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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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어들이 고대하던 계절이 왔네요. 여기에 소치동계올림픽까지 코앞이라 더욱더 동계스포츠에 관심이 집중되는 요즘시기에 딱 맞는 작품이 하나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의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작품인데요. 설원이 펼쳐지는 스키장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광경이죠. 여기에 일본 추리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유니크한 내러티브가 혼합되어 한편의 서스펜스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딱 요즘 계절에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백은의 잭>에서 한번 선보였지만 그 작품과는 또 다른 묘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음 <백은의 잭>은 스릴러쪽에 무게감을 두고 전반적으로 사건해결쪽으로 내러티브가 진행되면서 스키라는 스포츠가 살짝 가미 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그 무게 중심이 스키라는 스포츠(일본 역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종목인 것 같더라구요)와 인간의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에 대한 담론이 융합되어 있고, 스키나 크로스컨트리등 설원 스포츠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어 전작보다 한층 더 흡인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작품은 추리스릴러작품이라 하긴에 왠지 그 맛이 밋밋하게 다가옵니다. 뭐 숨막히는 서스팬스나 스릴러 그리고 대단원의 반전등 추리스릴러 작품이라면 갖추고 있어야할 미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 초반부에서 야금야금 던져주는 힌트라던지 복선같은 리허설이 전혀 없고 마치 독자들을 개무시하듯이 초장에 이미 사건의 전말이 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를 확 공개해 버리는 기법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처음부터 사건의 진상을 밝혀 놓고선 독자들 마음가는대로 한번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라는 작가의 오만함마저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죠. 물론 이러한 구도 설정이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그래 한번 갈때까지 가보자라는 오기심을 자극하기도 하면서 나름의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하고 물론 재치있는 독자들이라면 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작가가 의도한 방향과 다른쪽으로 흘러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게도 하는 그런 작품입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의 작품세계가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한번 확인되고 있는데요. 추리스릴러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한 사유가 이번 작품에서도 멋들어지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살아있네라는 생각이 드네요.

 

      19년전에 태어났던 딸과 그 딸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친부와 그동안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 숨겨왔던 양부의 심정등 키 워드는 이러한 갈등과 심리묘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실상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사유는 재능이냐 노력이냐 혹은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방향타가 아닌가...  라는 배경음악이 강하게 깔려있는 작품이죠. 느닷없이 등장하는 신고라는 컨트리선수에게 많은 지면을 활용했다는 점이 작가의 또 다른 숨겨진 사유일 것입니다. 초반부에는 단조로운 스토리에 양념정도로 생각되어질 정도이지 않을까 왜 기본적으로 히다 카자미의 출생의 비밀과 이에 발맞추어 벌어지는 사건들에 집중하게 되는데요 요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절묘한 트릭이라는 것이죠. 바로 이 신고라는 뛰어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꿈과 상반되는 삶을 사는 신고가 어떻게 보면 이번 작품 사유의 또 다른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비중이 결말부분에서 갑자기 신고쪽으로 흐르는 느낌마저 주고 있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현 사회에 던지고 있는 또 다른 사유를 담고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유전학적으로 타고난 천재성이냐 후천적인 노력성 어느 쪽이 우리 인간의 삶을 더 풍유롭게 할 수 있을까라는 예전부터 왈가불가해왔던 논거중에 하나이지만 추리 스릴러라는 형식을 차용하여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더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작품입니다. 더구나 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일반대중에게 비인기동계 스포츠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래 저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갈수록 사회적 이슈에 대한 사유가 한층 더 심도 깊게 담겨져 있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매번 고뇌에 빠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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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완전판 세트 - 전7권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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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류중에서도 대하장편소설을 유난히 좋아하는 저에게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그야말로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뭐 요즘 시류가 권수가 많은 대하장편소설이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사실 방대한 분량의 작품들을 구경하기 힘든것도 사실이죠. 이런 목마름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시원함을 선사한 그 자체만으로도 <파운데이션>은 저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개인적인 욕망의 뒷풀이보다는 이번 작품에 대한 묘한 매력(이 작품을 대한 독자들이라면 누구라도 부인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죠)이 이번 작품을 오랫토록 가슴에 새기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간략하게 작품 전반을 평하자면 마치 아누스의 얼굴 같다고나 할까요? 내러티브의 성격인 작품의 스트럭쳐. 등장인물들의 면면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사유가 동전이 양면을 보는듯한 뉘양스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말 연시에 이사까지 겹쳐서 물리적인 시간적 제약으로 더디게 진도가 나갔지만 막상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되새겨보면 집중하고 이 작품에 매진했더라도 쉬이 진도빼기는 만만치 않는 그런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딱히 하나로 정의하기 힘든 그런 작품임에 틀림없덨던 것 같습니다.

