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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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 2탄 <잠자는 숲> 기존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없는 특유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다. 추리스릴러 장르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다는 평을 받는 작가는 그 동안 많은 작품을 통해서 단순한 추리스릴러 구도를 뛰어넘어 각 개별 작품마다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대한 시대상을 조금씩 담고 있는 일종의 범사회적 패러다임을 작품 곳곳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추리스릴러라는 단순성을 넘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을 대하기전에 의례껏 그런 기대감 내지는 당연성을 가지고 접하게 되었지만 막상 작품속으로 들어가면 다소 의아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발레단과 발레리나, 발레리노 그리고 마스터, 미스트레스드등 발레단 속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계기로 발레 단원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고뇌 그리고 그들 사이의 사랑 무엇보다 사건 해결사인 가가형사와 미모의 발레리나 미오 사이의 로멘스가 부각되는 작품이다. 작가는 사건의 범위를 발레단으로 대폭 축소함으로써 사건을 단순화 하고 그 해결방안에 대한 독자들의 판단성을 조력하고 있는듯 하지만 막상 내러티브에 빠지는 순간 독자들은 꼬이고 꼬이는 사건의 결말을 찾아서 혼란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구도설정은 작품 시작에서부터 바로 살인사건을 부각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결과 예측에 대한 쉬운 판단성을 부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게 하지만 결국 이러한 시원스러운 출발이 작가의 트릭이었다는 것은 조금만 더 작품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금새 속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할 만큼 복잡성을 가져오게 한다.

 

전체적인 구도가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 속에는 상당한 복잡성과 반전들이 숨어 있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인공 '가가'라는 인물에 대한 묘한 매력을 한층 더 일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 그리고 한발작 빠른 행동등 기존의 명탐정이라는면 당연히 장착 되어야할 필수옵션이 독자들에겐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잡기도 하지만 이와 반대로 동떨어진 느낌을 가져오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면에서 가가형사의 품성은 전편인 <졸업>에서도 보았듯이 상당히 인간적인 냄새를 품기는 살가운 존재로 묘사 되듯이 왠지 탐정과 로멘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설정이 '가가'라는 인물로 인해 한층 더 빛을 발하게 한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범인인줄 알면서도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는 고뇌 그리고 그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가가'라는 인물의 특성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 라는 발레와 묘한 일체감을 가져온다. 단순하게 로멘스가 크게 부각된 추리스릴러로 평가될 수 도 있겠지만 작품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면 이러한 평가와 달리 사건에 대한 복선들과 내러티브의 진행등이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다만 발레라는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로 인해 사건의 핵심이 다소 흐려질수 있을법 하나 어떻게 보면 이 역시 작가의 의도된 장치들이지 않을까라는 느낌도 들게 하는 작품이다. 발레에 대해선 문외한인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해감도 늘여주고 선망의 대상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을 엿볼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발레와 살인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구도가 화려한 무대뒤에 관객들이 볼 수 없는 화련한 무대뒤의 음습하고 우울한 설정이 사건과 살인이라는 측면과 교묘하게 어울린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점들을 내러티브속에 녹아내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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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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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사건 종결자 "가가 교이치로"가 세상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졸업> 은 일본 현청 소재지인 T시내 국립대학인 T대학을 배경으로 고등학교때 부터 단짝이자 연인 그리고 친구들이었던 7명을 중심으로 사건을 파헤처가는 구도를 가지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그동안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많은 독자층을 확보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만의 유니크한 내러티브와 각 작품에 반영한 시대상에 대한 항변등을 담고 있는 추리스릴러 소설계에서 독특한 세계를 구성해왔다. 단순한 추리스릴러를 넘어서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인간내면의 또 다른 습성 그리고 지금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시대상을 반영하여 추리스릴러의 세계를 뛰어넘는 필력을 보여주었고 이는 수 많은 독자층들이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이번 작품 <졸업> 역시 가장 절친한 친구나 연인 사이가 살인과 음모로 변질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인간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에 대해서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다 알고 있을거라는 기존의 통념속의 우정과 사랑이 과연 존재나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과 더불어 과연 얼마나 우리자신은 우정과 사랑을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라는 질문과 답에 대해서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정답은 독자들 각자의 몫으로 남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왠지 석연치 않은 잔상들이 남게 한다.

