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를 읽게 된다면,
바로 이렇게,
에이드리언 리치가 읽는 방법처럼 갈래를 잡고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구나? 싶었다.

제인이 유명해진 이유는
‘신조를 지키는 씩씩한 여성, 나아가 성장 시키는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제인 에어 스스로 본보기로 삼거나 의지할 수 있는 여성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 한다.

<제인 에어>를 읽은 지 한 달도 채 안됐는데
그새 시간이 지났다고 <제인 에어> 내용이 가물거린다.
하지만 에어드리언 리치 언니의 통찰력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아, 제인 에어는 확실히 기승전결 본인의 삶을 본인이 결정해서 행동한다. 비록 소공녀 세라처럼 고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말이다.
특히, 로체스터와의 결혼식이 깨지고, 버사라는 존재를 알게 되어 로체스터의 곁을 떠날 결심을 했을 때, ‘꿈을 통해 밤하늘의 가모장 정신의 상징이자 밤하늘의 위대한 어머니인 ‘달‘이 꿈에 나와 제인더러 손필드 저택을 곧 떠나라고 재촉한다.‘는 장면을 리치 언니는 서술해 놓았는데, ‘달‘이 나왔었던가? 내면의 소리였던가? 기억에 가물가물한다.
하지만 ‘달‘이 가모장의 상징이란 점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해‘는 곧 가부장을 상징하는 것인가?
19세기 소설이라 정작 작가들도 관습을 깨부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감염‘되어 있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만,
어쨌거나 제인 에어는 기억에 남을 만한 독특한 소설임에 틀림없다.

‘남성의 일시적인 대체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서로 지지하는 현실적인 여성들의 관계를 목격한다‘(76쪽)
지지하는 관계는 곧 헬렌 동급생과 템플 선생님 그리고 다이애나와 메리 리버스 자매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네 여성들이 등장하면 눈에 띈다.

‘적어도 제인에게 이 결혼은 단순한 해결책이나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급진적으로 이해된 형태의 결혼이다. 즉 여성의 삶을 방해하고 축소하는 가부장적 결혼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의 연장선으로서의 결혼이었다‘(76쪽)
그 시절 소설들, 여성 대가 작가들은 ‘결혼‘을 함으로 왜 결론을 내리는 것일까? 궁금하다 못해 살짝 지겹기도 했었다.
또 결혼이군!!!! 이 위대한 소설들이 결국 결혼을 목적으로 쓰여진 것으로 폄하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었는데 결혼이 하나의 목적이나 해결책이 아닌 여성이 스스로 삶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의 연장선으로 보아야 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오스틴 소설을 읽을 때, 살짝, ‘결과보다 과정을 보란 말야!!‘ 그리 보이는 듯해 보였는데,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특히나 제인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장면에 몰입하다 보니, 로체스터와의 결혼으로 인해 조금 실망한 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과정을 돌이켜보니 확실히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로체스터가 청혼을 하여 수동적인 결혼식은 성공하진 못했으나, 제인이 청혼하여 연결된 능동적인 결혼식은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란 결론인 것인가?
그 시절 여성이 먼저 사랑을 쟁취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큰 이슈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뒤늦게 떠오른다.
에이드리언 리치 언니 덕분에 곱씹어 본 <제인 에어>였다.











어머니도 없고 경제적인 힘도 없는 제인 에어는 전통적으로 여성이겪는 유혹을 거치며, 이 각각의 유혹이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신조를 지키는 씩씩한 여성, 나아가 성장시키는 여성의이미지를 통해, 제인 에어 스스로 본보기로 삼거나 의지할 수 있는여성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 P53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떨며, 억누를 수 없는 흥분에 전율하며나는 계속 말했다.

"당신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다행이에요. 살아 있는동안 다시는 당신을 숙모라고 부르지 않겠어요. 커서도 다시는 당신을 보러 오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혹시 누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당신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묻는다면,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고, 당신이 날 비참하리만큼 잔혹하게 대했다고 말해줄거예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내 마음은 난생처음으로 낯선 자유와승리감으로 부풀어 오르고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보이지 않는 굴레가 끊어지고 바란 적도 없는 자유 속으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 P56

힘없는 이들의 수많은 분노가 그러하듯, 이와 같은 폭발은 순간의 의기양양함만을 남겼다. 제인은 곧장 우울감에 빠졌고, 자기 징벌의 반작용으로 괴로워졌다. 베시가 애정과 존중을 확인시켜주었을때 비로소 그 반작용에서 놓여난다. 베시는 제인에게 사람들을 무서워하면 사람들도 그를 더 싫어하게 될 뿐이라고 말해준다. 이상하게비뚤어진 조언이지만 제인의 조숙한 용기는 이 조언에 응답한다. 다음 장에서 제인은 로우드 자선 학교로 향한다. - P57

