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집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요한 집> 은 오르한 파묵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처녀작인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을 통해서 파묵은 터키의 근현대사를 일개 개인사와 절묘하게 오버랩하여 터키의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터키인이던 아니던 간에 터키를 이해할 수 있는 첫발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두번째 작품은 <고요한 집> 과연 첫번째 작품에 비해서 어떠한 스타일로 집필되었을까 궁금해지죠.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파묵 스타일' 다운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럼 '파묵 스타일' 이 뭘까?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 그리스도문명(서양문명)과 이슬람문명(동양문명)이 상존해온 역사적 운명만큼이나 터키의 근현대사는 다양한 이념과 메카니즘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런 혼재된 다양성들이 오히려 파묵의 작품이 획일성에 빠져드는 것을 방지했다고 사료됩니다.  파묵은 자신이 살아왔던 치열했던 동서양 문명의 충돌이라는 거대한 담론들을 작품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개개인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혼합함으로써 그 존재론적 가치를 부각 시키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이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이던, 혁명을 꿈꾸는 공산주의자던 혹은 아메리카 드림에 목말라 있는 현대자본주의 지향주의자든간에 그들 개인이 한번쯤은 생각하고 갖고 있을 법한 삶을 내러티브속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또한 그들의 삶의 지향점이 사랑이던, 혁명이던, 이상이던, 허영이던간에 그들 하나 하나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 그 자체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면서 마치 신문 기사를 아무런 감흥 없이 읽어나가는 것 처럼 대하게 하는 것 역시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고요. 바로 이러한 점들이 파묵의 작품에 빠지게 하는 유니크한 점이기도 한 것이죠. 그냥 거대한 파도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저항하는 돗단배같은 느낌들(작중 메틴의 암산능력을 가늠케 하는 두자리수의 곱하기 암산문제에서 맞는 답도 있고 틀린 답도 있지만 그 누구하나 그 정답의 正誤에 대해서 확인하려 들지 않는 다는 점)과 커다란 패러다임속에서 자신들만의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관들을 유감없이 들어내는 밀알같은 개인들의 삶이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파묵 스타일이지 않을까 싶네요.""

 

