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혼자 있게 됨이 오전까지 영향을 미쳤다. 평화롭다. 평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여건을 갖추어 놓고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내렸다. 핸드드립을 하기에 분쇄도가 너무 굵은 상태의 그라인더를 꿋꿋이 방치하다가 오늘에야 분쇄도 조절을 했다. 어제 과도한 신맛의 워터리한 커피를 마신 친구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농밀한 커피가 내려졌다.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샾에서 꽤 여러 차례 마셨지만 기억되는 특징이 없었다. 오늘은 작정하고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인식하려고 집중했다. 무난한 바디감. 부드러운 산미와 뒷 여운의 단맛, 고소함. 나로서는 특징적인 개성이 느껴지진 않는다. 후향에서 기분 나쁘지 않은 담배향도 살짝 났다. 신맛을 싫어하고 고소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커피 일 듯하다.
물로 입을 계속 헹구어 내며 커피를 음미하다가 유라가 에르미타쥬에서 사다 준 메모 노트에 인도네시아 지도를 그렸다. 커피의 주요산지인 수마트라, 자바, 술라웨시의 위치를 확인했다. 커피의 이름들은 대체로 생산지의 이름을 따온 것이 많은데, 만델링은 커피를 재배하던 부족의 이름이라 한다. 그 외 세계 5위의 커피 생산국, 생두의 품질은 결점두 수에 따른 그레이드로 구분한다 등의 정보를 기억해둔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18,108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 2억 5천만명으로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인구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요즘 읽는 커피책은 두 권이다. 주로 가지고 다니며 전철에서 읽게 되는데, 컨디션이 좀 좋은 날은 큰 책을 가지고 나가고, 그렇지 않은 날은 작은 책을 가지고 나간다. 15년의 차이를 두고 발간 된 이 두 책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따로 또 같이 보면 보완되고 상승되는 효과가 있어 좋다.
창해의 <커피>는 '편리한 사전식 구성, 손에 잡히는 인류의 지혜, 창해 ABC북'시리즈다. 길이가 한 뼘 정도이고 얇아서 핸드백에 넣어 다니기 좋다. 외양은 댄디한 느낌인데 내용은 클래식하다. 오래 되고, 희귀한 꽤 볼만한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고, 고전적이면서 기본적인 커피의 ABC가 담겨 있다. 커피의 역사에서 문화사, 생두의 품질과 생산지에 대한 정보를 두루 상세히 아우른다.
큰 사이즈의< 커피 핸드북>은 1015년 3월에 나온 꽤 따끈따끈한 책이다. 일반 잡지 사이즈이므로 대체 핸드북의 뜻이 뭘까 갸웃거리게 된다. 외양은 월간지 느낌인데, 단행본이다. '완벽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바리스타가 되는 법', '맛있는 에스프레소 고르는 법'에서 알 수 있듯 커피에 대한 포괄적인 상식 보다는 전문적인 커피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이 많진 않지만 감각적이고 시원하게 디자인 되어, 내용이 쉬워 보이고 읽어지고 싶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