을 남성적인 신으로 대체하는데, 이는 기독교 시대 일부 상상력이풍부하고 재능이 뛰어난 여성들이 따랐던 하나의 양식이었다.
로우드 학교의 규율과 헬렌과 템플 선생님이 준 도덕적이고 지적인 힘은 어린 제인에게 스스로 가치가 있으며 윤리적인 선택권이있다는 의식을 심어준다. 헬렌은 마침내 결핵으로 세인의 품에 ‘어린아이처럼 안긴 채 죽음을 맞이한다. 나중에 템플 선생님은 ‘훌륭
‘한 성직자‘와 결혼해 로우드 학교를 떠난다. 이렇게 제인은 첫 번째진짜 어머니들을 잃는다. 그러나 이 두 여성과의 이별로 제인은 디넓은 경험의 영역을 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나의 세계는 몇 년 동안 오직 로우드에서의 생활이었고, 나의 경험은 이곳의 규율과 제도였다. 이제 나는 진정한 세계는 넓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 - P60

그리고 곧장 우리는 다시 미친 여자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여기서 우리 시대의 소설 가운데 또 다른 미친 아내가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도리스 레싱의 《사대문의 도시》의린다는 다락이 아니라 지하실에 살며, 주인공 마사가 (제인 에어처럼피고용인이고 고용주와 사랑에 빠진다) 그 집에 살러 갔다가 그의 광기를 경험한다.
제인 에어에게 다락 층은 가스통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지하실의 무의식적이고 귀신들린 세계와 반대로 ‘지붕의 합리성‘
이라고 부른 공간이 아니다. 이 지붕은 제인의 시선이 확장되면서방문한 곳이지만, 이 시선, 혹은 이 깨달음은 제인을 문 뒤에 갇혀 있는 미친 여자 쪽으로 더 가까이 데려간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에서 미친 여자는 그 자체가 깨달음의 원천이다. 그러나 제인 에어는 버사 로체스터와 그런 접촉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제인의 자아의식은 남자와 동등하고 같은 요구를 지닌 의식-1840년대 영국의 광기에 더 가깝다. 제인은 자신이 미치리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지만, 집 안에는 분명 미친 여자가 존재한다. 그 이미지는 흰 거울에 비쳐 끔찍하게 일그러진 이미지이고, 제인의 행복을위협한다. 자기보호본능이 이전의 유혹들로부터 제인을 지켜주었듯이 1840년대 영국의 힘없는 여성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상상하지 않음으로써 제인은 미친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 P64

렸듯이 자신은 도덕적인 설화를 하고 있지 않음을 꽤 의식했다. 제인은 피상적으로는 그 시대와 장소의 창조물이지만 인습에 묶여 있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 어른의 권위가 지닌 신성함을 거부했고어른이 되어서는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위상에 맞게 조절하겠다고고집했다. 로체스터에게 의존적인 정부가 되어 그와 함께 살지는 않겠다고 한 것도 그런 관계가 파괴적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또 세인트 존과도 결혼하지 않고 독립적인 동료로서 함께 살고자 했는데,
오히려 세인트 존은 이런 모습이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설이 아름답고 깊이 있는 것은 부분적으로 대안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습과 전통적인 신앙심에 대한 대안도 물론 있지만, 여성의 정신세계 안에 내면화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반사적 반응에 대한 대안도 있다. 또한 《제인 에어> 안에서 우리는 정형화된 여성들끼리의 경쟁의식에 대한 대안도 발견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우리는단지 삼각형의 세 꼭짓점 같은 관계 혹은 남성의 일시적인 대체물로서 여성이 아니라 서로 지지하는 현실적인 여성들의 관계를 목격한다. 제인 에어에게 결혼이야말로 템플 선생님, 다이애나와 메리 리버스에게 그랬듯이 삶의 완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적어도 제인에게이 결혼은 단순한 해결책이나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급진적으로 이해된 형태의 결혼이다. 즉, 여성의 삶을 방해하고 축소하는 가부장적결혼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의 연장선으로서의결혼이었다. - P76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2-11-29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미여> 읽다가 이 책 찾아서 ㅋㅋㅋㅋㅋㅋ 이 부분만 따로 읽었거든요. 진짜 좋더라구요. 책나무님 페이퍼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돌아옵니다. 저는 요즘 휴지기라 좀 쉬고 있습니다^^
책나무님 페이퍼만이라도 부지런히 따라갈게요!!

