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0
우치야마 도시히코 지음, 석하고전연구회 옮김 / 돌베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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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군자는 '학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얻지만 쪽풀보다 더 파랗고,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 순자(筍子) '권학' 


학문(學問)은 나의 눈과 마음을 통해 들어와서 내 안에서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그 생명감은 나의 삶과 너의 삶을 함께 평안하게 만드는 영양소가 됩니다. 또한 학문을 통해 내 안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붙들어주는 내적 견고함이 얼음같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지요. 그 물은 다시 내 안의 생명력을 위해 쓰이겠지요.


조나라에서 태어난 순자(筍子)의 생애와 사적에 대해서는 전기 자료나 다른 책에 기술된 것이 있지만, 불분명한 것이나 허구도 섞여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자료의 정설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저자는 여러 자료를 면밀하게 파악한 결과 순자가 태어난 연대가 4세기 말인 기원전 310년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또한 이 책의 저자는 순자라는 인물이 그가 남긴 [순자]에 보이는 명석한 논의의 논리 전개 방식이나 주도 면밀한 어조등으로 추측컨대 착실하고 돈후하며 치밀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다소 소박한 개성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용호상박의 중원시절 순자는 조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진나라를 거쳐 제나라로 가게 됩니다.

[사기]에 의하면 순자는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에서 세 번 좨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좨주는 장로와 수석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립대학 총장에 해당하는 국가좨주 정도는 아니고, 직하 학사들이 집회 등을 열 때, 흔히 가장 나이 많은 장로로서 상석에 모셨다는 뜻으로 이해된다고 합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순자의 생각 중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를 '천인지분(天人之分)'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순자는 '하늘'의 운행은 인간과 별개의 독자적 항상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하늘은 빈부, 화복, 치란 같은 인간적, 사회적 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늘의 운행에 항상성이 있다"(天行有常)는 말은 빈부, 화복, 치란 등이 전적으로 그것에 대응하는 인간의 방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길(吉)'이나 '흉(凶)'도 인간의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순자의 이런 사유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요? 순자 이전까지 있었던 자연관의 흐름, 또 순자가 살았던 환경을 참고해봅니다. 서주 초기에는 '하늘'을 최고신으로 상정하는 세계관이 있었습니다. 이는 주(周)의 씨족제 즉 '봉건제'를 종교적으로 강화했습니다. 따라서 춘추시대 들어 씨족제 즉 '봉건제'가 붕괴하면서는 '하늘'에 대한 신앙도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또 공자는 '하늘'을 신(神)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주와 인생을 지배하는 이법(理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맹자는 '하늘'이 인간의 재능, 운명이나 천하의 치란(治亂)을 결정하는 이법이라고 했습니다. 공자와 맹자에 비해 순자는 '하늘'의 개념을 자연의 의미로 한정하여, 이법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자연현상으로서의 고유한 항상성만 인정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중국 고대 사상가는 왜 '인간의 성'을 문제 삼아야만 했던 걸까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맹자나 순자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 과제를 두고 왜 그토록 에너지를 소비했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주대(周代) '봉건제'가 해체되고 읍국가에서 영역국가로 이행하는 동안 일어난 격렬한 사회변동은 '봉건제'라는 사회구조에 내재한 전통적 생활양식을 붕괴시키면서 다양한 생활양식을 출현시켰다고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도덕규범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성'의 문제는 도덕규범을 유난히 중시하는 유가 사상가에 의해 주로 논의 됩니다. 아울러 그들의 인간론 즉 '성설(性說)'은 정치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석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인성'을 문제 삼았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추상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인성'을 말할 때 '그것이 선인가, 악인가?'라는 점에만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자는 인간의 '성(性)'을 어떻게 봤을까요? [순자]'성악'편 첫머리에는 "인간의 성은 악하고, 선(善)은 위(爲)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는 거짓이나 가짜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합니다. '학습을 통해 가능해지거나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순자의 글을 이렇게 번역해야 옳다고 합니다. '인간의 성은 악이고, 선함은 작위(의 결과)이다.' 마치 쓸모가 없어진 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우리는 이 땅에 머무르는 동안 끊임없이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너무나 본성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 책의 저자 우치야마 도시히코는 1933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중국철학전문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합니다. 그 후 여러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지도하다가 현재는 야마구치대학 및 교툐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제자백가에서부터 한 제국 시대 이후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국철학의 다양한 양상을 연구해 왔습니다. 주요 저서로 [한비자], [중국 고대 사상사에 보이는 자연인식]등이 있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 순자라는 한 인간과 그의 사상을 순자가 살았던 역사 무대 위에서 파악하고 그가 현실의 과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응답했는지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중국 고대 '제자(諸子)'들의 사상의 행방을 확인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신영복 교수님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미래는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 입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 소통하기 위해서도 고전 공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고전에 대한 독법(讀法)인데, 독법(讀法)이란 고전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가 하는 참여점(entry point)의 문제라고 합니다. 고전의 원전을 대하기 전에 독법이 분명한 해설서를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신교수님이 독서에 대해 언급해주신 부분을 책갈피처럼 책과 함께 가고자 합니다.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마지막으로 독자인 자기 자신(自己 自身)을 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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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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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 그가 이십대 청년 시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저작을 읽으며 서양 문명의 배꼽인 그리스 기행을 꿈꿔왔다고 합니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꿈을 펼치기 위해 지천명을 앞두고 그리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문명을 순례하는 노마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과 눈, 마음을 따라 그리스 여행에 동참합니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저작들을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서 읽고 또 읽었鳴� 합니다. 저자는 니코스가 그리스에 대해 언급한 말을 서문에 인용하는군요. "그리스의 얼굴은 열두번씩이나 글씨를 써넣었다 지워버린 팰림프세스트이다." 쓰인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게 되어 있는 양피지인 팰림프세스트처럼 열두 가지의 서로 다른 빛깔을 지난 나라 그리스.


