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우리역사
信太一郞 지음, 이종윤 옮김 / 삼국시대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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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고찰하여 특이한 국가관계가 지속적으로 존속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그중에서도 韓日양국가처럼 복잡하고 특별한 케이스는 드물 것이다. 지리적으로 근거리에 위치하고 언어학적이나 문화, 인종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융화될 수 없는 민족적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양국은 그 차이점만큼이나 물리적인 거리감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 역시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임진왜란, 일제감정기, 한국전쟁등 우리에게 생각조차 하기 싫은 역사적 배경들은 상대방인 일본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듯이 양국은 동일한 역사적 관점을 각각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고 그러한 시각은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상을 달리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출간된 <또 하나의 우리역사>는 일본의 역사매니아가 쓴 한일역사통사로서 양국간의 역사적 시각에 대한 많은점을 시사하고 있다. 오히려 전문역사학자가 저술한 역사서가 아니기 때문에 더 주목할 필요성이 있는듯 하다. 역사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일간의 역사가 학계에서 바라보는 역사보다 더 대중적이면서도 일반인들의 역사관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반적인 내용으로 보아서 우리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서술형태를 볼 수 있다. 이말은 마치 이 책의 저자가 만일 한국인이었다면 과연 어떠한 반향을 불러왔을까라는 점이다. 우선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은 韓民族중심의 국수주의적인 역사해석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라는 일본학계의 반응이 먼저 떠오르고, 다음은 어렵사리 아픈상처를 보듬고 출발하고 있는 양국간의 부스럼을 키우는 꼴이며 역사적 고증이 확실하지 않는 사실을 과대포장하고 있다는 국내학계의 반응일 것이다. 그 만큼 일본인으로 이렇게 서술할 수 있을까라는 점에 사뭇 호김심이 발동할 만큼 저자의 역사시각이 진보적이다. 물론 우리는 저자가 진보적인 것이 아니고 이제야 역사적 진실을 깨닫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일본내의 역사관에 비추어보는 정말 신선한 충격 그 자체이다. 

다음으로 저자의  각별한 노력이다. 비전문가이지만 전문가 못지 않는 역사연구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전문가들이 보지 못한 역사의 이면을 제대로 보고 연구했다는 점이다. 아니 보지 않을려고 외면했던 면들을 제대로 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의 일본과 삼국과의 관계에서 중국과 삼국과의 관계등 그동안 정설에서 외면했던 내용들을 조명하면서 양국간의 역사흐름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인의 관점에서 한국사의 전반적인 견해는 마치 몸에 걸친 옷을 벗겨내는 부끄러움을 자아낼 만큼 애리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해방이후 난장판이었던 시대를 나름의 논조로 해석하는 부분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물론 저자가 조선시대를 李氏조선으로 인식하면서 당쟁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점등이 눈에 거슬리지만 이는 국내 강당학계의 역사인식에 비하면 조족지혈정도도 되지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이번 저서를 통해서 한일양국간의 역사관이 역사적 사실에 좀더 근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 가장 돋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일방적으로 문화경제적으로 혜택을 주었는데 배은망덕한 행위만 해왔다는 피해의식, 일본측은 그저 피해망상에 사로잡혀있다는 논리로 반박하는등 결말없는 양쪽의 메아리만 주고 받아왔지만 이번 책의 출간으로 인하여 양국간의 새로운 역사인식이 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그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강단학계의 역사인식에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일본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보다 왜 우리는 이러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이 먼저들어 얼굴을 절로 붉히게 한다는 점을 소위전문가라고 말하는 이들은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국의 일반대중들의 한쪽방향으로만 치우친 역사관의 재성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동북아 3국은 역사전쟁을 하고 있다. 어느쪽 주장이 옳고 잘못되었다는 점을 떠나서 동북아 3국의 진정한 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희미하게나마 그 해답을 주고 있다. 역사라는 큰 강은 작은 지류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하찮게 보이지만 이러한 지류가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소소한 개인적인 역사관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작은 지류가 모여모여 역사를 써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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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 - 2차 개정판
최동환 해설 / 지혜의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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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는 천부경과 더불어 나철이 창시한 대종교(大倧敎)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366자의 한문으로 씌어진 매우 짧은 경전으로, 5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즉 천훈(天訓)·신훈(神訓)·천궁훈(天宮訓)·세계훈(世界訓)·진리훈(眞理訓)의 오훈(五訓)으로 되어 있다. 단군왕검이 전파한 성통광명,재새이화,홍익인간을 그 모티브로 다루고 있는 경전이자 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韓에 대한 기원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서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점에 대해선 학계를 비롯한 역사 연구가들에게 위서라는 의심을 받고도 있는점도 있지만, 우리의 뿌리인 고조선 더 나아가 고조선이전 국가의 실체인 '한'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져 있는 책이다. 경전이면서 철학서이자 동시에 역사서인 삼일신고는 그동안 일반대중에겐 너무나 알려지지 못했다. 출발자체가 대종교라는 종교에서 출발하다보니 산업화와 근대화의 거센 파도를 틈타 한반도를 장악해버린 기독교의 입김에 의해 유사종교 내지는 사이비종교라는 오인까지 받다보니 그 평가 자체가 있을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역사와 관련해선 고조선자체를 부정하는 학계의 분위기에서 고조선이전의 배달국, 한국이라는 용어자체가 넌센스 그 자체였을 것이다.  

