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전집 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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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에 대한 편차는 개인별마다 상당한 차이를 부여하고 있죠. 그러기에 문학작품에 대한 묘미가 있는 것이고 다양한 부류의 독자층이 생겨나는 것이겠죠. 그 동안 책좀 본다고 하면서도 사실 문학 작품에 대해선 상당히 아래로 보는 경향이 본의 아니게 내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은것 같았습니다. 동서양고전이나 전문경제/인문서적을 보면서 이 아까운 시간에 왜 저런 문학작품에 매진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는데 막상 문학작품들을 대하면서 아 책읽기의 진수는 바로 문학작품에 있구나라는 사실 하나를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작가별로 판이하게 다른 사유와 담론을 내러티브에 서사하는 기술적인 방식에 이르기까지 그 세계는 갈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네요.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밀란 쿤데라가 제 가슴에 살짝이 불을 당기더라구요. 이 양반의 작품을 아직까지 많이 접해보질 못해서 딱히 '밀란 쿤데라 스타일' 이다라는 감을 제대로 잡을 순 없지만 그래도 한두 작품씩 읽어나가면서 막연하게나마 아! 이런것이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구나라는 막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웃음과 망각의 책> 을 접하면서 대략적인 밀란 쿤데라의 스타일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딱히 기호학적인 언어체계로 100% 표현할 수 없지만 이번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플롯이나 모티프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전반적으로 아우러 대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웃음과 망각의 책>소설과 에세이(그것도 상당히 무거운 에세이라고 해야할까요)의 경계선(경계선이라는 이름의 별도의 작품 수록되어 있기도 하죠) 을 묘하게 건너다니면서 독자들의 눈을 희롱하고 있죠. 여기에다 마치 단품을 모아 놓은 선집같은 구조를 보여주면서도 이거 막상 읽다보면 앞과 뒤가 연관되는 묘하디 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또 한번 독자들을 농락하죠. 뭐랄까 이번 작품에 수록되어 있는 '경계선'과 '엄마' 에서 볼 수 있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성애 장면을 보는듯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7편의 이야기가 밀란 쿤데라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혹은 전지적 작가시점과 뒤섞이면서 내러티브의 주제를 잡아 나가기가 곤혹스럽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아주 가뿐하게(단편들이라는 생각에 말이죠) 출발했건만 그리고 1부 '잃어버린 편지들' 을 끝낼때만 해도 정말 부담없이 생각했는데 이건 갈수록 태산이라고 나도 모르게 덩달아 작중인물들과 꼬여 버리는 느낌을 받게 하네요. 여기에 작중 화자인 밀란 쿤데라의 뜬금 없는 서사들이 덧대어 지면서 중수필을 읽고 있는 것 아닌가(뭐 문학쪽에 기초적인 지식이 없다보니 사실 어리둥절했습니다)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주목해지는 부분은(물론 저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지만 성애의 묘사 부분이 독특하다는 것죠. 솔직한 표현으로 쇼킹 그자체였지만요. 밀란 쿤데라의 이런 성애의 묘사는 상당히 은밀하고 농염스러운 에로시티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은 상상해 볼 수 있는 (뭐 이렇게 말하면 내 자신의 性정체성에 대한 이상한 발현일수도 있지만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뭐랄까요 내 머리속에 있는 씬들을 마치 스캔이라도 뜬듯이 보여주는 서사들이 들어낼 수 없는 속마음을 들킨것 같은 얼굴 화끈함을 느끼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제일 이상한 것은 이런 성애의 표현과 설정들이 왜 그리 3류 에로비디오를 보면서 느끼는 저속함을 느낄수 없다는 것이죠. 그의 작품에 걸쳐 거의 모든 면에서 등장하는 이런 묘사들에 익숙해져서 그런것이지 아니면 밀란 쿤데라만의 뛰어난 화법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의 일환으로 보는게 맞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의 쟁점은 거의 모든 작품들속에 녹아져 있고 각각의 작품들을 감미하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조미료 같은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번 작품의 백미는 다름 아닌 '경계' 에 대한 담론의 서사들이라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담론과 웃음 그리고 망각(비록 제목이지만요 오히려 경계에 대한 강한 서사로 인해 묻혀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뭐 하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대담론은 맞습니다) 이 담론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해서 경계는 경계성대로 웃음은 웃음대로 망각은 망각대로 각각의 나래를 펼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죠. 또한 이 삼총사가 하나의 앙상블로서의 일체감을 강하게 돋보이게 하기도 하고요. 물론 애매모호한 배경음악(밀란 쿤데라의 목소리가 강하게 간섭하게 되죠)이 깔려 있어 더 모호성을 가중시키면서 작품 각각의 경계성을 허물어 버리는 서비스도 부여하고 있네요. 

