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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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5년 8월 일본의 항구도시 나카사키에 두번째 원폭이 투화되면서 일본은 질주 없는 기관차의 제동을 걸게되고, 세계는 다시 평화로운 상태로 환원하게 됩니다. 이 전쟁은 특히 한반도의 우리 민족에겐 지금까지도 많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근원이었고 지금도 일제강점기로 인해 발생한 여러가지 뒷처리로 이웃나라와 녹녹치 않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사건(원폭투하)은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 비극적인 현실(특히 일본인들에게는 더할나위가 없겠죠)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2발의 원자폭탄과 그로 인한 또 다른 피해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밖의 영역으로 남아있기도 하죠. 뭐 솔직한 표현으로는 그네들이 행한 행위를 생각한다면 2발만으로도 속이 시원찬지 않지만요... 그 동안 이러 저러한 여러가지 반일적인 감정이 녹녹치 않는 저에게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의 작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중에 하나가 출신배경을 떠나서 편협적이지 않는 작품의 서사와 전혀 일본적인 느낌을 받지 않게했던 필체등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 양반의 작품에 대해서 상다한 매력을 느꼈던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처녀작품인 <창백한 언덕 풍경> 이라는 작품은 사실 많이 망설여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왜 작가로서 첫 발을 딛디게 되면 아무래도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솔직한 담론등이 많이 깔리게 마련이고,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소개란에 '나카사키 원폭과 그 후에 대한 ㅇㅇㅇ ' 표현을 보고 이래저래 자신의 뿌리인 일본에 대한 일종의 화해의 제스쳐이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기에, 그리고 혹여 모를 면피성적인 미화가 있으면 어쩌나라는 불편한 심정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할까요. 그나마 그 동안 이시구로의 작품을 대하면서 전혀 일본적인 색체나 냄새를 느끼지 못하였기에 더 이 작가의 작품들이 마음에 들어왔는데 이번 작품으로 통해서 그런 감정들이 송두리채 사라지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최근래 들어 아니 소설 작품을 대한 이후로 처음으로 주저주저했던 작품이었습니다(이러한 선택을 한 자신에게 저주아닌 저주도 내려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선입관들은 그저 우려의 작은 목소리였고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마치 학창시절 긴가민가 했던 시험답안을 확인했을때의 안도의의마음으로 확인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네요. 그리고 한편으로 영향력 있는 리뷰에서 다소 요란스럽게 과장한 것은 아닌가라는 일종의 배신감도 들더라구요. <창백한 언덕 풍경> 은 미리 알려진 것 보다는 약간은 싱거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음 작품 전반에 걸쳐 원폭과 전쟁 이후에 대한 서사들이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하네요. 그러니까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전쟁의 상혼을 치유해 나간다는 통속적이고 뻔한 스토리가 없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지 않을까 싶네요. 아니 그저 종전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서사 방식대로 서사 되다보니 이러한 하나의 거대한 이슛거리가 주목받지 못하고 그저 강물이 흘러 가듯이 덤덤하게 흘러가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서사방식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하고요. 뭐 이런거죠 작품을 대면하는 동안 내내 도대체 그 핵심코어를 캐치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 아!~ 라는 느낌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몰려온다는 것이 이 양반의 주 특기이고 그런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 <창백한 언덕 풍경> 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즈오 특유의 무덤덤함을 정말 제대로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비록 생애 첫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뒤늦게 접하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강하게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 작품으로 그 동안 소개되었던 작품들을 갈무리해 보면 전 개인적으로 無爲的인 그러니까 뭔가 억지로 끼워 맟추는 인위성이 없는 그저 물이 흘러가고 바람에 구름이 흘러가듯 삶의 한쪽을 무덤덤하게 서사하는 방식이 가장 절묘하게 묘사된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발표된 그의 작품들을 보게되면 하나 같이 이런 느낌을 받게 하죠. 