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도전 1 -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 정도전 1
이수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 군덕수출서물(君德首出庶物)  임금의 덕은 만물 위에 뛰어나야 한다.""
"" 인군지성임현이성기공(人君至誠任賢以成基功) 임금은 정성을 다하여 어진 인물을 발탁해야 공을 이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왕조국가는 군주 일인이 무소불위의 권력과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군주를 중심으로 군주을 위하여 모든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되는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사의 대부분의 왕조국가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견지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민본주의라는 패러다임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속의 국가들 대부분이 그 수명이 길지 못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나, 수나라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단명한 왕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에 비해 조선이라는 왕조국가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장수를 누렸다. 그럼 왜 조선은 왕조국가인데도 장수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이러한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철저한 신분사회를 유지했다? 집권층을 제외한 나머지 민중들의 역사적소명 내지 의식이 철저히 사장되었다? 글쎄 절로 갸우뚱해지지 않는가. 한마디로 미스테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시리즈>로 독자들에게 익숙한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바로 그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 바로 <정도전>이름 석자에 조선의 장수의 비결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삼봉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모 방송국의 대하드리마 방영과 때를 맞추어 대한민국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내각책임제가 이슈화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에 들어 왔다. 그동안 역사는 정도전을 어린 세자를 옹립하여 자신의 권력유지에 집착하다가 분연히 일어난 이방원에게 제거된 간사한 소인배 정도로 기억되어 왔다. 또한 조선시대 정조와 고종대 이전까지도 정도전이라는 이름 석자는 역모에 준하는 금기사항 그 자체였던 것이 사실이다. 왜 조선은 정도전에 대해서 500여년 동안 금기시해 왔던 것인가? 그가 그렇게 죽을 죄를 범했던 것일까? 끝까지 고려의 충심을 위해 죽은 정몽주는 향후 조선의 문묘에 배향이 되었는데 오히려 조선개국의 1등 공신인 정도전은 역적의 수괴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 

아마도 그 해답은 왕조국가라는 조선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전, 남은, 심효생, 방석등을 제거한 사건을 역사에서 우리는 정변이라고 부르지 않고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난이라는 개념을 反이 正에 대해 도전할 때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난으로 규정한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은 이율배반적인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가들의 정확한 역사적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역사적 비중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명 타이틀은 역사소설이 맞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보다는 역사에세이 혹은 정도전 평전을 접하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 역시 팩트에다 약간의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라고 밝혔지만 왠지 픽션의 부분마져도 팩트로 받아 들여지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라울 정도이다. 특히 신권정치를 표방했던 정도전의 사상을 반영하듯이 이 작품의 무게중심은 이성계나 정도전의 반대측에 있었던 이방원에게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도전을 비롯하여 정몽주, 이숭인, 하륜등의 신권에 가까이 있는 인물들의 내면과 사상을 부각시켜 자칫하면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기존의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방향을 흘러갈 수 도 있었던 구도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것이다. 마치 정도전이 살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처럼 역사적으로 기억되는 굵직한 사건들 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토록 빛을 발하는 달빛처럼 은은하고 무덤덤하게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 더욱 더 소설 같지 않는 소설인 것이다. 여말선초와 정도전에 대해서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꼼꼼하게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아마도 조선건국에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라면 조선은 그 수명이 길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계나 그 후임인 이방원의 능력이나 성격을 보더라도 답은 뻔하게 도출된다. 정도전은 비단 자신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사라졌지만 정도전이라는 이름 석자가 조선왕조를 장수의 길로 접어들게 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왕권과 신권의 적절한 줄다리기를 통해서 왕조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중에 하나가 바로 정도전의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삼봉은 살아서 60년를 채 살지 못하고 갔지만 죽어서 500년을 조선과 함께 살았다. 그가 당초 설계했던 조선의 밑그림은 요동정벌 하나만 제외 하고는 거의 다 반영되어 조선의 뼈대를 이루었고 이러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장수를 누리게 된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지만 간혹 이러한 책을 접하게 되면 한번쯤은 해보기 마련이다. 삼봉이 살아서 요동을 정벌했으면.... 