저자가 굳이 이렇게 길고 고된 여행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고도 분명하다고 합니다. '즉물궁리(卽物窮理)', 곧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르고자 했다 합니다. 더디고 고될지라도 현장으로 나아가야만 비로소 내가 만나고자 하는 한 문명과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이야깁니다. 그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스는 지중해의 태양 같은 뜨거운 격정과 말라비틀어진 마른 풀 같은 무기력이 공존하고, 처음 만난 여행자를 집으로 들여 재워주는 인류애적인 친절과 백주대낮에 불법체류자를 둘러싸고 돌을 던지는 야만이 공존한다."


그리스 여행을 위한 비수기는 9월에서 4월 사이군요. 기억 해놔야겠습니다.  저자가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저자가 지니고 있는 신화에 대한 식견이 상당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매우 오랜 기간 책과 자료를 통해 준비했음을 느낍니다. 특이한 것은 저자와 여행길을 함께 하는 이가 있는데, 그는 곧 니코스 카잔츠키스 입니다. 저자가 읽은 책 속에서 니코스가 살아나와 여정을 함께 해주고 있습니다. 곧 니코스가 곁에서 해주는 말은 니코스의 저작에 나오는 귀절들입니다. 


"아르고스는 스파르타에 맞서 공화정을 유지하려 한 펠로폰네소스 반도내의 거의 유일한 도시였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내에 고립된 성과 같았고, 조상들의 그런 기질은 지금도 여전히 아르고스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헤르메스의 시링크스에서 쉬 잠들지 않았던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처럼, 그들의 자존심도 그리 쉽게는 잠들수 없는 모양이다."


저자의 여정은 생명의 길로 불리우는 '바사이'로 향합니다. 그곳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그리스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공동체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리스 사람들 정말 대단하군요. 해발 1,130미터 지점에 신전을 세워놓았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도리아 양식의 육중한 돌기둥을 자랑하는 대 신전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아폴론 에피쿠리우스 신전입니다. 이 신전은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 아직도 미궁에 싸여 있다고 하는군요. 


'스파르타 교육','스파르트식 교육'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작금의 상황에선 기숙학원의 모토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만, 스파르타식 교육은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열혈엄마들의 로망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보수주의자들에겐 '스파르타식'이라는 향수가 통제와 규율을 위한 조건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까요. 군사강국을 지향한 '획일적 패권주의'로 표현되는 '스파르타'에 대한 저자의 상념은 길게 이어집니다. 스파르타의 전사들은 '자신'이 아닌 '국가'를 위해 싸웠다고 합니다. 그들은 전정에 나서면 목숨을 구걸해 살아 돌아오기보다 죽어서 방패 위에 실려서 돌아오기를 바랐다고 하는군요. 스파르타인들은 남녀 모두 모든 면에서 탁월함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스파르타의 역사에 대해선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더욱 많다고 하는군요. 


그 외에도 스파르타의 특징적인 체제가 관심을 끕니다.

첫째, 스파르타의 법은 문자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관습으로 계승되는 것을 대전제로 했다.