참 매력적인 작가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원류를 이번 작품에서 제대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카사키 원폭 이후 강제 해체된 일본제국과 패전국에서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그 얼마나 많은 가치관들이 서로 상충했을지에 대해선 그저 어림짐작으로도 이해할수 있는 상당한 임펙트였을텐데도 가즈오는 그러한 세기나 강도에 대해서 뭐랄까 철저하게 무시해 버린다는 점입니다. 언제 전쟁을 겪었고 심지어 언제 원폭을 맞았냐 하는 식으로 철저하게 외면해버리는 서사로 일관하면서 에츠코(상당히 작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은 그래서 어쩌면 작가 자신으로도 비쳐질 수 있는 여지가 있죠)와 사치코, 마리코 등 개인들의 극히 사소한 부분으로 격하시켜 버린다는 점입니다. 너무나 충격이 심해서 외면해버릴수 밖에 없는 굳이 기호화된 문자나 언어를 빌려서 말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더 전쟁의 상혼을 어필해 버리는 가즈오 특유의 문체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번 작품의 주된 코어는 전쟁의 상혼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한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있지만 독자들로서는 상당히 애매한 설정을 만나게 되고 마치 남의 집 이야기를 듣듯이 별 관심 없이 주목의 이유도 없이 스쳐가는 일회성의 멘트처럼 다가오는 것 같지만 왠지 모를 동일성을 하나씩 맞닥뜨리게 되면서 심연 깊숙한 곳으로부터 안타깝고 애잔한 감정이 솔솔 피어 오르게 하는 작품인 것 같네요. 무엇하나 이슈가 되는 논거나 극적인 반전에 독자들의 뇌리를 강타하는 임팩트한 서사(단 한 곳이에 있긴 하죠. 사츠코가 고양이를 익사 시키는 장면은 상당히 소름끼치지만요 뭐 여타의 작품이라면 그다지 눈에도 띠지 않겠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상당히 강한 임팩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전 일종의 과거의 단절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같은 장면은 없는 아주 밋밋한 내러티브이지만 손에서 놓지 못할만큼 끌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의 하나같은 왠지 비현실적인 성정들(이 역시 철저한 설정으로 보입니다)이 어쩌면 전쟁의 상혼이라는 트라우마를 에둘러 녹여 놓은것 같다는 느낌도 들게 하고요. 작품 전체적에서 풍기는 뉘양스가 아마도 원폭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했더라면 오히려 그 감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작가는 전쟁의 상혼이 가져다 준 등장인물들의 성정이나 말투, 행동, 시대의 변화상, 도심 거리의 묘사등 놓치기 쉬운 아주 소소한 부분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므로서 작품 전체의 생기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에츠코 자신의 과거 회상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는 결국 현재의 시점까지 그 끈을 끊을 수 없는(딸 게이코와 과거의 마리코)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만 게이코의 자살이 어쩌면 전쟁의 상혼이라는 딱지를 떼어버리고 특별한 것 하나없는 행복한 추억으로만 남을 수 있다는 화해의 제스처를 보여주기도 하죠. 참 교묘하게 트라우마를 어필하는 작품으로 왜 가즈오 이시구로가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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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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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범죄스릴러 소설' 하면 머리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대반전과 영화를 방불케하는 현란한 씬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를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독자들은 이러한 특수효과에 힘있어 내러티브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마치 주인공과 하나되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감정이입을 받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범죄스릴러 계통의 작품들 속에는 핏빛이 강하게 비치게 되고 인간의 극단적인 내면심리가 표출되면서 왠지 모르게 뒷맛이 개운치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강하고 충격적인 반전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이번 로버트 고다드의 <끝까지 연기하라> 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범죄스릴러 작품입니다. 어떻게 보면 범죄스릴러라는 분류에 포함시키기도 뭐한 상당히 소프트한 작품으로 표지에서 느껴지는 왠지 그럴싸한 느낌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자칫 독자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는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 동안 빠름과 하드에 익숙해진 눈과 마음을 또 다른 시각으로 돌릴만 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주목해 볼만한 작품으로 생각되네요.