<고요한 집> 은 한 가족의 가정사에 얽혀 있는 비밀을 아흔의 노파와 그의 손자들 그리고 또 다른 핏줄의 시각에서 각각 다르게 바라보는 저 마다의 이야기들를 다층적이면서 1인칭화자 시점으로 구성하여 마치 각각의 장에 해당하는 내러티브들이 별개의 이야기로 들리는 듯하면서도 결국 할아버지-아들-손자로 이어지면서 끊을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처럼 이들 다섯명 화자의 내러티브들이 하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묘한 스트럭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이 6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하역사 드라마라면 <고요한 집> 은 이런 세월들을 단숨에 압축한듯안 1주일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미니시리즈라고 볼수 있죠. 약간 갸웃뚱 할 수 도 있지만 전작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이러한 제 표현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거라 생각 드는군요.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제목처럼 참으로 고요하기 그지 없습니다.(뭐 이 양반 작품이 거의 다 고요한 편이지만요^^) 마지막 결말에서 공산주의자 닐귄의 뜻하지 않은 죽음이외에는 그 어떠한 서스팬스나 파토스 없이 진행되고 있어 약간은 지루한 진행에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구요(근데 이런한 파토스 없는 서사 방식이 바로 '파묵 스타일' 중 하나이기도 하죠^^). 사실 이러한 내러티브의 흐름은 후엔 발표된 <내 이름은 빨강> 이라는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흐름의 강도이기도 하지만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적 배경에 비하면 유독 더디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더딘 진행속도가 왠지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혹은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아슬아슬함 처럼 다가오는 것 역시 파묵의 교묘한 설정들 속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삼대에 걸친 역사적 흐름의 키를 가지고 있는 파르마(왠지 전작인 제브데트씨의 부인인 니갼을 연상케하죠)와 터키 굴곡의 역사를 연구하는 파룩(파묵 자신을 보는 것 같구요), 급진주의자인 닐귄(파묵의 여동생 같습니다)과 하산, 아메리카 드림을 꿈구는 메틴 그리고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지만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난쟁이 레젭 이들 각각의 영역들이 별개의 스토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인 내러티브상에서 서로 얽히고 얽혀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저 마다의 이야기들을 다층적이면서 1인칭 화자 시점으로 구성하여 마치 각각의 장에 해당하는 내러티브들이 별개의 이야기로 들리는 듯하면서도 결국 할아버지-아들-손자로 이어지면서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처럼 이들 다섯명 화자의 내러티브들이 하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묘한 스트럭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스트럭쳐가 파묵만의 고유한 구도는 절대 아니지만 왠지 파묵의 작품이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딱 어울리는 작품의 구도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는 거죠.(이는 비록 형식은 다인칭적인 화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크게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보는 듯한 착각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면들이 거대한 시대적 담론과 그 속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필수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사유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한결 정갈한 맛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매번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대하면서 익싸이팅하거나 반전을 기대하는 입장과는 다소 거리가 먼 어떻게 보면 상당히 정적인 작품들을 대면하게 되지만 오히려 이러한 파묵의 작품세계가 리얼타임으로 꼭 무엇인가 눈앞에서 해결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의 사유구조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아서 한결 마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치-22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막상 책을 덥고 인터넷 포탈싸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정말 엄청난 작품이더라구요. 물론 책을 접하면서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정도로 유명한 작품인지 몰랐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문학작품에 대한 저의 무지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그동안 전쟁을 모티브로 한 수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캐치-22> 만큼 그 속내를 적나라하게 서사한 작품은 없으리라 여겨질 정도로 조지프 헬러는 '전쟁' 에 관한 모든 것을 솔직담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아마도 너무 솔직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기도 하지만요). 전쟁과 국가 그리고 사실상 전쟁과 가장 관련성이 깊은 개인(직접 참여자인 군인인 개인과 간접 참여자인 민간인을 망라하여)들이 느끼는 전쟁의 본질과 그들의 심리상태를 유머러스하게(실상은 상당히 슬픕니다) 표현한 블랙 코메디처럼 가볍게 다가오는것 같지만 실상 이 작품속에 담겨져 있는 담론은 정말 많은 점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인류 역사에서 그 어떤 담론보다 오래되었고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듯이 인류와 전쟁은 같은 행보를 해왔습니다. 규모면에서 그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지금도 세계는 각종 전쟁속에서 살아가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각 문명권의 신화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전쟁은 문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기도 하고 몰락의 길을 재촉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죠. 이렇듯 전쟁은 인류가 표방할 수 있는 가장 공식적이고 면피적인 면를 가지고 있는 동종몰살 프로그램으로 우리 인류은 지구생태계 타종이 개발하지 못한 잔학성(지구상에 존재하고 존재했던 그 어떠한 종들도 동종끼리 몰살하는 프로그램은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우리 인류는 독보적인 존재(흔히들 거룩하신 신으로부터 선택받았다고 하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잔혹한 종이기도 합니다)을 대의명분이라는 그럴듯한 정당성으로 포장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의명분이라는 대 가치관속에서 모든것이 희생되어지고 혹은 동일시(면제되는) 되는 전쟁의 역사는 그야말로 우리 인류의 치부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구원이기도 한것이죠. 

 

<캐치-22> 는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이탈리아의 피아노사라는 섬의 미 공군부대 기지를 무대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서사하고 있습니다(참 여기서 피아노사섬은 작품의 무대와는 정반대로 아주 작은 섬에 지나지 않지만 독자들에게는 아주 거대한 섬으로 인지됩니다. 아마도 작가는 전쟁이란 바로 이런 착각 즉 의도된 착각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 의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갖게 하구요). 전쟁의 모든 것이 장군승진이라는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장병들을 사지로 내모는 캐스카드 대령, 전쟁을 통해 부를 획득하고자 하는 마일로, 민간인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살해하는 알피, 대인기피증에 걸리수 밖에 없는 메이저 메이저 그리고 미칠수 밖에 없는 요사리안, 몸을 팔아야만 생을 이어갈수 밖에 없는 창녀들 이렇듯 <캐치-22> 는 전쟁이라는 매게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인간군상들의 면모를 잡아내고 있습니다.

