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국을 보았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 1
이븐 알렉산더 지음, 고미라 옮김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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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임사체험(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의 경험)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많은 부분입니다. 크게 있다! 와 없다!로 분류됩니다. 임사체험에 관한 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지목되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세계 각국에 있는 수만 명의 임사체험 사례를 수집해서 사람이 삶을 마치고도 생명은 계속되며 의식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로즈 박사는 사람에게는 3단계 사망과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첫 단계는 의식이 신체를 떠나는 것인데 이때 뇌파가 사라지고 심전도 역시 사망상태로 나타납니다. 그 다음 2단계는 시공(時空)의 제한이 없이 가고 싶은 곳으로 순식간에 가게 되는데 시각장애인은 이때 앞을 볼 수 있고, 언어장애인은 말을 할 수 있으며 청각장애인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제 3단계는 시공을 초월해 일생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몇 초 내지 몇 분 시간에 많은 의식들이 겹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후 많은 의사들이 사망과 임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는데 모두 로즈 박사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편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를 이끌어 온 셀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혼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를 스스로 묻고 답하길 원합니다.


셀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에 대한 강의자에 걸맞게 그 역시 '임사체험'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이 계속되는가'에 대립되는 두 그룹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인간이라는 '이원론'과 인간은 육체만으로 이뤄진 인간이라는 '물리주의'가 그것입니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이원론자들이 받아 들이는 임사체험은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설명하는 반면, 물리주의자들의 주장은 다만 생물학적 과정의 관점에서 약속어음의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다고 합니다. 


물리주의자들이 생물학적인 설명을 한 부분을 더 언급해보며 이렇습니다. "생물학적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육체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엔도르핀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이 때문에 희열의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 것" 또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시신경이 특별한 방식으로 반응함으로서 터널과 눈부신 빛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잠시, 이런 논란을 접어놓고..임사체험의 당사자를 만나보렵니다. '이븐 알렉선더'. 미국의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그의 연구분야는 '뇌기능 매핑'(Human Brain Mapping)입니다. 최근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뇌기능 매핑을 위한 획기적 영상도구들이 개발되어 실용화되고 있습니다. 즉, 뇌의 전기 혹은 자기신호를 측정하는 EEG 혹은 MEG를 이용한 매핑과 뇌의 대사적 혹은 혈역학적 활성도를 측정하는 SPECT, PET, fMRI등을이용한 매핑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에 더하여MRS,DTI,OCT,TMS 등 새로운 영상도구들의 발전으로 해부학적, 생리생화학적 매핑도 가능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뇌기능 매핑'(Human Brain Mapping)을 이렇게 장황하게 추가 설명드리는 이유는 저자는 이렇게 과학적, 분석적, 실증적 학문의 연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인 이븐 알렉산더에게 일생 일대의 큰 사건이 닥칩니다. 바로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희귀한 뇌손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동료 의사들은 그에게 생물학적 사망 판정을 내리려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7일째 되는 날에 그의 영혼이 그의 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공개적인 가장 최근의 임사체험자로 기록 될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 독자들은 곧 바로 궁금점과 의문점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는 7일 동안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이 책에 그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이 천천히 돌면서 새하얀 가는 빛줄기들을 발함에 따라 내 주위의 어둠은 점점 부서지면서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 그런 후 빛의 한 중앙에서 다른 무언가가 나타났다. 나는 최대한 깨어 있는 의식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다. 열려 있는 구멍이었다. 나는 더 이상 천천히 회전하는 빛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었다."


그는 그 곳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꿈의 세상.."을 보게 됩니다. 아니, 그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사랑'을 느낍니다. 그곳에 가기 전에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사랑'의 의미와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가 천국에서 그의 영혼이 다시 그의 몸으로 돌아 올 때 그는 크나 큰 심적 고통을 느낍니다. 그곳이 그 만큼 평안하고 좋았다는 이야기겠지요.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천국문이 닫히고 그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온 상황을 모든 입체적이었던 경험들이 전반적으로 평평해졌다(저는 밋밋해졌다는 표현으로 바꿔보렵니다)고 합니다. 천국의 문이 닫혔을 때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커다란 벽 같은 구름들을 통과하며 나는 아래로 이동했다. 주위에서 온통 속삭이는 소리들이 들렸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어둠 저편에서 내 위와 내 아래에 쫙 깔린, 보일듯 말듯, 느껴질 듯 말 듯한 여러 층위의 존재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 그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그가 눈을 떴습니다. 그가 누워있던 중환자실에선 주위의 있던 사람들이 거의 기절할 정도의 드라마틱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7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성인이 깨어나는 모습이 아니라, 갓 태어난 아기의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봅니다. 이 세상에 막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그런 눈빛으로 위, 아래, 이쪽, 저쪽을 찬찬히...


