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구드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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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계사를 되 돌아보게 되면 마치 역사는 주어진 운명이라는 틀아래 정형화된 하나의 과학적인 법칙만큼 질서 정연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시간이라는 주어진 팩트하에 선 투입 후 산출이라는 물리적인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말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또 다른 궤도를 넌저시 우리에게 던져 준다.

그 화두는 바로 광기 내지는 열정과 우연 내지는 운명 일 것이다.
 
우선 광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각종 정복전쟁, 권력투쟁, 잔혹한 개인사들 그야말로 광기로 얼룩진 역사의 점철이다. 물론 광기가 이처럼 부정적인 역사진행을 가져온 것 만은 아니다. 동서양철학의 흐름을 보더라도 이러한 광기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우리가 사상이 사유를 향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만큼 광기는 역사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역사의 축은 바로 우연과 운명이다. 극히 우발적인 개인사도 어느정도 틀에 맞추어 진행되어 가는데 하물며 거대한 역사의 바퀴가 어떻게 허술하고 터무니 없는 것 같은 우연이라는 축에 의해서 흘러 왔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역사는 분명 우연이라는 축에 의해서 진행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역사이고 그래서 역사는 흥미로운 것이다. 

과학사를 보더라도 인류에게 결정적인 단초를 던져 준 사건들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노력에 대한 댓가로 이루어진 경우도 많이 있지만, 뉴턴의 사과처럼 정말 사소한 것에서 위대한 역사적 사실들과 과학적인 법칙들이 탄생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 할 만큼 허탈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마도 역사를 상고해 보는 입장에서는 또다른 보너스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이라는 정량화 되고 도식화 된 개념이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랬던 내일이지만 우리는 바로 이런 오늘을 무심하게 지나가는것 처럼 말이다.
여기 16가지 시리즈의 하나인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은 바로 이런 사소한 우연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쾰른 대성당의 설계도, 선사시대 인류의 실상을 알수 있는 아이스맨,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해독하게 된 로제타석, 우주의 기원 빅뱅의 비밀, X선이 발견, 곰팡이에서 인류를 구원한 항생제를 발견한 플레밍,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그리고 뉴턴의 사과 

이처럼 세계사적으로 위해한 발견들이 아주 사소한 우연에서 출발했다면 더욱 더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세계사를 통털어 역사적 변곡점에 위치한 사건이나 발견들이 이처럼 부지불식간에 우리들의 곁에 와 있었고 단지 그러한 점을 모르고 지나쳤던 것이다. 물론 기회는 항상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 온다고 하지만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경우 또한 드물 것이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세계사의 굵직한 발견은 운명처럼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흥미진지하고 많은이들의 주목을 끄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연내지 운명은 무엇보다 갈망과 거대한 열망이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망은 운명보다 강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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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교양강의>를 리뷰해주세요.
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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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史記>는 너무 나도 유명한 중국의 역사서이다. 본기, 표, 서, 세가, 열전으로 구성 되어 있는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로 향후 기록되는 중국의 모든 역사서의 바이블 같은 존재이다. 특히 중국 역사계에서는 절대 역사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불후의 저작이다. 더욱더 <사기>에 대한 평가는 바로 사마천과 직결 된다. 한무제 시대에 흉노족 정벌을 감행했던 자신의 절치한 친구인 이릉에 대한 처벌을 반대한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지만 궁형(남성 거세형)을 자초하여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한 <사기>를 완성했다는 점에서부터 <사기>라는 저서에 대한 그의 집념을 볼 수 있다. 그 만큼 사마천의 역사에 대한 남다른 사명 의식이 높았기 때문에 후대에 훌륭한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된 것이다.  


그동안 사기에 대한 번역서에서 부터 각종 해설서가 무던히 쏟아 나왔던 것 역시 사기가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필독 독서의 반열에 올라 있음을 반증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저서들이 국내 학자들의 해설이었다면 이번 <사기 교양강의>는 중국학자의 사기 해설판으로 시각적인 차원에서 유심히 볼 필요성이 있다. 우리가 중국 역사서나 기타 고전을 읽어보면 춘추필법의 방식은 물론이거니와 상당히 과장된 서술들을 접하면서 다소 황당하면서도 중국인들 습성으로 치부하기 쉽지만 이번 책으로 통해서 보면 이러한 묘사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도 대충 알게 된다.  