둘째, 법의 주요 원칙은 원시 공산주의적 규제에 가깝다.

셋째, 왕이 둘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루시아'라는 원로원을 구성해서 시민권과 왕권 사이에서 중요한 균형추의 역할을 했다.

넷째, 경제의 기반인 토지소유는 관한 것인데, 스파르타 시민들에게 동일하게 분배를 해서 완전한 평등체제를 유지했다는 점. 등이 특징적인 요인으로 설명됩니다.


저자의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군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지식은 물론 그곳, 그네들의 역사를 꿰뚫으면서 그가 발길을 내딛는 곳마다 깊은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2011년 겨울부터 시작한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는 것은 물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라고 하니 독자의 입장에서 그의 여정이 잘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임종 직전에 쓴 메모글이 저자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남은 여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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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홍대용 지음, 김태준 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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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자(虛子)는 은거하며 독서한 지 30년에 천지의 변화와 성명(性命)의 오묘함을 연구하고 오행(五行)의 근원과 삼교(三敎)의 깊은 뜻에 통달하여 사람의 도리를 밝히고 사물의 이치에 회통했다. 심오한 이치를 캐내어 세상일을 환히 꿰뚫은 뒤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듣고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 작품에는 딱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허자는 이 글의 문답자로 설정된 실옹(實翁)의 상대 인물입니다. 허(虛)와 실(實)의 대화입니다. 이름에서 보여지듯이 허자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실옹을 만나면서 그의 부족한 학문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허자는 스스로 큰 사람, 큰 바위얼굴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지혜를 가진 자들과는 더불어 큰 것을 말할 수 없고, 비속한 자들과는 더불어 도(道)를 이야기 할 수 없다." 라고 하면서 행장을 꾸려 귀국길에 오릅니다. 허자는 의무려산(중국 서북쪽에 위치한 산입니다. 중국인들은 의무려산을 백두산, 천산(千山)과 더불어 동북 3대 명산으로 꼽습니다)에 오르는군요. 그 곳에서 실옹(實翁)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실옹지거(實翁之居)라고 써 있는 현판을 보면서 허자는 이런 독백을 합니다.


"내가 '허자'라고 이름 한 것은 천하의 '참'을 살피고자 한 것인데, 이 자는 '실'로 이름 했으니 천하의 '거짓'을 이기고자 함일 터이다. 허허실실은 현묘(玄妙)한 도의 진리이니 내 그의 말을 들어보리라."


두 사람의 대화는 진지하다 못해 매우 깊습니다. 실학정신이 펼쳐지고, 우주론과 역사론에 이르는 철학적 내용이 중심입니다. 한편으론 이 작품이 철학소설이라고도 하지만, 문학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찾아간 것은 허자이지만, 실제 문답에선 실옹이 주도권을 잡고 있습니다. 철학적 수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조선 18세기가 이룩한 동아시아 최고의 지적 성취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화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허자가 물었다. "땅에 지진이 있고 산이 움직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옹이 말했다.  "땅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 혈맥과 혈기가 실로 사람의 몸과 같다. 다만 그 몸체가 크고 몸가짐이 무거워 사람의 몸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해서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고 망령되이 길흉을 가늠하는 것이다. 사실은 물과 불, 바람의 기운이 돌아다니며 흐르다가 막히면 흔들림이 일어나고 거세지면 밀려 움직이게 만드는데, 그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허자가 물었다. "땅에 온천이나 짠 우물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옹이 대답했다. " 우주는 물의 정기이고 태양은 불의 정기이며 지구는 물과 불의 찌꺼기다. 땅은 물과 불이 아니고서는 살 수가 없다. 빙빙 돌다가 한자리에 머물러 만물로 변하는 것은 물과 불의 힘인 것이다. 온천이나 짠 우물은 물과 불이 서로 부딪쳐 생기는 것이다."


