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달린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김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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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한 여름밤의 더위를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고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손에 꼽는 것이 바로 '드라큘라 백작'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드라큘라는 그이 본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우리에게 친근함마저 느낄 정도로 한켠에 우둑커니 자리잡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동안 수 많은 판본(각종 타블리판과 요약본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읽혔던 다양한 형태의 드라큘라)과 영화(당시 좀 잘나간다고 여겨졌던 배우들이 드라큘라로 분하여 출연했더랬죠)를 통해서 전 세계인들의 뇌리 깊숙이 각인되어 있죠. 아마도 인종과 성별 그리고 종교등의 잣대를 떠나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특히 섹시한 금발 미인의 목덜미를 깨물때의 장면은 가히 압권으로 기억에 남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 그럼 그 유명한 드라큘라에서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요? 음 우선 고향은 루마니아 혹은 헝가리 계곡 깊은곳의 城, 그리고 검은망토에 왠지 무도회장을 방불케 하는 나비넥타이 포스 여기에 포마드를 잔뜩발라 깔금하게 올백한 헤어스타일를 갖춘 젠틀한 복장의 신사 내지는 귀족 분위기, 항상 해가 지고 나서야 그 일상의 생활을 시작하는 야행성의 질주, 언제나 섹시하고 아리따운 금발의 미녀가 아슬아슬한 복장으로 파트너로 등장한다는 점. 참 한가지더 있네요. 십자가와 나무말뚝... 이렇게 드라큘라하면 가지고 있는 想은 극히 한정된 비쥬얼한 상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들이 드라큘라 본연의 모습이 아닌 흥행성 높은 자극적인 일부분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불러 오는 진실의 오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얼만전 개봉했던 '레 미제라블' 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원작을 접하면서 깨닫게 되었지만요) 사실 이번 책을 접하기전까지만 해도 드라큘라의 원작가가 브람 스토커라는 사실도 몰랐을 정도로 드라큘라는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은면서도 실상 모르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네요. 그만큼 우리는 드라큘라라는 허상에 익숙해 졌다는 말이겠죠.

 

 

   이번에 선보이는 <주석달린 드라큘라>바로 이러한 허상과 환상 그리고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된(?) 드라큘라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드라큘라' 이전과 이후의 흡혈귀 문학과 그 영향력, 집필 당시의 시대상과 '드라큘라' 의 탄생 과정, 브람 스토커의 일생과 '드라큘라' 가 만들어낸 다양한 현대 문화 산업, 작품 속 등장인물과 실제 장소, 이동 경로와 지도, 실제 벌어졌던 사건 등 그야말로‘드라큘라’에 대한 역사적 논쟁과 연구들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논문과도 같은 느낌을 자아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왠지 논픽션이라는 뉘양스를 가지게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방대한 주석과 참 요긴한 부록과 뒷담화들을 통해서 제대로된 드라큘라를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올 것 같은 예감마저 들게 하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왠만한 책들은 빨리 읽는다고 자부하고 있는 저였지만도 이번 작품은 정말 오래 오래 걸려서 읽었습니다. 우선 본문보다 더 방대한 양의 주석들이 탑재되어 있어 정말 드라큘라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뭐 한 10일정도 예상하고 이 책을 잡은 독자들이라면 왠만하면 한달정도 진득하게 일독하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체득하게 된다는 거죠. 무엇보다 <주석달린 셜록홈즈> 로 유명한 레슬리 S.클링거가 주석을 달아서 그런지 정말 권위있고 신빙성이 높다는 것이 이번 작품을 처다보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요즘들어서 <레 미제라블>,<안나 카레니나>,<위대한 개츠비> 등 고전들이 새롭게 영상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만 보고 원작을 보지 않는다면 진정한 쾌감은 반감되리라 여겨집니다. 시간의 한계상 영화에서 표현할 수 있는 키는 원작의 특징적인 몇몇씬 밖에 없기에 필히 원작을 같이 보길 권하고 싶네요. <주석달린 드라큘라>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기존에 남아있던 잔상들과 한번 비교해 보면 그 가치가 배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보다 더 리얼하고 재미가 있더라구요.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알고 있었던 흡혈귀 드라큘라는 잊어버리는게 좋을 듯 합니다. 이번 <주석달린 드라큘라> 는 드라큘라의 진면모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는 작품으로 '드라큘라의 모든 것' 을 알 수 있는 적지않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이네요. "드라큘라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 고 평한 스티븐 킹의 말을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더라구요. 특히나 후반부에 수록된 부록편과 드라큘라의 뒷담화들이 이번 작품을 한층 더 빛나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 독자들에겐 상당히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어떻게 드라큘라가 세월을 거치면서 세인들에게 정형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논거들은 메니아를 떠나서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참 여러모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책장에 두고 두고 찾아볼수 있는 백과사전같은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여겨질 정도로 자꾸 손이 가는 작품이네요.

