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지 하루키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1Q84> 에 대한 강력한 느낌만으로 정말 아주생각없이 예약걸어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지 하루키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1Q84> 에 대한 강력한 느낌만으로 정말 아주생각없이 예약걸어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계절에 안성맞춤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을 대면하게 되네요. 생각만해도 등골까지 시원해지는 제목에서 부터말이죠. 진작부터 읽어봐야지 했지만 사실 확실한 동기부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오만한 반일주의에서 오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라는 자기방어가 그동안 깊게 장벽을 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친한파인 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들은 빼놓지 않고 읽었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색깔성이 옅은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수 없이 섭렵했지만 나쓰메 소시키를 비롯해서 왠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에는 선듯 손길이 닿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라는 못된 생각이 들어차 있었던 거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이란 그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대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적인 사고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을 어렵사리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겨울이라는 계절하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는 것은 '눈(雪)' 일 것입니다. 적어도 열에 아홉은 겨울하면 '눈' 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듯이 겨울과 눈은 그야말로 뗄레야 뗄수 없는 존재감을 갖고 있죠.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서 겨울은 '눈' 의 순백만큼 하얀 이미지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하얗다라는 색깔은 자연스럽게 '겨울 빛'이라는 대표성과 일종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죠.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하얗다는 겨울의 색은 체감적으로 춥다라는 느낌보다 왠지 모를 포근하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기도 하죠. 봄, 여름, 가을 대표하는 빛깔들과는 사뭇다르게 그 계절 고유의 체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 역설의 어젠다를 가지고 있는 아주 묘한 빛깔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겨울은 삭막하고 썰렁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도태되고 그로인해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한다. 그러나 겨울을 대표하는 색깔인 흰색은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열정의 출발음 품고 있는 순수, 세상을 감싸주는 포근함을 먼저 선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겨울은 우리 피부가 느끼는 계절적인 요인보다 우리의 마음이 느끼는 감성적인 요인이 훨씬 더 큰 계절임에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이렇듯 겨울과 눈은 다양한 문학작품속에서 다양한 빛깔과 온도로 재 탄생하게 됩니다. 그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겨울은 어떤 빛일까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이 구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존재를 알지 못해도 그리고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세인들에게 회자된 문구이죠. 어쩌면 이 한 구절이야말로 <설국> 이 표방하는 작품세계를 적나라하게 서사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 정도 강한 임펙트를 주면서 동시에 이 처럼 한 계절의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먹먹하고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중에 하나로  겨울과 눈을 이 만큼 서정적인 언어로 밑바닥까지 깔아놓기도 힘들 만큼 겨울애찬가라고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겠죠.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는 전형적인 모던보이의 역을 맡고 있는데요. 무위도식에 자연을 벗삼아 전국방방곳곳의 명소를 유람하면서 게이샤 꼬드기에 명수이자 딴에는 일본전통무용인 가부키를 비롯해서 서양무용에 까지 널리 섭렵한 그야말로 왠만한 게이샤보다 높은 안목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온천장 즉 '눈의 고장' (정확한 지명은 언급 안되고 있죠 대충 니가타현의 어느 산골정도랄까요) 에서 게이샤로 삶의 터전을 재출발하는 여자 주인공 고마코와의 첫 만남에서 부터 날리는 시마무라의 작업멘트는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떠나서 그야말로 절로 웃음짓게 하는 세계공통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간결하면서도 은은한 여운을 남기는 문체를 선보이면서 앞으로 전개될 내러티브보다 오히려 이러한 인물묘사와 서사들이 왠지 더 끌리게 하네요. 출발부터 로멘스가 갖추어야할 웬만한 설정(199일만의 재회, 초여름에서 겨울의  한복판으로의 계절의 변화,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흐름과 역행하여 남녀 서로에게 쌓여가는 그림움등) 등을 큰 무리 없이(지금의 시각으로 볼때) 술에 술탄듯이 자연스럽게 끌어가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 남녀 주인공들이 서로를 향해 날리는 멘트 역시 현시대의 시각으로 봐서도 전혀 어슬프지 않게 다가오고요. 그런데 말이죠 내러티브를 따라가면 또 다른 묘한 점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웬지 기행문이나 여행안내서처럼 눈의 고장에 대한 자연환경과 그와 더불어 온천장을 비롯한 마을전체에 대한 묘사들이 마치 한폭의 수체화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개나 어린애들 온천의 여급들의 꿈임없는 모습들이 한편의 서정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해서 정겹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물론 이번 작품을 대하면서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심심하게 2% 부족한 갈무리로 종지부를 찍네요.