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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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俱戴天之讐(불구대천지수)" 라는 말을 우리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고사성어중에 하나입니다. 부모의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뜻인데요. 아마도 이 고사성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한-일관계가 아닐까 싶네요. 너무 비약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 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뉘양스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 만큼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들어내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역시 양국간의 해결해야할 사안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표현이지 않을까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일본에서 출생해서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를 보게 되면 왠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얼굴이 붉혀지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비단 저 개인뿐 아니라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느낌이지 않을까 싶네요. 호사카 유지는 우리가 모르는, 아니 솔직히 말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던 우리의 근대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그간 일본과 국내 친일세력에 의해 왜곡되었던 사안들에 대해서 철두철미한 연구와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쾌도난마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어 준 학자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신친일파20197월 미래사에서 출간된 「반일 종족주의」가 주장하는 논거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다시피 반일 종족주의는 이영훈과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연구위원들로 구성된 뉴라이트의 역사의식을 대변하는 자들의 작품인데요. 대표주자격인 이영훈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자칭 경제학자이고, 이우연과 주익종은 뉴라이트계열의 학자로 역시 그 동안 쉼 없이 일본의 극우세력의 논거를 따르는 이들입니다. 이에 대해서 호사카 유지는 자신이 그 동안 발표한 논문과 저작들을 통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논거가 얼마나 왜곡되고 허상인지를 한방에 증명해 보입니다. ‘강제징용위반부그리고 독도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향후 이들과의 논쟁에 대한 포문을 열고 있습니다. 뭐 그 세부적인 사안을 여기서 논거할 필요성은 없다고 보여지는데요. 왜냐하면 하도 터무니없는 사안들을 주장하는 자들이기에 굳이 서평에 담을 필요성이 없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노리는 점이 바로 관심을 촉발하고자 하는 부분에 있기에 이에 대한 반응 역시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보여지지만, 호사카 유지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넘어갈 수 없다는 신념에서 바로잡기에 나섰다고 판단됩니다.

 

   그렇지만 왜 이런 자들이 이런 터무니없는 논거들을 주장하는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아마도 우리의 삐뚤어진 정치적 여건과 맞물려 있다는 점 그리고 이 틈을 간사하게 파고들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세칭 보수라는 정치적인 탈을 쓰고 마치 자신이 보수인양 주장하는 형국인데요. 이 점은 심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들이 보수라는 개념을 너무나 몰라도 아니 모르는게 아니겠죠. 보수이고 싶어 하는 거죠. 정작 건강한 보수입장에서는 몹시 불쾌하겠지만요. 모름지기 보수라면 국가의 국익과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인데요. 이들은 보수의 기본개념과 정반대의 입장에 선 자들이고 단지 신친일세력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본 아베정권과 그들과 맞물려 있는 극우세력의 역사의식에 대해서 심하게 비판하지 않습니다. 왜 그들은 그들 나름의 국익을 표방하고 있고 그렇기에 침탈전쟁에 대한 역사적 왜곡을 당연히 할 수 밖에 없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부분에 대해서는 우리측의 반박과 투쟁은 어찌보면 당연한 문제이고 바로잡아야할 순리이기도 한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참 묘한 형국이 이러한 불순세력들이 대한민국내에 존재한다는 거죠. 일본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논거와 거의 흡사한 이론을 가져다가 마치 사실인양 설파하는 이들이 일본내가 아닌 대한민국내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거죠. 그것도 세칭 보수라는 탈을 전면에 내세워 물타기하면서 말이죠. 물론 일본내에서도 극우세력의 역사 왜곡이 잘못되었다는 정상적인 목소리도 분명 존재하죠. 뭐 이런 측면에서 보게 되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행동도 이해를 해야 하는게 맞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친일세력이 마치 보수라는 극히 존엄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무임승차하는 행태가 지극히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직도 국내에서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논쟁거리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정치적 도그마에 휩쓸려 정확한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이영훈을 비롯한 신친일세력의 주장이 청소년들에게 혹은 보수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패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일과 보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코 친일이 보수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보수를 가치관으로 공유하는 자들에게 친일은 어디까지나 국익을 해하는 친일 종족주의자들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번 저서는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보수나 진보를 떠나서) 상당히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내용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어찌보면 왜 이렇게 까지 조목조목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아 가야면서 까지 질타를 해야 할까 하시는 분들도 상당수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점을 신친일세력들이 파고드는 부분이기도 하죠. 