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을 둘러싼 추측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7
우베 욘존 지음, 손대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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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독일의 대표작가 우베 욘존의 대표작인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은 한마디로 정의 하기 어려운 난해한 소설이자 특히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작품 제목의 추측들에서 그 대표적인 이미지를 발췌해본다면 한마디로 무성한 추측을 야기케 하는 그런 작품이라고 해야 겠다. 베를린 장벽이 완성되기 전인 1956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분단이라는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통상적인 소설의 구조를 무시해버린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는 내내 나름의 추측을 시도해보게 하는 마력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시제의 혼돈, 화자와 서술자가 바라보는 뷰의 이격성, 독백과 대화의 혼용으로 마지막 5장에 이르기 까지 누구의 관점에서 내러티브를 이끌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독자들을 혼란으로 빠트린다. 그나마 번역가의 작품 해설을 통해서 작품 전체 레파토리의 이해가 될 정도로 시종일관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추측에 추측을 낳게 하는 연쇄작용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하고 있다. 일국 국가사회주의라는 광적인 이데올리기는 결국 분단이라는 또하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낳고 대다수의 민중과 무관하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남는다. 그리고 국가 권력(소설속의 롤프스 비밀경찰)은 이데올로기의 완벽성을 위해 민중을 이용하고 무지한 민중(야콥)은 대항할 의지조차 피력하지 못하고 국가 권력에 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가 권력이나 일반 민중에게나 별반 남지 않는 모호한 추측들만 남기게 되고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던 독일의 분단과 각각의 프레임속에서 적응하면 살아가야만 했던 당시 일반민중들의 선택없는 삶(특히 구 동독의)을 통해서 작가는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적인 사유나 선과 악을 구분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그저 당시 대다수가 느꼈을 감정이 분출을 통해서 다소 뜨뜨미지근하게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양쪽의 권력에 의해서 다양한 추측들 낳게하는 어쩡쩡한 대상으로 지목 되었고 어느 한쪽에 정착할 수 없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는 소설속 야콥의 짧은 생을 통해서 경계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분단의 현실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고 소설의 세계를 떠나 분단이 진행중인 우리의 현실 또한 대동소이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낯설지 않는 광경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비단 온몸으로 분단의 현실을 체험하지 못했고 시간의 망각속으로 자꾸만 빠져들어도 분단이 가져왔고 여전히 진행중인 아우라속에선 어느 누구고 거역할 수 없는 많은 추측들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작중 다양하고 난해한 장치들로 인해 소설을 읽는 것인지 비밀이 공개된 국가 문서를 읽는 것인지, 누가 화자이고 서술자이며 이 단락의 대화의 주체와 상대는 누구인지 그리고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매듭될까라는 추측들을 독자들 각 개인의 방식대로 스스로 만들어 가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이처럼 난해한 장치를 통해서 독자들의 관점을 흐려놓고 비틀어 놓았다면 이에 적극 부응하여 독자 역시 나름의 추측과 상상으로 끝을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 그 자체가 작가의 집필의도에 부합하기라도 하듯이 다양한 결말과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근래에 보기 힘든 작품이라고 해야 겠다.(이는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볼 수 있듯이 작중 인물들 나름의 추측을 재구성하면서 그 진실을 파헤쳐 나가고 있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물론 내러티브상 야콥의 죽음을 미리 상정하여 놓고 출발했지만 막상 그의 죽음에 대해서 작가는 물론 독자들 역시 많은 추측을 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시대상을 반영하고 독자는 그 작품을 통해서 시대와 소통한다는 다소 거대한 담론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이번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하물며 지금까지도 분단이 진행중인 특수상황에 처해 있는 국내 독자들에게 더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떠나 작지만 그저 인생 자체가 전부였던 개인들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묘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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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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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뉴요커> 선정 '미국 문단을 이끌 40세 이하 대표적 신인 작가 20인'에 이름을 올렸고 저명한 기상학자인 아버지를 두고 신경정신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리브카 갈첸의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원제 '대기불안정'>은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유니크한 작품이다. 독특하다는 표현은 작가의 이력만이 아닌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플롯과 내러티브의 전개가 마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만큼이나 난해하면서도 은근히 독자들의 눈을 붙들어 매는 언어들의 향연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가장 근원적인 차원의 역활을 수행해야할 소설의 위치를 망각해 버리고 철학서를 대하는 듯한 삶의 근본에 대한 괴로움을 자아내고 이러한 괴로움을 이해 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겐 저기압과 고기압이 충돌하여 불안한 대기상태를 보는듯한 마음의 심란한 상태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라고 해야 겠다.  

