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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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위험한 비너스> 가 드디어 국내 독자들에게 새 인사를 하네요. 뜨는 작가라기 보다는 사실은 이미 국내 독자들층에 미야베 미유키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매니아층을 갖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대표적인 작가라는 말이 타당할 것입니다. 추리스릴러장르의 작가로 상당한 팬덤을 가지고 있고 오랜세월동안 그것도 상당히 다작인 작가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 잘 알듯이 추리 그 자체에 대한 천착보다는 추리와 인간 그리고 나아가 사회전반을 하나로 묶는 독특한 필력에 있지 않나라는 나름의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인간 중심의 내러티브 (심지어 추리장르의 계열을 뛰어넘어 외도에 가까운 작품들 역시 결국 모든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항상 따뜻한 인간이 있다는 것이죠) 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그런면에서 이번 작품 역시 색다른 면 (혹여나 어떤 독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뜬금없는 변신을 기대할 수 도 있겠지남요) 은 찾아 보기 힘들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의 작품이 기대치를 갖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순간적인 외도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위험한 비너스> 는 역자가 후기에 밝혔듯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품의 영화화를 염두해 두고 창작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여타의 추리스릴러계통의 작품과는 차별되는 부분들이 있죠. 상당히 오락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작품을 읽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게 하면서도 그다지 임팩트가 크지 않는 스토리같지만 치밀한 스토리 (이 부분도 상당히 주모면밀하게 내러티브 전체에 뿌려 놓으므로서 한가지의 스토리가 아닌 네가지 정도의 스토리를 가지고서 독자들을 공격하고 있죠) 의 다변화와 각각의 스토리에 가장 적합한 등장인물들의 선정,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완벽한 연기력을 끌어내는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스릴감... 정말이지 역자의 추측이 빗나가지 않음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그 동안 하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에게 익숙한 사건해결사의 이미지와는 완전 생뚱맞은 인물을 등장시켜 실소와 연민 그리고 일종의 동질감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는 점이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사건해결사는 수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마음씨 좋은 노총각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우선 이 부분이 독자들의 관심을 촉발합니다. 추리력이나 사건해결의 추진력, 명석한 두뇌회전 뭐 기본적으로 사건해결사가 갖추어야 최소한의 덕목조차 겸비하지 못한 인물인데요. 마치 미야베 미유키의 행복한 탐정시리즈에 등장하는 스기무라 사부로를 연상케 하는데요, 마음씨 착하고 도덕성까지 겸비하고 있지만 왠지 하쿠로는 스기무라 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이죠. 특히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야!!! 라고 무릎을 칠 정도로 친숙하다는 것이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노인과 미인, 어린아이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다는 점은 정말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솔직한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콤비역으로 등장하는 미모의 제수씨 가에데는 하쿠로와 반대편의 이미지를 전해주죠. 미모에 지성에 여기에 왠만한 남성도 범접하기 힘든 추진력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하쿠로의 의붓동생이자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아키토의 현현이자 대리인으로 설정했다는 그야말로 캐스팅 자체에서 이미 영화화를 작심한 행태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죠. 여기에 만만치 않는 유마라는 조연들이 등장하여 그 흥미를 배가 시킵니다. 한마디로 등장인물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흥미로운 구성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뭐 이번작품이 단순한 인물구도의 특색만으로 끌어간다면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 할 수 없겠죠. 기본적으로 네가지의 스토리가 각각의 미스테리를 담고 있다는 스트럭쳐에 각각의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서서히 증폭시키면서 결말부분의 반전을 통해서 한꺼번에 그 실마리가 풀어진다는 점, 그리고 각각의 스토리가 연동되고 전혀 어슬프지 않게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구성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히가시노게 게이고의 전매특허인 인간중심의 사유는 어디로 실종했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가장 획기적인 트릭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작가는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유를 설렁설렁 뿌려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봐서는 스토리와 인물에 집중하다 보니 놓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먼저 제목인 <위험한 비너스> 입니다. 