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의 불꽃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3
톰 울프 지음, 이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1973년에 촉발된 제1차 석유파동은 종교적인 문제와 더불어 자원의 무기화라는 이슈를 탄생시키면서 향후 한번의 오일쇼크를 야기시키면서 세계경제를 뒤흔들어 놓았고 세계는 다시 세계대공항이 대두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라는 신자유주의 기치하에 양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엄청난 부의 폭발을 이룩했다. 신자유주의는 그동안 실물파트에서 실권을 쥐고 있던 경제패턴을 단숨에 금융경제위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금융경제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고 미국 뉴욕의 월가는 바로 거위목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쥐고 흔드는 우주의 지배자로 우뚝서게 된다. 톰 울프의 <허영의 불꽃>는 바로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 인해 부의 패권을 손에 거머쥔 이들과 이에 반해 철저하게 소외 받은 흑인들 그리고 이민자들의 삶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기자 출신인 작가는 아주 정말 우연히 흑인들의 세계인 브롱스에서 벌어진 뺑소니 교통사고로 인해 미국의 정신이라고 대표되는 뉴욕의 정서를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소설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허영의 불꽃>은 제목 그 자체에서 어느 정도 작품의 플롯이나 네러티브를 감지할 수 있듯이 당시 미국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왠만한 문제를 거의 다 다루고 있는 사회고발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주인공 셔면 메코이를 통해서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아킬레스건인 빈익빈 부익부의 괴리감, 앵글로색슨계열과 흑인들 그리고 이민자들간의 인종문제, 특종과 선정주의 대박만을 노리는 옐로/블랙저널리즘의 병폐, 미국 사법시스템의 폐악, 정치권과 종교인의 비리, 그리고 무너져 내려가는 개인들의 가치관을 기자가 기사를 투고하듯이 세세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독자들로 하여금 속이 시원하다는 대리만족도 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마치 작품속 등장인물들이 상상의 픽션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수 없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그저 단순하게 사회고발적인 내용이나 이를 추적하는 르포형식을 띄어 넘어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진행상황에 대한 철저한 배경 묘사가 마치 엑스선을 투과하여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 못해 참석하게 되는 디너파티에서 참석자들의 핵핵핵, 허허허, 호호호, 후후후, 흑흑흑, 하하하 등으로 묘사되는 웃음소리는 사건에 쫓기고 있는 셔면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적나라하게 들어내주고 있다. 또한 셔면의 집 내부 인테리어 장식에서 그의 정부 마리아의 옷차림과 브롱스교도소 건물의 묘사등은 마치 그곳을 직접보지 않았다면 지면에 담을 수 없을 만큼 현장감과 생동감을 불어 넣고 있다. 이러한 장치들로 인해 다소 딱딱하고 무거운 사회고발장르를 섬세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견인할 수 있는 것은 작가만의 역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허영의 불꽃>은 불편한 진실을 내제하고 있기도 하다. 앵글로색슨계 미국 신교도인 와스프이자 정통지배계층 가문의 출신으로 예일대을 나온 우수한 채권딜러인 주인공 셔면의 몰락을 마치 흑인들과 이민자들의 인종주의 희생양처럼 그리고 있는 작가의 보수적인 이념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옥에 티라고 하면 비약적인 발상일까? 흑인들과 이민자들이라는 미국사회의 비주류계층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그리 곱지 못한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불편한 진실이다. 

초화주택과 명품과 파티의 연속인 삶 그리고 이러한 화련한 치장과는 별개로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는 또 다른 이면, 죄수와 증인들과 협상하면서 여성 배심원을 흠모하는 검사, 종교인으로 종교적인 영적삶을 포기하고 군중선동과 비리를 저지르는 목사, 정치라는 허영심을 위해선 거짓말을 서슴치 않는 시장과 검사장, 특종을 위해서라면 개인적인 영역조차 확대 포장하는 저질 언론인과 언론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너무나 쉽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배신하는 사람들 작가는 그야말로 미국사회에 현존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군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미합중국내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왠지 작품을 읽고 난 후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씁쓸한 느낌과 더불어 독자 자신도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패러독스에 빠져들게 하는 시니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에드가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에 등장하는 붉은 죽음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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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 하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개정판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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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소설이라는 문학장르는 일종의 볼가심(적은 음식으로 시장기를 면함)이나 초다짐(시장기를 면하기 위해 간단히 먹는 일)정도면 그 역활을 다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때의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더 큰 욕구를 채우기 위해 좀전까지 오로지 먹거리에 대한 상념을 가득차 있던 허기진 배가 대충 채워버리면 언제 그랬냐듯이 게슴츠레한 눈빛 아니 약간은 혐오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왠지 타인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심정으로 소설을 대했다. 아마도 개인적인 비뚤어진 편력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 만큼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역활의 소설 작품이 그닥 없었다는 변명아닌 변명일 수도 있다.

