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이 함께 읽는 근현대사
아사히신문 취재반 지음, 백영서.김항 옮김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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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대만, 일본 이 4대국은 지리적으로 아시아대륙의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현 세계경제판도 속에서 이들 4개국의 위치는 굳이 경제적인 수치로 말하지 않더라도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자리에 올라서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중국의 경우만 예를 들더라도 중국땅에 투자못해서 안달이 난 국가들이 시쳇말로 번호표를 뽑아들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150년전의 상황과도 흡사하다. 단지 투자에 대한 의도나 방식이 그 당시와 180도 바뀌었다는 점만 빼고선 말이다. 혹자는 이들 4개국이 일체된 경제적 통일성을 갖는다면 EU에 버금가는 엄청난 여파가 세계경제에 미칠것이라고도 한다. 그 만큼 이들 4개국의 역량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전가능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들 4개국의 입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지난 150년간의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은 그야말로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왜 그럼 이러한 구도가 형성되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소재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조차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역사적 편견을 이들 4개국이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공통된 현실이다. 그런점에서 이번 책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 올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은 대략150년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최근의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 까지 이들 4개국에 영향을 미친 10가지 역사적 사건을 최대한 공정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려고 하는 취지에서 편찬 되었다. 물론 일본 아사히신문에 특별연재된 칼럼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4개국의 상이한 역사인식을 통해서 공통된 합의점을 도출할려고 하는 의도가 강하다. 특히 4개국의 교과서를 비교함에 따라 10대사건이 자국사에 미치는 영향과 인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들 사건들이 일개국을 넘어 이들 4개국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해서 다시금 상고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면에서 이번 기획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싶다. 그동안 이들 4개국의 역사인식 특히 150년동안의 근대사에 관점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모를 정도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물론 그 진원지에 일본이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흔히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과거의 좋지 못한 기억들은 잊고 미래를 향해서 서로 相生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매번 정권이 바뀔때 마다 들어 온 이야기이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가해자의 철저한 반성과 그에 합당한 조치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것 아닐까 싶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기획은 상당히 진일보한 측면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갈길이 멀긴하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시도가 4개국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역사인식에 다소 유연된 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단초를 던져준 것이 바로 그 희망이 아닐까 한다. 세계의 어느 국가도 자국사의 인식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4개국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특히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라는 개념이 이들 4개국에는 서구열강의 강요로 시작된 근대화이기 때문에 지난 150년동안의 역사에 대해서 남다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로 부터 시작된 근대화가 결국 약자의 희생을 강요한 근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을 제외한 3개국의 역사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기억의 저편으로 떠나보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4개국의 교과서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듯이 자국의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인식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인 일본의 경우 간략한 사실의 기술형태이고 피해자인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그 당위성을 알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국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선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간략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이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150년간의 사건들이 이들 4개국 상호간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런면에서 세계사에 별도 분리한 동아시아사라는 항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4개국의 역사는 단절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상호 연결된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진 사건>이라는 책을 통해 새삼 근대화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의 중요함과 그 여파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들 열가지 사건을 통해서 4개국에 영향을 주었던 현실들은 좀더 他者的인 입장에서 견지해 볼 기회가 주어진것 같다. 그동안 우리도 일본에 대한 적대심이 역사 인식 저변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보니 당연히 역사인식에서도 상당한 왜곡을 가져온게 사실이다. 또한 한국사 이외의 동아시아사에 대한 관심도 적었던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다소 편협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국, 중국, 대만, 일본 이들 4개국은 지리적 근접성이나 한자 유교 문화권이라는 공통된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보기 힘든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50년전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서구열강의 침탈은 겪었다는 아픈 기억 또한 가지고 있다. 이제 그러한 서구중심에서 무게 중심이 동양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이들 4개국이 위치한 동아시아쪽의 무게감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들 국가의 역사적 기원은 오래되었다. 수천년의 역사중 극히 작은 부분이 150년간의 역사가 이들 4개국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한 시간적인 잣대를 적용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요즘 제기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수용하자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4개국이 편협된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다가 온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고 단순한 민족감정에만 의지하여 동아시아 역사를 인식할 것인가? 좀더 열리 가슴으로 역사인식을 할때라고 생각된다.

