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 - 2012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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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작가 그 이름 석자를 제대로 아는 독자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아마도 저 처럼 난생처음 들은 독자들이 대부분이겠죠) 당연지사이지만 신인 작가이자 모 네거티브하게 말한다면 인생을 엉뚱한 곳에서(?) 허비하다가 뒤늦게 늦깎이로 문단에 데뷰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럴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변변치 못한 작품활동으로 뭐하나 자신의 이름을 내세울 작품도 없었거니와 독자들과의 교유가 없다보니(이미 작품속에서 밝혔듯이 대한민국 출판계의 구조적 모순점이기도 하지만요) 생소하고 낯설기만 한 작가입니다.(물론 표면상으로 들어나는 현상이지만요) 그런데 이 양반이 대형사고를 쳤네요 '오늘의 작가상' 을 수상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대게 유명작가들의 기본적인 코스인 이 상의 의미는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상당한 베스트셀러작가 반열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검증적 성적표를 발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상작들이 심오한 인간의 고뇌를 문학적으로 승화한 그런 고급스러운류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독자들 역시 이러한 선정방식에 대해서 당연시하고 있기도 하구요. 헌데 이러한 보증수표격인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최민석 작가의 <능력자> 를 대하고 나면 상당히 당혹스럽거니와 많은 부분에서 주저주저하면서 망설이게 됩니다.(아니 솔직히 말하면 작가 프로필에서부터 뭔가 요상하다라는 느낌이 들면서 작품속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특히나 그 동안 독자들 가지고 있었던 편견 아닌 편견으로 인한 아우라로 인해 더욱 더 갸우뚱하게 합니다)

 

그 망설임이란게 특히 문학작품에 일가견이 있는 독자분들이라면 더욱 더 심하리라 여겨 지네요. 얼핏 보면 문학성과는 담을 쌓은 듯한 내러티브와 전반에 걸쳐 자조적이면서 패배주의적인 뉘양스를 연상케하는 서사들이 '오늘의 작가상' 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상당히 그 급을 떨어뜨리면서 무슨 야설이나 개콘에서 볼 수 있는 듯한 Y담, 故 김득구선수을 연상케 하는 뻔한 스토리에 독자들을 웃기기 위해서는 그 출처를 의심케 하는 동원 가능한 서사와 묘사를 모조리 갖다 붙인 버라이어티한 스트럭쳐들, 한 마디로 웃음으로 시작해서 그 장엄하고 거룩한 결말부분에 이르기까지 웃음으로 마감해야하는(제가 이상한지 모르지만 가슴한켠을 짠하게 하는 결말부분에서 마져도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유머러스한 설정들로 인해 상당히 망설여 진다는 말이죠. 이게 과연 그 숭고하고 문학성이 짙게 배인 작품에 부여하는 '오늘의 작가상' 에 적합한 작품인가에 대해서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 웃음이 전해주는 의미에 대해서도요

 