매번 김탁환 작가의 작품을 대할때 마다 느끼지만 그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볼가심이나 초다짐같은 욕구를 넘어서 향후 더 높은 욕구에 대한 추종력 마저 끊어버리는 마력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역사소설이라는 장르가 팩트와 픽션의 오버랩으로 이루어진 영역이다 보니 실존인물에 대한 역사적, 시대적 평가와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한 평가가 상충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에 대한 작가의 부담은 어느 분야 보다 높을 것이다. 또한 역사적 팩트에 대한 부분이 과하면 소설이라는 작품성에서 빗나가게 되고 작품성에 무게 중심을 두다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한 작품으로 남게 마련이다. 하물려 여기에다 추리소설이라는 부분까지 가미하게 되면 정말 속된 표현으로 죽도 밥도 끓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이러면에서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세가지의 플롯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시대적 배경을 조선의 르네상스라 칭하는 정조시대 교조적인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땅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실학과 북학의 열풍 그리고 서학의 대두등으로 조선은 일대 가치관의 혼돈과 더불어 시대적 대격변을 서서히 맞이 하고 있었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모토로 작가의 상상력은 날래를 펼친다. 무엇보다 이번 <열녀문의 비밀>은 거대한 메타포에 대한 견지보다는 당시 일반대중들이 몸소 겪었던 소소하지만 결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모티브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양난(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이미 성리학에 대한 국가 통치적 가치관의 힘은 무의미 해지면서 조선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고 이러한 가치관의 혼동은 이미 일반 대중속으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맹지도의 희망을 끝까지 견지 해야만 했던 계층과 이미 새로운 사조를 몸으로 받아 들였던 계층간의 갈등을 작가는 자살을 가장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통해 당시 대립각을 세웠던 논거들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실존인물인 이덕무,박제가,김홍도,백동수등을 통해 픽션을 마치 팩트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내러티브의 향연을 볼 수 있다. 꽃에 미친 화광 김진이라는 유니크하고 시니컬한 주인공의 캐리턱와 작중 화자인 의금부도사 이명방이 끌어가는 내러티브는 한국판 셜록홈즈를 보는 듯한 착가마저 자아낸다. 또한 작가답게 소설속에 또 다른 소설들이 등장하고 소설과 더불어 각종 서책들을 소품으로 끌어들이면서 왠지 소설이라는 것이 단순한 래퍼토리의 짜집기나 작가 개인의 취향만이 아니라는 점을 은근히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소설의 맹점중에 하나가 가독성의 수위조절을 어떻게 견지하느냐에 따라 진부한 역사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고 시대적 배경과 괴리된 허무맹랑한 픽션으로만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나 독자들에게 부담으로 남는다. 그러면에서 보면 이번 작품은 옛스러운 고어나 당시 통용 되었던 언어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과 행동등을 최대한 살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옛스러움에 작가의 시각을 조심스럽게 반영함으로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기막힌 대반전을 통해서 당시 시대적인 패러다임의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언듯 추리소설쪽에 무게감이 더해지지만 <열녀문의 비밀>은 기존 성리학이라는 교조적인 가치관에 대한 반기이자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사건 해결에 대한 희열이나 안도감이라는 개인적인 잔상보다는 그 시대의 격렬했던 사조의 교차가 더 크게 자리잡게 된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김탁환의 작품은 볼가심이나 초다짐 정도의 충족으론 그 깊이가 태없이 부족하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아귀처럼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들의 애간장만 태울 뿐이다. 그 만큼 재미와 더불어 오래남는 잔상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 이 작품을 원작으로 곧 <조선 명탐정>이라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대충의 시놉시스의 뉘양스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코믹적인 요소가 다소 가미된 듯하다. 주인공 김명민의 역활은 아마도 민틈없는 오검서 김진과 의기충천한 의금부도사 이명방을 적절히 섞은 캐릭터가 될 것 같다. 거기에 원작에 없는 개장수 오달수라는 감칠맛 나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흥미를 더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무릇 영화라는 시각적 매체가 가지는 장점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차별화된 시나리오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그래서 불멸의 이순신 이후 미디어매체로 재 탄생하게 되는 이번 작품의 묘미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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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개정판 백탑파 시리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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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소설이라는 문학장르는 일종의 볼가심(적은 음식으로 시장기를 면함)이나 초다짐(시장기를 면하기 위해 간단히 먹는 일)정도면 그 역활을 다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때의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더 큰 욕구를 채우기 위해 좀전까지 오로지 먹거리에 대한 상념을 가득차 있던 허기진 배가 대충 채워버리면 언제 그랬냐듯이 게슴츠레한 눈빛 아니 약간은 혐오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왠지 타인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심정으로 소설을 대했다. 