어느날 갑자기 잘 있던 아내가 부재해버리고 정체모를 여인이 아내인양 눈앞에 나타나면서 정신과 의사인 주인공의 삶은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어김없이 뜨고 기온은 따스하며 바람 한 점 없는 그야말로 화창한 봄날이 될 것입니다" 라는 누구나 바라는 기상상태가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봐야 해가 어느 방향에서 뜰 것이며 기온이 따뜻할지 추울지 바람이 거세게 불지 잔잔한지 그 상태는 내일이 되봐야 알 것입니다"라는 회괴망측한 상태로 갑자기 돌변해 버리는 과정속에서 사랑을 찾아서 아니 좀더 원대하게 바라보면 삶의 의미를 찾아서 방황하는 한 지식인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위 말하는 카그라스 증후군 증세를 보이면서 현실세계와 자신속의 세계가 오버랩 되는 심리상태를 의학적인 딱딱한 논문이 아닌 일상에서 마주치는 현상들을 통해서 당사자와 당사자를 둘러싼 이들의 심리적 갈등상태를 풀어가고 있는 무거운 주제의 무거운 내용의 작품이다. 그래서 작품전반이 표방하는 유니크한 주제와 더불어 작품 이해도의 난해성으로 인해 가슴 울러증을 일으킬 만큼 어려운 작품으로 봐야 할 것이다.(물론 동의 하지 않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작가의 아버지인 기상학자 츠비 갈첸의 등장과 그의 실재적인 논문들의 인용과 정신분석학적인 학문적 내용들을 덧대면서 내러티브의 신빙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장치와 동시에 레파토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독자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고 있는 점(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가 진짜일까라는 생각들...)이 눈에 띈다. 이는 작품을 읽는 내내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스스로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마치 이 작품은 나를 비추는 거울인양 소설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착각 마저 불러 일으킨다.  

전반적으로 그동안 작극적인 작품(서스팬스와 주제의 독특함 그리고 다양한 판타지적 요소 여기에 약간의 비뜰림까지 가세한)들에 입맛이 길들여진 독자라면 실망이 클 것이며 완독하는데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하는 시쳇말로 정말 재미없는 작품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대기가 항상 일정하지 않듯이 요동치는 단어들의 롤러코스터같은 긴박감에서 해방되어 잔잔한 수면위를 바라보는 평온함을 맛보게 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기상학과 신경정신학을 심리상태에 적절히 배합하여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현실속의 자신에 대한 상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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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딩 후드
사라 블라클리 카트라이트 지음, 나선숙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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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떠오르면 제일 먼저 머리속에 스쳐가는 것이 무엇인가? 괴담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이라면 늑대인간을 떠올리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보름달과 늑대인간 이 두가지 모토는 호러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간의 공포를 극으로 치닿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보름달 그리고 상상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늑대인간.  

누구나 한번은 어릴적 <빨간모자> 라는 동화를 읽으면서 전통적인 메세지인 권선징악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항상 선은 악에 승리하고 해피앤딩으로 마감하게 되지만 실상 우리의 삶은 이런 동화와는 사뭇 무관한 지점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연장선에 <레드 라이딩 후드>라는 색다른 개념의 소설이 다가온다.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호러, 스릴러, 판타지, 추리, 로맨스 소설들을 접해왔다. 이들 장르는 그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지금도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에서 반전에 반전을 이끄는 클라이막스 그리고 독자층을 속이는 다양한 기법의 장치들 속에서 독자들은 허가 찔리면서도 그것들이 가져다 주는 쾌락의 진한 감동을 맘끽하고 있다. <레드 라이딩 후드>는 동화 빨간모자의 소녀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원작과는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단지 늑대와 할머니 그리고 소녀 이 세가지만이 녹아있을뿐(하나더 있단 바로 빨랑 망토) 기존의 스토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 그리고 괴기한 호러와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어느 세상의 이야기인지 모를 SF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여기에 늑대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점을 증폭 시키면서 추리소설의 기법을 접목시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책을 읽어 나가게 한다.(영화에서는 늑대의 정체가 밝혀지는지 모르지만 소설만으로는 물음표를 던지며 마감하게 된다. 뭐 정작 늑대의 정체는 다소 예견되지 못한 인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번 시리즈의 테마가 블랙로맨스 클럽이라는 사실에서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로멘스이다. 아무리 추리와 스릴러, 호러, 판타지가 그 강인한 냄새를 풍기더라도 빨간망토의 소녀인 발레리와 그의 연인 피터 그리고 발레리를 사랑하는 헨리의 로멘스가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동안 독자들이 상상했던 로멘스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애틋한 심리묘사나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한 파스텔톤적인 배경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간의 적나라하면서도 달콤한 섹스의 향연등은 눈을 씻도 찾아봐도 이번 작품에서는 볼 수 가 없다. 