 

가가형사 시리즈의 서막을 여는 이번 작품은 향후 주인공 가가가 어떠한 방향으로 사건을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언질를 주고 있기도 하다. 작가의 또다른 탐정인 갈릴레오의 경우 CSI시리즈를 연상케하는 과학적인 검증과 증거를 기반으로 상당히 과학적인 사고에 의한 추리를 그 주전공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가가의 경우는 이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해결사이다. 전공 자체가 사회학으로 인간과 사회전반에 흐르는 인간관계를 기초로한 그의 추리는 다소 엉성하고 비과학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매우 인간적인 메리트를 가진 해결사로 다가온다. 물론 가가 역시 탐정의 기본적인 성향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냉철한 이성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판단력에 한치의 사적인 감정 개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고 한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프로포즈나 사랑에 대한 그만의 사유만 보더라도 막연하게 인간관계의 특수성에 끌려만 다니지 않는 성격도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 독자들이 접해왔던 추리스릴러속의 명탐정들의 일반적인 속성과는 상당히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가가 교이치로에 대한 매력일 것이고 그래서 독자들의 관심과 애증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작품은 왠만한 독자들이라면 일찌감치 쇼코의 범인을 예상케할 수 있을 정도로 약간은 어술한 구도로 시작하지만(아마도 이러한 설정 자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의도적인 장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사건종결사의 초년병 시절부터 너무 철두철미한 분석력과 판단력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가가를 탄생시킨 의도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가가라는 인물설정 구도에 적합한 면을 보여주는 설정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한다) 나미카의 죽음을 계기로 상당히 복잡한 추리력과 상상력을 요구하게 한다. 여기에다 다도와 검도에 익숙치 못한 국내독자들에게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역활도 동시에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탄탄한 내러티브와 극적인 반전 그리고 가가형사의 첫 탄생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라 해야 겠다. 앞으로 가가형사의 활약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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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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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 <홍수>는 큰 틀에서 보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의 후속편으로 인류가 겪게 되는 대재앙을 다루는 디스토피아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래서 <인간 종말 리포트>를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작품의 이해속도나 연관관계등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재미가 한층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이나 정원사라는 사교적 종교단체, 총알기차를 비롯한 극히 과학문명화된 신도시와 과학기술들 그리고 이러한 테크놀러지로 탄생한 너크컹크, 사자양등의 새로운 동물종들 그리고 신의 위임자 역활을 부여 받았다고 오판한 끝에 탄생한 크레이크의 산물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면에서 <홍수>는 <인간 종말 리포트>의 복사판으로 느껴질 수 있을만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관성이 농후한 측면도 존재하고 있지만 굳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를 접하지 않더라도 <홍수>만으로도 작가가 독자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사유는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을 정도의 독립적인 내러티브와 구도를 가지고 충분히 독자들에게 어필될 수 있다. 한편으로 들여다 보면 이번 작품은 시간과 공간적인 배경을 동일시 되면서도 서로 다른 화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인간 종말 리포트>가 과학기술적인 정점의 산물인 또 다른 인간종(불멸과 순수의 상징)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하드웨어적이고 남성 중심적인(지미/눈사람, 크레이트) 내러티브와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홍수>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차용한 신을 위한 정원사라는 종교단체(엄밀히 보면 환경과 종교과 결합한 형태라 볼수있을 것이다)를 통한 영적인 부분를 다루는 소프트웨어적이고 여성 중심적인(토비,렌) 내러티브를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들은 오히려 두 작품이 별개의 느낌이나 전작의 후속편적인 느낌보다는 양 작품이 상호보완적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하고 또한 그 내러티브를 들여다 보게 되면 이러한 상호연관성의 깊이를 알게 되기도 하는 유니크한 구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의 보완적인 형식(전작에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꾸러미를 펼쳐 놓은듯한 착각)으로 비쳐질 수 있다. 