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무덤 - 역사를 뒤집을 고고학 최대의 발견
찰스 펠리그리노 외 지음, 강주헌 옮김 / 예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 예수의 무덤  The JESUS Family Tomb >>

 
 

 우선 책제목자체가 카돌릭이나 기독교인에게는 상당히 불경스러운 제목이다. 예수의 무덤, 원제는 예수가족의 무덤이니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론 예수의 법적인 가족은 아버지 요셉,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남동생 4명과 누이 2명(복음서와 외전을 통해서)정도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선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고 심지어 아들까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저자인 삼차 자코보비치와 찰스 펠리그리노는 세계적인 다큐제작 전문가들이며 명감독인 제임스 캐머런과 타이타닉의 제작에 동참했던 인물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캐머런은 단지 터미네이터나 타이타닉같은 흥행성높은 영화감독내지는 제작자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화성 탐사선의 설계에 참여했고 유로파 우주 탐타선을 공동 설계한 과학자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책은 1980년 이스라엘의 구시가지인 탈피오트에서 정말 우연히 발견된 열 유골함의 무덤, 'IAA 80/500-509' 로 명명된 고대 1세기경의 가족무덤에서 시작된다. 한참 아파트공사가 진행중이던 중에 현장에서 아이들이 인간의 두개골을 가지고 축구를 하는 광경이 목격되었고, 독실한 유대교인 현장 책임자는 그 출처를 물어서 무덤의 입구를 발견하고 고고학청에 즉시 연락한다. 그리고 역사적인 발굴이 시작되고, 발굴당시 발굴을 담당했던 이스라엘 고고학자 3명은 유골함의 주인을 알려주는 표시(쉽게 백제의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쯤을 생각하면 될까)에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처음 유골함에 새겨진 이름은 '마리아' 그리고 다음 유골함에는 '요셉' 여기까진 가면 우리는 흔히 아주 귀에 익은 이름들이라는걸 짐작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마태' 이세가지만 봐도 불길하게도 신약성서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음 유골함은 예슈아 바르 요세프 즉 '요셉의 아들 예수" 거기에 이름앞에 커다란 십자가표식까지 포함해서 발굴단이 술렁였지만 우연의 일치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계속 발굴은 진행된다. 한편으론 내심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 그 다음은 예후다 바르 예수아 '예수의 아들 유다" 그리고 나서 발굴된 또 하나의 유골함은 '마라로도 알려진 마리암네의" 아주 애매한 유골함이었다. 처음 가졌던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잊혀지고 곧바로 안식일이 다가옴에 따라 현장을 스케치하고 유물함을 고고학청으로 이전하게 된다. 첫 발굴당시 가졌던 생각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분포와 요셉, 마리아, 마태등의 이름이 아주 흔했다는(우리식으로 치면 철수, 영희등)이유등 그리고 비록 1세기경으로 추정은 되지만 최근 대략 500년전에 무덤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들(유대 정통의식에 의하면 무덤에 매장할때 사용한 제기등이 보이지 않는점과 유골 3점이 무슨 의식을 의미하는 형태로 놓여있었다는 점등)을 통해서 그냥 1세기경의 가족무덤이었다는 선에서 종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509번으로 명명된 유골함 하나는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유실된다. 물론 여기에 초보 고고학자였던 시몬의 생각은 달라지만 그렇게 이 사건은 세인의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묻혀버리게 된다.

