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아틀라스 시원의 책 1
존 스티븐슨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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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지의 제왕>,<헤리포터 시리즈>,<나니아 연대기>은 이미 국내독자의 눈을 사로잡은 판타지-어드벤처소설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랑은 꾸준히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기존의 판타지소설과는 차별화된 내러티브와 상상을 초월하는 플롯으로 그저그럴것이라는 통념적인 사고를 반전시킨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이후 별다른 주목을 끄는 작품이 등장할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너무나 기존 작품들이 대중성과 작품성을 어느 정도 획득하고 두터운 독자층을 이룬 진입장벽으로 인해 쉬이 그 도전장을 내밀기가 난공불락같은 기라성 같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에메랄드 아틀라스>시리즈가 기존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플롯으로, 또 다른 유니크한 내러티브와 스팩타클하면서 유머스러운 설정등으로 독자앞에 선보이면서 감히 가족 판타지 종결자로서의 도전장을 내밀미고 있다. 우연히 핌박사의 서재에서 발견한 시원의 책(시간의 아틀라스)를 통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면서 발생하는 마법과 현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라는 이질적이면서 동질적인 장소적 배경은 나니아 연대기의 '벽장 문'과 '반지'라는 비슷한 모토를 지니고 있지만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게 인간과 상상의 생명체 그리고 악의 화신이 동시에 공존하는 '케임브리즈 폴스'라는 현실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과 마법을 이분법적으로 분리시키지 않고 예로부터 현실과 마법의 세상이 공존하고 있었고 지금 현재도 진행형이고 미래에도 그럴거라는 이중적인 구도를 설정함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인 양측면에서 다르지만 같은 느낌 즉 마법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유니크한 설정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가 현실세계와는 전혀 무관한 배경을 설정했다면 에메랄드 아틀라스는 두세계를 넘나들면서 양쪽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더욱더 현실감이 가미된 작품특성을 가지고 있고 문제해결의 key를 시원의 책보다는 책과 연결된 케이트,마이클,엠마라는 삼남매에 촛점을 맞추면서 인간중심의 구도로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판타지소설과는 다른점인 동시에 에메랄드 아틀라스가 가지는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로 다가온다.   

이번 작품의 또다른 매력중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더불어 극중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요소를 군데 군데의 장치들과 설정에 있다. 예를들어 반지의 제왕에서도 나왔듯이 난쟁이족 즉 드워프족,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 불명의 전사로 재탄생한 꽥꽥이(모룸카디) 박쥐 괴물 살막타라는 색다른 캐릭터의 등장과 엠마와 가브리엘의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이야기, 데드시티 지하 비밀의 금고앞의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팻말 그리고 마법사 평의회의 일원이자 아틀라스 최후의 수호자인 핌박사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백작부인과 아직 그 정체가 다 드러나지 않은 악의 종결자 다이어 매그너스등의 마법적인 인물들의 설정이 기존의 판타지소설에서의 무게감과 카리스마와는 사뭇 다르게 유머러스하고 자상하면서 일면 매력적인 면면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새로운 설정을 엿볼 수 있다. 이는 판타지적인 요소로 시종일관 무게감을 가중시켜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보다는 군데 군데 역설적인 해학과 웃음거리를 주면서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면서 이를 통해 각 캐리턱에 대한 애증을 한층 더 증폭시키는 작용으로 다가오게 한다. 

