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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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의 역사사극에서 왕왕 김종서와 황보인등을 어린 단종을 끼고 도는 원상들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 수양은 왕권강화라는 천명을 위해 부득이 하게 정변을 감행하는 고도의 의지력의 인물로 비쳐진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계유정난으로 보위에 오른 세조때부터 김종서에 대한 평가나 기록들이 거의 금기시 되어버렸다. 우리는 역사를 흔히 승자들의 기록이라고 부리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절재 김종서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언급자체는 세조이후 무려 300년간이나 금기되다가 영조에 의해 공식적으로 신원되기 까지 하나의 공공연한 비밀같은 존재였기도 하다. 단종1년에 발생했던 계유정난을 발판으로 보위에 오른 수양대군은 그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군주라고 일컫는 세종의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 태종의 권력욕을 그대로 물려받은 수양대군은 마이키아벨리식의 권력창출과 유지에 온힘을 쏟은 형이다. 이후 세조의 피로 대통을 물려받은 조선의 군주들에게서 김종서의 위치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비록 계유정난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당대나 후대에서도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자체를 부정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左윤덕 右종서라는 세종대의 평가 처럼 6진을 개척한 당시 大虎라는 별칭처럼 김종서는 오랜시간을 북방에서 보냈고 북방야인들을 정벌하고 지금의 국경을 이룩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이러한 그의 이미지는 김종서장군이라는 무관으로 각인되어왔다. 하지만 김종서는 엄연한 문관 출신이며 사간원과 좌부대언(좌승지)등의 요직을 거친 앨리트였다. 김종서를 무쪽으로 이끈이는 다름아닌 세종이었다. 세종은 김종서에게 직접 활과 화살을 내려 항상 소지하도록 하는등 김종서의 상무정신이나 그 기질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 적임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세종의 이러한 선택은 대성공을 거두면서 북방의 안정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 김종서는 태종부터 단종까지 4명의 임금을 모신 충신이었고 특히 문종의 고명대신이기도 하였으나 왕위에 뜻을 둔 수양대군과 권력에 목숨을 건 출세주의자 한명회가 만들어낸 조선 초기 최대의 비극인 계유정난으로 인해 역사뒤로 사라짐과 동시에 시대의 금기로 남게 된 것이다. 

