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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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참으로 묘하디 묘한 추리스릴러(딱히 장르에 정의를 내리기 조차도 묘합니다만 내러티브의 큰 줄기를 봐서는 추리스릴러라 해야할 것 같아서요)를 만나게 되었네요. 음 그리고 1843년에 실재로 발생한 키니어와 몽고메리의 살인 사건을 차용한 팩션이라는 점과 내러티브를 이해하기 위해서 캐나다의 전반적인 역사와 문화(대이민의 시대, 정치, 사법, 여성에 대한 시각등)을 동시 아우러야 하는 역사성까지 가미된 복합적인 뉘양스를 풍겨주는 작품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마거릿 애트우드여사의 전작이었던 <눈먼 암살자>를 리뷰하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그레이스>가 독자들에게 주목받는 것은 아마도 가장 여성스러운 필체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앞서네요. 물론 <도둑신부>을 통해서 막간의 여운을 남겼지만 팜프파탈적인 면을 강조하다보니 부더러운 맛은 덜했던 것이 사실이죠. 뭐 이번 작품도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1인칭 형식의 독백으로 표현되는 부분들에서 다소 강하디 강한 맛을 풍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상당히 여성적인 필체가 강하다는 거죠. 그동안 작가의 여타 작품을 접했던 독자들이라면 다소 싱겁고 유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존했던 역사적 사건과 이를 픽션으로 담아낸 공간 그리고 이 둘을 조화롭게 믹싱해나가는 내러티브의 힘은 역시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할 만큼 강인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레이스> 읽는 독자에 따라 그레이스의 범행을 미필적 고의(중간 중간 그녀의 독백속에서 그런 유혹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로 볼 것이냐 적극 가담자 혹은 방조자로 볼 것이냐등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이중인격신드롬등 정신의학적인 측면이 대두되고 심령술등의 사이비 과학 그리고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등이 첨부되면서 실상 그레이스의 범행에 대한 가부적인 측면보다는 당시 캐나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더 부각을 받고 있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된 스트럭쳐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그동안 작품속에 반영된 역사관으로 보았을때 충분한 개연성이 있지 않나 생각되어 지고요, 그래서 달리 보면 약간은 지루한 느낌도 배제할 수 없는게 사실이죠(특히 '홍수' 나 '인간종말리포트'를 먼저 대했던 독자라면 더욱더 그런 느낌 강하게 듭니다). 대이민의 시대부터 캐나다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선 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은 애트우드여사의 매력을 한껏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단언하고 싶어지는 부분이 바로 상기의 불편한 진실을 참 교묘하게 엮어 놓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 있는 사안들을 상호 보완적으로(뭐 정확히 말하자면 필요악적인 단어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없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한쪽은 슬그머니 억누르고 한쪽을 부각할 수도 있었지만 작가는 이 둘의 요소를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작품을 끌어가고 있죠. 그래서 추리 스릴러와 역사성이 서로 부합되고 독자들로 하여금 팩트라는 기시감을 초장부터 부여해 버리지 않았나, 뭐 그런 느낌 강하게 들게 합니다)엮어가는 내러티브가 바로 애트우드여사의 매력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전체적으로 엔터테이먼트 장르나 정통 추리스릴러 장르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이라면 내러티브의 속도감이나 클라이막스 부분의 반전등 스토리 전개에 다소 실망감을 감출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1인칭과 3인칭이 혼합되어 주인공 그레이스의 독배과 그레이스를 관찰하는 조던박사의 관찰일지 그리고 수없이 주고 받는 서간문등이 혼재되어 있어 다소 지루한 전개감을 맛보게 하기 때문에 충분한 인내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부분들이 이 작품을 빛나게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지루하지만 왠지 화자들간의 미묘한 심리게임(어떻게 보면 뻔한 결론에 이르겠지만 그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들이 상당히 흥미진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에 나래를 나름대로 펼쳐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다 읽고 독자 저마다 유죄 혹은 무죄에 대한 나름을 판단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네요. 단순한 살인사건을 캐나다의 전반적인 역사와 런칭하여 대서사시를 엮어가는 과정이 매력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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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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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얼마되지 않는 작품을 대면했지만 그의 작품을 대할 수록 색다른 판타지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네요. <제노사이드>, <13계단>으로 이미 제 마음을 잡더니만 이번에 주파한 <그레이브 디거>는 앞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뷰를 선사함으로써 책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네요. <제노사이드>가 블럭버스터물이라면 <13계단>는 상당히 무게감 있는 사색적 스릴러물로 표현하고 싶네요. 이에 반해 <그레이브 디거>는 뭐 책 제목이 다소 그로데스크한 뉘양스를 풍기지만 실상 그 내용은 따뜻한 휴먼드라마물이라고 감히 단정하고 싶어 집니다. 여기에 우리의 주인공인 악동 야가미의 좌충우돌하는 유머까지 겹쳐져서 그야말로 가슴이 훈훈해지는 작은 드라마를 펼쳐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당히 차분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어 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작품이 밋밋하거나 순정적인 인간미를 다루는 잔잔한 내러티브만를 가지고 있다면 그저 그런 작품으로 남겠죠. 그리고 다카노 가즈아키의 매력도 반감되어겠지만요...

 

