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개 낮은산 어린이 6
박기범 지음, 신민재 그림 / 낮은산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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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기덕을 아시는지. 쇼킹한 비주얼, 잔혹한 여성묘사, 애써 외면하고픈 지리멸렬한 인간군상을 정면으로 들이밀며 연출작마다 관객을 불편하게 했던 충무로의 악동감독 말이다. 그의 최근작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을 보면서 '이 이도 나이가 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을 향한 거친 고함과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직선적 고발 대신 자연의 순리와 인생의 푸근함을 표현하기 시작했달까.

이 책 <어미 개> 역시 그러하다. 인간 세상에서 견권을 유린당하며 처절하게 죽어가는 새끼 개를 통해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타인에게 저질렀던 악행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소외된 자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던, 그래서 독자들에게 조금은 '불편한 충격'을 안겨줬던 그의 투사정신 대신 인간의 넉넉함과 사랑에의 경외심이 뚝뚝 흘러 넘치기 때문이다.

전 주인에게 버림받은 감자는 폐휴지를 팔아 하루를 연명하는 인정많은 할머니와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감자는 본능에 따라 철마다 새끼를 낳는데, 할머니는 현실적 상황 때문에 감자의 슬픔을 알면서도 철마다 새끼를 개장수에게 넘기고, 감자는 그 때마다 죽을 듯한 슬픔에 빠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칫 대립으로 흐를 수 있는 둘의 관계는 서로를 향한 완벽한 신뢰와 이해로 마침내 기적적인 소통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둘의 대화장면이야말로 본 작품의 백미이며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가진 것 없는 서민과 인간의 탐욕에 희생되는 개...라는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 <어미 개> <새끼 개>라는 너무도 판이한 감동을 선사한 작가의 재능은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훨씬 넉넉해진 작가의 성장에 박수 아니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정녕 머리숙여 감사를 표하고 싶은데, 이는 우리 모두 평생을 실천하라고 배워왔지만 아직 한번도 눈으로 보지 못했던 기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기적의 이름은 바로....완.전.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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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와 어린동생 내 친구는 그림책
쓰쓰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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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동생은 나에게 두가지 의미가 있었다. 어느 날, '빽~' 울며 나타나 그동안 독차지해온 엄마, 아빠의 사랑을 빼앗아 가는 작은 악마 or 태엽을 감지 않아도 걷고, 말하고, 먹기까지 하는 작은 인형 그것! ^^;;; 이제 어른이 된 나, 동화 역시 나에게 두가지 종류가 있다. 책갈피를 여는 순간 환상의 나라로 나를 이끄는 신비한 이야기 혹은 잊혀졌던 유년의 기억을 새록새록 되새겨주는 빛바랜 일기장 같은 동화 그것! 이 책은 후자에 해당하는 책인데, 읽으며 20년 전의 나를 보는 듯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자주 빗겨줬던 귀엣머리만 땋은 순이의 머리스타일이 그러하고, 먼지냄새, 햇볕냄새가 어우러져 콤콤한 어린아이 머릿결 그림이 그러하며, 별 거 아닌 걸로도 반나절을 놀곤 하던 나처럼 손수건에 공깃돌 갖고 노는 고사리 손이 그러한데다... 자다 깬 동생 얼굴, 언제라도 침을 흘릴 것 같이 헤~ 벌린 멍한 어린아이 표정 등 모든 것이 너무 사실적이다.

더구나, 애들이란 하나 밖에 생각을 못해서 너무 소중한 동생을 위해 기찻길을 그리면서도 그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정작 소중한 동생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순이의 순수함이 또한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혼날까 두려워서 반, 동생이 없어진데 대한 걱정 반으로 콩당콩당 가슴 뛰며 숨이 턱에 차도록 동생을 찾아다니던 일과 그런 언니의 감정 따윈 아랑곳 없이 동생 영이가 놀이터 모래밭에서 (애들은 왜 꼭 모래에서 놀까. 신발 속에 흙 들어가게 --. )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생긋 웃던 그래서 나를 조금 맥빠지게 했던 모습이 정말로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그 날 그대로다. ^^

시간이 너무 지나 어린 날이 기억나지 않는 어른들이여,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타임머신을 타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의 첫장을 넘기라. '꺄아~' 아이들 소리 아련한 20년 전의 바로 그 놀이터,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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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너무 무거웠어요 문지아이들 45
아르노 그림, 뤼카 글, 최윤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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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라 하면 우리들은 대개 '해님,달님'같은 한국 전래동화나,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기 위해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는 '무슨공주' 식 서양동화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린이는 동남아시아에도, 아프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있는 곳엔 동화가 있기 마련. 때문에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이 그림 책을 만난 독자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도 서양동화 일색에서 홍일점을 차지한 동양 동화가 너무 기특했다. ^^;