왜 제목을 이렇게 선정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작품에 몰입하다보면 정말 작품의 제목을 망각해버립니다. 그만큼 내러티브에 끌리는 힘이 강하기 때문인데요. 두가지 관점에서 보게 되면 비너스라는 상징성에 대한 고찰일 것입니다. 신화속의 여신으로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이기도 한데요. 주인공 하쿠로는 제수씨 가에데의 미모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그러지 않을 남성이 과연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비너스 그 자체로 표현되니까요) 아주버님과 제수씨라는 극복할 수 없는 도덕적인 틀 속에서 자꾸만 이성으로 다가오는 여인 즉 개인적인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경종같은 사유를 보여주죠. 여기에 큰 범위에서 인간의 삶을 연장하고 병을 치료한다는 목적에서 잔혹한 동물실험과 인체실험이라는 범 인류적인 도덕성의 갈등 문제가 같이 오버랩되어 <위험한 비너스> 라는 사유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물론 작중 작품인 '관서의 망' 이라는 작품 역시 일맥상통하는 전달체로 등장하죠. 비너스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발을 들이밀어서는 안되는 영역의 존재로 도덕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어떤 불행한 결과가 올지 모른다는 일종의 경종으로 봐야할 듯 하네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는 현대의 우리에게 작가가 보내는 메세지이지 않나 싶네요.


           또한 이번 작품을 좀 더 재미있게 하는 요소들이 군데 군데 있습니다. 아비시니안 고양이, 피그미마모셋 원숭이, 다람쥐, 닥스훈트, 미니피그, 방귀가 멈추지 않는 스컹크 등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하는데요. 그 동안의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천착이랄까 한번 파고들면 거의 전문가적인 관점에서의 서사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번 역시 동물병원을 통해서 다양한 애완동물들을 접해볼 기회를 주네요. 여기에 서번트증후군을 대변하는 뇌과학분야 그리고 프랙털도형이나 소수의 문제를 비롯한 수학계의 난제들등의 생소한 분야들이 등장해서 작품을 읽는 내내 인터넷을 검색하는 고충까지 더해주죠. 물론 흥미로운 고충이지만요. 또 한가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요. 바로 '다이호 대학' 이라는 가상의 대학이 등장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니아들이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죠. 전작인『라플라스 마녀』『질풍론도』에서 등장했던 과학기술력이 우수한 연구원이나 교수들의 대학으로 등장하죠. 이번 기회로 다이호 대학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과학관련 논거의 에비던스처럼 활용되고 앞으로도 그렇게 활용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오락성이 작품 전반을 강하게 좌지우지 하고 있음에는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스토리와 작품 전체적으로 표출되는 거대한 사유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심도깊은 사유가 깔려있느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애완동물 즉 반려동물에 대한 입장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죠. 비단 반려동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좀더 확장하면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죠. "수의사가 상대해야 하는 건 동물만이 아니야. 그 보호자와의 관계도 중요하지. 어떤 의미에서는 이쪽이 더 중요하고 까다로워. 세상에는 별의별 보호자가 다 있거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반려동물에게 애정을 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기르는 사람도 있어" 라는 말의 숨겨진 의미를 되새겨보게 되면 반려동물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까지 그 사유가 확장되어 버리죠. 여하튼간에 이번 작품 역시 독자들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일말의 외도를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다음 작품으로 미루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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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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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하면 전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콜로세움 경기장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뇌리속에 떠오를것 입니다. 여기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정도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흥미진진하면서도 유니크한 역사를 가진 곳이 로마이기도 하죠. 로마의 정치적인 구조를 보게 되면 특히나 독특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는 데요. 왕정에서 부터 시작해서 공화정으로 그리고 다시 제정으로 이어지는 정치적인 구조는 세계사 어디를 찾아봐도 보기 드문 구조를 지닌 국가였습니다. 여기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듯이 가장 먼저 도시 인프라 시스템을 구축한 유일무이한 국가이기도 하죠. 유럽사의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있으면서 법률, 공학등에서 아직도 로마의 흔적은 세계 곳곳에 남겨져 있기도 합니다. 그 만큼 로마는 제국이라는 말이 가장 제대로 어울리는 테제이자 롤 모델로 남겨져 있기도 하죠. 