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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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읽게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충격 그 자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탄탄한 내러티브와 주위를 송두리채 빨아들이는 흡인력 그리고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대반전을 통해서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다 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집요한 헌신이 오랫토록 뇌리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이제는 그의 작품을 대할 때 마다 은근한 기대감이 절로 생겨나고 이번에 어떻게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해줄까라는 생각에 책 제목만 보고도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번 그 상상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왜그리 즐거운지 모르겠더라구요. 그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대중 독자들과 철처하게 한몸을 이루면서도 작가가 설치해놓은 다양한 트릭들이 독자와의 호흡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작품 역시 이런면에서 읽는 내내 흥분하고 침울해지고 안타깝고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속으로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 여타 추리스릴러와는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표라고 할만 하네요. 

 

  이번 작품은 여타의 추리물과는 추구하는 스트럭쳐가 약간 상이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첫 도입부에서부터 만만치 않는 인물(고등학교 수학교사이자 유가와 교수와 동창생인 이시가미는 좀처럼 보기 드문 예리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근길에서 지나치는 거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면서 자신 나름대로의 논리를 세워서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이 사건 해결사인 유가와를 빰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호적수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거죠)을 등장시키므로서 이번 사건은 왠지 복잡하고 만만치 않게 흘러가겠다는 암시를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바로 이어지는 사건과 더불어 이를 뒷 정리해가는 이시가미의 일련의 행동과 조치들에서 왠지 각본에 짜여진 틀에 의해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독자들의 눈을 흐리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읽는 당시에는 그리고 내러티브가 진행되는 동안 철저하게 독자들을 속였다는 점이 뒷부분의 결말부분에서 밝혀지지만 사건의 KEY가 명백하게 들어나기 전까지 독자나 구사나기나 심지어 유가와(갈리레오)나 마치 하나가 되어 헛다리를 집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더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기도 합니다. 

 

  작가는 첫머리에 등장하는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와 전직 호스티스 출신인 도시락 가게 직원 야스코의 관계를 석연치 않게 설정해 놓은점과 3월 10일이라는 명백한 데이타를 제시해 놓고 내러티브를 진행시키므로써 누구나 거역할 수 없게끔 내러티브를 자신의 각본대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사실 '기사', '자전거' 등 몇가지 팁을 주지만 실상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를 눈치채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일 정도로 철저하게 심지어 등장 인물 모두가 따라가게끔 만들어 놓은 구조를 보여주죠. 유가와가 약간의 눈치를 챈 것 같지만 이 또한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는 초장에 밝혀졌기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범인이 과연 누구일까?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을까? 라는 툴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싱거울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거꾸로 사건의 실마리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번 작품의 묘미 또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 등장인물과 모든 독자들의 눈을 사건 해결과정으로 몰아 넣고 쇼킹한 결말을 유도해 허탈감 마저도 갖게 하는 충격적인 반전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단지 워낙 거대한 트릭을 연출하다보니 작가가 창조한 양대 해결사중 하나인 유가와 마나부의 활약상이 살짝 묻힌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약간 아쉬움으로 남는 점도 있지만 그 동안 가가 교이치로만 비견해서 냉정하다할 정도로 샤프한 이미지의 유가와와는 다른 꽤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개인적 생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스릴러라는 장르를 새롭게 연 작가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동안 사건과 이를 해결해나가는 틀에 짜인 구도 중심에서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해서 사건의 근원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고찰하고 이러한 사유들이 적절하게 내러티브와 조화를 이루면서 그 격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대할때면 흥미진진하고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일종의 희열감도 느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씁쓸한 느낌(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로부터 충분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그런 공통의 감정들이라고 해야할까요)이 오래토록 뇌리에 남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한것이죠. 이번 <용의자 X의 헌신> 역시 이러한 내면의 욕망과 작의적인 순수등을 심도 깊게 다루면서 고다츠의 따뜻한 열기 만큼 독자들을 흥분 시킵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명성에 걸맞는 인간의 심연의 욕망과 집념을 모티브로 연출된 짜임새 있는 작품으로 보여 집니다. 비록 사건과 범인의 정체를 도입부에 공개하고 연역법적인 추리기법을 동원하여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그리 보기드문 구도는 아니지만 마지막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대반전을 통해서 그동안의 추리가 물거품이 되도록 짜여진 전체적인 구도는 그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일말의 군더더기 하나 없이 숨가쁘게 진행되는 스토리의 전개와 두 천재간의 치밀한 논리 전쟁은 한층 더 작품의 맛을 맛깔나게 하면서 오래토록 독자들에게 회자될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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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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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드디어 러시아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작품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뭐 이렇게 말하니 본인의 무지함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꼴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이제야 말로만 들어 왔고 학창시절 방학숙제로 줄거리만 요약된 부록에서 보아왔던 이 양반 작품을 대하고 나니까 면피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톨스토이에 대해선 워낙 알려진 바도 많고 확고 부동한 매니아층도 많을 뿐더러 문학도나 왠만한 작가 그리고 문학 비평가들에게는 바이블 같은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솔직히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한 서평을 올리기가 두려울 정도이네요. 이거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는 뭇매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무지한 사람이 문학 작품도 못 알아 본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뭐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몇자 올려봅니다.(뭐 서평이란것이 언제까지나 책을 읽은 본인만의 느낌이라는 전제니까요)