우리 역사에 부끄러운 부분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정확하게 어떻게 벌여졌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지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지나간 역사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언제가 다시 반복될 수 있는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았던 것이고 역사공부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던 것입니다. 최근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는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부르짖는 이들은 아마도 선조가 친일파였거나 아니면 한국인을 가장한 극우일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 만큼 우리 자신이 친일청산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틀을 정리하지 못하였기에 발생한 문제들이죠. 이번을 계기로 일본 극우세력에 놀아나는 신친일파세력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과 더불어 우리 역사 바로 잡기에 나서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친일세력 청산이라는 문제에는 정치적인 프리즘은 불필요 합니다. 그나마 요즘 청년세대의 적극적인 역사인식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며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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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독한 오후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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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모리아티는 이미 『허즈번드 시크릿』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오스트렐리아의 떠오로는 작가입니다. 이미 전작에서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심장을 거침없이 뛰게 하는 적절한 스릴러 그리고 절묘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내러티브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리안 모리아티는 등장인물이나 상황 그리고 배경 묘사에 있어 상당히 디테일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이러한 상황들을 한테 묶어 큰 덩어리로 묘사함으로써 미시적인 관점과 거시적인 관점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죠. 이러한 상당히 부조화스럽게 보이는 필치들이 오히려 작품 전반에 새로운 힘을 부여한다는 것을 이미 알만한 독자들이라면 캐취했을 정도로 신선한 매력을 선사하고 있는 작가이죠. 이번 작품 <정말 지독한 오후, Truly Madiy Guilty> 굳이 지역해보면 - 정말 미칠듯이 죄책감이 드는 - 정도랄까요. 작품을 읽고 나면 원제나 번역한 제목이나 둘다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죠.


          어느 날씨 좋은 날 친구의 옆집에서 우연히 참여하게 되는 바비큐 파티 그리고 그 바비큐 파티속에 뭔가의 비밀이 남겨지고, 그 파티 이후 세 가정의 비밀스러운 비사가 하나 둘 밝혀 지면서 그날 바비큐 파티에서 있었던 진실을 알아가게 되고, 그로 인해 세 가정이 은근히 눌러 두었던 각각의 또 다른 죄책감과 비밀들과의 화해... 대충의 스토리는 이런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죠. 뭐 그러다보니 결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해엔딩으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뭐 어찌보면 뻔한 스토리에 뻔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소지를 다분히 갖고 있지만 내러티브의 전개 과정은 다소 산만하고 어수선하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꽁꽁 숨겨져 있습니다. 일종의 추리스릴러 기법을 차용하여 두달전에 있었던 바비큐 파티와 그로부터 두달이 지나 '에리카-올리버, 클레멘타인-샘, 티파니-비드' 주연 3쌍의 부부들과 이들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비밀아닌 비밀들이 시점을 과거 (굳이 표현하자면) 속에서 하나 둘씩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기제는 다름 아닌 그날 오후의 '바비큐 파티' 이고요 바비큐 파티속의 사건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굴레에 빠져들게 됩니다. 여기에 비록 이 바비큐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던 조연급 인물들 역시 나비효과처럼 자유로울 수 없는 고백아닌 고백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 재미있게 설정된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왜? 아니 분명히 그날 오후의 바비큐 파티의 사건이 중요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으리라고 충분히 인지가 되는데도 리안 모리아티는 그런 독자들의 조바심을 얄밉도록 잘 이용하고 있죠. 파티가 있었던 두 달 후로 리셋된 시간속에서 시작되는 세쌍의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상황묘사는 정말 그 사건을 제대로 추측할 수 없게 다양한 설정들을 뿌려놓고 있습니다. 우선 맨 처음으로 떠오르는 가정 하나는 참석자들의 폭력? 혹은 참석자들의 불륜? (사실 가장 많은 이들이 얼핏 이부분을 떠올리게 하죠. 아니 그렇게 유도된 심문을 받고 말죠. 