모처럼 픽션과 팩트를 넘아들면서 재미있게 읽어 나간 소설이다. 또한 한편으로 지금 이나라의 위정자들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으로 보여진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  라는 삼봉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수 박물관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8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레스토랑의 양은수저, 소금통, 립스틱,귀걸이,메뉴판, 아이스크림 콘,머리빗,영화 입장권,영화 전단지와 사진들,연인이 마셨던 사이다 빈 병,퓌순의 손목시계,괘종시계,그녀의 손수건,톰발라 놀이 세트,기도용 달력,골무,단추,실패,냉장고,뜨개질 도구,성냥갑(퓌순의 손길이 닿았던),퓌순의 담배 꽁초(무려 4231개),슬리퍼,커피 잔,머리핀,퓌순의 수영복(이것은 어떻게 수집했는지 모르지만),그녀와 처음 사랑을 나눈 침대 매트리스, 심지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장본인 56년형 시보레 자동차의 잔해물들... 이는 터키 이스탄불의 추크르주마에 있는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개조하여 올 하반기에 오픈할 예정인 <순수박물관>속에 전시될 목록중의 극히 일부분이다.  

포탈 싸이트에서 박물관[, museum]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친절한 정의를 소개한다. 박물관이란 "역사·예술·민속·산업·과학 등 고고학자료·미술품, 기타 인문·자연에 관한 학술적 자료를 수집·보관·진열하여 교육적 배려하에 일반 민중의 전람에 이바지 하고, 또 그들의 자료에 대하여 조사 연구하는 시설"이라고 아주 간단 명료하게 정의 되어져 있다. 우리는 국립중앙박물관,전통문화박물관,철도박물관,자동차박물관,도자기박물관,김치박물관등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있는 박물관들을 한 두번쯤을 다녀 왔다. 그리고 박물관의 정의대로 교육적이고 학술적인 가치를 바라보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인들과 더불어 앞선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에게서 작게 느껴지만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전시물을 한두가지 기억 할려고 한다. 또한 박물관은 지난시대의 공통된 기억을 엿 볼 수 있는 지금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지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기억은 개인적인 기억 보다는 오히려 극히 공적인 기억에 더 근접 한다고 해야 겠다. 

하지만 작가는 박물관을 다음과 같이 정의 하고 있다. 1) 돌아다니는 곳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하는 곳이다 2) '느끼게 될 것'의 영혼을 형성하는 것은 수집품이다. 3) 수집품이 없는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전시관이다. 

이런 면에서 파묵의 <순수박물관>은 기존의 박물관이 정의하는 개념과는 사뭇 다른 공식적인 기억이 아닌 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은밀한 기억을 담고 있다. 44일 동안 사랑을 나누었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매였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남자의 30년에 걸친 지고지순하면서 강렬한 사랑과 그에 대한 집착에 대한 모든 기억이 순수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집품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 순수박물관에 하나둘씩 수집된 물건들의 추억은 케말과 퓌순의 짧지만 긴 사랑에 관한 기억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1975년부터의 터키 이스탄불의 부유층을 비롯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공유했던 온갖 기억들이 온통 다 머물러 있다. 특히 작품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에 대한 정의를 언급하면서 밝혔듯이 순간과 순간들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것이 바로 작중 주인공이자 작가의 현신인 케말이 퓌순과 관련된 물건 하나 하나를 수집하면서 그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이고, 자신의 박물관은 순간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을 결합시켜 결국 하나의 시간이라는 개념의 틀 속으로 의미를 부여해 버렸다.  

영원하면서도 고갈되지 않는 사랑을 소재로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고 있고 우리는 많은 사랑 이야기를 알고 있다. 인간은 어찌 보면 이렇듯 진부하다시피한 사랑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또 다른 사랑 이야기에 몰두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종교적인 열정 보다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너무나 모르는 이야기가 사랑이다. 파묵은 순수박물관을 통해서 색다른 사랑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어찌보면 사랑하는 연인과 관련된 물건들을 슬쩍(?)하여 수집하는 행위를 다소 편집증적인 광기나 집착으로 볼 수 도 있지만 사랑을 해본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광경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과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다는 혹은 있었다는 행복한 나르시즘에 빠져 본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몰래 입수했다는 자책감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파묵을 순수박물관을 통해서 아주 소중한 기억의 보고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을 동시에 담고 있는 수집품들을 통해서 그동안 잊혀졌던 그리고 잊혀지기를 강요 당했던 기억들을 맞주 하게 하였다. 