 

작품의 스트럭쳐 역시 내러티브만큼이나 특이한데요 각각의 쳅터 마다 대표인물을 명시해 놓고 있지만 막상 서술되는 내용들은 대표인물과는 거리가 먼듯한 인상을 강하게 주고요 등장인물들의 대사 역시 축약형 버전으로 처리해서 꼼꼼히 읽어봐야 그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며 19금을 방불케하는 속어, 정사 묘사등 상당히 유니크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찾을래야 찾을수 없을 만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비정상적이지만 작가는 이러한 인물들을 묘하게 상호 연결하여 스토리를 꾸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전쟁은 미치지 않고는 정상적인 형태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력한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열병식에 완전히 맛이 간 세이코프 처럼 인간들을 일렬종대로 길게 세워놓고 그렇게 세워 놓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단하나 쉬지 않고 서술해 나가는 구조가 다소 의아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전쟁이라는 자체가 인간군상들을 배제하고는 말할 수 없듯이 작가는 이러한 인간들 이야기속에 전쟁과 국가, 경제, 사회, 인간이라는 패러다임을 들이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느 누구도 전쟁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듯이요

 

'국가의 명예와 인간 개인의 존엄성' 이라는 담론 사이에서 과연 전쟁은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에 대한 작가의 의식이 담겨있는 작품으로 비록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흘러간 과거의 전쟁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그리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전쟁에 대한 서사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일로 대변되는 '국가관' 는 향후 전개될 국가관과 상당히 일맥상통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얼마전 접했던 오르한 파묵의 <제브데트씨와 아들들>에서 나오는 국가관과도 사뭇 다른 형태(물론 동서양의 차이점이고 하지만요)를 띄고 있어 극상의 자본주의시스템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네요(그리고 실제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요).

 

굉장히 무거운 담론들을 가장 유치하게(아마도 작가의 의도인 듯 합니다. 그러니까 전쟁이라는 엄청나게 크고 공식적인 명분들이 실상 속내를 들여다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 딱 합당한 서사들 역시 유치할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담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가장 치부적인 면을 가장 유머러스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더이상 특별한 의미의 서사로 풀어간다면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담론 그 자체가 힘을 잃어버릴것 만 같은 그래서 오히려 이러한 표현들, 인물들의 심리상태등이 전쟁의 비참함을 그대로 전달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 절로 들게 합니다. 사족이지만 오래전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지중해> 라는 영화가 연상(물론 미군도 아니고 이탈리라군대가 주인공이지만 전쟁의 실상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습니다)되어지고요 특히 <포트리스> 는 이번 작품과 계속해서 오버랩되더라구요.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화 되었다고 하는데 국내엔 소개가 되지 않았은것 같아 아쉬움을 더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드디어 2012년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었고 그 주인공으로 인해 중국대륙(이 사람이 원래 오바하는 기질은 있지만 그래도 부럽긴 하네요)은 환호에 빠졌습니다. 물론 2000년 가오싱젠이 수상을 하였으나 정치적 망명을 한 결과 정작 자신의 고향에선 금서로 낙인찍혀 외면 당했지만 이번 수상자 모옌의 경우는 오리지널 중국 작가라는 점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것 같습니다. 혹자는 노벨상이 대륙적 분배 차원 내지는 정치적 논리를 무시할 수 없어 순환 수상으로 당초의 취지에 맞지 않게 변색되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대면하게 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구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의 <개구리> 를 대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오히려 늦은감이 있다는 생각이 더 들구요. 그만큼 모옌의 작품세계는 세계인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만큼 내면의 깊이가 강하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비단 <개구리> 라는 한 작품을 읽고 전부를 제단할 수 없겠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격언처럼 미루어 짐작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이네요.

 

모옌의 <개구리> 우선 작품 제목만 봐도 갸웃뚱 해지면서 왠지 그로데스크한 느낌(특히 표지에 그려져 있는 개구리의 쫙벌린 사지의 모습과 검은색이라는 점이 특히 그런 느낌이 주네요)을 강하게 줍니다. 이렇듯 표지나 제목에서부터 드는 느낌이 작품속으로 들어가보면 상당히 미묘하게 작용을 하는것 같더라구요. 우선 작품의 소재 자체가 그렇습니다. 중국 대륙의 산아제한 정책인 '계획생육' 과 이를 현장에서 지켜봐야 했던 완신(고모) 그리고 그러한 중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편을 풀어가는 커더우(이 이름도 재미있죠 '올챙이' 라는 뜻이니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으로 봐야겠죠)을 통해 내러티브의 전반에 상당한 요인들이 숨겨져 있고 각각 흩어져 있는 사조나 담론들이 상당히 정치적 뉘양스를 띠는 무거운 요소(특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국가정책에 대해서 대놓고 왈가불가할 수 없다는 점등에서요) 이지만 모옌은 아주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간문과 희곡을 혼합한 작품 스트럭쳐가 묘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산아제한 정책을 고발하는 듯 하면서도 정작 고발자 자신은 쏙 빠져나가 전지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느낌과 아예 독자들에게 그 판단을 넘겨 버린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구성이나 느낌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오히려 독자들의 심금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노벨상감이라는 생각 절로 드네요