책읽는나무 2022-11-29 15:29   좋아요 1 | URL
전 단발님 에이드리언 리치 님 목 놓아 외치셨을 때, 잠깐 주디스 휴먼이랑 잠깐 헷갈려서 그 책을 빌려왔었던 적 있었죠. 다행히 읽지 않고 고대로 반납했었는데, 다미여 읽다 보니 계속 에밀리 디킨슨과 에이드리언 리치 여사님 언급되길래 안되겠다 싶어 빌려다 읽고 있는데 와!!! 이 책 넘 좋은 거에요^^
시인이셨네요? 근데 어쩜, 에세이 글이 더 좋나요?
목 놓아 에이드리언 리치 님 좋다고 계속 발언하시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래서 친구를 잘 두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군요?ㅋㅋㅋ
단발님은 책을 많이 읽어 두셔서 휴지기도 가지시고, 또 부럽네요^^
전 읽곤 있는데 월 초처럼 막 진도가 나가진 않네요. 그래서 이 상태로 가다간 다미여 책 제대로 완독할 수 있으려나? 살짝 초조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뒤에 바람돌이 님이 계셔서 좀 든든합니다만ㅋㅋㅋ 근데 바람돌이님 다미여 잡기만 하면 막 읽으실 것 같아 믿을 수가 없기도 하구요ㅋㅋㅋ

단발머리 2022-11-29 19:13   좋아요 1 | URL
근데 제가 ㅋㅋㅋㅋ 목 놓아 외쳤군요 ㅋㅋㅋㅋㅋㅋ 에이드리언 리치이이이이이이!!!
얼만전에 알라딘 친구가 물어보더라구요. 페미니스트 중에 누가 제일 좋으냐. 자꾸 변하기는 하는데 요즘에는 에이드리언 리치랑 필리스 체슬러가 좋다. 너무 좋다. 그렇게 말했거든요.
목 놓아 말했습니다. 에이드리언 리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책읽는나무 2022-11-29 20:14   좋아요 1 | URL
그 글을 제가 읽었던 것 같아요.
에이드리언 리치랑 필리스 체슬러가 좋은데 지금 에이드리언 리치가 가장 좋다구요.
그 글을 읽어서인지 다미여 읽다가 안되겠다. 에이드리언 리치 찾아 읽어야겠어!! 가 되었다가, 요 앞의 글을 읽다가 혼자 찡~해 가지고 눈물도 좀 흘렸다가, <제인 에어> 리뷰 편 읽다가 오잉? 그런 숨은 뜻이 있었어??? 두 눈이 커졌다가.....
암튼 에이드리언 리치 언니 덕분에 감정의 기복이 큽니다ㅋㅋㅋ
목 놓아 외칠만 하더군요.
저도 올 해 뒤늦게나마 알게 된 에이드리언 리치여서 더 좋네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락방 2022-11-29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시는 분들 진짜 지적임이 넘쳐납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분들.
샤라라랑~

책읽는나무 2022-11-29 15:32   좋아요 1 | URL
지적임이 넘쳐난다구요?? 어디, 어디요????
지적이신 분들이라...모두를 지적으로 보아주시는 아름다우신 분들!!!
오늘의 댓글은 최고의 댓글입니다ㅋㅋㅋ
그저 따라가기 바쁘지만, 언제나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시로 읽었을 때와 다르게
에세이로 읽었을 때가
더 강인하고, 더 명확하고,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에이드리언 리치 작가의 솔직한 글.

분명 작가는 담담하게 써 놓은 것일텐데,
나는 왜 읽으면서 코 끝이 찡해 오는 것인가!
이 감동과 연민이 파도처럼 밀려 오니 밑줄긋기를 해 놓는다.

비단 나만 코 끝이 찡한 것은 아닐 터,
여성이라서,
엄마라서,
모두다 공감되어 그저 할말을 잃게 만들 것이다.
읽는다면
바로 이 순간!!!!
그렇게 된다.




대학을 마치고, 내 보기엔 뜻밖의 행운을 만나 첫 시집을 출간했고, 애인과 헤어졌다. 직업을 구했고, 혼자 살았고, 계속해서 글을 썼고, 사랑에 빠졌다. 나는 활력으로 가득한 젊은이였고, 시집은 다른 사람들도 내가 시인임을 동의하는 의미로 보였다. 여성 시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당시 ‘완전한‘ 여성의 삶으로 규정되었던 모습을 모두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20대 초반에 결혼생활에 뛰어 - P36