그래서 저도 솔직히 몇 번을 주저했습니다. 중도하차 할려고요 이 바쁜 세상에 얼마나 읽어야 할 주옥 같은 작품들이 널려있는 마당에 이 양반의 작품을 끝까지 읽고 서평을 올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몇 번을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근데 결론부터 말하자면요 진흙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솔직히 '오늘의 작가상' 말고 '내일의 작가상' 이라도 있다면 주저없이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아무리 픽션이라고 하지만 결국 문학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공간이 가장 픽션답다고 믿고 있는 저에겐 내러티브 자체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오래토록 뇌리속에 남을 작품으로 보입니다. 물론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겪어본 심오한 상태에서 나온 작품이라 그런지 삶의 근원적인 부분을 솔직하게 까발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특히 내러티브 전반에 표출되고 있는 해학과 풍자는 현실세계와 처절하게 고뇌하지 않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내공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마치 연암 박지원의 부활을 보는듯한 일필휘지는 심오한 카타르시스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결과위주, 성과위주, 경력위주의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능력자(그것도 왠만하면 안되는 탁월한 능력자)가 되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장애인들(비범한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이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더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데자뷰를 보는 것 같고요. 동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에 내러티브를 서포터 해주는 다양한 눈요기거리는 유머스럽고 깃털처럼 가볍게 책을 접하는 동안 독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지만 막상 그 이면에 깔려있는 서사는 상당히 무겁고 서글프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저를 포함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수긍하는 서사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서사를 무미건조하게 나열했다면 정말 참혹해서 읽을 수없는 내러티브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그래서 최민석 작가의 이번 작품은 양수겹장의 효과를 동시에 이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 가지게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앞으로 최민석이라는 이름 석자가 독자들 뇌리속에 깊이 각인될 것 같습니다. 신인답지 않은 날까로운 서사와 이를 일반 대중에게 어필해 나가는 필체의 공력이 상당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준다는 것이죠.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전 개인적으로 조선시대 연암의 해학과 풍자에 필적할 만한 내공을 지니고 있는 작가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러티브 전반에 표출되고 있는 강력한 해학과 풍자는 작가 자신이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치열하게 괴뇌했는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에 향후 출간될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이 절로 들게 하네요. 작가 자신의 우려만큼 악평이 쏟아질 그런 작품은 정말 아니라는 점 기억해 두십시요. 솔직 담백한 이야기, 읽어서 즐거운 이야기 하지만 절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이 만큼 애잔하게 전달해주는 작품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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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63 -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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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역시 세계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생각, 절대 배신 때리지 않는다는 생각, 뭐 이런 저런 생각들을 다 쓸어 버리더라도 스티븐 킹의 <11/22/63> 는 제게는 올해가 가기전에 발견한 또 하나의 대박 작품입니다. 솔직히 1권을 대면 하면서는 그다지 큰 감흥을 받지 못한게 사실입니다.(바로 2권이 이어지질 않고 공백기간을 가지니까 슬그머니 내려 앉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시간차를 두고 2권을 대하니 오히려 이러한 시간차 공격이 독자들의 상상을 더 자극하고 충실하게 내러티브를 밟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뭐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궁금해 죽겠는데 얄밉게 후속편이 나오지 않으니까 짜증도 나고 도데체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도 해보되면서 뒤 늦게 찾아오는 기쁨이랄까요)

 

  그 어떠한 수식어(그러니까 유명 리뷰어들이 미사어구를 침에 잔뜩 발라서 논평하는등) 를 첨가 할 필요 없는 그야말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 서거한 대통령을 되살리는 어드벤처 여기에 결코 빠질 수 없는 19+ 로멘스, 마지막으로 첨가된 철학적인 서사등이 정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독자들의 눈을 사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스티븐 킹이다라는 찬사가 헛된 말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합니다.

 

  물론 얼핏 들여다 보면 어디선가 익히 많이 본 플롯과 내러티브같다는 느낌, 그리고 다소 황당한(사실은 우울하다고 해야겠죠) 결말등 그다지 변별력이 없어 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그동안 우린 영화나 기타 소설작품들을 통해서 그리고 각 개인의 무한한 상상력을 근거로 해서 시간 여행이라는 로망에 빠져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약간은 진부한 스토리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사실이구요. 하지만 단언컨데 이번 작품은 그런 염려나 기시감 같은 거 걱정할 것 없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엔터테이먼트 요소와 시간과 삶 아니 좀더 줌업하면 역사라는 철학적 멘트가 정말 맛있게 버무러져 있어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한 순간의 감흥을 뛰어 넘는 생각거리를 동시에 던져주는 작품으로 오래토록 잔상이 뇌리속에 남겨질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 지네요. 무엇보다 언어의 마술사 스티븐 킹의 맛깔나는 표현들이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면서 정말 그 시간대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작중 주인공 조지가 늘 말했듯이 변화는 쉽지 않는 것이지만 특히 과거에서의 변화는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더욱 더 고집이 세고 어렵다는 표현처럼 그 동안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들의 고집 센 끈에서 벗어날려고하는 힘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로망입니다. 여기에 대통령의 암살을 저지해야 한다는 역사적 숙명까지 더해지니 흥미와 상상은 배가 되고 뭔가 뜻하지 않는 반전을 기대하게 합니다. 물론 그 반전이란게 희망적인 요소이길 바라지만 스티븐 킹은 나비효과와 고집 센 과거(토끼굴을 지키고 있는 색깔이 변하는 카드맨등)를 운운하면서 미리 독자들에게 언질을 주고 있죠. 결국 지금 현재는 우리가 그토록 바꾸고 싶어하던 과거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잘못된 실행이었던 혹은 극히 사소한 변화이었던 간에 과거와 현재는 기타줄과 같이 연결된 하나의 화음이라는 사실에서 벋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팁으로 케네디 암살사건의 배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죠. 뭐 이게 결정적인 내러티브의 핵이기도 하지만 스티븐 킹은 그저 뻔한 음모론의 재탕으로 흐를 수 있는 스토리를 정말 멋있게 반전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인 것 같습니다.