지금도 초등학교 교과서엔 우리의 시조가 단군이고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받게 되는 역사교육과 사회적 분위기속에 단군을 믿는 학생들은 점점 사라지게 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저 곰이나 호랑이가 나오는 재미있는 전설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때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과 기독교의 신인 하나님과의 웃지 못할 한판 승부도 벌어졌고 그 영향으로 전국 각지에 있는 단군상의 머리가 사라지는 회괴망측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작태는 지금도 기독교원리주의자들의 의해서 버젓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기도 하지만. 물론 여기서 종교적 역사적 논거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고서는 왜 이리 설쳐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들은 삼일신고를 비롯한 천부경등에 담겨져 있는 그 사상적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즉 유신론, 범신론, 범재신론등의 다양한 신학적 해석과 그 접근방법과는 달리 한신학이라 일컫어지는 독특한 사상적 배경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신학을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느냐 아니면 철학적 내지 학문적 입장에서 수용하는냐의 문제에서 여타 종교들과의 갈등이 있을법 하지만 대게 원신종교의 출발점이 그 민족 고유의 공통된 사상에서 근거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수긍갈 수 있는 면이기도 할 것이다. 

▣ 학창시절 한민족의 고유사상으로 홍익인간과 재새이화라는 두 단어를 무지하게 들어왔지만 정작 그 근원에 대해선 아는이가  드물정도일 것이다. 단군을 설화속의 주인공으로 인식하기를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단군왕검의 국가건국 철학인 홍익인간과 재새이화의 색체역시 흐려지기 마련인 것이다. 본 삼일신고의 내용은 고도한 한문학적 지식과 고도의 동양고전의 지식이 수반되어야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소 어려운 책이다. 물론 저자는 일반대중에게 좀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도표와 그림등을 도입하여 쉽게 설명한다고 하지만 막상 일반 대중에게는 어렵기는 매한가지인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뒤부분에 해설된 366자의 의미만큼은 대략 이해간다. 아마도 그동안 한민족이라는 무언의 힘이 알게 모르게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면 너무 국수주의적인 발상일까.