단적으로 파세르의 장례식 풍경을 다룬 부분에서 예견치 못한 바람으로인해 날라간 모자때문에 장례식 본연의 모습을 사라지고 모자를 주으려는 클레비스나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모자나 이를 지켜보고는 사람들 모두가 경계와 웃음과 그리고 망각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 모든것은 우리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하나의 속박에 불구하고 그 경계선을 넘는데는 웃음과 망각이 필수요건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죠.

 

"경계 반복을 받아들일 만한 최대 용량, 경계는 반복의 결과가 아니다 반복은 경계를 눈에 보이기 만드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일뿐이다" , " 그래, 더 이상한 것은 저 모든 몸들이 아름답다는 거야. 봐봐, 늙은 몸조차 병든 몸조차 몸이 그저 몸이기 때문에, 옷을 벗은 몸이기 때문에 아름다워. 자연처럼 아름다워. 오래된 나무도 젊은 나무만큼이나 아름답고, 병든 사자도 여전히 동물의 왕이지, 인간의 추함은 옷의 추함이야". "몰이해 위에 세워진 경이로운 연대", "경계선이란 인간이 만든 문명이라는 감옥의 건너편" - 이 문구들이 이 책의 전반을 아우르는 밀란 쿤데라의 모든 담론이 함축되어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솔직한 표현으로 여태까지 얼마 읽어보질 못했지만 대면했던 밀란 쿤데라의 작품중에서 가장 난해하게 느껴졌고 한편으로 가장 강렬하게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구요, 작품전반에서 느껴지는 잔상이 참으로 오래토록 남을 작품인것 같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순간까지도 제목인 <웃음과 망각의 책> 이라는 제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니면 그토록 강조되고 있는 '경계' 에 대한 개념을 종잡을 수 없어서 그런지 멍한 상태로 마무리하게 되지만 어렴풋하게 나마 웃음과 망각 그리고 경계의 모호한 선상을 그리게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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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평전 - 조선 중기 최고의 경세가이자 위대한 스승
한영우 지음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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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인물입니다. 현행 한국은행권 5천원 지폐의 표제 인물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사임당의 아들이고 뭐 이렇게 보니까 모자간에 지폐인물로 디자인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네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성리학의 대가이며 장원을 9번이나한 천재학자이자 관료로서 조선후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물론 이 부분은 본인의 의지와는 너무 멀리 가버렸지만요 후학들은 두고두고 율곡을 우려먹죠). 워낙 출중한 인물이다 보니 유년시절 위인전을 비롯한 각종 역사 교과서등에 단골인물로 등장하고 수 많은 아우라로 인해 후대인들에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사실 이러하다 보니 '율곡 이이' 에 대한 판단 자체를 하는 것이 난센스이고 성역정도로 굳어져 버린 것 역시 현실이고요, 하지만 이래서야 제대로된 한 인간의 본 모습과 평가에 대한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죠. 역사를 상고해 보는 가장 중요한 점이 지나간 일들을 반면교사로 보다 나은 현재와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고 고언을 구하기 위함이를 모르는 이가 없을테지만 정형화된 인물이나 사건등에서 올바른 인식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수도 없이 지켜보고 왔고 이래저래한 시행착오를 가져왔기에 '율곡 이이' 와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는 더욱 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율곡 이이 평전> 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상당히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율곡이라는 한 인간의 정수를 엿볼수 있는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어 출생에서부터 가정환경, 그리고 성장하면서 느꼈던 고뇌들과 관료의 길을 걸으면서 군주에게 올리는 상소와 그의 정치관 마지막으로 학자로서의 자질과 철학등 율곡의 거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특히 그 동안 율곡 하면 자연히 떠올랐던 이미지들이 상당부분 새롭게 정립될 것으로 보여지구요. 무엇보다 그의 학문세계(제9장)를 일반독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네요. 그 동안 퇴계와 더불어 조선성리학의 양대산맥을 이룬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에 대해서 상당히 난해 하게 접근했다면 이번 기회에 저자는 이 부분을 청소년도 알기 쉽게 부연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옵니다. 또한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향약> 에 대한 율곡의 헌신과 노력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네요. 