아마도 개인적인 비뚤어진 편력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 만큼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역활의 소설 작품이 그닥 없었다는 변명아닌 변명일 수도 있다.

매번 김탁환 작가의 작품을 대할때 마다 느끼지만 그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볼가심이나 초다짐같은 욕구를 넘어서 향후 더 높은 욕구에 대한 추종력 마저 끊어버리는 마력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역사소설이라는 장르가 팩트와 픽션의 오버랩으로 이루어진 영역이다 보니 실존인물에 대한 역사적, 시대적 평가와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한 평가가 상충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에 대한 작가의 부담은 어느 분야 보다 높을 것이다. 또한 역사적 팩트에 대한 부분이 과하면 소설이라는 작품성에서 빗나가게 되고 작품성에 무게 중심을 두다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한 작품으로 남게 마련이다. 하물려 여기에다 추리소설이라는 부분까지 가미하게 되면 정말 속된 표현으로 죽도 밥도 끓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이러면에서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세가지의 플롯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시대적 배경을 조선의 르네상스라 칭하는 정조시대 교조적인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땅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실학과 북학의 열풍 그리고 서학의 대두등으로 조선은 일대 가치관의 혼돈과 더불어 시대적 대격변을 서서히 맞이 하고 있었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모토로 작가의 상상력은 날래를 펼친다. 무엇보다 이번 <열녀문의 비밀>은 거대한 메타포에 대한 견지보다는 당시 일반대중들이 몸소 겪었던 소소하지만 결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모티브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양난(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이미 성리학에 대한 국가 통치적 가치관의 힘은 무의미 해지면서 조선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고 이러한 가치관의 혼동은 이미 일반 대중속으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맹지도의 희망을 끝까지 견지 해야만 했던 계층과 이미 새로운 사조를 몸으로 받아 들였던 계층간의 갈등을 작가는 자살을 가장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통해 당시 대립각을 세웠던 논거들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실존인물인 이덕무,박제가,김홍도,백동수등을 통해 픽션을 마치 팩트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내러티브의 향연을 볼 수 있다. 꽃에 미친 화광 김진이라는 유니크하고 시니컬한 주인공의 캐리턱와 작중 화자인 의금부도사 이명방이 끌어가는 내러티브는 한국판 셜록홈즈를 보는 듯한 착가마저 자아낸다. 또한 작가답게 소설속에 또 다른 소설들이 등장하고 소설과 더불어 각종 서책들을 소품으로 끌어들이면서 왠지 소설이라는 것이 단순한 래퍼토리의 짜집기나 작가 개인의 취향만이 아니라는 점을 은근히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소설의 맹점중에 하나가 가독성의 수위조절을 어떻게 견지하느냐에 따라 진부한 역사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고 시대적 배경과 괴리된 허무맹랑한 픽션으로만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나 독자들에게 부담으로 남는다. 그러면에서 보면 이번 작품은 옛스러운 고어나 당시 통용 되었던 언어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과 행동등을 최대한 살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옛스러움에 작가의 시각을 조심스럽게 반영함으로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기막힌 대반전을 통해서 당시 시대적인 패러다임의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언듯 추리소설쪽에 무게감이 더해지지만 <열녀문의 비밀>은 기존 성리학이라는 교조적인 가치관에 대한 반기이자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사건 해결에 대한 희열이나 안도감이라는 개인적인 잔상보다는 그 시대의 격렬했던 사조의 교차가 더 크게 자리잡게 된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김탁환의 작품은 볼가심이나 초다짐 정도의 충족으론 그 깊이가 태없이 부족하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아귀처럼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들의 애간장만 태울 뿐이다. 그 만큼 재미와 더불어 오래남는 잔상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 이 작품을 원작으로 곧 <조선 명탐정>이라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대충의 시놉시스의 뉘양스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코믹적인 요소가 다소 가미된 듯하다. 