지금처럼 디지털 혁명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디지털카메라,mp3,동영상등을 비롯한 파일형식을 빌려서 우리의 인생을 기억코자 한다. 이를 라이프 로깅이라고 한다면 파묵의 <순수박물관>은 시각적, 촉각적, 후각적인 면에서 살아 있는 실체를 기억하게 하는 진정한 라이프 로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또한 마치 작가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내러티브를 풀어가면서 왠지 모르게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강한 뉘양스를 주는 것과 동시에 설마 아니겠지라는 독자들의 실날같은 바램 사이를 정말 교묘하게 줄타기 하면서 정말 '끝까지 가게"하는 작품이다. 특히 69장 <때로>의 내용에서 그야말로 오르한 파묵의 필력을 유감 없이 엿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숨어져 있다. 그리고 다양한 수집품들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더불어 그 순간 순간에 벌어졌던 등장 인물들의 다양하고 특히한 감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담아 내고 있는 구성 자체가 다소 지루하게 이어져 나갈 것 만 같지만 하나 하나 엮어 보면 절로 수긍이 가게 끔 하는 작가의 화술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순수박물관>은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고통 그로 인한 행복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의 기억이 아닌 터키 이스탄불을 매개로 하는 지난 30년간의 모든 기억과 추억들이 담겨 있는 독특한 구조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어떤 이는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사랑에 감명 받아 눈물을 흘릴 것이고 어떤 이는 터키의 역사와 경제 그리고 사회 문화의 변화상을 보면서 보다 더 거시적인 측면을 볼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소설속에 나오는 다양한 물건들의 이름과 그 쓰임새에도 주목할 것이다. 정말 책의 제목 처럼 세상 온갖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는 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아마도 마지막 페이지를 덥고 나서야 소설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박물관을 아무런 목적 의식 관람하고 박물관 나와서 나와 타인의 기억이 소통될 때 느끼는 다소의 안도감이나 일종의 희열 같은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레스토랑의 양은수저, 소금통, 립스틱,귀걸이,메뉴판, 아이스크림 콘,머리빗,영화 입장권,영화 전단지와 사진들,연인이 마셨던 사이다 빈 병,퓌순의 손목시계,괘종시계,그녀의 손수건,톰발라 놀이 세트,기도용 달력,골무,단추,실패,냉장고,뜨개질 도구,성냥갑(퓌순의 손길이 닿았던),퓌순의 담배 꽁초(무려 4231개),슬리퍼,커피 잔,머리핀,퓌순의 수영복(이것은 어떻게 수집했는지 모르지만),그녀와 처음 사랑을 나눈 침대 매트리스, 심지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장본인 56년형 시보레 자동차의 잔해물들... 이는 터키 이스탄불의 추크르주마에 있는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개조하여 올 하반기에 오픈할 예정인 <순수박물관>속에 전시될 목록중의 극히 일부분이다.   

포탈 싸이트에서 박물관[, museum]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친절한 정의를 소개한다. 박물관이란 "역사·예술·민속·산업·과학 등 고고학자료·미술품, 기타 인문·자연에 관한 학술적 자료를 수집·보관·진열하여 교육적 배려하에 일반 민중의 전람에 이바지 하고, 또 그들의 자료에 대하여 조사 연구하는 시설"이라고 아주 간단 명료하게 정의 되어져 있다. 우리는 국립중앙박물관,전통문화박물관,철도박물관,자동차박물관,도자기박물관,김치박물관등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있는 박물관들을 한 두번쯤을 다녀 왔다. 그리고 박물관의 정의대로 교육적이고 학술적인 가치를 바라보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인들과 더불어 앞선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에게서 작게 느껴지만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전시물을 한두가지 기억 할려고 한다. 또한 박물관은 지난시대의 공통된 기억을 엿 볼 수 있는 지금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지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기억은 개인적인 기억 보다는 오히려 극히 공적인 기억에 더 근접 한다고 해야 겠다. 