당연히 이러한 시발점에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정확하고 성숙된 역사인식이 최우선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한 선행과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공통으로 합의도출 되었다고 하는 인식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머지 3개국 역시 열린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진정한 가슴으로 악수하지 않는한 이러한 의도는 모두 공염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 하다. 지금도 간간히 들려오는 일본 극우파의 망발과 자국내의 비뚤어진 역사관, 갈수록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는 세대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래서 더욱더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출발이라도 없다면 정말 이들 4개국의 역사인식은 세계사에서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난 150년 보다는 향후 150년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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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 악녀 이야기
시부사와 타츠히코 지음, 이성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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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각종 악행과 비행으로 세계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들은 클레오파트라, 엘리자베스, 메리 스튜어트, 마리 앙트와네트, 측천무후, 서태후등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도 있고 프레데군트, 브룬힐트, 루크레치아 보르자,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처럼 다소 생소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후대의 평가는 이들에 대해서 후하지 않은 편이다.  심하게는 이 책의 제목처럼 악녀라는 불명예까지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들이 권력의 최고정점에 가까이 있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녀들의 권력행사로 인해 한국가 좌초의 위기에 봉착하거나 전쟁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된 것 같다. 특히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에서 그런 악행이나 비행이 더 부각된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의 주인공중 에레체베트 바토리,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 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게 악녀라는 평가는 한번 제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레체베트나 브랑빌리에부인의 경우 극히 개인적인 사이코패스라는 희대의 살인마로써 악녀라는 기준에 적합할 지 몰라도 그외 나머지 인물의 경우는 다른 평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절대권력의 쟁취를 향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캐들을 개인적인 치부로만 몰아가기엔 왠지 무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권력이란 피를 나눈 부모, 형제와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는가. 단지 이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권력투쟁의 과정을 개인적인 치부의 과정으로 매도할 수 는 없을것이라 본다. 오히려 뒤에서 온갖 부조리와 악행을 자행하면서 보이는 면에선 성군인양 행세하는 남성들보다야 더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이 되면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동전의 양면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필자의 의도 처럼 선과 악의 구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종교적, 문화적 잣대로 과연 규정할 수 있을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찌보면 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지 모른다. 성 바르톨로메 대학살의 주범으로 평가하는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경우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악을 제거한다는 신념으로 후세에 악행으로 평가받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과연 누가 누굴 악녀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녀들을 악녀라고 매도하는 우리에게 대리만족이란 미묘한 감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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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참하라 - 상 -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우리역사 진실 찾기 1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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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사학자인 필자의 <<왕을 참하라>>는 조선통사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통사와는 사뭇다른 시각에 저술된 역사서이다. 그동안 조선사를 군주내지는 권력층의 시각에 바라봤다면 이번 시각은 조선민중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조선통사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왕을 참하라>>를 읽고 느끼는 감정은 통쾌함과 서글픔이라고 해야겠다. 
우선 통쾌함이란 학창시절 역사시간을 통해서 배웠고 각종 역사서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 조선사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사유를 송두리채 흔들었다는 점(그렇다고 필자가 말하듯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신화나 소설은 결코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과 그 어느 역사서에서 볼수 없는 필자만의 거침없는 언어선택(죽일놈의 왕, 견공지자제분등)나 역사서에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지는 필자의 감정이입등이 마치 읽는 이로 하여금 대리만족의 기쁨을 주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이래로 당당한 양반가의 자손이라고 하는 이들이 보기엔 무척 당혹스럽고 소위 말해서 열이 받게지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정말 통쾌함을 감출수 없다.