천국을 다녀와서 현실 생활에 적응되는 과정 중에 어려운 상황이 좀 있었군요. 중환자실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망상증 단계가 걷히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잠도 안 자고 그들(가족들)에게 인터넷, 우주정거장, 러시아의 이중 첩자 등과 같은 온갖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기도 했답니다. 어쨌든 그는 결국 회복이 되었습니다.


"신경과학자로서의 지식은 하나 둘씩 아주 천천히 돌아온 반면에, 몸에서 벗어나 있던 일주일 동안의 기억들은 내 의식 속에 아주 선명하게 불쑥 등장했다. 지상의 세계를 넘어선 영역에서 일어났던 일들 때문에 나는 순수하게 행복한 기분으로 다시 깨어 날 수 있었고, 그 행복감은 아직까지도 내 안에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무척이나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행복했던 또 다른 이유는(최대한 꾸밈없이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떤 종류의 세상인지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이 책의 지은이처럼 임사체험을 겪지 않고도 보다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결코 허황되지 않다는것을 느낍니다. 신경과학자로서 이런 글을 써서 책으로 펴내는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려주는 말은 내 몸에서 영혼이 떠나가는 날까지 힘을 줄 것입니다. 살아가며 무엇이 소중하고, 덜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주고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의 영혼이 일주일 간의 여정에 머물렀던 기억이 신(神)을 믿는 단계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으나 신을 알고, 이해했다고 합니다.  삶 뒤에 죽음만을 생각하고 살 것인가, 죽음 뒤에 이어지는 또 다른 삶을 염원하고 믿을 것인가는 각 개인의 몫입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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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력 - 예능에서 발견한 오늘을 즐기는 마음의 힘
하지현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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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 TV 프로그램마다 예능 프로가 대세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는 출연하는 연예인이나 게스트들의 평범한 일상 속 이미지를 들여다보는 데서 오는 듯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콘티가 짜여진 상태에서 진행이 되긴 하지만, 그네들의 애드립에 미소나 폭소가 유발되곤 합니다. 애드립의 특징은 그 사람의 평소 생각이 드러나는 계기도 되지요. 나중에 편집이 되긴 하지만, 더러 생방송으로 진행 하는 중 애드립으로 날린 말들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능 프로그램은 일상에 지친 시청자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이 있습니다.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이미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환자가 아닌 독자들과도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 주고 있는 이 책의 지은이 하지현. 지은이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일견 한없이 가볍고 단순해 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때로는 오늘의 상처까지 치유해 주며, 다음 날을 또 한 번 이겨 낼 힘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다시 줄여서 "예능에서 발견한 오늘을 즐기는 마음의 힘"이라고 표현합니다.


지은이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예능력'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의 전환'이 일어 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예능을 알고 이해하고 즐기면 무엇보다 잘 놀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재충전을 할 수 있기까지 하답니다. 이성이 아닌 감성의 중요성을 확인 하는 시간도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태도에서 핵심 키워드가 되어야 할, '의미와 가치', '낙관의 힘', '독창적이고 특별한 나'에 대해, 예능이 반복적으로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지은이는 이를 다시 이렇게 분류하고 있군요. 나를 단단하게 지키는 힘,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힘, 삶을 놀이로 만드는 힘, 삶을 감동으로 채우는 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힘.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은이는 [개그콘서트]의 '네 가지'를 예로 듭니다. 네 가지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일반적 콤플렉스이기도 합니다. 촌스러움, 작은 키, 인기 없음, 과체중. '네 가지' 의 네 남자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스스로 노출시킵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표현합니다. 지은이는 이 당당함이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다시 대중들의 마음에 '응, 그래 나 정도면 되어도 괜찮네..'라는 마음을 심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즉, 콤플렉스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놀이. 아이나 어른이나 놀이 문화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 놀이가 복잡하고 심난한 마음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물론 아이들이 놀이에 빠지는 것과 어른들의 그것이 서로 다르긴 합니다만 놀이문화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었다고 생각듭니다.