내러티브속에 설치되어 있는 개연성을 빌미로 중복적인 이미지들이 색다른 흥미를 불러 일으켜 독자 스스로가 내러티브를 보다 더 풍요롭게 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가 한편의 이야기(절망적인 미래상)를 다루고 있다면 <홍수> 말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절망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보는 미래상)를 다루고 있어 비로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구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미래의 우울하고 암당한 상을 그리는 디스토피아소설로 분류하기엔 뭔가 어색함마저 들고 그렇다고 공상과학소설로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현재 우리는 엄청한 혁신과 발전을 거듭한 과학문명기술이라는 하드웨어와 신자유주의의 기치하에 자본이외에는 그 어떠한 논리도 정당화될 수 없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하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브레이크없는 기차위에 몸을 담고 있다. 이 기차에는 이러한 양대축(과학문명기술과 자본)을 숭상하는 신도들 이외에는 합석할 수 있는 자석마저 없는 그러 기차이다. 그리스도교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틀에서 보면 신의 위임자 혹은 대리인 자격으로 전 지구의 모든것을 신탁통치해왔다고 그나마 자부했던 우리들도 이제는 과학기술과 자본이라는 새로운 대리인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면들이 작가가 언급했듯이 그러그러한 디스토피아계열의 작품보다는 많은 사유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색소설이라고 봐야 더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작가의 작품들을 대면한 독자들이라면 작가의 종교와 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견지를 발견하게 된다. 각각의 챕터 서두에서 목사나 사제의 설교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나 찬송들을 독립된 구도로 배정하여 종교적인 색체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듯 하여 고개짓을 하게 하지만 결국 이러한 구도의 설정은 내러티브 중간 중간에 배정한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독백등을 통해서 종교와 신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함으로써(큰 프레임은 성경의 홍수와 노아방주을 연상케 하지마 결국 내러티브의 중점은 인간 외부적인 힘의 작용보다는 인간이 자처한 위기상황과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인간의 또 다른 희망적인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와 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작가 나름대로의 사유를 들어내고 있는 장치적인 역활을 할 뿐이지 종교와 신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사유는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신의 정원사들과 이들의 신념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선 인류애 그 자체를 표방하면서 물질문명에 찌든 현세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세지로 들여온다. 종교적 의미에서 떠난 영혼의 중요성 (크레이트에 의해 재 탄생하는 새로운 인류종의 순박함과 순수함이 바로 깨끗한 영혼을 상징하듯이)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우리 인류의 미래의 모습을 재현하고 예견하는 디스토피아 장르의 작품으로 인식될 수 도 있지만 왠지 소설속에 나오는 씬들이 왠지 낯설지 않고 지금 우리의 현재 모습을 그리고 있는것 같아 절로 가슴한켠을 쓸어내리게 한다. 작가는 독자들이 원하는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보다 오히려 현재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신과 육체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에서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일으키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동안 작가는 소설가의 의무가 독자들에게 믿을만한 거짓말을 하는것이라고 공표했지만 왠지 이번 작품만은 그동안 작가가 피력해온 믿을만한 거짓말과 사뭇 다른 진실의 한 모습을 담고 있는것 같아 오히려 씁쓸함을 지울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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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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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김려령 작가의 신작 <가시고백>을 만나게 된다.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데자뷰 되듯이 전작이 너무 흥행을 거두면 차기작에 대한 부담이 절로 작가의 필력을 압박할 수 밖에 없을 것이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독자들의 기대 역시 만만치 않아 다소 맥을 빼버리는 경우가 왕왕있기 마련이다. 여하튼 베스트셀러이자 영화로 제작된 전작의 이미지가 강하게 독자들 뇌리속에 남아있어 이번 신작에 대한 여러 하마평을 거둬낼수는 없겠지만 이번 작품을 전작에 비교 한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르센 루팡의 현신같은 존재감의 해일, 입은 거칠지만 가슴속 깊은 애정과 우정이 담겨져 있는 진오, 부모의 이혼과 친아버지와 새아버지 사이에서 정체성을 혼란을 겪으면서 방황하는 지란, 자타가 공인하는 공식 모범생 다영 그리고 공공의 적 미연등 작품속에 등장하는 낭낭 18세 고2 새파란 청춘들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펼쳐나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언듯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아도 이번 작품 역시 성장소설의 전형적인 규범을 따르고 있는 듯이 비쳐지고 있다. 