필자는 사마천의 사기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진시황, 이사, 항우, 유방, 여후, 한신, 장량, 주아부, 경제, 문제 을 다루면서 사기만의 특성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 해주고 있다. 사기는 제왕편이 본기와 제후편이 세가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을 다룬 열전에 주로 인명과 사건을 위주로 서술되어 있지만 사기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본기,세가,열전에서 각 인물과 사건을 서술하면서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게 역사서라는 것이 일관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절로 고개가 갸우뚱하게 마련이지만 사마천은 이러한 필법을 통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 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타의 역사서와는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또한 역사서의 금기인 사가의 개인감정 이입과 관련해서도 곳곳에 사마천의 개인적인 견해를 은근히 슬쩍 삽입하여 후대에 이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일종의 대리 만족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개인적인 의견의 반영을 문학적인 표현을 빌려 역사적인 동시에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번 책에서 주목받는 이는 역시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연 진시황일 것이다. 흔히 분서갱유와 엄격한 법치로 인해 다소 폄하 받았던 인물이지만 현대적 해석으로 보게 되면 분서갱유는 상당히 과장된 논리였고 법가사상의 숭배 역시 이후 한나라에 그 이념을 승계함으로써 진시황제의 정치적 이념이 고스란히 역대 중국왕조에 면면히 이어졌다는 점에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서 유방보다는 항우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비록 한나라 고조이지만 제국 통일과정에서 보여준 유방의 비인격적(중국적인 입장에서)인 면모등을 가차없이 폄하하면서 항우를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점과. 자신의 시대인 황제 무제와 그 아버지 경제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의식은 사가로서 높은 점수를 줄수있는 점이다.  

특히 사기는 인물에 대한 비중이 높은 역사서이다. 이는 사마천이 생각하고 있는 지론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모든 역사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역사는 사람에 의해 사람이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사실 열전을 제외하고 본기,,세가,표,서의 경우에도 거의 인물중심의 사건을 다루고 있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을 사마천은 잊지 않고 기록해 놓고 있다. 아마도 사마천은 인간을 아는 것이 올바른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물 개개인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서술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기는 역사서이면서도 대중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불후의 고전을 남게 된 것인지 모른다. 

대체적으로 진시황부터 한나라 무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촌평에서 사기의 색다른 맛을 보게 된 점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나 사족이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지도에서 만리장성의 위치가 한반도내로 표시된 점이 눈에 상당히 거슬린다. 이 역시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이미 중국에선 당연시 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점을 그대로 출판한 것은 지금 중국의 역사 인식이 어느 정도 위험수위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독자들의 새로운 분발을 요함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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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3 로마제국쇠망사 3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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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연합군에 대항하여 헥토로와 더불어 최후까지 대항했던 신의 아들(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이아스는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과 함께 고국 트로이를 떠나 크레타,카르타고등의 유랑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이탈리아반도의 라티움에 정착하고 그 곳 왕의 딸과 결혼하여 로마라는 도시국가를 탄생시킨다. 이후 로물루스라는 왕의 시대에 들어 본격적인 틀을 갖춘 로마는 이후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의 시대로 접어들게 마침내 세계유일의 제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로마제국은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 서서히 동서로 분활되면서 마침내 서기 476년 이민족인 게르만족의 왕 오도아케르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질때 까지 무려 1200이라는 세월을 영위해왔다. 물론 나머지 반쪽인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은 앞으로 1천년이라는 세월을 더 영위하게 되겠지만 본토인 로마의 함락이라는 상징성을 보게 되면 사실상 로마제국의 사형선고는 게르만족의 왕인 오도아케르에 의해서 집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지만 로마제국 건국의 아버지와 서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 로물루스로써 똑같다는 점이 뿌린자가 거둔다라는 말로 회자될 수 있을뿐 오랜 세월 제국위치에서 주변 이민족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던 제국의 수명은 바로 이 이민족중의 하나로 인해 역사의 무대에서 떠나게 된다. 