 

    우선 작품의 성격에서부터 이 양반은 독자들을 살짝 갖고 노는데서 출발하죠.(엄밀히하게 장르를 구분하는 독자들에겐 더욱더 그렇죠)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간략하게 소개하는 문구가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SF대하소설이라는 홍보하는데요. 이것부터가 사실 엇박자 느낌을 줍니다. 다양한 SF적 비쥬얼은 가히 2차세계대전이후 집필했을까라는 의아심이 들정도로 엄청한 상상력과 비쥬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부분만 놓고 보면 분명 SF장르의 작품이 맞는데요. 그 알맹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뭐 요즘 모기업의 CF 문구인 '융합' 이라는 말이 버뜩 떠오를 정도로 아시모프가 <파운데이션>을 통해서 융합이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을까라는 정도로 이 작품은 역사와 국가 사회전반을 넘나들면서 SF라는 파운테이션을 가미한 기가막힌 메이크업의 초 절정을 보여주는 진수라고 생각되어 질 정도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작품으로 보여지네요.

 

    또한 서두에서 대하장편소설이라고 칭했지만 막상 작품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고개가 오른쪽 방향으로 15도 정도 기울게 되죠. 물론 연대기적인 관점에서 보면정말 대~~~하소설 맞습니다. 뭐 왠만한 시간적인 개념을 싸그리 무시할 정도로 방대한 시간적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사실 시간에 대해서 무신경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각권마다 연결되는 고리의 강도가 상당히 느쓴하다는 것이 기존의 대하장편소설과는 또 다른 맛을 보여줍니다(특히 매권마다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에 대한 연계성이 오직 파운데이션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을 찾을수 없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별개의 스토리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물론 방대한 연대기적 개념을 전제로 하다보니 어쩔수 없는 설정들이겠지만 이러한 설정 자체가 이번 작품의 또 다른 묘미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뒷쪽으로 가면 시간의 추를 거꿀로 돌려버리기도 하고, 각 권 하나 마다 별도의 작품으로 충분히 역활할 수 있는 기승전결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마치 로마제국에서 황제의 재임기간마다 다른 맛을 보여주듯이 아시모프는 길게 연결된 객차을 각 객차마다 색깔을 다르게 부여하는 유니크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그런지 사실 진도가 그리 팍팍나가지 않기도 하는 느낌을 줍니다. 새로운 권으로 이동할때 마다 다시 리셋되는 기분을 느끼게 하니까요. 각 권마다 차별화된 테마와 반전이 존재하고 작품 전반을 통채로 보게 되면 또 다른 테마와 이에 상응하는 반전이 독자들의 눈을 사로 잡고 있고, 마치 굽이굽이 산을 넘게 하는 여정을 체득하게 해주면서 먼저 넘은 산의 존재를 잊게 하면서 집중하게 하는 묘하디 묘한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래서 <파운데이션> 은 섣부르게 그 장르나 의미를 제단하기 힘든 작품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시모프의 뛰어한 기획력에 의거한 철저하게 계산된 형식이겠지만요 이러한 부분이 다양한 독자층의 욕구를 끌어들일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수하게 SF적인 비쥬얼만 놓고 봐도 왠만한 장르의 작품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라 여겨집니다. 특히나 1940년대에 이러한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여기에 이런 SF성격을 살짝 걷어내면 전혀 다른 장르의 스토리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케일의 범위를 멀리 줍아웃하면 로마제국의 쇠망사와 이후 중세암흑기로 접어드는 서양사 그리고 신세계의 발견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아메리카 이르는 일연의 연대기를 볼 수있고 좀더 줌인하게 되면 세계2차대전이후 벌어지는 세계사의 일면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이면서도 정치사회소설로도 충분하게 어필될 수 있다는 점이죠. 근데 무엇보다 이 두장르를 교묘하고 맛갈나게 버물려 놓아서 정말 새로운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에서 양측 독자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거죠.