들었고 서른이 되기도 전에 세 아이를 낳았다. 내 주위에는 분명한경고 신호가 전혀 없었다. 당시는 1950년대였고, 이전 페미니즘 물결에 대한 반응으로 중산층 여성들은 완벽한 가정을 일구는 것을 경력으로 삼았고, 남편을 전문대학원에 보내려고 직장에서 일했으며,
은퇴 후에는 대가족을 길렀다. 사람들은 교외로 이주하고 있었고, 기술은 성 문제를 포함한 모든 것에 정답이 되어줄 전망이었다. 가족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생활은 지극히 고요해졌다. 여성들은 결혼 생활에 충실하느라 서로 고립되었다. 1950년대 여성들은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은밀한 공허감과 좌절감을 공유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 시집과 첫 아이가 같은 달에 나왔다. 그러나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이미 책에 실린 시들에 만족하지 못했다. 전부 내가 아직 쓰지 않은 시들을 위한 단순한 연습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 시집은 "우아하다"라고 칭찬을 받았다. 나는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었으니까 만에 하나 의문을 품는다면, 공허한 우울과 적극적인 좌절의 시기를 맞게 된다면, 내가 배은망덕하고 만족할 줄 모르며, 어쩌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셋째가 태어났을 무렵 나는 스스로를 실패한 여성이자 실패한 시인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제3의 명제를 찾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운명이라고 부르는 어떤 흐름에 떠밀려 들어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리는 일이었다. 한때 자기 의지와 에너지를 거의 황홀경의 상태로 경험했던 여자, 도시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거나, 한밤중에 기차를 타거나, 교실에서 타자기로 글을 쓰던 여자를 까맣게 잊고 표류한다는 생각이 정말 무서웠다. 내 할머니에 - P37

관해 쓴 시에서 나는 (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자는 줄 알았던 젊은 여자는 죽음을 확인받았다"((가운데 Halfway) 나는 부분적으로는 피로 때문에, 분노가 억눌리고 자신의 존재와 접촉을 상실한 여성의 피로 때문에, 또 부분적으로는 타인이 끊임없이 없었던 일로 되돌려놓는 소소한 집안일, 허드렛일, 어린아이들의 끝없는 요구를 보살피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여성의 단절적 삶 때문에,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그나마 쓴 글은 내가 납득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상당히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 안에서나 밖에서나 나 자신의 분노와 좌절을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고 이해해보려는 과정에서 나는 그 갈등의 진짜 속성을 분석해보려고 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 인간의 삶은 환상으로, 즉 반드시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는 수동적인 백일몽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심지어 생각을 잘하는 것은 환상도 아니고 환상을 종이에 옮기는 일도 아니다. 시를 쓰려면, 등장인물이나 행위가 꼴을 갖추려면, 상상을 통한 현실의 변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은 절대로 수동적일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자유로워야 한다. 자신이 계속 움직일 것이고, 집중력을 통한 공중부양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아는 글라이더 조종사처럼 생각의 기류를 타고 계속 나아갈 자유가 필요하다. 더불어 그 상상이 경험을 초월하고 변형시켜야 한다면, 그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삶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도전을 제기하고, 대안도 생각해내야 한다. 낮이 밤이 될 수 있고 사랑이 미움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한다. 상상이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실험적이게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만큼 신성한 일도 없다. 글쓰기란 ‘이름 바 - P38

꾸기 re-naming‘이기 때문이다. 이제 낡은 방식으로 온종일 어린아이들의 어머니 노릇을 하고, 남자와 함께 낡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한 활동을 억제하고 보류해야 하며, 일종의 보수주의가 필요하다. 지금 나는 글을 잘 쓰거나 생각을 잘하려면 절대 타인을 돕지 말고 이기적인 자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은 남성적인 예술가와 사상가의 신화였고, 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여성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인 여성의 기능을 수행하려고 하면, 상상력의 전복적인 기능과 직접 충돌하고 만다. 이때 전통적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분명히 여러 가지방법이 존재할 것이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창조의 에너지와 관계의 에너지를 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늘 사랑의 실패자로서 갈등을 느꼈다. 한때는 내가 섹슈얼리티와 일과 자녀 양육이 공존하는, 다시 말해 대다수 남성에게나 가능한 완전한 삶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의 나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늘 죄책감을 느꼈다.
당시 나는 어떻게 해도 충분하지 않은 단 한 가지를 원했다. 바로 생각할 시간, 글을 쓸 시간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은재빠른 폭로의 세월이었다. 남부에서 쿠바의 피그스만에서 연좌 농성과 행진이 벌어졌고, 이 초기 반전운동은 대규모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내 주변 남성적인 학계는 이런 질문에 대한 전문적이고도 유창한 대답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파시즘과 저항과 폭력에 대해, 시와 사회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나의 관계에 대해직접 생각해봐야 했다. 약 10년 동안 나는 아주 짧은 시간에 맹렬히 집중해 글을 읽고, 공책에 끼적이고, 단편으로 시를 썼다. - P4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1-28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은재빠른 폭로의 세월]
이후 반세기를 넘어
2022년의 세상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11-28 17:3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에이드리언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 했었어요.
2022년도 달라진 게 없는데요? 반문 하면서요ㅜㅜ
 