사실 로마라는 소재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다보니 다소 식상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십여년전 시오노 나나미라는 일본 작가에 의해서 다시금 조명을 받았지만 속된말로 우려먹을만큼 다 우려먹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번에 재출간되는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 오브 로마시리즈> 라는 책은 기존의 로마를 다룬 서적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독자들을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기존의 서적들은 거의 신화나 로마라는 체제(정치,경제,사회,문화) 를 다루는 일종의 인문학서적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번 <로마의 일인자> 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끄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을 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와 한번 비교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물론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논란도 거세고 있지만 그래도 로마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놓고 보면요). 워낙 시오노여사의 로마인 이야기는 대중적인 인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할 정도로 쉽게 로마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니까요(사족이지만 그녀의 저서는 훌륭했지만 시오니 나나미라는 사람 역시 일본인이라는 절망감을 던져주는 인물임에 틀림없는것 같아 씁쓸하네요). 우선 『로마인 이야기』나 <로마의 일인자> 나 수많은 시간을 들여 철절한 사초를 검증한 팩트를 기반으로 하여 집필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둘다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어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죠. 무엇보다 기존의 로마관련 서적에서 볼 수 없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뛰어나 마치 로마라는 도시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온다는 것입니다. 그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큰 줄기인 장르이겠죠. 『로마인 이야기』는 분명 팩트를 기반으로 시오노여사의 약간의 상상력(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죠)이 가미된 인문학서적이라면 매컬로 여사의 <로마의 일인자>는 팩션, 역사소설이라는 문학작품이라는 점이죠.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로물레스라는 시조에서 부터 그러니까 로마의 탄생기부터 다루었다면 <로마의 일인자>는 기원전 110년 부터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후 진행되는 내용들을 율리시스 카이사르를 전면에 부각시키겠지만 이 주인공의 등장의 예비탄으로 쏘아 올린 인물들 역시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네요. 물론 인물중심적인 내러티브라 등장 인물들(로마인들은 아버지와 아들 심지어 손자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들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자꾸 책장을 돌려봐야하는 번거스러움도 있지만 또 금세 익숙해지기도 합니다)의 난해함은 존재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이 가독성에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죠,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는 효과도 내고 있으니까요. 시오노 여사의 『로마인 이야기』가 기존 로마사의 트랜드를 바꾸었다면 매컬로 여사의 이번 작품은 그 트랜드를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딱 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뭐랄까 인문학의 한계를 뛰어넘엇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것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는 어쩌면 과거 로마와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활을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각각의 영역을 구분짓게 하는 단서로서의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처럼 이번 작품은 역사소설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는 엄연한 픽션의 세계이지만 왠지 그 픽션의 세계가 나이브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로마인 이야기』보다 더 현실적이고 리얼리티한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주죠. 픽션이라는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린 작품으로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시키면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합니다. 공식적인 인물들을 주무대로 등장시킴과 동시에 마치 픽션에서나 볼 수 있을(분명히 픽션이지만요)법한 기법을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라는 엄연한 사실과 소설이라는 허구사이의 공간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거죠. 이러한 점들이『로마인 이야기』처럼 단순나열식으로 서사되고 기술되었어다면 이번 작품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망각의 강속으로 가라앉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컬로여사는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인 허구라는 감미료를 곳곳에 뿌려놓아 독자들로 하여금 미각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붙잡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혀끝에서 갈구하는 그 유니크한 감미료의 맛을요. 