세계는 지금 글로벌화 블럭화를 거치면서 하나의 범국가적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 물론 이는 주로 경제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지만이러한 대세는 막지 못할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선진산업국의 면면을 바라보면 이러한 글로벌한 시대속에서도 자국 자민족 고유의 정신만큼은 절대 손에서 놓지도 않거나 협상의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의 고유 정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손을 들고 말할수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삼일신고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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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의 명의들 - 중국 역사 최고의 명의 5인의 세상을 살린 놀라운 의술 이야기
쑨리췬 외 지음, 류방승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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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작, 화타, 그리고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등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중국의 유명한 명의들이다. 한때 허준이나 대장금등이 드라마로 방영되어 동양의학의 진수를 일반인들에게 새삼 각인 시켰던 적이 있었다. 산업혁명과 기독교를 내세운 근대화라는 물결속에서 동양의 모든 가치는 부정되었다. 근대화==서구화라는 등식에 의해 그동안 수천년동안 진리처럼 여겨졌던 동양의 사상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사상적 담론은 물론이고 과학과 합리화라는 도구에 의해 동양의학도 부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첨단기술과 과학을 앞세운 서양의학에 동양의학은 그저 비합리적인 민간의학쯤으로 낙인찍혔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서서히 극복하면서 동양의 제모습 찾기가 진행되고 이제서야 동양의 홀로서기가 어느정도 자리잡아 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천고의 명의>라는 서책은 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서양철학이나 과학, 그리고 의학을 보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그 근저에 깔려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적재적소의 문제점을 바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한다. 의학만을 예로 들더라도 서양의학은 질병의 근원인 질병이나 상처부위를 직접 절개하거나 치료하여 그 효과를 바로 발현하기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신속함에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치료방법인지도 모른다. 이에 반해 동양의학은 그 치료의 방법이나 기간등이 서양의학에 말하는 적재적소의 치료법과 신속함과는 사실상 거리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동양의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철학적인 문제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래로 동양의 철학적인 바탕은 눈에 보이는 현시적인 가치 보다는 보이지 않은 근원적인 가치에 매진 했다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의 사상을 비롯하여 중세의 주자학, 양명학등의 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카테고리에 의한 알고리즘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의학적인 부분에서 서양은 발병한 질병에 그 근원적인 치료방법을 연구하고 해결하는 쪽으로 발전을 하였다면 동양의학은 질병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몸상태에 초점을 두고 연구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결국 이는 근대화라는 담론에서 서양의학에 밀리는 현상을 가져 왔지만 복잡해지는 현대사회구조에서 현대의학의 맹신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등이 등장하면서 치료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일어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이나 우리의 전통의학은 오행과 음양이라는 철학적인 문제에서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인간에게 발병하는 모든 질병은 결국 외부요 인보다는 인간 자체의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병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인간의 심성연구가 우선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서양의 이런한 현격한 시각차이에서 굳이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판단하면 서양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발전의 기준 역시 지금은 모호할 따름이다.  

이번 천고의 명의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우리는 동양의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장중경의 개체의학을 통해서 주먹구구식이었다고 폄하했던 동양의학이 인간 개개인의 개별적인 성향에 맟추어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같은 증세라도 그 처방을 달리하여 치료하는 다양성등을 통해서 결코 비과학적이 아니라는 점등을 볼 수 있다. 특히 가장 근원적인 인간자체에 대한 고뇌와 연구를 볼 수 있다. 서양의학이 테크놀리지적인 요소가 강하다면 동양의학은 기술적인 면보다는 철학적인 요소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질병을 우선시하기보다는 그 질병의 발병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먼저 한 인간의 심성에서 치료방법을 찾은 것이 바로 동양의학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학적인 상식이 없는 입장에서 어느 방법이 우수하다고 논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인간중심적인 치료방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소 시일이 소요되더라도 근원적인 발명원인의 제거가 결국 더 효과적인 치료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바로 직접적인 효과를 거두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의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방법일 수 도 있겠지만 옛말에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근원적인 원인에 대한 치유많이 재발을 방지하는 유일한 길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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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그리고 이순신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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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의 왕실사>,<불륜의 한국사>를 통해서 역사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던 이은식선생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전도의 보도를 꺼내 들었다. 내심 걱정이 먼저 앞서지만 원균과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통해서 그동안 이순신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원균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하고 있다. 