<그레이브 디거> 는 암흑의 시대이자 그리스도교의 절정의 시대인 중세 마녀사냥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온 현대판 마녀사냥이라고 보여집니다.(물론 작품에 등장하는 마녀와 이교도와 관련된 내용들이 작가의 상상이었다고 하니 이 작가 만만치 않는 상상력에 혀을 내두르게 합니다). 거대 정치 권력 그리고 경찰 권력의 암투와 그 지저분한 비리를 당사자들의 손이 아닌 전혀 다른 제3자(특히 이부분이 묘한 연결고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대 권력의 유지에 어쩌면 가장 필요악적 존재인 범죄자를 통해서 양대 권력의 비리를 양파 껍데기 벗기듯이 하나 둘씩 펼쳐보이는 점이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상당히 신빙성을 높여준다는 점입니다)를 통해 까발리면서 일본내의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단 반말부터 짓거리는 상당히 악당적인 주인공 야가미의 캐릭터 역시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설정입니다. 청소년기에 범죄의 세계를 발을 들여 몇번의 전과 전력을 가지고 있는 범죄자라는 이미지 보다 도주극에서 보여주듯이 다소 어리버리하면서도 강한 정의감을 표출하는 양면성은 아마도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작품상 극단으로 몰고간 뿐이지 인간이면 누구나 그런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특히 작중에 등장하는 권력집단 인간들의 양면성 보다야 한결 귀여운 면이겠죠)

 

전체적으로 골수기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집념의 사나이와 그를 둘러싼 거대한 권력층의 또다른 음모 여기에 개인적인 보은을 위해 중세 설화를 이용한 그레이브 디거의 복수극이 맞물려서 그야말로 숨가쁘게 내러티브를 끌어 가고 있습니다. 고도의 서스팬스는 마치 영화 도망자를 떠올리게 할 만큼 독자들에게 쉴틈을 주지 않고 사건에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3가지의 큰 플롯을 상호 연결해 나가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 12시간만에 벌어지는 사건을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여기에 서스팬스한 도주극에다 악의 상징이 선을 위해서 바뀌어 가는 교훈적인 요소와 거대권력과 맞서 싸우는 정의감이 덧칠 되면서 내러티브를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든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논스톱으로 진행되는 스토리가 박진감 넘치면서도 해학적이고 또한 순수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미아베 미유키의 표현처럼 읽기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 없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도쿄도 전반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통해서 생중계 방송으로 도주자를 따라 도시 요소 요소(실재로 작품을 구상하면서 작가가 답사하고 장소를 반영하였다고 하네요)의 특색을 반영하여 도쿄를 아시는 분이라면 더 현실감이 크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사실성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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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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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틈없이 읽었던 <제노사이드>를 통해서 한마디로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이 양반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냥 심플하게 소설은 소설로서의 역활에 충실만 해도 대중 독자들에겐 그 소명을 다한다는 느낌으로 대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이 양반 작품(비록 많이 접해보진 않았지만요)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네요. 우선 흥미본위 뭐 오락성 내지는 친대중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왠만한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 빰치는 가독성과 대중성 및 오락성이 두루두루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번 책을 손에 잡게 되면 사정 없이 몰아가는 내러티브의 향연에 그저 눈이 즐거울 따름이다는 생각이 깊이 들구요 그리고 오락성에만 치우치다 보면 세칭 내용이 가볍다라는 세간의 날카로운 평가에도 떳떳하게 향변할 수 있는 작가 특유의 사유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세계고전문학이나 노벨문학상을 비롯한 상당히 귄위 있다는 문학상의 작품들 대하다 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하는 마음에 완독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경험이 독자들에게 한두번쯤은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유명인사들 추천하는 이러한 작품들 읽지 않는다면 왠지 교양스럽지 못하다는 자책 내지는 일종의 독서가로서의 필수 스팩을 채우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서라도 머리속으로 들어오지도 않는 책들과 씨름하는 묘한 시츄에이션이 왕왕 발생하기도 하죠.