 

    이러한 유니크한 하드웨어적인 부분도 매력적이지만 실상은 작가가 표방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사유가 상당히 가슴에 와닿는데요. <파운데이션> 이 표방하는 사유중에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다름아닌 일반화에 대한 개념이지 않을까 싶네요. 4권에서 역사학자인 페롤렛 박사의 이론 "어떤 특정한 부분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현상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는 일반화에 대한 논거는 개인, 가정 더 나아가 큰 조직에서 한번쯤 곱싶어 볼만한 논거이지 않을까 싶네요. 또한 지구일것이라 추측되는 가이아 행성이 불교의 윤회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 가이아의 실질적인 정신적 지주인 돔의 말 "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새로운 세대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는 것 뿐이다" 라는 멘트에 담고 있는 의미는 많은 면에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죠. 참여,영원,다양성등은 단순하게 생명체의 다양성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 모든 사회조직 및 사고등 총망라하는 다양성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모티브를 제공한 인간과 로봇(과학내지는 기계) 과의 관계등 현재까지 많은 영역에서 선구적인 사유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지구의 기원에서부터 다윈의 진화론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지구의 역사를 스프레드로 쫙 펼쳐서 우주 공간을 확장했다는 점 이러한 스트럭쳐의 확장이 단순한 범위의 확장을 뛰어 넘어서 치밀한 구도를 가지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전혀 생뚱맞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 개연성에 절로 수긍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다가오네요. 물론 초기 집필 당시 2차대전 전후의 시기라 당시의 세계관이 다소 강하게 묻어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인류 역사를 곱싶어 보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핵심 코어의 하나인 가이아를 필두로 표방하는 범우주적인 통합체 갤럭시아 그리고 파운데이션을 기준으로 표방으로 개별적인 우주제국 통합성이냐 개별성이냐 특수성이냐 다양성이냐 라는 문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작은 조직체에서부터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체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진통과 번뇌를 안겨주고 있는 문제와도 직결되고 일맥상통한 문제라는 것이죠. 평범성과 우월한 요소만 집결한 초우월성과의 관계 개인과 조직체을 총 망라하는 복잡한 철학적 문제이자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이작 아시모프는 <파운데이션>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인류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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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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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리뷰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온 기억들이 이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대면하면서 마치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냥 책만 읽고 리뷰는 쓰지말자 당분간 그렇게 보내왔는데 결국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읽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 없게 하는 모티브를 사정없이 던져주네요.

 

   우선 국내에(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89년 언저리 같은데요. 입영통지서를 받아놓고 이책 저책 기웃거리면서 제목이 특이해서 손에 쥐어봤던 그런 기억이 나네요) <상실의 시대>라는 제하로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던 작품입니다. 당시 일본문학에 대한 다소의 거부감 내지는 민족적 자긍심등 개뿔같은 안량한 심정으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작품이었고 기차여행길에 한번 구매해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당시 대학초년병시절 크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물론 성애등의 묘사 사뭇다른 일본의 대학생활에 상당히 고무된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이십여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 다시 대면하게된 <노르웨이의 숲>은 저 개인에게는 새로운 감흥을 던저주는 작품으로 재정립하게 되었습니다.

 

   뭐 스토리 자체는 상당히 뻔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는 점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음 마치 헤르만 헤세의<크눌프 삶의 부터 3가지 이야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과 상당히 연관성 있는 뉘양스를 가지고 있는 냄새를 진하게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이 아마도 작품속의 나이대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흥이 수십년이 지난 시점에서 접하게 되면 적확하게 작가가 표방하는 사유가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그 어떠한 면에서도 이런 한발 뒤늦은 감흥이 일품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그리고 올 여름 서점가를 후끈 달구었던 제목도 기억하기 힘든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라는 작품보다 훨씬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동안 국내에도 많은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론 <색체가 없는 ...> 작품은 너무나 흡사하게도 <노르웨이의 숲> 의 속편같다는 뉘양스를 강하게 느끼게 하더라구요. 