 

우선 처음 책을 접하면서 제목 자체나 표지만 어필보게 되면 여성 취향적(물론 성을 호도하는 표현은 절대 아닙니다)인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밀려 왔던게 사실이고요. 뭐 초장에서 부터 시작되는 안나 집안의 이야기등에서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하면서 왠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 라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책을 접었다가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을 먼저 대해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워낙 고상한 양반이니 한번 주파해 보자는 심정으로 읽어나갔던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이는 아마도 그 동안 머리속에 부지불식간에 남아 있었던 '대문호' 라는 타이틀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 그리고 학창시절에 써머리로 대충 읽었던 통속적인 연애소설 정도라는 선입관으로 인해 이러한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1부 부터 시작되는 스티바와 안나의 가계를 중심으로한 내러티브에서 이러한 느낌은 크게 진전이 없었던 것은 역시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달리 대문호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레빈(사실 그래서 더 애착가는 인물이기도 하고 실상 숨겨진 주인공으로 생각되기도 하죠)이 등장하는 서사에서 부터 서서히 톨스토이의 진가가 발휘하는 것 같더라구요. 안나와 그녀를 둘러싼 러시아 귀족계급의 결혼과 연애 그리고 당시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들의 삶과 고뇌를 재치있게 융화시켜 나가면서 삼류 통속적인 연애소설의 내러티브로 흐를 수 있는 물길을 급속도로 잡아챘다는 점에서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합니다. 여기에 어렴풋하게나마 당시 제정 러시아의 시대상을 언급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발끝에서 머리까지 스캔하는 듯한 세세한 묘사는 절로 안나라는 미지의 여인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는점, 또한 여타 인물들의 심리적인 흐름까지도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성에 걸맞다는 느낌이 가지게 합니다. 사교모임이나 다툼등을 통해서 주고 받은 대화(안나와 브론시키가 다투는 장면은 자칫하면 여성대 남성이라는 양분법적인 논쟁으로 비하될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읽다가 왠지 안나를 확 한대 뭐 이런 감정이 들었으니까요 반대로 여성들 입장에선 블론스키의 면상에 오선지를 그리고 싶어지겠죠. 그 만큼 톨스토이의 묘사는 흡인력이 강하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입니다)는 충분히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신뢰감을 더해주고 있는 것 같아 내러티브의 징검다리 역활을 톡톡히 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경마 레이스와 레빈과 스티바의 새 사냥의 묘사는 상당히 주목받을 장면으로 보이더라구요. 특히 레빈의 충실한 사냥개 라스카의 섬세한 움직임 하나 하나를 의인화한 기법은 가히 압권이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것 입니다. 눈 앞에 광활한 러시아의 개활지가 펼쳐지고 여기 저기서 울려퍼지는 총성과 매콤한 화약냄새가 절로 풍겨지는 듯한 현장감을 더해 주는 것 같아 일품이었습니다.

