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4일. 지구라는 행성에 일대 혁신적인 발견이 있었던 날. 유럽입자물리학연구(CERN)

의 발표에 전세계가 떠들썩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일개 지구시민들은 그 발표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넋두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에 왜 이다지도 집착(?)을 하는것일까?

 

아마도 그 답은 힉스입자가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데 있어 그 시작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의 초판은 1993년에 쓰였다. 당시 미국에 건설중이었던 SSC라는 '초전도초충돌기' 라는 시설이 동,서진영간 데탕트를 계기로 공사가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여하튼 시간은 흘러흘러 초판이 발행된지 20년만에 이론물리하자들의 원대한 가설이 현실이 된 것이다.

 

저자 리언 레더먼 교수

 

 

처음에 서점에서 책을 봤을 땐, 만만치 않은 분량과 가격 그리고 중간중간 나오는 해괴한 수식들을 봤을 때, '아, 내가 아직 집어들 책은 아닌가' 하고 반문하게 될 정도로 무언의 압박과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했다. 그래서 궤도를 수정해 휴머니스트에서 동시에 나왔던 <젭토스페이스>라는 책을 먼저 훑어 본 뒤 리언 레더먼이 안내하는 <신의 입자>의 세계로 발을 내딘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젭토스페이스>라는 책은 앞서 소개한 CERN과 LHC의 시작과 힉스입자(힉스보손)의 발견까지를 다룬 이탈리아 물리학자의 책이다. 과학에 있어 지역의 경계는 무의미해졌지만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들의 시선을 각기 대비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기도 하다. 물론 두 권을 다 읽기란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될 것이지만 말이다.

 

CERN의 LHC(강입자충돌기)

 

 

레더먼 교수는 자신이 숭상하는 고대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데모크리토스와의 가상 대화로 한 장을 꾸미기도 하는데, 이게 또 이 책의 묘미이자 백미다. 초반부에 난해한 물리 이론 여행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입말 형태로 어려운 이론물리학의 기원을 설명해줬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싶다.

 

필자도 딱 중학교 때까지만 열심히, 재미있게 수학,과학을 했었고 고등학교 수학과 과학 관련 교과목은 약간 방치하다시피 해왔다. 그도 그럴것이 고등학교때 문과였고 문과는 고2,3학년을 통틀어 과학 과목을 한 과목만 이수하면 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생물1을 했었다. (그마저도 화학1이 하고 싶었으나 학교측에서 과목을 개설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찌보면 <신의 입자>가 고등학교, 대학교때 알지 못했던 생소한 물리학 지식들을 단기간에 빨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책을 보니 물리학 지식이 없다고 책을 펼치는데 겁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 각 상수들이나 수식들은 각주로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 있고, 내용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저자의 MSG가 군데군데 뿌려져 있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이 힉스보손 발견 뒤에 번역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레더먼 교수의 열정으로 쓴 이 책이 공염불에 지나고 말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률가, 의사, 엔지니어와 마찬가지로 과학자도 일종의 전문직이고 기술자들이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알고 끝났을 이 거대한 인류의 지식들을 쓰고 번역하고 세상에 나오게 하는데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할 때가 아닌가 싶다. 끝으로 레더먼이 <신의 입자>와의 여정을 마친 독자들에게 건네는 한 마디를 소개하며 마무리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학에 무지한 일반대중'에서 제외된다. 내 책을 구입해준 고객이어서가 아니라,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을 9장까지 참고 읽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들은 나의 친구이자 동료이며, 칙령에 따라 완전하게 검증된 '과학 교양인'이 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빵 2017-03-13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하세요... 이런글... 장바구니에 넣을꺼에요... ps 내가 아인슈타인 흉내냈더니 링의 언니삘이 되버려서... --;

VANITAS 2017-03-13 21:11   좋아요 1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소간의 인내가 독서의 지평을 확 넓혀줍니다. 이 책도 그런 축에 끼는 책입니다.
 

