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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됨과 정치 - 서구 정치 이론에 대한 페미니즘적 독해 ㅣ 메두사의 시선 2
웬디 브라운 지음, 황미요조 옮김, 정희진 기획 / 나무연필 / 2021년 4월
평점 :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작가가 쓴 책이다 보니, 정치와 철학 두 분야를 무시로 넘나들며 밝히는 작가만의 해석에 절로 공감되는 책이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한나 아렌트, 마키아벨리, 베버의 사상책들을 읽지 않아 그들의 사상과 전문 용어가 나열될 때는 나의 좁은 소견이 따라가기 힘들어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책을 읽기 전, 이쪽 관련 책들의 선행 독서가 준비되어 있었다면 아마도 좀 더 폭넓게 사유할 수 있었을텐데, 읽는동안 그 부분이 많이 아쉽고, 안타까웠었다. 나의 게으른 독서가 원인이었으니 누굴 탓하겠느냐만, 이젠 좀 독서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단어는 아무래도 ‘정치‘ 라는 단어가 가장 유력했었고, 그 뒤를 잇는 단어를 나열하면 권력, 투쟁, 노예, 여성, 남성화, 형상이 훼손 된 남성, 명예, 정복, 분투, 비르투, 포르투나, 질료, 명령, 주정주의, 폭행이란 단어들이었다.
그 중 ‘폭행‘ 이란 단어를 접하니, 특히나 가정에서 가부장으로 군림하기 위한 폭행으로 자주 읽히어 계속 옆길로 새기 바빴다.
실은 우리 집의 아래층 집인지, 윗층 집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번씩 부부싸움을 엄청 크게 하는 집이 있다. 부부싸움은 어떤 부부라도 할 수 있다. 나 또한 밖에 나가서 남들과는 한 번도 싸워본 적은 없어도 내가 즐겨하는 싸움이 바로 남편과의 부부싸움이다. 그런데 부부싸움의 방법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이것을 듣고, 보는 사람의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 아!! 나쁘다! 라는 평을 듣게 되고, 너무 싫다! 왜저래?라는 평을 듣게 된다면 좀 문제가 있지 싶다. 왜냐하면 대부분 남성들의 폭력으로 끌고 갈 소지가 다분한 걱정이 늘 앞서기 때문이다.
암튼 우리 집의 아래층인지, 윗층인지 알 수 없는 부부싸움은 소음처리가 부실한 우리 아파트에선 너무나 적나라하게 들려 실로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아마도 우리 집이 평일엔 티비를 켜지 않고, 조용히 있다 보니 생활 소음이 너무나 정확하게 들리는 것이 문제인 점도 있긴 할 것이다.(그러니 부부싸움을 하거나, 소리를 지를 적엔 반드시 욕실 문과 거실 창문을 닫고 하시길!! 욕실을 통해, 거실 창문을 통해 다 들려요.특히 욕실!!!ㅜㅜ)
남편의 욕설 섞인 고함소리는 둘째 치고라도 문을 쾅쾅 거려 바닥이 울리는 진동을 느낄 때면 매번 폭력이 생길까봐 신고하려고 핸드폰을 붙잡게 된다. 헌데 어느 집인 줄 당최 알 수가 없고, 며칠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주고 받다 보면, 좀 헷갈려 남의 부부 문제에 관여한다는 것이 너무 주제넘어 보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곤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맞벌이 하는 윗층 부부의 유치원생 딸을 돌봐주러 할머니가 자주 오시는 듯 하던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또 그렇게 나를 뚫어져라 쳐다 보는 시선이 느껴져 뒷통수가 은근 뜨거웠다.
왜 그러실까?? 어느 날, 불현듯 스치고 지나는 생각!! 혹시 나를 의심하는 건가? 싶더라.
아!!!!
˝저 아니에요!!!˝ 라고 외치고 싶지만, 의심하고 계셔 그런 건지 그것조차 알 수가 없으니, 그냥 오해 아닌 오해를 줄곧 받고 있어 답답할 노릇이다.