전체적으로 기존 판타지 소설의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이번 작품의 특성은 인간세계와 마법의 세계를 하나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실감을 배가 시키고 있다. 막연하고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판타지적인 세상이 우리 인간들 세상에 공존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상상력에 자극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살막타, 꽥꽥이, 드워프등 새롭게 선보이는 케릭터를 통해 악마적인 요소의 배가와 더불어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촉매제 역활을 가미한 설정이 눈에 띈다. 반전에 반전과 롤러코스터를 타는듯한 내러티브의 흐름은 절로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전반적으로 <반지의 제왕>,<나니아연대기>의 계보를 잇을 가족 판타지물로 기대되는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작가의 설정의도와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캐릭터을 음미하면서 읽는다면 흥미와 재미가 배가될 것이며 앞으로 이어질 삼남매의 시간여행과 모험은 충분히 기대해볼만 이야기거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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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12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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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글쓰는 고통마저도 감미롭게 다가온다"라는 짧막한 멘트 한방을 날리면서 글쓰는 행복감을 은근히 슬쩍 에둘러 표현한다. 물론 이런경우에 해당되는 이들은 글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전문작가나 비평가들의 언어의 유희라고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갑자기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다름아닌 난감한 서평을 써야하는 괴로움의 변이라고 해야겠다. 상당히 많은 책을 읽고 상당한 양의 서평을 써다고 생각했지만 플뢰르 이애기의 <아름다운 나날>은 그야말로 고통을 안겨다 주는 소설이다. 솔직히 많지 않는 분량에 지난번 읽었던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이 너무 많은 인상을 남겨 비록 여성작품이지만 많은 기대를 갖고 시작했다. 물론 성차별적인 발상에서 여성작가 운운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나름의 맛이 다르기 때문임을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첫장부터 시작한 책읽기는 상당한 인내력과 고역을 동반한 그야말로 "글읽는 고통마저도 감미롭게 다가온다"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힘에 부친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레퀴엠 단조같은 풍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작가가 이 작품에서 표방하는 전체적인 프레임의 구조와 내러티브의 향배가 의도적인 장치적 역활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재미와 작품성 양쪽에 길들여진 못된 습관을 비웃기라고 하듯이 시종일관 한쪽(재미)포기하게 하는 작가의 고집스러움 역시 대단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 하다. 이말은 그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부적으로 두개의 중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나날><프롤레테르카 호>는 별개의 작품으로 보이지만 서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개연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앞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대부분의 독자들은 다소 맥 빠지는 최종결말을 대하게 되고 곧이어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면서 왠지 요하네스의 딸이 전편의 프레데리크를 흠모했던 주인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혼돈을 일으키는 특별한 장치(어머니보다는 많은 부분 아버지와 연계된 점등)가 없지만 작가 특유의 간결한 문장처리 기법에 익숙해지다 보면 왠지 그런 착각도 당위성으로 다가오게 된다. 물론 두 이야기가 작가의 자전적인 삶을 바탕에 두고 집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과 플롯이 풍기는 색감은 <아름다운 나날>의 나와 <프롤레테르카 호>의 요하네스의 딸이 동일인이라고 느껴지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있다.그의 머릿속으로 그 탁자들을 채운다.방문객 목록을 작성한다.장례미사를 주관할 신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정말 간결하게 문장을 처리하고 있다. 단순하게 읽어보면 전혀 여성작가다운 심미함이나 미학적 언어의 향연들을 도통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지만 이러한 간결한 문장 처리는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재각각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고 감정이입을 극대화 시키는 교묘한 장치적 역활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문장 하나 하나가 내포하는 색깔은 무지개 색깔처럼 선명하게 획일긋고 있지만 이어지는 단순한 문장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프리즘의 영역대를 무한정 확장시키면서 그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고 해야 겠다. 이 점이 이 소설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고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내러티브의 치밀성, 약간의 스릴러, 여기에다 반전... 이러한 것을 기대하고 출발한다면 분명 십여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해야 소설이다. 하지만 적당하게 비가 내리는 날 읽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설로 여겨진다. 비와 연계된 센치함과 더불어 이 소설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향연에 빠져들게 한다. 극과 극을 대립하는 구도, 속고 속이는 반전, 너무나 비틀어 놓은 결말처럼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색깔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플뢰르 이애기의 이번 작품은 조용한 안식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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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민음사 모던 클래식 29
알레산드로 보파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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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믿을 만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말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아니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거짓말의 수준을 뛰어넘어 기상천외할 정도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해야 어느정도 알레산드로 보파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되지 않을까라는 감정이 들 정도로 작품자체가 상상초월이라고 해야 겠다. 소설의 최고의 덕목이 재미라고 한다면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는 그야말로 최고의 소설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그저 읽는 내내 희희낙낙하면서 아무런 생각없이 책장을 넘기게 하지만도 않는다. 