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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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3개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 뉴스에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상고사에 대한 확고부동한 논지가 재정립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단체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국민의 혈세로 설립된 단체이다)에 의하면 역사적인 사초와 기존 주류학계의 일목요연한 논지를 받아들여 우리 상고사의 결정적 KEY를 쥐고있는 浿水(패수)의 위치비정을 대동강이 아닌 한강으로 봐야 타당하다는 논지를 펼치면서 한사군은 분명하게 한반도내 한강이북에 존재했다는 기존의 정설이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독립무장항쟁에 대해서 국권회복운동이냐 對테러리즘의 일부이냐에 대한 견해도 금명간에 확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왔지만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동안 분열된 국론이 말끔히 정리됐다. 과거가 무엇이 중요한가 지금 현실이 중요하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반응은 한결 더 하다.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거랑 집에서 아버지께서 말해주는 역사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혼란스러웠는데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네요. 뭐 독도고 고구려고 우리역사나 땅이 아니면 어때요 지금 대학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별 도움이 안되었는데 잘된 일이죠"  의외로 한국희극인협회는 성명을 통해서 이보다 더한 코메디는 없었다라는 짧막한 논평을 냈다.』
 

상기의 내용은 가상의 기사이고 인터뷰이다. 물론 말도 안된다는 허튼 소리라고 할 지 모르나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사실은 우리 현실속에 버저히 존재하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어쩌면 이런 내용은 현재 대한민국 주류사학계에서는 내심 은근히 바라고 있는 기사일지도 모른다. 뭐 이렇게 생각하면 억측이나 기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세계사를 통틀어 우리민족 만큼 자국역사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이 높은 나라도 드물지만 반면에 우리만큼 자국역사를 폄하하고 모르는 민족 또한 눈을 씯고 찾아봐도 없다. 또한 학계가 양분되어 어디까지 내땅이고 어디까지가 남의 땅이라고 갑을박론하는 나라 역시 이 지구상에는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존재할 뿐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재야 사학자 이덕일씨는 그동안 골리앗을 상대로 고분분투하였으나 결국 거대한 허상과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집단에 의해 그의 주장이 사장되었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들 세력에 대해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동안 강단과 재야 양측학계의 공방대상이었던 사안을 그대로 두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에서 범국민적인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공론화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본서가 집필된 것으로 사유된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한국사의 가장 논쟁거리인 한사군의 한반도내 존재사실,삼국사기 불신론, 조선후기 역사왜곡,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의 격하등 크게 4가지 부분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이나 독도의 자국 영유권 주장 그리고 지금 거의 확정 되어버린 중국의 고조선,고구려,부여등을 중국변방의 역사 편입이라는 동북공정프로젝트를 접할때 마다 마치 양은냄비가 달아오르듯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대정부 강경대응등을 외치지만 결국 약간 그것도 아주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마치 무슨일이 있었느냐듯이 잠잠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국의 내노라는 사학자들이 알아서 상고사에 대해 축소해석해주니 중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 일이겠는가. 이는 일제 강점기때라면 아마도 귀족으로 작을 내려주고도 시원치 않을 만큼 환호할 일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크게 두 분류의 집단에 의해서 자행된 행태라고 본다. 근본 교주주의 성리학으로 무장한 노론계와 그 후손인 친일식민학자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는 철저하게 그들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중국 즉 중화라면 사죽을 못쓰던 노론계에 의해 고려사와 상고사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이들의 자손들인 친일식민학자들은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아예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 문학작품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해방이후 반민특위의 무산으로 새로운 역사인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린 대한민국 사학계는 결국 이들의 길러낸 제자들에 의해 학계의 머리수가 채워지면서 지금까지도 철옹성 같은 철밥통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 OECD회원국이자 G20회원국이고 세계경제 열손가락안에 들고 있다고 동네방네 홍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에 대응하라고 혈세를 투입하여 세워준 단체에서 오히려 중국사학계보다 한발 더 앞서 알아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과연 이나라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나라에 사는 우리는 이러한 행태를 뭐라고 해야하나? 우리에게 역사라는 것은 과연 존재했기나 한가?