(물론 저 같은 미숙한 독서광에게나 해당되는 말일수도 있겠지만요.)그러면에서 이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교과서의 주제를 담고 있는 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형형색깔의 참고서같다고나 할까요 뭐 양측단을 대담하게 드나드는 묘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비단 <13계단>과 <제노사이드> 딱 두편을 읽어보고 느끼는 작가에 대한 평이 올바를수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카노 가즈아키 이 양반 정말 매력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전해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13계단> 역시 제노사이드만큼의 방대한 스케일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내러티브의 흡인력과 마지막 대반전 부분에서의 희열은 그에 못지 않게 짜임새 있으면서도 심플하게 독자들의 눈을 사로 잡고 있다고 단언해도 무방하리라 보여집니다. 인간이 인간을 처단하는 살인과 사형이라는 두가지 메타포 즉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는 이번 작품은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스토리 구성이나 스트럭쳐면에서 시종일관 독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물론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대 전제는 사형제도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고민하게 만들고 있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을 읽는 동안 만큼은 그리 크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반전부분에서의 준이치의 독백이 담긴 편지 한통을 읽는 순간 독자의 가슴은 상당히 무겁게 가라을뿐 그동안의 내러티브의 재미에 빠져 있어 파토스의 향연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사실 이러한 부분들이 작품을 읽으면서 괜시리 미안한 감정을 불러 오기도 하더라구요.(왜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작가는 작가나름대로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에 대해서 상당히 무게있고 진중한 담론을 펼치는데 막상 작품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메타포보다는 내러티브 자체의 흥미에 빠지다 보니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든다고 할까요)

 

그동안 일본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많이 접하고 재미있게 읽는 이유중에 하나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닌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작품전반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든데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 역시 이러한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마음에 와닿는군요. 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도 정통 추리소설에서 약간은 벗어난듯 보이는데 다카노 가즈아키 작품 역시 추리스릴러장르를 뛰어넘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뉘양스를 풍깁니다. 여기에 진중한 사회문제를 대중 독자들에게 무리없이 전달하는 역활까지 겸하고 있어 상당히 친숙하면서도 거리감 없는 작품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제노사이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제노사이드>가 블럭버스터 같은 대형작품이라면 <13계단>는 독립영화 같은 작품으로 스케일은 다소 떨어지지만(이는 제노사이드와 비교했을때를 말하는 거지 결코 타 작가의 작품과 비교했다는 점은 아닙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오히려 더 독자들에게 깊게 각인되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런 견해를 비치게 하네요. 공적인 살인행위라는 사형제도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통해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내러티브 그 자체가 상당히 고무적인 발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물론 스토리의 짜임새와 구도 그리고 극적인 반전등이 절묘하게 녹아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겠죠.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이후 가장 끌리는 일본 작가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카노 가즈아키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것 아닐까 싶네요. 정말 간단하게 아니 단도집입적으로 평한다면 향후 추리스릴러장르의 리더가 되는 작가이자 작품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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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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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 <제노사이드>는 작가도 생소했지만(사실 그의 13계단이나 6시간후 너는 죽는다등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는 일본작가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만) 무엇보다 제노사이드(대학살)라는 제목 자체가 던져주는 호기심이 솔직히 강하게 다가 왔던 작품이었습니다. 