  

  혹시 어떤 독자분들은 이슈상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1865년 링컨 대통령 암살 당시로 스토리가 설정 되었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사실 어떤면에서 보면 링컨을 되살려 놓은 것이 그 파장 효과면에서는 더 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하지만 시간차가 벌어지면 벌어 질수록 현대의 독자들에게 호응도가 떨어질 수 있는 우려도 크지 않을까(사회문화적인 전반의 이해와 공감대등) 오히려 가까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같은 공감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지 않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정말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되살리고 싶은 대통령이 있다는 플롯 자체가 솔직히 부럽네요. 우리 현대사를 반추해보면 더욱 더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인들의 뇌리속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는 존 F. 케네디의 상징성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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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세트 - 전5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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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장 발장' 으로 더 알려진 <레 미제라블> 은 고전 중에 고전으로 다양한 버전(책 제목도 다양하거니와 번안본 다이제스트본등 출판 형식도 다양합니다)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더랬죠. 제 기억에도 학창시절에 축소 요약된 문고판 혹은 시험용으로 전체 줄거리만 써머리된 페이퍼 형식으로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네요. 그러다 보니 사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아니 <장 발장> 에 대한 감흥은 그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아주 판에 박힌 권선징악적인 결말과 교훈적인 울림은 <백설공주> 와 같은 우화 비슷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원작이 이렇게 방대한 내용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하긴 그 동안 클래식을 접하면서 다소 놀라는 부분들이 바로 이런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알고 있다고 혹은 읽어 봤다고 생각했던 유명작들을 막상 대면할때 느끼는 부분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처음 출발은 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로 시작하지만 작품속에 들어가게 되니 정말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게 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속으로 빠져들면서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들고 '아하' 라는 감타사를 연발하게 만드네요.

 

  자 그럼 <레 미제라블> 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보죠. 주의할 점은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주절주절 서평도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구요. 이 점은 나름 빅토르 위고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 표명이라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음 도저히 간단하게 줄여서 리뷰를 올릴 자신이 없더라구요. 아마도 저의 무지와 능력의 부재이지 않을까라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런 말투도 위고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참 깜박했는데 전제가 있네요. 지금까지 레 미제라블을 장 발장이라는 문고판 내지는 축소 번안판으로 읽은 독자들 그러니까 완역 작품을 대하지 못했던 독자들 이라면 더 공감되지 않을까 싶네요.

 

▣ 첫 도입부는 정말(물론 저한테 해당됩니다) 지루하고 약간의 짜증을 동반합니다. 아~ 고전이라는 이런 것 인가 하는 생각 예전에 그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생각들(저한테는 솔직히 이게 뭐야라는 느낌이 더 강했고 5권을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로 시작됩니다. 그래도 일단 고전이니까 참아가면서 읽어 나가다 보면 그 이름도 익숙한 우리의 주인공인 장 발장이 등장하면서 내러티브의 속도와 긴장감이 급상승 하기 시작하네요. 뭐 대부분의 유럽 소설들이 그렇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인물에 대한 설명이 마치 엑스레이로 투과하듯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세세하게 설명되고 있어 정말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작품 전반에 걸쳐 투영되어 있어 등장 인물들의 숨소리를 듣는 듯한 사실감을 증폭시켜 준다는 점에서 위고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다소 반복되고 있어 약간은 지루한 맛도 있지만요. 워낙 인물 묘사에 대가인 점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내러티브(여기까지는 예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가 갑자기 샹 마티외 재판을 계기로 돌변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유명한 장 발장이라고 까발리는 마들렌 시장의 고백은 재판장과 판,검사 그리고 배심원과 방청객을 당황케 하는 만큼 독자들도 상당히 당황하게 한다는 것이죠(음 대충 작품의 분량을 미루어 짐작해 봐도 아니 왜 이렇게 초장에서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뭐 이런거 있지 않습니까. 어디선가 대충은 본 듯한 현상이 데자뷰되는 듯 한데 왠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들. 물론 그 동안 알아왔던 레 미제라블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모른체 말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도입부를 건너가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게 되죠.

