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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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얼마되지 않는 작품을 대면했지만 그의 작품을 대할 수록 색다른 판타지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네요. <제노사이드>, <13계단>으로 이미 제 마음을 잡더니만 이번에 주파한 <그레이브 디거>는 앞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뷰를 선사함으로써 책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네요. <제노사이드>가 블럭버스터물이라면 <13계단>는 상당히 무게감 있는 사색적 스릴러물로 표현하고 싶네요. 이에 반해 <그레이브 디거>는 뭐 책 제목이 다소 그로데스크한 뉘양스를 풍기지만 실상 그 내용은 따뜻한 휴먼드라마물이라고 감히 단정하고 싶어 집니다. 여기에 우리의 주인공인 악동 야가미의 좌충우돌하는 유머까지 겹쳐져서 그야말로 가슴이 훈훈해지는 작은 드라마를 펼쳐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당히 차분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어 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작품이 밋밋하거나 순정적인 인간미를 다루는 잔잔한 내러티브만를 가지고 있다면 그저 그런 작품으로 남겠죠. 그리고 다카노 가즈아키의 매력도 반감되어겠지만요...

 

<그레이브 디거> 는 암흑의 시대이자 그리스도교의 절정의 시대인 중세 마녀사냥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온 현대판 마녀사냥이라고 보여집니다.(물론 작품에 등장하는 마녀와 이교도와 관련된 내용들이 작가의 상상이었다고 하니 이 작가 만만치 않는 상상력에 혀을 내두르게 합니다). 거대 정치 권력 그리고 경찰 권력의 암투와 그 지저분한 비리를 당사자들의 손이 아닌 전혀 다른 제3자(특히 이부분이 묘한 연결고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대 권력의 유지에 어쩌면 가장 필요악적 존재인 범죄자를 통해서 양대 권력의 비리를 양파 껍데기 벗기듯이 하나 둘씩 펼쳐보이는 점이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상당히 신빙성을 높여준다는 점입니다)를 통해 까발리면서 일본내의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단 반말부터 짓거리는 상당히 악당적인 주인공 야가미의 캐릭터 역시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설정입니다. 청소년기에 범죄의 세계를 발을 들여 몇번의 전과 전력을 가지고 있는 범죄자라는 이미지 보다 도주극에서 보여주듯이 다소 어리버리하면서도 강한 정의감을 표출하는 양면성은 아마도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작품상 극단으로 몰고간 뿐이지 인간이면 누구나 그런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특히 작중에 등장하는 권력집단 인간들의 양면성 보다야 한결 귀여운 면이겠죠)

 