연인들의 심리묘사는 아주 간단하게 처리되고 있다. 그리고 주변배경은 판타지적인 분위기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장치들이 연인들의 로멘스을 당연시 여기게 하는 요소로 뒷받침 하고 있다. 이러면들이 기존의 로멘스와 다르지만 이 역시 로멘스로 볼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로멘스가 빠진 작품은 왠지 석연치 않다. 그러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로멘스의 삽입은 자칫 작품 전체의 방향성을 흔들고 개념정의가 곤란해지는 오류를 낳기 마련이지만 이번 작품은 로멘스가 그 중심에 서서 레파토리를 이끌어 가는 느낌을 주면서 탄탄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여기에 팁으로 소설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늑대에 대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독자들의 상상력에 불을 당긴다. 과연 피터, 헨리, 혹은 할머니가 늑대일까? 비록 피터가 늑대일지라도 눈이 부시게 새하얀 눈밭에서 발레리와 피터의 마지막 키스신은 그 어떤 로멘스에 뒤지지 않는 엔딩으로 기억될 것이다. 뭐 여타의 이유를 다 떠나서 독서 삼매경에 빠지게 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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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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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뮤지컬 그리고 연극등으로 이미 <거미 여인의 키스>라는 작품은 많이 알려져 있는 면에서 일반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상식적인 말일 것이다. 제목자체나 표지의 그림에서 느껴지듯이 왠지 고혹적이고 육감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한번쯤은 필히 읽어봐야할 작품으로 도서목록 윗칸에 표기해둔 작품이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 소설이라는 환상적인 느낌마저 배가되면서 궁금증 내지는 조급증은 책을 손에 들기전 부터 많은 유혹으로 다가오게 된다. 특히 동성애라는 시대의 금기사항마저 언급하고 있다면 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소설임에 틀림없다. 性에 대한 관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본연의 특징이자 인간자체에 대한 탐구일 것이고 그 방향이 양방성을 가지느냐 일방성을 가지느냐에 대한 논란이나 이견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인터넷 서점이나 각종 포탈사이트에 올라온 수많은 리뷰만을 보더라도 분명 이 작품의 대중성이나 작품성에 대해선 어느정도 공인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문학적인 소견이나 감성적인 디테일의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이해도는 그야말로 난해성 그자체로 다가왔다. 프로이트, 마르쿠제, 랭크등의 복잡한 성이론과 심리이론은 각주로 도배하면서 이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고차원적인 난해함을 더하고 특히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6편의 영화(반은 실재이고 반은 허구인)은 가득이나 몰리나 발렌티 두 사람의 대화 위주로 전개되는 내러티브의 가독성을 혼미 자체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의 장치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를 반감시키면서 책을 들게한 최초의 의도와 책을 완독해야하는 현실속에서 똘레랑스의 미덕을 어떠한 형태로 지켜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갈등을 갖게 한다. 비록 번역가의 작품 해설을 보게 되더라도 솔직히 수긍하기 힘들정도의 혼란성은 여전히 남겨 두기 때문이다. 가히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문제작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위안을 가져보게 되지만 그래도 왠지 석연치 않는 앙금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지금 공연중인 연극을 보게 되면서 얼음이 녹듯이 머리속을 파고 들게 됨을 알게 된다. 역시 2차원적인 활자화보다는 한차원 더해진 시각화와 단순화가 작품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된다는 현실에서 다시한번 몽매함을 탓하게 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책과 형상화된 표현물을 동시에 접하지 않고서는 <거미 여인의 키스>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나름의 변에 만족하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6편의 영화이야기는 몰리라 라는 게이의 성 정체성과 사랑의 진리에 대한 끝없는 자기 탐구와 자기 합리화의 수단이자 파트너인 마르크스 혁명주의자 발렌틴이 갈구하는 혁명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결국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고차원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이념혁명과 사회(일반적인 사회라고 지칭되는 현실)에서 가장 터부시 되고 저급한 대상인 동성애와 관계 정립을 나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이 고결하고 고급스럽고 또 어떤것이 저급하고 불가촉한 것인가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그 판단적 근거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숨막힐것 같은 작은 감방속에 수감된 두 사람의 대립적인 심리상태와 그리고 하나가 되는 섹스행위를 통해서 작가는 그 어떠한 이념적 고결함이나 제도적인 우월성도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과는 역행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전반적으로 작가는 작품전체를 비틀어 놓았다.(그것도 아주 심하게) 6편의 영화이야기와 두 수감자의 이야기가 뒤범벅 되면서 독자들의 눈과 생각을 뒤흔들어 놓고 테이프를 되감듯이 책장을 앞으로 돌리게 하고, 거기에다 상당히 긴 각주를 읽어야 하는 고통을 수반시키면서 내러티브를 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흥미를 서서히 잃어가게 하는 작품이다. 물론 이 말은 단순하게 소설만은 접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을 전재해 두고 하는 말이다.(아니 극히 개인적인 소양의 미달이라고 해야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영화나 뮤지컬, 연극과 같이 읽게 된다면 한결 수월하게 작가의 숨어 있는 의도와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그리고 작중 인물들의 심리묘사등이 가슴 깊이 와닿는 흔치 않게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몰리나와 발렌틴의 사랑행위를 그저 단순한 시각으로 동성애로 몰아 갈 수 없는 것이 6편의 영화이야기속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모처럼 많은 고민과 갈등을 유발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작품의 난해성속에 꼭꼭 숨어있는 작가의 뛰어난 사유를 찾았다는 쾌감에서 왜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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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2