누런 벽지 - 영한대역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김경숙 옮김 / 시커뮤니케이션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전에 ‘광기‘에 집중된 제목으로 다가왔다면, 읽어 보니 이제는 ‘감금‘된 공간에서 ‘여성적 은유‘로 응축된 소설로 읽힌다. <제인 에어>를 읽은 덕에 감금된 ‘버사‘의 분신처럼 비춰진다는 말에 충분히 공감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누런 벽지 속에 갇혀 ‘버사‘처럼 광인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 감금당한 입장에서만 읽는다면 답답하게도 읽힐 수 있겠지만, 그 상황을 조롱하고 깨부수려 하는 희망도 보여 은근히 재미나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2-11-26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긴장감이 차 오르는데 몰입감이 대단하더라고요. 광인에게 공감하는 나는 미친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니까요.

참,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이 벽지를 막 뜯는 장면이 나와요. 전 그걸 보면서 ‘누런 벽지‘를 생각했어요. (실은 소설을 떠올리는 나 자신이 뿌듯한 순간이었어요) .... 뚱딴지 같은 소리지만, <비밀은 없다>도 꽤 재미있었어요.

책읽는나무 2022-11-26 16:18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감금당한 고딕소설 계열 몇 편 읽어서 그런지? 기묘한 감정보다 은근 즐기면서 읽고 있는 저 자신이 보이더군요.ㅋㅋㅋ
기어가는 자세나 벽지를 뜯는 장면 연기하면 어떤 느낌일까? 막 상상하고 있었는데, <비밀은 없다> 영화에서 손예진이 벽지를 뜯고 있나요??
봐야겠네요ㅋㅋㅋ
알면 보인다고~ 우린 읽었기 때문에 바로 책 장면을 떠올리는 게 당연할 수 있죠^^
전 ‘누런 벽지‘ 읽으면서 바로 버사를 떠올렸는데 책 각주에도 제인 에어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웃었어요.
<제인 에어>가 정말 인용이 많이 되던데 그 시절 완전 파장을 일으켰나 보군요?? 샬롯 브론테가 제인 오스틴보다 영향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스틴은 달달함, 샬럿 브론테는 강렬함!
저는 샬럿의 소설을 많이 안 읽어서 아직은 누가 더 끌리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제인 에어가 기억에 더 강인하게 남긴 합니다.
근데 짤막한 단편이어도 <누런 벽지>도 강렬하고???
아...순위를 매기기가 힘드네요ㅋㅋㅋ

바람돌이 2022-11-26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읽으셨군요. 마지막 장면 왠지 통쾌하지 않나요? 그 상황을 조롱하고 깨부수려한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읽었어요. 이 분 책도 좀 더 읽어보려고 지금 막 줄세워놨어요. 물론 다미여를 읽은 다음이겠지만.....ㅠ.ㅠ

책읽는나무 2022-11-27 00: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다른 소설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앗차, 시집이었던가?
요 며칠 줄곧 시집만 챙겨 오다 보니 작가 약력 살펴보느라 길먼 작가 약력이 잠깐 헷갈리네요??ㅋㅋ
이렇게 뒤죽박죽 몰아서 읽음 안되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11 월이 끝나가려 해서 마음이 바빠 어쩔 수 없다는....^^;;;
근데 이 소설은 영화를 만들면 재밌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도 광기를 은근 즐기고 있는 이상한 저의 취미를 발견한 것 같아요^^
하지만 감금은 정말 싫어요ㅜㅜ
바람돌이님 이제 슬슬 다미여 시작하십시다!!!!ㅋㅋㅋ

프레이야 2022-11-27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런 벽지. 길먼의 다른 작품집에서 읽었는데 내면에 잊고 있었던 미칠듯한 그 강렬함이 다시 떠오릅니다. 많이 읽고 계시네요 책나무님. 전 이런저런 할일과 내면의 사건과 떠오르는 생각들에 얽혀 답보 상태입니다. 게워내고 또 씹어 먹어야 할텐데 말이죠.
광기 발산!! 으샤!

책읽는나무 2022-11-28 10:55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요즘 프레이야님 바쁘신가? 생각했었습니다. 글이 뜸하시구나! 하면서요^^
전 코로나 때 소설들 막 읽다가 코로나 낫고 나니 조금 시들했다가 달력 보고 깜짝 놀라 다시 부스터 재가동 했습니다ㅋㅋㅋ
이거 이러다 다미여를 제때 읽을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네요.
길먼 누런 벽지를 읽으면서 뭐랄까요? 조금 힘이 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엥???? 이유는 모르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ㅋㅋ
암튼 우리 광기 발산!!!
그런 심정으로 다시 힘을 내 봅시다^^;;;

scott 2022-11-27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다락방 미친 책들 덕분에 세계 명 고전 작품들 줄줄이 읽어 나가시는 모습 멋집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2-11-28 10:59   좋아요 1 | URL
멋지게 리뷰도 쓰고 해야할텐데, 글 재주가 없어 그저 기록으로만 남기고 있어 멋지다고 해 주시니 조금 부끄럽습니다만^^;;;
지금 요 시기가 아니면 이런 소설과 시들은 읽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 한 번 읽어 보자! 싶은 마음에 닥치는대로 읽곤 있네요.
정리는 안되지만 다행히 재미는 있어요.
뒤늦게 재미라도 붙여 요즘 이게 웬일인가? 싶기도 하구요^^
그런데 불쑥불쑥 현대 소설을 읽고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그런 마음 일부러 잠재우고 있구요ㅋㅋㅋ