전체적으로 골수기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집념의 사나이와 그를 둘러싼 거대한 권력층의 또다른 음모 여기에 개인적인 보은을 위해 중세 설화를 이용한 그레이브 디거의 복수극이 맞물려서 그야말로 숨가쁘게 내러티브를 끌어 가고 있습니다. 고도의 서스팬스는 마치 영화 도망자를 떠올리게 할 만큼 독자들에게 쉴틈을 주지 않고 사건에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3가지의 큰 플롯을 상호 연결해 나가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 12시간만에 벌어지는 사건을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여기에 서스팬스한 도주극에다 악의 상징이 선을 위해서 바뀌어 가는 교훈적인 요소와 거대권력과 맞서 싸우는 정의감이 덧칠 되면서 내러티브를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든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논스톱으로 진행되는 스토리가 박진감 넘치면서도 해학적이고 또한 순수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미아베 미유키의 표현처럼 읽기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 없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도쿄도 전반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통해서 생중계 방송으로 도주자를 따라 도시 요소 요소(실재로 작품을 구상하면서 작가가 답사하고 장소를 반영하였다고 하네요)의 특색을 반영하여 도쿄를 아시는 분이라면 더 현실감이 크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사실성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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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취하다 - 쌤의 앵글에 잡힌 부산의 진짜 매력 99 매드 포 여행서 시리즈
조현주 지음 / 조선앤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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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들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많이들 사용합니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도시발달사에선 이 표현이 적확하게 들어 맞는 사자성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물론 제 위 세대분들에게는 시건방진 말이지만요). 근대라는 개념이 모호한 우리의 현대사를 유추해 보더라도 도시발달사는 유독 그 경계점을 찾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어 지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산에 취하다> 라는 책은 다시 한번 우리의 도시발전사를 되새겨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1968년 부산시 동래구 연산동 온천천 근방에서 출생했습니다.(아 지금은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동래구가 아니라 연제구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년시절을 거쳐 고등학교 졸업까지 부산에서 살았습니다. 비록 부산을 떠나온지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부산이라는 상징성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상당하게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고향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보다는 부산하면 왠지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들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그게 그거라고 하면 대응할 말은 없지만요. 인간은 자신에게 가장 왕성한 가치관이 형성될 당시의 기억이나 추억에 대한 회기본능이 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제게 부산에 대한 추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가기 전까지 들락거렸던 당시의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번 책은 저와 같은 세대 특히 가치관 형성 이후 부산을 떠난 수십년이 지난 분들에게는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부산에 취하다>는 뭐 시쳇말로 한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광명소를 들먹이는 수준의 책이지만 서두에서 말했듯이 특별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에겐 소중한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게 하는 더할나위 없이 반가운 책이라고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극히 현대화된 부분과 아직도 근대화의 단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면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관광안내서라고 보기엔 그 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부산에서 살거나 부산을 잘 알거나 부산을 한번 이상 경험했던 이들도 몰랐던 부분까지 소개되어 있어 남다른 구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특히 내용들과 동반하여 수록되어 있는 화보들이 전문가의 연출에 의한 면보다는 그냥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순간 순간을 앵글에 그대도 담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현실감과 현장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토목의 힘을 보여주는 광안대교와 부산판 맨하탄이라는 해운대등의 화려한 모습 보다는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 깡통시장내 자판등의 풍광이 더 시선을 잡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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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이흥환 엮음 / 삼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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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민족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던저준 것은 일제감정기와 한국전쟁일 것입니다. 일제감정기가 공적이고 외적인 면에서 지금 남북으로 분단되었지만 그래도 공통적인 분모의 역활을 하고 있다면 한국전쟁은 한민족 자체의 내부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관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남북 정치이데올로기에 의해 남과 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뭐 어떻게 보면 각자의 원하는 방향으로라는 표현이 맞을것 같습니다만) 진행되면서 극복하기 힘든 이질감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것 같습니다. 지금도 만만치 않지만 제가 국민학교 다닐때만 하더라도 붉은색은 그 자체만으로 악의 화신이자 이단, 적이라는 개념과 거의 일맥상통할 정도로 금기시 되었던 이념의 표출이었습니다.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정권들에 의해서 남쪽의 우리들은 부지불식간에 북쪽사람들을 동일 민족이 아닌 별개의 민족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남쪽 발전의 걸림돌 정도로만 받아들였던 것도 사실이죠. 이러한 현상들은 머리속 깊게 각인되어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흐리게 하면서 개인적인 정체성이나 인격성에도 많은 왜곡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국방군은 우리의 아버지, 아들, 동생, 오빠, 삼촌이지만 인민군은 그저 머리에 뿔난 도깨비 내지는 나쁜적으로서만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것이도 한것입니다. 물론 지금이야 많은 부분들이 오해와 왜곡의 사슬을 풀었다고 하지만 그 미진함은 말로 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는 바로 머리에 뿔난 이념 덩어리인 적들(?)의 극히 개인적인 편지를 한데 모은 책입니다. 1950년 미군을 필두로 하는 연합군이 평양을 탈환하면서 미처 수신인들에게 전달되지 못한 편지들이 각종 공문서와 더불어 노획되어 미국문서보관서에 수십년간 잠자고 있다가 정보비밀해제가 되면서 공개된 편지들로써 그야말로 한국전쟁에 관한 1차적인 사료라는 공식적인 점에서도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전쟁을 바라보는 개인들 그리고 부모,자식,형제,오빠를 전장을 보낸 이들의 속타는 마음과 생사의 기로에선 전장에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개인화된 군인들의 편지들을 모아모아 출간한 책이라는 점에서 뜻하는 의미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는 지금 현재도 매번 선거철이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색깔론의 근원적인 형태를 제공했던 우리 민족사에 엄청난 변곡점이 된 사건일 것입니다.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자기들 나름의 한국전쟁 트라우마를 각색 확대 재생산하면서 자기들 만의 권력 독점에 이용해왔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지금도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이 체제나 권력에 대한 나름의 판단요소를 쭉 확장하여 일개 구성원인 개개인들의 개인적인 감정까지로 확장함으로써 남과 북의 이질감을 증폭시키는 역활을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공적인 영역들로 인해 우리 사인이 가지고 있는 사유 역시 요상하게 염색되면서 개인대 개인관계 정립에 소홀히 하게 되는 근원이 되었던 것을 이번 출간을 계기로 비록 언발에 오줌주기식이라도 조금씩 조금씩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성애, 부성애, 형제애와 부부사랑 그네들 역시 똑 같은 사람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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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삼인 2012-10-0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를 토대로 구성,창작된 연극 <달아나라, 편지야>가 2012년 10월 10일 (수)부터 15일 (월)까지 홍대입구 인근에 위치한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CY씨어터'에서 무대에 오릅니다.