          비록 팩션이지만 『로마인 이야기』에 못지않는 역사적 고증(전 개인적으로 『로마인 이야기』보다 오히려 더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과 리얼티하고 디테일한 서사가 눈에 돋보이는 작품이네요. 어느 정도인지 여성들의 속옷의 묘사부분이나 식거리의 재료 및 레시피등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수 밖에 없는 서사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시내의 지리적인 특징이나 구축되어 있는 각각의 건축물의 묘사는 거의 네비게이션을 틀어놓고 로마시내를 관광하는 기분마저 들게 하니까요.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역사적 특징을 제대로 매칭한 인물묘사나 심리적인 묘사들은 정말 살아있는 인물들을 대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러한 인물묘사들은 마리우스, 가이우스 율리시스1세(카이사르의 조부), 술라, 메텔리스, 루프스 등 역사적 인물들이 당시에 선택해야만 했던 결정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나름의 논거를 찾을수 있어 이해력을 높여 주기도 합니다. 또한 당시 로마에서 유행했던 난잡한 파티, 동성애 등 들어내고 싶지 않는 치부에 대한 서사들 역시 일품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로마의 일인자인 집정관은 일반인들에게는 상당히 냉철하고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비쳐지기가 쉬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또 다른 이미지를 생산해 냅니다. 나이브한 면을 볼 수 있고 한편으로 그들 역시 평범한 인간일수 밖에 없다는... 물론 픽션의 부분이 강하지만 이러한 서사들이 어쩌면 이번 작품의 백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중요한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내러티브라 인물에 초점을 맞출수 밖에 없어 보이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진행은 거의 로마사를 방불케 하는 모든 것이 함유된 절정체라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거대한 정치이데올로기적인 담론의 지향보다 일반 대중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 이번 작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로마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설정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먼 시대 먼 나라 이야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고, 마치 로마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출간된 <마스터 오브 로마> 시리즈가 예전처럼 중단되지 않고 끝까지 번역되어 세상의 빛을 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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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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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미 도미히코라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 제목 마저도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면서 왠지 조금은 으스스한 느낌을 끌어 당기는 묘한 끌림이 있어 선택했던 작품입니다. 물론 생소한 작가이고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기에 다소 망설였지만 그냥 과감하게 내지른 행위가 엄청난 보상으로 다가왓습니다. <야행> 이란 작품은 요근래 접했던 작품중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속을 맴돌 것 같은 느낌을 불러오는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제목 자체에서 풍기는 신비스럽고 판타지하면서도 왠지 괴담류 같은 후광을 던져주고 있죠. 가뜩이나 요즘처럼 습기 높은 무더운 날씨가 연일 지속되는 시즌에 특히 밤에 홀로 이 작품을 읽는다면 색다른 팁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물론 그렇다고 이번 작품이 무시무시한 괴담을 담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독자들 나름의 방식으로 상당히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 도 있을테고, 다른 한편으로는 묘한 철학적 논거를 담고 있는 아련한 기억속의 재회를 상기시키는 작품일 수도 있으니까요.


          기시다 미치오라는 요절한 동판화가의 '야행' 연작 시리즈가 작품의 전반을 부여잡고 있는 키워드로 등장하죠. 여기에 10년전 구라마축제에서 갑자기 사라진 영어학원 동료를 기리기위해 다시 모인 동료들의 비밀스러운 4편의 이야기가 동판화의 연작시리즈처럼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술회는 스토리는 왠지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공통적으로 동판화 '야행' 의 연작시리즈를 재해석하고 있고 상호간의 스토리가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되어 커다란 내러티브를 완성하고 있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우선 미스테리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무리없이 독자들의 시선을 일차적으로 사로잡죠. 여기에 네명의 스토리와 마지막 스토리인 오하시의 이야기까지 총 5편의 스토리가 대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 어느 이야기하나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게 만듭니다. 작가의 의도된 전략이겠지만 그 전략은 정말 제대로 독자들을 겨냥한듯 합니다. 각각의 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분량과 스토리마다의 울림 뭐 이러한 세부적인 요소까지 골고루 안배한듯한 느낌을 받게 하니까요. 여기에 뒤부분에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반전에 반전은 클라이막스로 한꺼번에 치닫게 해서 강한 여운과 암시를 남기고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夜" 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정말 적절하게 차용한 작품이란 생각을 갖게 하네요. 대놓고 펼쳐지는 괴담보다 은근히 암시하는 무서운 이야기가 오래토록 기억속에 남아 그 잔상을 지울 수 없듯이 이번 작품 역시 많은 시간이 흘러도 밤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작품의 분위기가 오버랩될 정도로 그 여운이 진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세계는 언제나 밤이다" 라는 서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새삼 다시 곱씹어보게 합니다.