나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들의 만행을 다루거나 뭐 작가가 일본이이다 보니 난징 대학살등 일본 제국주의시대의 잔혹성을 다루는 역사적 팩트와 상상력이 결합된 팩션 같은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작품을 대했는데 이거 완전히 제 생각을 빗나가게 하는는 작품이더라구요. 솔직히 예전에 읽었던 故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접할때 만큼 숨막히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구요. 괜히 일요일 오후쯤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손에 잡게 되면 다음 한 주를 정상적으로 생활하는데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속칭 말하는 끝장을 내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박진감 넘치면서 스펙타클하고 도저히 중도에 책장을 덮을수 없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입니다. 뭐랄까 이 소설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사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더 유효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이라는 뉘양스가 강하게 전해오는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스토리 전개와 구조 역시 아프리카 콩고와 미국 펜타곤 그리고 일본을 배경으로 방대하게 전개되고 있고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글로벌한 범위에서 각자의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스케일이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다소 산만하게 여기질 수 있는 공간적인 배경과 많은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거대한 주제에 의해 서로 상호연관성을 부여함으로써 독자들에겐 별개의 사건이 아닌 동일한 사건을 계속해서 추적하게끔 하는 역활을 병행하고 있어 지루하다거나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점이 작가의 힘이겠죠. 다소 헐리우드 영화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가벼움을 작가는 군데 군데 정치 인류학적인 담론들을 배치함으로써 흥미본위에 들떠 있는 독자들의 가벼움을 진득하게 눌러주는 진중한 분위기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작품 특징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러한 전체적인 스트럭쳐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작품 전체의 격(진화생물학적인 전문 용어와 화학방정식등의 고차원적인 과학용어등이 이번 소설이 단순한 날림이 아니다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네요)을 높여주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전반적으로 작가가 다루는 인류의 진화와 그 진화속에서 자행 되었던 동종간의 학살, 인간성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네러티브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트를 방불케할 정도의 방대한 스케일과 속도감이 아우러져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아마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다 보니 독자들의 가독성등을 고려한 배려적인 차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볍게 내지는 흥미본위로 이번 작품을 대하더라도 지금 현생 인류의 형성 과정과 향후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한 많은 고민거리를 담고 있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작품 보다는 일종의 정치 인류학 보고서(정치와 국가의 역활,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 등 왠만한 정치인류학 서적의 논거에 결코 뒤지지 않는 담론들이 담겨있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눈을 또 한번 즐겁게 한다는 것입니다)를 대하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왜 제목이 제노사이드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걷어 지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작가의 설정과 호소는 향후 우리 인류가 가져야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프트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을까라는 느낌도 들구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故이수현씨이 생각이 날만큼 일본인의 시각을 상당히 변하시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외국소설을 접하면서 간간이 우리와 관련된 사안들이 등장하지만 사실상 일회성 눈요기 거리에 지나칠때가 많습니다. 그중에서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은 상당히 비중있는 인물로 비록 북한출신의 한국인을 등장시키고 있지만(사실 카산드라의 거울 정도의 역활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죠)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 유학생 이정훈은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주연급으로 설정되어 있어 국내독자들에게 신선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작가의 민족성에 대한 생각이 겐토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상당히 진보적(식민통치에 대한 반성과 민족/인종 차별에 대한 진보적 시각등)이라는 것이 사실 이번 소설속에서 가장 반가운 부분이기도 합니다(물론 이러한 느낌은 국내독자들에게만 한정되겠지만요) 아마도 이러한 설정자체가 작가 나름의 화해의 손짓이자 많은 노력(우리말 情에 대한 작가나름의 뜻풀이 과정을 보면 우리문화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다는 반증이겠죠)을 기울리지 않았을까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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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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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실 그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난생 처음 접하게 되었네요. 