프로이트는 놀이를 하는 모든 사람이 작가와 같으며 놀이를 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놀이의 대립물은 진지함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현실을 벗어난 우리는 그래서 놀때 즐겁고, 잘 노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출연진들이 그저 노는 것만 봐도 카타르시스 효과를 보는 것이 아마도 그런 이유인듯 합니다.  지은이는 이렇게 권유합니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바꿔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공포심을 버리고, 게임을 할 때처럼 목표 달성을 즐기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마음 자세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은이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힘"이라는 챕터에서 '나에게 가치 있는 일로 오늘에 집중하라'고 권유합니다. 예능의 핵심이 웃음과 즐거움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 잠이 들면 그만이라는 것이지요. 굳이 그것에 무슨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지요. 시간 낭비였던 것 같지만, 그 시간들이 내 마음에 여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삶은 방향이 있다고 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일 즉, 나의 과거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옆을 보는 것. 즉,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현재의 불만족을 보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앞을 보는 것.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미래는 희망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희망은 결국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를 위한 바람인가? 타인이 기대하는, 타인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모습인가를 냉정히 판단해야겠지요.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삶의 가치와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예능 프로그램을 자주 보며 재충전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사실 그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요. 때로는 출연자들이 과장된 언행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뭐 저렇게까지?'하는 마음을 갖기도 했으나, 내 안에 너무 고지식한 틀을 갖고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나를 다 흩어버린 후 재조립. 마음의 리모델링을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의 틀을 다시 추스리기 위해선 때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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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러시아 문학
막심 그렉 외 지음, 조주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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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러시아 문학을 알아보려면 우선 16세기 러시아의 상황을 먼저 살펴 봐야겠습니다. 역사적으로 16세기는 러시아의 발전 과정에서 전환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16세기는 러시아의 중앙집권화가 성립되는 시기로 통일국가 형성, 몽골 타타르 통치에서 해방, 민족성의 완성이라는 특징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상황은 모두 러시아인의 정신 영역과 문화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러시아 문화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가권력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과 입장입니다. 16세기 사회를 주도하는 두 세력인 교회와 국가는 서로 경쟁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아울러 러시아의 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정치사회 제도 중 하나는 농노제였습니다. 농노제 설립은 사회적, 계급적 모순의 첨예화를 초래합니다. 16세기 대다수 문학적 텍스트들은 정치성, 역사성, 종교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출현하며 논쟁이 계속됩니다. 비평가들은 16세기를 '논쟁 문학의 시대'라고 표현합니다. 


이 책에 첫 작품으로 등장하는 [흰 두건 이야기]는 교권과 왕권에 대한 테마를 담고 있습니다. 이 스토리의 작가는 외교관과 번역가로 활동하던 드미트리 게라시모프(1465~1535)입니다. 그는 대주교 겐나지 밑에서 필사가로 활동하다가 로마를 방문해 필사본 [흰 두건에 대한 그리스 이야기]를 구입해 돌아옵니다. 게라시모프는 그 필사본과 전해져 내려온 구전 이야기를 기초로 하고, 역사적 실제 인물들을 인용해 이 새로운 이야기를 창안해내게 됩니다.  


[흰 두건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내용은 흰 두건의 유래, 둘째 내용은 흰 두건이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간 이야기, 셋째 내용은 흰 두건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노브고로드로 옮겨 간 이야기입니다. 그 시작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병(病)입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던 대제의 꿈에 베드로와 바울이 나타납니다. 꿈에서 그들은 대제에게 추방된 실베스터를 만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대제는 실베스터가 건네준 성수로 목욕을 하게 된 후 깨끗하게 치유됩니다. 이 대목에서 용서와 화해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병이 회복된 황제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기독교 교회에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합니다. 심지어 황제는 제국의 왕관을 교황에게 넘기고자 하나, 교황은 이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대신 황제는 교황에게 '흰 두건'을 줍니다. 흰 두건은 영적 권리가 세속의 권리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부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흰 두건의 하얀색은 그리스도 부활과 광명을 의미합니다. 