   

   그런데 2부에 들어서면 또 다시 한번 더 작품의 분위기가 확 돌변합니다(이거 왜 항상 초입부에 이런 설정을 해 놨는지 도통 모르겠지만요). 약간 생뚱 맞다고 할까요(물론 전 작품의 분량에 비해선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요) 막상 작품을 대하는 독자의 눈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하죠. 갑자기 등장하는 워털루 전투와 다시 권력을 잡는 부르봉 왕가등 당시 프랑스, 유럽의 역사가 서사되면서 우리의 장 발장은 귀퉁으로 밀려납니다. 특히 워털루 전투의 발발과 전개 그리고 결말에 이르는 서사는 카이사르의 내전기 이후 가장 전쟁을 제대로 묘사한 부분으로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책을 읽는 내내 화약냄새와 포성과 병사들의 함성을 느낄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가 1부 도입부에서 주교에 대한 묘사에서 눈치는 챈 독자라면 아 이 양반의 주전공임을 알아채게 합니다. 이러한 스트럭쳐는 3, 4, 5부로 가면 갈수록 독자들이 넘어서야할 무거운 담론과 서사의 시초라는 점, 그리고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문학작품인지 정치,역사 혹은 시대 평설인지 아리까리 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생각외로 진도가 팍팍 나가질 않습니다. 근데 이런 구조가 은근히 시선을 붙들어 매고 있다는 점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 작품 전체적인 내러티브 진행중에 군데 군데-아마도 어떤 독자들은 짜증낼 만큼 장 발장에 빠져들려면 등장하고 불쑥 머리를 들이대는 위고의 너스레라고 할까요. 생뚱 맞는듯한 또 다른 부연 설명들 마치 굳이 그렇게 친절하게 서사를 하지 않더라도 전체 내러티브를 이해하고 읽어나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듯 한데 -예를 들어 워털루전투의 상세묘사, 베르나르 수도원, 파리시내의 하수도의 구조도와 연혁, 공화제와 왕정의 비교 검토, 내란과 외란의 차이점(특히 4부는 분량도 가장 많은데다 정치적인 담론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더욱 더 진도 빼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이런 카메오 같은 서사들이 내러티브 전반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등장들이 작품의 진정한 맛과 이해와 더불어 독자들로 하여금 그 장소, 그 시대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장 발장을 위주로한 소설부분만 도려내더라도 제법 훌륭한 평설을 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빅토로 위고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장치적인 구조가 상호 보완 역활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작품의 가치를 배가 시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네요.

 

▣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장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담론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전중에 고전작품이기에 그럴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지만 만약에 이러한 담론들이 일률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사되고 있다면 어디 문학작품이겠습니까 그저 바이블 같은 느낌의 수양록이 되겠죠. 하지만 빅토르 위고는 당시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아노미 상태에 빠져있는 시대상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담론들을 내러티브에 녹여 놓았다는 자체가 독자들에게 정형화되거나 진부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여기에 자신의 전공인 인물과 장소, 지리, 사물(심지어 깨진 그릇에 이르기까지요 정말 엄청납니다)에 이르는 세밀한 묘사는 문학적인 작품성을 높이고 등장인물들과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과 효과는 이 작품 자체를 읽는 것 만으로도 마치 눈 앞에 펼쳐지는 스크린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고전작품과는 사뭇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별도의 각색없이 그 대로 원작을 차용하더라도 훌륭한 영상과 뮤지컬이 탄생할 수 있을 만큼 빅토르 위고섬세하고 치밀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틴 베르가의 분원인 베르나르 교단의 수녀원의 건물 모습을 묘사하는 과정을 보게 되면 정말 문손잡이, 벽지의 문양과 색깔, 창틀의 구조, 마루바닥의 흠집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세세한 묘사를 하고, 파리 전역의 거리, 그 거리에 있는 상점과 건물들 그리고 그 거리를 활보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옷차림(특히 위고는 이러한 인물들의 겉모습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심리상태까지 연상케 한다는 점은 가히 압권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건물들의 배치와  등등 이러한 면을 통해서도 가히 완벽한 영화의 시나리오와 뮤지컬의 극본에 걸맞는 무대효과를 설치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 위고는 작품 전반을 통해서 제목에 걸맞는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 즉 당시 대다수의 프랑스 민중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혁명과 제정 그리고 왕정의 복고와 다시 맞은 혁명등 프랑스의 정치 사회는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좌와 우, 위와 아래를 번갈아 왔다갔다 했지만 정작 민중들에게는 특히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겐 그저 무의미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쪽의 서사(역사 평설)는 당시 정치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다른 한 쪽의 서사(소설작품)는 그저 그와는 별개의 세상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민중들의 비참한 이야기의 근원이 바로 정치였다는 점을 은근히 비꼬는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도 한 몫 거들고 있고요.