아무리 재야학계에서 중국고대문헌과 그리고 실존하는 중국의 역사유물(홍산문화유적,하가점상하층유적등)을 제시해도 이병도를 교주로 한 주류사학계의 신앙은 변치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사학이라는 학문을 폄하시키고 젊은층으로 부터 외면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면서 결국 일반대중과 괴리되는 현상을 자아내게 했다. 결국 역사는 그들만의 역사로만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 일회성 이벤트 형식이 아닌 좀더 먼 안목을 가지고 우리 역사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가장 늦었다고 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어찌보면 너무 늦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새로운 역사인식에 촞점을 맞추어 왜 우리의 역사가 반만년인가에 대한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할 때이다.

단재선생은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이라고 누누히 역설했다. 지금의 시대는 과거처럼 총과 칼로 다투는 시대가 아니라 문화와 경제그리고 역사로 패권을 다투는 시대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의 역사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그 어떤 누구도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의 뼈아프고 부끄러운은 경험을 통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한줌의 흙밖에 되지 않는 집단에 의해 한민족의 역사가 뿌리통채로 흔들려서야 어찌 말이 되겠는가. 지금에 와서 당시의 대동아 통합을 캐치프레이로 내건 대일본제국을 너무나 흠모한 나머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음독하여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한반도내에 한사군을 일본보다 더 적극적으로 비정해 버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외모마저도 일본인을 닮고 싶었던 철없는 학자 개인을 질타하자는 것은 아니다.(이는 역사가 두고두고 그의 반민족행위를 기억할테니까 굳이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감정적일 수 밖에 없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것은 이 사람을 사학의 태두로 신봉하는 무리들이 문제가 되면 더 된다는 것이다. 진보적이고 적극적사관을 설파하는 저자를 비롯한 재야사학계를 너무 감정적인 면에 치우치고 실증사학을 배제한다고 몰아가는 그들이야 말로 정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경우인 것이다.

재야학계를 비롯하여 국민들은 단지 우리 역사의 진실을 알고져 할 따름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과연 우리 한국사에 단 한번이라도 진실이란 것이 존재하기라도 했던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게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가 범국민적인 여염을 받들어서 제대로된 우리 역사를 새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아니 새로운 구성이 아닌 있는 사실 그대로 기술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대체로 유교권의 국가뿐만 아니라 서양의 경우에도 한 집안의 역사를 담고 있는 족보 내지는 가계도에 대한 전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물며 한민족의 근원인 뿌리를 찾는 문제는 두말하면 잔소리일뿐이다. 우리가 스스로 찾지 않는 우리의 뿌리는 그 어느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것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저자가 이번 저서를 통해서 저자처럼 전문적인 지식으로 역사인식하자는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 단지 그동안 알아왔다고 여겨졌던 한국사에 대한 인식을 커다란 범주내에서 재고찰할 필요성을 제시해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서산대사가 남긴 시 한편이 지금 우리 한국사 연구와 접근방법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서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 눈 내린 들판을 밝아갈 때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마라, 오늘 우리가 걷는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라는 말처럼 지금 한국사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의 후손들은 또 다시 남의 발자국을 보고 걸어 가야만 하는 운명에 놓일 것이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전부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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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김대중 3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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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한발의 총성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또 다시 한번 요동치게 된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았다"라는 말을 남긴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최후진술처럼 그렇게 유신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은 어이없이 너무나 허무하게 저편으로 지기 시작했다. 이는 4.19에 이은 한국 현대사의 또다른 부흥을 예고하는 시발탄이었다. 유신치하에서 김대중을 비롯한 온국민은 그야말로 유럽중세의 암흑의 시대를 방불케하는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촛불만을 바라보는 처지였다. 이제 그 어둠의 장막이 거치면서 따뜻한 춘풍과 함께 서울의 봄이 오기 시작한다.