그레이스 2022-11-28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책!
원서로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책읽는나무 2022-11-28 11:02   좋아요 1 | URL
원서!!!!
안그려도 왼쪽 페이지 부분 영어 원문도 읽을 수 있겠군!! 하다가 다 읽자마자 책 바로 덮고 디킨슨 시집 들고 읽느라고 다시 영어 원서 읽을 생각을 못했네요???
반납 전에 다시 책을 펼쳐봐야겠네요ㅜㅜ
그레이스님은 원서도 읽으셨군요??😻😍😍
 
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연히 ‘설득‘시키는 소설일 것이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더니, 예상을 빗나간 제목이다. ‘설득‘을 당했다고 상대방은 섭섭해 하지만, 앤은 충분히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일 수 있을 것이다. 앤 엘리엇에게 빠져 편애의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가장 사랑스럽고, 현명하고, 따뜻한 캐릭터였다. 그래서 오스틴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스틴에게 설득 당한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반부로 넘어가니 웬트워스 대령과 앤 앨리엇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숨 가쁘게 문장을 읽고 책장을 넘기기 바빴다.
오스틴의 소설은 늘 이렇구나!
초반부 아...무슨 내용인 건가?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각자 할 말을 반 페이지 넘게 뱉어 내니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아 정신이 없다가, 중반부쯤 들어서야 서서히 윤곽이 잡히면서 집중하게 되고, 후반부는 책장이 막 넘어간다.
수하님이 얼마 전 말씀하신 울프의 문장이랑 정말 딱 맞다.
묘한 지루함과 묘한 아름다움이 있는 오스틴의 소설!
읽을 때는 지루하지만, 다 읽고 나면 주인공들에게 스며들어 있어, 나는 또 별 다섯 무조건 선사한다. 나는야 마구 별 뿌리는 사람!
그래도 오스틴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웬트워스 대령의 결정과 고백은 조금은 예상 가능하긴 했는데, 내가 예상했었던 ‘질투‘의 대상이 완전 뒤바뀌어 있어 조금 놀랐다. 루이자를 이용하여 앤의 질투를 끄집어 내려고 했던 것으로 여겨 조금 야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훗날 루이자에겐 조금도 마음이 없었다고 친밀감이 과했던 것이라 말을 둘러대는 자기 변명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엘리엇이 앤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보고 본인이 질투를 했노라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조금 예뻐 보였다. 역시 질투가 사랑의 밀당이롤세!!!!
잠자냥님의 얼마 전 ‘질투‘란 주제의 리뷰를 읽었던지라, 더욱 ‘질투‘에 꽂혀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나니 프레이야님과 바람돌이님의 웬트워스 대령의 처지에 조금 공감되더란 그 말에 나 또한 조금 공감되긴 했다. 이 책은 ‘설득‘하려는 능동적인 행위가 아닌 ‘설득‘ 당한 수동적인 행위로 인해 두 사람의 분노와 섭섭함과 아쉬움 그리고 미련이 고스란히 피부에 와 닿아 나의 과거가 떠오르기도 하여 책을 덮고 나니 아스라히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설득당한 나를 원망했던 그 친구는 아직도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려는지? 에혀~ 시간이 흐른지가 언젠데, 모든 걸 잊고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지!

주절주절 감상 기록이랑 밑줄 긋기의 내용은 너무 다르다는 걸 이제 깨달아, 몇 자 더 기록해 둔다면...
<다락방의 미친 여자>책에 언급된 문장들이 눈에 띈 문장들, 그리고 오스틴이 얘기하는 듯한 느낌의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다.
밀줄은 더 많이 긋긴 했지만, 여기까지!!
오스틴 작가 넘 좋아하는 거 티 내고 싶지 않으니까!