 

글쎄 아주 비슷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작품은 뭐랄까 여러모로 많은 정신적 유대감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한때 둘도 많다 하나낳아 잘 기르자, 잘키운 딸하나 열아들 부럽지 않다라는 섬뜩하리 만큼 강력한 표어가 버젓이 거리를 도배했고 대한뉴스를 통해서 인구정책을 홍보했으며 다양한 세제로 불이익을 가했고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훈련을 면제해주는 중국에 못지 않게 난세스적인 행동을 해왔다는 측면에서 <개구리> 가 묘사하고 있는 내용은 상당한 교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동북아시권에서 유교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공감대가 이번 작품을 읽어 나가는데 수긍과 안타까움 그리고 국가에 대한 분노 혹은 좌절 내지는 체념등 많은 면에서 충분하게 국내 독자들을 설득시킬 것으로 보여집니다.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것 없다라는 말은 잊어도 될성싶을 정도로 <개구리> 는 스트럭쳐면에서나 내러티브의 짜임새,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참 이부분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소공의 '마교사전' 만큼이나 등장인물 개개인들의 심리묘사가 정말 압권입니다. 적절한 속어와 비어등을 썩어 가벼운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묘사들이 우리 삶을 오히려 더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수긍이 갑니다. 그리고 정말 재미도 있구요)등 거의 모든 면에서 괜찮은 작품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커더우의 친구인 리서우가 말했던 "그게 바로 문명사회거든,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연극배우, 영화배우, 탤런트, 만담가야 사람들 모두 가 연극을 하고 있잖아 사회가 결국 거대한 무대 아니겠어? 갑작스러운 일을 해결하는 최상의 방법은 조용히 앉아 변화를 지켜보고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거야" 대사가 작가인 모옌이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진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전반적으로 중국문학에 익숙하지 않았던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타 노벨상 수상자들의 작품보다는 솔직히 쉽게 아니 아주 편안하게 다가왔고 가슴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장은수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매튜 펄의 <단테 클럽> 은 19세기중엽 미국내에서 단테의 <신곡> 을 간행하는 중에 발생하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보스턴시내가 공포 분위기로 휩쓸려 가고 단테 연구가들인 롱펠로, 홈스, 로웰, 필즈등 소위 단테 클럽 회원들은 이 살인사건이 단순한 사건이 아닌 단테의 신곡을 그대로 본따 자행하는 행위임을 알게되고 이를 단초로 범인의 행방을 추적한다는 추리스리럴 작품입니다. 여기에 그냥 단순하게 추리스릴러 계통으로 흐를수 있는 내러티브에다 에이브러햄 링퀀의 노예해방선언 그리고 이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남북전쟁의 여파등 역사적 사건과 흐름을 접목시키므로서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좀더 매력적인 장르로 독자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작가는 역사적인 팩트에 좀더 무게감을 살리고자 생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상당히 많이 포진시켰고 사건의 해결사인 단테클럽 회원들 역시 실존 인물들로 인물묘사에 이르기 까지 상당한 고증을 걸쳤다고 하네요. 특히나 이탈리어 강사인 바키의 경우 작품의 시대적 배경전에 사망한 인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독자들의 눈을 헷갈리게 하는 역활을 하면서 팩트와 픽션을 넘나들게 됩니다.