작가는 마치 그러한 방향으로 요상하게 대결구도 비슷하게 만들어 갔으니까요) 대충 이런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스토리 전개를 합니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바비큐 파티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서 아하! 라는 생각과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당했다는 뭐 그런 비슷한 느낌을 자아낼 만큼 작가는 치밀하게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지 않죠. 사건과 관련된 그 어떤 흰트 역시 주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면에서 추리스릴러 장르로 판단해도 될 만큼의 스릴감을 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번 작품 역시 전작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할 듯 합니다. 내러티브 전개의 기법이야 추리스릴러를 인용했지만 내러티브 전반이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휴먼드라마 그 자체이니까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건을 계기로 인간 본연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아니 어쩌면 끄집어 내고 싶은 않았던 비밀들의 실체를 마딱드리게 되고 그 비밀들을 그 사건을 계기로 상대방과 서로 화해해 나간다는 큰 줄기에서 보면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휴먼드라마 장르라고 보는게 타당할 것입니다.


          자짓 휴먼드라마라는 일률단편적인 밋밋한 분위기의 작품이 될 법한 내러티브를 추리스릴러 기법을 동원하여 작가들의 시선을 한시도 놓지 못하게 꽁꽁 붙잡고 있어 유니크한 맛을 내고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클래식의 음악처럼 현재와 과거의 일들이 서서히 (어떤이는 참기 힘들정도로 답답하게) 진행되지만 바비큐 파티의 결정적인 사건을 매게로 단숨에 놀이공원의 롤라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증폭된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게 만들면서 독자들의 눈과 가슴을 단숨에 제압해버립니다. 그러면서 이름 지울수 없는 묘한 매력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죠. 다시한번 리안 모리아티의 절묘한 신의 한수를 느끼게 하면서 왜 이 작가가 오스트렐리아를 대표하는 신예 작가로서 명성에


         이번 작품에서 덤으로 흥미로운 부분을 대면할 수 있는데요.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친 클래식이나 세미 클래식 계열의 음악들을 유트브를 통해서 들어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릅을 치는 묘한 끌림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요. 음악들과 그 음악들이 등장하는 씬을 오버랩해보는 재미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죠.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에 메인 테마곡으로 등장하는 야냐체크의 심포니에타가 작품 전반을 상징하듯이 이번 작품에 수록된 음악들을 통해서 작품의 분위기와 장면 하나 하나를 떠올려보는 재미도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클레멘타인이 첼로리스트인 만큼 첼로로 연주된 곡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듯 하네요. 이렇듯 리안 모리아티는 다양한 설정들을 통해서 작품의 품격을 나름 업그레이드 했고 이를 대면하는 독자들의 눈은 즐겁기만 해집니다.


          <정말 지독한 오후> 는 올리버가 수집벽이 강한 엄마를 대하는 에리카에게 던지 멘트에 모든 사유가 함축되어 있는 듯 하는데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사람은 당신이야. 당신은 장모님을 못 바꿔. 하지만 당신이 장모님한테 반응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어" 라는 말한마디에서 작가가 던지는 사유 그리고 이번 작품이 표방하는 '화해와 용서 그리고 미래를 향한 희망' 이 응축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상대방 (물론 그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르고 비록 틀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 어떻한 방법을 동원해서 바꿀 수 있고 그렇게 하기 보다는 내가 그 상대방을 보고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수있는 지름길이다라는 사실. 그리고 모든 오해와 곡해는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에게 시작한다는 그야말로 아주 간단한 진리를 그동안 우리는 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한번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고 되묻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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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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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중적인 작가 김진명의 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1983년에 발생했던 KAL 007 민항기 격추사건을 플롯으로  KAL 007 격추 사건의 내막과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 그리고  KAL 007 사건을 계기로 서서히 붕괴되는 공산주의 진영의 정치공학 그리고 이러한 과정속에서 역사의 뒷안길로 묻혀 버릴뻔한 새로운 진실등을 다루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김진명은 그 동안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와 우리 역사에 대한 상당한 자긍심을 고취하는 플롯들을 대상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죠. 여기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과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한 각고의 노력 일환으로 거의 르포작가에 버금갈 정도로 방대한 자료의 수집을 통해서 신빙성 있을 법한 (이 부분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지만, 상당히 수긍이 갈 수 밖에는 없는 제시물들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스토리를 끌어내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습니다. 