 

   <끝까지 연기하라> 는 한때 잘나갔던 배우 토비 그리고 나름 한때나마 삶의 안정적인 터전이 있었던 데릭의 묘한 만남을 스타트로 이혼직전의 아내의 등장과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한정한 내러티브의 서두에서 왠만한 독자들이라면 대충의 작품 분위기를 예견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그 동안의 내공을 살려서 나름대로의 추리를 씨줄과 날줄을 동원해서 하나 하나씩 엮어가기 시작하게 되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쾌감을 느껴가게 되는 거죠. 뭐 그리고 내러티브자체가 어느 정도 예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더욱더 그 쾌감은 오래 가죠. 하지만 초장에 느꼈던 이러한 예견들이 너무나 일률적으로 진행되기에 독자들은 또다른 한편으로 복잡다층적인 트랩구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면서 복선의 실마리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근데 찾아봤자 별로 없다는 점이 더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죠 어! 이게 다야! 라는 허탈감과 함께 뭔가 있게지라는 기대감이 오버랩 됩니다. 마치 연극무대에서 다음 장면을 넌즈시 예상이라도 하는 형식처럼요.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기대했던 대반전은 없다고 보는편이 속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연극의 막이 내릴때 까지 객석에 앉아있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전달됩니다. 그나마 접신이라는 돌발상황을 만나면서 위로 비슷한것 받지만요 왠지 이 부분의 처리가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


   접신과 관련된 녹음의 내용은 내러티브 전체에 대한 그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지만. 느닷없이 출현하면서 그나마 토비의 추리(상당히 어슬프죠 맞수 로저에 비하면 정말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고요. 근데 이런 설정이 오히려 더 토비에게 끌리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에서 실말리를 찾을려는 독자들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어 버리는 사태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지구본속에 감쳐진 설정까지는 좋았는데 말이죠... 뭐 달리 생각하면 큰 틀에서 이러한 설정도 그저 연극무대속의 하나의 효과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요. 왠지 어슬프고 설득력 없는 설정이지 않았나 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솔직한 심정입니다.


   왠만한 범죄추리스릴러 소설에서 볼 수 없는 나이브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강점이라면 강점입니다. 피와 음모와 추리 및 각종 트랩으로 점철된 하드한 범죄스릴러와는 다르게 상당히 소프트하고 잔잔하죠. 극적인 대 반전이나 서스펜스의 희열감을 찾아보긴 힘든 작품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반을 흐르는 일종의 긴장감은 주인공 토비의 직업인 배우처럼 각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왠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면서 독자들 스스로의 추리력을 발휘케 하는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대충 읽어나가다보면 왠만한 독자들은 전반적인 스토리를 예견할 수 있을 정도로 작가는 특별난 부비트랩 같은 설정을 거의 하지 않고 평이하게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죠. 마치 연극의 대본처럼 그저 각자가 맡은 역활에만 충실 하게끔 설정을 해놓고 있으므로서 독자들을 마치 연극무대를 바라보는듯한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내러티브의 평이함이 작중 돌발변수를 기대하는 심리를 연이어 끌어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다소 허망할 수 있으나 제목처럼 끝가지 연기하라에 충실했던 작품인 것 같네요. 마치 작가의 손에 모두 다 놀아난 느낌이라고 할까요... 뭐 오랫만에 잔잔한 파도에 몸을 맞끼면서 스토리를 만끽한 작품을 만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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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2]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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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 두말하면 입이 아플 그런 세계적인 작가이자 학자죠. 이 양반이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을까라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층과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 등 몇 안되는 작품이지만 그의 매력에 푹 빠져서 날세는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학활동뿐 아니라 기호학을 비롯한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활동을 현재까지도 하고 있는 대지성입니다. 사실 '기호학' 이라는 생소한 용어도 에코를 통해서 알게되었고, 그의 작품을 대면했던 독자분들이라면 이미 인지하듯이 에코의 작품세계는 기호학처럼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한 플롯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한번으로 완벽하게 소화될 수 없을 정도로 난수표를 대하는 듯한 기법들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접한 <프라하의 묘지> 역시 기존의 작품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복잡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정말 마지막에 이세욱 번역가님의 작품해설이 아니였다면 다 읽고 나서도 애매모호한 경계선을 널뛰기 했을것 같네요) 이것이 허구일까? 사실일까?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라는 것을 처음 출발부터 인지하면서도 끝까지 이런 의혹을 잠재울수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효과는 19세말 유럽사를 대충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더욱더 커지게 됩니다. 분명히 역사적 史實 이며 접했던 사실이기도 한데 막상 작품속에서 대면하다보니 정말 그런 사건이 있어나 하고 인터넷 포탈 서비스를 받아보게 되고 인물 검색을 하게 되면서 이러한 느낌은 더 증폭하게 되는 것이죠.