 

<단테 클럽> 는 분명 팩션이지만 등장 인물들의 신빙성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묘사나 행동거지등이 팩트적인 요소가 강하다 보니 마치 실화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오게 하네요. 그리고 작가는 남북전쟁이후 미국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전쟁의 후유증과 미국 엘리트집단내에 자리잡고 있는 보수주의적인 경향을 <신곡> 과 절묘하게 배합하여 당시 시대적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미국의 화려한 발전상 이면엔 극심한 인종의 차별, 이민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프로테스탄트교의 비뚤어진 교의와 소수 엘리트 집단의 행보등 아메리카 성장사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역사추리물을 넘어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팁으로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책장에 고이 모셔놓은 단테의 <신곡> 을 한번 펼쳐보는 기회가 된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야할 고전중에 고전이지만 운문으로 쓰여진 <신곡> 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저 같은 문외한들에게는 한계가 있어 몇페이만 넘기고 대충 삽화만 보다가 접었던 책이었더는데 이번 <단테 클럽> 을 읽으면서 다시 돌아보는 <신곡> 은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신곡> 에서 말하는 콘트라파소의 형태인 중립주의자, 성직매매자, 분열주의자, 배반자등과 관련된 형별과 그 사유에 대한 얄팍하나마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반적으로 내러티브의 진행 속도나 그 속도감에 발맞추어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시대적 배경등이 잘맞아 떨어져 다소 방대한 분량이지만 무리없이 읽혀 나갑니다. 단지 너무나 많은 실존인물들이 등장하고 이 인물들에 대한 주석을 병행해서 읽어나가다 보면 약간의 감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물론 작가는 팩트적인 요소를 띄울려고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것이고 상당부분에서 그 효과를 발휘하기도 합니다)이지만 뭐 단테 클럽의 주 멤버들만 기억하고 넘어가더라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이네요. 무엇보다 화려하게만 알았던 미국사 역시 숱한 음영이 드리웠던 점철의 역사라는 사실, 그 와중에 단테 클럽의 멤버들 처럼 열린 패러다임을 추구했던 인물들이 이었기에 지금의 미국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들구요. 모처럼 팩트와 픽션의 세계를 넘나느든 대작을 만나서 눈이 즐거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6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상 유명 작가의 처녀작을 접한다는건 약간의 설레임을 가져다 줍니다. 특히나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더할나위 없는 설레임이 앞서기 마련이죠.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는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오르한 파묵의 처녀작으로 이번에야 국내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하마평과 함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겠습니까(그 동안 오르한 파묵의 매니아들이나 난생 처음 오르한 파묵을 접하는 독자들 모두 다 처녀작이라는 것 만으로도 호기심의 대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두갈래의 극명한 반응이 있으리라 여겨지네요. 한쪽은 이미 파묵의 작품세계를 경험했던 측의 반응일 것이고 또 다른 측은 처음으로 파묵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층이겠죠. 그래서 솔직한 심정은 약간의 우려감도 드네요. 이미 파묵의 작품을 접했던 독자들이라면 '아~~ 역시 파묵답다' 라는 느낌이 먼저 들 것이고 처음 파묵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뭐야~~ 기대만큼 별 것 없는데' 라는 상반된 느낌을 줄 수 도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동안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접했던 입장으로 이번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의 느낌을 말해보겠습니다. 뭐 항상 파묵의 작품을 접할때 마다 가지는 느낌중에 하나인데요, 좀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얼마전에 읽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라는 작품과 극명하게 비교됩니다.(굳이 제노사이드말고도 이와 유사한 장르의 작품들) 제노사이드는 상당히 빠른속도로 읽었갔습니다. 워낙 엔터테이먼트적인 요소가 짙은 이유도 있었지만 그 결말을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속도가 났던 것이지만 파묵의 작품은 이와는 사뭇 다르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결말이 그러니까 책을 읽는 동안 언제가는 들어나겠지만(그리고 그 결말 또한 그리 파토스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왠지 하루라도 늦게 알고 싶은 심정에 속도가 더디게 흘러가고 그런 더딘 시간만큼 그의 작품속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위안(그러니까 작품을 대하는 내내 어디쯤에서 한번의 극적인 반전이 올까 내지는 결말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라는 생각 자체를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그저 작가가 서술에 나가는 방식대로 읽어간다는 말이 맞을것 같네요. 물론 개인적으로 봐서 파묵의 작품에서 극적인 반전이나 결말을 기대하기란 힘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게 없습니다. 고작 <내 이름은 빨강>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여타 다른 작가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기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묵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위안이 아닐까라는 생각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을 받는 그런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이 파묵의 작품 세계이고 그의 작품에 끌리는 매력인 것 같습니다.  