음 다만 아쉬운점이라면 너무 귀족생활 일변도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 실상 당시 민중들의 삶에 대한 심도 깊은 사유가 엿보이지 않는 다는게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비견한 예를 들어 동시대를 살았던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과 비교한다면 너무 귀족적이지 않나라는 생각 지울수 없게 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느낌들이 볼세비키 혁명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왜 이부분을 톨스토이는 외면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배어 나오더라구요. 물론 중간 중간 농민들과 도시 빈민들의 핍팍한 삶을 언급하고 있지만 왠지 강 건너 불구경하기 같은 텃치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뭐랄까 산업혁명과 농노해방으로 촉발된 근대화가 러시아 농촌을 강타하는 과정에서 이를 수용하는 층과 거부하는 층의 묘사부분를 태생적 구조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등이 개인적으론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좀 더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면 이러한 귀족들 중심의 서사들이 왠지 걱정거리가 없어(일반 러시아 민중의 시각에서 본다면요) 걱정거리를 만든다는 느낌이 들면서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의 시각에서 봐서 이런 감정이 들었지만요. 그렇더라도 당시 시대상으로 볼때 역시 그들만의 리그이지 않을까라는 의구심 지울수 없게 하네요. 바로 이점이 옥에 티였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러한 아쉬운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원의 결말 부분에 이르러 레빈를 집중적으로 포카스하면서 진행되는 삶과 종교에 대한 서사 부분을 마무리로 돌리면서 그 동안 가볍게 느껴졌던 내러티브를 사정없이 가라앉게 하는 효과를 표출하게 됩니다. 물론 작중에 레빈을 중심으로 쏟아 내는 사유들이 상당히 무게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이 '아프로디테 판데모스'(지상의 관능적 사랑) vs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육체적 욕망이 없는 지고한 사랑) 이나 '연애 끝에 하는 결혼'과 '이성에 따른 결혼', '쾌락이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진리의 탐구에 있다' 라는 부유한 사유거리였다면 결말 부분의 레빈의 사유는 모든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톨스토이를 더욱 더 돋보이게 하는 서사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종교를 야만적 부류의 국민들을 위한 굴레라고 여기는 유쾌하면서 핏속에 흐르는 자유주의자 스티바에 대한 톨스토이이 시각이 전 개인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게만 비쳐지지만 한편으로 보면 가장 남성들의 심정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 이가 바로 스티바이지 않나라는 얄팍한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고전중에 고전을(특히 톨스토이 작품을 완독했다는 점에서 이제 어디가서 무식하다는 소린 듣지 않게죠) 독파했다는 나름 안도감을 갖게 되고요, 자칫 안나를 중심으로한 지리멸멸한 연애소설로 흐를수 있는 내러티브를 마치 작정이라도 한듯 종교와 인간의 삶의 근원적인 문제로 유인하면서 톨스토이의 진가를 발휘한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통속적인 연애소설일변도로 흐를수 있는 내러티브에 인간적인 삶(물론 귀족적인 시각이 강하게 묘사되어 있지만요)의 고뇌와 종교적 선택의 갈등 등의 사유를 깔아 놓으므로서 그 품격을 한차원 업그레이드 했다는 점이 톨스토이가 아니면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가지게 합니다. 먼저 선택한 작품이 다소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면이 강하다 보니 톨스토이 작품세계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구요. 향후 다른 작품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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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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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최혁곤이라는 작가나 그의 작품에 대해선 이번 <B파일> 을 접하기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접했을때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대충 어림짐작으로 요즘 출판계의 대세인 엔터테이먼트류의 그렇고 그런 작품으로 생각했더랬습니다. 왜 그런거 있잖아요 잘나가는 제약회사의 특효약을 카피하여 무임승차 하려는 시도처럼 대세에 편승하여 살짝 플롯과 내러티브를 변형하여 흥미 본위 위주로 서술해 나가면서 희석해 버리는 경우들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작품들 많이들 있는 것도 현실이고요. 워낙 요즘 독서 흐름 자체가 오랜 생각보다는 읽는 당시의 흥미를 우선시 하다 보니 우후죽순격으로 이 장르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에 큰 기대감 없이 출발했습니다.

 

대체로 흥미본위에 집중하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남는게 없고 사유에 올인하다 보면 시쳇말로 재미없는 소설로 독자들에게 외면당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 아닌 딜레마에 빠져 있는게 요즘 풍토이기도 합니다. 이러면에서 이번 작품은 크게 숨막히는 추격전과 도망전이라는 흥미와 조선족 문제 개인신상의 보호문제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절묘하게 섞어 놓아다는 점에서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작품과 오버랩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외국작가 특히 일본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파워게임에서 밀렸던 국내 작품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길라잡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고요. 우리도 이렇게 흥미로운 소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자체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판 블록버스터로서 손색 없을 만큼 시각적인 면이나 내러티브의 짜임새, 등장인물들의 유니크한 특징등이 먹음직스럽게 잘 버무러져 있는 작품이라 할까요. 한마디로 진흙속에서 진주를 건진 그런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약간 러프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만하면 다음 작품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작품은 흥미 이면에 조선족(새터민등) 문제를 자기 정체성으로 볼 것이냐 대한민국 사회의 비뚤어진 폐쇄성 문제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 해외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시각과 대접은 그대로 옛날 당했던 방식을 재현하다 못해 더해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문제이지 않나라는 개념들과 조지 오웰의 <1984> 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연상케 하는 우주그룹의 빅 데이터라는 또 하나의 독재를 보여구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들의 신상명세가 천하에 공개되고 일부 특정권력에 독점됨으로써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속의 하나의 유기체에 불가한 파일(데이타)로만 인지되는 세상에 대한 경고와 이를 파헤치는 힘 없는 개인들의 노력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디스토피아적인 뉘양스도 강하게 비쳐지고 있습니다. 