 

 

 

 

 

 

 

 

 

 

 

 

 

 

 

 

 

-수용소로 가는 길

레오는 첫 장 서두에서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간다.’ 는 말을 통해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을 다 짊어지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 하는 것 같다. 이후 레오는 수용소행 열차를 기쁨 반 두려움 반으로 오르게 되는데 여기서 오는 기쁨은 자신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독립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이후에 레오는 랑데부를 떠올리게 되는데 독일어로 ‘랑데부’라는 표현은 남녀가 데이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랑데부는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레오가 랑데부를 가졌던 남자들을 익명으로 표기하는데 이것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폐쇄적인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후에 레오의 할머니는 ‘너는 돌아올 거야’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앞으로 전개될 사건들의 결말을 암시하기도 하는데, 레오가 수용소 생활을 견디게 한 주요한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수용소로 가는 열차는 몇날몇일이고 멈추지 않고 갔다. 그 안에서는 많은 얘기가 오고갔는데 이른바 ‘눈의 배신’ 이라는 이야기로써 눈 때문에 숨어있던 토굴에서 발각되어 수용소에 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눈을 러시아의 종노릇을 했다고 빗대어 표현하는 것에서 이 ‘눈’이 단순한 자연물을 떠나서 혹독함과 추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했다. 열차를 타고 가다 잠시 내려 집단으로 용변을 해결하는 모습에서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잔혹성과 인권이라는 가치의 유린, 이미 수용자들을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러시아인의 무자비함을 읽을 수 있다.

 

-수용소와의 만남

이제 수용소에 도착한 레오는 본격적인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는데 먹을 것이 없어 수용자들은 명아주를 먹는다. ‘명아주를 먹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배고픈 천사다.’ (p.28)에서는 의지와는 다르게 욕망이 몸을 지배하는 수용소 생활을 그리고 있다. 명아주를 먹는 것은 자신도 자신의 입도 손도 아닌 배고픔이라는 기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본적 욕구도 채우지 못하는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시흐트반요노브에게 언제 돌아갈 수 있냐고 묻는다. 하지만 ‘곧’ 이라는 말만 되풀이 해 듣고 마는데, 이 ‘곧’이라는 말은 수용자들에게 희망고문을 주어 인간의 기대심리를 부추기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곧’이라는 시간은 5년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수용자들은 번호로 인식이 되는데 여기서는 개인이 아닌 집단 ‘나’가 아닌 ‘번호’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도 또는 드러내서도 안 되는 팍팍하고 폭압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본다.

 

-숨그네

'숨그네가 공중을 한바퀴 돌고, 나는 헉헉거린다.‘(p.37)에서 책의 제목인 숨그네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데, 고된 노동으로 인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들숨과 날숨이 입안에서 맴도는 상태를 이런 멋진 합성어로 표현 한 것 같다. 이외에도 작품에는 조금은 생소한 합성어들이 등장하게 된다.

 

-시멘트

이렇게 숨그네가 생길정도로 힘든 강제노동에서의 필수 재료인 시멘트에 대한 작가의 시선도 날카로운데, 시멘트는 회색빛의 무미건조한 수용소 생활과 굳어버린 시멘트 같은 딱딱한 수용소의 삶을 나타낸다고 본다. 흩어지는 시멘트 가루같이 수용자들의 정신상태도 산란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문화 공동체와 호텔

이 다문화 공동체는 다양한 지역에서 수용소로 온 사람들의 단순한 집합을 의미한다. 거의 독일인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지역에서 왔다는 의미로 불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문화 공동체와는 사용범주가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호텔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p.52)라는 부분은 수용소 생활과는 상반되는 단어를 나열함으로써 자기위안을 삼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차를 타는 것

차를 탄다는 것은 곧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말의 이런 작은 기대감이 수용소 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차를 타고 외부에서 일을 하고 오면 수용소에 들어오는 시각이 늦어지게 된다. 늦어지면 식사를 늦게 하게 되면 멀건 국물 밑의 건더기를 먹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지만 너무 늦어지면 그마저도 없어져 배고픈 천사를 끌어안고 잠들어야만 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절박함을 드러냈다고 본다. 그 시각 얼마차이로 국물과 건더기를 먹는게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방울 넘치는 행복

수용자인 이르마파이퍼가 회반죽에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르마파이퍼의 옷가지들에 더 관심이 많다. 궁지에 몰리면 발휘되는 인간의 단순한 생존본능이지만 사람을 위한다기보다 물질적 가치를 쫓는다는 것을 볼 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고발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죽은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전리품만 보인다.(p.168)는 구절에서도 수용자들의 철저한 이기주의와 생존본능을 현실사회도 사람은 뒷전이고 돈이 우선인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장은 현실과 참 닮아있다.