두번째는 서글픔이다. 이점은 필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조선사 500여년을 통틀어 27명의 군주중에 세종과 정조를 제외한 세월은 일반 민중에겐 암흑같은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역사를 인식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사고는 고정된 관념에서 역사를 보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어두운면보다는 부각되는 부분을 더 조명하게 되고, 군주와 사대부층을 중심으로 보는 역사적 관념이 거의 도식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일반민중에 대한 역사적 배려나 인식은 소홀히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이번 책을 읽고 나서 느껴지는 감정이 서글프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측면에서 <<왕을 참하라>>는 책 제목처럼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리라 여겨진다. 조선의 역대 군주 27명에 대한 평가나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들의 무능과 부패등 그들의 치부를 고스란이 들어내고 있고, 민란등을 통한 일반 백성들의 삶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필자의 집필의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지 몇가지 점에서 필자의 의도가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은 절대군주의 나라인 왕조국가이다. 군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권력층 일부가 국가전체를 이끌어 가는 구조이다. 이는 조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역대 왕조국가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러한 구도를 부정하고 소위 우리가 말하는 만인이 평등한 국가라는 개념은 최근래에 들어선 국가개념일 뿐인 것이다. 사회구조가 이러하다 보니 역사적인 서술방식에서 일반 백성의 반영비율을 떨어질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일부 권력층의 시각으로 역사를 서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후대의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역사는 행간을 읽을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필자의 집필의도는 아마도 이 책을 대략 몇페이지 만 읽어봐도 알수 있을 만큼 그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 단지 아쉬운 점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뉘양스(그러니까 군주을 비롯한 지배계층과 민중과의 관계설정에서 너무 이분법적인 대립구도로 설정했다는 점)와 필자 개인의 감정이입이 책 전반에 걸쳐 너무 많이 실려있다는 점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조선사를 읽고 있노라면 입에서 좋은 소리나올 경우는 드물다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 만큼 안타까운 장면도 수없이 많고 필자의 표현처럼 입에서 개거품물고 싶은 장면 또한 많은 것이 조선사이다. 오죽하면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 만큼 가정이라는 것이 개입되면 필자가 평가하는 세종이나 정조에게도 적지 않는 부분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담지 못했던 면을 총대를 메고 만천한에 고한점에 대해선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칫하면 오류의 함정에 빠질수도 있다는 점이 심히 걱정된다. 특히 역사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된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오히려 편협된 시각의 역사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좌,우 두눈의 균형감각으로 통해서 봐야함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은 과거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미래의 바탕이 되고함임을 잊이 말아야 할 것이다.

조선사는 필자의 말대로 수탈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것은 아니다. 왕조국가에서 당연히 민중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 구조인 것이다. 세계사 유래를 찾기 힘들정도로 오래 유지되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고생하였겠는가 이는 말안해도 알고 있는 사실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조선사 또한 엄연한 우리의 역사라는 점에서 이제는 더이상 감출필요 없는 성숙된 역사인식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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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가지 결정 - 한국인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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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매 순간마다 선택 혹은 결정의 순간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이나 결정은 본의이든 타의에 의한든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그 결정이 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나 또는 더 나아가 조직체의 수장으로서 하는 결정 내지는 역사적인 위치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등 그 의미의 대소를 떠나서 선택과 결정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것이다. 이러한 선택이나 결정을 행할때 많은 참고자료를 동원하고 주위의 조언을 구하여 올바른 선택이나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이 책은 불교의 108번뇌라는 말처럼 우리의 한국사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108가지의 역사적 결정을 통해서 한국사의 맥을 집어보는 책이다. 사학계의 학자들의 추천을 받아서 한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 108가지를 위만 조선의 성립에서 2005년 민법 부계성 강제조항의 폐지에 이르기 까지의 한국사 전반에 대한 108가지의 중요한 선택을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108가지의 선택이나 결정중 한국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정들을 순위를 매겨 따로 편집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럼 한국사의 선택이나 결정중 가장 영향력이 큰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학자들은 한글창제를 가장 영향력 있는 결정으로 꼽고 있다. 그동안 우리민족은 독자적인 우리의 문자를 가지기 위해 고래로부터 많은 노력을 하였다. 신라시대 이두의 발명에서부터 시작된 독자적인 문자에 대한 갈망은 결국 조선 세종조에 와서 한글이라는 독특하고 과학적인 문자를 가지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한글창제가 돋보이는 점은 비록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으나 왕실이 주가 되어 국가적 지원을 받아가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설총의 이두같은 경우 개인의 역량이 지대한 역활을 하였다면 한글의 경우 비록 세종의 많은 영향은 있었지만 집협전학자들을 통한 총체적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한글반포이후 450여년후의 갑오경장시기에 국문으로서의 위치를 인정받기 전까지는 별다른 공식적인 역활을 수행하지 못하였지만 궁궐과 사대부가의 여성중심으로 한글에 대한 효과는 입증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아마 이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중국과 같은 한자를 공식문자로 사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몇안되는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게 된 배경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결정이 있어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사에서 가정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특히 분수령이 될 수 있는 결정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광해군이 절대군주의 자리를 보존하면서 치세를 계속했다면 호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좀더 개혁적인 정치를 펼쳐 발전적인 방향으로 역사가 나아가지 않았을까라던가, 근대에 들어 백범의 암살이 없었더라면 남북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역사적 선택이나 결정은 그 당시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몫인 것이지 후대의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는 선택이나 결정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한국사를 보면서 이러한 결정과 선택에 대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결정이 있는가 하면 안타까움에 한숨을 토하게 하는 결정도 분명 존재한다. 