주인공 김명민의 역활은 아마도 민틈없는 오검서 김진과 의기충천한 의금부도사 이명방을 적절히 섞은 캐릭터가 될 것 같다. 거기에 원작에 없는 개장수 오달수라는 감칠맛 나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흥미를 더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무릇 영화라는 시각적 매체가 가지는 장점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차별화된 시나리오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그래서 불멸의 이순신 이후 미디어매체로 재 탄생하게 되는 이번 작품의 묘미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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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불로문의 진실 - 다시 만난 기억 에세이 작가총서 331
박희선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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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장생(不老長生), 불로불사(不老不死) 라 함은 우리는 고대인들의 영속적인 삶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이러한 불로나 장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에 인간의 눈은 항상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갈망들은 종교적인 신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설화와 전설을 남기게 되고 그 중에서 우리는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과 관련된 또 하나의 전설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불로초"이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시황제는 자신이 세운 제국을 반석위에 올려놓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정치적인 메스를 가하지만 자신 역시 일개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불로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불로초를 찾아 머나먼 한반도의 남녘 탐라까지 원정대를 파견하게 되고 파견대장 서불(서복)의 책임하에 불로초의 신비를 파해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이미 알고 있듯이 시황제는 불로초를 손에 쥐지 못한채 한 풀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무덤속에 병마용갱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서 불로초의 애환을 달랬다.  

<불로문의 진실>은 바로 시황제의 밀명을 받았다는 서불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차용해왔다. 우리에겐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불로초 이야기를 창덕궁의 불로문과 제주도 정방폭포 암각등을 절묘하게 컨텍하였고 숙종을 비롯한 역사적 팩트를 가미하여 마치 역사소설의 뉘양스를 느끼게도 하지만 전체적인 플롯은 판타지소설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성배의 비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한국판 인디아나존스를 보는듯 내러티브가 박진감 넘치면서 스팩타클하게 진행되고 있다. 2천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설정은 다소 황당한 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불로초에 대한 진실성을 한층 더 부각시키는 구성요소로 비쳐진다. 특히 이야기의 결말부분에서 예리한 독자라면 어느정도는 예감할 수 있지만 구명환교수의 실체가 밝혀지는 부분이 커다란 반전으로 다가온다. 또한 서불의 시대와 숙종이후의 시간의 빈간격을 독자들의 상상으로 채울수있는 매력도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재치와 필력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다만 화자의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이지만 왠지 너무 현대 스러운 분위기 내지는 뉘양스가 다소 눈에 거슬린다. 전반적으로 유니크한 레퍼토리와 내러티브의 지루함이 없어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하는데는 무리가 없어 보이며 특히 창덕궁등 소설내용을 한층 더 이해하기 쉽게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불로장생은 제국의 황제나 일국의 국왕뿐 아니라 일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면 누구나 욕망하는 바일 것이다. 과학기술이 정점을 이룬 현대에도 다양한 생명공학기술이나 의료기술 및 웰빙식품등에 이러한 불로장생의 욕망이 깃들여져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뚤어진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게 되고 그 욕망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지난간 역사를 되돌이켜 봐도 익히 알수있는 것이다. 작중 마쓰다가 말했던 "어떻게 살 것인지는 살피지 않고 얼마나 살 것인지에만 관심을 두고 인위적으로 노력 한다면 그건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일이라는 것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 이순간에도 수치로 들어나는 양적인 삶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른다. 