테오도시우스황제 이후 로마 제국의 황권은 동서로마를 막론하고 정말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무게의 중심이 이미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간 이후 서로마 제국의 황위는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장으로 그네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야외경기장의 검투사게임을 보는듯한 혼탁하면서도 암투에 의한 제위 교체이외에는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 스러운 시기였다. 수많은 황제(이름조차 파악하기 힘들만큼 잦은 교체는 제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체 그것만으로 위안을 받게 한다)들의 난립으로 후대 역사학도들의 머리만 아프게 할 뿐이다. 그나마 동로마제국은 새로운 로마제국의 적자로 부상하면서 서로마제국에 비해선 황위의 대외적인 안정감이 서로마제국에 비할수 없을 정도로 높은것 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점은 콘스탄티누스의 뛰어난 혜안으로 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서방은 동방에 비해서 다양한 이민족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동방은 페르시아가 가장 크고 정형화된 적으로 간주되었지만 서방은 게르만족을 필두로 한 다양한 이민족들이 보이지 않고 그리고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가상의 적으로서 언제든지 목을 조를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서로마제국을 더 빨리 쇠망으로 몰아갔던 것 역시 사실중의 하나이다. 

그럼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훈족의 아틸라, 반달족의 가이세리크, 게르만족의 오도아케르 라는 이민족만의 요인으로 돌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기번은 당연히 부정하고 있다. 기번은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이가 이런 이민족이었지만 비단 서로마제국이라는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사망한거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이미 로마제국은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제국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초기 제국의 핵심이었던 다양성이 그리스도교라는 유일성으로 대체되면서 로마제국의 근간을 뒤흔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제국은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 본국와 그외 속주와 이민족간의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으로 대제국을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국의 경영에는 모든 문화와 종교를 포함한 각종 제도의 수용과 인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콘스탄티누스의 그리스도교 공인과 국교화이전까지는 약간의 마찰음이 발생하더라도 유지되었던 보편적인 진리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하나를 향한 열정은 이러한 모든 다양성을 거부하게 되었도 이러한 현상은 제국 전체적으로 불협화음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로마제국의 멸망에는 외부의 요인과 버금가는 내부적인 요인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마나 기번은 그리스도교의 착실하고 획기적인 열정으로 그네들이 야만족이라 지칭한 이민족에까지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다는 것이 로마제국의 쇠퇴를 가속화시켰지만 승리한 새 종교는 멸망의 폭력성을 경감시키고 정복자들의 사나운 기질을 완화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 

기번은 이번에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많은 양을 배분해서 그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암브로시우스, 그레고리우스, 아타나시우스 는 그리스도교 정통파를 대변하는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막상 그들의 실생활과 권력지향적인 삶은 후세에 과대포장되었다는 점과 수도회와 수도사의 근원과 그들의 삶 그리고 발전등을 다루면서 오히려 세상과 등지고 살아갔던 이들 수도사들이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교가 아니였을까라는 개인적인 의견도 피력하고 있다.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하면서 유독 그리스도교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기번의 역사관점에서 로마 제국의 쇠망사에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교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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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추악한 배신자들 - 조선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13인
임채영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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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등장하는 배신자는 크게 3가지 분류로 놔누어 진다. 첫째는 신하의 신분으로 왕권을 능멸한 대표적인 5인, 그리고 대비의 신분으로 정사를 파탄으로 몰고간 3인, 그리고 마지막 조선을 팔아먹은 을사5적이다. 먼저 첫번째 그룹의 경우는 한명회, 유자광, 임사홍, 이이첨, 김자점을 대표로 하고 있다. 두번째 그룹은 중종비 문정왕후 윤씨와 그의 동생 윤원형, 영조비 정순왕후 김씨,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와 그의 안동김씨들에 대한 설명과 마지막 그룹인 을사 5적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이완용, 권중현등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의 처음을 장식하는 한명회의 경우 개인적으론 저자의 주장을 수용하기 힘들것 같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문종사후의 살얼음을 걷는 정치구도에서 과연 계유정난을 통한 수양의 등극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까 하는 의문 또한 드는 부분이다. 단종대의 애사는 어찌보면 세종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봐야할 것이다. 세자이외에 대군들을 정치에 참여시킨것은 다름아닌 세종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적인 인물들이 과연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비록 한명회라는 책사가 없었어도 역사의 대세는 거르지 못하였것이다라는 생각이든다. 이어서 유자광이나 임사홍 같은 경우는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정치를 파탄으로 몰고 간 경우지만 이이첨이나 김자점의 경우는 개인적인 이유로 몰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당쟁의 회오리속에 과연 자유로울수 있는 인사가 몇이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그들의 행적 또한 철저한 당론에 입각한 행동으로 봐야 타당할 것 같다. 