 

 

   막상 책을 접하는 순간 아~! 라는 감탄사가 절로 입밖으로 세어나올 정도로 분량이 만만치 않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검증자료와 꼼꼼한 주석(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올정도이며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랴큘라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나레이션을 볼 수 있네요. 그것도 구석구석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은 그 동안 독자들 뇌리속에 각인되어 있던 관념의 틀을 확 바꾸어 버릴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절로 손뼉을 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거 한방에 독파하겠다는 생각만 접으면 두고 두고 읽을거리를 제공하고는 있는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으로 보여집니다(저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부록과 뒷담화를 다른 논거들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구요). 이번 책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드라큘라를 보게 되는 시각이 180도 바뀌면서 드라큘라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뭐랄까요 단순하게 표지를 장식했던 드라큘라에서 생동감 넘치게 살아있는 존재를 확인했다는 느낌이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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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밀란 쿤데라 전집 8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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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름!~ 빠름!~ 빠름!~'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모 통신회사의 광고 카피를 기억하실 겁니다. 아마도 현대 사회를 이 만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은 없으리라 여겨질 정도로 우리는(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미덕이라고 해야겠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의 모든 현상들이 리얼타임으로 빠르게 변화고 있고 그 '빠름' 에 조금이라도 쫒아가지 못하면 경쟁이라는 막차를 놓칠 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에게 '빠름' 은 일상적인 하나의 패턴으로 형성되었고 모든 가치관들과 성과물들의 잣대 같은 역활을 하게 되어버렸죠. 이런 시대에 '느림' 이라는 다소 진부한 단어, 시대발상에 현격히 뒤 떨어지는 사유를 불르짓는 한 사내가 있으니 바로 그가 밀란 쿤데라입니다. 모 다른 이가 이런 발칙한 사유를 들고 일어선다면 한마디 하겠는데 밀란 쿤데라라고 하니 어디 한번 그 '느림' 이 어떤것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 는 분량에 비해서 다소 복잡한 스트럭쳐를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맨 처음 접하게 되면 다소 아리송한 내러티브의 진행으로 페이지를 앞으로 그리고 뒤로 넘기면서 우왕좌왕하게 하죠. 화자와 작중 등장인물들의 매칭이 쉽게 이루어 지지 않은 듯한 뉘양스를 주면서 왠지 짧은 분량이라 다소 웃습게 여기고 도전한 독자들을 마냥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구조자체가 액자소설의 구도로 18세기 비방 드농의 '내일은 없다' 라는 정체불명의 소설에 등장하는 기사와 T부인의 사랑이야기 한번편과 20세기 망명한 체코학자와 춤꾼(정치색과 여론의 후광을 쫒는 무리들) 이야기라는 두개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여기에 작품 후반부에 가서 알게 되지만 20세기의 스토리를 작중 화자인 '나' 가 20세기 스토리을 써가는 형식을 가지고 있어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한층 더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품의 독특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니크한 점은 내러티브가 표방하고 있는 사유인 '느림' 을 외치는 밀란 쿤데라의 서사가 자칫 독자들에게 충분히 어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는 것죠.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동안 발표된 밀란 쿤데라의 작품중에서 가장 독특한 구조와 사유를 지닌 작품을 손에 꼽을라면 단연코 이번 작품에 손을 들고 싶어질 정도로 <느림>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체코를 떠나 자유세계의 대변인격인 파리에 정착하면서 양 세계를 다 접해본 작가의 사유가 함축되어 녹아있는 작품이라는 것이죠. 그동안 체코에서 지성인의 갈등과 갈망을 모호성과 경계선이라는 사유로 분출했다면 이번 작품은 양 세계의 극단적인 이질감에서 오는 '속도감' 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모호성과 경계의 사유는 여전히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작품입니다.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속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는 것" 이번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이자 파토스적인 경구처럼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이번 작품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아마도 이 문구로 깔끔하게 정리될 정도로 작가 자신이 표방하는 사유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 사유는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대외적인 공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 자신의 고뇌가 묻어 있는데요. 망명한 체코 곤충학자라는 액자소설속의 인물을 투영해서 사회주의와는 또 다른 비애를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크나 뱅상, 퐁트벵등의 인물들(춤꾼으로 묘사하죠)을 통해서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울수 없는 현대 지성인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와 이를 한꺼 조롱하는 밀란 쿤데라의 따가운 시선속에 또 다른 느림의 미학을 엿보게 하네요.