 

  정말 엄청난 大作을 만났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대작일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고요. 그저 몇 마디 말로만 표현하는 그런 대작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대작이자 명작입니다. 소설가 백영옥은 "고전이 재밌다 라는 말은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건 마치 뜨거운 욕탕에 들어앉아 '어! 시원하다' 라는 아버지의 거짓말과 일맥상통한다." 고 했습니다. 이런 고전의 정형이 바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요? 그 동안 한 쪽의 서사만을 다룬 간략한 번안이나 다이제스트본으로 접해왔던 <레 미제라블> 은 잊어야 할 것 같네요. <장 발장> 이 아닌 <레 미제라블> 의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왠지 이 엄청난 명작을 읽고도 초라한 서평으로 댓가를 갈음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Tip 1.) 분명하게 문학작품임에 틀림없어 보이지만 정말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 보면 역사평설과 문학소설이 혼합되어 있는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지니고 있습니다. 분명 문학적인 측면만 놓고 봐도 압권이지만 평설적인 부분 역시 빼어난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마지막 왕 루이 필리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아마도 자신이 2월 혁명을 계기로 왕당파에서 공화파로 전향하면서 "혁명은 바로 반항의 반대이다, 혁명은 훼손되더라도 지속되고 피투성이 되더라도 살아남는다 혁명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존재한다" 라는 서사가 자신의 공화파 전향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마리우스라는 청년을 내세워 자신의 사유를 보여주지만 질노르망 영감의 역활 역시 상당히 위고의 사유가 잔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번 작품은 필히 프랑스의 근대사를 한번 확인하고(2월, 7월 혁명등 뭔놈의 혁명이 많습니다) 읽어나간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Tip 2.) 4부 7번째 챕터의 '결말' 이라는 장에서 위고는 당시 민중들 즉 레 미제라블이 사용하는 비어, 속어에 대한 별도의 장을 마련하여 곁말의 어원과 형식 그리고 사용처 등 상당히 고급스러운 언어학자다운 고찰을 보여주는데요. 이 갑작스러운 등장은 독자들을 다시 하번 당혹하게 하지만, 앞 뒤 면밀히 생각해보면 작품과 연계해서 더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듯 <레 미제라블> 속에는 예상치 못한 서사들이 카메오 출연 같이 상당히 많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들이 장 발장을 비롯한 당시 프랑스 민중들의 삶을 보충하는 역활을 하고 있고요. 이런 점 같이 음미하면서 읽는다면 한층 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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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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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은 오르한 파묵의 세번째 작품이면서 전작인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고요한 집> 과는 사뭇 다른 스트럭쳐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파묵은 두 작품을 통해서 신생 터키공화국의 성립과정과 그 과정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질곡의 근현대사를 가족사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작품 <하얀 성> 역시 그렇지만 차이점이라면 기존의 작품들은 터키(동양)의 관점에서 서구(서양)의 이데올로기나 담론이 충돌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하얀 성> 은 서구의 시각에서 터키(동양)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지는가에 대해서 촛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스트럭쳐면에서도 액자구조 형식을 취해서 파묵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배제한 듯한 뉘양스를 주어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양측의 담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물론 강한 부정이기도 하지만요)

 