아주 짧은 우화를 통해서 정체성, 나르시시즘, 동성애, 권력과 부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어 작품성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게도 노벨상 수상작 못지않는 엄청난 내공이 깔려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흔히 이솝우화를 비롯한 우화은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다소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인 동물에 비유하여 권선징악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은근히 슬쩍 다루면서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고 언제부터인가 독자들의 뇌리속엔 이러한 정형화된 공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를 통해서 고착화된 일련의 메세지와 이미지속에 선과 악을 구분하고 도식화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바람직한 사유와는 결별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깨끗하면서 티끌하나 남김없이 머리속에서 지워야 한다. 권선징악이라는 획일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의 고착성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매력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분명 이 소설은 우화임에 틀림없지만 작가가 생물학자라는 특이한 이력이 만들어 낸 정말 유니크하고 시니컬한 생물학 보고서이자 인간행동 보고서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고상한 학문적인 견해가 감미되고 우화적인 영향으로 소설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비스코비츠와 리우바(상어,전갈,개미,벌,경찰견등 다양한 형태의 동물)를 통해서 철학적인 교훈을 굳이 지향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삶 자체만을 읽어나간다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작품이다. 마치 이들 동물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고 이러한 감정이입이 다소 거추장스럽다면 그저 동물의 세계를 음미해보는 것도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그 만큼 생물학자 출신으로서의 정확하고 과학적인 고찰이 또 다른 동물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Cool한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나서 가슴속 깊이 민트향이 퍼져 나오듯이 시원하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이라고 해야 겠다. 개인적으로 요 몇년사이에 읽은 소설중에서 가장 잘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작품성에 비중을 두는 독자들과 흥미위주에 비중을 둔 독자층 양쪽을 이 만큼 거리감 없이 하나로 충족시켜주는 소설을 솔직히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에 유니크한 프레임과 시니컬한 뉘양스, 다소 그로데스크한 소재와 시크한 등장인물(동물이라고 해야겠지만)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면서 조화롭게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필력이 그저 대단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게다가 부담스럽지 않은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효과를 배가 시키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대게 유명 리뷰어지에서 평가하는 멘트를 보고 많은 독자들이 살짝 실망아닌 실망을 하게 되지만 이번 소설만큼은 제대로된 평가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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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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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이 소설을 소설로 읽고 싶어한다. 작은 소소한 이야기을 통해서 시간의 무료함이나 각박한 감정의 매마름을 달래기 위해서 무슨 목적의식을 가지고 않고 그렇게 그냥 읽어나가는 것이 소설일 것이다. 뭐 이런 세속적인 차원을 뛰어 넘어버리는 순간 소설은 그 정체성을 상실함과 동시에 손에서 마냥 멀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소설들이 이러한 단순한 충족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고 그럴수도 없다는 것이 소설만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에 200페이지 내외의 짧막한 분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작품속 세계에서 허우적 거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니엘 켈만의 <명예>를 손에 들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9가지의 짧은 단편을 담아내고 있기에 더욱더 초이스에 대한 두렵움 없이 시간가는줄 모르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작품이라 여겨지면서... 

이 작품은 책의 분량에 비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난해한 요소들로 가득차 있는 유니크한 프레임과 플롯(특히 규정할 수 있는 플롯 자체가 없지만 오히려 이러한 불특정확가 플롯을 이루고 있다면) 그리고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로시카처럼 별개의 내러티브를 가진 개개의 단편소설들이 끊임없이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막상 책장을 다 덮고 나면(아니 몇편만 읽어보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끝과 정의을 명확히 규정하기가 힘든 작품이다.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호 연결되어 어느 이야기속에서는 주인공처럼 비중있는 인물이고 또 다른 이야기속에서는 그저 한순간 스쳐가는 실루엣정도로 밖에 처리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상으로는 9편의 이야기가 모여 모여서 한편의 장편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 프레임의 이러한 유니크한 설정과 더불어 이야기들 전반에 흐르고 있는 개별의 내러티브들은 상당히 시니컬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저 짧은 단편이라 쉽게 생각하고 뛰어든 독자들의 얄팍한 기대감을 무너뜨린다. 아마 두세편의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 책장을 맨 처음으로 되돌리고 한손에 필기구와 메모지를 들어 각 이야기속의 등장인물의 이름과 직업등 간략한 신상명세를 메모해 가면서 일종의 가계도 비슷한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슨 무거운 인문서적을 읽는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소설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자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비록 마지막 이야기를 덮고 나서 자신이 그린 다이어그램을 쳐다보게 되더라고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개별적인 이야기속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전화 즉 휴대전화라는 문명의 최첨단이 가져다 준 획기적인 발명품이 등장한다.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든 문자를 주고 받던 혹은 잘못 걸려오거나 아예 몇날 몇일 동안 한통의 연락도 오질 않아 휴대전화가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았나라고 쳐다보게 되는 우리 손 바로 옆에 항상 붙어다니는 휴대전화가 등장하고 이와는 상당한 반대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여겨지는 책(미구엘 아우리스토스 블랑코스라는 인생에 길잡이 역활을 하는 삶의 철학을 논하는 책)이 꼬박 꼬박 등장하고 있다. 작가는 이 두가지의 메타포를 통해서 우리 삶을 어느정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과 소통이라는 대전제에 해당하는 휴대전화와 책이 제대로 된 역활을 수행하지 못할때 마트로시카처럼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로 밖에 인식될 수 없는 현실을 은근히 말해주는 의미심장함을 남기고 있다. 