이 중에서도 일반 서민대중을 위한 <사창계약속> 편은 조선의 현실에 맞춘 제도로 벤치마킹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획력과 추진력이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율곡의 안민에 기반을 둔 철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그 동안 위인으로 너무 한쪽면만을 바라보았던 시각을 다양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평전이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저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한쪽의 면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왕왕있고 한 위인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만 이번 율곡의 평전은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제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율곡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 동안 다소 경직되고 딱딱한 정치, 철학적인 율곡을 보아왔다면 이번 평전을 통해선 부드럽고 대중지향적인 율곡을 보게 된다는 점이 가장 눈에띄입니다. 이번 평전에 가장 강점이 바로 이런 점진적 개혁의 일환인 '경장' 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만언봉사나 성학집요 그리고 항교와 교육과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요즘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이 아닌 율곡 자신의 철학이 담겨져 있는 경장내용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 이런 내용들이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도 있지만 당시 철저한 신분제사회에서 이러한 발상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한 것이기 때문에 율곡의 경장내용과 철학을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하죠. 이렇듯 각계 분야에서 쇠퇴기에 접어든 조선을 살리기 위한 그의 노력들이 한편으론 애잔하게 보일 정도로 율곡은 치열하게 경장을 부르짖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선조의 반응은 냉담했고 나머지 신하들은 동서로 나뉘어 결승매치를 준비하면서 결국 임란이라는 조선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율곡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모친인 신사임당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가 화폐의 주인공이자 여류화가, 시인을 그야말로 '현모양처' 의 대명사로 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변함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허균의 누나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추앙받고 있죠. 그래서 후대의 우리들은 이런 공식에 반기를 제시하지 않는 것이고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러면 정말 사임당이 '현모양처' 의 표본일까요? 여권신장등 여성계 입장에서라면 당연한 논거라고 보여지지만 실상 그 내막을 살펴보면 절대 '현모양처' 는 아니였다는 것이죠. 율곡이라는 대석학의 기본기를 완성했다는 측면에서 '현모' 의 상은 맞을지도 모르지만 '양처' 라는 개념은 100% 수용하기 힘들죠. 이 부분에 대해서 마치 저자는 현대의 시각으로 사임당의 친정살이를 정당화하는 것 같지만 당시 16세기 조선사회에서 이러한 사임당의 행태는 사대부가에서 받아 들이기 녹녹치 않는 행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견해가 아닐까 싶네요. 저자는 율곡의 부친 이원수의 무능함과 홀시어머니의 집안살림에 대한 무관심등의 '이중고의 고난' 으로 인한 사임당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지만 당시 시대상으로 사임당이 처한 환경보다 더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좌시해서는 아니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다름아닌 율곡 이후 후학 서인(향후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 되죠)들에 대한 평가에 대한 부분들이 못내 아쉽네요. 저자는 마치 율곡이라는 대석학의 명성을 그대로 후학(김장생,송시열등)이 이어받아 조선후기를 이끈 것 같은 뉘양스를 주고 있다는데 여긴 다소의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후기 극심한 붕당정치를 낳은 산파는 아니지만 서인들에 의해서 교조로 추앙받는 이가 다름아닌 율곡이라는 점에서 그의 정치,학문,안민등의 다양한 담론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식의 평가는 잘못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들의 정치행태를 보면 땅속에 있는 율곡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자신의 가치관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말이죠) 사실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율곡과 이후의 서인들과의 연결고리를 굳이 하나의 몸통과 머리처럼 연관지을 이유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청렴결백한 선비의 표본인 율곡의 이미지가 오히려 후대의 정치판에 눈이 먼 후학들로 인해 퇴색될 우려가 클뿐더러 저자의 견해가 맞다면 율곡이 서인의 거두로서의 역활보다는 민생을 먼저챙긴 경세가의 모습으로 비쳐지지 위해서도 이러한 연결고리는 오히려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소지가 충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후학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율곡을 끌여들였다라는 평가가 맞는 것 아닐까 싶네요.