          <예언> 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손에 꼽힐 정도로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KAL 007 민항기 격추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983년 세계가 경악할 일이 벌어 졌습니다. 당시 냉전시대의 정점을 찍고 있는 시점에서 민항기 격추 사건은 그야말로 최대 피해자인 대한민국 국민을 비롯하여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겐 멘붕 그 자체로 다가온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건 이후 대한민국은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는 대규모적인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미국을 비롯한 우방들의 제재조치와 규탄으로 그 한해 동안 온통  KAL 007 격추 사건은 세인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러한 어마어마한 사건이 세월이 살짝 흐려면서 감쪽 같이 수면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죠. 뭔가 제대로된 진실의 규명 없이 (사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진실 규명의 능력도 없었지만요. 외신들이 사건 당일 난리법석을 떠는 동안에도 대한민국 방송의 뉴스는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만을 강조하는 멘트를 내보냈으니 할말 다 한 것이지만요) 일종의 사고처럼 서서히 잊혀져 가게 되고 이러한 망각은 집단의식처럼 작용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흘러 40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버렸습니다. 여기서 김진명은 이제야 그 진실을 되돌아 보게 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하나 하나 밝혀나가게 됩니다.


          작가는 물론 팩트라는 에비던스를 다양한 경로와 확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어 한층 더 신빙성을 높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팩트가 실상은 마주하기가 힘이 드는데요. 무엇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 사실과 에비던스가 던져주는 충격파는 상당한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격에 대한 총제적인 사유들 피해자가 더 지탄을 받아야만 했던 지난날 자화상의 민낮을 여과없이 보여주기에 불편한 심기를 감출 길이 없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감정들은 불편한 과거는 잊자는 집단망각증의 일환으로 치환되어서 자기 합리화라는 근사한 옷으로 갈아입고 버젓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시작일 수 도 있습니다. 


          이번 작품의 스토리가 KAL 007 민항기 격추사건의 진상과 그 비밀을 파헤치는 쪽으로만 치중되었다면 그저 한편의 고발르포형식의 작품으로 남았겠죠.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 또 하나의 반전을 가미하는데요. 다름아닌 '문선명과 통일교' 에 대한 주목인데요. 사실 이 두가지 키워드는 낯설지 않지만 왠지 거리감과 이격감이 상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죠. 비록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왠지 모를 '不' 의 느낌이 강한 키워드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 동안 많은 왜곡과 확대 재생산된 담론에 가려 실상 그 진실은 관계자외에는 알 수 없는 일종의 사이비종교단체 같은 뉘양스가 강한 것 역시 이번 작품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문선명과 통일교재단의 비화인 '승공운동' 에 대한 에피소드는 새삼스럽게 문선명과 통일교재단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냉전의 정점인 시대에 공산주의에 반대하여 그 체제의 붕괴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추진했던 인물이 다름아닌 문선명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대하게 됩니다. 다소 의아해 하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물론 작가인 김진명조차도 상당히 놀랐던 부분이니까요) 분명한 것은 이러한 밀알들이 모여 모여서 소련연방의 붕괴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은 제목에서 보더라도 KAL 007 민항기 격추사건의 피해자인 지민과 그의 복수를 다룬 스토리가 독자들의 눈을 자극하지만 실상 전체 작품의 스토리에서 이 부분은 크게 작용하지 않는 스모킹 건 같은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소련연방의 공산주의정권의 붕괴 과정과 이를 위해 희생되었지만 잊혀졌던 인물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죠. 한국, 미국, 유럽, 모스크바 그리고 평향을 기점으로 한 광대한 로케이션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KAL 007 민항기 격추사건의 진상에 제대로 접근하게된 계기가 되었고, '문선명과 통일교' 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데 일환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문' 이 예언했던 7년안에 공산정권이 붕괴한다는 예언이 맞아떨어졌듯이 또 다시 그가 예언했던 2025년을 기다리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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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역사 - 역사학자, 조선을 읽고 대한민국을 말하다
