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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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전에 국내에 개봉된 <방황하는 칼날> 을 원작으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뭐 영화는 영화대로 또 다른 느낌이 들지만 아무래도 원작을 읽어보는게 제대로된 작가의 의도나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더욱이 다름아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 더욱 더 그런 욕망이 앞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의 게이고의 작품들은 추리스릴러작품치고는 상당히 많이 영화된 사례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의 작품세계가 기존의 추리스릴러계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겠죠. 매번 사회적인 이슈를 한 두가지 작품속에 배정함으로써 추리스릴러와 사회성을 동시에 추구하기에 그의 작품들은 읽을때 마다 가슴 뭉클하고 속 시원하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하는 사유가 담겨있어 국내에도 많은 매니아층을 갖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번 작품도 어김없이 전 사회적으로 한번쯤은 꼭 생각해 봐야할 사유가 담겨져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영화개봉을 앞두고 각종 홍보를 통해서 '미성년자들의 성폭행' 그리고 이에 대한 미성년자들의 처벌 수위와 그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대책등 아직도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는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 이번 작품은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섭렵했던 독자들이라면 다소 의아한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그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회성 짙은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추리스릴러의 기본 ABC를 철저하게 지켜왔고 작품의 내러티브나 스트럭쳐등 거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독자들이 추리스릴러를 대하면서도 사회성 짙은 사회고발 소설을 동시에 접할 수 있었고 이 두가지의 면이 서로 절묘하게 연관되어 작품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던 독특한 작가였죠. 그런데 이번 <방황화는 칼날> 이라는 작품은 아예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심하고 집필한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작품으로 추리스릴러의 기본공식은 찾아보기 힘든 작품입니다. 초장에서 부터 사건의 전말과 그에 연관된 등장인물들 그리고 사건의 주 동기등 기본적인 기법등이 그냥 오픈되어 있고, 어느 누구라도 예감할 수 있는 복수와 그 결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뭐 내러티브만 놓고 보면 정말 뻔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번 작품은 사회고발성이 깔린 사회소설로 받아들이는게 타당할 듯 합니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이슈는 '미성년자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 와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보호책' 이라는 두 가지의 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 범죄가 성범죄일 경우 미치게 되는 개인적인 파장과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 기존의 법률이 정하고 있는 최대한의 안정적이라는 방책에 대해서 과감하게 그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죠.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라면 가해자나 피해자나 그에 대한 부모의 미묘한 입장를 십분 공감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한번쯤은 필히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좀더 확대하면 우리가 정해놓은 법규가 과연 타당할까라는 회의심마저 들게 하고요, 여러모로 가슴이 무거운 작품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화가 나고(여기에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그런 감정들이 더 증폭된것도 사실이구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탈감마저 들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자력구제가 용인될 수는 없지만 정말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요.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읽는 내내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습니다. 특히 중고등생 여학생을 둔 부모 독자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머리끝까지 열이 뻐치면서 몰입하게 만드는 내러티브를 갖고 있기에 흥분지속 상태에서 작품을 읽게 되고 마치 작중의 아버지와 동일선상에서 같은 사고와 같은 상상을 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면면을 살펴보면 상당히 공감할 수 있는 이슈들이 많았음을 알수 있지만 이번 작품만큼 급속도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작품도 드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리얼하면서도 솔직한 사유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마디로 쇼킹한 작품이기도 하죠. 이렇듯 독자들과 십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그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이 어필하는 부분이 뛰어나고 현실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고 그 예방책등 사회 전반에 작용하는 작용들에 대한 논의가 있길 바라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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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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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출판계에서 인문학 서적 붐이 일었죠. 