내심 걱정이 된다는 것은 다름아닌 원균에 촛점을 맞추다보니 그동안 몰랐던 이순신에 대한 왜곡된 기록들을 묵과할 수 없이 실록에 있는 그대로 세상에 끄집어 내다 보니 오랫동안 일반 세인들에게 각인되었던 그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포장된 이미지에 충실한 일부 원론주의자들에게 돌을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원균 그리고 이순신>은 성웅, 구국의 영웅, 유년시설 남자아이들에게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대변되는 이순신과 이순신을 사지로 몰아넣고 결국 칠천량 전투에서 패배하여 도주하다 사살된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하다고 알고 있는 원균에 대한 우리의 인식구조를 뒤흔드는 책이다. 이러한 극과 극의 평가는 우리가 일제감정기시대를 거치면서 독립에 대한 염원으로 민족단결과 독립의식고취등의 이유로 적극 이순신을 부각하였고 그 후대에 군사정부의 정권장악과 반공이데올로기의 소산으로 이순신에 대한 미화작업이 극대화 되면서 덩달아 원균에 대한 이미지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도 이 두 사람에 대한 허와 실에 대한 과대한 포장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 

필자는 이런 측면에서 원균과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평가 즉 그동안의 편견을 버리고 새롭게 접근해야한다는 차원에서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을 바탕으로 그 실상에 접근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에서 그 중심부에 들지 못했던 악역을 담당했던 원균에 대한 재조명를 통해서 그의 원죄를 벗겨내려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런 필자의 의도는 개인적으로도 극히 환영할만하고 필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특히 임란발발 초기의 상황과 원균의 마지막 전투였던 칠천량해전을 재고증함으로써 원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제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필자는 임란발발 불과 2개월전에 경상우수사에 부임하여 제대로된 군비점검의 절대적 여유도 없이 임했던 23일간의 전투에서 그나마 그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기 때문에 재해권을 송두리채 왜군에 넘겨주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칠천량전투 역시 수차례 수륙양동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원균의 주장과 휘하 부장들과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전투력이 하락했다는 점등을 무시한 무리한 작전으로 인해 그 승패는 이미 정해졌던 것이고 또한 이 전투에서 원균이 도주하다가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그동안 원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쟁발발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이순신의 행동과 최초의 해전이었던 옥포해전이후 승전결과에 대해 합의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보고하여 그 결과물을 챙긴점, 원균과 원균의 아들을 매도한 점, 당시 적군의 본거지인 부산진 왜군군영의 방화사건을 자신의 공으로 포장하여 조정에 보고한 점등을 낱낱이 소개하여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물론 필자의 의도가 이순신을 폄하자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단지 원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그의 맞수였던 이순신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하자는 취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하튼 필자의 이번 저서로 인해 원균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자리매김해야 할 것에는 의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선무1등공신에 추록된 이순신, 원균, 권율 3명에 대해서 유독 원균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개탄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순신,원균은 임란이 가져온 가장 큰 피해자이자 희생양이었다고 생각된다. 조선왕조 최초로 대군이 아닌 일개 군으로 옥좌에 오른 선조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한 의심으로 조선시대 가장 강력한 싱크탱크를 갖추고 있었지만 가장 무능한 군주로 기록된다. 혹자는 당쟁의 결과로 임란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하였다고도 하지만 사실상 그 당시 일본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단지 선조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승패보다는 자신의 옥좌유지에 더 많은 집착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권력에 그 어떠한 도전도 용납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필자가 지적한 이순신과 원균의 행동은 군지휘자로서의 성향 차이에서 살펴봐야할 점도 있다. 이순신은 철두철미한 전략가 타입이라면 원균은 손수 전장에 나서는 행동대장과 같은 타입이었고 이러한 두 장수의 전쟁수행 스타일이 두 사람의 반목을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원균은 이순신을 전면에 나서지 않는 소인배로 폄하했고 이순신은 원균을 병법도 모르는 미치광이로 폄하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사람은 당시 조선의 그 누구보다도 왜적의 전략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장수들이었다. 결국 이순신이 실각하게 된 계기도 그렇고 원균이 마지못해 칠천량전투를 수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시 조선에 이 두사람을 빼고는 전투에 대한 문외한들과 군주의 옹졸한 치기에 따를 수 밖에 없는 무뢰배들로 가득했다는 점이 결국 두사람은 전사로 몰고간 원인인 것이다. 임란이후 포상된 공신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더 가관인 것이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던 무신들은 고작 18명만이 공신의 반열에 올랐지만 선조를 따라 피난을 떠났던 문신과 내관들은 무려 수천명이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필자는 한 사람은 영웅으로 한 사람은 간웅 내지는 비겁자로 확정해 버린 선조수정실록에 대해서 강력한 비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은 이처럼 실록과 수정실록을 동시에 역사에 남겨서 후대인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점에 대해서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결국 후대인의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사관을 심겨주기 위한 과학적인 장치중에 하나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 판단의 몫은 바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서술에 편중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서술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가 경개해야 할 것은 원균과 이순신의 그 공과를 요목조목 파악하는 것 보다 역사적 구도를 두사람의 라이벌 관계 내지는 맞수 그리고 반목적인 대응관계로 인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순신이 통제사로 승격되기 이전까지의 모든 해전는 이순신 단독의 전투가 아니였고 이억기와 원균이라는 삼두마차에 의한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것이다. 이순신의 냉철한 머리, 원균의 넘쳐나는 열정 그리고 이억기의 중용적인 입장이 세계해전사상 불패의 업적을 만든 것이다. 