마틴 에이미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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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머니 즉 돈 만큼 친숙한 대상도 없을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관계인 가족과 인간관계만큼이나 돈은 우리 인간들에게 너무나 당연시 다가오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류가 경제라는 개념을 터득하면서 발명한 화폐는 당초의 교환가치의 표방을 뛰어넘어 자산증식의 축적가치로 변질되었고 더 나아가 가족이나 사회나 문화나 종교에서보다 오히려 더 포근함과 인간다움, 우월성 그리고 믿음 아닌 확신을 가져오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고 침대에서 잠들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선 돈을 등한시 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그다지 인지하지 못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상은 돈에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죽을때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라는 금언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얼청없는 사건들의 이면에는 항상 돈이라는 묘한 존재가 깔려있고 톱기사로 제단되는 스캔들에도 어김없이 돈이 그 흉한 얼굴에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라는 명제에 대해서 이젠 무어라 단언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는 바로 면도날 같은 돈의 양면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나름 잘나간다는 런던의 광고감독이 우연히 비행기에 알게된 뉴욕의 영화제작가의 제의에 따라 영화제작을 수락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탐욕과 이로 인한 끝도 없는 추락의 나락 그리고 자살시도 그야말로 돈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는 아주 시니컬한 작품이다. 특히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도스또예프스끼나 톨스토이등의 대문호들 통해서 문학작품하면 떠올리게 되는 작품성내지는 그와 거의 동격으로 간주되어버린 품의에 대해서 심각한 도전장을 던져주고 독자들로 하여금 과연 문학작품이 이렇게 막나가도 되는가에 대해서 살짝 혼란을 가져다 준다. 포르노영화를 생중계하는 듯한 표현들 그리고 거의 모든 대사에 등장하는 육두문자와 낯뜨거운 성기의 표현들에서 독자들은 과연 이놈의 소설을 어디까지 읽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한때의 낯뜨거움으로 남고 끝까지 독자의 눈을 잡아둔다. 그만큼 내러티브가 상당히 재미 있으면서 뭔가를 끌어 당긴다는 반증이기도 하면서 주인공 존 셀프가 타락해 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의 단면을 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쟁자 하나가 사라져 간다는 위안을 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문학작품에서 성행위의 묘사는 활자화라는 제약도 있었지만 왠지 현실성이 다소 결여된 그러면서도 미화된 행위로 독자들에게 다가왔고 독자들은 이러한 표현들에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매너리즘같은 절차를 반복해왔다. 또한 육두문자의 사용 역시 내러티브의 긴장감이나 화제설정의 변경 내지는 강화를 위해서 사용되는 조미료 정도의 장치로 등장했지만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통념들을 과감히 벗겨 버렸다. 솔직히 나체 그대로 보여주면서 소설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낯뜨거움을 넘어 수치스러운 느낌마져도 자아내게 하지만 실상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돈만큼이나 섹스 그리고 욕 역시 자연스럽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막나가고 자연스러운 표현들이 이 작품을 완독하게 하는 매력중에 하나이다. 물론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기법에서 다소 특이하게 보이는 작품정도로 치부될 수 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30여년전의 작품이지만 작가가 통찰하고 있는 돈에 대한 탐욕과 중독성은 지금의 시대에 딱 맞는 예견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소설속에 녹아있는 각종 인간군상들이 상상하는 탐욕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고 책을 읽는 내내 공감이 간다는 그 자체만을도 왠지 섬뜩함을 지울수 없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투자했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보고 책표지 뒤편의 책값을 보고 얼마나 팔리면 BOP에 도달할 것인가, 그리고 작가는 얼마나 인세를 챙겼을까, 불안한 금융시장에서 어디에 투자해야 그야말로 따뜻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오버랩되는 자신을 보면서 나 역시 돈이라는 마력에 중독되어 있구나라는 쓴 웃음을 짓게 하는 작품이다. 돈에서 시작에서 돈으로 끝난다 아니 돈의 끝은 없는지도 모른다. 사회진화학의 입장에서 보면 돈만큼 제대로 된 진화를 해온 존재는 없어 보인다. 오늘도 지금 이 시각에도 돈에 대해서 생각한다. 과연 돈은 무엇인가? 그리고 돈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결국 답은 없다 라고 자위해보고 싶어 진다. 왜 이미 우리도 그 중독성의 감미로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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