(대게의 경우 클래식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대동소이하지만 스토리에 대한 비중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아마도 현대 일본소설에 길들어져 있는 저 같은 독자들에겐 이건 모지? 라는 의아심을 갖게 하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클래식 버전의 또 다른 묘미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겉모습은 모던보이 이지만 막상 시마무라 저변에 깔려있는 감정적인 사유들은 '헛수고' 즉 허무주의 그 자체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인을 향한 사랑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것은 봄이 오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눈과 같은 허무감에 비유되는 플롯을 가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계절은 겨울 인데요. '눈의 고장' 에서 겨울을 대표하는 눈은 흰색을 상징하지만 이러한 흰색은 그져 우리들 눈에 보이는 스펙트럼의 일부일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겨울의 빛은 따뜻하고 포근하면서도 투명하고 쓸쓸한 빛깔을 지니고 있었던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작품 전체가 뿜어내는 빛깔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이렇듯 알퐁스 도데를 보는 듯한 서정적인 서사들은 요즘처럼 삭막함에 익숙해저버린 독자들에겐 쉼터를 제공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맛에 고전을 대하게 되고 고전을 사랑하게 되는것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인 <모방범> 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선보였지만 실상 많은 부분에서 후속작이라는 느낌이 거의 주고 있지 않는 작품입니다. <낙원> 은 전작 『모방범』 에서 출연했던 프리랜서 작가인 마에하타 시게코가 다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수년의 시간이 흘러지만 연쇄 살인범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마에하타 시게코의 심리적인 상태와 그로 인한 세상과의 담 쌓기등 일련의 『모방범』사건이후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벌어졋던 에필로그 비슷한 이야기에서 출발하는데요. 원낙 전작인 『모방범』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독자들의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겟지만 이번 작품 <낙원> 엄밀히 따져보게 되면 전혀 다른 범주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이코메트리' 라는 일종의 예지력 같은 존재가 단초가 되어 한 집안의 슬픈 죽음 이야기가 포커스가 되는 작품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사연과 그 사연을 둘러싸고 하나 둘씩 밝혀지는 또 다른 진실의 등장과 공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가 한데 뭉쳐져서 독자들을 작품세계로 맘껏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터치감과 등장인물의 현실성 있는 심리묘사 그리고 치밀한 사건들의 연관성과 그 해법을 맛보게 되는데요. 무엇보다 작중 화자이자 교통 정리자이기도 한 마에하타 시게코의 시각 (상당히 객관성을 담보하는 듯 하면서도 독자들의 울분을 적절하게 풀어주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으면서 전작 모방범에서 보여주었던 행동보다 상당히 성숙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으로 사건 전반을 바라보게 하는 탁월한 설정과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작인 『모방범』과는 사뭇 다른 비중과 접근법으로 등장하는 마에하타 시게코는 한번의 아픔을 겪은 경험으로 인해 이번에는 상당히 노련하고 원숙함을 보이면서도 사건 관계 당사자들의 들어내기 꺼려하는 상처마저도 어루만져 주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죠. 여기에 독자들의 답답함과 울분을 적절하게 해결해주는 멘트와 재치를 보여주면서 사뭇 답답하게 느껴질 사건 전개의 흐름을 상당히 완화시켜주는 역활도 자연스럽게 수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이한점은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메인 사건의 경우는 상당히 오랜시간 즉 범죄용어로 공소시효가 지난 이후 세상에 드러남으로써 사건의 해결에 많은 장애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건이죠. 그렇다보니 사이코메트리라는 결정적인 단초가 다소 현실적이지 않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어쩌면 의도된 설정으로 봐야할 듯 한데요. 이후 이 사건과 얽혀 있는 범인의 현재를 예단할 수 있는 또 다른 스모킹건의 역활을 하기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 입장에서는 부득이한 선택이지 않았나 싶네요) 그 이후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반대로 극히 현실적인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15여년전의 사건을 시간의 역순으로 추적해 가면서 많은 주변인물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연관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통해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가는 재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서두에 범인이 확정되어져서 범인의 색출을 위한 추리와 스릴감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역으로 왜 부모가 자식을 죽였을까? 라는 행위에 대한 접근이 전면으로 부각되면서 인간 본성과 그에 얽힌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하나 하나 체크해 나가는 방식이 왠만한 추리스릴러보다 더 스피드하고 긴장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서사성과 연관묘사등이 이런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있기에 가능하겠지만요. 전체적으로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 지향적인 서사방식에서 독자들 나름의 추리방식과 사건의 접근방식이 절묘하게 조화되는 일체감을 맛보게 한다는 점에서 역시 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합니다. 작품 전체가 풍기는 뉘양스는 전작의 『모방범』 처럼 속도감 있는 스릴러라고는 볼 수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적절하게 서사함으로써 왠만한 스릴러작품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한편으론 자식을 죽여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 그리고 정말 뻔뻔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인간들 내면의 심리상태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참 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겠네요. 