저 처럼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는 독자라도 제목만으로도 귀에 낮익는<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등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굉장히 낮설지 않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에 마치 저같은 독자들에겐 제목만 들어도 마치 접해본 작품인양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할 묘한 뉘양스를 주는것 같습니다. 그나마 분량이 약간은 만만하게 보이는 <정체성> 을 먼저 접하게 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요. 하지만 이번 작품 <정체성> 역시 작가의 여타 작품들 처럼 제목에서 부터 풍기는 강력한 포스로 인해 상당히 난해할 것 같다는 선입관을 가지게 되더라구요. 물론 다 읽고 난 느낌 역시 첫 느낌처럼 만만치 않는 작품이라는 강한 잔상을 지울수 없게 하네요. 아무래도 작품 가독적인 면이나 이해력에서 스텐다드 문학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선이 저에겐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남녀 주인공인 상탈과 장마르크 각각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 내지는 관찰자 시점이 혼용되어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마치 쌍방향 소통식으로 전개해 가고 있어 전반적으로 진도를 내는데는 큰 무리감이 없어 보이는 평이한 구성력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다가옵니다. 어느날 연인인 상탈의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라는 한마디(결국 샹탈의 이 한마디가 작품 전체의 축약하는 모멘트가 되기도 하죠)의 맨트가 발단이 되어 연인을 기쁘게 할(혹은 사랑을 확인하는 유치한 일종의 테스트도 될 수 있을 것 같구요) 요량으로 시작된 묘령의 편지는 남자주인공이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이를 기화로 각자 자신의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과정을 그려가게 되면서 각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심도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구도가 이번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뭐 제목 자체에서 부터 오는 무게감의 부담감을 결코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상당히 소화하기 만만치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전통적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력의 차이겠지만요). 분량이 중편소설정도로 적고 남녀주인공의 대화체로 스토리를 끌어가는등 별반 어렵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작품 곳곳에서 작가가 피력하는 견해들은 상당히 난해하고 수준높은 철학의 반열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우정이나 권태에 대한 상념들은 기본적으로 인식론과 존재론에 대한 기초적인 인지력을 요구하기도 하는것 같아 몇번을 되새겨 읽어봐야할 대목으로 기억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권태에 대한 상념들을 오늘날과 과거의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오늘날 무관심이라는 공통점 자체는 무관심이 우리 시대의 유일한 집단적 열정이다 ' 라는 작가의 표현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다가오면서 작품 전반을 흐르는 핵심을 보여주는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체성>을 통해서 우리는 상당히 시니컬하면서도 인텔리하고 유니크한 커플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샹탈의 직업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가 의도했던 아니던 간에 '정체성'이라는 메타포와 일맥상통하면서도 상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컨셉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서 독자들 스스로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표현은 하지만 그렇다고 실마리를 찾기는 상당히 힘들다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또한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갑자기 몽환적이면서 현실성과 괴리된 분위기로 칫닫는 부분이 독자들을 약간 당황스럽게 하지만 달리 보면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크라이막스적인 표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반적으로 분량만 믿고 쉽게 접근했던 무지의 소치에 땅을 치게 할정도로 만만치 않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 밀란 쿤데라의 여타 작품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사전작업을 병행해야하지 않을까라는 노파심마저도 들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고민거리인 '정체성' 에 대해서 나름 한번쯤은 심도 깊게 생각할 방향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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