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장미

 

 

미워도 다시 한번

속상해도 다시 한번

(사랑)

 

지루해도 다시 한번

(공부)

 

빈정 상해도 다시 한번

(소설)

 

너,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아니, 아니, 아니,

더러워도 다시 한 번

 

 

 

첫번째 장미 - 우리 아파트

 

두 번째 장미 - 아이 학교

 

세번째 장미 - 남의 아파트

 

 네 번째 장미 - 빨간 장미 옆 들장미-찔레꽃

 

다섯번째 장미 - 작약

 

작약은 러시아어로 pion인데 '작약처럼 얼굴을 붉히다' 같은 숙어에도 사용된다.

봄꽃도 좋지만 (초)여름꽃도 좋아, 한 번 찍어 보았다. 빨간색(핫레드!) 혹은 진분홍(핫핑크!) 옷을 하나 사면 좋으련만, 소화불량에 걸릴 듯.

 

나에게, 나의 아이에게, 나의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늙음의, 늙어 죽음의 축복이 오길!

'65세 이상 이용가' - 이런 문구가 쓰인 경로당에도 꼭 한 번 들어가 볼 수 있길!  

 

- "엄마, 나는 55년 지나면 저기 들어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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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컴퓨터실)에서 마저 하지 못한 과제를 집에서 하도록 한다. 어마어마하게 뭉그적대다가 간신히 다 끝낸다. 자기 소개를 하는 글이다.

 

 

그 중 한 질문. <내가 소중한 이유는> - 아이가 쓴 답: <이 세상에 없으면 안 되니까.>

 

*

 

한 번 있는 존재는 없으면 안 된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와 동시에 한 번 있는 존재는 언제가는 없어지게 되어 있다.

 

 

- "네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있었어."

- "그럴 수는 없어!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태어나게 되어 있어."

 

이건 무슨 궤변?? 아마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어"라는 나의 말을 변주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곱씹을 수록 아이의 말에도 모종의, 심지어 크나큰 진실이 담겨 있다 싶다. 일단 '사람'이라 하면 그건 태어난 사람인지라, 언젠가는 태어난(태어나게 된) 사람이 맞는 것이다. 동어반복이지만 그렇다.

 

*

 

"내가 소중한 이유는 - 이 세상에 없으면 안 되니까"  

 

*

 

나의 소중한 발!

 

 

*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게으른 것도 사실이다. 과연 코로나 기준, BC-AC가 될 법도하다. 어느덧 비대면 강의에 익숙해지니 종강이 다가온다. 마지막 한 번만이라도! 학생들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랐으나,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의 기여도 있고 하여, 아주 불가능해져버렸다. 괜찮아, 이런 것도 괜찮아, 다 괜찮아~ 대신 몇 개의 어구와 문장을 떠올린다.

 

/ 암이 전염병이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 쎈 놈은 약하게 퍼지고 약한 놈은 강하게 퍼져라, 라는 신의 배려인가. / 아빠의 쭈글쭈글 뱃가죽 위에 구멍 다섯 개. / 나한테 혼 좀 나 볼 테야? / 씨발, 죽여버리겠어! / 나는 저렴한 인세생활자, 유언장을 써야겠다 / 아니, 공증 변호사가 아니라 정신과에 가보세요 / 괜찮아요, 나도 약 먹어요 / 보세요, 이 파란 알약 하나면 잠이 잘 와요 / 보험을 들어요, 그건 필수죠 / 초당옥수수가 나왔대 / 아, 당장! / 오늘 저녁은 노란 초당옥수수랍니다 / 행복은 5월에 나온 초등옥수수에 있구나

 

아, 역시 시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구나 ㅠㅠ 이번 학기에 시를 쓰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아, 나도 덩달아 시집을 또 뒤적이고 백석과 정지용 시집도 샀다. 오랜만이다, 시가.

 

 

 

 

 

 

 

 

 

 

 

 

 

 

 

 

(백석 시집. "엄마는 이런 책 봐? 나도 좀 보자!" / 정지용 전집은 그 사이 하드 카버로 바뀌어서 불만이고, 이원하 시집은 아주 상큼했다.)  

 

 

 

 

 

 

 

 

 

 

 

 

 

 

(이런 것도 사서 읽어, 들추어 보았다. 말할것도없이, 우리문학, 좋아, 왜냐면, 우리꺼니까!)

 

 

*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 고맙고 소중하다. 나는 방학을 준비할 시기에 아이는 개학을 준비하게 생겼다. 아주 그로테스크한 시즌이다. 조만간 시즌2, 시즌3 등이 올 것 같아, 이런 그로테스크 시슨도 일상이 되겠네.  

 

(오전)

 

(오후)

 

아이 학교 앞, (남의) 아파트의 찔레꽃. 특별한 건 없고, 5월 18일이었다.  