 

   '똥구멍', '음문' ,'자지' 등 원초적인 단어와 "너 하고 싶니?,나도 하고 싶어" 라는 도발적인 문구들을 접하면서 밀란 쿤데라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다소 황망한 마음을 감출수 없을 것 같이 이번 작품은 성애묘사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여러작품(아니죠 모든 작품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성애의 묘사를 기가막히기 서사하고 있죠. 이 기막힘이란 대놓고 상영되는 포로노 같은 서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내면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서사라는 점에서 낮을 붉히게 하지만 속이 시원한 느낌을 대리해주는 그런 기막힘이죠.)을 통해서 보여준 성애의 묘사와는 약간 차별화된 서사들(정말 대놓고 표현하고 있죠. 그 동안 뭔가에 억눌려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이 사정없이 쏟아붓고 있으며, 밀란 쿤레라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작심한듯이 서사하고 있다는 점이 기존의 작품들에서 볼수없는 대범함이라고 할까요)을 맛보게 됩니다. 뭐랄까 직설적인 성기등 은밀한 부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데도 왠지 격이 떨어지지 않는 서사들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뜨거운 욕망을 마그마가 분출하듯이 한방에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야금 야금(느림에 해당되겠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으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서사의 결정판을 보여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리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직설적인 서사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빠름의 종교에 빠져들 수 있는 점을 경계하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크게 세개의 액자가 전혀 연관성 없는 단독의 그림으로도 보여지고 있지만 城 (이 부분이 중요한데요. 성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왠지 '느림'을 대변하면서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시대를 넘어선 두가지의 스토리가 서로 용화되면서 빠름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나게 하는데 큰 몫을 한다는 것입니다)이라는 커다란 배경 화면에 유효적절하게 녹아들어 하나의 멋진 그림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녀간의 사랑이야기, 정치성이 짙은 정치이야기라는 미시적요인과 거시적요인이 혼합되어 얼핏 간단명료하게 종결될 수 있는 것을 몇바퀴 꼬아버려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결말부분의 다소 어색한 설정이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원심력이라는 물리학 법칙(일종의 빠름을 상징할 수 도 있겠네요) 에 반하여 서로 느긋하게 다가갈 수 있는 '느림' 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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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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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구름이 걸쳐져 있고 멀리 원경엔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이 보이는 책 표지 자체가 <삶은 다른 곳에> 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문 안쪽(야로밀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할려고하는 엄마의 모성)과 문 밖(야로밀이 남성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추구하고 싶은 곳) 양쪽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구름(엄마의 사랑과 자신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야로밀 자신) 그리고 문 안쪽에 보이는 밝은 세상, 왠지 문안쪽은 어두침침 해야할 것 같지만 화사한 색깔로 도배된 사방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안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상당히 망설여지게 하는듯 한 표지. 그 동안 출간된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중에 이 표지만큼 작품을 대변하는 컷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아무리봐도 절묘하게 작품의 성격을 그대로 옮겨놓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새삼 문학작품에서 표지의 역활이 결정적인 팁을 제공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가져보게 합니다.