김대중과 한국현대사는 바늘과 실처럼 항상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찾아오는 일련의 정치사태는 김대중을 떼어내고선 역사진행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을정도로 상호간에 많은 관련성을 가지게 된다. 긴급조치위반으로 정치활동이 중지되었던 김대중과 김영삼등의 정치인들은 박정권의 몰락으로 인해 해금조치되게 된다.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출신의 신군부에 의한 새로운 정권창출 내막을 막아내는데는 아직까지도 나이브한 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김대중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치권이 전두환에게 호의를 보이면서 그들의 음모는 일사철리로 진행되게 되었고 마침내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한국전쟁을 제외한 가장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1980년 5월 전라도 빛고을에서 발생한 광주민중항쟁은 지금까지도 사건해결이 미흡할 정도로 우린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잔혹감과 처절함은 인간이기를 거부해 버린 짐승보다 못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자행했다. 그날의 상혼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앙금으로 남아있을 만큼 많은 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버렸던 것이다. 또한 다시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일어설 기반을 상실한 채 수면밑으로 강제 잠수당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물론 신군부들의 정권욕에 대한 치밀한 계획성과 그 추진과정에서의 비도덕성을 최우선으로 질타할 수 도 있지만 결국 김대중과 김영삼등을 비롯한 정치권의 불협화음이 4.19이후 찾아온 봄날을 놓쳐버린 결과라는것에 대하여 부인할 수는 없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는 김대중의 설득을 포기하고 결국 광주항쟁과 연관시켜 내란음모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하는 또 하나의 웃지못할 희대의 코메디를 연출하면서까지 정적제거에 열을 올렸지만 결국 권력의 정통성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과 협의하에 김대중을 풀어주게 된다. 

<만화 김대중 3>는 이렇듯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질곡이 깊었던 1980년대를 다루고 있다. 정치적 해금에서 다시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언도 받고 영어의 몸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번권에서도 DJ대한 정치적 행보와 정치역동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집필의도에서도 밝혀듯이 인간 김대중에 대한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김영삼계열과의 불협화음 과정이나 신군부들의 회유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 받게 되는 선택의 길목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그도 역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선고재판에서 재판장의 입술모양만 뚤어지게 쳐다봤다는 일화 역시 누구나 공감이 갈 수 있는 솔직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또한 수감생활에서 이희호여사에세 보내는 편지를 보노라면 위대한 정치인을 떠나 일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을 억압했던 군부세력에 대한 최후진술로 다시는 이땅에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나 청주교도소로 이감되어서 삭발을 강요했던 교도관에게 후일 대통령에 당선되어서까지 연하장을 보냈던 사연등은 비록 그의 반대편에 서있는 이들은 정치적 연출이라 폄하하지만 이는 받아 들이기에 너무나 억지주장일 것이다. 생사의 문턱에서 그의 모습은 정치인의 모습이 아닌 세상을 초월한 성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아무리 사상적 스팩트럼의 위치가 좌냐 우냐를 떠나서 정말 숭고한 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김영삼의 단식투쟁과 맞물려 민추협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금 민주주의 실낱같은 희망을 국민들에게 전해주는 단초가 된다. 1980년대는 김대중 개인이나 한국현대사 둘다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시대였다. 결국 그는 다시 살아났고 우리의 현대사 역시 다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마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처럼 초라하지만 웅장하게 민주주의는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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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4 로마제국쇠망사 4
에드워드 기번 지음, 운수인.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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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눈에는 야만족 그리고 로마를 제외한 다른 시각에서는 개척자라 칭할 수 있는 게르만족의 대왕 오도아케르에 의해 정확히 로마의 반쪽이 역사속에서 사라졌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사실상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한 동로마제국은 비잔티움제국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부여받게 되지만 로마의 생명력은 자신들의 지배통치 방식 만큼이나 새롭고 끈질기게 연명하게 된다. 로마제국으로서는 최대의 위난시대였지만 달리 생각하면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국시로 새롭게 신장개업을 한 동로마제국의 입장에서 같은 형제이지만 이단과 이교도로 득실거리면서 그 옛날 로마 번성기의 향수에 빠져서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지 못하는 형제는 이제 더 이상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였던 것이다.

