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의 기하학이란 방사형이나 원, 비정형적인 곡선이 담고 있는 위계나 차이를 원칙적으로 배제한 결정이다. 전제군주 치하의 유럽 도시가 일반적으로 채택한 방식, 즉 왕과 왕궁을 중심에 놓고 그 거리가 멀어질수록 권력과 부, 밀도와 치안의 정도가 감소되는 중앙과 외곽의 구성에 비해, 바둑판 모양의 격자에서는 어디든지 중심이 될 수 있고, 어디든지 외곽이 될 수 있다. 돈과 권력에 의해 도시의 특정 토지나 경관이 선점되고 독점되는 경향이 적었다. 오히려 누구든 사방으로 뚫린 스트리트와 애비뉴를 통해 쉽게 부두와 물가로 갈 수 있고, 막힘없는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길을 막아 자연자원을 사유화한다거나, 공동의 재산인 도시 경관을 사적인 목적으로 침해할 수 없었다. 어떠한 부자나 거대한 자본도 격자에 의해 형성된 블록의 단위를 넘거나, 임의로 통합할 수 없다. 누구도 공공 공간인 길을 덮어서 건물을 올릴 수 없으며, 길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필요한 장소에 도달할 권리를 묵살할 수 없다는 것이 격자망의 철학이다. 제 아무리 강력한 자본의 집중이라 할지라도 대개 격자의 질서에 의해 제어되고 저지됐다.18쪽

     한 편 격자에는 질서와 통제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격자의 원칙이 준수되는 한 블록 내부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되었고, 특히 그 용도에 대해서는 주변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제재도 취해지지 않았다. 블록의 범위, 즉 공적 공간과 접점이 되는 부분에 최소한의 형태 규제만 존재했다. 용도의 자유를 통해 수많은 다양한 활용 방식의 건물과 사용 양태가 시장 논리에 의해 번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와 동시에 아무리 다른 용도의 컨텐츠라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맨해튼에서는 아파트나 주차 건물, 공장 건물, 사무용 건물 사이의 외형에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호화주택이든 서민주택이든 재료와 디테일을 제외하면 극단적인 격차를 보이지 않았다. 18쪽

 

  격자 시스템이 갖는 흑백의 이분법은 고유의 규격을 통해 규칙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과하면 지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맨해튼 격자망 계획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루하고 일률적이지 않다. 반복의 지루함을 해소할 만한 변칙도 가지고 있다. 첫째 변칙은 브로드웨이다. 가로와 세로로 반복되는 격자망 패턴 사이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의 유명한 '파격'으로 꼽힌다. 아메리칸 인디언이 이용하던 길을 그대로 남겨둔 것 자체가 격자망 계획의 일부가 됐다. 18쪽

 

 브로드웨이라는 대각선의 길이 가로와 세로로 이뤄진 격자망과 만나는 지점에서 극적인 비정형성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삼각형 모양의 대지가 생기고, 공터도 생겼다. 삼각형 모양의 땅에는 건물 모양이 마치 다리미와 같다며 이름 붙은 '플랫 아이언 빌딩' 같은 건물이 자리 잡게 되는 이유가 됐다. 공터에는 스퀘어라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여러 길이 합쳐진 공터인 만큼 우리나라의 '광장'의 개념과 유사한 공간이 됐다. 유니온 스퀘어, 메디슨 스퀘어파크, 타임스 스퀘어 등이 바로 브로드웨이가 만든 유명한 파격이다.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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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욜이 지나면 화요일이 와서 좋고 화요일이 지나면 수요일이 와서 좋고 수요일이 지나면 목요일이 와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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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들은 다들 왜그리 슬프냐
술푸냐?
공기에 습기 조금 머금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술 먹자는 소리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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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찾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사람을 찾아가는 거였다.

오후에 어쩌다 한 번씩 가는 카페에
모처럼 갔더니 사장님이 안계셔 무지 서운했다.
나는 카페나 서점 같은 거 하려고 하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공간을 잘 지키고 있을 자신이 없다.

 

(1년에 한 두 번 보는 사람도 보고 싶고

매일 보는 사람도 보고 싶고

일주일에 한 두 번 보는 꽃도 보고 싶고

내 마음 속에,

이렇게나!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한가득일 줄.....

몰랐다.)

아침나절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커피집
바리스타 꽃남청년에게 가져간 페루 찬차마요를 내려줬다.

내려주고 나도 한모금 머금었더니
역시 보드라운 갈색 느낌의 향내가 났다.
페루 찬차마요에선 갈대향이 난다고 우겨도 되겠다.

긴 하루였다.
곁에 있기도 떠나기도 모두 어려워서.
졸린다. 다행이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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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물리적인 이동보다 심리적인 이동이 더 자극적인 여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앉아서 꿈에 그리던 남미와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페루와 탄자니아 커피를 마셨는데 그 만족감이 그랬다. 페루 찬차마요에선 티티카카 호수의 갈대향이 났다. 싯푸른 갈대가 아니라 집을 짓기 위해 잘 말린 갈대 내음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탄자니아 커피에선 결이 고운 황토냄새가 났다. 냄새가 났다기 보다 질감이 느껴졌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텐데, 멀리 눈 쌓인 킬리만자로를 보며 야생화가 실컷 핀 들판에 앉아있다고 상상했다. 아프리카의 흙내음과 꽃향은 이럴거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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