 

또한 특이한 점은 마지막 에필로그를 접하면서 다소 황당한 느낌을 받게 되죠. 그동안 숨막히는 내러티브를 따라 온 독자들은 더욱 더 갑자기 등장하는 시츄에이션에 당황하지만 요게 이번 작품의 별미인 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론 뒷맛이 무거웠는데 북측 VIP의 등장으로 인해 산뜻하게 한번 웃을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왜 프롤로그를 별 생각없이 뛰어넘어(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전체적인 내러티브와 아무런 연관 고리 없는 별개의 내용으로 비쳐지지 때문이겠죠) 처음과 끝을 이번 같은 구도로 편성했다는 것이 제 개인적으로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와 비견해도 크게 손색 없을 정도로 숨막히는 내러티브의 향연이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이번에 이인화 작가는 <지옥 설계도> 라는 작품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고 그 반응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번 계기로 국내 작품들도 충분히 경쟁력있고 재미있다는 사실 그리고 독자들이 갈망하는 작품들이 다수 선을 보였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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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소설 전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
이상 지음, 권영민 엮음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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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제가 보기엔 그렇다는 거죠. 뭐 달리 생각하면 이상이 만일 만수무강했다면 과연 후세에 길이 빛날 불멸의 작품들을 창작해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절한 천재 문학가 이상(본명 김해경)에 대해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교과서나 참고서등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짧은 생애와는 이반되게 그 후폭풍이 엄청난 작가이지만 막상 그의 작품이나 작품세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독자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민음사에서 선보인 <이상 소설 전집> 은 이상 살아 생전에 집필한 시를 제외한 소설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클것으로 보이고요, 이를 계기로 이상과 그의 작품 그리고 작품세계를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오감도> 나 <건축무한육면각체> 등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천제성을 이미 확인했습니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와 포스를 겸비한 작가이자 인간이 짜낼 수 있는 고뇌의 결정판을 시원하게 보여주는 작가라는 인식이 저변에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 작품들이 한층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품들 전반에 대해선 권영민 교수의 작품해설을 참조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 여기선 언급을 피하도록 하고(사실 그럴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그냥 작품들을 읽은 소소한 느낌을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맨 처음 책 표지를 접하면서 상당히 범상치 않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그래서 책속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에 대한 기대가 증폭되고요. 특히 전 개인적으로 작품들 중에 '날개' 라는 들어보았던 작품이 눈에 띄여서(물론 내용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먼저 읽었습니다. 우선 처음으로 받은 느낌은 "막막하다, 창창 대해에 표류되어 있는 느낌", "이거 완독할 수 있을까" 짧디 짧은 단편들과 장편이라고 해도 그다지 부담없는 분량들이라 아주 씩씩하게 손에 쥐었고 단숨에 끝날거란 생각을 안한것은 아니지만 아~~ 정말이지 정말이지 신체발부하고 이렇게 어려운 작품은 처음 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몇번을 중도하차하고 싶은 유혹을 숱하게 느끼면서 겨우 겨우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완독했다고 해서 작품과 작품의 세계를 다 이해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있는대로 말하자면 오히려 읽고 나니까 더 알쏭달쏭하다는 기분이 드네요. 짧막한 단편은 단편대로 그리고 '십이월 십이일' 는 또 그나름대로의 고민거리를 던저주고 있네요. 처음엔 국어사전, 옥편을 뒤지다가 이것도 이해가 가질 않아서 아들녀석의 게슴츠레한 눈총을 피해가면서(왜 자신은 컴퓨터 못쓰게 하면서 아버지란 작자는 버젓이 대놓고 보는가라는 불만스러운 눈빛 마치 십이월 십이일에 등장하는 업이가 X,M,T를 대하는 눈빛을 연상시키듯이) 인터넷 포탈싸이트의 지식백과 사전을 검색하다가 도저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전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을 대하면서 제 무지의 소치를 느끼게 하면서 좌절감을 사정없이 들이대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워낙 난해한 난수표를 대하는 듯한 작가의 사유를 제대로 추적하기 만만치 않습니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억눌린 심정을 활자에 숨겨놓은 듯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구요 그래서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가 그냥 활자 그 자체로 받아들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네요. 물론 활자 그 자체를 다 이해한다는 것도 결코 아니지만요. 