이덕일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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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역사는 흘러간 옛날옛적 이야기라고 하죠. 즉 과거의 일이라는 거죠. 그러다보니 굳이 과거의 담론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이해보다는 바쁜 현재와 더불어 불확실한 미래를 설계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뭐 단순하게 보면 이말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짝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과거의 현재의 거울이다는 표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역사를 되돌이켜 보게 되면 그야말로 현재와 같은 중복성을 쉽게 찾게 되니까요. 역사를 반면교사로 현재를 제단하고 미래를 설계해라라는 문구가 격언적인 울림이 더 이상은 아니다는 것은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를 보면서 다시금 느끼게 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비록 지난간 과거속의 사건들과 담론들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게 합니다.


          이덕일의 <칼날 위의 역사> 는 역사평설로 바로 조선사와 근대사를 되돌아 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더불어 실정을 되새겨 보고 이를 근간으로 작금의 대한민국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하게 하면서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안을 어렴풋 하게나마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 칼럼 같은 느낌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파탄이 난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라보고 있자면 굳이 멀리 갈 필요성도 없이 우리의 역사를 상고해 보면 조금이나마 이번 사태의 원인과 재발방지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저서는 더 실감나게 독자들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군주제에 붕당정치로 인해 조선시대 특히 선조이후의 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팽배해 있는데요. 이러한 역사적 시각 역시 많이 뒤틀려 있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시스템과 비교해서 보면 별반 차이점이 없어 보이기 때문인데요. 물론 민주공화제보다 군주제가 더 낫다는 표현은 결코 하니죠. 다만 조선사에서 우리가 깨닫고 취해야 할 좋은 시스템들이 수두룩 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조선시대를 현시점과 비교해 보면서 더 나은 방향의 어젠다를 발견했으면 합니다.


          지금의 권력구조인 대통령중심제의 폐단처럼 조선시대에서도 의정부 서사제와 육조 직계제를 둘러싸고 군주와 신하들의 권력쟁탈 줄다리기 싸움과 그로 인한 폐해와 장점등을 엿 볼 수 있는데요. 우리는 조선시대의 정치구조를 지금의 정치구조와 비교할 수 없다고만 단정하지 말아야할 정도로 권력의 중심과 그를 둘러싼 이권투쟁은 거의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지금의 권력체제보다 비록 군주제였던 조선시대의 권력체제가 더 이상적일 수 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비록 왕를 중심으로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지만(지금도 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전권이 부여되어 있죠)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등을 비롯한 언론기관의 견제와 이조 좌랑등이 가지고 있던 인사권등의 제도를 보게 된다면 지금의 제왕적인 대통령 제도하의 구조보다 더 효율적이면서 권력의 견제 역활을 할 수 있었던 구조였음을 알게 됩니다. 비단 이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조선시대를 상고해 보면 어떻게 권력의 힘을 분산시키고 집중시키느냐에 따라 그 명암이 극렬하게 나뉜다는 점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현재 성군의 반열에 오른 군주들의 면면을 보게되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다름아닌 권력의 최점과 그 권력을 받치는 중간계급의 끊임없는 소통이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소통의 바탕에는 백성의 민의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어야 하는 것이고요. (물론 지금처럼 100%의 민의 반영은 아니였지만 세종조의 세금징수와 관련된 일련의 여론조사 방법등을 유추해 볼때 지방관을 통한 민의의 반영이 있었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민의의 소통과 군주와 신하간의 소통 이렇게 삼박자를 잘 수행했던 군주들은 대부분 치세기간이 평온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제도의 개헌이라는 화두가 대두되었지만 결국 대통령중심제이던 내각책임제이던 이러한 정치제도의 변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과 시민간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앞선 시대의 역사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가지를 더 살펴보자면,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세월호 7시간' 과 긴박한 국가 초유의 재난사태에서 최고 권력자의 행동반경을 참모들 (조선시대로 비유하자면 승지들인데요) 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 과연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보더라도 어불성설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데요. 조선시대는 군주라는 개념자체가 사관과 왕를 보필하는 승정원의 승지들에게 의해서 일거수일투족이 남김없이 기록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금의 권력시스템 보다 뛰어났다고 판단됩니다. 최고 권력자에게는 사인의 개념보다 공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어 있었고, 때문에 조선시대의 군주는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죠. 그런데 현대의 최고 권력은 그저 권리만 있을뿐 의무는 없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여집니다.