딱딱하고 어렵기만 인문학을 어떻게 독자들의 눈높이 맞추어 널리 보급할까가 화두였는데 그 중심에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스토리 텔링" 이라는 기법이 활용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왠만한 독자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지만 당시만 해도 "스토리 텔링"은 출판계의 오아시스 같은 희망의 화두였습니다. 인문학의 세부 분야에서 너나할것 없이 스토리텔링기법이라는 단어의 선두주자로 나서면서 인문학의 이미지 혁신을 가져왔고 덕분에 일반 독자들도 인문학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스토리텔링" 이 과연 뭘까라는 의문 지극히 자연스럽게 따라오죠. 뭐 영어로 표현해서 뭔가 거창하고 고상한 것 같지만 우리말로 표현하면 아주 단순합니다. "이야기처럼 말하기" 뭐 이정도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럼 이게 모야라는 다소 황망스러운 느낌이 전해오죠. 이야기처럼 말하기 별거아니네라고요. 근데 바로 이 별거 아닌것에 모든 핵심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죠. 제 기억으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 공중파 교양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장면인데요. 사막 같은 불모지 한복판에서 유행과는 전혀 무관한 콤비차림으로 2:8 가르마를 정확히 구분해서 서있던 한 인물. 화성의 탄생과 지구와 화성의 관계등을 설명했던 천체학자의 모습과 그 느낌이 지워지질 않습니다. 바로 <코스모스>의 저자인 故 칼 세이건인데요. 아마도 이 양반이 스토리텔링의 선두주자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주라는 광대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학문을 이 양반처럼 쉽고 재미나게 그러면서 가장 핵심적인 코어는 뇌리에 박히게 설명했던 사람은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쉽게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칼 세이건의 포스에 맞먹는 한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뭐 이름도 상당히 유니크하고요(이름 가지고 이러면 안되지만요) 바로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 이라는 책인데요. 호모 픽투스(이야기하는 인간)와 그들의 이야기에 관한 재미나고 흥미로운 논거들을 알겠되었고 그것도 엄청난 포스의 서설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스타급의 저자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을 저서로 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군신화, 길가메시의 서, 그리스로마신화, 성경등은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한두번쯤은 들어봤고 그리고 그 한두번쯤 들어봤던 내용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무더운 한 여름밤 할머니 치마폭에서 들었던 무시무시했던 귀신이야기,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가공의 스토리로 무장한 무용담.... 이렇듯 우리의 주변에는 거시적이던 미시적이던 수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런 이야기들은 왠지 뻔한 스토리를 가기고 있지만 들어도 물리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런 수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 인류는 하나의 규범(정치,사회,도덕을 아우르는 규범)의 토대를 마련했고 그 규범을 통해서 인류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너선 갓셜은 바로 우리 주변에 넘처나서 정말 어디로 흘러가도 표가 나질 않을 이야기에 대해서 나름의 논거를 펼쳐나갑니다. 이번 저서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야기" 이고 그 이야기가 왜 존재했을까라는 막연한 퍼즐 풀기가 아니라는 거죠. 조너선은 우리 주변의 수 많은 이야기가 "왜 이토록 중요한가"에 대해서 그 포인트를 맞춰 서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인류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이야기에 슬퍼하고 이야기에서 희열을 느끼며 삶의 증거를 확인할고 있는 것일까. 자 결론부터 보자면 아마도 이런것이겠죠 그 이야기들의 역사적 사실관계가 픽션이든 팩트이던 간에 그 이야기들 속의 주인공이 인간이든 동물이던 신이던 간에 모든 이야기의 내러티브와 주제는 다름아닌 바로 우리 인류 자신의 투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슬퍼하고 그렇게 공감하게 된다는 논거입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저서는 그 취지에 걸맞게 논거의 핵심과 논거를 풀어가는 기법이 절묘하게 딱 맞아 떨어지는 저서라는 생각 지울수 없게 하죠. 책의 커버에서 부터 그리고 각챕터의 주제와 그 주제를 풀어가는 기법이 속되말로 3류연애 소설을 읽듯이 그저 아무 부담없이 읽어 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곳곳에 보너스로 가십거리인 삽화와 사진으로 읽는 이의 심적인 부담감을 한층 덜어 주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무게감이 전혀 없는 한번 읽고 지나가는 내용들이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라는 것이죠. 왜 우리가 정확하게 표현해서 우리 인류가 이야기에 광분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가장 근접하게 가장 쉽게 가장 흥미롭게 접근했던 저서라고 하면 너무 속보이는 표현일까싶을 정도로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와 인류의 역확관계를 재정립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저자의 풀네임도 왠지 이번 저서와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든 면에서 독자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하는 저서입니다.