 

우선 등장인물의 설정에서 청소년 성장소설이 구비해야할 제조건들(캐릭터의 유니크한 특이성 내지는 공감성)을 골고루 매뉴판에 올려놓고 메인 메뉴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사이드메뉴인 보조인물들(감정설계사 해철과 개그콘스터를 방불케하는 해일의 부모님 여기에 뜬금없는 듯한 아리 쓰리(병아리)라는 존재감으로 인해)의 구성은 청소년 성장소설이 구비해야 할 거의 모든 스트럭쳐를 완비하고 있다. 그리고 내러티브의 식상성을 타파해주는 팁으로 웃음과 울음 그리고 둘 사이에서 아쓸아쓸하게 줄타기를 하는 기성세대의 들어내놓고 싶지 않는 한켠의 비밀들 까지 뒤범벅이 되어 해일의 표나지 않지만 절제되고 빠른 손맛(?) 그리고 진오의 거침없는 육두문자의 행진, 아버지에 대한 끌모를 증오의 화신 지란, 여기에 감정설계사라는 고차원적인 열망을 지니고 있는 해철의 선문답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편의 시티콤을 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유쾌한 작품이다. 사실 작품을 접하는 내내 이들의 뱉어내는 말한마디 한마디에 상당하게 안면근육의 신축을 느끼게 되었고 재미있게 작품을 대했던것 같다.  이렇듯 내러티브나 등장인물들 면면의 성격설정등만을 들여다 봐서는 그저 시중에 흔하디 흔하게 접하는 그런 성장소설의 단례를 보는듯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약간의 시니컬한 냉소가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상당히 복잡한 내면의 감정을 끌어오게 한다. 도둑질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에서 가족의 파탄, 그리고 학교내에서 일종의 파워게임같은 수 많은 마음속 '가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시고백>은 청춘 4인방을 통해서 상호 각자 내면속에 자리잡고 있는 응어리를 마치 손톱밑에 박혀 있는 가시를 빼내듯이 하나 하나 제거해 가면서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 보다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더 긍정적일거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일련의 성장통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의 확립내지는 세계관의 다변화를 통하여 성인으로 발돋움하는 하나의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극히 자연스럽게 자기 합리화적이고 기만적인 현 기성세대들의 아픈 곳을 들어 내기도 한다. 이점은 작가가 의도했던 아니던 간에 특히 성인독자들에게 이들 4인방의 행동은 자신 스스로 더 움츠려들게 하면서 가슴속 깊이 박혀 있는 가시에 대한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 내기도 한다.

 

누구나 저마다 남모르는 가시가 가슴속 한켠에 박혀있기 마련이다. 뺄려고 하면 뺄수록 더 깊숙이 박혀버리는 가시는 제거나 망각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차라리 타인에게 고백하여 스스로 빠져나가게 하라는 교훈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무거운 소재이지만 주인공인 4인방과 그들을 둘러싼 조연들의 캐리턱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한편의 강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저 쉽게 웃으면서 내러티브를 쫒아가게 되지만 작품 전반에서 밀려오는 잔잔한 감동이 오랜 여윤을 남기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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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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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오르한 파묵의 초년작품인 <고요한 집>은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여타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미 <내 이름은 빨강>,<순수박물관>,<새로운 인생>등을 통해서 작가의 진중하면서도 인간의 깊은 심연속을 적나라게 들어내면서 숨가쁘게 혹은 그러면서 온화하게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필체는 국내 독자들에게 터키문학의 정수를 만끽하게 하고 꽤 많은 메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파묵만의 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 역시 작가의 고국인 터키를 무대로 한 가정의 가정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가족의 가정사에 얽혀 있는 비밀을 아흔의 노파와 그의 손자들 그리고 또 다른 핏줄의 시각에서 각각 다르게 바라보는 저 마다의 이야기들를 다층적이면서 1인칭화자 시점으로 구성하여 마치 각각의 장에 해당하는 내러티브들이 별개의 이야기로 들리는 듯하면서도 결국 할아버지-아들-손자로 이어지면서 끊을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처럼 이들 다섯명 화자의 내러티브들이 하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묘한 스트럭쳐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스트럭쳐가 파묵만의 고유한 구도는 절대 아니지만 왠지 파묵의 작품이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딱 어울리는 작품의 구도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이는 비록 형식은 다인칭적인 화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크게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보는 듯한 착각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나 이미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독자 양측 둘다 이번 작품은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하고 있다. <고요한 집>은 시간상으로 이 작품이후 출간되는 파묵의 작품들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파묵 