 

-손수건과 쥐

방문판매를 나간 레오는 한 여인의 집에 들어가서 수프를 얻어먹게 되고 콧물을 흘리는 레오를 측은하게 느낀 여인은 레오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여기서 이 손수건은 정(情)의 매개체이고 여인의 아들에 대한 감정의 이입이며 레오에게 손수건은 수용소 생활에서 자신을 살펴준 단 하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방문판매를 끝내고 수용소에 돌아왔을 때 레오의 침상 밑에 취가 새끼를 낳았는데 불쌍하지만 쥐들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간이화장실에 쥐들을 손수건으로 싸고 가서 털어버린다. 하지만 쥐들에겐 연민을 느낀 반면 전에 레오가 죽인 고양이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자신의 손을 물어뜯는 고양이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목을 조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여기선 쥐의 탄생과 고양의 죽음을 대비시켜 생과 사의 의미를 대비시켰다고 생각한다.

 

-심장삽과 배고픈 천사

여기에선 땅을 파는 삽을 심장삽 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반 공사현장에서 쓰는 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삽질1회=빵1그램‘(p.96) 이라는 나름의 공식을 통해 삽질의 고됨을 순화시키고 삽질에 집중하는 동안은 배고픈 천사와 멀어질 수 있다. 이 공식은 레오가 고향으로 돌아간뒤에 상자공장에 취직해서도 ’못1개=빵1그램’(p.317)라고 표현된다. 배고픈 천사는 작품 전체에서 수용자들을 좌지우지하는 주요한 표현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배고프기 때문에 일해서 빵을 얻어야하는 처참한 생활을 미화시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고픈 악마보다는 배고픈 천사로 받아들이는 편이 수용소 생활의 고됨을 줄이는데 더 낫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배고픔이라는 소재는 작품 내에서 주된 소재로 사용되는데 ’배고픔과 함께 물건을 칼로리로 바꾸러간다.(p.156)의 표현에서도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물건이 아니고 칼로리로만 생각되는 즉, 식욕과 배고픔이라는 본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후에 레오는 수용소에서 나와 밥을 먹을 때 ‘모든 구멍을 열어젖히고 먹는다’(p.276)고 표현하는데서 배고팠을 시절의 심정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수용소 말년에 수용자들은 임금을 지급받게 되고 배고픔이라는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고도 돈이 남자 잘 보이기 위해 서로 겉치장에 급급한다.(p.280) 이것은 인간의 허영심과 끝없는 욕심이 낳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게 사람의 욕심이니 말이다.

 

-수용소의 일상

‘고양이 결혼식’ 이라고 불리는 남녀 간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아무리 수용소라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다 일어나고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체펠린이라고 불리는 큰 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행위는 감시가 심한 수용소에서도 ‘일상’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작품에서는 ‘뻐꾸기시계’가 등장하는데 이 시계는 시간도 맞지 않고 울음소리도 괴상하다. 이는 수용소에서는 이런 시계가 불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노동을 하는 수용자들에게 작업을 끝내는 나팔소리 외엔 막사 안에서 보는 이러한 보통의 시계는 ‘환지통’(p.112)처럼 잊고 있었던 수용소에 오기 전 일상들을 다시금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경비원 카티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는 카티를 경비원으로 세운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날 때부터 천치였고 오년 내내 여기가 어딘지 몰랐다.'(p.116) 는 부분이 나온다. 이는 비정상적인 한 인간을 통해 러시아인의 잔인성을 더욱 부각시키게 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카티는 후에 머리카락이 잘리고 그것을 붙여보려 수프에 찍어 민머리에 갖다 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수용소 내에서 새로이 재생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부분인 것 같다. 카티는 방문판매도 하지 않고 수용소 안의 식물과 파수견의 언 똥을 먹으며 살아남는데, 이것은 이성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본성만이 존재하는 수용소내의 생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짧은 장이지만 카티의 등장은 작품 내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빵(Brot)

