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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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는 핵전쟁 이후의 비참한 지구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계들에 의해 핵전쟁이 발발하고 지구는 황폐화 해진다는 가정이 이번 <스타터스>에서는 또 다른 데자뷰로 다가온다. 세균 폭탄으로 인해 유소년층과 노인층을 제외한 청장년층이 어느날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지구상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튜닝을 통해서 생명의 길이를 연장한 노인네들 즉 엔더들과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유소년층 즉 스타터들로 양분된 구성원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엔더들은 거리로 내몰린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인 스타터들의 몸을 렌탈하여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히게 되고 이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용할려는 올드맨 그리고 그의 음모를 파헤치는 캘리... 여기에다 신데렐라를 연상케 하는 로맨스와 숨가쁘게 전개되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내러티브의 속도감은 <스타터스>라는 작품의 성격을 독자들로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게 한다. 그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활자라는 정적인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움직임 자체로 다가오기 때문에 순식간에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과 잔상들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을 흥분시킨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관련 기술은 인간이 그 동안 간절히 바랬지만 도달할 수 없었던 영역(흔히들 신의 영역이라고 하지만)에 조적을 남기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아마도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이며 했던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 말 처럼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도약을 가져다 주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비록 그 후유증은 설레였던 마음만큼 많은 반대급부를 가져다 주었지만 이유 불문하고 인간인 이상 누구나 오래살고 싶다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작가는 <스타터스>을 통해 바로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했다 아니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서 오래토록 젊음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에 해답을 던져주는 플롯으로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이에 대한 폐단에 대해서도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게 블랙로맨스나 디스토피아를 믹싱한 일회적 가십거리를 떠나서 인간의 깊숙한 곳에 내제되어 있는 욕망과 그 분출 그리고 이에 대한 인간성 상실과 회복등에 담론을 담고 있기도 해서 책을 덮고 난 뒤의 잔상들이 오래토록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큰 스트럭츠에서 보게 되면 디스토피아계열의 픽션으로 보여지지만 출판사의 기획의도에 맞게 블랙 로맨스다운 플롯도 가지고 있어 흥미를 증폭시키고 있기도 하다. 특히 후반부에 전개되는 반전은 소름을 돋게 만들면서 독자들을 책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유감없는 포스를 발휘하고 있다. 물론 흥미위주만으로 접근하더라도 후회 없는 작품으로 보이지만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인류 미래의 암울한 상태가 블랙 로맨스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내러티브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왠지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가 나올것 같다는 기대감도 들게 하는 굉장히 뷰주얼한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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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없는 자본주의 - 파괴와 혁신의 역사
조이스 애플비 지음, 주경철.안민석 옮김 / 까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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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후 지구촌은 민주주의 vs 공산주의(사회주의)라는 냉전의 시대로 돌입했다. 그리고 흔히들 우리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라는 등식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 기저에는 개인의 자유와 의사를 존중하는 시스템이라는 우월성과 더불어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우월감이 내제되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는 세계가 양대 진영으로 양분되어 세월이 흐르면서 수치로 들어나는 객관적인 만족감등에서 민주자본진영의 우세가 점쳐졌고 구소련체계의 붕괴로 말미암아 한판상을 거두면서 세계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대세를 거스릴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졌다. 더구나 사회주의의 대부였던 소련의 해체과정은 그야말로 상실감과 더불어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었고 여기에 거대 국가인 중국의 자본개방화 물결은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사태로 야기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유로존의 위기와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의 비판과 더불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일깨우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조이스 애플비의 <가차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역사를 뒤돌아 보면서 자본주의 현 주소를 확인하게 하는 의미있는 저서로 다가온다.

