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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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 <제노사이드>는 작가도 생소했지만(사실 그의 13계단이나 6시간후 너는 죽는다등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는 일본작가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만) 무엇보다 제노사이드(대학살)라는 제목 자체가 던져주는 호기심이 솔직히 강하게 다가 왔던 작품이었습니다. 나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들의 만행을 다루거나 뭐 작가가 일본이이다 보니 난징 대학살등 일본 제국주의시대의 잔혹성을 다루는 역사적 팩트와 상상력이 결합된 팩션 같은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작품을 대했는데 이거 완전히 제 생각을 빗나가게 하는는 작품이더라구요. 솔직히 예전에 읽었던 故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접할때 만큼 숨막히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구요. 괜히 일요일 오후쯤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손에 잡게 되면 다음 한 주를 정상적으로 생활하는데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속칭 말하는 끝장을 내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박진감 넘치면서 스펙타클하고 도저히 중도에 책장을 덮을수 없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입니다. 뭐랄까 이 소설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사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더 유효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이라는 뉘양스가 강하게 전해오는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스토리 전개와 구조 역시 아프리카 콩고와 미국 펜타곤 그리고 일본을 배경으로 방대하게 전개되고 있고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글로벌한 범위에서 각자의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스케일이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다소 산만하게 여기질 수 있는 공간적인 배경과 많은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거대한 주제에 의해 서로 상호연관성을 부여함으로써 독자들에겐 별개의 사건이 아닌 동일한 사건을 계속해서 추적하게끔 하는 역활을 병행하고 있어 지루하다거나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점이 작가의 힘이겠죠. 다소 헐리우드 영화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가벼움을 작가는 군데 군데 정치 인류학적인 담론들을 배치함으로써 흥미본위에 들떠 있는 독자들의 가벼움을 진득하게 눌러주는 진중한 분위기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작품 특징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러한 전체적인 스트럭쳐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작품 전체의 격(진화생물학적인 전문 용어와 화학방정식등의 고차원적인 과학용어등이 이번 소설이 단순한 날림이 아니다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네요)을 높여주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전반적으로 작가가 다루는 인류의 진화와 그 진화속에서 자행 되었던 동종간의 학살, 인간성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네러티브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트를 방불케할 정도의 방대한 스케일과 속도감이 아우러져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아마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다 보니 독자들의 가독성등을 고려한 배려적인 차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볍게 내지는 흥미본위로 이번 작품을 대하더라도 지금 현생 인류의 형성 과정과 향후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한 많은 고민거리를 담고 있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작품 보다는 일종의 정치 인류학 보고서(정치와 국가의 역활,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 등 왠만한 정치인류학 서적의 논거에 결코 뒤지지 않는 담론들이 담겨있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눈을 또 한번 즐겁게 한다는 것입니다)를 대하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왜 제목이 제노사이드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걷어 지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작가의 설정과 호소는 향후 우리 인류가 가져야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프트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을까라는 느낌도 들구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故이수현씨이 생각이 날만큼 일본인의 시각을 상당히 변하시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외국소설을 접하면서 간간이 우리와 관련된 사안들이 등장하지만 사실상 일회성 눈요기 거리에 지나칠때가 많습니다. 그중에서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은 상당히 비중있는 인물로 비록 북한출신의 한국인을 등장시키고 있지만(사실 카산드라의 거울 정도의 역활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죠)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 유학생 이정훈은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주연급으로 설정되어 있어 국내독자들에게 신선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작가의 민족성에 대한 생각이 겐토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상당히 진보적(식민통치에 대한 반성과 민족/인종 차별에 대한 진보적 시각등)이라는 것이 사실 이번 소설속에서 가장 반가운 부분이기도 합니다(물론 이러한 느낌은 국내독자들에게만 한정되겠지만요) 아마도 이러한 설정자체가 작가 나름의 화해의 손짓이자 많은 노력(우리말 情에 대한 작가나름의 뜻풀이 과정을 보면 우리문화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다는 반증이겠죠)을 기울리지 않았을까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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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평전 - 지울 수 없는 얼굴, 꿈을 남기고 간 대통령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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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상당히 의미있는 한 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우여곡절끝에 숙적 일본과 공동개최라는 형태로 열렸던 월드컵은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잠재우면서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사상 최초 4강진입이라는 엄청난 결과물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당시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응원의 문화(붉은 악마라는 모토보다 붉은색에 대한 열정이 돋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전쟁세대가 사회상위층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태에서 붉은색에 대한 트라우마는 쉬이 없어지지 않을텐데 월드컵을 계기로 상당부분 희석되었다는 차원에서 엄청난 일을 해낸거죠)는 하나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하는 역사적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은 고스란히 대통령 선거에 반영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젊은세대들의 열정(물론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코져 하는 뜻은 아닙니다)이 한곳으로 집중되어 표출되었고 이러한 열정은 스포츠이든 정치이든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한 사건이기도 했죠. 그 중심에는 노무현이라는 아이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故노무현 대통령의 3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된 김삼웅 선생의 <노무현 평전> 은 이러한 의미에서 그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가 한국 현대사에 끼친 영향들을 되새김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써의 역정,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선택해야만 했던 갈등들이 그의 삶을 통해서 반영되어지고 연결되어지는 인생의 삶을 통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록 개인의 평전이기도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봐도 무방치 않을 만큼의 무게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자인 선생의 전작을 접해본 독자들이라면 평전을 이렇게 맛깔나게 저술할 수 있을까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참을 수 없는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아 한 인물과 시대를 오버랩하면서 평가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노무현 평전> 역시 많은 부분에서 그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며 평전의 격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대한민국 탄생이후 가장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유일무이한 경우라고 생각되어질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있어 정치라는 트라우마가 던져주었던 악몽같은 현실들을 희망이라는 메세지로 승화시킨 인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물론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는 그동안 억눌려 왔거든 표출 되어지기를 거부 당했던 대중시민들의 역량이 한데 모여서 만들어낸 변혁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에 합당한 인물성이 있었기에 대중시민들은 그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비단 대중시민의 손에 선출되었지만 비정상적인 국가권력(보수정치권을 통칭하는 의미에서)에 의해 버림 받았던 그의 삶이 미완으로 남긴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미완이 대중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그만의 선택이지 않았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듭니다. 