솔직히 이 서평을 쓰면서도 아직까지 원균에 대한 입장정리가 안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역사적 왜곡과 과도한 숭상이 가져다 주는 병패가 이처럼 크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한다. 원균과 이순신 두 장수는 조선이 배출한 걸출한 영웅임에 틀림없다. 단지 정치인들의 정치논리에 의해 판단이 흐려진다면 이는 영웅에 대한 진정한 대접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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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5 로마제국쇠망사 5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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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달려온 기번의 로마 제국 서술은 이제 그 대단원의 막을 기다리고 있다. 포카스를 제위에서 밀어내고 헤라클리우스 황조를개창한 헤라클리우스에서 앙겔루스 황조까지의 대략 600여년간의 비잔티움 황실사를 기번은 간단 명료하게 한장에서 고찰하면서 개괄적인 로마제국 쇠망사의 결말을 도출해내고 있다. 물론 이 600년이라는 기간을 쳅터 하나로 마무리했다면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세간의 많은 역사서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번은 마지막 권에서도 기번만의 특유한 관점에서 로마 제국사를 고찰하고 있다. 비단 이 기간동안 역사적 사초의 부족이나 그간 알려져 왔던 수 많은 황제들의 치세를 다루는 것보다는 로마제국의 쇠망의 길에서 등장하게 되는 주변민족, 국가들의 흥망성쇄를 고찰하여 로마제국의 쇠망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교량역활을 자인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권의 키포인트라고 해야겠다. 


우선 로마황제중 배교자로 악명을 떨친 율리아누스에 버금가는 혹평을 받고 있는 성상 파괴자 레오4세와 레오 사후 자신의 아내인 이레나에 의해 다시 성상숭배라는 광기로 치닫는 교회사를 거론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쇠망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이미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갈리아를 비롯한 기본 서로마제국의 패권을 역시 교회와 접목시켜 고찰한 점에서 기번의 날카로움을 엿볼 수 있다. 서로마제국 멸망이후 동로마제국 황제의 간헐적인 정치적 간섭을 받았지만 이미 이곳은 로마교황의 개인적인 영주로 자리 잡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후 롬바르드족의 왕인 리우트프란드의 일시적인 간섭이 있었지만 로마교회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고 그 파트너로 프랑크왕국의 대표주자인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마뉴가 선택된다. 로마교회와 사를마뉴의 조합은 동로마제국이 이미 포기해버린 형제의 땅을 효과적으로 아주 시의적절하게 통치 해나가게 된다.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시조격인 오토1세의 등장으로 프랑크왕국이 역사의 뒷편으로 살아져가도 여전히 한쪽의 파트너는 로마교회였다는 점에서 기번은 "교회와 국가의 영웅들은 공적 또는 사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어 단결했으며, 그들은 패배자들을 짓밟으면서도 아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체하였다. 결국 교회의 통치권은 그들의 지상에서 천 년의 경외로까지 확장되었고 그들의 고귀한 호칭은 그들이 노예 신분에서 풀어준 대중이 자유롭게 선택했다"라는 논평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즉  교황과 카롤링거 가의 상호 의무는 고대와 근대 국가, 교회 역사의 중요한 연결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탈리아 정복에서 이 로마 교회의 옹호자들은 좋은 기회, 그럴듯한 명분, 대중들의 소망, 성직자들의 기도와 술책을 얻었다. 하지만 로마는 롬바르드 왕국의 개입으로 로마의 안전을 위협 받은 반면 자유를 보장 받았지만 이들이 살아지고 난 뒤로는 그나마 보장되었던 자유마저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사기는 언제나 약하고 교활한 인간들이 사용하는 수단이다. 힘은 세지만 무지했던 야만족은 교회가 파 놓은 책략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그만큼 교회는 이들보다 한층 더 세련되고 현란한 수사를 종교적 힘을 뒤업고 행사했던 것이다. 바티칸은 로마 교회의 권익을 증진시킨기 위해서 경우에 따라 다양한 허위 또는 진실한, 부패한 혹은 미심쩍은 행동을 하거나 숨기는 무기고이자 제작소 역활을 했다. 대표적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교령집과 기부장을 만들어 샤를마뉴에게 위대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관대함을 본받고 그의 이름을 되살리라고 훈계하고 주문했다. 이들 민족, 국가의 영웅들이 순서를 바꿔가며 자리매김을 하는 사이에도 교회는 굳건하게 자신들의 신분을 철저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레오4세이후 로마제국전역에 걸쳐 신학논쟁이 잦아들었던 점 역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사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 점도 있지만 이는 동방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광풍을 애써 무시한채로 이러한 술책과 사기들은 또 다른 다양성의 포기와 고립으로 나아가는 방편일 뿐이었다.