하지만 작가는 박물관을 다음과 같이 정의 하고 있다. 1) 돌아다니는 곳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하는 곳이다 2) '느끼게 될 것'의 영혼을 형성하는 것은 수집품이다. 3) 수집품이 없는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전시관이다. 

이런 면에서 파묵의 <순수박물관>은 기존의 박물관이 정의하는 개념과는 사뭇 다른 공식적인 기억이 아닌 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은밀한 기억을 담고 있다. 44일 동안 사랑을 나누었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매였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남자의 30년에 걸친 지고지순하면서 강렬한 사랑과 그에 대한 집착에 대한 모든 기억이 순수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집품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 순수박물관에 하나둘씩 수집된 물건들의 추억은 케말과 퓌순의 짧지만 긴 사랑에 관한 기억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1975년부터의 터키 이스탄불의 부유층을 비롯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공유했던 온갖 기억들이 온통 다 머물러 있다. 특히 작품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에 대한 정의를 언급하면서 밝혔듯이 순간과 순간들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것이 바로 작중 주인공이자 작가의 현신인 케말이 퓌순과 관련된 물건 하나 하나를 수집하면서 그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이고, 자신의 박물관은 순간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을 결합시켜 결국 하나의 시간이라는 개념의 틀 속으로 의미를 부여해 버렸다.  

영원하면서도 고갈되지 않는 사랑을 소재로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고 있고 우리는 많은 사랑 이야기를 알고 있다. 인간은 어찌 보면 이렇듯 진부하다시피한 사랑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또 다른 사랑 이야기에 몰두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종교적인 열정 보다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너무나 모르는 이야기가 사랑이다. 파묵은 순수박물관을 통해서 색다른 사랑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어찌보면 사랑하는 연인과 관련된 물건들을 슬쩍(?)하여 수집하는 행위를 다소 편집증적인 광기나 집착으로 볼 수 도 있지만 사랑을 해본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광경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과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다는 혹은 있었다는 행복한 나르시즘에 빠져 본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몰래 입수했다는 자책감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파묵을 순수박물관을 통해서 아주 소중한 기억의 보고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을 동시에 담고 있는 수집품들을 통해서 그동안 잊혀졌던 그리고 잊혀지기를 강요 당했던 기억들을 맞주 하게 하였다. 

지금처럼 디지털 혁명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디지털카메라,mp3,동영상등을 비롯한 파일형식을 빌려서 우리의 인생을 기억코자 한다. 이를 라이프 로깅이라고 한다면 파묵의 <순수박물관>은 시각적, 촉각적, 후각적인 면에서 살아 있는 실체를 기억하게 하는 진정한 라이프 로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또한 마치 작가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내러티브를 풀어가면서 왠지 모르게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강한 뉘양스를 주는 것과 동시에 설마 아니겠지라는 독자들의 실날같은 바램 사이를 정말 교묘하게 줄타기 하면서 정말 '끝까지 가게"하는 작품이다. 특히 69장 <때로>의 내용에서 그야말로 오르한 파묵의 필력을 유감 없이 엿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숨어져 있다. 그리고 다양한 수집품들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더불어 그 순간 순간에 벌어졌던 등장 인물들의 다양하고 특히한 감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담아 내고 있는 구성 자체가 다소 지루하게 이어져 나갈 것 만 같지만 하나 하나 엮어 보면 절로 수긍이 가게 끔 하는 작가의 화술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순수박물관>은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고통 그로 인한 행복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의 기억이 아닌 터키 이스탄불을 매개로 하는 지난 30년간의 모든 기억과 추억들이 담겨 있는 독특한 구조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어떤 이는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사랑에 감명 받아 눈물을 흘릴 것이고 어떤 이는 터키의 역사와 경제 그리고 사회 문화의 변화상을 보면서 보다 더 거시적인 측면을 볼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소설속에 나오는 다양한 물건들의 이름과 그 쓰임새에도 주목할 것이다. 정말 책의 제목 처럼 세상 온갖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는 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아마도 마지막 페이지를 덥고 나서야 소설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박물관을 아무런 목적 의식 관람하고 박물관 나와서 나와 타인의 기억이 소통될 때 느끼는 다소의 안도감이나 일종의 희열 같은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낮 2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에디오피아 원주민 아이로부터 선물 받은 정체불명의 목걸이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념이 강한 여성 고고학자와 그녀의 연인이자 약간 우유부단한듯 하면서도 순진한 천체물리학자가 끌어 가는 내러티브는 그동안 헐리우드 대형 액션물인 인디아나존스 시리즈 와 미이라 시리즈의 원형을 보는 듯 하다. 단지 영화에서는 남녀 두 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비밀을 추적하는 임무의 완수등 해피앤딩으로 마감하지만 <낮>의 결과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왠지 후속편이 있을거라는 확신을 내심 독자들에게 던저주고 있다.
 