작품에서 ‘빵’이라는 소재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열량으로 인식된다. 우선 <빵 도난 사건>(p,120~128)에서는 빵을 나눠주는 펜야라는 여자와 동료의 빵을 훔쳐먹은 카를리 할멘이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 펜야는 400일이 넘는 시간동안 한결 같이 수용자들을 처음 보는듯한 눈으로 바라본다.(p.123) 이것은 인간적인 감정의 부재와 매마른 인간상을 드러낸다고 본다. 이후 카를리 할멘이 동료들의 빵을 먹고 발각되어 무참히 짓밟히는 데 여기선 ‘빵의 법정에서는 일반도덕이 들어설 수 없다.’(p.127)는 말을 통해 수용소 밖에서 통하던 일반도덕관념을 넘어서 오로지 생존을 위한 각자의 몸부림만 있는 참담한 현실을 빗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볼빵>(p.134~137)의 개념이 나오는데 볼빵은 죽어가는 사람의 볼이 푹 꺼지는 것에 빗대어 곧 죽을 사람이 지닌 빵을 의미한다. 이 빵들은 저녁 시간이 되면 서로 바꾸기 시작하는데 ‘착시를 또 다른 착시’(p.136)와 바꾸는 행위를 통해 인간본성의 간사함과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 본연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빵을 바꿔 봐야 몇 그램이나 더 늘어나겠으며 몇 입이나 더 먹을 수 있겠는가? 이는 모두 덧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조베

하조베는 Hase(토끼)+Weh(아픔)+Heimweh(향수)를 합쳐 작가가 만든 가상의 단어다. 여기서 생각해본 것은 토끼는 죽어가는 사람을 뜻하고 아픔은 배고픔과 노동의 고됨을 뜻하며 향수는 고향의 그리움을 뜻한다고 가정할 때, 하조베라는 단어는 이 모든 것을 응집시키는 비극과 한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발음이 비슷하고 의미가 다른 말들이 나오는데 독일어의 Kuschen(복종)과 러시아어의 Kuschet(음식)의 아주 상반되는 단어를 통해 수용소에서의 복종은 곧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의미를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와 독일

작품에선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표현은 없지만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표현들이 종종 보인다. ‘지도자한테 전보를 치지 그러냐. 그전에 수염부터 깎으시라고’(p.106)에서는 독일 본국의 지도자 때문에 핍박받는 독일계 가정에서의 자조 섞인 목소리들이 표현되고 있고, <검은 개들>(p.243~244)에서는 망루위의 보초병을 ‘검은 개’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내에서의 개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사람을 뜯어먹는 들개나 수용자들을 감시하는 개로써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검은 개들이라는 표현은 자신을 가둔 소련에 대한 반감을 비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검정이라는 색을 통해 초반부에 등장했던 ‘흰색 아마포 손수건’ 과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고도 본다.

 

-슬래그 벽돌

슬래그 벽돌은 다루기가 참 어려운 물건이다. 힘 조절을 하지 않으면 부서져 버리고 옮길 때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슬래그 벽돌을 ‘애벌레 무더기를 네모나게 찍은 것이고, 거기서 나방이 나온 것 같다’(p.175)고 표현하는데, 이런 차가운 슬래그 벽돌에도 생명력을 부여하여 수용소 생활을 보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한다. 이 ‘벽돌’에 대한 시선은 전에 나왔던 ‘시멘트’보다 긍정적인데 ‘벽돌가루는 시멘트 가루처럼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 않고, 석탄 가루처럼 눌어붙지 않는다.’(p.69)는 구절에서도 시멘트나 석탄가루보다 벽돌가루가 그나마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중적 속성