불로초는 아마도 이러한 욕망이 끝나지 않는한 항상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에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허망속의 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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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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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를 접하기까지 SF는 환성,공상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간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풍부한 볼거리로 가득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권수를 늘려가는 재미정도로만 여겨졌다. 물론 그렇다고 SF계통의 작품들을 싸잡어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유희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 아니 더 나아가 인간과 거의 흡사한 외모와 감정 그리고 판단논리까지 두루두루 갖춘 사이보그, 그리고 시간여행이 가능한 타임머신을 통해서 차원을 넘나드는 시간여행 등 이렇게 상상한 하더라도 SF의 플롯, 내러티브는 매혹적으로 다가오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관을 한번에 날려버린 작가가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이다. <화성연대기>를 통해서 물론 그의 전작을 접해보질 못해서 단언하지 못하지만 통상의 SF를 기대했던 독자들의 바램을 저버린다. 작품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화성을 주무대로 하고 있고 지구에서 화성으로 여행을 오고 화성에 정착하여 살기도 하고 그 와중에 인간을 빼다 닮았는 로봇도 등장하고 시간적인 배경도 1999년에서부터 2026년까지 SF적 구성요소는 다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막상 작품을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SF인지 서정문학인지 독자들을 알송달송하게 만들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결말부분으로 다가갈수록 지구와 인간에 대한 포괄적인 인문학적 물음에 직면하게 되면서 그동안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읽었던 인내감에 돌을 던지게 된다. 

화성(MARS)는 달과 더불어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천체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신화부터 시작하여 과학시대를 접어들면서 화성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었다. 지구와 가장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어쩌면 우리와 같은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하리라 여겨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상은 1898년 하버드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이라는 SF의 원조적인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고 나사의 바이킹호가 화성에 착륙하여 생명체가 살수있기에 부적절한 환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우리에게 화성은 지구의 또 다른 닮은꼴로 그려져 왔다. 그러면서 화성은 그 어원에서 볼수있듯이 전쟁의 신인 마르스에서 따왔기 때문에 외계인하면 화성인을 지칭했고 화성인하면 지구를 침범하는 침략자의 이미지로 낙힌 찍힌것 역시 사실이다. 가깝고 친근하면서 왠지 두려움의 대상인 화성과 화성인이라는 틀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뒤집어버렸다. 정말 때묻지 않는 영혼의 소유자들인 화성인들을 멸종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름아닌 지구에서 건너온 정신으로 오염된 지구인이었던 것이다. 폭력,전쟁,돈,시기,질투의 화신으로 전락한 지구인의 눈에 순수한 화성인은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이후 물밀듯이 몰아닥친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화성은 그들의 도피처이외는 어떠한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현대과학문명은 인류에게 많은 점을 선사했다. 지식의 보고로 부의 매개체로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과학문명은 곳곳에 자리잡고 지금도 인류의 견인차 역활을 하고 있다. 그 옛날 덩치 큰 육식 포유동물의 눈치를 살치면서 생존에 급급했던 인류에게 과학적 사유와 방법에 대한 진화는 그야말로 눈부신 결과를 가져왔고 이제는 이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지배자라는 생각을 굳혀버린지 오래다. 오직 인류에게 외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우주탐사라는 미명하에 하나씩 정복할 수 있는 자만심을 은근히 몸에 배게해버린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이기주의 빠져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는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오히려 생각이 깊은 인문학적 플롯을 던져버리고 SF적인 메타포를 동원하면서 더 인상깊게 다가온다. 결말 부분의 다소 시니컬한 인상은 어쩌면 이 좁은 땅덩어리 속에서 발더둥치고 있는 인류에게 보내는 대우주의 메세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황량하면서도 거의 독백에 가까운 화자들의 목소리는 지금 이대로 인류가 변화 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아마도 가까운 미래속에 위치할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전혀 SF작품 같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SF작품이 바로 <화성연대기>이지 않나 싶다. 그 어떠한 메아리보다 강력하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거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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