 

   <삶은 다른 곳에> 는 詩人이 되고픈 아니 마치 운명처럼 시인으로 길러져야 했던 야로밀과 아들만을 위해서 모든 인생을 다 받쳐 사랑했던 엄마의 삶을 다룬 작품입니다.(물론 스토리자체가 가지고 있는 표면적인 내러티브이고 사실은 작가자신과 사회주의 체코 시스템을 우화한 표현이라 보여지는데요)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대하면서 늘 느끼는 생각중에 하나가 경계와 모호성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박탈 당한다고 할까요? 이 양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이러한 모호성과 경계선을 아쓸아쓸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그 개념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 자체를 거부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번 작품 역시 자신의 주 전공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사실 이번 작품의 스토리도 별반 특이한 점이 없는 그저 그런 내용들입니다. 막말로 '이게 모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뻔한 스토리라는 거죠. 한 여성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모성애와 이런 모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주인공 많이 접해본 삼류판 소설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입니다. 근데 말이죠 이러한 뻔한 내러티브가 왜 밀란 쿤데라와 조우하게 되면 제목처럼 '삶은 다른 곳에' 라는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사유로 무장하게 되면서 독자들의 뇌리에 확 박혀버릴까요? 이 점에 대해선 그 동안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을 회고해 보면 정말 변변한 스토리나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 다시한번 놀라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 양반의 작품에 끌리는 것은 다름 아닌 서두에서도 말한 모호성과 경계선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류의 작품이나 작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밀란 쿤데라만큼 독자들의 뇌리속에 깊이 각인된 경우는 찾기 드물죠. 그리고 독자들이 들어내 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사유들을 과감하게 서사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으로 탈바꿈 시키므로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기 밀란 쿤데라의 사유에는 정답이나 보편타당한 결과치를 절대 이끌어 내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죠. 아마도 이러한 서사가 독자들의 가슴을 휘어잡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같은 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가이기도 하죠. 간간히 생뚱맞은 서사들을 내러티브 중간에 슬그머니 밀어 넣기도 하는 구도를 왕왕 사용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 또한 자신이 표방하고 있는 모호성과 경계에 대한 하나의 에피타이저 같은 보너스 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절정기때에 자신의 문학과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경험을 겪은 밀란 쿤데라에게 모호성과 경계는 어쩌면 당연한 사유의 한 갈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농밀하고 은밀하면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성애의 묘사나 심리묘사가 일품이라는 것입니다. 통속적인 연애소설에 대놓고 파격적으로 묘사되는 성애의 표현기법보다 밀란 쿤데라의 성애 묘사는 은근한 애로시티즘을 자극하면서 낯뜨겁게 한다는 것죠. 이러한 낮뜨거움은 아마도 자신속에 숨겨져있던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들어내고 싶지 않았던 죄의식 비슷한 감정들이 이 양반의 작품을 통해서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부끄러움 혹은 민망함의 발현이랄까요. 그러면서도 막힌 부분이 확 뚫려버려 속이 다 시원해지는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공감이 가는 서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아가씨가 혼자 옷을 벗고 싶어 하는 것에 심한게 마음이 언짢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랑이 담긴 옷 벗는 행위와 그냥 보통 옷 벗는 행위 사이의 차이는 바로 여자의 옷이 연인에 의해 벗겨진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숨기고 싶었던 혼자만의 느낌을 사정없이 공론화 시키는 멘트가 아니겠습니까?