그리고 세월은 20년을 훌쩍넘어 2002년 삼차에게 한통의 제안이 날아오게 된다. 복음서에서 언급한 예수의 동생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삼차는 흥분했고 바로 다큐제작을 추진하게 된다. 그 고고학적 증거라는것은 바로 다름아닌 유골함이었다. 야코브 바르 이오세프, 아추이 테슈아 즉 '요셉의 아들, 예수의 동생, 야고브'라는 표시가 된 유골함이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그동안 예수와 관련된 수 많은 유물들이 발굴됐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면 조작된 것으로 판명이 된점을 비추어 보아도 이번 유물의 경우는 너무나 명백한 유물이었던 것이다. 삼차는 유대인이지만 그이 머리속의 논리는 과학적 근거에 초점을 맞추는것에 익숙해있다. 그래서 곧 바로 저명한 고고학자, 성서학자, 신부들을 통해서 확인작업에 들어갔고 언론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요셉의 아들 야코브는 진짜이지만 뒤의 예수이 동생은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판명되고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삼차는 굴복하지 않고 이스라엘 고고학청의 유물보관함을 수색하던중 1980년 발굴된 IAA80/500-509의 유골함을 발견하게 되고 그게 예수의 무덤 적어도 예수와 관련된 유물임을 직감하고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된다. 그와중에 캐머런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역사해부를 하게 된다. 
 

▶▶

이 책은 저자는 3년의 시간을 통해서 1980년 발굴된 IAA80을 예수의 가족무덤으로 보고 있다. 대상자는 예수 본인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아버지, 요셉, 그리고 동생 아고보(발굴당시 분실된 유골함), 그리고 충격적인 아내 마리암네 또한 예수의 아들인 유다등 예수가족의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과학적인 분석과 고고학적 근거, 그리고 통계학적 분석을 통해서 접근하는 방식으로 추론해 나간다. 그 와중에 마리암네가 막달라 마리아을 지칭하는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 까지 신학자들의 주장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고 DNA분석을 통해 예수와 마리암네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을 봐서 그럼 그 무덤에 유전적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이 같이 묻혀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부부라고 볼수밖에없다는 점등을 고려하여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을 부부관계로 설정한다.

그리고 무덤입구에 표시된 형상 세브런(V자를 뒤집어 놓은 표식)과 원 그리고 예수의 유골함에 표시된 십자가 표식등의 증거를 통해서 예수가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예수라는 인물은 기독교인이던 무신론자이던 간에 누구에게나 관심을 갖는 인물(역사적인물을 가정할경우)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다빈치코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만큼 저자들이 그쪽 전문가이니 더할 나위야 없겠지만. 하지만 왠지 사실로 받아 들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예수의 가족 무덤이 사실이라면 이 세계는 발칵뒤업지겠지만, 단지 아쉬운것은 발굴당시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긴 이스라엘에선 요셉이니 마리아니, 유다, 마태등이 이름이 너무 흔하니까 무시될수 있었겠지만, 유대인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죽은자을 불경스럽게 생각한다는 종교관으로 더이상의 발굴은 허락되지 않고 묻혀버리고 나머지 유골함들 또한 너무나 깨끗하게 세척되는 바람에 좀더 과학적인 분석을 하지 못하점등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석연치 않는 점은 종교인들이 태도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가게한 결정적인 원인제공자인 당시의 대제사장 가야바의 아들 요셉의 유골함과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멘 키레네의 시몬의 유골함이 발굴 되었을땐 서둘러 진짜임을 명시한 점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정작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에 대해선 외면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곤 이해한다. 예수의 유골이 발견되면 부활에 대한 기존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는가? 하지만 난 부활이 육신의 부활이 아닌 영혼의 부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꾸 인간 예수에 대한 동정과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복음서나 외전을 보면 예수의 순교과정과 매장 그리고 부활의 과정엔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베 홑이불밖엔 걸치지 않는 아이(성서엔 사랑하고 아끼는 제자)가 동행하고 그자리에 있게된다. 성서에 표현된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 이 사람이 어머미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를 보고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는 말이 왠지 이 인물들이 정말 가족관계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억측이겠지만. 한편으로 이 숨막히는 과정은 희대의 사기로 낙인찍혔고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전략했다.

그 만큼 역사적인 예수의 간절함이 배어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무신론자인 입장에서봐도 예수라는 역사적인물에 대한 지적갈구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것 아닌가 싶다.