 

   이번 작품은 우선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나레이션의 화법에서부터 유니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니크하다는 말이 복수의 화자(시모니니 대위, 달라 피콜라 신부 그리고 이두사람을 중재하거나 조율해주는 전지적 작가라고 해야할 제3의 화자) 기법도 해당되겠지만 무엇보다 이들 화자들이 번갈아가면서 지나온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마치 동일 인물이라는 느낌과 함께 전혀 다른 별개의 인물이라는 느낌을 동시에 준다는 점이죠. 이러한 설정은 스토리를 자체를 더욱 혼돈스럽게(독자들 입장이라면 특히나 19세기말 유럽사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팩트와 픽션의 혼동을 더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스토리 전개방식이 마치 신문지상의 연재소설을 보는 듯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 챕터 하나 하나에 별도의 의미부여를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삽화가 삽입되어 있어 더욱더 이런 느낌을 부채질 하는 거죠.


   여기에 고풍스러운 용어의 선택과 '맛따라 기행' 이라는 느낌의 각종 레시피의 향연들이 뒤범벅되어서 자칫 아주 아주 무게감 있는 방향으로 흐를듯한 분위기를 걷어 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에코 작품들과는 차별성이 있는 작품으로 보여집니다.이러한 설정들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막판 대반전이라는 독자들의 몫을 다소 앗아가는 점도 있지만 시모니니와 피콜라 신부의 환상의 호흡 같은 연기는 극적인 반전에 맞먹는 에피타이저같은 맛을 진하게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 큰 실망거리는 아니라고 보여 지네요.여하튼 이러한 복잡성구조가 스토리 자체에 신빙성을 더하면서(물론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실이기도 하죠) 작품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왠만한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에코만의 진수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몇몇 인물을 빼고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19세기말 유럽전역에서 발발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마치 시모니니 한 개인의 작품이었다는 설정에 신빙성을 더해주면서 음모와 혼란 이라는 공적영역의 문제에서 다양한 진수성찬과 레시피, 추억의 카페나 레스토랑, 당시 유행을 알수있는 의상디자인과 개인들의 사유들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비록 종교적인 문제나 유대인에 대한 인종적 문제에서 많은 반향을 이르키겠지만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 측면에서는 마냥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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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2
자크 스트라우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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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예 작가 자크 스트라우스의 <구원> 은 굳이 장르로 말하자면 성장소설쪽에 들여놔야할 것 같습니다(저 개인적으론 100% 수긍할 수 없지만요). 사실 성장소설이라는 분야의 장르는 저 개인적으로는 그 다지 익숙치 않는 장르이고 약간의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뭐랄까 이도 저도 아닌 청소년들을 위한 일종의 본 게임에 들어가기전에 한 두번쯤 경험하게 하는 데모버전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해서 읽지도 않았고(아 참 물론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와 같은 해당사항이 없지만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구원> 이라는 작품도 성장소설이라는 자체를 모르고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요 왜 굳이 이 작품에 대해서 성장소설이라고 칭하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 정도로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호밀밭의 파수꾼' 을 리바이벌 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인생의 쓴맛, 단맛, 쾌감, 죄책감, 스릴, 감추고 싶었던 욕망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한번쯤은 겪어봤을듯한 그런 일련의 사태들을 이처럼 농밀하게(열한살의 눈에는 더욱더 농밀하게 보였겠죠) 서사해 놓은 부분들이 절로 수긍가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우리에겐 다소 낯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배경이 접목 되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더해 간다는 것입니다. 우선 작가의 출신과 성장배경에서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희망봉, 아파르트헤이트와 넬슨 만데라 그리고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산출지로 알려진(아참 얼만전 개최되었던 월드컵도 있네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우리에겐 상당히 낯선 나라이죠. 아프리카 대륙에 자리하고 있지만 왠지 유럽(백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팽창 제국주의의 피해 산물로만 인식되고 있기에 가해자의 시선보다는 피해자인 아프리카 흑인들의 시선에 더 심정적으로 팔이 굽기 마련이죠. 그래서 책에 나오는 다소 모호한 표현이나 흑인 하녀들의 삶과 흑인에 대한 비하적인 용어들을 보면서 씁슬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킬레스건이 다름 아닌 이번 작품을 더 빛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작가인 자크 스트라우스의 솔직 담백한 서사들이 위로 차원이나 대충 넘어 갈려고 하는 그런 어슬픈 화해의 손짓이 아니라 정말 화해의 장으로 소설을 구상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주인공 '잭' 과 잭이 바라보는 또래와 성인들, 남성과 여성, 백인(영국계, 아프리카너계), 흑인, 종교, 죽음, 性, 가치관등 삶의 모든 면에서 부딛혀야 하는 쟁점들에 대한 서사들이 하나같이 독자들 가슴속을 파고 든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성독자들이라면 잭과 같은 사춘기를 자연스럽게 회상하게 되면서 뭐 지금이야 입꼬리를 살짝 치켜 올리면서 웃음으로 마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세상 무엇보다 심각했던 그런 행동들에 대한 데자뷰를 맛보게 된다는 점이 또 다른 위안거리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음 공식적으로 활자화된 문서를 통해서 면책을 받았다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죠. 