작품에선 하나의 대상을 가지고 의미를 다르게 인식하여 오해가 생기는 일이 있는데 <믿음이 담긴 병과 의심이 담긴 병>(p.177~184)에서 레오가 세면도구 가방에 숨겨놓은 양배추 수프 병을 시흐트반요노브가 발견하고 이에 대해 추궁한다. 하지만 그 병에 담긴 것은 레오 자신이 먹을 것이며 생존과 관계된 물건이다. 허나 시프트반요노브의 눈에는 그것은 소비에트 인민을 고발하는 도구로써 사용될 것이며 그런 레오에게 벌을 내려야만 한다. 여기서 귀향과 수용소라는 단어가 대비되어 나오는데 ‘희망이 좌절될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p.183)아예 집으로 가고 싶은 ‘귀향’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기로 한다. 덧붙여, 레오가 귀향한 뒤 마을사람인 카르프씨와 대화(p.302)에서도 할아버지에게 했던 말과 레오에게 했던 말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볼때 상반된 단어들과 하나의 사물에 대한 다른 시각은 인간의 서로 다른 생각과 이중적인 잣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 ‘바깥세상의 소식을 오래도록 듣지못하면 기억이 그리움이 된다.’(p.290)에서도 기억과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대비시켜 그리움이라는 생각을 기억에 묻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냄새 또는 향기

<슬래그에 대하여>(p.194~200),<화학성분에 대하여>(p.205~211)에서 냄새나 향기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슬래그의 냄새는 무엇보다 작업 시간이 곧 끝남을 의미했다.’(p.197)에서 냄새는 곧 시간이요 수프요 휴식이다. 그 슬래그 냄새 하나로 레오 자신이 일이 끝나고 하게 될 다른 용무들을 연쇄적으로 떠올리는 감각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다행스러운 건 배고픔의 단어와 먹는 단어처럼 화학성분으로 이루어진 도망침의 단어도 있다.’(p.206)는 부분에선 유해한 화학성분 냄새에 맡서는 다른 향기들을 떠올리면서 독한 화학냄새에 기분 좋게 중독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일들이 생각되고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스카프와 감자

레오가 가진 붉은 포도주색 스카프를 투어 프리쿨리치가 맘대로 가져가는 일이 생긴다. 이에 투어는 스카프 값으로 감자를 원하는 대로 주기 위해 하루만 작업장을 바꿔준다. 하지만 레오는 그 사실도 모르고 자신이 오늘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죽음의 그림자는 감자를 가지고 돌아가는 기쁨으로 바뀌지만 기쁨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수용소 생활의 매마름을 보여준다. 여기서 볼 때, 투어는 그래도 어느정도 양심은 있는 인물이며 스카프를그냥 가져간것에 대한 미안함을 레오가 가져간 273개의 감자로 갚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양철키스와 권태

 

권태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오는 지루함이나 같은 사람이나 사물에서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작품내에서 권태라는 단어가 후반부에 주로 쓰이는데, ‘눈의 권태’(p.230),'권태로운 봄‘(p.228), '권태는 불안을 견디는 것이다’(p.232)로 찾아볼 수 있다. 레오가 돌아가고픈 권태는 추측해보기에 그냥 평범한 일상인 것 같다. 권태로운 봄을 꿈꾸지만 현실은 고된 노동뿐인 수용소에서는 평범한 일상 자체가 권태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권태와 사람에게서 느끼는 권태와는 또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양철키스>(p.252~255)에서 파울 가스트와 하이드룬 가스트 부부가 서로 외도를 한 것을 빗대어 ‘오래된 부부는 공복을 느끼게 하며 외도는 허기를 달래준다.’(p.253)고 표현했다. 여기서 공복과 허기는 권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권태가 결국 수프안에서 숟가락만 부딪히는 의미없는 양철키스(p.246,p.254)를 의미한다고도 생각한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5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마친 레오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죽은 줄만 알았던 레오가 돌아왔지만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대리형제인 로베르트와 부모님과 할머니가 계신다. 하지만대리형제인 로베르트에게만은 놀랍도록 무덤덤하고 차갑게 대한다. 이것은 자신이 느끼는 직접적인 정감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후에 상자공장에 취직하고 콘크리트기사 양성과정에 등록하며 기술학교에 다니다 그곳 회계사 과정의 에마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11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레오는 다시 혼자가 되는데, 합의 이혼이 아닌 일방적 통보로 결혼생활을 끝낸다. 여기서 레오는 뭔가 세상과의 소통이 부재된 인물로 비쳐진다. 이러한 습성은 수용소에서 자신만 살기위해 보낸 나날들이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남의 배려는 하지 않는 살아남기 위한 이기심 말이다.