전반적인 플롯은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혹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진입했던 많은 스릴러 소설들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고, 작품의 소재 또한 아주 참신하고 특별하다할 만한 소재를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이런 장르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수월한 가독성과 그리고 시간이 가는줄 모르는 내러티브의 전개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생동감등에서 독자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덥고 나서 혹은 세월이 조금 흐른뒤에 남는 것은 줄거리자체 마처 기억하기 힘들만큼 한순간의 유희정도로 인식되어온 것 역시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모험 스릴러물이 표방하는 서스팬스나 모험의 완수로 인해 풀어지는 비밀의 내막등이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왠지 작품성 자체에 대한 보완적인 장치적 요소는 그리 크게 비중을 두지 못한다. 작품성 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시간적 가독성의 제고가 이런 장르의 태생적인 한계일지도 모른다.(그렇다고 이러한 장르을 통째로 싸잡아 작품성이 떨어진다. 혹은 가십거리정도의 흥행에 집착한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작품성과 가독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낮>을 이런 선입관적인 시각으로 접해 읽어나가면 정말 역시나 하는 생각을 버릴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좀더 시각의 각도를 틀어서 보면 새로운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는 작품임을 알게된다.

인간의 기원을 진화론적 연대보다 훨씬 앞서있을거라 확신하는 고고학자와 우주의 탄생과정과 그 기원 그리고 지구와 같은 행성의 발견에 모든 것을 건 천체물리학자의 결합은 지금 우리가 확신하고 사실이라고 받아 들이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설정이다. 작가는 작품전체에 걸쳐 인류학과 천문학 그리고 고대 전설에 대한 사실적인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키아라의 목걸이의 정체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팁을 제공하면서 독자들 자신들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결말로 은근히 슬쩍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결말 부분이 다가올수록 독자들은 왠지 어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여주인공의 사망과 그로인한 모험의 중단으로 인해 다소 당황스러운 느낌마저 지울수 없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당황스러운것은 그동안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진화와 과학에 대한 믿음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여주인공 키이라가 말한부분을 재 인용하면서 인간의 삶이 우연의 산물이거나 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싶다라는 말에서 걱정거리를 암시하면서 그럼 이런것이 밝혀지게 되면 인간의 진화에는 어떤 의미를 부여 해야 하는가? 단지 인간이 다른 문명으로 가는 한 단계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말에 급반전의 플롯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그동안 이 두사람를 모험의 길로 내몬 장본인 이보리의 편지에 수록된 요람위의 메신저이야기와 결합되면서 결말없는 이 소설을 온통 수수께기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에 우리의 두주인공을 끝까지 추적하는 안개속에 가려진 단체의 성격을 과연 창조론자인지 아니면 진화론자인지에 대한 추측도 독자들의 다양한 상상속에서 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소설은 여기서 마감하는 것이 더 나을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이러한 결말은 그동안 보아왔던 이와 유사한 장르와는 사뭇 다른 방식을 제시해주고 있어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한다. 대부분은 마지막 반전을 내심 기대하고 혹은 예측하고 있지만 이번 같은 반전은 그야말로 반전다운 반전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한방 맞은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내러티브의 결말 자체에 대한 예상을 아예 독자들에게 리턴하므로서 다양한 상상력을 동반한 많은 내러티브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작가의 과학적상식과 영국,프랑스,아테네,중국,미얀마등 다양한 국가의 모습과 생활 묘사등에서 공들인 표현을 엿볼 수 있고 소설의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많은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마무리한 부분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주목할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낮 1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에디오피아 원주민 아이로부터 선물 받은 정체불명의 목걸이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념이 강한 여성 고고학자와 그녀의 연인이자 약간 우유부단한듯 하면서도 순진한 천체물리학자가 끌어 가는 내러티브는 그동안 헐리우드 대형 액션물인 인디아나존스 시리즈 와 미이라 시리즈의 원형을 보는 듯 하다. 단지 영화에서는 남녀 두 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비밀을 추적하는 임무의 완수등 해피앤딩으로 마감하지만 <낮>의 결과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왠지 후속편이 있을거라는 확신을 내심 독자들에게 던저주고 있다.
 
