끝.

이렇듯 황당한 내용과 더불어 수채화보다 탁하고 유화보다 가벼운 파스텔 톤의 삽화가 신비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유는 몰라도 달리를 닮은 초현실적인 색채와 신비로운 스토리 - 이것이 이 책의 줄거리인 것이다. 책의 제목인 <열 개의 눈동자>는 특별한 의미나 상징도 없고, 단지 꿈이나 혹은 다른데서 작가가 영감을 얻은 동기가 아닐까 싶다. 열개의 눈동자'가 등장하는 한장면만으로도 아무 설명없이 왜 이 책의 제목이 그것인지가 수긍이 가니까 말이다.

PS. 중간중간 글이 있는데 없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과 느낌만으로 충분히 감동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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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늑대의 눈 비룡소의 그림동화 56
조나단 런던 글, 존 반 질 그림, 김세희 옮김 / 비룡소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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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도 그렇다고 어른을 위한 동화도 아니다. 단지 늑대를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어루만지기 위한 책인 것이다. 겨울을 나는 늑대가 눈밭에서 추위와 싸우며 먹이를 찾고, 사냥에 실패하고, 싸움을 하다, 제 짝을 찾는 이야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한번, 아니 여러번은 보아왔던 이야기이다. 그림도 딱히 특이하거나 수준이 높지도 않다. 늑대는 특유의 고독과 사나움, 그에 반하는 가정적인 이미지로 신비한 매력을 일찌감치 알려 달빛아래 울부짖는 당당한 모습이 오래 전부터 많은 화가들의 화폭에 담겨졌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고 이 책이 시시한 책인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이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그 모든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찡하게 와닿는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풀한포기 없는 삭막한 겨울 풍경 속에 무뚝뚝하리만치 감정이입을 절제된 이야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하게 자연 그대로의 늑대의 감정과 모습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본디 늑대란, 자연이란 인간이 호들갑 떨며 개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지켜볼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첫장을 넘기는 순간, 이 책은 나를 몇날 며칠 추위에 떨며 늑대를 기다리는 눈덮인 산악의 동물행동학자로 만들어 준다. 이보다 더한 감동이 있을 수 있을까.

PS. 책의 뒷면에 늑대 관련 단체 정보가 나와있는 것도 묘한 재미를 준다. URL이 나와있으면 더 좋을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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