알록달록한 옷감과 파인애플 나무가 어우러진 동남아시아(?)의 어느 마을. 순종적이고 착한 타라는 제 딴에는 엄마를 도와 일도 열심히 하고, 성심성의껏 남동생을 돌보지만 아직 어린 타라에겐 남동생이 너무 무겁기만 하다. 때문에 잠시 아기를 떨어뜨리게 되는데 이를 보고 할머니가 호통을 치는 바람에 집을 나가게 된다. 인형공방 할아버지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세상 구경, 인생공부를 마친 타라는 어느 날 소중한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하는데...

타라는 한국으로 치면 귀남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후남이. 어느 날, 이런 남존여비의
가정을 등지고 세상 구경을 떠난 타라는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곧 가정 속에 순종하는
착한 여자가 되어 돌아오고 만다.^^;;; 이 점이 다소 과거지향적이긴 해도, 유치할 만큼
알록달록한 진짜 옷감의 무늬와 (이 동화의 모든 옷감은 콜라주로 되어있다) 고갱의 명화를 연상시키는 원색적 칼라, 인물의 까만 피부 등은 너무나 아름답다. 앞으로도 다양한 나라의 그림동화를 접할 수 있어 아이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각 나라 어린이의 다채로운 이야기와 훈훈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PS. 하나 아쉬운 점은 동생을 버거워하는 어린이 내면에 눈을 돌리는가 싶다가 불현듯 마무리에선 타라가 가정에 안주하는 순종적 여성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거나(서양인에게 동양여성은 순종의 상징이다), 만화영화 '뮬란'처럼 쪽 찢어진 눈을 한 등장인물들을 보며(동양인이 동양인을 그리면 눈매가 찢어지지 않는다) 서양의 관점에서 본 동양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이것이 저만의 착각인지, 여러분도 한 번 봐주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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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하늘나라 - 꿈꾸는 나무 21
신시아 라일런트 글 그림, 고정아 옮김 / 삼성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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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키우자고 조르는데 죽을까봐 못키우겠어요. 애가 얼마나 상처를 받겠어요'

개를 데리고 산보를 하다보면 아이와 함께 개를 좇아온 엄마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개를 키우다 보면 평균 수명이 사람보다 짧아서 혹은 인간 위주로 되어 있는 세상 때문에 종종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물론 아이는 며칠 밤을 밥도 안 먹고 울기 마련이고... 어른도 아닌 아이가 슬픔에 잠겨 먹지도 자지도 않는 상황은 안 겪어본 사람은 얼마나 속상한지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개를 못 키우는 것은 우리가 아이를 너무 몰라서일 터. 아이들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

물론, 처음엔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시름에 잠긴다. 하지만 이는 사랑하던 가족을 잃어버리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따뜻한 아니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더구나 어른이 옆에서 부추기거나 꾸짖지만 않는다면 아이는 곧 혼자 슬픔을 이겨내는 법을 알게 된다. 그에 앞서 어느 새 성큼 자란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이불을 뒤집어 쓰고 징징 울기만 하던 아이의 방문이 어느 날 열리면서 '강아지는 하늘나라에 가서 사랑을 받을 거라는 둥' '내가 더 잘 보살폈어야 했다'는 둥 어른스런 말을 툭툭 내뱉어 식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경험을 여러번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유달리 마음이 여려 슬퍼하는 아이가 있다면...이 책이 보약이다. ^^

이 책은 강아지가 죽은 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슬픔에 잠긴 우리들을 위로해주기 때문. 그런데, 그 하늘나라의 모습이 '좋은 일 하면 천당가고, 나쁜 일 하면 지옥 가요'...식의 천편일률적인 교훈이 아니라 개들의 특성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진정 개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작가가 알고 있기에 더 따스하다. 이 책의 개들 아니, 진정 모든 개들은 하늘 나라에서 온갖 풍요로운 음식과 호화스런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왼종일 달릴 수 있는 들판과, 같이 놀고 싶은 어린이들(개들은 참 애를 좋아하죠 ^^; ), 그리고 몸을 동그랗게 옹송그리고 잘 수 있는 잠자리, 마지막에 가끔은 주인을 추억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만을 원할 뿐이니까.