 

흔히들 우리는 자본주의의 탄생을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하여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인 산업혁명에서 그 시초를 찾는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과학기술 혁신과 더불어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주창한 새로운 경제사조의 탄생이 자본주의의 모태임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가 산업혁명에 의해서 어느날 갑자기 태어난 시스템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이러한 산업혁명이 자본주의를 체계화 시켜나 갈 수 있는 정형화된 프레임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본적인 모태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항해 시대와 신대륙의 식민지화가 본격적으로 대두 되면서 기초적인 자본주의의 개념들이 하나 둘 태어났고 이러한 기초적인 개념들의 시행착오(기존 문화관습적인 체제와 뒤섞이면서 충돌)를 거치면서 자본주의라는 대명제가 서서히 성립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라는 단어의 메타포에는 혁신, 혁명, 발전, 발명, 자유라는 하이스프리트라는 개념이 내제되어 있어 자본주의를 일대 변혁을 가져오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산업군(단순 경제체제시스템)에 그 촛점을 마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 진정한 시발점을 농업혁명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돋보이는 담론이다. 농경은 산업혁명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대한 생활형태였지만 16세기 이전까지 농업은 자급자족의 상태를 극히 벋어나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인구의 대다수(거의 80%이상)가 농업활동에 매진했지만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기초적인 식량확보 마저도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고 여기에 통제불가능 요소인 기후의 변화는 그야말로 대재앙을 불러 왔다. 하지만 농업의 혁명(발달 혹은 개량)이 이루어 지면서 농경생활에 종사하는 인구가 감소하게 되고 이러한 잉여 노동이 다른 산업군으로 유입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탄생시키는 발판이 되었다고 보는 저자는 견해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대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노예문제를 비롯한 시장과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자본주의 역사가 세계사와 결코 무관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어느날 갑자기 급조되고 날조된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내제되어 있는 하나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면을 저자는 인간 본성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자본주의를 경제체제적인 프리즘의 잣대만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일종의 문화체제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제대로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논거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 명나라 시대는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패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화의 원정대가 제 역활을 수행하지 못했던 것과 이와 반대로 유럽의 몇몇 국가들의 착실한 해양 진출은 경제체제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체제의 차이에서 발생했다는 논거에 절로 수긍이 간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역사는 세계사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곳곳에 내제되어 있는 요소들 총체의 합으로 탄생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역사는 정말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가차없이 질주해 왔다. 비록 몇번의 위기가 도래했지만 또 다른 변형을 거치면서 지금의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현재(예전에도 그랬지만) 이 시스템에 대한 많은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 역시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혁명은 가차없고 매몰차기만 한 혁명만은 아니다는 점 더구나 아무 생각없는 무해한 혁명은 아니라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조들은 자본주의라는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대안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스템 내부의 문제 제거 보다는 전사회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결국 인간과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난긴 세월을 동거한 동반자로 어느 한쪽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라고 보면 양쪽이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의 개념과 탄생 그리고 자본주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동안 수 많은 자본주의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었지만 산업혁명을 시발점으로 자본주의의 태동에 주안점을 두었고 일반 독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번 책은 자본주의 탄생의 근원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단순하게 경제체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문화전반적인 체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저자의 사유가 많은 공감을 불러오리라 보여진다. 