 

   전체적으로 그 동안 율곡에 대한 아우라 즉 뛰어난 정치가, 대석학, 효자등의 각인된 관념에서 이번 <율곡 이이 평전> 을 통해서 새로운 율곡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특색인 것 같네요. 향약이나 처가와 친가의 재산분배과정과 '만언봉사', '성학집요' 등을 통해서 점진적 개혁인 '경장' 과 '안민' 을 최우선시한 철학은 범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했던 율곡을 세인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자리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후학과의 연결고리와 모친인 사임당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에 대한 비판이 부족하였지만 특별나게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은 발견할 수 없었던 것 같고 무게중심이 어느 정도 잡힌 평전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율곡 이이' 을 재해석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없는 것이지만 만약에 율곡이 좀더 생을 이어갔다면 동서 양진영으로 피튀기는 붕당정치나 임란같은 전란은 피할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게 할 정도로 그의 재능이 아쉽게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번 평전을 통해서 율곡의 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더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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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 마리나

 

  바르셀로나 미스터리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청소년 소설에서 성인소설로 옮겨가는 중간단계

  이 작품으로 카를로스 사폰 특유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마도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나머지 바르셀로나 미스터리 시리즈를 대하면 한 차원더

  쉽게 이해될 것 같습니다.

 

 

 

 

 

 

 

 2. 그람자 접목 / 조정래

 

  두말이 필요없는 작가 조정래선생의 신작 <그림자 접목> 입니다.

  미국관련 스토리일것 같기도 하고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지만

  그동안 작가의 성향에 거의 맞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3. 눈의 아이 / 미아베 미유키

 

  어린시절 겪였던 대상에 추리를 접목시킨 미스테리물로 미아베 미유키 만의

  독특한 서스팬스와 섬세한 추리가 돋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4. 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사회적 문제인 학창시절 왕따를 다룬 작품으로 성년이 된 이후까지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강하게 재현하는 왕따와 관련해서 20년간 삶을 다룬 작품입니다

 

 

 

 

 

 

 

 

 

 5. 아이스 / 에드 맥베인

 

  서스팬스하고 스팩타클한 경찰범죄소설인것 같습니다. 출판사 평을 보니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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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5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석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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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은 한마디로 상당히 곤혹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특히나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명성과 더불어 그 동안 그의 몇몇 작품을 대했던 가슴 깊은 곳의 울림만으로 보게 되면 더욱 더 당혹스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상당한 분량까지 더해져 작품을 읽는 내내 내가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이고 작가의 내러티브를 제대로 추적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몇번씩이나 가지면서 앞으로 나갔던 작품이기에 솔직히 지금도 머리속이 혼란스럽네요. 과연 같은 작가의 작품일까라는 생각 달라도 변신해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들 정말 작중 화자인 라이더 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작품이라면 침소봉대같은 생각일까요.

 

   자 첫 스타트 그러니까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피아니스트 라이더가 낯선 도시의 초청강연을 받고 호텔에 도착해서부터 대면하게 되는 포터 구스타프와의 만남은 그래도 봐줄만한 설정으로 출발합니다. 뭐 물론 여기에서부터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왠지 이 작품 만만치 않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쉴세없이 정말 숨도 안쉬는 것 처럼 주절주절대는 구스타트의 넋두리 아닌 넋두리에서 대충은 감이 오지만요(그리고 이 놈의 엘리베이트는 왜그리 늦는지 모르게 한없이 올라갑니다). 그래도 작품의 특성상 하나의 장치적인 설정이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을 향해 갈수록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은 처참하게 그런 희망이 무너져 버리죠. 하지만 그 이후 등장하는 호텔지배인 호프만(솔직히 이 인간은 정말 말이 많아도 너무 많죠 이부분에서 전 약간의 짜쯩스러움을 느꼈으니까요), 소피와 보리스(이 둘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은 또 다른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뭐 일종의 기시감 같은 그런 심리학적으로 몽환스러운 분위기를 접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혼란속으로 빠져들죠.), 브로즈키 등등등(정말 쉴세 없이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를 반복하면서 무슨 미로속에서 보물찾기 마냥 내러티브 전체가 꼬여 버립니다) 등장인물들이 하나 하나 출현하면서 이와 걸맞게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뒤틀려버리는 묘하디 묘한 설정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이쯤오게 되면 플롯이고 내러티브고 뭐고 개의치 않고 그냥 책장을 넘기게 되어 버리죠.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성정 자체에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면을 볼 수 있죠(참 뻔번해도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들면서 왠지 이러한 뻔뻔함을 무채색으로 덧칠하는 서사가 오히려 더 얄밉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개인적으론 남의 말은 귀퉁으로 듣는 안하무인격인 성정들로 인해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고 특히나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우리의 주인공 라이더의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행동들이 이런 감정들을 더 가중시킨다는 점입니다. 뭐갈까 등장인물들 모두다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서 그 세계만을 보고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죠. 물론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전기공 사내는 제외하고요. 그러니까 도시민 등장인물들의 한결 같은(정말 시종일관 한결같다는 미덕을 보여줍니다) 비정상적인 언행을 보여주므로써 그리고 화자인 라이더가 여기에 살짝 동조하는 분위기인 입장표명을 불명확하게 함으로서 자신의 혼란을 독자들에게 이입시키는 현상마저 불러옵니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2% 부족함(아마도 이게 바로 그 결정적인 2%가 될 것 같은데요 바로 '위로' 이지 않을까 싶네요) 뭔가에 매달리는 부분들이 우리 고전인 구운몽의 몽환적 분위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에 작품 저변을 흐르는 그로데스크한 색체에 블랙코미디를 능가하는 해학들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상실하게 하면서 그냥 눌러앉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작품의 결말을 기대했던 희망마저도 산산히 부서버리면서 내가 뭘 읽었을까라는 허탈감을 사정없이 부여해버리죠.  