서로마제국의 몰락은 이런 측면에서 보게 되면 예견된 길을 걸었고 이미 사형선고를 받는 말기암 환자에게 인공적인 생명의 연장조치로 간신히 버텨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그 장대한 죽음을 그다치 수치스럽게 맞이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그동안 세계사를 둘러보아도 아주 온건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던 서로마제국은 이제 더이상 유럽의 지배자가 아니였다는 점은 분명해진 것이다. 서로마제국 멸망이후 동쪽 끝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은 새로운 도약을 길을 모색하게 된다. 어찌 보면 그들 국교의 신이 위대한 하느님이 보우와사 또 하나의 대제를 그들의 땅에 내려줌으로써 다시 화려한 번창기를 맞게 된다. 그 구세주는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이다. 로마 역사상 대제라는 칭호는 받은 황제는 단 두명이다.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고 로마제국을 기독교 제국으로 변모시키고 동로마제국의 시조가 된 콘스탄티누스대제. 그리고 서로마제국 멸망이후 의기소침해 있던 제국을 재정비한 유스티니아누스법전으로 더 잘알려져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이다.

이런 면에서 로마는 다른 여타 제국에 비해 그 운이 좋은 제국임에 틀림없다. 아우구스투스로 부터 출발한 제국은 휘청할 때마다 구원투수들이 등장해서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게임을 마무리 짓는 형태를 보여주었다. 오현제가 그렇고 디오글레티아누스가 등장하여 제국의 분할정치를 창안하여 안정을 찾았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구원투수의 등장으로 로마는 유리한 카드를 쥐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을 운으로만 몰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로마제국만의 특수성과 탁월적이고 효과적인제국통치방식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기독교라는 일신교가 무대의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면면히 내려오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은 아직까지도 로마제국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기에 걸출한 황제의 탄생이 가능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진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업적은 다양한 경로와 문헌 그리고 남아서 존재하고 있는 유적들을 통해서 알고 있는 바이지만 여기서 기번의 해석은 또 다시 로마제국의 포용력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록 일신교 제국이었고 향후 기독교에 의해 대제라는 반열에 오르게 되지만 유스티니아누스는 황후 테오도라가 죽음을 맞고 말년에가서야 종교에 대한 맹신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그의 대부분의 치세 동안은 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제국을 통치할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물들을 얻어냈다. 또한 이미 죽어버린 형제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반도를 어느 정도 회복했고 제국내의 법을 재정비하여 흔들리던 제국을 제자리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유스티니아누스도 결국 그리스도의 단성론과 관련된 종교문제로 인해 치세 말년을 이탈리아 교황과의 한판 승부로 소진하게 된다. 기번은 이번에도 결국 로마라는 제국이 일어설수 있는 실마리마저도 외면해 버린 기독교에 대한 맹비난을 가하고 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테오도라가 유스티니아누스의 황후가 아니였다면 또한 그녀가 정치적인 성향이 약했더라면 로마제국의 앞길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의 말년과 그리고 이어지는 동로마제국의 역사를 보게 되는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네스토리우스파, 야고브파, 마론파, 아르메니아파, 콥트파등 수없이 많은 분파와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서 신학적인 접근을 통일시켜 나가게 되지만 결국 이러한 일련의 행보가 과연 로마제국에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사를 던지게 된다. 이번 권 역시 기번은 그리스도교의 분파와 치열한 신학논쟁 그리고 신학논쟁에서 확대되는 정치분열등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전통적인 로마사상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하는 견지를 이어가고 있다.  