저자는 계유정난의 근원적인 뿌리를 문종의 죽음에서 부터 찾고 있다. 저자의 전작에서도 밝혔듯이 문종의 죽음 역시 많은 의문 부호를 가진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의정부 대신들과 그 어떠한 협의되 되지 않는 국왕의 치료과정이나 약방제조의 뒤에 수양이 존재했다는 사실등에서 수양의 야욕은 어쩌면 자신의 형 제거에서부터 시작된 것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문종 사후 벌어지는 일련의 행보에서 보듯이 마치 짜여진 각본과도 같은 행동을 통해서 단종과 단종을 지지한 신하들을 옥죄여 가면서 결국 계유정난으로 자신의 세상을 만들게 된다. 계유정난 숙부가 어린 조카를 왕위에서 쫒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다는 도덕적인 문제보다는 개국이후 공신들의 나라였던 조선을 엄청난 피의 댓가를 치루고 왕권강화를 이룩하고 모든 악역을 자처했던 태종과 이후 세종조를 거치면서 확립된 헌정질서를 송두리채 바꿔버리는 역사적 후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수양은 김종서나 황보인등이 어린 임금을 끼고 신권을 강화하기 때문에 왕권강화를 명목으로 쿠테타를 일으켰지만 세조의 등극과 동시에 다시 조선은 공신들이 넘쳐나는 시대로 역행했던 것이다. 그가 그리 원했던 보위였지만 정작 왕권강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생전에도 공신들의 세상이었고 자신 사후 등극한 예종의 죽음에도 이러한 공신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패해는 계유정난과 상왕복위사건등을 양산된 공신들은 예종과 성종 그리고 연산군을 거치면서 하나의 거대한 권력집단인 훈구파로 사림들을 살해하는 피의 사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시대 당쟁의 출발점은 이미 계유정난을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그다지 모순은 아닐 것이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조선 초기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종서라는 인물을 통해서 재조명된 세종,문종,단종,세조시대를 재고찰함으로서 역사서의 행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비단 승자의 기록을 역사라고 하지만 아무리 승자라도 모든 기록을 왜곡할 수 없듯이 그들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기 마련이고 후대의 우리는 이러한 퍼즐들을 제대로 맞추어 올바른 역사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북방개척의 주인공이자 고려사편수의 수장이었던 역사가 김종서의 대한 평가는 당시 시대의 금기사항으로 남을 만큼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비정상적인 권력창출이 가져오는 후유증은 세조이후 발생하는 역사적 사건들과 왕실의 비극등도 문제이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로인한 일반 백성들의 고통이었다는 점에서 김종서가 죽을때 까지 지키고져 한 것은 똑바로된 역사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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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 - 촉서
진수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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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국,일본등 동북아시아권에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서양기독문화권의 성경만큼이나 베스트셀러이면서 동시 꾸준하게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3세기 후한의 내리막길에서 조조,유비,손권으로 대표되는 영웅들의 피말리는 정권쟁탈과정을 시대적 배경으로 걸세출의 영웅들과 그들이 평생을 누비고 다닌 전장 그리고 전우애등을 소설적인 픽션을 가미하여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으로 국내에서만 하더라도 정비석, 이문열, 황석영등의 대문호들이 경쟁하듯 편역하여 많은 매니아층을 만들어 낸 작품이다. 세간에는 삼국지를 40대가 넘어서는 읽지말라는 말처럼 삼국지연의에는 다양한 간계와 모사 그리고 이합집산등 인간사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총망랑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소설이지만 인간심리학이나 경영전략등 인간관계를 모두 다루고 있을 만큼 다양한 플롯과 네러티브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팩션을 자칫 오인하게 되면 정작 올바른 역사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삼국지연의에 대한 맹목적인 인기가 소설이 아닌 실제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로 각인되어 많은 문제점을 이르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그동안 소설속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반인들에게 왜곡되어 있는 간웅 조조와 유비의 관계 그리고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관우, 초자연현상을 일으켜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제갈량등 많은 부분들이 정사와는 사뭇 다르게 연출되어 있어 자칫 역사적 오류에 빠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소설은 소설이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소설이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상당히 위험할 수 도 있는 것이다. 또한 남의 나라 역사에 대해서 소설과 정사를 따지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라고 하겠지만 소설 삼국지가 국내의 독자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제대로 알것은 알고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의 몇몇학자들이 삼국지 바로알기라는 저서들을 발간했지만 아직도 많은 편견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측면에서 삼국지연의와 더불어 정사 삼국지를 같이 보면 소설과 현실의 차이를 제대로 알 수 있거니와 또한 소설 삼국지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사실상 삼국이라는 표현보다는 양국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수 도 있다. 위,촉,오의 역사지도만 보더라도 촉이 지배한 영토는 그야말로 미약하기 때문이다)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존재했던 혼돈의 시대였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자웅을 겨루었던 각 영웅들의 역사적 평가는 어떠했을까? 그리고 사가의 시각은 어떤 눈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았을까? 바로 이러한 점이 정사 삼국지를 읽는 매력중에 하나일것이다.

저자인 진수는 촉나라 태생이지만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았고 후대의 대부분의 사가들 역시 위를 정통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의 상식을 벗어나 버린다. 또한 천재적인 전략가 제갈량에 대해서도 진수의 평가는 후대에 세인들에게 알려진 만큼 후하지 않다. 진수의 이러한 생각은 삼국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황제에 해당하는 기를 위나라에만 두었을 뿐이다. 즉 소열황제 유비나 그의 아들 유선을 제갈량이나 관우,장비등과 같은 전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촉을 일개 소국으로 판단했고 정통은 위에 있다고 봤던 것이다. 

이렇게 큰 맥락에서 부터 정사는 소설과 다르다. 각 열전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더라도 촉의 5대명장인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등의 평가가 소설속에 나오는 이미지와는 사뭇다른 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관우와 장비의 평가보다는 마초나 황충 그리고 조운에 대한 평가 더 나을 정도로 진수의 촉서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표현하는 이들 영웅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다. 동시대를 살았고 촉태생이라는 점에서 외히려 진수의 삼국지가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진수는 촉이 40년이라는 짧은 생애을 마감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제갈량의 후사문제 촛점을 맞추고 있다. 제갈량은 분명 뛰어난 재상이었지만 자신의 후계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포스트 제갈량을 자칭했던 장완,비의,강유등의 화합되지 못한 국가경영이 결국 위나라에게 정벌당했다고 보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촉의 단명은 제갈량을 제외하고는 위나라나 오나라에 비해 인재풀이 너무 빈약했다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진수는 방통과 법정의 단명을 누구보다 애통하게 여겼다. 즉 초기 창단멤버들의 자질이나 위엄은 뛰어났으나 뒤를 이를 후사에 대한 투자가 미비했다는 점에서 촉의 단명은 예견되었던 사실이라는 것이다. 