<고요한 집> 에 등장했던 파룩- 파묵 자신을 지칭하죠-이 게브제군 기록보관서에서 발견한 17세기의 고문서를 책으로 출간하는 형식을 빌려 시작되는 단순하게 '서로의 삶을 바꾼 두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그 내면은 개인의 정체성 발견을 넘어서 동서양간의 담론의 수용과 이해 그리고 발전에 관한 문화간의 충돌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서 상당히 난해하고 심오한 담론을 다루고 있는 다소 무겁고 어려운 작품입니다. 솔직히 작품의 분량에 비해서 진도도 그리 팍팍 나가지 않고 뭔가 곱씹어 보게 하는 작품으로 '나는 왜 나인가' 라는 극히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정체성의 문제와 동서양 이데올로기이라는 거대한 담론까지 같이 결부되어 고뇌의 폭을 사정없이 확 넓혀 버리기 때문에 만만하게 접근했다가 다시 리셋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 할 정도로 심오함 그 자체를 보여주네요. 음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움직일 수 없는 수렁속으로 자꾸 자꾸 빠져든다고 할까 마치 주위에 빛나는 불빛이란 불빛는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블랙홀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게 합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나(서양을 대변하는) 와 그('호자' 동양을 대변)- 이 두 사람은 서로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상대방)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의 관계성 및 호칭등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왔다갔다하고 있고 동서양의 담론들과 개인적인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독자들의 눈을 혼란케 하네요. 상당한 인내심과 집중력을 가지지 않고 대한다면 대체 뭔 내용인지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이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파묵의 전작인 두 작품을 대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더 파묵의 서사가 상당히 낯설고 난해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우려도 되고요. 

 

개인적으로 왜 오르한 파묵이 노벨상을 수상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하는 작품이 바로 <하얀 성> 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물론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해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통해서 동서간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노예와 주인간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단순한 지식을 공유하는 협력자의 관계로 그리고 나아가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은 형제애 나, 너의 경계가 없이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인 동심체로서의 이해, 반복적인 표현이지만 '나'(서양)의 관점에서 그리고 위주로(혹은 주연으로) '호자'(동양)를 바라보지만 결국 서양과 동양이 서로 다른 '나' 와 '너' 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같은 모습의 '나' 와 '너' 라는 인식 '나는 왜 나인가' 라는 개인적 정체성에 대한 담론 역시 위와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음을 서사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인식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더욱 더 혼란스럽고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결국 이 두 가지가 별개로 존재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죠.  

 

다 아시다시피 터키 그 중에서도 이스탄불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충돌점이자 접점의 위치에 놓여 있죠. 그리고 종교를 포함한 문화의 충돌이자 접점으로 동서양이 혼재에 있는 세계유일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파묵이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에 영향을 받은점도 있겠지만 파묵처럼 양대문명과 문화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고민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서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런면에서 이번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크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동서양 담론과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파묵은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에서는 방대한 시간과 공간속(거시적인 시각에서)를 다루었다면 <고요한 집> 은 상당히 협소한 범위 속으로 담론을 끌어들였고 <하얀 성> 와서 앞의 두 작품을 바탕으로 동서양과 개인들의 정체성이 완결되고 이해해될 수 있는 최종판을 선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이 세 작품은 향후 파묵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 기반이 될 것이고 기본 뿌리로서 작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비쳐보네요.  

 

전반적으로 <하얀 성> 은 파묵의 기존 두 작품과 비교해 볼때 스트럭쳐면에서나 내러티브면에서 색다른 요소가 가미된 작품입니다.-그래서 살짝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기도 하죠- 물론 두 작품의 기본적인 베이스처럼 내러티브 근저에는 동서양 패러다임이라는 거대한 담론과 개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지만 앞의 두 작품이 동양적인 관점에서 그 해결방안을 제시했다면 이번 작품은 양측의 시각을 다 담은 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성 있는 주제를 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분량은 가볍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심오하고 어렵게 다가 오네요. 그래서 그런지 한번만으로는 제대로된 맛을 느끼기게 저 개인적인 역량이 뒷받침 하지 못한다는 점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이런 점 물론 독자들 마다 편차는 있겠지만요- 그래도 이런 다루기 힘들고 해답을 구하기 만만치 않는 주제를 가지고 풀어가는 파묵의 필력에 절로 감탄사가 나올 뿐입니다.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이 방대한 시간과 공간속를 다루었다면 <고요한 집> 은 상당히 협소한 범위 속으로 담론을 끌어 들였고 <하얀 성> 앞의 두 작품을 바탕으로 동서양과 개인들의 정체성이 완결된 모습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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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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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누구나 한번쯤이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꿈꾸었던 로망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유년시절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자신의 미래와 미래상을 확인해 보고 싶은 상상에 몰두하게 되었지만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미래보다는 과거에 집착하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시 잘못된 부분들을 수정하고 싶은 충동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잘못된 부분들이 극히 개인적인 소사이건 거국적인 대사이건간에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이러한 것들로 인해 숨가쁜 환상을 꿈꾸게 합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의 <11/22/63> 이 바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고 그래서 눈에 확 들어 오네요. 