공연정보 바로가기 ▶ http://daristory.tistory.com/61

특히 원작을 포스팅해주신 분들을 대상으로 티켓 할인 이벤트(1만5천원 → 1만2천원)를 진행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관람을 원하시면 메일을 통해 제목 [달아나라편지야/포스팅이벤트/관람일/성함/연락처]으로 예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ycdari@daum.net
 
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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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틈없이 읽었던 <제노사이드>를 통해서 한마디로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이 양반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냥 심플하게 소설은 소설로서의 역활에 충실만 해도 대중 독자들에겐 그 소명을 다한다는 느낌으로 대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이 양반 작품(비록 많이 접해보진 않았지만요)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네요. 우선 흥미본위 뭐 오락성 내지는 친대중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왠만한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 빰치는 가독성과 대중성 및 오락성이 두루두루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번 책을 손에 잡게 되면 사정 없이 몰아가는 내러티브의 향연에 그저 눈이 즐거울 따름이다는 생각이 깊이 들구요 그리고 오락성에만 치우치다 보면 세칭 내용이 가볍다라는 세간의 날카로운 평가에도 떳떳하게 향변할 수 있는 작가 특유의 사유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세계고전문학이나 노벨문학상을 비롯한 상당히 귄위 있다는 문학상의 작품들 대하다 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하는 마음에 완독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경험이 독자들에게 한두번쯤은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유명인사들 추천하는 이러한 작품들 읽지 않는다면 왠지 교양스럽지 못하다는 자책 내지는 일종의 독서가로서의 필수 스팩을 채우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서라도 머리속으로 들어오지도 않는 책들과 씨름하는 묘한 시츄에이션이 왕왕 발생하기도 하죠.(물론 저 같은 미숙한 독서광에게나 해당되는 말일수도 있겠지만요.)그러면에서 이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교과서의 주제를 담고 있는 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형형색깔의 참고서같다고나 할까요 뭐 양측단을 대담하게 드나드는 묘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비단 <13계단>과 <제노사이드> 딱 두편을 읽어보고 느끼는 작가에 대한 평이 올바를수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카노 가즈아키 이 양반 정말 매력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전해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13계단> 역시 제노사이드만큼의 방대한 스케일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내러티브의 흡인력과 마지막 대반전 부분에서의 희열은 그에 못지 않게 짜임새 있으면서도 심플하게 독자들의 눈을 사로 잡고 있다고 단언해도 무방하리라 보여집니다. 인간이 인간을 처단하는 살인과 사형이라는 두가지 메타포 즉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는 이번 작품은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스토리 구성이나 스트럭쳐면에서 시종일관 독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물론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대 전제는 사형제도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고민하게 만들고 있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을 읽는 동안 만큼은 그리 크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반전부분에서의 준이치의 독백이 담긴 편지 한통을 읽는 순간 독자의 가슴은 상당히 무겁게 가라을뿐 그동안의 내러티브의 재미에 빠져 있어 파토스의 향연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사실 이러한 부분들이 작품을 읽으면서 괜시리 미안한 감정을 불러 오기도 하더라구요.(왜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작가는 작가나름대로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에 대해서 상당히 무게있고 진중한 담론을 펼치는데 막상 작품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메타포보다는 내러티브 자체의 흥미에 빠지다 보니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든다고 할까요)

 