끝으로 이 서평이 예수나 그의 교리를 따르는 종교인들에게 불쾌감을 줄수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아무런 생각없는 사람의 서평정도로만 받아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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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느낌의 체계가 구성하는 행위중에서 가장 반복의 빈도가 높은 양태를 "본능(instinct)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이유가 바로 이 본능을 어떻게 처리해나가냐에 달려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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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 사장이라면 죽어도 잃지 말아야 할 첫 마음
홍의숙 지음 / 다산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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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심 (初心 / Fresh Start)>>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책이다. 책의 내용이 흥미진지하던가 재미가 남달라서 순식간에 읽은게 아니라 정말 지금의 내가 처한 입장에 딱 들어맞는것 같은 느낌으로 빠져서 읽어버린것 같다. 책의 주인공인 최강민사장이 겪었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재기등의 줄거리 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것은 무엇보다도 처음 시작할때의 마음가짐 내지는 그런 초심을 잊지않고 기억할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성과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신문사 영업사원으로 사회첫출발을 하면서 신었던 낡은 구두를 초심을 일깨우는 물건으로 간직하고 있고 가장 힘든시기에 초심을 다시 둘러보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초심을 간직하고 있고, 그런 초심을 담긴 특별한 의미의 물건 내지는 장소, 사람등이 있을것이다.

초심이라는게 글자 뜻대로 처음이 마음가짐을 뜻하듯이 사람은 누구나 무슨일을 시작할때 항상 마음에 새기는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회사을 경영하는 사람이든, 정치를 하는 사람이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이든간에 그 첫 마음을 잊지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그 초심이 약간씩 퇴색해지고 언제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를만큼 달라지는게 인지상정일것이다. 그게 어찌보면 인간이란것에 대한 또 다른 매력의 일부분일 수 도 있겠지만. 

인생을 살면서 성공(이렇게 표현해도 될련지 모르겠지만)하는 사람들 중의 공통점은 뭐니뭐니해도 초지일관 처음과 똑 같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대다수인것 같다. 초심이란 어려운게 아니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기역하고 싶지 않을 뿐아니겠는가.

이 책에서 코칭하는 큰 부분은 사람의 신뢰만큼 큰 자산이 없다, 나의 잣대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타인을 존중하라등 흔희 자기개발서적에서 볼수 있는 그런 미사어구보다 '가장 힘들때 처음으로 돌아가라' 라는 말이 아니간 싶다.  

책을 읽는 시간내내 주인공이 겪었던 아픔과 좌절에 대해서 정말 뼈저리게 공감을 했고 아니 지금도 나에게는 진행형이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많은 위안을 받은것도 사실이다. 우린 초심을 잃어서 실패한 사람들을 수없이 지켜보아왔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알고 있고, 우리도 그 중에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하는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자체만으로도 초심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럼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해 주는 책인것 같다.

주인공의 낡은 구두 한켤레가 전부였듯이 나에게는 사업시작할때의 가만히 미소만 짖어주던 아내의 얼굴이 초심을 일깨우게 하는 모토가 된다. 우리도 초심을 상기시킬수 있는 나만의 모토를 가져보는건 어떨까 싶다....

가장 중요한건 누구가 지향하고 있는 행복이란 단어에 대한 막연한 꿈보다는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좀더 구체적인 개념을 자기 스스로 정립해보는게 초심을 일깨우는 방법이라면 방법이 아닐까 한다.. 모처럼 단비같은 잔잔한 여유를 가져다 주는 책을 읽어서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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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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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우선 서평을 올리기전에 몇가지 점을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우선 나는 무신론자 입장에서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 것이고, 종교에 대한 선입견 특히 특정 종교에 대한 어떠한 반감이나 배척도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고 서평을 시작해야 할것 같다. 간혹 종교인들의 오해를 살 소지도 있을것 같은 생각에...