실베스터 교황이 죽은 후에도 흰 두건은 로마 교황들에 의해 높이 경배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내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면서 흰 두건에 대한 경배심이 사라지고 심지어 모독하며 파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군요. 그러나 그 당시 눈병과 만성 두통을 앓고 있던 총대주교가 흰 두건을 자신의 눈과 머리에 갖다 대자 그의 병이 바로 사라지면서 흰 두건의 성스러움이 다시 알려지고 인정을 받는 상황이 됩니다.


여기서 흰 두건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 나라의 왕권(王權)으로도 표현 될 듯 싶습니다. 이 작품에는 저자의 신권(神權) 정치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전설에서 로마 교황은 세속적 영향력을 갖는 황제로 묘사됩니다. 저자의 소원이 담겨있습니다. 러시아가 마지막 성령 왕국이 될 것이며, 이 왕국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고,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는 날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은 누가 알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선지자인듯, 예언자인듯, 직접 계시를 받은 자인듯 설치고 다녔지만 결과는 이미 모두 가짜라고 판명이 되었지요.


어쨋든 이 흰 두건 이야기는 '모스크바 제3로마' 이론의 바탕이 됩니다. 모스크바가 정교 신앙의 유일한 수호자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사상은 외교 관계에서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한 적이 없고, 단지 종교와 교회라는 특정한 의미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입장을 강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막심 그렉]입니다.

정교회 역사의 한 면모를 보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종교 논쟁의 과정에서 러시아정교회는 소유파와 무소유파라는 두 종파가 생겨납니다. 이 두 종파는 교회의 권위 향상과 수도원 체제의 완성이라는 동일한 과제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취 수단과 방법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소유파는 대주교 다닐 같은 인물들의 활동으로 활성화 된 반면, 무소유파는 그리스인 막심(본명은 미하일 트리볼리스)같은 인물들의 활동이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 막심의 이야기입니다. 


[무롬 지방의 표트르와 페브로니야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은 사회평론가 예르몰라이-예라즘에 의해 1547년에 쓰였습니다. 그는 전문적으로 농민 문제만을 다루었습니다. 농민이 사회의 중심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가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제시 한 것은 근본적인 차원에는 한참 못 미치는군요. 지배계급의 이익을 우선하며, 농민 봉기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역사상 실존 인물이 제목에 등장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민담을 기초로 개작한 이야깁니다. 이 작품은 공후 부인이 된 현명한 농촌 처녀에 대한 지방 전설이 플롯의 기초가 됩니다.


[안드레이 쿠릅스키 공과 이반 뇌제의 왕복 서한]

러시아 국가에서 권력 구조에 대한 논쟁은 일반적으로 독재정치와 귀족정치의 대립으로 수렴됩니다. 이러한 것이 기반이 된 이반 4세(뇌제)와 대귀족 안드레이 미하일로비티 쿠릅스키 공이 벌인 논쟁이 중심 주제입니다. 쿠릅스키가 꿈꾸는 정치적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탁월한 정치가요 군사 지도자였던 쿠릅스키 공은 이반 뇌제와 정치적 이유 때문에 결별하고 리투아니아로 망명을 갑니다. 망명후 그는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이반 뇌제와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그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은 [도모스트로이(가정규범)]입니다. "기독교 신자인 모든 남편, 아내, 아이, 하인들에게 바치는 유용한 지식, 교훈, 교시의 내용의 담긴 도모스트로이라는 이름의 책.'