 

故박경리선생의 <토지>를 연상케 하는 한 가족의 가족사를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전개해나가는 방식의 작품입니다. 그러다보니 역사소설와 개인사를 동시에 혼합한 구조의 대하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다만 <토지> 와는 다른 구조를 보이는 것은 크게 30년 단위를 주기로 칼로 무를 자르듯이 토막내서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바로 요런 스트럭처가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터기에 대한 전반적인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라면(뭐 전공자 내지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다 해당되니 그리 걱정할필요도 없지만요) 인터넷포탈 싸이트의 터키역사를 PC창에 띄어놓고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처음 프롤로그에 이어 2부초반에서 다소 벙찐 느낌(30년이라는 세월에 대한 일체의 서비스가 없다보니 다소 혼란스럽네요)이 먼저 듭니다. 하지만 내러티브를 쫒아가는데는 별다른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도 파묵의 전략적인 부분일 것이고 비록 비터키인 아니더라도 충분한 이해가 될 정도로 제브데트씨 일가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동양화에서 느끼는 '여백의 미' 가 바로 이러한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또한 만약 65년이라는 세월을 연대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의 구조를 채택했다면 아마도 작품의 매력이 한참은 반감되지 않았을까라는 느낌도 드네요.

 

이러한 공백은 다양하게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프롤로그에서 1부로 넘어가는 과정에 대한 독자들의 약간의 관심도 과감하게 저버리고 바로 30년이라느 세월을 훌쩍 넘겨버린다. 그 과정에서 제브데트는 과연 결혼했을까? 결혼했다면 파샤의 딸인 니갼과 했을까(사실 이부분이 가장 흥미롭게 독자들을 자극하죠. 왜냐하면 프롤로그에서 은근히 형의 여인인 '마리' 의 등장이 애사롭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2부에서 '귈레르' 역시 레피크와 연관성이 비슷한 뉘양스를 비치고 있죠. 근데 이 역시 파묵의 작품답게 이런 상상들 그저 독자의 몫으로 돌려놓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오스만제국의 붕괴 과정을 포함한 일련의 역사적 변혁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물론 누스레트, 푸아트의 생각으로 그렇게 진행될 것라는 뉘양스를 주고 있기는 하죠) 하여튼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미시적인 한 가족의 가족사와 보다 거시적인 국가민족의 근현대사를 접목시켜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터키의 지정학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죠. 동서양 가치관의 혼돈과 발전이라는 패러다임과 국가민족중심의 패러다임의 충돌이 개인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분들(향후 파묵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저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은 마치 우리의 근현대사와 유사한 부분을 많이 보여주고 있어 공감되는 부분들 또한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끌리는 내러티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부에서 거론된 '국가' 의 존재와 역활부분은 우리의 1960-70년대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도 깊은 사유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렇듯 파묵은 가족사을 통해서 터키의 근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는 가치관의 혼란과 그 정점에 서 있었던 지식인들의 고뇌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어 무게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게감을 의도적으로 대놓고 어필하는 방식이 아닌 각 개인들의 심리묘사에 녹여 놓아서 적절한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배려부분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 눈여겨 볼 만한 장면도 여럿 있네요 '카다이프', '돌마' ,'뵈렉' ,'라크'(라크는 정말 한잔 먹어보고싶네요)등 터키 전통음식과 술들이 줄줄이 등장하죠 뭐 이런 기회니까 다른 세상의 음식도 한번 맛간을 통해서 구경할 수 있고 하여튼 구미를 당긴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셰의 약혼식 장면은 마치 8mm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을 담는 듯한 묘사가 일품입니다.(존 맥그리거의 선명하고 상세한 CCTV HD 중계와는 사뭇 맛이 다르지만 오히려 구식 비디오의 영상이 더 정감있게 다가옵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가족사와 근현대사의 경계선에서 묘한 유사성과 상호보완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가벼움(개인가족사)과 무거움(국가역사)이 교차하면서 향후 파묵의 작품에 근간이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작품속 등장인물들의 고뇌가 그리 이질적이 않는 것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살아왔던 이들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게 하는 작품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