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완연한 가을 날씨다. 낮에는 기온이 높을 때도 있고해서 옷차림이 마땅치가 않다. 이번 주는 읽을 만한, 관심이 가는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책부터 유명작가의 소설까지 오늘은 포스팅 쓰는데만 시간이 꽤 걸릴 듯 싶다.
가장 먼저 관심이 갔던 책은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신작이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두권과 <소설과 소설가>라는 파묵의 하버드 대학교 강연록도 같이 출간되었다. 파묵의 작가론, 창작론 정도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번역은 역시 파묵 전문 번역가인 이난아씨가 맡았다.
독일작가 크리스타 볼프의 <나누어진 하늘>이 민음사 세계문학판으로 나왔다. 동서독 분단 상태에서 당시 청년층의 고뇌를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을유문화사판으로 새로 번역돼 나왔다. 사실 열린책들판이 거의 진리로 통용되고 있긴 한데, 이번 을유문화사판 번역투는 다소 딱딱한 감이 있긴하다.
<델러웨이 부인>이 오랜만에 새 번역으로 나왔다. 시공사판인데 시공사는 늘 표지가 참 예쁘게 나온다. 아, 그리고 <50가지 그림자 : 해방>이 나와서 <50가지 그림자>시리즈 6권이 모두 출간되었다. 영문판과 한국어판 모두 랩핑으로 꼭꼭싸매서 서점마다 판매중이던데, 이건 소설이지 야설이 아니다. 애들이 읽어서 악영향이 일어난다면 소설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문제 아닌가? 이 랩핑 난 반댈세.
한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에 관한 유명작가의 단편을 묶은 시리즈물 중 <돈>이 나왔다. 저번에는 <성적 욕망>을 주제로 했는데 살펴보니 시리즈가 몇 개 더 있다. 작품과 작가 모두 양질이다. 추천할 만 하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라는 나에겐 다소 생소한 일본 작가의 작품 <만·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가 문학동네 세계문학판으로 출간됐다. 뭐 소개로는 성욕에 얽힌 인간심리에 천착한 작품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은 헨리 시리즈를 중심으로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다. 근데, 학술서라고 해서 꼭 어려운것만은 아니다. 다만 작품을 안읽어봤다면 재미없을 책은 맞다.
사회에서 좀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에세이가 나와서 몇 권 덧붙여본다. 문태준 시인의 <느림보 마음> 한국 기독교에 톨레랑스가 없음을 비판한 한완상의 <바보 예수>. 염무웅의 <자유의 역설>이다. 왠만하면 에세이나 수필집은 너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손이 안가는 분야의 책인데 이번주는 기사로나 눈으로나 눈에 띄는 책들이다.
크리스티안 헬무트 벤첼의 <칸트 미학>이 그린비에서 출간되었다. 부제는 '판단력 비판의 주요한 개념과 문제들'이라고 했는데 그만큼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이해하기 수월하게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칸트의 비판시리즈는 골이 너무 아플뿐더러 전공자들도 녹록치 않은 분야일 것이다. 칸트의 저작이 도서출판 b에서 한 권 더 출간되었는데 <학부들의 논쟁>이다. 조그마한 크기에 활자가 그냥 아주 빽빽하게 차있다. <내면으로>는 라캉, 융, 밀턴에릭슨을 거쳐서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딱봐서 학술서인데 라캉의 남근에서의 욕망 부분을 읽어보다 꽂혀서 추천한다. 머릿속에만 맴돌던 개념이 좀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기계산책자>는 사실 우연히 거들떠보다 꽤 마음에 들게 된 책이다. 기계가 삶에 방식에 어떻게 침투하고 작용하는지 사람과 기계사이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어낸 아주 괜찮은 책이다. 내용도 페이지수도 알찬 책. <폭력 이미지 재난>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선택한 책이다. 이미지에 관해 모종의 글을 써야 하는데 이 조선대학교 이미지시리즈가 참 도움이 많이 된다. 이번 편은 폭력과 재난의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오강남의 <종교란 무엇인가>는 나처럼 종교가 안중에 없는 사람에게 약이 될 책이다. 한번 읽어봄직하다.
데리언 리더의 <광기>라는 책이 나왔다. 광기를 주제로 책이 나올 수 있나? 라고 생각하던 찰나, 푸코의 <광기의 역사>밖에 생각이 안나더라.. 나의 한계.. <지식인의 책임>은 철지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치에 관한 단상들을 풀어준다. 지금시기에 딱 좋은 책. <스프링 타임>은 공교육에 관한 유럽의 학생시위를 풀어 쓴 책인 것 같다. 2000년대 이후의 유럽 학생시위를 집중 조망한다.
<미국 기술의 사회사>는 미국의 역사적 시대별로 인간과 기술이 서로 어떻게 조응하며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인간사가 아닌 기술사로 설명한다. <가장 위험한 책>은 책 띠지에 '어떻게 600만명을 죽일 수 있었는가?'라는 다소 자극적인 카피를 삽입하고 있었는데, 고전인 <게르마니아>를 낱낱이 분석한 책이다.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라는 다소 어려운 제목의 책은 마오쩌둥 이후의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책이다.
<전쟁의 경제학>은 군산복합체를 계속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군산복합체를 해체하고 안보를 책임질 것인가라는 큰 틀을 주제로 전쟁이 어떤 실익을 가져다 주는지 알아본다. <쉽게 읽는 루만>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저자는 난해한 루만의 사상을 최대한 쉽게 전달하려고 한다. 학술서 전문 출판사 한울이지만 이번 표지는 꽤 섹시하게 뽑았구나. <해적당>은 독일의 실제 정당이름이다. 2006년 창당한 해적당은 액체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정치와 시민세력의 재정립을 요구한다. 만만치 않은 득표율로 녹색당에 이어 무시못할 제3세력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꿈같은 일.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는 요즘 유행하는 청춘팔이 책이다. 청춘이 고민하는 7가지 분야를 각 전문가의 말을 빌어 풀어낸다. 그래도 청춘팔이치고는 수준급이다. <30대 정치학>은 이털남으로 잘 알려진 김종배씨의 정치평론집정도 되겠다. 이번 대선에서 30대가 판을 뒤흔들 것이라는 그의생각이 궁금하다면 읽으시라. <대선 독해 매뉴얼>은 정치인도 언론인도 아닌 김미화씨와 박래군씨가 쓴 책이다. 오히려 전문가가 아니기에 더 담백하고 솔직한 정치이야기다.
<박정의 대미 로비 X파일>은 <시크릿 오브 코리아>를 쓴 안치용씨의 신간이다. 박정희 시대 대미로비에 관한 문건들을 바탕으로 철저히 사료에 입각해 쓴 책이다.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두개 달린 남자 네개 달린 여자>는 참으로 적나라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목차를 보면 거의 괴기소설이나 다름이 없는데 이게 의학사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하니 놀라울 따름.
아도르노의 강의록이 한 권 더 출간됐다. <부정변증법 강의>에 이어 <신음악의 철학>이 나왔다. 어려울 것 같다. <뮤지컬 레시피>는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차이점과 공통점을 짚어본다. <바흐의 아들들>은 그냥 바흐가 아들이 넷이나 있었는지 몰라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