이 글의 저자는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후세 학자들은 100 여 년 동안 크렘린의 성 수태고지 성당의 사제 실베스트르가 저자라고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진짜 저자는 과연 누구일까? 로 남아 있습니다. 글의 주 내용은 가장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교훈서입니다. 글을 통해 느끼는 것은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가 엘리트 집단의 확고한 사고방식에 끼치는 영향력입니다. 이 글은 시대적인 자료의 의미 외에 현대 독자들에게 16세기 러시아의 부유한 가정의 일상적인 삶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16세기 모스크바의 상거래에 대한 관점, 남성과 여성의 역할, 양육법, 주인과 하인과의 관계, 음주, 윤리, 도덕, 시민 의식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모스트로이(가정규범)]를 읽다보니 이런 흥미로운 내용도 눈에 들어옵니다.

"주방장에게 필요한 설명서, 지하실에 식품을 저장하는 법 : 통, 상자, 도량형기, 큰 용기, 그리고 양동이에 고기, 생선, 양배추, 오이, 서양 자두, 레몬, 철갑상어 알, 그리고 버섯을 저장하는 법."

일종의 주방장 매뉴얼입니다.   "....만약 음식을 소금에 절인 상태로 말리면, 윗부분에 곰팡이가 슬 것이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음식이 상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음식들은 모두 얼음에 넣어두라."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그 시대적 상황을 읽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읽을 때 그 이해가 빨라질 수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을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러시아 문학, 특히 16세기 러시아 문학을 접할 때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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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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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의(定義)를 국가 공동체의 용기에 대한 정의로 받아들이게, 그러면 올바로 받아들이는 것이네. 자네가 원한다면, 용기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논의 할 수 있을 걸세. 지금은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정의인 만큼,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논의한 것으로도 충분하네."


플라톤을 만납니다. 좀 더 폭넓게 그리스, 로마시대의 인문학을 공부합니다. 14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럽의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 1000년의 암흑시대를 종결시키고 아름다움(美)에 대한 새 가치창조가 극에 이르는 문화혁명을 이뤘습니다. 다시 그리스, 로마시대의 인문학이 부활된 시기입니다.


IT 산업과 생명공학 분야의 발전은 분초를 다투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허전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생명공학에서 조차도 과연 진정한 생명력이 존재하는가 의문스럽습니다. 연구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들의 머리는 이성적일지 몰라도 감성지수는 별로인 듯 싶습니다. 


요즘 그리스, 로마 문명이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작품까지 가기엔 너무 먼 길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겐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도 만나보고 싶어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또는 '희랍인 조르바'가 수십 년만에 다시 부활되어 이름이 불려지고, 읽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자들과 비교는 할 순 없겠지요. 


인문학이 우리에게 강력히 요구되는 시대정신이라고 한다면, 그리스 로마의 고전은 '지식의 찬란한 첫 새벽'이라고 불리울만 합니다. 기원전 5세기 철학자 플라톤이 운영하던 '플라톤 아카데미'는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아카데미아에서 아테네 리더들에게 파이데이아(Paideia) 즉, 인간됨의 본질에 대해 교육을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 [국가]는 플라톤이 정계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대화편의 그리스어 원제는 Politeia 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라틴어 Respublica로 번역되면서 지금은 어디서나 으레 '국가'라고 번역되는데, 그 의미는 오히려 '정체(政體)'에 가깝다고 합니다.  플라톤의 저술은 편의상 초기, 중기, 후기 작품으로 구분됩니다. 초기 대화편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후기로 갈수록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플라톤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권은 '정의'가 키워드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올바른 삶이 올바르지 못한 삶보다 더 낫다는 세 가지 논거를 제시합니다. 첫째, 올바른 사람은 현명하고 훌륭하지만 불의한 자는 무식하고 나쁘다. 둘째, 불의는 내분을 조장하여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한다. 셋째, 올바른 사람은 불의한 자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산다. 정의의 정의는 그 오래전 부터 앞으로도 숙제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의가 시대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3권에선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성격이 형성되기 위해선 역시 훌륭한 예술의 중요성이 개입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애정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과 결부시킵니다.   4권에서는 '국가'를 논하면서 '국가의 정의'까지 옮겨갑니다.  소크라테스는 국가를 건설하는 목적은 국가 내의 특정 집단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지극이 원론적인 논지를 펼칩니다. 그러나, 사실 아직도 이 단순한 진리가 적용되지 않는 사회나 국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에 대한 이야기는 5권에도 이어집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상 국가의 이론적인 본보기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부분이지만, 문자 그대로 이상적인 이미지는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왕이 철학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왕이 되는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철학자들이 사물에 대한 지식에 실무 경험을 축적한다면, 당연히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논지가 6권에 이어집니다. 이어서 지도자의 역량을 용기, 정의 같은 미덕을 갖춰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이해가 빠르고 기억력이 좋고 성실하고 절제 있고 도량이 넓고 우아하고 세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분은 주요 공직자 인선 과정에 바람 잘 날 없는 '푸른기와집'에 적어서 보내주고 싶은 내용입니다. 