진수는 자신의 기록에 대한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촉말의 신하였던 양희를 별도의 전에 삽입하여 그가 남긴 유비를 비롯한 촉의 대표적인 인사들에 대한 평가를 첨가하여 사관의 개인적인 시각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진수 스스로가 밝혔듯이 촉은 자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사실상 그럴 능력이 부재했을 정도로 국가경영에 있어 타국보다 위태로웠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촉서는 그동안 과대평가되었던 유비와 제갈량을 비롯한 촉인사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본다는 측면에서 소설속의 인물들과 많은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소설은 소설이고 역사는 역사인것임을 잊지 말야하 할 교훈을 남기는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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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 일제 강점기 연예인이 된 기생 이야기
신현규 지음 / 어문학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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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혹은 기녀라고 불리우는 그녀들은 비록 신분계층이라는 피라미드상에 가장 최하위에 위치한 천민계층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일반적인 천민계층과 사뭇 다른 또 하나의 계층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권력 창출계층이었던 사대부들과 유일하게 어울릴수 있는 여성계층으로 자리잡으면서 역사의 다른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조선사회는 철저하게 남성위주 특히 양반이라 지칭되는 일부 남성들의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비단 남성으로 태어나더라도 적자가 아닌 이상은 아웃사이더로 살아갈 수 밖에는 없는 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천민이라는 계층의 신분적 장애를 딛고 많은 기생들이 사대부들을 농락한 예를 조선실록을 보더라도 많이 있었다. 특히 국가적으로 환란을 겪을때마다 남성사대부들도 하지 못한 의를 몸으로 실천한 이들중에 항상 기생이라는 계층의 여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는 이러한 기생들의 알려지지 않은 삶과 행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반을 다루는 측면이 아니라 일제감정기에 접어들어 기생들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집어보는 저작이다. 지금의 만능엔터테이너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당시 모던걸로 상징되었던 기생들의 사회참여는 근대화라는 시대적 조류와 더불어 우리사회에 일대의 변혁을 가져왔고 그러한 변혁과 영향들은 현대 미디어시대의 원천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측면으로 저자는 접근하고 있다. 또한 현대음악과 미술, 영화 그리고 광고모델등 근대화를 지칭하는 문화사조에서 선구자 역활을 담당하면서 조선의 근대문화의 선봉장이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일제감정기 시대에 기생들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많은 부분들이 지금의 연예인에 비유되는 특성들에 대해서만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당시 기생학교학교의 경쟁율과 경제적대우등이 일반민중들에 비해서 탁월했다는 점등을 들어 기생이 되고자 하는 인기가 높았다는 점, 근대화의 표상인 모던걸을 상징했다는 점 등에서 그 표면상의 현상만을 다루고 있는 점이 못내 아쉽다. 또한 각종 사진엽서나 광고물에 등장하는 기생들의 화려한 이면속에 숨겨진 제국주의적인 시각에 대한 상세한 비판이 생략된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저자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결국 일제의 식민지정책중의 일환으로 기생들의 화려한 면이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피해자 역시 기생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강제근대화를 당했을때 받았던 제국주의의 시각을 그대로 조선에 심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홍보물에서 기생들을 배경으로 하는 팜플렛을 제작하면서 식민지정책의 당위성을 은연중에 내포했던 것이다. 지금의 언론의 영향보다야 떨어지는 효과를 가지고 있을 지언정 이러한 정책들은 한동안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사회적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만능 엔터테이너와 같은 화려한 측면만을 고찰하는 것은 진정한 기생에 대한 평가라는 측면에서 다소 그 균형서을 잃을 소지가 있어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측면들이 기생이라는 이미지를 고착화할 수 있는 또다른 시각의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의도는 기존의 기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타파하는 차원에서 만능 연애인의 이미지를 부각시켰지만 다른 면에서 바라볼때는 이러한 연애인이나 모던걸의 이미지가 기생의 또 다른 이미지로 각인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생이라는 계층은 엄연히 한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계층이자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일반 민중이었다. 단지 봉권적인 권력구조가 만들어낸 희생양으로 묻어둘 수 없는 아픔이었던 것이다.  