 

   뭔가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면 나아지겠지라는 안도감이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도 오히려 계속해서 불안감을 증폭시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약간의 추리기법을 차용에서 독자들의 불안감을 유도하죠. (독자들은 라이더씨 입장과 시각을 따라가게 되고 왠지 그를 자기도 무르게 두둔하면서 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되고, 한편으로 생뚱맞는 처지에 놓이는 라이더씨를 위로 하면서 스토리를 밟아가게 되는 아주 묘한 설정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이 역시 가즈오 이시구로의 교묘한 장치적 설정으로 또한 이번 작품은 누굴 위로해야하는지 아니 독자들 스스로가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정말 헷갈리게 하죠. 사실 이러한 설정들이 화두인 '위로' 라는 개념의 주체성을 상실케 하는 역활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 전반은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된 위로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제대로 위로를 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설정이지만 결말부분에 전기공 사내가 한 말 "무슨 일이든 그 일이 일어날 당시에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처럼 여겨지게 마련이죠. 하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리 나쁜 일도 생각했던 만큼 나쁘지는 않습니다. 기운을 내세요" 외에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판단여부를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난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구요.

 

   사족으로 작품 전반을 흐르는 음악이라는 부수적인 소재가 훗날 <녹턴> 이라는 작품의 모티프 역활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을 위로의 형식으로 삼을려고 한 취지가 비슷하게 느껴지네요.(그런데 이부분도 재미있는게 그런 음악이나 음악가가 마치 존재하는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는 것이죠. 물론 소설이지만 상당히 허탈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특히 그동안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대면했던 독자들이라면 그 충격파가 더 클것으로 보이네요. 그래도 저 개인적으론 모던 클래식이라는 뉘양스와 가장 걸맞는 작품중에 하나이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고요, 카프카의 현신이 보이는 작품인 것 같았습니다. 비록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인내력을 시험받게 되지만 이 또한 작품을 통한 '위로' 보다는 독자들 스스로 '위로' 라는 담론에 대해서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 주는 거 같았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약간 서정적이고 여성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네요(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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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5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석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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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은 한마디로 상당히 곤혹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특히나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명성과 더불어 그 동안 그의 몇몇 작품을 대했던 가슴 깊은 곳의 울림만으로 보게 되면 더욱 더 당혹스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상당한 분량까지 더해져 작품을 읽는 내내 내가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이고 작가의 내러티브를 제대로 추적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몇번씩이나 가지면서 앞으로 나갔던 작품이기에 솔직히 지금도 머리속이 혼란스럽네요. 과연 같은 작가의 작품일까라는 생각 달라도 변신해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들 정말 작중 화자인 라이더 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작품이라면 침소봉대같은 생각일까요.

 