 

           지금도 호모 픽투스의 진화는 계속되어 지고 있습니다. 픽션이든 팩션이든 이야기와 관련된 무엇이든 그게 찌라시라는 형태의 불온적인 내용을 담고 있든 상관없이 인류는 이야기를 갈망하고 확대 재생산하여 나름의 또 다른 이야기를 창조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면 그 속에서 진화를 거듭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무엇보다 이전의 관련 저서들에 비해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저서입니다. 책을 얼마 읽어보질 않았지만 여태 읽었던 인문학서적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인상깊게 읽는 책입니다. 뇌 과학, 동물들을 통한 각종 실험 뭐 이런 팩트적 요소보다 이런 일련의 팩트들을 정말 왠만한 프로작가들 빰칠정도의 어휘력과 순발력으로 독자들의 시신과 마음을 단숨에 사로 잡아버리는 매력이 있는 저자라는 생각 지울수 없게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래도 꽤어야 보배라고 조너선 갓셜은 바로 주옥 같은 구슬을 꽤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라는 느낌 강하게 오게 합니다. 이번 저서를 계기로 국내독자들도 스토리텔링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그리고 왜 우리는 스토리에 열광하고 일희일비하는지 또한 스토리자체가 우리 인류에게 왜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저작이라고 보여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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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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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타을 읽고 새롭게 알게된 러시아 작가, 기존의 러시아 문학작품과는 사뭇다른 느낌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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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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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영화보다 원작이 더 흥미진진하네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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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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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한세기를 보냈습니다. 15세기 그 화려했던 시기의 중심에는 태종과 세종이라는 거출한 두 군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입니다. 자 이렇게 초창기부터 화려하게 불꽃을 태웠던 군주국가는 세계사를 통틀어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조선은 그 첫발자국이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이면에는 언제 터지질 모르는 폭탄이 잠재해 있었고 그 폭탄은 마침내 다음 세기인 16세기에 가서 사정없이 터져 버립니다. 그 폭탄은 『성리학』이라는 고고한 이름으로 그 자체가 폭탄이지도 모른체 조선을 강타하게 됩니다.

 

           초장의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조선왕조 개국사상 궁궐에서 태어나 세자로 간택된 두번째 왕인 연산군, 왕실의 총애와 기대감으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아버지 성종과 폐비 윤씨 그리고 할머니 인수대비 한씨, 공신과 기존세력들인 훈구파와 이에 견제세력으로 성종이 히든카드로 키웠던 사림파 이렇게 연산군은 외우내환이라고 할 정도로 주변환경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불우한 군주의 길로 가게 되고 결국 조선역사상 최초로 폐위되는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 등장한 중종, 비록 왕이 되고자하는 갈망했던 후대의 인조와는 달리 자신의 의사와 반하여 용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16세기 선조와 더불어 가장 오래기간을 용상에 앉아있어지만 결국 16세기 조선의 폭탄놀음에 일등공신 역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역사상 인수대비에 버금갈정도로 대가 센 여인이 등장하여 다시한번 조선의 생명줄을 뒤흔들게 되면서 조선은 성릭학이라는 미명아래 사화로 만싱창이 일보직전까지 내몰리게 됩니다.

 

           결국 16세기의 정점을 찍은 인물을 선조라고 봐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앞대의 군주들이 그나마 재기할수 있을정도의 여력을 남겨놨다면 이 양반은 한방에 조선을 그로키상태로 내몰죠. 망명까지 불사했던 조선의 군주 후대 인조와 더불어 이 나라를 말아먹을뻔 했던 군주이고 그 재위기간도 정말 길게 용상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나마 몇몇 제정신이었던 신하들과 백성들의 도움으로 지옥의 문턱일보직전에서 구제되었죠. 성리학의 긍정적인 면이라면 가장 크게 작용했던 위기탈출상황이 아니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후대에 의적 (아마도 그 당시 서민층들 사이에는 분명히 의적이라고 불렸을 테죠) 이라 불린 임꺽정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 참신하게 수록되어있습니다. 명종대(참고로 그의 모후인 문정왕후 윤씨가 나라를 쥐락펴락했습니다) 발생했던 도적의 무리에 대한 실록과 야사를 근거로 왜 이런형상이 발생했으며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땠는가에 대한 시각이 나오는데요 이부분에서 특히 주목할 수 있는것은 『성리학 유토피아』라는 대전제와 병행해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왕과 왕실, 관료와 이들의 모집단인 사족세력이 임꺽정무리를 바라보고 생각했던 부분이 자신들의 커다란 틀인 성리학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역시 이번에도 임꺽정을 기화로 세계각지에서 출현했던 역사속의 도적이나 의적에 대한 리뷰가 곁들어져 있다는 점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네요.