리처드 도킨스는 현존하는 대표적인 진화생물학자이자, 분자생물학자이며 특히 동물행동학에 일가견있는 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보듯이 극히 과학자적인 논지에서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펴나가는 작자이다. 지금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인 지구라는 행성이 기원에 관해서 진화론과 창조론이 끊임없이 논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나 같은 무신론자들은 무슨소리냐고 할테니지만, 어떻게 창조론이 가능하다는 말이야 달을 가고 화성을 탐사하고, 태양계넘어로 인공위성을 보내는 현시대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솔직히 이 지구상의 50%를 훌쩍넘기는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를 띄던 간에 하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창조론 특히 설계자(신)의 계획된 설계에 의해서 지구 탄생, 우주의 탄생, 및 인류의 지금 위치를 설명할 수 있는 논거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다윈주의를 통해서 종교에서 주장하는 설계주의를 철저히 논박하고 반증하는 논리와 과연 종교가 인류에게 왜 필요한가? 그리고 그 종교의 최고점에 있는 신이라는 존재가 과연 있는가에 대해서 정말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반박하는 내용으로 상당한 공감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밑부분은 종교의 문제점 특히 종교가 유년시절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어린이에게 미칠수 있는 폐해(?)에 대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논박하고 있다. 어찌보면 도킨스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득실보다는 종교에 대한 득실에 더울더 많은 부분을 논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자신이 과학자이고 보면 굳이 진화론과 창조론중 어느것이 맞다는 논의 자체가 넌센스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많은 파생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믿는다 누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신?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흑백의 논리를 들이대어서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보면 그 믿음이 과연 진정한 믿음일수 있는냐는 반문도 해볼만 한것 아닌가 싶다.

무신론자냐 불가지론자냐 종교인이냐를 논하기전에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에 충실하고 사회구성원에게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깊이 든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념에 대해서 그게 종교인든 또 다른 어떤것이든간에 그 개인의 고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게(특히 가치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자녀들에게)인류 구성원으로서 도리가 아닌가 싶다.

물론 종교의 폐해만큼 무신론자들의 폐해도 있는게 사살이다. 우리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위정자들은 거의 모두가 그런 아킬레스를 철저히 이용하여 자기의 권력을 유지했던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단지 이책을 읽고 나서 씁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것은 지구상에 생존하는 생명체중 가장 자인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찌보면 하등생명체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떠한 종도 같은 종끼리 잔인하리만큼 철저하게 강박하는 종은 없다. 이 인류만이 유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신이 있으냐 없으냐라는 생존에는 별 큰 영향이 없는(물론 그게 인생의 전부인 사람도 있겠지만) 논거를 가지고 그리고 신이 있다고 믿는 부류중에 어떤 신을 믿느냐를 두고 서로가 지구상에서 한종을 멸절시킬만큼 적대적인 적은 아마도 없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 과연 개인의 생명존중만큼 가치가 큰게 있을까?? 사람목숨만큼 중요한게 있을까??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역,시대,연령,성별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누구에겐 삶의 전부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그 부분의 크기를 잣대로 시비를 가려서는 안되는게 인류사의 진정한 해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내편, 네편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저울질 한다면 과연 해답이 나올까??

배타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종교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무신론 또한 문제인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라는 말의 의미가 관연 무엇일까? 망상==종교라는 그런 생각을 먼저하는 사람은 그 또한 망상가이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이 종교를 비하한다는 표현이라가 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으론 종교나 무신론을 둘다 지칭하는 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이 아니 다수의 믿음이나 사고는 그 만큼 한 개인의 사고나 믿음에 대한 포용과 존중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나는 들리니 말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고도의 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흔희들 종교니 신이니 하는 말로 논박을 한다는 자체가 관연 무슨 실효가 있나고 반문할 수 도 있겠지만, 우리 인류의 마음의 저편엔 항상 종교와 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을 읽고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고 신을 부인하고 종교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악행들에 대해서 자잘못을 따지는 그런 계기가 되자는게 아니라, 보다 나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모두가 함께 품고가야 할 생각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만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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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주어진 상황에서 그때 그때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누가 먼저 효율적으로 악을 줄이고 선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는가를 겨루는 게임임다.

인간의 평등이란 모든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될 수 없다는 것, 모든 인간 개체가 그 나름대로의 목적적 가치를 지닌다는 추상적인 도덕이념일 뿐이며 모든 인간의 사회적 현실태를 규정하는 잣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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