7권에선 수학과 문답법(問答法)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8권에서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은 지금까지 논의한 것을 정리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와 개인 간의 유사성을 다시 강조합니다. 불의한 정체(政體)의 네 가지 유형을 개인과 대응시키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불의한 정체(政體)의 정체는 이렇습니다. 크레테 또는 스파르테식 정체, 과두제(寡頭制), 민주제, 참주제(僭主制) 이 중 참주제를 말기적 질병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적인 피조물은 완전수(完全數)를 포함하는 주기를 띠지만, 인간 피조물의 수는 같게도 하고 같지 않게도 하며 성장하게도 하고 쇠퇴하게도 하는 일련의 수(數)들의 근(根)과 제곱이 세 개의 거리와 네 개의 한계를 포함하면서 성장함으로써 만물이 상통하게 하는 최초의 수야..."  

수학이 철학의 영역내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부분이 이어지며 펼쳐집니다. 기하학도 함께 합니다. 


위의 네 가지 유형 중에서 '민주제'가 어찌 불의한 그룹에 들어갔는지 궁금했습니다. 읽고 나니 이해가 됩니다. 과두제가 민주제로 변하는 것은 과두제가 지향하는 선(善), 즉 최대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욕망 속엔 참 치사스러운 전략이 숨어있군요. 과두제 국가들의 치자(治者)들이 자신들의 권력이 부에 근거하고 있기에 방탕한 젊은이들이 재산을 낭비하고 탕진해도 이를 벌률로 제재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런 젊은이들의 재산을 사들이거나 그것을 담보로 돈놀이를 하여 더욱 더 부자가 되고 더 존경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병약한 몸이 외부에서 오는 작은 충격에도 중태에 빠지듯, 아니, 어떤 때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자기분열을 일으키듯, 그런 상태에 있는 국가도 사소한 일을 계기로, 즉 한쪽은 과두제 국가에서 원군을 끌어들이고 다른 쪽은 민주제 국가에서 원군을 끌어들이면 병들어 자기들끼리 싸움을 할 것이며, 때로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내분이 일어나지 않을까?"


9권에선 올바른 사람이 불의한 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군요.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 명예를 사랑하는 자, 이익을 탐하는 자 중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판단에 따를 것을 믿어야한다고 합니다. 지혜와 경험과 이성에 근거한 그의 판단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0권에서 소크라테스는 정의가 받게 되는 보답들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내가 충고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혼이 불멸하며 어떤 악도 어떤 선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끊임없이 향상의 길을 나아가며 가능한 방법을 다해 지혜와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래야만 우리는 이승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경기의 우승자들이 상을 타가듯 우리가 나중에 정의의 상을 탈 때도, 우리 자신이나 신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네. 또한 이승에서도, 앞서 우리가 이야기한 천 년의 여로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걸세."

 

역시 고전(古典)읽기는 고전(苦戰)입니다. 머리좀 식히고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내용을 떠나서 대화와 토론의 기술을 익히는데도 도움이 되겠다 싶습니다. 플라톤 영감님이 당신이 쓴 책이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것엔 탐탁치 않게 받아 들일지 몰라도 말하는 입만 있고, 듣는 귀가 없는 현실. 듣고 말하는 것이 훈련이 안 된 요즘 세태에 '듣고 말하기 기술'을 익힘에도 일조를 하리라 생각듭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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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우선 이 책이 주는 제목에 시선이 갑니다. '건축'과 '철학'이 어떻게 만나나 궁금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두 전문 그룹을 동시에 품에 안고 싶어하는군요. 건축학과 철학이라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둡니다. 사실 두 분야는 피상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건축이 건축이라는 범주에서 폭을 넓혀 건축예술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예술사, 작가, 작품론, 조형론, 형태론, 공간론, 요소론 등의 미학 및 철학적 접근을 시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철학으로 시선을 돌리면, 건축 전공자의 학문에 대한 접근 방식과 분명 다를 것입니다. 철학은 다양한 논증의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그 글의 출처인 원전을 찾아 읽고, 다시 그 글을 재분석하도록 훈련받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여기에 깊은 사색까지 해야하는 수고가 더해집니다.