 

          자 그럼 여기서 왜 부제를 『성리학 유토피아』 라고 했을까? 한번즘은 생각해볼만 한데요. 흔히들 16세기하면 조선의 근간을 뒤흔든 미증유의 사건인 임진왜란을 가장 먼저 떨올리고 임진왜란이후 조선사회의 변화에 대한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지만 이번에 보는 시각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 대한 성리학이라는 사유가 얼마나 지대했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가에 대해서 바로 보는 논저가 깊습니다. 대게의 경우 임지왜란같은 전쟁을 겪고 나면 거의 멸망의 길을 걷게 되지만 조선은 그대로 그 명목을 이어갑니다. 다음 세기 다시한번 양대호란을 통해 전 국토가 초토화되는 위기에 봉착해도 오뚜기처럼 재기하여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데 그 가장 소중한 원동력이 바로 성리학에 있다는 논거중에 하나입니다. 전혀 틀린 논거는 아니죠. 사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리학이라는 사유가 왕과 관료 및 사족의 마지막 끝이었고 사실 이러한 명분이 조선을 지탱했던거나 마찬가지 이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성리학이 한반도내로 유입된 배경과 시기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고려말에 도입된 성리학의 주된 목적은 친원계를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체제유지의 교학으로 인지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조선이 개국하고 훈구파가 날뛰던 시기까지 이어집니다. 사림들은 이들과 정쟁에서 게임이 될 수 없었고 현실또한 백전백패하면서 사화라는 선비죽이기 게임에서 완패를 하게 됩니다. 조광조가 『도학정치』라는 슬로건를 들고 나와서 나름 선방을 했지만 결국 이 벽을 넘지 못했죠. 조선의 4대 사화중 명종때 발생한 소윤과 대윤과의 정쟁을 빼면 이러한 사림들의 슬로건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지만 명종과 선조대를 오면서 일대 변혁이 일기 시작합니다. 성리학을 체제의 교학이 아닌 일생일대 절대적인 관념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캐치프레이즈를 찾아내는 거죠. 이 중심에 익히 알려져 있는 이황과 기대승이라는 걸출한 이미지 메이커가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게 되면서 성리학의 유토피아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죠.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을 그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성리학의 힘이였던 것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요.

 

           이황과 기대승의 편지는 그 동안 일반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이라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이언적의 『서망기당무극태극설후』란 생소한 글을 수록하고 해석해 놔서 이부분에 관심많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에도 다양한 자료들과 화보들로 인해 16세기 조선을 이해할수있는 첨병 역활을 하고 있으며, 저 개인적으론 조선의 성리학 학맥을 한눈에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뒷부분 16세기의 창에서 언급된 청자와 백자에 관한 자료는 보기 드문 자료들로 당시 문화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 그리고 연산군에 대한 서술에서 기존에 대한 오해중 숙모격인 박씨부인과의 간통설, 모후(법적)인 정현왕후를 핍박했고 배다른 동생 진성대군(훗날 중종)을 죽음의 궁지로 몰았다는 내용에 대해서 색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는점이 눈에 띄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오희문의 『쇄미록』이라는 일기를 통해서 많은 사대부 양반들이 상업활동을 통해서 부를 축척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당시대나 지금이나 지배세력의 딴지는 여전했던것 같네요. 

          이렇듯 이번 <16세기-성리학 유토피아> 역시 전편과 비교해서 전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다변화를 갖게 해줍니다. 여기에 그 동안 역사의 주연에 묻혀 조명받지 못했던 조연들의 활약상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어 한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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