때문인지, 책을 읽고 있다 보니 어른인 나마저도 뭔지 모를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잘못을 고백한 후, 할머님이 '그래그래, 니 맘 다 알어..'해주시며 등을 토닥일 때의 가슴 뭉클함이랄까. 유치한 그림에, 아이들 책을 읽고 그런 경험을 하게 되다니 독자로선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애들 때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키우던 강아지나 고양이를 잃고 얼만큼은 서운함에 얼만큼은 미안함에 마음 한 켠에 늘 돌을 안고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모든 이들을 향해 하늘 나라에서 날아온 천사의 그림엽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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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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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포악하고 강력한 킬러다. 인간에게 알려진 동물 중 가장 미운 대상 중 하나이며 그 이유는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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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문장을 가만히 읽어보면 늑대가 공포와 미움의 대상이 된 이유가 없다. 문장 오류가 아니냐고? 일부러 적지 않은 것이라 한다. 왜? 이유가 나왔다면 불필요한 말이 됐을 테니까...

알쏭달쏭한 윗글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빨간 망토> <아기돼지 삼형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 몇 백년 동안 극악무도한 악역은 늘 늑대 혼자의 몫이었다. 이는 순록보다 5배나 많은 수로 몰려다니며 순전히 재미로 순록을 쏴죽이는 사냥꾼들과 그들이 내는 사냥세로 돈벌이를 하고 싶은 정부 관리자, 그런 정부에 기생하는 과학자 및 자연의 파괴를 도전이라 착각하는 일부 탐험가 등 몰지각한 인간들이 어이없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무나 얼토당토 않지만 우리 모두 깜빡 속아왔던 '늑대 마녀사냥'에 용감하고도 신랄하게 청문회를 요청한 것이 이 책, <울지 않는 늑대>이다.

작가는 자신이 말하길, 이렇다할 꿈도, 특별한 재주도 없는 유년시절을 보낸 뒤, 그럭저럭 생물학을 전공하고 성적도 별로 뛰어나지 않아 공무원이 된다. (그런데 이는 작가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김국진 식 유머일 뿐, 그는 캐나다 최고의 작가이자 자연학자이다 ^^;; )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캐나다 자치령 야생생물보호국의 소환으로 '(사냥 면허세로 정부 국고를 살찌우는) 사냥꾼들이 (재미로 미친 듯이) 쏴죽일 순록을 (먹고 살기 위해 어쩌다 가끔) 잡아먹어 없애는 늑대의 '악행'을 파헤치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그래서 (그 험한) 툰드라지역에 (당연히 가고싶어 하는 사람 없으니까) 달랑 혼자 파견되는데...
(이 역시 진짜 황당 @,@) ...이 보고서가 아주 요절복통 개그 콘서트이다.

늑대인줄 알고 '아, 정말 포악하구나...' 한참을 심각하게 연구했는데 알고보니 맨날 마주치던 옆집 썰매끄는 허스키(개)였다는 이야기, 딴에는 열심히 하느라 밥도 굶어가며 늑대의 생활을 몰래 관찰하는데 결정적 순간에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바람에 늑대에게 들켜 '...-, -....' 라는 식으로 어이없이 바라보는 늑대의 눈빛에 무안했다는 이야기, 쥐 머리 뼈, 순록 이빨 등이 잔뜩 섞인 늑대 똥을 연구하다 에스키모들로부터 엽기살인마 취급을 받는 이야기 등 포복절도할 유머로 북극 생활을 묘사하기 때문.

자신의 생활 뿐 아니라 때로 정부관리나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도 양념처럼 끼어드는데 그 신랄하기가 가히 '딜버트의 법칙'이요, 언어유희가'게시판 유머'다. ^0^ 때문에, 인간의 탐욕으로 벌어진 살육축제를 감추기 위해 엉겁결에 악마의 화신이 된 늑대의 진실을 알아가는 감동 외에도 초절정 엽기유머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정말 읽어보시기 바란다. ^______________^ (안 믿어지시죠? 저도 읽기 전엔 이렇게 웃길 지 진짜 몰랐음 ^^;;; )

작가는 늑대가 일부일처제를 지키며, 사냥과 육아 등 제 각기 역할이 나뉘어있는 합리적인 사회제도, 인간보다 더 지극한 자식에의 사랑, 배고플 때 외에 재미로는 절대 살생을 범하지 않는 자비로움과 현명함,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는 지혜, 온 몸으로 감정을 나타내며 사랑을 표현하는 다정함 등 실로 너무나 놀랍고도 경이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는 늑대의 건강하고 너그러운 품성 외에도, 자연의 순리와 작은 사랑의 징후들을 알아챌 줄 아는 작가의 휴머니티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감동이 어찌나 큰 지 별 5개에 2개 더 그려 7개를 주고도 모자랄 판이다.

동물 혹은 늑대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정말 올바르고 지켜야 할 게 뭔지 알고 있는, 혹은 그것을 찾고있는 독자들께 강추, 강추 또 강추이다. 엄.지.손.가.락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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