전반적인 플롯은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혹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진입했던 많은 스릴러 소설들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고, 작품의 소재 또한 아주 참신하고 특별하다할 만한 소재를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이런 장르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수월한 가독성과 그리고 시간이 가는줄 모르는 내러티브의 전개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생동감등에서 독자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덥고 나서 혹은 세월이 조금 흐른뒤에 남는 것은 줄거리자체 마처 기억하기 힘들만큼 한순간의 유희정도로 인식되어온 것 역시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모험 스릴러물이 표방하는 서스팬스나 모험의 완수로 인해 풀어지는 비밀의 내막등이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왠지 작품성 자체에 대한 보완적인 장치적 요소는 그리 크게 비중을 두지 못한다. 작품성 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시간적 가독성의 제고가 이런 장르의 태생적인 한계일지도 모른다.(그렇다고 이러한 장르을 통째로 싸잡아 작품성이 떨어진다. 혹은 가십거리정도의 흥행에 집착한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작품성과 가독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낮>을 이런 선입관적인 시각으로 접해 읽어나가면 정말 역시나 하는 생각을 버릴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좀더 시각의 각도를 틀어서 보면 새로운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는 작품임을 알게된다.

인간의 기원을 진화론적 연대보다 훨씬 앞서있을거라 확신하는 고고학자와 우주의 탄생과정과 그 기원 그리고 지구와 같은 행성의 발견에 모든 것을 건 천체물리학자의 결합은 지금 우리가 확신하고 사실이라고 받아 들이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설정이다. 작가는 작품전체에 걸쳐 인류학과 천문학 그리고 고대 전설에 대한 사실적인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키아라의 목걸이의 정체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팁을 제공하면서 독자들 자신들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결말로 은근히 슬쩍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결말 부분이 다가올수록 독자들은 왠지 어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여주인공의 사망과 그로인한 모험의 중단으로 인해 다소 당황스러운 느낌마저 지울수 없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당황스러운것은 그동안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진화와 과학에 대한 믿음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여주인공 키이라가 말한부분을 재 인용하면서 인간의 삶이 우연의 산물이거나 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싶다라는 말에서 걱정거리를 암시하면서 그럼 이런것이 밝혀지게 되면 인간의 진화에는 어떤 의미를 부여 해야 하는가? 단지 인간이 다른 문명으로 가는 한 단계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말에 급반전의 플롯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그동안 이 두사람를 모험의 길로 내몬 장본인 이보리의 편지에 수록된 요람위의 메신저이야기와 결합되면서 결말없는 이 소설을 온통 수수께기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에 우리의 두주인공을 끝까지 추적하는 안개속에 가려진 단체의 성격을 과연 창조론자인지 아니면 진화론자인지에 대한 추측도 독자들의 다양한 상상속에서 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소설은 여기서 마감하는 것이 더 나을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이러한 결말은 그동안 보아왔던 이와 유사한 장르와는 사뭇 다른 방식을 제시해주고 있어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한다. 대부분은 마지막 반전을 내심 기대하고 혹은 예측하고 있지만 이번 같은 반전은 그야말로 반전다운 반전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한방 맞은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내러티브의 결말 자체에 대한 예상을 아예 독자들에게 리턴하므로서 다양한 상상력을 동반한 많은 내러티브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작가의 과학적상식과 영국,프랑스,아테네,중국,미얀마등 다양한 국가의 모습과 생활 묘사등에서 공들인 표현을 엿볼 수 있고 소설의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많은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마무리한 부분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주목할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