 

   전체적으로 잿빛 가득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으로 다소 분위기 다운되는 작품입니다. 시인을 모티프로 사회주의 체코의 시대상을 대변하고 있으며 밀란 쿤데라 자신의 정체성과 고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데올로기와 문학사이에서 절망을 삶이라는 확대된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진정한 사랑과 자유 그리고 온전한 삶에 대한 갈망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현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일종의 체념이라는 부분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구요. 시인들과의 토론회 장면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버스정류장의 이전과 설치에 대한 토론아닌 토론은 바로 당시 체코사회를 바라보는 밀란 쿤데라의 체념성 멘트가 아닌가라는 애잔한 마음도 드네요. 자유와 더불어 다른 삶을 추구하는 야로밀(밀란 쿤데라의 투영이겠죠)와 이런 야로밀을 화가, 시인을 만들기 위해 정열을 쏟아붓는 엄마(사회주의 체코를 상징할 것입니다) 사이의 모호성과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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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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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레드 다이아몬드, 올리버 색스 만큼이나 특이한 이름의 소유자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의 <침대(BED)> 는 작품 제목도 상당히 특히 하게 다가오네요. 여기에 책의 표지 역시 특이함에 한 몫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이하고 유니크한 것은 다름 아닌 작품의 내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때 표지의 잠옷같은 분위기로 인해 로맨스풍의 소설이지 않을까라는 맥빠진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데 작품속으로 들어가면서 '정말', '상당히', '매우', '엄청난' 이라는 단어가 머리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유니크한 작품을 대면하게 된다는 점에서 <침대> 는 독특한 성정를 지닌 맬컴과 항상 형의 그늘에 가려 자존감을 상실해 나가는 '나'와 이 둘을 둘러싼 가족간의 일화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가족의 이야기를 약간의 양념을 가해 살짝 비틀어 끊임없이 서사해 나갔다면 이번 작품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번 작품이 서두에서 유니크하다고 한 것은 다름아닌 '뚱보'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가끔 해외토픽에서나 볼 수 있었던 640kg나 나가는 어마어마한 '뚱보' 맬컴과 형을 저주하면서도 사랑할수 밖에 없는 '나' 와 가족들이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뭐 이런 소재라고 해서 독특하다면 왠지 앙코가 빠진것 같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름도 독특한 작가를 주목하는 이유가 지금부터의 점입니다. <침대> 는 그냥 엄청난 '뚱보' 를 단순하게 그리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죠. 화이트하우스는 이번 작품에 특이한 인물을 등장시킴과 동시에 '뚱보' 로 변해가는 과정과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에겐 상상도 못한 뚱보들의 삶을 아주 적나라하게 마치 이들과 살아본것이라도 한 것 같은 세세한 부분같이 생중계를 하듯 독자들에게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흘려보낸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작가의 서사들이 보통인들이 보기에 왠지 추하다, 역겹다, 불쌍하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주목할 볼거리중에 하나입니다. 작가 특유의 블랙유머와 섬세한 터치가 한데 어우러져서 내용 전반자체는 분명 침울해야만 하는데 그리고 침울할 수 밖에 없는 우울감이 뭍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는 내내 키득키득거리게 할 만큼 서사가 일품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감정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 저편에 왠지 죄의식을 가지게 하는 역활도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작품을 대하면서 많은 독자들이(물론 저도 그랬지만요) 인터넷 포탈싸이트를 통해서 '뚱뚱한 사람' 를 검색해봤으리라 여겨집니다. 수치로만 600여kg이 감이 오질 않았지만 인텃넷 화면에 떠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구요.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 일률적으로 고착화 되어있지만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의 눈에는 색다르게 다가온것 같네요. <베드> 는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뚱보' 맬컴과 그의 동생인 '나' 그리고 이들 형제에게 아낌없는(보는 눈에 따라서는 부적절한 사랑) 사랑을 선사하는 부모 이렇게 이상한 가족 이야기인것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내러티브의 내면을 보게 되면 '사랑' 과 '삶' 에 대한 아주 예리한 서사를 보게 된다는 점이 특이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왠지 작품속으로 들어가 다들 말리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이 일으나는 작품이죠.