          대부분의 권력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직화되고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조선시대 경연이라는 제도는 이러한 최고권력자의 경직화와 정체감을 유연한 방향으로 물꼬를 틀 수 있게 했던 제도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고사에 군주는 물에 떠있는 배와 같다고 했고, 태종은 권력을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라고 비유했던 말을 다시금 환기 해봐야할 때이죠. 그 만큼 권력은 한시라도 방심하게 되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는 뜻입니다. 계속되는 대통령들의 임기말년의 암울한 모습속에서 매번 되풀이 되는 국민들의 한숨 속에서 정작 우리의 정치권은 아주 단순한 국민과의 소통에 무관심 해왔던 것이 사실이죠.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시스템이 좋던 나쁘던 장구한 흐름속에서 보면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물리적 시간개념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겠죠. 중요한 것은 과거사를 반면교사로 부정적인 역사는 되풀이 하지 않는게 해답일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조선시대를 현시점과 비교해 보면서 더 나은 방향의 어젠다를 발견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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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장 행복한 탐정 시리즈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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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탐정 시리즈로 왠만한 사건해결사와 비견될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기무라 사부로' 가 독자들의 열렬한 바램을 의식했다는 듯이 드디어 개인 탐정 사무소를 차렸네요. 일명 '스기무라 탐정 사무소' 라는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이 바닥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런 의미를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작품의 제목 역시 상당히 고무적으로 <희망장> 이라는 명명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탐정활동이라 네가지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독자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는 직전 작품이었던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 스기무라 사부로의 개인사를 작품 말미에 언급함으로써 향후 그의 행보에 대한 어느 정도 팁을 제시하고 있었으나 사건 해결사라는 캐릭터로 전면에 부상하기에는 다소 체력이 떨어지는 느낌의 스기무라를 이제 돋보이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하는 시도를 감행하게 되는 작품이죠. 그녀의 선택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 우리는 수 많은 추리스릴러 작품을 통해서 강렬한 인상의 사건 해결사들을 접해왔습니다. 멀리 가지 않고 같은 일본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에 등장하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유가와 교수를 보더라도 냉철한 머리와 이성을 가지고 사건 해결의 키를 가지고 자기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죠.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들 사건해결사의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과 감정이입이 절로 일어나고 일종의 팬덤같은 현상도 보이는게 정상적인 수순입니다. '셜로키언' 이라는 현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들 사건 해결사가 등장하는 작품에 매료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은 추리스릴러 계통의 작품에서 사건 해결사의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죠.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은 그 동안 특정의 사건 해결사라는 캐릭터가 없다는 특징이 있죠. 뭐 그래서 다양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사건 접근이라는 평가도 받고 바로 이런점들이 사회파미스테리의 근간을 이룰 수 있는 점이다라는 평가도 있지만 내심 독자들은 아쉬운 점도 있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점을 미야베 미유키도 고민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누군가』『이름없는 독』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미야베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합니다. '스기무라 사부로' 라는 사건 해결사를 등장시키면서 세칭 '행복한 탐정 시리즈' 라는 기획을 하게 되죠. 이번 작품 역시 그 연장선에서 출발하는 작품입니다. 