항상 국가적인 환란이 닥칠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한 이들은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층이 아니라 기생과 같은 최하층이 대다수였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기생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생을 어느곳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특수한 집단으로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기생역시 엄연한 우리의 어머니, 누나와 같은 동일한 인격체로 그리고 남성위주의 신분사회가 낳은 피해자로 봐야함과 동시에 일반민중과 동등한 사회의 조직구성원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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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
권혁희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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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오랜세월 우리들의 잔상속에 혹은 시각적인 정형화의 모습 내지는 촉각으로 와닿을 수 있는 형체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특히 형이하학적인 실체보다 뜬구름 잡을것만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념들의 지속성은 인간이 존재하는한 지속될 것이고 또한 세대와 역사를 거듭 되풀이 할 수록 재편성되어 우리 인간들의 뇌리속에 꽈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근세에 탄생했던 이데올로기중 제국주의와 파시즘 그리고 이로인해 보편화 되었던 식민주의의 여파는 지금 탈냉전의 시대를 넘어 세계 각국의 국가주권주의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시점까지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는 19세기말부터 세계를 강타한 제국주의와 그로인해 붐을 일으킨 식민지건설 당시의 조선의 모습을 [풍속사진첩], [기념엽서], [각종 관광팜플렛]등 남아있는 그당시 기록문화를 통해 세계에 비쳐진 조선 바로 우리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조선의 풍경이나 인물사진 그리고 각종 풍습의 모습을 통해서 지금까지도 세계에 각인된 <은자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 탄생의 배경과 그 허실을 저자는 제국주의 시각에서 통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칼을 목에 쓰고 촬영에 임한 죄수들의 모습에서부터 우리는 심상치 않는 제국주의의 view를 짐작할 수 있다.

산업혁명의 태두와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의 촉발로 인해 서구는 합리주의 그리고 과학주의라는 일대의 혁명을 성공리에 끝내고 더이상 내수시장의 한계로 인해 이러한 선진문명을 세계 각곳에 전파해야 한다는 교조주의적 기독교와 적절히 동거한 형태로 세계 각국을 마치 자기들 안방드나들듯이 유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이전 대항해시대부터 이러한 식민주의의 역사는 태동되었지만 당시 식민지개척의 역사는 순전히 하드웨어적인 면이 강조되었다면 19세기접어들면서는 문명전파라는 왜곡된 소프트웨어가 살짝 가미되면서 오히려 그 정당성을 상호간에(제국주의 국가들) 인정하게 되는 꼴이 되어버린다. 특히 사진기술과 인쇄매체의 혁기적인 발달로 인해 거의 전세계는 리얼타임으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서구의 이러한 패러다임은 그동안 신들의 영역에서 서서히 인간의 지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된 시점에서 문맹률의 제고와 더불어 지식충족 그리고 지배자의 일종의 이벤트로서 역활을 하게 된다. 

당시 서구의 시각은 극히 제한적인 면에서만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으로 무장된 그들이 바라보는 동양사회의 모습은 미개, 야만 그 자체였다. 비숍여사를 비롯한 최초로 조선을 방문하고 여행기를 남긴 이들의 눈에 조선의 광경은 그야말로 비위생적이고 비문명화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들에게 동양의 문화는 그저 한낮의 신기한 현상내지는 자국민들의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사진엽서나 풍속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인종학적인 특징이나 과도한 여성들의 노출사진, 그리고 비위생적으로 보일듯한 생활상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조선의 모습은 당시 서구에서는 알려지지 않는 은자의 나라 내지는 조용한 나라라는 타이틀 타고 각인되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일본이 먼저 경험했다. 일본 역시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이러한 이미지들이 서구에 전파되었고 자신들이 대동아 공영을 외치면 감행했던 제국주의 첫발의 희생양인 조선과 중국에선 확대 재생산 이미지를 창출하면서 더욱더 왜곡된 이미지를 각인시키게 된다.   

어디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각이 조선을 비롯한 동양에서만 자행되었겠는가?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의 노예등을 비롯해서 식민지역사를 경험했던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겪었던 뼈아픈 일이다.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들 같은 인간이 아닌 일종의 전시물로 여겼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있을 수 없지만 당시 세계의 절반은 그렇게 생각했고 나머지 절반역시 아무런 대책없이 그리 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더 무서운것은 이러한 이미지의 창출들이 타자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커녕 타자를 철저히 대중화 시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고 각 민족의 개개인의 특성을 마치 그 민족 국가 전체적인 이미지로 포장해 버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현상들이 제국주의가 막을 내리고 민주국가들이 탄생한 현재에도 부지불식간에 확대 재편성, 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이미지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갓을 쓰고 긴 곰방대를 물고 있는 노인,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외출용 장옷을 입고 얼굴만 내밀고 있는 여인, 홍두깨로 다딤돌을 두드리고 있는 여인, 마치 연애인을 방불케할만큼의 미모를 가지고 고운 한복을 입고 있는 여인들의 이미지가 한국을 홍보하고 있는 모습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게 되는 모습들이지만 이러한 컨셉에는 제국주의 시대 서구인들이 조선을 보았던 바로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대만 바뀌었을뿐 그때와 별반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서구인들에게도 익숙했듯이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각은 우리들의 잔상에도 별 저항없이 자리잡고 말았던 것이다.  