 

-보물

마지막 장 <보물에 대하여>(p.327~331)에서는 가장 무거운 보물은 ‘노동강박’이라고 하는 것으로 비춰 볼 때 여기서 표현하는 보물이란 단어는 수용소 생활에서의 추억으로 해석된다. 추억일지 기억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내가 견디지도 놓아주지도 못하는 나의 보물들처럼 나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p.329)는 표현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유추 할 수 있었다.

 

이 <숨그네>는 전형적인 수용소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과 함께 타데우쉬 보로프스키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라는 작품을 같이 읽어보았다. 폴란드 작가가 쓴 유대인 수용소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쓴 것인데, <숨그네>에서의 수용자들이 힘든 수용소 생활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했던 반변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에서는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죽음 맞이하는 유대인을 볼 수 있다.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숨그네>도 자잘한 단편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소설이기 때문에 사람이 중심이 아닌 사건과 사물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숨그네>는 완전한 허구가 아닌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한 Faction이기 때문에 Fiction 보다는 사실적이라는 관점에서 작가의 의도를 추려내기가 까다로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1-23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3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도 쿨터만의 <미술사의 역사>는 얼마 전 알게 된 진귀한 책이다. 2005년에 번역돼서 이미 절판이 됐고, 재출간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문예출판사에서 절판된 책중에 구하고 싶은 두 가지 책 중 하나인데 하나는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이고 하나가 이 <미술사의 역사>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마치 구조가 잘 짜여진 소설을 만난 듯 술술 읽힌다. 인물하나 사건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는다면 읽다 자주 막히는 부분이 생길 수 있지만 이것들을 살짝 무시(?)해가면서 읽는다면 비교적 막힘없이 읽힌다. 쪽수도 미주를 제외하면 600쪽에 딱 떨어지는 쪽수라 하루에 100쪽 씩 일주일 안에 독파가 가능하다. 같이 읽을만한 책으로는 최근에 나온 <미술사 방법론>이라는 책이 있다. 내용과 무게감에 비해 가격도 비싸지 않고 내용도 무척 충실한 책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지를 쳐나가다 알게 된 책이 우도 쿨터만의 책이다. 아.. 근데 읽을 수록 책이 참 괜찮은 것 같아서 구하고 싶은데 알라딘 매물은 너무 비싸고 해서 헌책방을 전전해봐야 할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새 닝겐닝겐거리는게 애들 사이에 유행어가 됐다. 일어로 닝겐싯카쿠. 한국어로는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희대의 명작 <인간실격>을 이제야 맛 봤다. 아, 이건 뭔가 딱 지금 내가 읽었어야 할 시의적절한 소설이라고나 할까. 단편이라 부담가지 않는 분량이면서 실소를 머금게 하면서.. 뭔가 남에게 들키기 싫은 치부를 대신 써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소설이라고나 할까. 나는 왜 요조가 약국 아줌마한테 "키스해 드릴까요?" 하는 부분이 그렇게도 웃겼던지... 내가 읽은 번역본은 시공사판 양윤옥 번역본이다. 민음사판이랑 비교해 봤는데 나는 시공사께 더 믿음이 갔다. 일문학 전문 번역자의 번역이기도 하고. 학자와 전문 번역자의 갭은 늘 있기 마련이니까. 여튼, 이걸 아직 못 읽은 청춘들은 얼렁 읽어보셔들..

 

 

 

 

 

 

 

 

 

 

 

 

 

 

 

도서출판b에서 간행한 '다자이 오사무 전집'판으로는 아직 발간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 전집 서체좀 어떻게 해주시길..) 대부분의 판본이 '인간실격' 외에도 한 두편의 단편이 더 포함 돼 있고, 내가 읽은 시공사판의 경우 대 여섯개가 더 추가 된 듯. 그 중에서도 '개 이야기' 엄청 웃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