자신이 밝힌바 있는 유일한 정치적인 소설인 <눈>의 프롤로그를 보는 듯하면서도 <내 이름은 빨강>의 추리적인 모티브 <순수 박물관>의 애특한 사랑과 다소 편집증적인 집착등을 연상케 하는 모티브등 향후 작가가 펼치게될 작품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매 작품에서 들어나는 것이지만 굴곡에 찬 터키 근현대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의 삶이 반영되어 있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듯이 이번 작품 역시 군부쿠테타 직전의 터키 시대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파묵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겐 초년의 그의 작품을 접하면서 파묵의 작품세계에 빠져드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며 이미 파묵의 작품에 빠져있는 독자들에겐 파묵의 작품세계를 한층 더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문명(서양문명)과 이슬람문명(동양문명)이 상존해온 역사적 운명만큼이나 터키의 근현대사는 다양한 이념과 매카니즘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런 혼재된 다양성들이 오히려 파묵의 작품이 획일성에 빠져드는 것을 방지했다고 사료된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왔던 치열했던 동서양 문명의 충돌이라는 거대한 담론들을 작품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개개인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혼합함으로써 그 존재론적 가치를 부각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이던, 혁명을 꿈꾸는 공산주의자던 혹은 아메리카 드림에 목말라 있는 현대자본주의 지향주의자든간에 그들 개인이 한번쯤은 생각하고 갖고 있을법한 삶을 내러티브속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당시 터키의 시대상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또한 그들의 삶의 지향점이 사랑이던, 혁명이던, 이상이던, 허영이던간에 그들 하나 하나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 그 자체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면서 마치 신문 기사를 아무런 감흥없이 읽어나가는 것 처럼 대하게 하는 것 역시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파묵의 작품에 빠지게 하는 유니크한 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냥 거대한 파도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저항하는 돗단배같은 느낌들(작중 메틴의 암산능력을 가늠케 하는 두자리수의 곱하기 암산문제에서 맞는 답도 있고 틀린 답도 있지만 그 누구하나 그 정답의 정오에 대해서 확인하려 들지 않는 다는 점)과 커다란 패러다임속에서 자신들만의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관들을 유감없이 들어내는 밀알같은 개인들의 삶이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제목처럼 고요하다. 마지막 결말에서 공산주의자 닐귄의 뜻하지 않은 죽음이외에는 그 어떠한 서스팬스나 충격파 없이 진행되고 있어 약간은 지루한 진행에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내러티브의 흐름은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흐름의 강도이기도 하지만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적 배경에 비하면 유독 더디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더딘 진행속도가 왠지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혹은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아슬아슬함처럼 다가오는 것 역시 파묵의 교묘한 설정들 속에 있다. 삼대에 걸친 역사적 흐름의 키를 가지고 있는 파르마와 터키 굴곡의 역사를 연구하느 파룩, 급진주의자인 닐귄과 하산, 아메리카 드림을 꿈구는 메틴 그리고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지만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난쟁이 레젭 이들 각각의 영역들이 별개의 스토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인 내러티브상에서 서로 얽히고 얽혀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런한 면들이 거대한 시대적 담론과 그 속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필수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사유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한결 정갈한 맛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매번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대하면서 익싸이팅하거나 반전을 기대하는 입장과는 다소 거리가 먼 어떻게 보면 상당히 정적인 작품들을 대면하게 되지만 오히려 이러한 파묵의 작품세계가 리얼타임으로 꼭 무엇인가 눈앞에서 해결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의 사유구조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아서 한결 마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순수박물관에서 한 남자의 길고도 지고지순한 사랑처럼 오래토록 여운을 남기는 그런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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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오름 2012-03-0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이라는게 역시 그냥 받을 수 있는게 아닌듯 하군요. 좋은 리뷰 잘 읽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