 

   내러티브의 전반을 흐르는 음색 내지는 감흥이라고 할까요. 딱 비틀즈의 <노르웨이 숲>과 절묘하리만큼 어울린다는 점(사실 전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미련한 생각으로 정말 언제쯤 노르웨이의 숲 그러니까 막연히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는 울창한 산림과 그 빽빽한 나무사이로 들이치는 햇빛의 향연, 발밑에서 오락오락 피어오르는 낙옆의 내음 뭐 이런 선입관에 열심히 찾아봤지만 정말 마지막까지 그 어디에도 노르웨이 숲은 없었다는 점, 아마도 이런 미끼가 내러티브를 쫒아가는 독자들에게 나름의 밑그림을 그리게 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전 이 양반의 제목선정에 대해서만큼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저와 같은 상상을 해봤으리라 믿어 집니다. 지금도 왠지 단 한번도 가보지도 못한 노르웨이 숲속을 거닐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거든요. 이런점에서 작품의 제목이 미치는 영향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죠. 처음 국내에 출간될때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은 내러티브가 표방하고 있는 젊은날의 모습과 사랑하는 이들과 죽음으로써 이별해야만 하는 상실감등 뭐 이러한 전반적인 느낌이 고스란히 제목에 투영되어 있어 다소 무거운 느낌을 자아내게 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상당히 철학적인 고차원적 파토스로 이끌어 갔다면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타이틀로 새롭게 만나는 이번 작품은 <상실의 시대>에 비해선 그러한 삶의 극단을 조명하는 분위기에서 살짝 탈피한다는 느낌마저 줄 정도로 한편의 잔잔한 가을날의 동화를 체험하는 감흥의 오히려 강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의 경우 저와 비슷한 연령대의 독자층에게는 특히나 자신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게하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좌파,우파의 이데올로기 충돌로 인한 상아탑의 현실과 그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이, 구태어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나름의 길을 걸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1980년대 후반 우리의 상아탑과 크게 다를바 없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타나베처럼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온 젊은이들의 삶이 매우 흡사한 동질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왠지 친근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시대적으로 혼란한 속에서 나름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면면이 아~ 나도 그랬지라는 기억의 봉인을 걷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편안하면서도 어느 순간 호흡이 가빠지게 합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상 내러티브자체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그런 예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또한 반전다운 반전하나 없는 밋밋한 스트럭쳐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러티브의 구조가 오히려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코어가 아닌가 싶네요. 마치 삶의 조명하듯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현실과 허구라는 갭을 최대한 좁혀주고 있어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감정이입들이 와타나베와 나오코 그리고 미도리등을 통해서 마치 독자들 자신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게 하는 착각 아닌 착각을 불러 일으키면서 픽션이라는 생각을 갖지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이라는 몇가지의 특수성이 산재하고 있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내뿜어 내는 분위기는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전반적으로 여태까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보인 작품들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성과 문학성(물론 보는 관점에서 상당한 편차가 잇겠지만요) 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고 독자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배경묘사등이 로버트 레드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독자들에게 오래토록 잔상을 남기는 그런 작품이네요. 또 하나의 재미있는 팁은 이번 작품에는 곳곳에 들어 앉아있는 클래식, POP등 음악이 많이 정말 많이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소개되어 있는 음악을 과 해당 내러티브를 같이 연관시켜 보면 더 진한 느낌을 받을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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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11-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실의시대,를 읽었던 그때가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새 옷을 입고 나온 이 책으로 지금 다시 읽고싶게 하는 리뷰입니다^^
 