 

 

   "어른이 되는 것은 특별함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20여년을 침대에서 내러오지 않는 맬컴과 항상 형의 그림자에 묻혀 자존감마저 상실해 나가는 '나' 그리고 이런 아들들을 맹목적으로 보살피는 부모. 등장주요인물 3인방의 액면만 대충 훑어 봐도 범접하기 힘든 캐릭터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색깔이 강한(동생이자 화자인 '나' 역시 물에 물탄듯한 자기색깔이 없는 존재감으로 비쳐지는 것 같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는 개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등장인물들로 인해 독자들은 사랑과 상실 그리고 가족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체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슬픈 캐릭터였다면 아마도 그저 그런 블랙코미디로 전락할 수 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자기의 역활을 묵묵히 수행해나가는 캐릭터를 들여다 보면서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느끼게 하죠. 마치 독자들 자신 스스로가 그 역활을 수행하는듯한 감정이입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특색중에 하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가져보게 됩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과 같이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삶은 다른 곳에> 에 등장하는 야로밀의 엄마가 자꾸 오버랩되더라구요. 맬컴의 엄마와 야로밀의 엄마 둘다 지구지순한 모성애를 아들에게 쏟아붓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왠지 맬컴의 엄마가 자연스럽고 무위적이다는 느낌에서 맬컴의 비만에 면죄부를 주고 싶어 지네요.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삶과 사랑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있는 색다른 사랑과 상실, 가족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 다른 방식의 길을 걷고 그 길에서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 가족의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가 정해진 룰과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생의 의미와 행복 보다 더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조금은 기상천외한 발상이 가미되면서 '다름' 이라는 의미를 낯설지 않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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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기다림 민음사 모던 클래식 63
나딤 아슬람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슬람'과 '무슬림'은 우리에겐 아직도 낯선 영역에 자리잡고 있는 근접하기 힘든 과제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살만 루시디나 오르한 파묵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그네들의 사유와 가치관에 대해선 충분한 이해보다는 확대 포장된 선입관이 뇌리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9.11 사태로 한 쪽의 주장만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구조적 모순에서 더욱 더 이슬람은 테러리즘과 더불어 '악의 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다 보니 이슬람권 문학에 대한 시각 역시 이러한 선입관들에게 자유로울수 없는 것 역시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향들로 인해 이슬람권 출신 작가들의 작품은 왠지 과격할 것이다라는 느낌도 들게 마련이고 이러한 선입관들이 같은 문학작품을 대하는 느낌 자체를 180도 다르게 보게 하기도 하죠. 그 동안 우리는 오르한 파묵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슬람문학에 대한 감을 잡긴 했지만 사실 터키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이슬람권을 매조진다는 느낌은 가질수 없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기도 했죠.

 