또한 여기에 남아공 전반에 대한 역사까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죠. 뭐 보어인이나 아프리카너라는 친근하지 않는 용어와 인종적 갈등이나 종교적 갈등등에 대한 남아공 특유의 가치관이 오버 랩되면서 종합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장면을 대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점은 원작의 "dubious salvation" 라는 부분들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던 점입니다. 구원이면 구원이지 의심스러운 구원은 무엇일까 뭐 딱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나름의 느낌으론 작가의 일종의 면피성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흑인과의 갈등에 대한 나름의 사과와 화해의 장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피해자의 시선에서는 완벽하지 못한 뭐랄까 마지못해 아니면 떠밀려서 혹은 세계가 바라보는 따가운 눈총 때문에 ,,, 그리고 또는 사춘기의 돌발적인 사고나 행동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100% 면제부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등 다양한 각도에서 완벽하게 단절된 느낌이 아닌 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개인들과 남아공의 현주소를 지칭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래서 더 솔직담백한 맛을 느끼게 하는 제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하면서도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잭이라는 주인공을 통한 두 단계의 시선 처리라는 점입니다. 첫번째 단계는 정말 사춘기 소년의 시선으로 아기자기 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표현 기법들이 왠지 독자들을 과거속으로 끌고 가서 주져않혀 버린다는 것이죠.(할머니의 죽음, 페트뤼스와 19금의 그림책을 보는 광경, 무엇보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관게에 대한 서사는 가히 일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독자들은 마냥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그 옛날 철모르던 시절로 갑자기 돌아가 기분이고 '그랬지 나도' 하면서 절로 웃음짓게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두번째 단계는 다 자라서 엄마 아빠의 말이 법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를 확연히 알게 된 성인의 시선으로 무덤덤하게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아마 이러한 시선처리로 인해서 더욱 더 전체적으로 상당히 매력있는 아이템과 그런 아이템을 맛깔나는 필체로 서사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성장소설이라는 한계을 뛰어 넘어 세대간의 소통을 이끌어 내면서(물론 협소한 의미죠. 좀더 줌 다운하게 되면 세대간 및 계층간 그리고 인종간의 소통으로 봐야 하겠죠)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여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낯선나라에 대한 이해가 들면서요(이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 이스라엘, 일본등과 더불어 세계 3대 惡으로만 생각했던 나라였는데요 이부분이 많이 완화되었습니다)굳이 성장소설이라는 현판을 걸어야 할 이유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보기 드문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차기작이 더 기대되게 하는 작가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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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타이거스 - 2013년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최지운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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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치 않는 기회에 큰 범주에서 말하는(속칭 전문가들의 잣대이자 뭐 보편타당한 논거로) '성장소설' 을 연거푸 읽게 되었네요. 자크 스트라우스의 <구원> 과 최지운의 <옥수동 타이거스> 라는 작품을 주말 내내 손아귀에서 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성장소설이라는 장르는 어쩌면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뻔한 주인공들(대게 갑자기 닥쳐온 집안문제와 사춘기 모드로 인한 자기 정체성의 불투명과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인한 학교생활 이를 하나 둘씩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개인 내면적인 승화의 결실.... ) 그리고 뻔한 결과들을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구조로 인해 그 작품이 그 작품인 것 같은 그런 뉘양스가 많았죠(물론 폄하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닥 일독을 권해싶지 않는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장소설(청소년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의 한계성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 밥에 그 나물에서 벗어날려고 하다보니 스토리의 과격성(약간 현실성을 결여해버리기도 하죠) 아이템의 비현실성으로 인해서 세칭 전문가들이 그려왔던 범주에서 궤도이탈을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어떨때는 그래서 굳이 이놈이 경계선을 왜 자를 대서 쫙 그어났을까라는 생각에 전문가들의 머리구조를 의심케 하기도 합니다. 아 참 물론 형편없는 저 개인의 생각입니다.