아내를 사랑한 여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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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적인 추리스릴러작품과 비교해서 이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아내를 사랑한 여자> 는 이색적인 스트럭쳐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뭐 쉽게 표현한다면 초창부터 괜시리 독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전제조건이 없이 그러니까 뜸들이지 않고 바로 사건의 핵심으로 접근해서 독자들이 생각할 틈도 없이 내러티브를 가속시키기 때문이라고 해야 겠죠.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살인사건을 고백하는 남장여자 미쓰기의 고백으로 부터 이번 작품의 두가지 트래드를 공개해 버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 전체가 울렁증을 유발할 정도로 숨가쁘게 진행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죠. 왜 놀이공원에서 회전목자나 범프카등 강도가 낮은 놀이기구에서 바이킹이나 청룡열차등 좀더 스릴있는 놀이기구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청룡열차로 출발해서 내내 그 스릴을 느끼게끔하는 놀이기구만을 전전하듯이 이번 작품은 초장의 출발부터 반전에 이르기까지 거의 같은 강도의 호흡을 요구하는 작품이네요. 물론 중간 중간 약간의 숨고르는 템포가 있지만 이 역시 급락하기전의 작은 배려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들을 정신없이 스토리속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세계를 잘 아는 독자들이라면 그의 전매특허인 인간과의 소통이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사유에 대해서 대게는 작품을 끝맺는 시점에서 통합적으로 대두되고 이를 기반으로 작품 전체의 내러티브와 연계된 미묘한 맛을 느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아예 작심한듯이 서두에서 부터 양측의 사유를 들어내놓고 있어 작품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거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합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사유와 추리소설 자체에 대한 추론이 병행되면서 어느 한쪽을 놓칠수 없을 만큼 내러티브의 전개 속도가 빠르고 둘 사이를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상다히 유니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을 읽는 재미랄까 주안점은 다름아닌 '性' 에 대한 일반독자들 그리고 나아가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메타포에 대한 심도깊은 사유가 깔려있다는 점입니다. '남성성과 여성성' 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들 성 양측을 오가고 있는 중성적인 요인과 어느쪽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시각등 많은 부분에서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화두입니다. 히가시고 게이고는 아예 작정한 듯이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근본적인 동력을 바로 여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과연 남자다운것은 무엇이며 남성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혹은 여성다운것은 또 어떤것이며 여자라는 존재는 남성과 비견하여 어떻게 달라야하는 것인가? 가장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죠. 무엇보다 성정체성이나 트랜스젠더등 한순간의 이벤트성을 끝났던 문제에 대해서 원론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례를 들어 상당히 깊숙히 들어갔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서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겉모습이나 원론적으로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같은 관심이 아니라 그들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와 현상등을 섬세하게 서사함으로써 사회적 이슈를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리라 보여집니다. 여기에 만능 스포츠맨답게 미식축구와 관련된 다양한 전술, 포지션에 대한 설명등이 인상깊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데쓰로라는 스포츠작가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투영된 또 다른 인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러나 역시 가장 크게 주목받는 것은 역시 '성' 에 대한 시각인데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색다른 서사기법을 동원하여 이 점을 더 부각시겼다는 점에서 고개가 절로 수긍하게 만듭니다. 주인공격인 왕년의 커터백 데쓰로와 리사코의 심리묘사와 행동을 빗대어 우리가 생각하는 극히 정상적인 남자와 여자라는 범주를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지도록 설정해 놓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즉 비정상적이고 왠지 불편하다는 인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남자와 여자라는 개념에도 충분히 존재한다는 메세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작품은 전반적으로 추리스릴러물이라고 보기엔 다소 그 강도가 떨어지는것 역시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오히려 본질적인 사건보다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정체성과 이를 둘러싼 내러티브가 부각되면서 사건 자체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지만 내러티브 전반을 살펴보면 스릴러 넘치는 진행속도와 반전등 추리스릴러의 기본적인 맛을 다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스포츠종목에 대한 실감있는 설명은 독자들의 눈요기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압권은 내러티브전반을 대변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맛보기 차원이 아니라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터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왠만한 독자들이라면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부분까지 언급되고 있어 정말 심도깊게 고민해볼 만한 사유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동안 일반인들에게 고착화되어 있던 성정체성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해서 좀더 열린 사고 다양성을 받아들일수 있는 사고로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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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합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작품들은 만나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새삼 왜 히가시노 게이고인가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작품들을 섭렵하고 있는 차에 이번엔 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 상을 수상한 <비밀> 이라는 작품을 대면하였습니다. 