수백 년 전에 쓰여진 글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우주변화와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과 이론이 대단히 깊습니다. 지은이 홍대용(1731~1783)은 18세기 북학파의 대표적 실학자입니다. 지금의 충남 천안에서 출생했습니다. 열두 살에 벌써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고학(古學)을 하기로 결심하고, 남양주의 석실(石室)서원으로 김원행(金元行)선생을 찾아가 10년 넘게 공부합니다. 20대에 들어 스승 곁을 떠나 고향에서 천문학에 관심을 쏟고, 29살에 자명종과 혼천의 두 대를 만드는 데 여러 해를 보냅니다. 고향집에 천문관측소 농수각(籠水閣)을 세워 이 기계들을 설치하고 천문에 힘을 쏟습니다. 35세 때는 북경에 가서 독일 신부를 만나 담화를 하며, 성당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여 선교사를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이 [의산문답]은 홍대용의 가장 친했던 후배이자 친구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호질(虎叱)]과 비교 했을 때 창작 동기나 저작 의도가 너무나 닮아 있어 흥미를 끈다고 합니다.  연암의 [호질(虎叱)]도 읽어 봐야겠습니다. 통합과학자라고도 불리우는 홍대용은 철학, 문학, 역사학, 자연과학, 수학과 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사상을 이룩한 분입니다. 이 [의산문답]이 그의 통합 과학적 사상을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 준 저작입니다.  학문적 자료가 빈약한 그 시대에 이렇게 깊은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 할 수 있었다는 부분에 큰 도전을 받습니다. 이 작품의 지은이에게 학문의 자세와 깊이를 추구하는 열정을 배우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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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조이
도미니끄 라피에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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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니 TV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오버랩 됩니다. SBS의 '힐링 캠프'입니다. 게스트는 연예인 차인표씨입니다. 인도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던 이야깁니다. 원래는 그의 아내 신애라씨가 갈 예정이었으나 여의치못하게 되자 차인표씨에게 의뢰가 들어왔답니다. 그 때만해도 나눔과 베풂이 마음에 들어오기 전이었던 그는 모든 자원종사자들이 자비를 들여서 오가는데, 그는 그 일을 주관하는 단체에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주문했답니다. 그 이유는 본인의 인기를 이용해서 사진이나 찍고 홍보를 해보겠다는 의도일 것이라는 혼자만의 판단이었답니다. 어쨌든 그 단체에선 항공권을 구입해줬고, 예정일이 되자 인도로 향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하기전 주관하는 단체의 리더가 차인표씨에게 부탁을 하더랍니다. 가게 되면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게 될텐데, 그저 그 아이들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만 해줘도 그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차인표씨는 '뭐 그 정도 쯤이야'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6~7살 쯤 되는 사내아이가 먼저 악수를 청합니다. 차인표씨가 그 손을 잡으며 부탁받은 그 멘트를 날리려던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내적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을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 소년을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소년의 손과 눈빛을 통해 들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는 음성은 나의 삶에 크나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2006년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무대는 바로 그 인도땅입니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영화 제작이 되었지요(1992년.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  저자는 캘거타에 간 어느 날, 인력거를 타고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집도 없이 길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곳은 아니러니 하게도 '환희의 도시'라는 뜻의 아낭 나가르라는 슬럼가였습니다. 저자는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서양의 부유한 도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용기와 사랑, 나눔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발견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모든 걸 소유한 듯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토록 비인간적인 도시에서 성자(聖者)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랍니다.

 

'환희의 도시'에서는 테레사 수녀뿐 아니라 프랑스 신부인 폴 랑베르처럼 그들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에 동참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료기구는 커녕 기본적인 약과 주사제만 있어도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환자들이 그저 죽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탄탄대로의 의학과정을 마친 미국 플로리다 출신 젊은 의사는 그가 학교에서 미처 익히지 못한 병과 환자들을 위해 땀을 흘립니다. 물론 그 역시 자원봉사자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가난과 궁핌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저자 도미니크 라피에르는 이 대서사시를 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수개 월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합니다. 이 점이 저자의 열정과 진실성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듭니다. 자료 조사와 몇 차례 현지 답사 정도로 쓴 글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거처한 오두막은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의 초라한 방이었다고 합니다. 거의 쪽방 수준입니다. 환기도 되지 않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 방. 쥐와 지네가 들들끓었고 소나기가 내릴 때마다 물과 오물이 넘쳐 들어옵니다. 저자는 결핵환자들, 나환자들, 거세 당한 사람들과도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일상을 이해합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 시간속에서 그는 이렇게 소회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면 조그만 호의에도 신에게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코 절망하지 않는 법을 그곳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작품에 처음 등장하기도 하지만 중심 인물인 인도의 서른 세살 농부 하사리 팔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하사리는 동부 벵골지방의 방쿨리 도시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꿈과 희망을 키워가던 하사리의 아버지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은 대지주들의 농간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땅과 집을 모두 뺏기게 됩니다.