이번 작품 역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사회파적인 추리와 인간 본성에 내제되어 있은 근원적인 심리상태등을 적나라하게 표방하면서도 작품 전체가 갖고 있는 내러티브의 탄탄한 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인리히 뵐과 쌍벽을 이루는 전후 독일 현대 문학의 거장 권터 그라스는 좌파적인 작품으로 인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늦어졌던 대표적인 작가중의 하나로 새삼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당시에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매번 제일순위에 위치했던 작가였습니다. 워낙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쓰디쓴 (사실은 지금 시간이 훌쩍흘러서 보게 되면 그의 지적 하나 하나가 틀리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병들어 가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열하게 비판하고 있고, 그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요) 지적들로 인해 알러지반응 같은 불유쾌한 감정을 던져주고 있었지만 퀀터 그라스의 사유는 어찌보면 정말 정확한 지적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죠. 무엇보다 근현대 독일이라는 나라가 세계사에 던졌던 거대한 파장에 대해서 통열한 자기반성과 비판으로 역사적 책임에서 회피하지 않는 모습은 비단 작가로서의 소명뿐만 아니라 일개 소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염치를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양철북> 이라는 작품은 세계에 권터 그라스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면서 전후 독일문학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 오랜 세월동안 세계 독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으로 강렬한 언어 구사와 암시적인 이미지, 반어와 역설 그리고 풍자로 가득한 서사적인 표현 기법으로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죠. 이에 반에 교회와 신성에 대한 모독 그리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인해 또 다른 독자들에게는 격렬한 비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양극단의 평가로 인해서 더욱더 세계 문단에 주목받는 작품이자 작가로 기억되는 경우도 흔하지 않는데요. 작품을 바로보는 시각에서 전혀 다른 영향을 불러온다는 그 자체가 이번 작품이 갖고 있는 묘한 매력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세인들에게 격한 반응을 불러왔다는 것은 이번 작품의 근간에 깔려 있는 사유에서 우리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살때 자기 스스로가 성장을 멈추었던 난쟁이 오스카라는 주인공의 시각으로 1899년부터 1954년까지의 독일 역사를 개괄하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현재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오스카의 회고를 기반으로 자신이 겪었던 독일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형식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정신병원이라는 현재와 오스카 어머니의 탄생비화를 비롯한 과거의 회상속에 담겨져 있는 오스카 가족사를 통해서 당시 이데올로기의 아노미상태였던 독일과 파시즘과 나치즘으로 격변하는 독일의 실상을 풍자와 반어 그리고 역설에 가까운 서사들로 묘사하고 있어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사유는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죠. 오스카라는 난쟁이는 귄터 그라스 자신의 현현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출생지나 부모의 직업등 여러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자 당시를 살았던 독일시민을 대변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양철북> 이라는 작품은 그야말로 한마디로 제단할 수 없는 수 많은 역설과 반어 그리고 풍자 여기에 교회와 신성에 대한 모독 포로노그라피보다 더 외설적으로 서사되는 부분들...로 점철되어 있지만 내러티브 전반에 깔려있는 사유는 그야말로 아주 단순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작품으로 봐야할 듯 합니다. 정상적이지 못한 오스카라는 인물이 정상적이지 못했던 시대를 탐미하는듯 보이지만 한편으로 정상적이지 못하기에 어둡고 깊게 숨어져 있는 비정상적인 것들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다는 역설이라야 말로 이번 작품의 주된 모티브로 시대가 그러했으니 나 하나의 개인도 어쩔 수 없었다라는 자기 합리화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기도 하죠.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현현인 오스카를 등장시켜 당시 독일을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에 철저한 자기반성과 각성 그리고 전후 독일에 불어 닥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비판을 동시에 담고 있기도 하죠. 귄터 그라스는 자신이 직접 온 몸으로 겪었던 역동과 불운의 시대를 오스카를 비롯한 약간은 비정상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당시 독일사회가 앉고 있었던 체제의 결함과 사유들을 고스란히 전달해줌으로서 시대의 불운으로 돌릴 수 있는 시민들의 자기합리화에 메스를 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작품 플롯이나 내러티브의 전개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상황묘사등에서 귄터 그라스 특유의 필치를 엿볼 수 있고,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성애의 서사들이 그야말로 압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죠. 밀란 쿤데라의 서사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하면서 인간 본성의 관음성과 내면 깊숙히 봉인해 버린 성에 대한 야릇한 생각들을 살짝 끄집어 올리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와 신성에 대한 작가 나름의 사유들은 비록 종교인 입장에서야 모독수준으로 폄하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병원과 과거를 넘나드는 스트럭쳐가 다소 혼란을 주기도 하고, 오스카와 나라는 화자가 믹싱되어 가독성을 높여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속에는 수 많은 사유의 표출들을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단어와 서사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무엇보다 작품속의 반어와 역설 그리고 풍자가 표방하는 의미가 그로데스크하고 유머스럽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귄터 그라스의 메시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와 더불어 행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