지은이 브랑코 미트로비치는 건축과 철학 박사학위의 소지자라고 합니다. 책 제목에 건축과 철학을 동시에 담고 있어도 자신있게 할 말이 있는 여건입니다. 지은이는 이 책의 목적이 독자들 - 건축가, 건축 실무자, 학생 -에게 설계 작업에서 맞닥뜨리는 더 광범위한 철학적 문제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선택된 철학적 견해들이 현대상황과 관계가 있는 건축 및 건축 이론 문제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마누엘 칸트 등이 초대 되어있고, 낭만주의와 역사주의, 현상학과 해석학, 분석철학등이 뒤따릅니다. "어떤 철학적 견해를 체계적으로 세우는 것은 많은 점에서 집을 설계하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철학자가 자신의 주장에서 무심코 모순을 허용하다면, 그것은 건축가가 실제로 건축된 부분과 설계도면이 어긋난 것을 간과한 것과 같다."


플라톤은 '존재론'을 통해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이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이를 건축에 국한시키면 "건축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고 해야겠지요. 건축과 수학은 분리될 수 없는 학문입니다. 플라톤 역시 인간 사회의 일시적 유행이나 자연 사물의 비영구적 속성에 영향을 받지 않은 '그 무엇'을 수학에서 찾아냈습니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영혼의 기능과 그 인지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최초의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감각 기관들이 보내온 정보를 '공통 감각'이라 부르는 중앙기관이 이를 통합하여 사물의 '심상'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의 스승 플라톤과 다른 점은 자신의 철학적 기반을 수학 대신에 생물학에 둔 점입니다. 아울러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대학의 철학과 자연 과학 분야에서 지배적 접근 방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쯤에서 건축과 건축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의의가 있겠습니다. 

"건축가를 영어로 말하면 Architect 또는 Builder 라고도 한다. 이 구분은 건축(Architecture)과 빌딩(Building)의 구분만큼이나 분명하다. 보통 작가의 예술적 의지가 우선하는 작업을 '건축'이라 해왔고, 단순한 부동산의 가치로 짓게되는 것을 빌딩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여기에서 아키텍트란 자신의 창의를 바탕으로 예술적 혼을 심는 자이고, 빌더란 건물을 이루기 위한 기술적 직능인을 주로 말한다."     "건축이라는 우리들의 사실 / 박길룡 / 발언"


이번에는 이마누엘 칸트를 만나보렵니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미학에 관한 견해를 발전시킵니다. 칸트는 하나의 미학 이론을 제시하는 대신 각각 별도로 다루는 게 좋은 다수의 이론과 깊은 통찰을 제시했으며 하나의 일관성 있는 미학 체계를 추구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책의 도입부에서 미의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미가 개인이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사물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어떤 개념과도 독립적인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칸트의 이 주장은 그 후 200년 동안 건축에 관한 논쟁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저자는 건축에 철학을 입힌 긴 글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철학은 최근 수십 년 동안 현상학과 후기 구조주의 학설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준비된 답과 건축 이론에 '적용할' 철학 이론을 제공하기보다는 건축가와 건축 이론가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의 이론을 검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이론가와 건축 실무자 사이에 더 광범위한 철학적 문화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을 쓴 주된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까, 숙제가 또 늘었습니다. 건축과 관련된 서적도 읽어봐야겠고, 얼마 전 구입해서 서가에 대기시켜 놓은 '현상학' 책도 봐야겠고, '해석학'이나 '분석철학' 분야도 섭렵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전체적인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 질 것 같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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