   우선 이번 작품을 평하기 전에 모던 클래식에서 먼저 선보였던 두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두 작품을 먼저 언급하고 이번 작품을 평하는 것이 오히려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와 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를 통해서 한 발자국 나아간 이슬람 정통문학의 맛을 봤습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해서 이슬람권 전반에 흐르는 가치관과 사유 그리고 서구세력에 대한 의식등을 다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깊이 있게 인식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그 동안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제대로 정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번 나딤 아슬람의 <헛된 기다림> 을 읽기 전에 먼저 이 두 작품을 접해보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헛된 기다림> 은 앞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된 두 작품과 비교해서 읽게 되면 한 차원 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우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는 파키스탄 출신에 작품 배경도 파키스탄이고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는 이란출신 작가에 이란을 작품배경으로 되어 있는 이슬람의 본 고향 작품들입니다. 이번 <헛된 기다림> 역시 아프카니스탄출신의 작가에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파키스탄이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된 이슬람 문학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는 정치적인 색체가 상당히 강하게 칠해져 있고 상당히 자기주장적인 작품(물론 이 표현은 그리스도교 서구세력의 시각에선 그리 보일 것입니다만)이었다면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는 남녀간의 사랑을 주된 내용으로 이슬람문화와 사회전반을 자조하는 사적인 영역의 작품으로 볼 수 있어 두 작품이 대조를 이루면서 독자들에게 다양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이번 나딤 아슬람의 <헛된 기다림> 는 앞의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동시에 아우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가 다소 되바라지게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는 유화적으로 돌려서 표현하고 있다면 <헛되 기다림> 이 두 가지의 기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랄까요 양떼를 몰들이 숨가쁘게 몰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확 놓아버리는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해버리는 방식이라고 할까요.(이 점은 등장인물들의 언행를 보게 되면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 영국과 미국,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의 국적(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도를 내포하고 있죠)을 가진 남녀노소(개인적인 영역에서 또 다른 강자와 약자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시사합니다)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흔을 확인하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가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현재와 과거(회상)를 오가면서 각자가 현재 이자리에 어떻게 서 있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추리적 기법과 사건 나열적인 서술방법을 구도로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변하지 않는 공간속에서 시간의 갭만 느끼게 하는 설정이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전제는 상호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치유한다고 하지만 막상 등장인물들(마커스를 제외하고는) 은 자신에 주어진 역활만을 충실하게 수행 한다는점(정말 말리고 싶을 정도로 충실하게 수행하죠)과 각자의 스토리가 정점을 향해 치닫가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듯이 슬그머니 덮어 버리는 구도가 이번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방식은 나름의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입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쯤에서 그만하지 혹은 넘지 않아야 할 것만 같은 선을 사정없이 넘어버리는 등장인물들의 과감성과 뻔뻔함을 그리고 그렇게 넘어버린 선을 어느 순간에 갑자기 발을 빼드시 흐지무지 갈무리하는 점들이 다소 위태롭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설정이 작가의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하네요. 나딤 아슬람은 이러한 외줄타기식의 서사를 통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 내면 저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상흔을 다 끄집어 내서 알려야 하고 이를 이해의 기본 전제로 삼아야 제대로된 치유가 되고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행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피빛 물든 장면들도 서스럼 없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장면들도 과감없이 작품에 뿌려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다소 파토스적인 서사들이 독자들의 호흡과 맥박수를 사정없이 끌어올리지만 작품 요소요소에 산재하고 있는 나이브한 서사들을 만나면서 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러한 기법도 양립할 수 없는 양측을 보듬을때 진정한 화해와 치유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작가의 사유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카사와 데이비드의 죽음은 바로 상호간의 반목과 상흔을 승화시키는 화해의 메세지로 독자들에게 다가갑니다. 죽음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대두시킴으로써 작가는 화해와 치유의 어려움과 더불어 그 절박성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죠. 작중 "약자들의 용서는 당신들 강자들이 들어마시는 공기 같은 거, 약자들의 용서가 있어야 당신들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자기네 나라의 건물 두 채가 무너진 일로 그들은 세상의 어둠을 다 알아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안전하지 못한 곳인지 다 알아 버렸다고 생각한다" 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고, 치유와 화해로 어떻게 다가가야하는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정말 제대로 된 이슬람 문학을 만났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앞의 두 작품이 에피타이저였다면 이번 <헛된 기다림> 이야말로 메인 매뉴에 해당 한다고 보여 집니다. 여기에 작품 곳곳에 묻어나고 있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은 서정적인 서사들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독자들에게 더 어필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번역가도 작품해설 첫 마디에 언급했던 'Beautifully written' 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내러티브 전반에 흐르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체가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서사들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시공간과 맞물리면서 한층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요. 이슬람과 비이슬람(주로 그리스도교의 서구세계)이라는 운명적인 만남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역사과 이 공간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슬림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상당히 이부분이 쉽지 않는데 작가는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상흔을 다 어루만져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무에진의 낮은 울림은 잔잔하게 울려 퍼질것이고 그 울림속에서 치유와 화해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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