"맞습니다." 앤이 말했다. "맞는 말씀이에요. 제가 기억을 못 했네요. 그렇다면 하빌 대령님, 이제 뭐라고 말을 할까요? 변화가 외부 상황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내부에서 온 것이겠지요. 벤윅 대령의 경우엔 본성, 남자의 본성인 거죠."
"아니, 아니에요, 그건 남자의 본성이 아니지요. 지조 없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여자의 본성이 아니라 남자의 본 - P308

성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라고 믿어요. 우리의 신체적 구조와 정신적 구조엔 진정한 유사성이 있다고 믿으니까요. 남자의 신체가 더 강하듯이 감정도 더 강하니. 그만큼 고된 일도 견딜수 있고 거친 풍파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남자의 감정이 더 강할지도 모르죠" 앤이 대답했다. "하지만 바로그 유추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자의 감정이 더 섬세하다고 주장해도 무방하겠지요.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더 오래살지는 않잖아요. 그게 바로 제가 보는 남자들 애정의 성격이에요. 아니 그렇지 않다면 당신네에게 너무 힘든 일이겠지요. 당신들은 힘들고 궁핍하고 위험한 상황도 감당해야 하고, 항상 열심히 일하느라 고생하고 온갖 위험과 고난에 노출된 삶을 사니까요. 집과 친구, 고국을 떠나서 지내는 데다, 시간도 건강도 목숨까지도 자신의 것이라고 할수 없지요." 앤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이 모든 것에 여자같은 감정까지 더해지면 정말 너무 힘들 거예요."
"우린 절대 이 문제에 타협점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하빌 대령이말을 하려는데, 지금껏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던 웬트워스 대령 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펜이 떨어지면서 난 소리였을 뿐이지만, 앤은 그의 자리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 사람에게 정신이 팔린 그가 무슨 얘길 하는지 들으려고 하다가 펜이 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말소리를 알아듣지는 못했을 거라고 앤은 생각했다.
"편지는 다 썼나?"
"아직 몇 줄만 더 쓰면 돼. 오 분이면 될 걸세." - P309

"아!" 앤이 열렬한 목소리로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 같은 남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온당하게 대접할 수 있길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따뜻하고 신실한 감정을 하찮게 본다면 벌받을 일이겠지요. 제가 감히 진실한 애정과 절개는 오로지 여자들만의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멸받아 마땅할 겁니다. 아니, 저는 남자들이 - P311

결혼해 살면서 온갖 위대하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애쓰고, 가정에서 참을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다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상이 있는 한 그렇다는 얘기지요. 제 말은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살아 있고, 그 여자가 당신을 위해 사는 동안에 한해서라는 거예요.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특권이란 - 별로 시기할 만한 게 아니니 탐내실 필요는없어요-더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곧바로 다음 말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벅차 숨을 쉬기도힘들었다.
"당신은 선한 영혼을 가지셨군요." 하빌 대령이 다정하게 앤의 팔에 손을 얹으면서 외쳤다. "당신과는 논쟁을 할 수가 없네요. 게다가 벤윅을 생각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답니다."
- P312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1-25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득 엔딩 슬픕니다 ㅜ.ㅜ

다코다 존슨 주인공인 영화 설득 꼭 보세요
화면 연기 영상 모두 쵝오!^^
넷플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2-11-25 00:22   좋아요 1 | URL
영화도 같이 조금씩 보고 있었어요. 다코다 존슨 배우 덕에 앤 엘리엇 주인공을 가장 최고 캐릭터로 등극시켰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워요^^

근데 왜 엔딩이 슬픈가요?
제가 잘못 읽은 건가?
아리쏭 하네요??

scott 2022-11-25 00:24   좋아요 1 | URL
아뇨 나무님이 읽으신거 정확 합니다

다만 작가 오스틴이 많이 아팠을 때(아마 현대의학으로 추측해 보면 신장 결석증을 앓음) 써서 기냥 제가 작가의 맘 상태에 빙의를 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11-25 00:35   좋아요 1 | URL
아...^^;;;
연보에서 읽은 것 같긴 합니다.
<설득> 초고 때부터 건강 악화가 되었다고ㅜㅜ
그럼 설득 소설을 써 내려간 그 시간들이 병마와의 싸움이었겠군요.
또 그렇게 생각해 보면 슬플 수도 있겠어요.
전 마지막 문장이 좀 찝찝해서 왜 이렇게 끝맺었을까? 싶긴 했었어요.
역사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으니 여지를 둔 것인가?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스콧님이 그 부분 때문에 슬프다고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슬프게 읽어야 하는 대목을 나는 너무 무덤덤하게 읽은 건가? 생각했네요^^;;;

건수하 2022-11-25 09:24   좋아요 2 | URL
스콧님 댓글을 보고 나니
확실히 <설득>에는 그 전의 작품들에 있는 유머러스함은 좀 적은 것 같습니다. 작가가 힘들어서 그랬을까요...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해 좀더 솔직하게 쓴 것 같기도 하네요.