          전반적으로 다소 판타스틱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왠지 상당한 리얼감을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요. 아마도 모리미 도미히코라는 작가의 힘이지 않을까 싶네요. 내러티브 자체가 판타스틱하지만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구성요소들은 상당히 리얼하다는 것인데요. 특히 등장인물들의 묘사나 주변 풍광들의 묘사는 리얼함과 더불어 로맨스적인 느낌마저들정도로 세밀하고 섬세하게 서사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을 더욱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야행> 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독자들의 뇌리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기시감처럼 재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하네요. 간만에 흥미로운 작품을 대면했다는 뿌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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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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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은 전체 여성의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환원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계급타파운동은 오직 계급 적대에 대해서만 그리고 값싼 노동력의 착취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것은 그들 분석에서 핵심적인 개념이었다. 집에서 일하는 수많은 어머니들과 저임금으로 일하는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이야말로 경제적 억압의 희생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성해방주의자가 그들의 정조대를 내던지는 바람에 모든 문제는 순전히 개인적이고 성적인 문제로 축소해 버렸다." 여러분은 이말에 동의 하십니까? 동의한다면 어떤면을 그리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왜? 물론 이에 대해서 여성과 남성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 해답들이 나올 것 입니다. 정답은 과언 무엇일까요? 확언할 수 는 없지만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존재 사이의 '틈' 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서로를 잘 알고 잘 이해한다고 서스럼없이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서로에 대해 가장 무지한게 바로 남성과 여성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 만큼 서로의 '틈' 은 물리적으로 벌어진 사이가 크지 않게 느껴지지만 반면에 심리적인 '틈' 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우리는 그 '틈' 을 메워보고자 하는 노력을 무던히도 경주하고 있지만 정작 그 '틈' 의 진실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죠. 바로 이런 '틈' 에 대해서 제대로 한번 생각해볼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멀리 가지말고 그냥 단순하게 남성과 여성의 벌어진 '틈' 을 생각해 보는 절호의 기회를 만나보겠습니다.  


          한마디로 정말 센세이션하면서 (여성독자의 입장에서 이번 작품은 일종의 대리만족감 내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안 그리고 실현 가능성이 정말 있을 수 있다는 반증을 보여주죠)  쇼킹한 진짜 쇼킹하죠 (그럼 이와 반대로 남성 입장에서는 이번 작품은 그야말로 쇼킹 쇼킹 !!! 그 자체로 다가옵니다)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대면했습니다. 물론 작품을 읽는 내내 두뇌의 좌측과 우측의 기능과 역활을 송두리채 바꿔가면서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다소 있지만 작품의 플롯만큼은 가히 극찬을 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막힌 발상의 작품이라고 단언하고 싶네요. 기존의 사고에 단단히 훈련되고 부지불식간에 세뇌된 시스템으로 인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용어와 그 용어가 상징하는 뜻에 대한 이해가 선뜻 가슴 아니 머리속에서부터 정리가 되지 않아 작품의 서두에 친절하게도 요약해 놓은 해설판을 수시로 보면서 재 점검을 해야 하는 불편을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 은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또 하나 더 센세이션한 것은 이 작품이 1996년에 세상에 선을 보였다는 것인데요. 물론 지금은 특별판이라는 타이틀로 재출간 되었지만 20년전에 이런 아이디어를 창조해냈다는 자체가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아 물론 이렇게 말하면 맨움의 지극히 편협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요. 아닌가 하여튼 남성, 여성 그 개념을 햇갈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소 유머스럽게 (이것도 남성의 편협된 시각에서겠죠) 다가오지만 내러티브가 표방하고 있는 사유는 굉장히 정치 사회 철학적인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동안 남성중심주의(가부장제) 사회문화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남성들은 여성들을 동등한 지위에서 바라보지 않았죠. 