그 동안의 작품에서는 사실 사건 해결사 스기무라의 역활보다는 내러티브 중심의 전개가 일괄되게 전개되었다면 이번에는 사건 해결사인 '스기무라탐정' 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드디어 미야베 미유키만의 유니크한 캐릭터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말이죠. 이 스기무라탐정이라는 캐릭터가 상당히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미야베 미유키의 신의 한수를 엿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보더라도 그저 사람좋은 사람이자 이마다제벌의 데릴사위로 존재감 자체에서부터 주목받지 못하는 마음 여린 감성을 가진 딸바보 아빠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캐릭터로 그 동안의 작품들을 통해서 자리매김 했죠. 사건의 전면에 나서서 사건을 끌어가는 능동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고 가는 곳 마다 묘하게 사건과 연루되는 인상을 받는 수동적인 입장의 캐릭터로 기존에 독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건해결사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로 묘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죠. 물론 이러한 특징들이 그 동안 너무 강렬했던 사건 해결사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일반 독자들에겐 상당히 친숙하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나름의 우위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쪽의 사건 해결사가 독자들에게 공고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그 사건 해결사를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따라 진정한 승부가 결정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면에서 미야베 미유키라는 매력있는 작가는 자신만의 그러면서도 독자들의 감성에 충분히 호소할 수 있는 새로운 계통의 사건 해결사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미야베 미유키의 능력을 엿 볼 수 있죠. 특히 이번 작품을 계기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스기무라탐정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되니까요. 물론 업그레이드라는 면은 철철하게 탐정적인 스킬의 발전에 국한되는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스기무라가 가지고 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변함이 없고 아니 더 사람적인 측면에서 애틋한 면을 자아내게 하는 쪽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작품은 본격적인 스기무라탐정의 시대를 개척하는 작품으로 '성역' '희망장' '모래 남자' '도플갱어' 네가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요. 역시 이번에도 임팩트한 사건은 없다는 점이 공통적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스기무라탐정이라는 이미지와 매칭됨으로써 한층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죠. 전제적으로 네가지의 독립된 에피소드를 갖고 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결국 스기무라 사부로와 어떠한 형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죠. 시간의 순서만 살짝 바뀌었지만, 이 네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의 스기무라 사부로의 인간성 (뭐 이미 전작들을 통해서 그의 사람 좋음은 정평이 나있지만요) 과 탐정 독립을 하게된 계기의 비밀이 하나 하나 밝혀지는 또 다른 재미도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롱숏 방식으로 별개의 사건들을 전체적으로 한눈에 들어오게 하면서도 철처하게 미장센된 기획 아래서 에피소드와 스기무라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 그녀만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네요. 참고로 전작이었던『음의 방정식』을 꼭 일독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이 작품 역시 스기무라가 탐정으로 독립한 (정확히 말하자면 '도플갱어' 사건 직전의 일을 담고 있는 작품인데요) 이후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이번 작품과 시간적으로 근접한 부분이라 상호 보완되는 점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스개소리 같은 표현이지만 가가 형사나 유가와 교수와 같은 사건 해결사의 경우 본업이라는 경찰과 교수라는 점에서 먹고 살기엔 문제가 없지만 왠지 스기무라탐정의 경우 경제적으로 궁핍할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이 너무 좋다 보니 사건을 수임하는 조건도 재활용쓰레기 대신 버리기라던지 미성년자의 의뢰이니 그냥 무료로 해결해준다지... 이거 이래서야 도통 탐정사무소 유지가 될련지 모르겠네요. 물론 투잡으로 흥신소의 조사원을 병행하고 있지만요. 하여튼 미야베는 이러한 소소한 설정마저도 스기무라라는 캐릭터와 절묘하게 매칭되어 더욱더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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