 

어떡하든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땅을 소작해야했지요.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지주에게 주고 나면 쭉정이 밖에 남지 않을 지언정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충해와 가뭄으로 결국 하사리는 캘거타로 무작정 상경을 합니다. 집도 절도 없습니다. 하사리처럼 고향을 떠나온 다른 가족들처럼 역앞에서 노숙을 합니다.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매혈(賣血)을 해서 가족들의 끼니를 때웁니다. 하루에 바나나 한 쪽만 먹어도 감지덕지한 삶이 이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력거를 끌게 됩니다. 대단한 발전이지요.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체력으로 달리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하사리의 딸이 초경을 치루고 결혼을 하게 될 나이가 되었군요. 신부의 지참금 문제가 매우 심각하군요. 정부에서 아무리 규제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하사리는 뼈를 판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돈을 빌립니다. 인도의 인체 골격 시장은 대단하다는 표현만 갖고는 매우 부족합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체 골격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거액의 가격표가 매겨진 후 서구사회로 건너갑니다. 물론 뼈를 제공하는 것은 사후에 처리됩니다. 완성 처리된 골격에 붙여지는 가격표에 비해선 거의 푼돈이나 다름 없는 돈을 받고 뼈까지 팔아야하는 참담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하사리는 힘들게 딸을 결혼시키고 난 후 그간의 쇠약해진 몸에서 그나마 붙어 있던 생명력이 떠나갑니다. 하사리의 뼈는 계약서대로 이행됩니다.

 

인도라는 나라.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지역입니다. 이해하기 힘든다는 부분은 밝음과 어두움 모두에 있습니다. 어두움은 과연 그 나라엔 정부의 행정력이라는 것이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피아와 같은 암흑세력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엔 언급이 안되었지만 달라이 라마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 동부의 오리사 주를 방문했답니다. 최근 부족민 사이의 빈부격차로 지역에서 갈등과 내란이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그 지역 국회의원을 만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이미 부족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물질적 원조를 목표로 하는, 충분한 기금을 가진 정부 프로젝트와 법적 장치가 이미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부정부패 때문에 그 프로그램이 원래 도우려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도는 세게에서 이슬람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이슬람교도의 본거지입니다. 그리고 인도에는 수백만 의 시크교(15세기 인도에서 힌두교 신앙과 이슬람 신비 사상이 결합되어 탄생한 종교)신자와 기독교인이 있고, 상당히 많은 자이나고, 불교, 조르아스터교, 유대교 공동체도 있습니다. 인도에는 민족적 종교적 소수자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도 없다 합니다. 게다가 오늘날 인도에서는 수백 가지의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도 언어상의 문제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종종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분쟁이나 갈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적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로 생각이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내가 가진 것에 감사" 를 마음에 담습니다. 작품에 그려지는 하층 인도인들의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거의 귀족같은 일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글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면, 과연 그럴까? 설마?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어디에서 그런 마음이 나오는지 경이로울 따릅니다. 앞서 언급드린 프랑스 신부 랑베르가 어느 인도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사람을 접대하는 데 극진했다. 랑베르가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온 식구가 뛰어나와서는 벵골 사람들이 끔찍이도 좋아하는 온갖 사탕과 차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를 대접하는 데 식량을 써 버려 며칠 먹을 그들의 양식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그럼 현재 '환희의 도시'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책과 영화로 소개된 이후 '환희의 도시' 까지는 아니더라고 '희망의 도시'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상조회의 회원이 7,000명이 넘어 섰다고 합니다(지금은 더 늘어났겠지요). 물론 모두 인도가 아닌 타국 사람들입니다. 무료진료소, 허약한 어린이들을 위한 회관, 산원(産院), 노인과 극빈자들을 위한 무료 급여소,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 훈련소, 성인을 위한 가내 공장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예방접종과 결핵 조기 발견 계획도 수립됩니다. 이어서 벵골 지역에서도 가장 빈곤하고 뒤처진 지역의 관개와 우물 파기, 무료 진료소 설립이 추진됩니다. 인도에서도 최하의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가던 이곳 '환희의 도시'는 보석상과 고리대금업자들이 들어서고 사무원들과 공무원들, 상인들의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합니다.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주거시설이 철거되고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다시 떠나야 하는 가슴 아픈 문제가 나오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을 주고자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더욱 좋은 소식이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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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쓴 페이스북, 芝山通信
김황식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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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이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처럼 나의 마음도 조여듭니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저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 그러나 내 몸은 꿋꿋하게 바닥을 디디고 서 있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붙박이장처럼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삶의 습관을 만들어냅니다. 하루의 일상이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십년이 됩니다. 아마도 평생을 그리 보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간 중간 일탈을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부메랑처럼 제자리에 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 느끼는 단상을 적어 간다는 것은 잠시 기분에 따라 몇 차례 적어 볼 수 있지만, 꾸준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느낌을 적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리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공직자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느끼는 단상을 웹상에서 그 누구도 볼 수 있는 상황에 오픈 한다는 것은 여간한 마음 갖고는 시도하기 힘든 부분이지요. 그러나 그 일을 꾸준히 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조금 망서려졌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공직자들에게 갖고 있던 선입견입니다. 말과 행동과 생각이 일치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찬찬히 글을 읽어가던 중 그 못된 선입견을 잠재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도 있구나. 이런 분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인 김황식님은 1974년 법관 생활을 시작으로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내셨습니다. 얼마전 40여 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셨군요. 이 책은 국무총리실 페이스북과 감사원 발간 계간지, 광주지방법원 내부 통신망에 게재했던 글을 모은 책입니다. '연필로 쓴 페이스북'이라는 책 제목이 붙은 것은 저자가 편지지에 쓴 글을 사진으로 스캔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탓입니다. 