역사를 보는 후대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결정을 통해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지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되는 당시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우선시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향후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에서 비슷한 사례의 결정적 순간이 발생했을때 역사를 참조로 올바른 결정을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결정은 내리는 순간까지 그네들은 많은 번뇌와 생각을 하고 결정하였을 것이다. 물론 충분한 검토없이 이루어진 결정들도 있지만 대게의 경우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판단을 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단지 결정이후 발생하는 역사적 흐름이 선택과는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결정순간만은 정도를 향해 갔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역사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하는 점일 것이다. 후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결정적 순간은 객관보다는 주관이 관여되기 마련이다. 역사적 진실은 이러한 주관보다는 객관의 눈으로 바라봐야지 진정한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의 선택들을 지켜보느라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드는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인식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잘못된 결정은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이나 결정을 해야 한다. 비록 역사적의미를 부여하긴 힘든 결정이더라도 충분한 검토와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되풀이 되지 않는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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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5 -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진정한 승자들의 역사 한국사傳 5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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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한국사에 대한 저변확대와 역사인식 고취의 목적으로 방영된 교양 다큐멘타리의 최종판 한국사傳 시리즈가 완간되었다. 역사 서술은 중국 사마천의 史記 형식이 그동안 正史의 기술방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본기와 세가를 대표로 하여 열전을 포함한 사기는 지금까지도 불후의 명작으로 역사서의 최고봉에 올라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기의 높은 평가는 다름 아닌 열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분량의 절반을 넘는 방대한 양을 사마천은 열전에 비중을 두고 저술하였다. 그 열전에는 위인들도 있지만 간신, 자객 및 일반 평민들에 대한 내용도 부지수로 수록되어있다. 그럼 왜 사마천은 열전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역사의 주역을 다름아닌 인간, 사람에서 찾았기 때문인다. 즉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간다는 것을 반증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는 관심을 끌고 흥미로운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 잣대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더 흥미롭고 역사적 인식을 한층 더 고취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사전의 편집의도는 바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 내용이나 발켜지지 않거나 잘못 인식된 내용들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서 한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들에 대한 추적을 통해서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 인물이 역사적으로 미친 영향력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인물들의 고뇌와 신념들을 새롭게 부각시키므로서 진정한 열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이번 시리즈는 그동안 관심밖의 대상으로 분류되었거나 사실상 방치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조명이 있어 더욱더 반갑다고 할 수 있다. 홍역의 퇴치법을 발견하고 서민의료에 혼심을 다한 이헌길, 한일합방의 주역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의사의 후견인이자 독립운동의 후원자였더 최재형,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 우리 문화재 보호에 앞장선 전형필을 조명함으로서 그동안 역사의 뒷안길에 묻힐뻔한 사실들을 추론해주고 있다. 또한 조선의 혁명을 꿈꾼 자유주의자이자 영원한 이단아 허균, 어느날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 암행어사의 대표선수 박문수, 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통해선 그동안 역사에서 바라보았던 시각의 초점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특히 이순신의 새롭게 발견된 난중일기를 보면 우리의 의식에 각인되어 있는 침범불가침이 강인함 보다는 그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주목을 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망라해서 흥미진지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그렇고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 그러하듯이 역사의 주역은 사람들이다. 특히 절대권력자와 그 권력을 사수하는 이들의 이야기보다는 다소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일반인들과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층더 흥미로운 것이다. 역사라는 큰강은 이런 일개의 개인들의 사소한 역사가 모여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우리는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을 통해서 인물의 됨됨이와 역사적 사실, 영향등을 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름아닌 그 인물들의 주관과 신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그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삶의 지표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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