우리에게 흔히 여인천하를 통해 알려진 문정왕후 윤씨와 윤원형 그리고 윤원형의 애첩 정난정의 횡포, 정조의 독살설에 휩싸인 정순왕후 김씨, 그리고 세도정치를 열게한 장본인인 순원왕후 김씨 그야말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의 부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조선이라는 구도는 초기 왕권이 신권에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두차례의 반정을 통한 왕권을 넘는 신권의 신장과 정비의 소생이 아닌 후궁의 소생으로 왕권을 계승한 선조 이후로는 명실상부한 왕권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외척들의 발호는 당연히 예상되었던 문제라는 것이다. 단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결국 왕권에 대한 권위는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흔히들 사가들은 조선을 역사를 정조의 죽음과 동시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막을 내렸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만큼 정조사후의 왕위계승은 시쳇말로 난장판 그자체였고 이후 고종조에 와서 결국 을사조약을 통한 형식상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 이 책을 접하면서 추악한 배신자라는 제목에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그룹인 을사5적의 경우는 당연히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만 하지만 그외 그룹의 경우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민본, 민심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물론 민심의 흐름을 무시할수는 없지만). 조선는 엄연한 왕조국가이다. 모든 권력의 용상에서 나오고 백성은 의무만 존재하는 전형적인 군주국가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대부들만 그 절대권력에 다가갈 수 있는 여력이 있을뿐이었고 그런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인 암투 내지는 권력투쟁은 조선의 역사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보면 정말 숱하게 많은게 사실인 것이다. 또한 역사란 사실 그자체가 아니라 행간을 볼 수 있는게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읽으면서 왠지 감정에 호소하는 역사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지울수가 없다. 역사라는 큰 흐름에서 보면 여러가지 지류가 있을수 있고 본류가 아닌 이상은 상대편에서 보면 역적이고 배신자가 될 수 있는 게 역사라는 이중적인 면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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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2 로마제국쇠망사 2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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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아프리카, 브리타니아, 도나우강주변, 달타미아,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강주변을 경계로 하는 로마제국의 정지척 심장이자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였고 당시 로마제국과 변방의 국가들의 로망이었던 제국의 수도였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확립된 제정은 로마라는 도시국가를 공화정을 거쳐서 제정이라는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하는 동안 항상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불변의 법칙이라고 여겨졌다. 제정 성립당시 최초의 황제를 비롯한 초기의 황제들은 로마의 원로원과 귀족출신이었고 이후 로마제국이 특성이 다양성이라는 조수에 의해 변방 속주 출신의 황제들이 제위에 오르게 된다. 물론 제위 계승은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로마라는 제국의 수도에서 그 즉위식을 거행하고 원로원과 로마시민, 군대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으로 모든 불법적인 도발은 합법으로 당연시 받아 들려졌던 것이다(아마도 합법화하는 방법이 제국유지에 필수불가분한 역학관계를 자아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만큼 수도 로마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이러한 정치적 의미와 제국 변경의 속주민들 사이에서도 어마어마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제국 인프라적인 측면을 살펴봐도 모든 가도는 로마를 중심으로 뻗어나가 제국의 최하단의 변방까지 정비되어 있을 만큼 수도 로마는 제국의 성장과 함께 그 영욕을 같이 했다. 이러한 수도 로마가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에 와서는 거의 그 역활을 상실하게 된다. 마치 세계의 모든 문물이 빠르게 수로 로마로 집중했듯이 그에 비례하여 수도 로마의 권위 또한 빠르게 쇠퇴하게 된다. 당시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한 야만족이 잦은 로마국경 침범과 약탈로 인해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편볍적인 변혁을 꾀하게 된다.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구분하여 공동황제 제도를 선출하고 각각의 정황제 아래에 향후 안정적인 권력이양을 위해서 부황제라는 황제에 준하는 권력구도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머나먼 제국변경을 괴롭혀온 야만족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측면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서방제국은 밀라노를 중심으로 번성하게 되고 동방은 니코메디아를 중심으로 수도 로마의 역활을 대신하게 된다. 이후 수도 로마의 역활은 원로원이 존재하는 형식적인 수도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2>는 바로 제국의 수도인 로마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여는 비잔티움의 대두를 사실상 로마제국의 쇠망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 의해 대제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게 되는 콘스탄티누스의 콘스탄티노스플의 창건은 새로운 시대의 도약이 아닌 로마제국 특유의 정신이 다양성의 몰락으로 본 것이다. 이후 발렌티아누스의 선출과 발렌스의 공동통치로 인해 로마는 동서 제국으로 양분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비잔티움시대는 로마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강력한 동기가 될 것이다. 물론 당시 고트족을 비롯한 야만족으로 간주된 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동방의 페르시아와의 피할수 없는 대결때문에 제국의 분할통치가 불가피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 이러한 외침보다는 내부적인 권력의 배분이 로마의 쇠망을 더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기번은 이번에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이교도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후대에 대제로 일컫어지는 콘스탄티누스와 배교자라는 낙인이 찍힌 율리아누스의 치세기간을 비교 검토함으로서 그동안 일방통행격이었던 역사적 판단에 제동을 걸고 있다. 좀더 나아가서 기번은 율리아누스를 제정시대를 연 아우구스투스와 감히 비교하여 비록 짧았던 치세였지만 율리아누스의치세기간이 로마의 꺼져가는 혼을 되살린 마지막 기회였다고 단언하고 있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로마의 정신은 다양성과 그런 다양성의 포용력이었다. 이런 정신이 근간이 되어 로마는 각양각색의 민족과 이념 그리고 종교를 인정하고 그런 다양성의 화합이 제국의 버팀목 역활을 해왔던 것이었고 역대 황제들(제위의 정상적인 계승이나 찬탈은 차치하고)역시 창시자의 정신을 계승하고 철저히 지켜나갔던 것이다. 비록 그들의 치세가 후대의 비뚤어지고 편파적인 역사적 판단을 받는다고 해도 로마제국의 안정과 계승이라는 대의적인 명분에는 충실했다는 것이다. 이러면에서 그리스도교의 확장과 이를 적절히 활용한 콘스탄티누스의 등장은 새로운 로마의 첫출발이라는 형식적인 면보다는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른 로마의 출발점이기도 한 것이다. 비록 율리아누스의 일시적인 과거로의 회기가 시도 되었지만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의 흐름을 거스릴수는 없는 것이었다. 