 

이상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개인들의 고난사를 다루고 있는듯 하지만 엄밀히 판단하면 짓눌린 우리 한 민족의 애환을 대변하고 있는 그런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죠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보입니다. 그 만큼 천재작가의 고뇌는 상상보다 더욱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상의 작품은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 지울수 없게 하네요. 전체적으로 암울했던(시대적 배경과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등) 시기를 펜대에 담아낸 가슴 아련한 작품들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그래서 그런지 하루사이에 벌어지는 내러티브가 다수 포진하고 있죠. 아마도 당시 시대를 살아가는것 자체가 작가에겐 하루살이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크게 반영되어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도 해보게 됩니다)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녹여놓고 있어 더 애절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네요.  그리고 수록 단편 '동해' 에 "우리 의사는 죽으려 드는 사람을 부득부득 살려 가면서도 살기 어려운 세상을 부득부득 살아가니 거 익살맞지 않소" 라는 말 한마디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 한번 되새김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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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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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독일작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는 오늘날 그러니까 좀더 세밀하게 표현해서 저널리즘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각종 인터넷포탈사이트와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SNS, 그리고 아직도 옛 향수에 취해있는 오프라인의 매체들등 우리는 그야말로 저널속에서 일과를 시작해서 하루를 마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죠) 작가의 이력에서 대충 눈치챌 독자들도 계시겠지만 작가는 상당히 진보적 성향이 강한 작가입니다. 2차 세계대전 징집에서부터 장 사르트르 그리고 김지하 시인의 구속에 반대하는등 반체제적인(어디까지나 이런 표현도 가진자의 시각입니다만) 성향이 강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문학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사회고발적인 서사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잘못되고 왜곡된 저널리즘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극명한 서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뭐 이런말 해도 될련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상당히 익숙해진 문제이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이번 작품을 대하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갖게 하는 것 역시 사실이네요. 일개 개인을 어떻게 테러리스트의 공모자로 몰아가는지에 대한 저널리즘의 자기해석과 이런 자료를 제공한 원천(작가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과 내가 아니면 상관 없다는 극히 위험한 개인주의가 결합하여 한 순수한 개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작품의 스트럭쳐 역시 르포(사건 일지, 조서 내지는 논평기사를 보는 듯합니다) 형식을 취하고 있어 독자들의 눈을 한시도 옆으로 세지 않게 잡아둔다는 점입니다.

 

  전반적으로 픽션이라고(작가는 아예 소설이기보다 이야기 내지는 팜플릿쪽에 무게중심을 두지만요 하여튼 양쪽에 다리 하나를 살짝 걸치고 있어 딱히 정의 내리기는 힘들 듯 합니다. 보는 이에 따라 특히 독일 독자들 같으면 더 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기엔 그 표현들과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는 톤이 경찰 이나 검찰의 조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도 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뉘양스는 묘한 느낌을 자아내게 합니다. 특히 사건의 진행과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마치 범죄 소설을 보는듯이 상세하게 서술하면서도 다소 딱딱한 느낌의 무미건조한(작가의 의도된 전달방식이지 않을까 싶네요)나레이션을 대하는 듯 하게 진행되고 있어 요거 잠시라도 한 눈 팔다가는 리피트해야 하는 불상사도 발생할 것 같더라구요.

 

 작품이 풍기는 뉘양스가 상당히 시사성이 강하면서 교훈적인 느낌이 강하게 전달합니다. 이번 작품은 옐로 저널리즘의 생성과정과 그 후 폭풍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돼먹은 언론이라는 태풍 앞에 무방비 상태로 하나씩 확대 재생산되면서 벗겨지는 한 인간의 인격 그리고 이를 마치 사냥하듯이 요소요소 코너코너로 몰아가는 언론과 개인들의 이중성을 보면서 참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전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을 대하면서 우리의 자화상을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온갖 난무하는 다양한 채널의 언론과 그 언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개인들 그리고 그로 인해 피해받는 또 다른 개인들말이죠. 어떤이들은 이게 바로 자본주의시스템의 정점이라고 하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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