다시한번 상고해 보더라도 로마라는 거대한 호수는 그 샘이 마르지 않고 그 어떠한 불순물이 흘러들어와도 자체 정화능력과 불순물을 불순물로 받아 들이지 않는 위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에서 로마라는 제국은 다양한 고난속에서도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형제의 한쪽을 잃고 홀로 남은 동로마 제국 역시 자신의 근본적인 사상에서 너무 멀리와 버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잠시 나마 유스티니아누스의 제동으로 그 물결을 멈출 수는 있었지만 결국 거대한 일신교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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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일상에서 리더십을 읽다 - 원칙과 소신의 리더, 이순신의 삶과 꿈
김헌식 지음 / 평민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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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대표하는 위인을 떠올리게 되면 아마도 세손가락안에 드는 인물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일것이다. 그만큼 우리 한민족에게 이순신의 이미지는 깊이 각인되어 있다. 특히 현대에 들어 정권의 정당성 강화 차원에서 다소 왜곡되게 부각된 부분도 있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전달되고 각인된 이순신의 이미지는 이제 하나의 정형화된 틀로써 깊이 그것도 아주 깊이 우리들의 뇌리에 박혀있다. 어린시절 위인전에서 막연하게 그려지는 영웅이라는 이미지는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한민족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감정기 능욕의 역사의 뒤풀이 과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적인 이순신은 존재해도 인간적인 이순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몇해전 김훈의 <칼의 노래>와 TV역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서 그동안 공적인 측면에 치우친 그의 존재성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그의 동상를 보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성웅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순신의 일상에서 리더십을 읽다>는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뇌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성웅 이순신의 영웅성보다는 그의 일상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적인 이순신을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우리가 알고있듯이 7년전쟁 기간동안 이순신의 전투는 세계사를 통틀어도 유래를 찾기 힘든 100%의 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도고제독은 이순신을 전쟁의 신이라고 숭배했을 정도로 가히 그는 전쟁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물론 이순신의 화려한 승률이면에는 철저한 전략과 정보분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과 정보분석을 가능케 한 이면에 인간적인 이순신의 면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영웅만들기에 동원되는 수법이 공적인 공과에 치중해서 개인적인 삶마저도 왜곡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경우가 많다. 이런면에서 보면 우리의 이순신 역시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 너무도 많이 부풀려지고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강인한 영웅의 모습이 아닌 극히 평볌한 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나라의 녹을 먹는 신하로서 다른 이들과 다를것이 없다는 점은 우리가 만든 영웅의 이미지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외면되고 사장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순신의 평가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분명 이순신을 영웅이라고 지칭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단지 그가 왜 영웅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7년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우국충정의 대의로 초개같이 목숨을 던졌기 때문이 아닌 그 역시 일반인과 다름없는 평범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약점과 장점을 최대한 아울러 가장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에 우리는 영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논지이다. 영웅은 역사라는 기회가 만든다고 하지만 그런 기회를 제대로 포착해서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자만이 영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순신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지도 못했고 그의 관직생활역시 파면과 좌천등의 질곡을 겪으면서 순탄하지도 못했다. 또한 집안의 가세역시 몰락한 양반으로서 당시 철저한 신분주의 제도에서 별다른 어드밴티지를 누리지도 못했고, 전략상 동반자적 입장에 놓였던 원균과도 불화가 많았고 임금인 선조로부터 주목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이순신은 이런 상황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을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범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주변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그만의 인생철학이 결국 7년전쟁을 맞이하여 빛을 발했던 것이다.  

충무공행장이나 난중일기 그리고 징비록등의 역사적 기록을 보게 되더라도 이순신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면들을 수없이 많이 접하게 된다. 성웅을 떠나서 이순신 역시 우리와 같은 질투와 애정 그리고 번민에 둘러쌓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단지 그는 이러한 삶을 나름대로 즐기면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래서 영웅와 범인은 어찌보면 종이 한장 차이일 수 도 있지만 그 한장의 종이가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영웅들의 삶의 대처방식이기 때문일것이다.