자본주의 역사를 16세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와 더불어 고찰하는 연대기적 방식이 자본이나 자본주의라는 딱딱한 개념을 한결 순화시켜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한층 높였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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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주실록 - 화려한 이름 아래 가려진 공주들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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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자의 전작이었던 <조선왕비실록>는 그동안 조선시대 역사를 접하는 일반 독자 대중들에게 군주 즉 왕이 아닌 또 다른 시각에서 조선시대를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역사의 서술은 왕주국가인 경우 대게 아니 필연적으로 왕을 중심으로 서술될 수 밖에 없고 최고 권력자인 왕과 그 주변 지배층을 위주로 기술되어 왔고, 현대의 독자들 역시 이러한 역사서술에 친숙해 질 수 밖에 없는 구조 였다. 그러다 보니 남성중심의 사관으로 역사를 통찰하게 됨으로써 역사의 한 축이었던 여성에 대한 인지부족이라는 또 다른 병폐를 낳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동안 우리는 반쪽짜리 역사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각에서 <조선왕비실록>은 궁중궁궐속에서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왕비들의 삶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또 다른 역사보기에 흥미를 배가 시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번 <조선공주실록>은 이런 연장선에서 왕, 왕비가 아닌 그들의 딸들이었던 공주와 옹주들의 삶을 통해서 조선시대를 한번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태종의 딸이었던 정선공주에서 조선의 마지막 옹주였던 덕혜옹주에 이르기까지 7명의 공주/옹주들의 삶을 당시대와 연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시대적으로도 조선의 개국초기인 태종대와 세종조를 거치면서 기틀을 잡았지만 수양대군의 쿠테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을 거슬린 시기인 문종대 부터 세조조, 조선 최대환란기인 선조와 광해군, 인조, 효종조,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영,정조시대 그리고 종말 맞이한 고종,순종대등 조선사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시대와 맞물려 그 시대의 대표적인 공주와 옹주들의 삶이 당시대 역사과 어떻게 관련되고 그리고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어 공주 개개인들의 개인사에 집중된 것 같지만 실상 역사전반을 아우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왕실 의례와 궁중생활 전문가 답게 저자는 공주와 옹주들의 출산에서 부터 혼인에 이르기까지의 궁중의례 전문지식을 일반독자층에게 알게 쉽게 설명하고 있어 새로운 지식의 확장의 장으로도 다가온다. 또한 그동안 남성중심의 역사에서 다루어 지지 않았던 각종 비사와 어리니,계향,애순등 공주들 유모나 궁녀들의 실명과 그들의 막후 역활등 소소한듯 부분들이 역사에서 잊혀졌던 개인들(소외 되었던 여성들)의 무대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한층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또한 왕비나 세자빈의 간택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에게 사위인 부마의 간택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조의 딸인 효명옹주를 다루는 장에서 인조반정의 명분을 마치 광해군이 후궁격인 김개시의 치맛폭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서술이 눈에 거슬린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연산군의 치세와 더불어 도매값으로 인지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서술이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공주 개개인들의 삶을 당시를 전후한 시대적인 고찰을 통해서 역사전반과 같이 고찰할 수 있어 독자들에게 역사적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다는 점에선 높이 평가된다. 그동안 왕실의례나 궁중생활에 문외했던 독자들에게 조선왕실과 관련된 또 다른 목마름을 풀어 주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쉬우면서 세세한 설명들이 독자들 뇌리에 각인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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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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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TV드라마 <대장금> 이나 <동이>를 통해서 궁궐에 사는 여성들의 모습이 다소 진취적이면서 화려하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게 됨과 동시에 그네들이 마치 역사의 주인공처럼 다루지는 것을 본다. 또한 무수리에서 왕의 생모로 탈바꿈한 숙빈최씨, 일개 궁녀의 신분에서 왕후의 자리까지 올라간 희빈장씨, 왕과 거의 다름없는 수렴청정을 했던 세조비 정희왕후윤씨와 정조비 문정왕후윤씨등 그야말로 여인천하같은 인상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들의 역활은 드라마상의 스포라이트만큼 결코 화려하지도 주목받지도 못했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조선시대 역사를 다루어왔지만 거의 통사나 사건중심의 역사통찰이 주를 이루었고 더욱이 남성중심의 역사 고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이나 이수광의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을 통해서 조선 왕비들의 삶을 대략적으로나마 고찰했던 역사서가 나와서 일반독자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역시 왕비라는 상징성에 국한되어 있어 구중궁궐속에 평생을 살아야했던 수 많은 여인들의 삶을 재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역시 사실이다.