그동안 일본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많이 접하고 재미있게 읽는 이유중에 하나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닌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작품전반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든데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 역시 이러한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마음에 와닿는군요. 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도 정통 추리소설에서 약간은 벗어난듯 보이는데 다카노 가즈아키 작품 역시 추리스릴러장르를 뛰어넘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뉘양스를 풍깁니다. 여기에 진중한 사회문제를 대중 독자들에게 무리없이 전달하는 역활까지 겸하고 있어 상당히 친숙하면서도 거리감 없는 작품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제노사이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제노사이드>가 블럭버스터 같은 대형작품이라면 <13계단>는 독립영화 같은 작품으로 스케일은 다소 떨어지지만(이는 제노사이드와 비교했을때를 말하는 거지 결코 타 작가의 작품과 비교했다는 점은 아닙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오히려 더 독자들에게 깊게 각인되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런 견해를 비치게 하네요. 공적인 살인행위라는 사형제도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통해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내러티브 그 자체가 상당히 고무적인 발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물론 스토리의 짜임새와 구도 그리고 극적인 반전등이 절묘하게 녹아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겠죠.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이후 가장 끌리는 일본 작가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카노 가즈아키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것 아닐까 싶네요. 정말 간단하게 아니 단도집입적으로 평한다면 향후 추리스릴러장르의 리더가 되는 작가이자 작품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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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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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한국사를 접할 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고대 상고사와 더불어 개항기, 조선멸망기 및 일제감정기를 아우르는 근대사를 손에 꼽을 것입니다. 물론 한국사 요소 요소에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이 산재하고 있지만 韓민족에게 가장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긴 시대가 바로 바로 이 두 시기의 역사일 것입니다. 뭐 고대 상고사야 대한민국 학계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증사학의 잣대로 판단한다면 문헌이나 유물이 적기 때문에 별별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이 마치 팩트인양 믿으라고 하는 부분들, 극히 작은 부분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만 가장 근세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근대사 마저 소설로 탈바꿈하는 것을 지켜 보고 있자면 이 놈의 나라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 한번쯤은 가져 보게 됩니다. 아마도 일제감정기를 거치면서 식민사학과 인조반정이후 뿌리 깊게 자리잡은 노론계 수구세력의 밥그릇 지키기 일환으로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철저하게 왜곡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불안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세력들의 왜곡이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는 근원에는 일반대중들의 근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물론 결정적으로 전문 사학자들의 잘못과 눈가리고 아웅식인 면이 강하게 상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대중에게 근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엄청나게 편협되고 이분법적인 사관이 존재하고 있음은 틀린말이 아니겠죠.

 

저자인 이덕일 선생도 지적하듯이(아마도 이번 책의 출간 목적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동안 근대는 일제 감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독립 운동사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왔고 으레껏 일반대중 독자들이나 학생들에게도 근대라함은 바로 이러한 굵직한 두가지의 사건을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떠올리게 됩니다. 뭐 사실상 이 두가지의 변수가 우리 근대사를 기술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될 수 밖에 없는 것도 우리의 태생적인 한계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근대사를 기술함과 그리고 근대사를 이해함에 있어 너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경향으로 흘러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개항기와 일제감정기 시대에 탄압 받았던 사건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독립 운동사들만이 부각되고 기술되다 보니 고종조에 들어서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전반적인 역사적 흐름에 대해선 소홀할 수 밖에는 없는 그야말로 나무만 보고 그 숲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근대사를 달달 외우고 있었던 거죠.

 

이런 측면에서 이번 <근대를 말하다> 는 개별적인 사건과 인물 중심보다는 전체적인 근대사의 흐름의 맥을 잡을 수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입니다. 물론 중요한 미시적인 사건에 대한 평설도 포함되어 있지만 거시적으로 왜, 어떻게 근대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이는 저서입니다. 특히 가해자인 일본의 근대화 진행과정를 자세하게 기술(특히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메이지 유신 그리고 근대화 제국화 되어 가는 과정들)하고 있어 조선과 일본 양국을 냉철하게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근대사가 진행된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은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 동안 이덕일 선생의 저서를 줄곧 읽어왔던 독자들이라면 인정 하듯이 정말 역사를 맛깔나고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 다시 한번 느끼게 합니다.

 

전반적으로 역사를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거시적인 안목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사건이나 인물 중심의 역사 판단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것은 틀림없지만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근대사와 뗄레야 뗄수없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동시에 기술하고 있어 우리 근대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근대사는 일제감정이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었고 이런 요인들이 식민노론계사학자들과 친일파 및 그 후손들에게 역사 왜곡이라는 판을 깔아 주었고 결국 우리는 우리의 근대사를 인식할때 부정적일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솔직히 말하면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게끔 철저히 교육되었고 강요되었다고 보는편이 더 타당하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번 <근대를 말하다>를 계기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관에서 탈피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리 근대사를 다시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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