기번은 1권과 2권의 상당량을 할애하여 그리스도교의 성쇄와 로마제국의 정치구도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어 다소 개인적인 역사관의 피력으로 기우는 듯 인상을 준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 로마제국의 영원한 골치거리였던 야만족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자신의 박식함을 독자들에게 은근히 내비치는 장을 마련해 놓고 있다. 방대한 주를 통해서 그리고 각 야만족의 기원과 의식주, 통치구도등 정치,문화,경제등 각종 제도적인 면에서 두루두루 상세한 설명을 해 놓고 있다. 고토족을 필두로한 설명은 로마와 반대편에 있을수 밖에 없는 야만족들에 대한 변명으로도 비쳐 지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철저하게 반로마적인 입장에서 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기번이 살았던 역사시대의 한계였을 것이다. 특히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를 다루는 장에서 기번의 오리엔탈리즘은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어 방대한 그의 저작에 흠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기번이 살았던 대영제국의 당위성을 로마제국에서 찾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번 역시 아시아와 야만족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로마제국이 바라보았던 시각보다 협소하면 협소하지 더 나을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로마제국는 그동안 수많은 야만족의 외침을 로마 특유의 정신으로 정복하고 회유하고 협상하면서 그 변방을 지켜왔다. 정복할때는 아주 단호하게 밀어 붙이면서 포용할때는 로마시민이나 원로원 자리를 수여함으로서 로마제국내로 흡수하였지만 국가라는 개념보다 피로 연결된 민족의 개념이 훨씬 강했던 야만족의 본성을 충족하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속에도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역사서에 새로운 장을 개척한 것 만은 사실이다. 이번 편 역시 시시콜콜한 면도 있지만 본서에 맞먹는 방대한 주석을 통해서 당시 로마시대 인물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 되었고, 그리스도교 초기 삼위일체로 분열된 종파싸움의 내막의 진실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로마제국을 둘러싼 경쟁민족들의 삶과 명멸에 대해서 일목요연한 정리는 로마제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게끔 해주는 기번만의 보너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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