헤라클리우스황제 시대에 동방 즉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새로운 광풍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적그리스도라 불이는 마호메드의 등장은 세계사의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하지만 로마제국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버린다. 결국 다양성을 포기해 버리고 전제 일신교체제로 옷을 갈아 입은 로마는 자신들의 일신교에 맞먹는 또다른 전제일신교에 의해 같은 절차를 밟으면서 서서히 몰락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기번은 마호메드와 이슬람교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상세한 고찰을 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그리스도교 시작에서 비하되고 왜곡된 이슬람교에 대한 기번의 인식은 상당히 진일보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지금처럼 양단의 종교적 대립으로 인한 적대적 시각과 왜곡된 인식을 볼때 기번의 무게중심이 잡힌 사관은 놀라울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호메드의 출생에서 부터 성장 그리고 정치적 성공과 이슬람세력의 유럽확장등을 통해서 한층 더 이슬람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서술해 나가고 있다. 당시 유럽사회의 지배적이었던 시각에서 벗어나 마호메드의 사상과 그의 치적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 벌어졌던 살육이나 정복에 비하면 이슬람의 그 농도가 더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번은 이슬람 역시 전제일신교라는 점에서는 그리스도교만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배제해버린 사회의 결말은 그 끝을 보지않더라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 기번의 주장이기도 하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오현제시대로부터 앙겔루스황조시대까지의 로마제국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대저작이다. 기존의 역사서와 차별화되는 점은 다름 아닌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기번은 이러한 세계사적으로 대제국이었던 팍스 로마나를 달성한 제국이 어떻게 쇠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가에 그 촛점을 맞추고 그 과정을 서술하였다는 것이다. 대게의 역사서에서는 소상히 다루지 않는 가려지고 숨겨진 어두운 분야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는 점이 여타의 역사서와 다른 점이다. 기번은 카이사르가 진두지휘 하고 아우구스투스가 발판을 마련하고 오현제에 의해 그 정점에 올라던 제국이 멸망한 가장 큰 원인을 바로 로마제국 내부에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외침보다는 바로 제국이라는 제도를 고안했고 유지할려고 노력했던 역대 황제들의 포용성 즉 다양성을 포기하면서 로마라는 대제국은 서서히 죽음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그리스도교라는 전제일신교의 탄생과 성장을 비교해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도시국가와 공화정시대를 거치면서 로마라는 작은 국가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군사,제도,정책등의 하드웨어가 아니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세계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성을 용인했기 때문에 제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길을 통해서 물질과 더불어 문화,종교까지 로마로 통했고 로마는 이러한 이질적인 문화,종교에 대해서 넓은 아량과 관용으로 포용했던 것이다.

이것이 카이사르가 고안했고 아우구스투스가 확립한 로마라는 제국의 실체였던 것이다. 이러한 장점은 그동안 팍스라는 미명하에 세계사를 뒤흔들 몇몇 국가들과 비교하면 로마제국의 다양성이 그 얼마나 위대하였는가를 더 실감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기번이 살던 당시의 팍스 브리티아나나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는 미국에게 던져주는 강력한 메세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양성이 결여된 일방적인 그 어떠한 체제나 정책 그리고 문화는 역사적 퇴보를 면할길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서 다시금 재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지금의 스토리텔링식의 역사서와는 비교가 되질 않을 정도로 고리타분한 맛을 가지고 있다. 원문과 맞먹는 방대한 주석을 통해서 책읽기의 괴로움을 배가 시켜주기도 하지만 기번의 저술의도인 제국의 쇠망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그리스도교의 상세한 서술과 그로 인한 다양성의 쇠퇴 그리고 제국의 몰락을 따라가는 여행은 왜 우리가 역사서를 읽어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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