그동안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너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산물속에서 정형화되어 버린 경향이 있다. <천군>이라는 영화속에서 이순신으로 분한 박종훈이 거침없이 쌍소리를 하듯이 이순신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극히 평범한 인간인 것이다. 자꾸 이순신을 성웅으로 만들기 시작하면 할 수록 이순신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게 된다. 23전 23승이라는 100%의 놀라운 승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한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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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김대중 1, 2>를 리뷰해주세요.
만화 김대중 1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근현대사를 통틀어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를 받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한쪽에서는 '선생님'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빨갱이'이라는 표현으로 인식된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 만큼 DJ에 대한 인식은 우리 현대사의 왜곡된 인식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한국 현대사와 DJ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면 타당할 것이다. 특히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미,소라는 거대한 냉전시대의 틈바구니속에서 왜곡된 민주주의 정치를 걸어왔던 한국현대사의 관점에서 보면 DJ라는 개인적인 인물연구만으로도 대략적인 현대사를 짚어볼수 있을 정도로 한국 현대사 곳곳은 그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DJ라는 인물은 그를 숭배하는 쪽이든 꺼려하는 쪽이든 간에 무시할 수 없는 우리 현대사의 거울인 것이다.

<만화 김대중>은 만화 박정희와 만화 전두환을 집필해서 상당한 반향을 가져온 필자의 3번째 인물 탐구서이자 역사연구서이다. 비록 만화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한국 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그동안 가려지고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 책은 김대중의 고향이 전남 신안군 하의도라는 섬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것도 시간의 추를 상당히 올려잡아 조선시대 선조때 인목왕후에서 태어난 정명공주를 위해 하삼도를 떼어주겠다는 약간은 우스게소리에서 발달된 하의도의 비극으로 시작한다. 불모지인 섬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논과 밭은 그야말로 생명과 같은 존재였지만 부마(홍씨일가)와 나라에 2중으로 내는 세금의 가혹함은 그야말로 절대왕권시대 인민의 비참함을 실례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러한 악업은 일제강점기를 통해선 더욱더 강도를 더함으로써 김대중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민주투사라는 이미지의 생성원인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하의도는 수탈의 역사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 어느곳이 이런 참담함에서 벗어날수 있겠는가마는 그의 고향인 하의도의 역사를 보면 DJ의 탄생도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만화 김대중>은 바로 이렇게 하의도의 역사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의 탄생과 유년시절, 그리고 청년시절과 정치에 입문하여 겪게 되는 고난의 세월을 담고 있다. 특히 생존인물들의 등장과 그들을 그린 케리커쳐가 제법 사실성에 근접하고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어 DJ를 둘러싼 인물과 역사인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DJ에게 왜곡되게 인식된 두가지 성향 선생님과 빨갱이를 객관적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막연하게 선생님이라고 추앙아닌 숭배를 하는 쪽과 사실을 모르고 빨갱이로 몰아가는 양쪽에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직대통령,노벨평화상 수상자,각종인권단체 인권상수상등 그의 화려한 이력보다는 인간 김대중에 대한 단면을 볼 수 있어 그 동안 그에게 지워졌던 왜곡된 이미지들을 지워버리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서술되어진 부분들이 오히려 DJ를 돋보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좀더 많은 부분에서 연구가 되어야겠지만 그가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찌보면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이자 최대 수혜자로써 선생님과 빨갱이라는 극적인 상징으로서 그를 볼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인식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DJ를 바로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또한 잊지말아야 할 것은 DJ를 바로 보는 눈이 다름아닌 우리 현대사를 올바르게 보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고인이 된 그에게 합당한 평가를 내려야 할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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