(아...빨리 이사가고 싶다!!!)
암튼, 그렇다면 윗층은 아니고, 아랫층 남자가 그렇게 고함을 질러댄다는 말인가? 아니 왜??
한 번 시작되면 30분이 기본이고, 세 시간까지도 욕을 하고, 고성을 지르고, 쿵쾅거리기 일쑤인데, 도대체 어떤 울분이 쌓여서 그런 것이더란 말인가?
아내도 얌전하고, 아이들도 너무나 어리던데....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늘 그 시간이 되면 부부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또 블랙홀에 빠져 좀 우울해지곤 한다.
윗층인지, 아래층인지 알길은 없으나, 어떤 폭력이나 힘으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남성들이 밖에 나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그런 사회는 너무 싫어진다. 그들이 투표하는 당이 이끄는 사회에서 사는 것도 진저리가 처질 정도로 싫다.
부부관계의 속 깊은 사정이야 알 수가 없지만, 한 번씩 들려오는 폭력적인 언행들이 늘 우울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겐 오랜 인연을 이어 오고 있는 지인이 세 분 있다.
(부산 해운대에서 발에 땀 나게 같이 뛰었던 그 분들 맞다.)
정말 친자매처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는 언니들이지만 정치 얘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지고, 서로 눈치를 보곤 한다. 꼴찌로 뛰었던 그 언니와는 다행히 같은 당을 지지하고 있어 개인적인 만남에서도 정치 얘기를 한 번씩 할 수는 있어도, 나머지 두 분의 언니들은 아쉽게도 반대쪽 당을 지지하시어 정치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 답답할 노릇이어 혼자 애태워 하니 꼴찌 언니가 우리 갑분싸는 만들지 말자고 충고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불의를 보면 너무나도 잘 참는 성격인 나로선, 정치 얘기는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면 답답하고, 서운하여 밤새 끙끙 앓게 되는 형국이라 그냥 그 어떤 것도 듣고, 보고, 말 하지 않는다.
뽑을 사람이 없다는 말들을 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진 않지만, 입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너무 답답하면 꼴찌 언니를 찾아가 하소연 한다. 아니 왜 뽑을 사람이 없어? 왜 사람을 보고 뽑아? 정당을 보고 뽑아야지?? @;.;//?~%,_?/;:%; 그럼 그 언닌 흥분한 나를 누그려뜨려 준다. 나는 언니들을 만나 인격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많이 깨닫는다. 고마운 일이지만, 정치적인 면에선 지인들이나, 가족이나, 친정 아버지와는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본인의 가치관에 의해 결정하는 정치관이니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저 한 발 물러서 바라볼 수밖에.....
정치에 유치한 감정을 앞세우는 이런 것이 바로 주정주의가 아닐까 싶어 그래서 여성성의 한계인가? 생각하게 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국민이기에 앞서 나는 여성이자 엄마이기에 나는 자식들이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끔 복지를 마련해 줄 수 있고, 여성들이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으로 투표를 하려고 노력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통치하는 세상이 될까봐 실로 두렵다. 그것이 폭력이 당연시 되는 세상이라면 어찌되는 것인가? 생각하면 우울하다.
이런 저런 개인적인 생각들이 겹치니 사실은 이 책에 올곧게 집중해서 읽지 못했고, 많은 문장들을 놓쳤다.
인용해보려 다시 책을 펼쳐 보았건만, 솔직히 모든 문장들이 새롭게 읽힌다. 아.. 책을 읽었던 내가 맞았던가? 이중성의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 분명 달라진 내가 존재해야 하건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앉아 있다. 이것도 달라진‘나‘ 일 수도 있겠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죽을 때까지 배운다고 해도 아마 계속 깨닫지 못하는 부분들은 더 많을 것이라고 알게 된 것! 그럼에도 계속 읽어 보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황미요조 번역하신 옮긴이의 말 중, 제일 마지막 문장인 ‘곧 책을 만날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393쪽)
에 대한 독자들로서의 무수한 반응 중, 나 개인의 어줍잖은 반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