   자 첫 스타트 그러니까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피아니스트 라이더가 낯선 도시의 초청강연을 받고 호텔에 도착해서부터 대면하게 되는 포터 구스타프와의 만남은 그래도 봐줄만한 설정으로 출발합니다. 뭐 물론 여기에서부터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왠지 이 작품 만만치 않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쉴세없이 정말 숨도 안쉬는 것 처럼 주절주절대는 구스타트의 넋두리 아닌 넋두리에서 대충은 감이 오지만요(그리고 이 놈의 엘리베이트는 왜그리 늦는지 모르게 한없이 올라갑니다). 그래도 작품의 특성상 하나의 장치적인 설정이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을 향해 갈수록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은 처참하게 그런 희망이 무너져 버리죠. 하지만 그 이후 등장하는 호텔지배인 호프만(솔직히 이 인간은 정말 말이 많아도 너무 많죠 이부분에서 전 약간의 짜쯩스러움을 느꼈으니까요), 소피와 보리스(이 둘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은 또 다른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뭐 일종의 기시감 같은 그런 심리학적으로 몽환스러운 분위기를 접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혼란속으로 빠져들죠.), 브로즈키 등등등(정말 쉴세 없이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를 반복하면서 무슨 미로속에서 보물찾기 마냥 내러티브 전체가 꼬여 버립니다) 등장인물들이 하나 하나 출현하면서 이와 걸맞게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뒤틀려버리는 묘하디 묘한 설정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이쯤오게 되면 플롯이고 내러티브고 뭐고 개의치 않고 그냥 책장을 넘기게 되어 버리죠.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성정 자체에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면을 볼 수 있죠(참 뻔번해도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들면서 왠지 이러한 뻔뻔함을 무채색으로 덧칠하는 서사가 오히려 더 얄밉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개인적으론 남의 말은 귀퉁으로 듣는 안하무인격인 성정들로 인해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고 특히나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우리의 주인공 라이더의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행동들이 이런 감정들을 더 가중시킨다는 점입니다. 뭐갈까 등장인물들 모두다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서 그 세계만을 보고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죠. 물론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전기공 사내는 제외하고요. 그러니까 도시민 등장인물들의 한결 같은(정말 시종일관 한결같다는 미덕을 보여줍니다) 비정상적인 언행을 보여주므로써 그리고 화자인 라이더가 여기에 살짝 동조하는 분위기인 입장표명을 불명확하게 함으로서 자신의 혼란을 독자들에게 이입시키는 현상마저 불러옵니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2% 부족함(아마도 이게 바로 그 결정적인 2%가 될 것 같은데요 바로 '위로' 이지 않을까 싶네요) 뭔가에 매달리는 부분들이 우리 고전인 구운몽의 몽환적 분위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에 작품 저변을 흐르는 그로데스크한 색체에 블랙코미디를 능가하는 해학들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상실하게 하면서 그냥 눌러앉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작품의 결말을 기대했던 희망마저도 산산히 부서버리면서 내가 뭘 읽었을까라는 허탈감을 사정없이 부여해버리죠.  

 

   뭔가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면 나아지겠지라는 안도감이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도 오히려 계속해서 불안감을 증폭시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약간의 추리기법을 차용에서 독자들의 불안감을 유도하죠. (독자들은 라이더씨 입장과 시각을 따라가게 되고 왠지 그를 자기도 무르게 두둔하면서 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되고, 한편으로 생뚱맞는 처지에 놓이는 라이더씨를 위로 하면서 스토리를 밟아가게 되는 아주 묘한 설정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이 역시 가즈오 이시구로의 교묘한 장치적 설정으로 또한 이번 작품은 누굴 위로해야하는지 아니 독자들 스스로가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정말 헷갈리게 하죠. 사실 이러한 설정들이 화두인 '위로' 라는 개념의 주체성을 상실케 하는 역활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 전반은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된 위로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제대로 위로를 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설정이지만 결말부분에 전기공 사내가 한 말 "무슨 일이든 그 일이 일어날 당시에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처럼 여겨지게 마련이죠. 하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리 나쁜 일도 생각했던 만큼 나쁘지는 않습니다. 기운을 내세요" 외에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판단여부를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난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구요.

 

   사족으로 작품 전반을 흐르는 음악이라는 부수적인 소재가 훗날 <녹턴> 이라는 작품의 모티프 역활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을 위로의 형식으로 삼을려고 한 취지가 비슷하게 느껴지네요.(그런데 이부분도 재미있는게 그런 음악이나 음악가가 마치 존재하는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는 것이죠. 물론 소설이지만 상당히 허탈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특히 그동안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대면했던 독자들이라면 그 충격파가 더 클것으로 보이네요. 그래도 저 개인적으론 모던 클래식이라는 뉘양스와 가장 걸맞는 작품중에 하나이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고요, 카프카의 현신이 보이는 작품인 것 같았습니다. 비록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인내력을 시험받게 되지만 이 또한 작품을 통한 '위로' 보다는 독자들 스스로 '위로' 라는 담론에 대해서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 주는 거 같았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약간 서정적이고 여성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네요(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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