   우선 저는 이번에 읽는 <옥수동 타이거스> 라는 작품을 성장소설(청소년 소설)의 범주로 보지 않는다 점입니다. 굳이 영역을 지정해서 작가가 의도하는 담론의 나래를 미리 제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런 엉텅리같은 범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비록 주인공이 청소년(비행 청소년으로 봐야죠)들이고 그 줄거리의 핵심이 베틀(좋게 이야기해서 그렇고요 까놓고 말하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패싸움하는 내용이 주죠)과 용공고 폐교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실상 조금만 살펴보면 여기에는 지금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거대한 담론(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개인적)의 치열한 베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회소설이나 르포르타주 형식의 소설로 보는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할 정도입니다. 공적인 영역의 담론만을 가지고 내러티브를 구성했더라면 아마도 신춘문예 당선은 물건너 가겠죠. 또한 역으로 개인적인 영역의 담론으로 내러티브를 끌었다면 전문가들 이야기하시는 그저 그런 성장소설로 남았겠죠. 하지만 이 둘의 영역이 서로 서포터를 해주므로서 내러티브 전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느낌이 강하게 옵니다.


   여기에 공적인 영역과 개인적인 영역에서 결국 그 결과는 뻔하게 결말 된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공상적인 발상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현실성을 가미함으로써 오히려 더 피해자측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독자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부분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신예작가이지만 그 내공은 왠만한 기성작가 빰을 칠 정도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경영학 원론 인사관리에서 가장 우선시 하는 적재적소의 법칙을 이 만큼 철저하게 기법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몇몇 안되는 작가로 보여질정도 내러티브의 요소요소에 적절한 아이템과 스토리 거기에다 관중(오호장군을 열라 지지하는 층과 더불어 왠지 독자들도 모르게 그층과 하나가 되어 내심 쾌거를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형식(인터뷰,회고록,채팅창등)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한시라도 책을 벗어나게 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선 성공적으로 보여집니다. 바로 이러한 끊임없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으면서 작품과의 유채이탈 자체를 거부케 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싶네요. 뭐 문학적인 완성도니 필체의 수려함이니.... 아시죠 전문가님들의 뻔한 내퍼토리말이죠. 근데 사실 이러한 제도적인 부분들은 현실에서는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죠(마치 캡틴 파이브가 허구헌날 오현장군에게 묵사발 나는 것처럼요) 바로 이런 점이 최지운이라는 이름 석자를 독자들 뇌리에 각인시키는 것 같습니다.


   대게 신인들의 작품이 참신한 맛이나 기성 작가들에게 볼 수 없는 퓨어한 아우라를 무기로 모든 것을 용인 받지만 이 양반(제가 왠만하면 신인작가한테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데 절로 나오네요)의 이번 작품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그런 맛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왠지 선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구요. 근데 기존 선수들에게 느껴지는 닳디 닳은 느끼한 맛이 아닌 뭔가 대형사건을 칠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마음을 사로 잡게 한다는 것입니다. 직전에 읽었던 <구원> 의 신예작가에서 느껴지는 포스를 그대로 받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속이 후련(세칭 스펙을 다 갖추고 있는 캡핀파이브를 물리치는 오호장군의 활약상에)하면서도 마음을 짠하게 울리(극도의 자본주의 시스템논리와 특권계층의 강자의 힘이 드세하는)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희망이라는 메타포를 버릴 수 없는 이유를 직시해주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신예작가 답지 않는 도도한 필체가 어우어져 작품의 빛을 더해주고 독자들과 같이 소통하고 호흡할 수 있는 소재를 맛깔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상당한 반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인터넷창에서 파업창이 연속으로 뜨는듯한 유니크한 구조가 눈에 들어오고요 이로 인해서 독자들을 더 내러티브속으로 끌어들이면서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설정해버린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시간가는줄 모르게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하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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