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요즘처럼 비쥬얼이 업그레이드된 작품들, 스케일이 거의 블록버스터를 방불케하는 방대한 설정 여기에 포로노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적나라한 성애묘사등 독자들의 눈과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대세이고 이제는 독자들 역시 뇌성이 되었는지 몰라도 왠만한 스케일에 비쥬얼이 떨어지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시큰둥하는 요상한 풍토가 서점가를 점령해버린지도 오래된것 같습니다. 모 이런 작품들이 독자들의 눈을 잡고 인기가 있는 것은 우선 재미가 있고 기존의 문학에 대한 선입관으로 인해 문학작품하면 으레껏 지루하고 현실과는 사뭇 동떨어진 이상향을 추구하는 교양문학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문학계 자체가 침체에 빠졌던 지난날보다야 훨씬 발전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환영할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단순한 가십거리정도의 흉내만 내고 인기영합에 편승한 작품들도 많지만 이젠 독자들의 수준자체가 상당히 높아졌기에 문학성의 후퇴니 흥미위주의 질적 악화니 내지는 상업성위주의 읽을거리니 하는 말들은 그 진위성을 인정받을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차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비록 일본작가지만 시체말로 독자들의 가려운곳을 시원하게 긁어줄주 아는 작가라는 생각을 매번 그의 작품을 대하면서 느끼는 부분이고 이러한 점들이 국내에서도 매니아층을 가질 정도로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중 하나가 바로 요즘같은 눈이 부시는 뷰주얼이나 스케일의 방대함 없는 내러티브(아 패러독스 13는 외예의 작품이지만요) 로만도 충분히 독자들의 시선을 흡입하고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반증을 보여주는 산증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소거법이라는 추리기법을 동원하고 셜록 홈즈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사건 해결자를 등장시키면서 내러티브의 촛점을 사건중심에서 인물중심으로 치환하여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넓혔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키버스 사고로 인해 아내(의학적인 죽음)와 딸(의식적인 죽음)의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에서 극적인 딸의 소생과 아내의 영혼이 딸에 몸에 빙의한 상태를 주축으로 진행되는 내러티브는 요즘 한창 이슈가되고 있는 오컬티즘 요소가 가미된 작품입니다. 뭐 영혼과 과학이라는 신비주의적 뉘양스가 있는 그렇고 그런 내러티브로 인식될 수 도 있는 그다지 임펙트가 강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말은 아닐것입니다. 근데 이번 작품이 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을까요?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게 마련이죠. 하지만 좀더 자세하게 내러티브를 속을 들여다 보면 상당한 차이를 느낄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죠. 우선 우리가 흔히 접했던 오컬티즘적인 작품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대게의 경우 오컬티즘의 외형적인(흔희 빙의라는 개념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죠) 형태에 대한 설정들을 많이 가미해서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오컬티즘이 발생한 이후의 현상들을 집중적으로 서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특히 무엇보다 한여름밤의 더위를 날려주는 오싹하고 섬뜩한 그런 느낌들 보다는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라는 일상생활속에서 뗄레야 땔수 없는 가족간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서사되고 있어 오컬티즘적인 느낌보다는 가족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서사자체가 상당히 따뜻하고 애틋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뉘양스나 설정들은 한번쯤은 독자들에게 닥칠수도 있을법한 착가마저 불어오기에 더욱더 내러티브속에 빠져들게 하기도 하죠. 바로 이점이 이번 작품의 키워드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부분입니다. 추리스릴러 소설 같으면서도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 내러티브와 설정들 마치 한편의 가족 드라마를 보는 듯 하지만 결말부분의 대반전은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가족간의 사랑과 애정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의 역활등 가장 가까운 사람관의 관계성에 대해서 한번 골똘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한 여성을 두고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살아가야하는 주인공에 대한 애정은 특히 남성독자들에겐 애잔한 감흥마저 불러일으키는 작품이기도 하죠. 물론 결말에 가서 돌변하는 반전은 처음에 와닿는 충격과는 별도로 두고두고 오랫동안 독자들의 머리속을 맴돌것으로 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압권이기도 한데요. 전혀 상상치 못한 반전으로 인해 임팩트가 강하게 오는 설정보다 어느 정도는 살짝 예견하고 있었고 그리고 막상 그런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그 강도가 배가되어 돌아오는 반전이 참 인상적인 작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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