소재나 내러티브의 모던함과 더불어 작가의 사유에서 엿볼수 있는 클래식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그야말로 모던클래식이라는 테마가 적절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새롭고 산뜻함고 맞딱드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9가지의 테마별로 가지는 의미성에 덧대어 전체을 하나로 아우르는 또 하나의 의미는 많은 여운을 남기는 소설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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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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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부모님과 선생님께 죽을만치는 아니지만 당시 나이로서는 감당키 힘들정도의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때 한번쯤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공상을 해보았다. 어른들 소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로부터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세계로. 그리고 그 세계는 세칭말하는 부패되고 가식적이지 않는 그야말로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상상들. 그리고 그 세계는 정말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그런 세상을 아닐것이라는 희망. 이런 발상에서 출발하는 일종의 모험소설로 <15소년 표류기>는 아동시절 대표적인 필독도서중에 하나였고 이 땅에 수 많은 어린 아동들에게 환상과 모험의 세계를 선사했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의 내러티브 역시 전형적인 모험소설의 프레임을 간직하고 있는 소설이다. 비행기의 불시착으로 인해 무인도에 정착하게되는 일군의 소년들 그리고 생존과 구조를 위해 나름의 규칙과 틀속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과 마지막 극적인 구조. 얼핏 외형적인 스트럭쳐만 들여다 보게 되면 약간은 식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듯이 보이고 왜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의미심장한 많은 것이 담겨져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권력지향성과 인간 본성 깊이 내제되어 있는 공포, 탐욕 그리고 善에 대한 담론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여타의 모험소설류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시각이 아닌 흔히들 깨끗한 영혼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아동들을 통해서 인간 본성이 들어내는 다양한 출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랠프와 잭으로 양분되는 권력층을 중심으로 규정된 일련의 대의를 지켜나가고자하는 측과 이에 반기를 들고 과도한 폭력성과 잉여생산물(자본)으로 재무장하고자하는 두 집단의 갈등은 인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투영해 놓고 있다. 이는 선사시대와 비슷한 반문명적인 무인도에서 조직과 규칙 그리고 규정등이 생겨나서 서서히 눈을 뜨게 되면서 자본축적(여기서는 식량으로 봐야 할 것이다)과 계급성의 인지가 자리잡고 공동체의 이익이 보다 최상위 계급자 개인의 이익이 우선이 되는 우리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해 나간다는 점에서 성인이 아닌 어린 소년들을 설정했다는 자체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소설속에는 다양한 메타포와 패러독스가 산재하고 있다. 제사장과 같은 예언자의 역활을 하는 사이먼 그리고 지식의 보고였던 돼지, 이들의 죽음은 인류의 역사에서 암흑의 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잭을 필두로 한 집단은 식량(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라는 신세력의 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로저의 살인행위는 권력의 최선방 하수인으로서 역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두 세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택권을 갖지 못하는 소년들은 일반대중의 자화상을 그대로 투영해 놓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무인도라는 작은 공간에서 생활해 가는 어린 소년들을 통해서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결말부분인 '몰이꾼의 함성'에서 사이먼(예언자)과 돼지(지식인)가 죽임을 당하고 마지막 리더마저 반대세력에 의해 죽음의 궁지로 몰리는 과정에서 극적인 구조자의 등장으로 그동안의 반분이 종결된다는 설정부분이다. 또한 이러한 결말은 독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기도 한다. 작가는 마지막 결말을 극적인 구조를 통해서 어느 한쪽의 몰락을 방지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의 의도는 핵폭탄 투여로 종결된 2차세계대전의 종결과 이어 터진 한국전쟁의 발발 그리고 얼음판을 걷는듯한 당시 위태로웠던 세상에서 메시아와 같이 구조자라는 제3세력의 등장으로 반분, 갈등 그리고 대치만이 아닌 양쪽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바램이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늘 그래왔음에도 불구하고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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