책읽는나무 2022-11-25 09:45   좋아요 2 | URL
금방 설득 영화도 다 봤네요.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은 참 아름답네요^^

어젠 다 읽고 자려고 누웠는데 오스틴의 <설득>을 써 내려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었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설득이 개인적인 경험담이랑 비슷한 것 같아 웬트워스의 어떤 대화가 은근 불편했었는데, 그게 갑자기 비수가 되어 눈에서 물이 조금 나오더라구요ㅋㅋㅋ
아...설득의 후유증은 좀 깊네요^^;;;

건수하 2022-11-25 09:48   좋아요 2 | URL
눈에서 물이... ^^;;

참, 저도 루이자에게 조금도 마음이 없었다는 말에는 공감이 안되더라구요. 그리고 그랬다면 그건 루이자한테 너무 한 거 아니냐며... 웬트워스 그 부분에서 마이너스였어요 :)

책읽는나무 2022-11-25 10:36   좋아요 1 | URL
남의 말 한 마디에 어떻게 마음이 흔들릴 수 있냐고 원망하며 한숨 쉬던 목소리가 평생 잊혀지지 않았었는데, 루이자 앞에서 앤 뒷담화 하던 웬트워스의 대화가 뜨끔!!!!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올랐었는데 수하님이 얘기하신 굉장히 현실적이다라는 말씀이 떠오르면서 오스틴 소설 중 설득을 읽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었네요ㅋㅋㅋ

루이자는 이용당한 거죠??
아니...루이자의 마음을 훔쳐 놓곤??
그런데 여친을 잃어 상심하고 있던 벤윅 대령과 갑자기 사랑의 작대기가 연결되어 놀랐네요?
오스틴 소설을 읽다 보면 한 번씩 이게 말이 돼? 싶을 정도로 갑자기 급하게 사랑의 작대기가 얼토당토 않게 연결이 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어요. 오스틴 작가가 급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그랬던 건지? 아님 그 시대 연애 풍조가 그랬던 건지? 여튼 결말부분에선 약간 바람 난 듯한 커플들이 종종 눈에 띄어요^^;;;

서니데이 2022-11-25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나온 제인 오스틴 책이군요.
문학전집에도 들어가는 책이라서 그런지,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는데 이 책도 표지가 괜찮네요.
다음주부터는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2-11-27 07:46   좋아요 1 | URL
오스틴의 소설 종류가 정말 많죠?
번역을 보고 픽을 해야 하는데 전 책 표지를 보고 선택을 하다 보니, 이것 참....^^;;;;
전 민음사보다는 개인적으로 문학동네 고전 시리즈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왕이면 그 쪽을 선택하는 편인데요. 마침 책 표지도 예뻐 만족했어요^^
어제 조금 춥기 시작한 것 같았어요.
아침에 외출할 일이 있어 나갔었는데 가을 코트 입고 있어서 혼자 추워 덜덜 떨었네요ㅜㅜ
암튼 서니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바람돌이 2022-11-25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제인에어로 넘어왔습니다. 어린 시절 제인에어 걸 크러쉬 작렬! 맘에 들어요. ㅎㅎ 세상은 그래 나에게 부당한 세상이면 이렇게 싸워야지 하면서 막 응원하면서 보고 있어요. ㅎㅎ

유부만두 2022-11-26 14:00   좋아요 2 | URL
제인에어 깡다구 좋죠?! 다크 버전의 빨간 머리 앤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너무 불쌍하다가 ....얘가 사랑을 하면서 물렁해져서 좀 그랬어요. (스포 죄송합니다) 늙은이한테 왜 반하고 그러냐고요!!!!

책읽는나무 2022-11-26 15:2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제인 에어, 브론테 자매 월드로 입성하셨군요??^^
걸 크러쉬!! 딱 맞는 표현이네요?
근데 만두님 말씀처럼 에어가 어른이 되면서 성숙해지긴 했는데 너무 성숙? 사랑 앞에선 어릴 때 에어 맞나???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꼭 그 남자여야만 했는가?ㅋㅋㅋ
앗!! 계속 말하면 안되겠어요.
자꾸 스포를!!!ㅜㅜ
바람돌이님 제인 에어 다 읽으시면 우리 다시 모여 뒷담화?? 아니 아니 우아하게 감상평을 빙자한 뒷담화 합시다ㅋㅋㅋ

유부만두 2022-11-26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티 내 주세요! 오스틴을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그 불륜남 흉내내는 거 아님요)

책읽는나무 2022-11-26 15:18   좋아요 0 | URL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니??
갑자기 부부의 세계...ㅋㅋㅋ
오스틴 도장 깨기...이제 사다 놓은 책 중 <엠마>만 읽음 오스틴 사랑한다고 동네방네 소문 내겠습니다ㅋㅋㅋ
근데 <엠마> 는 두 권이네요?
바쁜데...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