총리 재임시 일상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서울대 어린이 병원을 찾아 소아암 등 병마와 싸우는 어린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하고 격려 하는 이야기, 제주 4.3사건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쓴 詩, 119 구조대원들을 만난 후의 단상, 안산에 있는 외국인지원센터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고인이 되신 어머니 생각, 스승의 날을 앞둔 날 파주 봉일천고교를 찾아 '1일 교사'특강을 한 이야기, 장애인들이 근무하는 신사복 제조업체에서 맞춘 25만 원짜리 맞춤 양복 등.


책 읽기가 일상인 저에게 저자가 책 이야기를 할 때는 우선 멈춤 했습니다. 김승옥, 최인호, 천상병, 이청준 작가의 이야기도 하시고 개그맨 김병만의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대화], 30년간 변호사로 근무한 존 크랠릭의 [365 Thank you]라는 책을 소개하는 짧은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존 크랠릭은 2007년 당시 그가 운영하던 로펌이 망해가고 결혼생활 파탄 등 가족관계가 엉망이 된 막다른 상황에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새해 첫날 홀로 나선 등산길에서 "네가 원하는 것들을 감사할 줄 알기까지는, 너는 네가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하리라"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감사할 사람과 사연을 찾아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감사편지 프로젝트'입니다. 15개월간 365통을 썼답니다. 


그 효과는 경제적, 이득, 좋은 인간관계, 마음의 평화와 신체적 건강 등 즉각적이고 다양한 것들이이었다고 합니다. 희망하던 법관까지 되었다네요. 삶 자체가 완전히 변화 된 것이지요.  저자는 책을 읽으면서 일본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의 "하나님이 인간을 벌할 때는, 그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어려운 일로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벌을 주지 않고, 그 사람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을 뺏어버림으로써 벌을 준다"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행복에의 지름길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저자와 책 이야기가 중간중간 나옵니다. "책을 읽으면 세상 시름도 잊게 되고 조금은 행복해집니다." 짧지만,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특히 인문학 서적을 읽다보면 내 안에 암덩어리처럼 자리잡고 있는 문제들의 크기가 줄어들게 되지요. 소설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나만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같아도 소설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 도 있습니다. 나를 객관화 시켜보는 과정이라고 생각듭니다. 


"경찰 아저씨들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해서는 100% 못 잡아내요. 반에서도 화장실에서도 CCTV가 안 달려 있거나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괴롭힘은 주로 그런 데서 받죠." 학교 폭력 문제로 또 안타까운 소식을 접합니다. 3월 11일 경북 경산에서 고교 1년생 최모군이 23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 저자도 학교 폭력 문제에 깊은 관심과 염려를 갖고 글을 연이어 올렸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적습니다. 학교 폭력 문제는 한 두사람이 애쓴다고 해결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서 해결해야 할 큰 숙제입니다. 


세인들이 잘 모르는 법조계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제법 많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서의 고뇌가 실려 있는 글들을 봅니다. "법규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를 따지는 문제는 쉽지 아니하여,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혜와 실력 그리고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법률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지 법률을 위한 것이어서는 아니 되며, 또한 법률가가 법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후배 법관들에게 이런 당부의 글을 남기셨군요.

"좋은 법률가는 가끔 법률을 짐짓 잊어버려야 한다"는 법언(?)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음미해보곤 합니다. 법률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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