 

지금 이시각에도 여야 정치권은 새로이 판짜여진 특설링에서 또 다시 진흙탕싸움에 여념 없습니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속된 표현으로 개판오분전이라는 도도 넘어셨고 대중시민들의 채념은 갈수록 더 깊어가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통해 항상 꿈을 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듯이 故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대중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정치판을 다시 한번 꿈꿀 수 있는 것도 故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아이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을가 싶네요.

 

전반적으로 故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의 면모를 보여줍니다(물론 다양한 형식으로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은 부분들이 강하죠). 그래서 일반대중에게는 당혹스러울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쪽의 평가가 제대로 그의 면모를 제단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중에서 가장 양극의 평가를 받는 인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하죠. 하지만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얻었다는 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숫자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득표수는 결국 그를 그리고 그의 정치관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숫자와 동일하기에 주목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재임시절 몇가지의 오류(대게의 평전이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지만 저자는 과실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진단을 내리고 있기에 더욱더 이번 평전의 가치가 돋보이게 하네요)가 있었다는 점 역시 평가부분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병자호란이후 득세한 노론세력의 후예들 시각에서 엄청나게 위험한 인물이 국가통수권자에 올랐다는 자체가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고 이러저러한 사유로 지금의 인물평을 확대재생산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뿐입니다. 이런 정치적인 견해로 흘러버렸네요. 전체적으로 이번 평전은 노무현이라는 개인과 그가 살아왔던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상호보완하여 재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정치인으로서 혹은 공인으로서의 노무현과 자연인으로서의 노무현 양측면을 동시에 살펴보면서 그동안 곡해되었고 억지창출되었던 메타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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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산성 여행 - 역사의 흔적
최진연 글.사진 / 주류성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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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왜곡을 경험하면서 한국사에 대한 재인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네들의 역사왜곡을 질타하고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보다 먼저 우리 자국사에 대한 올바른 고증과 인식이 선행되어야지 않을까 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문가 집단에서부터 일반대중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한국사를 바로 재정립할 수 있을까라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최진연 사진작가의 <경기도 산성 여행> 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리라 여겨지네요. 그동안 우리는 역사하면 모년모월모일에 누가 어떤 일을 행했다는식의 역사적 사실에 주안점을 두었죠. 즉 사건과 인물중심의 역사를 접하다 보니 암기식 위주와 따분한 역사적 행위들의 나열속에서 진정한 역사의 참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는 현실 세계와 괴리된 죽은 학문으로 낙인찍히면서 오죽하면 대학입학능력평가시험에서 선택과목으로 치부 받는 수모까지 겪고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교육제도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역사를 시험과목이나 교육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관념자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기존의 역사교육 방법론을 혁신하지 않는한 이러한 현상은 되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일이니까요.