 

이번 김종성의 <왕의 여자>는 조선시대 궁궐에서 거의 모든 삶을 살았던 왕의 여인들인 왕비, 후궁, 그리고 궁녀들의 삶을 재조명해 본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먹의사슬의 가장 하위층에 속했던 궁녀들의 삶과 애환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 되었다고 보인다. 물론 그동안 남성중심적인 역사서에 비해 여성들을 다루었던 서적들이 작았지만 그나마 왕비나 후궁과 관련하여 일반독자들에게 선보였던 적은 간혹 있었지만 궁녀들을 다루었던 경우는 아마도 없었으리라 여겨질 정도로 구중궁궐의 삶속에 필수적이었던 그네들은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돋보인다.

 

어린 나이에 입궐하여 죽음마저도 마음대로 궐내에서 생을 마감할 수 없었던 그녀들은 어찌보면 조선 5백년 역사 궁궐의 안방 마님이나 마찬가지의 역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왕을 비롯한 권력층의 사대부층이나 역사의 조명을 받았던 왕비나 후궁보다 온 몸으로 조선의 역사를 지탱해 왔던 것이다. 비록 현대 우리가 각종 매체로 부터 인지된 화려한 삶이 아닌 치열한 생존의 역사를 살아왔지만 궁궐의 움직이는 실질적인 역활을 해왔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왕의 여자>는 궁녀을 비롯한 왕의 지근에서 생을 살았던 여인들의 삶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또 다른 역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무수리,항아,나인,상궁등 그동안 잘못 알려진 궁녀들의 위계질서나 용어의 정리 그리고 그녀들이 맞았던 업무에 대한 이해등 궁녀와 관련된 많은 의문점을 해소해 주고 있고 숙종제위시 '후궁은 왕후가 될 수 없다'는 법이 제정된 동기가 단순하게 희빈장씨의 개인적인 사건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점등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는 팁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역사서라는 입장에서 오탈자나 각종 도표상의 표기들에 오류가 제법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케 하고 있다는 점은 필히 다시한번 제고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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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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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작품 <악의>는 스트럭쳐 부분에서 다소 유니크한 방식으로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소설이다. 대게의 작품들이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나 1인칭 내지는 다 인칭적인 시점에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행동이나 말투투, 선호하는 옷차림등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스스로 등장인물에 대한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반면에 이번 작품은 범인인 노노구치와 가가형사의 고백(내지는 사건수사 일지) 같은 글을 통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배가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치가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등장인물에 대해서 그려보는 형상이 오히려 더 살갑게 다가온다고나 해야 할까 독백적인 글을 통해서 문맥이나 문장의 활용등 글쓴이의 심리상태를 의도적으로 들어냄과 동시에 사건의 행방을 오리무중으로 끌어가면서 전제적인 내러티브나 팩트의 구성등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히가시노 게이고 다운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작품의 소재나 등장인물의 직업이 전문작가라는 점이 이러한 스트럭쳐와 들어맞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안는다.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안는다' 지금 한창 우리도 매스컴을 통해서 붉어졌고 암암리에 존재해왔고 이로 인해 많은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학교폭력'의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왜 도대체 왜 라는 질문에 서슴없이 내뱉는 말이 바로 그냥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않아서 라고 한다. 구체적이거나 명시적이고 합당한 이유가 없는 악의가 평생을 살면서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속에 학교폭력과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악의에 대해서 사회적 공감을 호소하고 있다. 매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속에 발견되는 바이지만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쟁점을 작품속에 녹아 놓아 단순하게 읽을 수 있는 추리스릴러 작품의 격을 한층 배가 시킨다는 점에서 <악의> 역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 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우리의 영웅인 가가형사가 어떻게 교사직을 버리고 경찰에 투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있는 동시에 사건 해결의 키가 바로 학창시절 학교폭력에서 기인한 악의라는 소설 내러티브와 딱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자신의 직업인 작가와 글쓰기 그리고 출판사등에 관해서는 범인인 노노구치의 글을 통해서 나름의 고충을 털어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사건의 해결 방식(통상의 경우 주인공이 어떻게 사건을 풀어나가느냐에 촛점을 맞춘다면) 보다는 그 근원적인 물음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독백형식의 방식이 독자들에게 오히려 더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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