그 만큼 이념, 이데올로기의 잔상들은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그 잔해들을 남기고 있고 설혹 치유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고 복제되어 은연중에 남아있는 것이다. 역지사지로 우리가 아프리카를 생각할때 역시 서구가 만들어낸 view의 영향에서 자유로울수 없듯이 우리의 모습 또한 비뚤어진 은자의 나라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스틸사진에 불과한 한두장의 사진으로도 이러한 왜곡의 이미지들이 창출되고 있는데 매체의 천국이라고 하는 현대에는 두말해야 잔소리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이미지도 어떤 방향으로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의 이미지가 결국 세계인들의 인식에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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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들의 생로병사
강영민 지음 / 이가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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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生.老.病.死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생로병사라는 굴레를 벋어날 수 없는 것은 지당한 것이다. 무릇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해당되는 진리이기도 하다. 지상파 모방송국 프로그램에도 있듯이 생로병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웰빙이라는 이름으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옛날 옛적 하루먹고 사는 것 자체가 치열한 투쟁이었던 시절에도 생로병사는 인간에게 끝없는 유혹의 손길을 던졌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인간들에게 생로병사는 바로 인생, 삶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만인지상의 자리인 왕들에게는 그 의미가 지대했음을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가 불로초를 찾아 온 세상을 해맸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조선왕들의 생로병사>는 바로 약 500년이라는 장수제국인 조선의 군주들의 생과 노 그리고 병, 죽음을 다룬 책이다. 저자가 의사라는 직업상 관점에서 조선왕들의 출생에서 성장 그리고 그들을 괴롭혔던 각종 질환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의학적 견해를 첨부하여 왕들의 일대기를 조명하고 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조선왕조실록과 세간의 흥미로운 야사들을 참고하여 다소 지루하게만 느껴질 내용들을 적절한 흥미를 자아내게 한 점등이 돋보이는 저술이다. 특히 조선왕들을 괴롭혔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했던 각종 질병들과 이를 치유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들을 보면서 왕도 죽음앞에서는 일개의 인간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도교의 인생무상이나 불가의 空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의 의학적 관점에서는 대수롭지 않는 질병들이 그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았던 점등이 다소 허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당시 최고 의료진의 보필을 받았던 왕도 이 모양이었는데 그러한 해택을 전혀 받지 못한 일반 대중의 삶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치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왕을 비롯한 모든 인간들에게 생로병사는 넘을 수 없는 강이었을 것이다. 특히 과도한 스트레스는 그 때나 지금이나 건강에 치명적인 역활을 담당했다는 것이 왕들의 삶을 통해서 재확인 되고 있다. 조선왕들의 평균수명이 오히려 일반 사대부들보다 짧았던 것 역시 국정부담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와 이러한 스트레스를 적절히 풀지 못한 생활이 결국 그들의 수명을 단축한 주범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할 만큼 마음의 병이 결국 육체의 병으로 옮겨지고 죽음으로 내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조선왕들의 삶을 의학적 견해로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왕과 권력은 바늘과 실처럼 항상 붙어 다니면서 왕 개인들의 생로병사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면에서 조선왕들이 앓고 있었던 질병과 그 치유법등을 의학적 측면으로 한 눈에 조선시대를 개괄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단지 문종, 예종, 경종, 정조등을 비롯한 석연치 않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다른 측면으로 비쳐질수도 있고, 선조와 광해군, 인조, 효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책의 출간목적이 왕들의 개인적인 생로병사에 촛점을 두고 있다는 큰 관점에서 볼 때 묻어두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이 부분에서 갑을박론하게 되면 책의 목적을 상실할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사이든, 병사이든, 혹은 타살이든간에 조선의 왕들도 생로병사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정종, 광해군, 영조만이 편한한 죽음을 맞이했을 정도로 거의 대부분의 왕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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