 

이런측면에서 이번 <경기도 산성 여행>은 역사에 대한 접근방식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오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현존하는 유물이나 서지학적 문헌등이 극히 적은 상고사 부분을 대하면서 그저 지도한장으로 그 시대를 제단해야 했고 그렇게 배워야했던 기존 접근방식과는 180도 다른 방향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산성에 국한되어 있지만 달리 보면 삼국시대의 정치,경제,문화등의 전반적인 사안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산성연구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만큼 성을 중심으로 국가기반이 성립되었기에 이러한 성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상당할거라 여겨집니다. 그동안 아차산성, 풍납토성등 몇몇 알려진 산성이나 성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많이 이루어 졌지만 이번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산성들을 접하면서 새삼 우리의 역사를 재발견한다는 기쁨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여기에 각각의 산성에 관련된 전설적인 구비문학과 사초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등을 효과적으로 부연설명하고 있어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이고 있습니다(전 개인적으로 성과 보루의 차이점을 이번에 확실히 인식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비쥬얼이 환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화보들만 들여다 보더라도 수준높은 예술사진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 없는 한편의 풍경화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정말 시각적으로도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옵니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동안 활자나 어려운 용어 그리고 낯설은 한자어로 점철된 역사서만 바라본 독자들이라면 이번 책은 그야말로 재미있게 역사를 쳐바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네요. 오히려 이러한 뷰주얼이 역사인식에 오래토록 각인되어 현실감 있게 남으리라 여겨 집니다. 특히 항공촬영으로 수록된 사진들은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네요. 자연과 더불어 지형지물이 완벽하게 조화된 일체감은 수성이나 방비 차원을 떠나서도 귀감이 될 만한 사레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이번 산성투어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지만 우리의 문화재관리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이고 엉망진창인지 정말 낯뜨겁게 다가 옵니다. 발굴하고 경제개발논리로 훼손되고 방치된 산성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게 합니다. 이동통신 안테나망, 군용 이동로와 참호 그리고 농경지가 버젓이 자리한 문화유산들을 보면서 새삼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한탄할까라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감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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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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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실 그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난생 처음 접하게 되었네요. 저 처럼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는 독자라도 제목만으로도 귀에 낮익는<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등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굉장히 낮설지 않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에 마치 저같은 독자들에겐 제목만 들어도 마치 접해본 작품인양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할 묘한 뉘양스를 주는것 같습니다. 그나마 분량이 약간은 만만하게 보이는 <정체성> 을 먼저 접하게 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요. 하지만 이번 작품 <정체성> 역시 작가의 여타 작품들 처럼 제목에서 부터 풍기는 강력한 포스로 인해 상당히 난해할 것 같다는 선입관을 가지게 되더라구요. 물론 다 읽고 난 느낌 역시 첫 느낌처럼 만만치 않는 작품이라는 강한 잔상을 지울수 없게 하네요. 아무래도 작품 가독적인 면이나 이해력에서 스텐다드 문학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선이 저에겐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남녀 주인공인 상탈과 장마르크 각각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 내지는 관찰자 시점이 혼용되어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마치 쌍방향 소통식으로 전개해 가고 있어 전반적으로 진도를 내는데는 큰 무리감이 없어 보이는 평이한 구성력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다가옵니다. 어느날 연인인 상탈의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라는 한마디(결국 샹탈의 이 한마디가 작품 전체의 축약하는 모멘트가 되기도 하죠)의 맨트가 발단이 되어 연인을 기쁘게 할(혹은 사랑을 확인하는 유치한 일종의 테스트도 될 수 있을 것 같구요) 요량으로 시작된 묘령의 편지는 남자주인공이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이를 기화로 각자 자신의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과정을 그려가게 되면서 각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심도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구도가 이번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뭐 제목 자체에서 부터 오는 무게감의 부담감을 결코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상당히 소화하기 만만치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전통적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력의 차이겠지만요). 