 

앨의 식품창고 -과거로의 통로(언제나 항상 1958년 9월 9일 11시 58분에 시작되는 과거)- 를 통해서 54전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설정과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암살사건중 하나인 1963년 존 에프 케네디의 암살사건을 막을 수 있다면 미국 그리고 전세계의 역사가 상당히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의 미래도 더 나은 장미빛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이번 여행은, 작중 앨이 말한 "한심한 떠돌이를 한 명 없애면 수백만 명을 살릴 수 있어" 라는 말처럼 과거를 수정할 수 있다면 특히 잘못된 부분을 돌리수 있다면 더 나은 현재가 펼쳐질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에 착안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상자체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하지만 어디 모든 일이 만만하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죠. 시간 여행자인 제이크의 선임자인 앨이 시간 여행을 했고 자신도 겪어 봤지만 과거는 지금 현재의 생각만큼이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작중에 그런 멘트가 있죠 "과거는 바뀌길 원치 않는다는 것, 과거는 고집이 세다는 것"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과거가 변화에 저항하는 강도는 어떤 행위에 따라 미래가 얼마나 달라지는가에 정비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안그렇겠습니까? 하물며 존 에프 케니디의 생명의 다시 살리는 것이고 누구나 인지하듯이 그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예측하기 힘드니까요. 바로 이러한 또 하나의 복선은 이번 작품의 스릴을 배가시키고 뭔가 엄청난 반전을 미리 포석하는 뜻으로 다가 옵니다. 스티브 킹은 "과거로의 여행" 을 위한 이번 작품을 위해서 많은 사전준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1958-1963년까지의 미국 현대사에 대한 방대한 자료(역사적 배경, 당시 유행이었던 패션과 말투 그리고 가치관 및 자동차를 비롯한 생활필수품등 겪어야 하는 모든것에 대한 자료들)와 역사성있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 및 신문기사등등(요게 약간의 신빙성을 더하는 효과를 독자들에게 느끼게해 주면서 향수와 더불어 마치 과거속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오는 역활을 합니다) 그야말로 과거로의 여행 그 자체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막상 현실이 힘들어 과거의 행복한 시절로 가고 싶다는 막연한 매러리즘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기도 합니다. 흑인전용 버스자석과 호텔 심지어 화장실까지 버젓이 존재했던 인종차별의 시대는 이런 반증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참 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전작인 <언더 더 돔> 과 같은 메인주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약간은 반갑기도 하구요.

 

이번 스티븐 킹의 신작 <11/22/63> -아직 1권만으로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지만요- 는 여하튼 전반적으로 스티븐 킹이 왜 세계적인 이야기꾼인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뭐 누구나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관한 작품을 쓸 수도 있고 출간도 되었지만 스트브 킹만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1958년인지 2011년인지 오락가락하게 할 만한 작품은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탄탄한 내러티브와 마치 과거에 살고 있다는 착각를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설정과 그 설정들을 뒷받침 하는 실감나는 배경등에서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것 같네요. 과거는 신선한고 애잔하고 인정이 넘치고 사람맛이 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과 정반대의 가치관이 존재했던 다소 암울한 곳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해서 마냥 향수 짙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을 경고하는 듯 하고요"만취행 급행열차를 타고 제정신의 도시를 떠난 상태" 라는 표현처럼 최종 결말이 무엇보다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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