그리고 말로는 여권신장운동 운운하면서 마치 동등한 입장에서 배려하는 것처럼 하고 있지만 지금도 지구상의 많은 곳에선 남성들에 의한 여성들의 성차별이 진행중에 있는 것 역시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페호' (중세시대 여성들에게 강제적으로 착용 시켰던 정조대 내지는 브라와 비슷한 개념의 의상) 나 전족처럼 여성을 위한다는 취지에서 강압했던 여러가지 성차별적인 요인들에게 대해서 이갈리아왕국의 입장에서 패러디하고 있는 점들이 눈에 띄는데요.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가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될 정도로 다시한번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마르크스-엥겔스의 계급투쟁을 빗댄 '스파크스 주의' 패러다임에 대해서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죠. 성의 해방이 아닌 단순한 남성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미덕으로 했던 마치 진보주의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들에겐 지난 오랜세월 동안 행해졌던 여성에 대한 수많은 성차별과 억압 그리고 제도적인 차별들에 대한 역공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동반자로서의 성에 대한 재인식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지금의 성정체성과 제도적 스트럭쳐들에 대한 기본 패러다임이 얼마나 허술하고 억지주장인지 새삼 돌이켜 보게 하네요.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계급투쟁' 이라는 모토는 어떠한 시스템속에서도 (가부장제이든 모권제사회이든) 부인할 수 없는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인데요. 이 점은 작품속의 모권제사회에서도 철저하게 성정체성의 권력을 차진한 쪽 (작품속에서는 움, 즉 여성) 위주의 패러다임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 해주고 있다는 점이 왠지 씁쓸한 느낌을 자아내게 합니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팔루리안' 의 서사 역시 지금과 전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죠.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부분의 사유를 좀 더 확장 내지는 변용해서 픽션상이지만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물론 이번 작품 전반이 던지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왕 뒤집어서 서사할거라면 확 비틀어 버리는것도 낫지 않을까 싶네요.  


           이 작품이 유난히 돋보이는 것은 작품의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사유 그리고 이러한 담론들과 스토리를 형성하고 있는 세부적인 요소들이 기가막히게 정반대적 위치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마치 이러한 배치들이 들어 맞다는 아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름, 사고방식, 의상, 식사, 주거형태 나 주거문화 그리고 사회적 구조등 심지어 남녀간의 아니죠 여남간의 성행위와 성적인 매커니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의 역전된 모습을 보게 된다는 거죠. 상당히 혼란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머러스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미시적인 요인들과 거시적인 담론들이 기가막히게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움(지금의 남성)과 멘움(지금의 여성) 자꾸 헷갈리는데요. 완전히 뒤바낀 작품 세계가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신체적인 요소뿐 아니라 의상이나 이름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철저하게 남성과 여성의 역활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작품 세세한 곳까지 치밀하게 설정해 놔서 정말이지 작품을 읽는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이거 마냥 웃어야 할지 아니면 두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지 조차 혼동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성정체성과 더불어 이들이 만들어낸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입니다. 물론 이 작품을 읽은 남성중에 그저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도 있을 테고 여성들 중에 통쾌하다 뭐 이런 감정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우리들에게 성에 대한 정체성과 이를 구성하는 사회전반의 스트럭쳐 그리고 그가 표방하는 패러다임에 대해서 이제는 정말 심도 깊게 서로 고민하고 대화하는 장을 진심으로 만들어야할 때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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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사실 모리미 토미히코라는 작가는 생소한 작가인데, 단지 제목만 보고 일단 찜했습니다. 왠지 이 더운 여름 등골이 오싹할 정도는 아닐지언정 써늘한 느낌은 오는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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