분량이 중편소설정도로 적고 남녀주인공의 대화체로 스토리를 끌어가는등 별반 어렵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작품 곳곳에서 작가가 피력하는 견해들은 상당히 난해하고 수준높은 철학의 반열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우정이나 권태에 대한 상념들은 기본적으로 인식론과 존재론에 대한 기초적인 인지력을 요구하기도 하는것 같아 몇번을 되새겨 읽어봐야할 대목으로 기억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권태에 대한 상념들을 오늘날과 과거의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오늘날 무관심이라는 공통점 자체는 무관심이 우리 시대의 유일한 집단적 열정이다 ' 라는 작가의 표현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다가오면서 작품 전반을 흐르는 핵심을 보여주는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체성>을 통해서 우리는 상당히 시니컬하면서도 인텔리하고 유니크한 커플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샹탈의 직업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가 의도했던 아니던 간에 '정체성'이라는 메타포와 일맥상통하면서도 상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컨셉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서 독자들 스스로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표현은 하지만 그렇다고 실마리를 찾기는 상당히 힘들다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또한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갑자기 몽환적이면서 현실성과 괴리된 분위기로 칫닫는 부분이 독자들을 약간 당황스럽게 하지만 달리 보면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크라이막스적인 표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반적으로 분량만 믿고 쉽게 접근했던 무지의 소치에 땅을 치게 할정도로 만만치 않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 밀란 쿤데라의 여타 작품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사전작업을 병행해야하지 않을까라는 노파심마저도 들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고민거리인 '정체성' 에 대해서 나름 한번쯤은 심도 깊게 생각할 방향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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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문 이후 밀리언셀러 클럽 12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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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랫만에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게 되었네요. 뭐 사실 스티븐 킹이야 자타가 공인하는 이야기꾼으로 그동안 국내 독자들의 눈을 사로 잡아왔고 나오는 작품들 역시 베스트셀러 반열에 진입하는 유명세를 타는 작가이죠. 내러티브의 참신성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 작가로 기억됩니다. 특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펼치는 향연은 참 노력을 많이 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합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해가 저문 이후> 는 개인적인 견해로는 스티븐 킹의 작품세계를 거의 모두 한 눈에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어 그리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읽어왔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짧막짧막한 13편(의도된 바는 아니겠지만 왠지 13이라는 숫자가 마음에 걸리는 독자분들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의 단편을 모아놓아 독자들의 의무감도 줄여주고 있어 산뜻한 느낌을 주는것 같네요. 물론 장편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솔직히 아쉬운 장면들이 많습니다만...(왜 그런거 있잖아요 정말 좋은 소재로 내러티브를 끌어가는데 좀더 플러서적인 요인만 있으면 대박날것 같다는 느낌들 말입니다. 근데 아마도 단편소설의 매력이 바로 끝을 작가가 비정하기 보다는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케 하는게 더 깊은 아쉬움과 여운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보면 상당히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것 같은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단편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행여 짧은 단편들을 모은 선집이라 내러티브의 완성도나 작품성 그리고 소설본연의 모습인 흥미도가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기우를 가지는 독자분들도 있을리 여겨지지만(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들더군요) 막상 개개별 단편들을 접하는 순간 정말 한순간의 기우였다는 느낌이 들어옵니다. 음 첫 작품인 (윌라) 로 시작되는 범상치 않는 이야기들이 13편 중 어느 하나라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만큼의 탄탄한 내러티브와 스트럭쳐를 갖추고 있고 인간내면의 심리상태와 더불어 사후세계에 대한 상념등 다양한 감정이입을 끌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 옵니다. 9.11테러와 관련된 (그들이 남긴 것들) 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씨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만큼이나 가슴 아프게 독자들의 심금을 자극하고 있고, 사후 세계를 다룬 두편의 단편 (특별 구독 이벤트), (윌라) 역시 유니크한 내러티브를 통해 한번즘은 상상해보았던 사후 세계를 그려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공포호러작품계통에서 죽음 내지는 사후의 세계에 익숙했던 독자들이 받았는 느낌과는 사뭇다른 인간애가 넘치면서 왠지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별이 없는 그저 바로 전까지 옆에서 통화하고 안부인사를 전하는 친숙한 느낌과 같이 무덤덤 하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는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이지 않나 싶네요. 물론 죽은자들의 이야기 치고는 왠지 밍밍한 강도를 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지옥에서 온 고양이)를 읽다 보면 그런 밍밍한 강도는 쑥 들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개인적으로 고양이 등장 공포물중에서 단연 압도적인 섬뜩함을 주는 스토리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왠지 지나다니는 고양이한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가장 눈여겨보게 된 작품은 마치 <쇼생크 탈출>을 보는 듯한 똥통에 빠지 한 사나이의 눈물겨운 탈출기를 다룬 (아주 비좁은 곳) 입니다. 제목자체에서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내러티브의 전개과정에서 조차 왜 저 제목을 컨텍했을까 싶기도 할 정도였지만 역시 작가의 머리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더라구요. 특히 인간의 배설물인 똥과 그들의 안식처인 화장실, 가장 보여지기 싫은 부분을 가장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획기적이고 독특한 가장 스티븐 킹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더라구요.

 

전반적으로 중단편 소설은 흥미면에서 지면상 그 감도가 떨어진다는 그동안의 편협된 생각을 한번에 날려버린 선집이라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읽을 수록 좀더 좀더 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약간의 허탈감을 갖게 하는 아주 묘한 작품들로 구성된 선집으로 작가의 유명세가 허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산재하고 있어 다소 진득한 느낌을 해치고 있긴 해도 나름대로 각각의 스토리들이 적절하게 합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무엇보다 수록된 단편들이 해가 저문 이후 잔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의 감동과 더불어 밤의 세계에 대한 미지의 공포감을 배가시킨다는 점에서 선집의 제목과 절묘한 앙상블을 보여주면서 기억에 오래토록 남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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