 

월화 컴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고마운 사진 한 장, 마스크 안 쓰고 있다가 딱 걸림^^;

이 더위에 참 고생스러운 노릇이다. 솔직히, 나도 일상 생활의 공간에 '사회적 거리'만 확보되어 있으면 잘 안 쓰게 된다. 

 

 

작년 봄-여름부터 산을 자주 간 것 같은데, 최근에 아이의 양말 뒤꿈치 부분에 '구멍 일보 직전'을 발견했다. 워낙 걸음이 늦었고 보다시피 잘, 많이 못 걷고 그래서 양말이 낡아서 버린 적이 없다. 전부 작아져서 버렸다. 이제야 비로소 낡은, 구멍까지 난 양말을 보게 생겼다. 기쁜 일이다. 그와 나란히, 나는 5월 9일에 새치가 발견되었다. 아주 많이 자란 새치였다. 완전히 하얬다. 뽑아서 보관 중이다. 헉, 너마저도!   

 

  

아이의 자세가 나와 너무 똑같아, 참, 할 말이 없다 ㅠㅠ 딸아이로 태어났더라면 정말 싱크로율 100프로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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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20-05-2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쓰신 시를 몇 번이나 읽어요. 자꾸 읽게 하는 시가 좋은 시라고 들었어요. 시작도 끝도 인상적이에요. 님의 시도 반갑고, 이원하 시집을 비슷한 느낌으로 읽은 것 같아 괜스레 반갑고, 안부를 알게 돼 반갑고... 반가워요! 이렇게 반가워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푸른괭이 2020-05-22 19:48   좋아요 0 | URL
헉, 시로 읽어주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스무살 이후 시를 써본 적이 없는데요 -_-;; ㅋㅋ
 

 

 

 

 

 

 

 

 

 

 

 

 

 

 

 

맨 처음 읽은 건 어릴 때 범우사판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누구나, 언제나 사랑하는 책. '어린 왕자'와 비슷한 발음 '어린 환(!)자'에서 소설적, 동화적 발상을 전개한 글을 읽었다.

 

- "친구 하나만 그려줘."

 

여기는 암병동, 혹은 희귀병 환자들이 있는 곳. 그런 부탁을 했던 아이는 어려서부터(거의 선천적) 아파서 여태껏 한 번도 학교를 가 본 적이 없다. 친구가 갖고 싶다. '나'는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주지만 아이는 불만이다. 귀찮아진^^; '나'는 그냥 학교 하나를 그려준다. 니 친구는 이 안에 있어~. 그 아이는 물론 곧 하늘나라로 간다. <어린 왕자>와 거의 똑같은 진행이다. 패러디문학의 한 단면. 패러디문학도 감동을 줄 수 있다, 라고 메모해본다.

 

*

 

아이가 자신의 발달 상태, 질환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계속 얘기를 해준다. 하지만 그게 또 아이에게는 무척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 같아, 참 슬프다. 과연 열성이든 비열성이든 경련, 발작은 미리 알고 대처할 수는 없는가, 그런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가, 흑. 또 아프면 어쩔 거야!!ㅠㅠ

 

- 안 아플 자신 있어요! 경끼 안 할 자신 있다니까, 부산 가자, 엄마! 이모 집에도 가고~ 이모가 초대했으니까~

- 연휴에 빨리 KTX 예약해! (....)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손을 꼭 씻고 마스크를 하고 그러면 괜찮아~

 

아이와 계속 실랑이 중이다. 지난 반년 정도 나도 포비아(!)가 생겨버렸다.  코로나까지 겹쳐 숨죽이고 사는 와중에....

 

흑, 1948년생인 아빠에게 '너'가 왔다. '고도'는 이런 식으로(도) 찾아온다. 작년에 건강검진할 때만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지금 갑자기 왔다. 온다, 온다, 온다고 하면서 계속 안 오던 고도는 이런 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어느 날 갑자기 올 수(도) 있음을, 우리는 또 명심해야 한다. 흥, 그건 고도 마음이야!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날들'(해피 데이스)과 '놀이/승부/유희'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미처 작별인사 할 틈도 없이 휙~ 보내야 할 수도. 그래서 나는, 그래도 사고사나 그에 준하는 죽음(심장마비, 뇌출혈이나 뇌경색 등 한순간에 가는 것)보다는 암이나 그에 준하는 중증 질환이 낫지 않나 생각해본다. 전에도 한 번 썼더랬다.

 

 

 

 

 

 

 

 

 

 

 

 

 

 

 

이미 증상이 나온 것인지라 최소 3기일 거라고 예상했다. 말로만 듣던 S상결장암(대장암 중 구불결장암) 3기 b단계(?)라고 한다. 얘기 들은 것이 지난 주 화요일, 수술이 목요일이었다. 퇴원은 내일로 잡혔다. '눈 먼 놈이 효도한다'라는 옛말에 딱(!) 맞게, 똘똘한 딸들은 바빠서 아무것도 못하고 띵돌한데다가 뇌종양 수술 회복 중인 아들이 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이런 정황, 역시나 희극적인가. 수술 이후에는 항암 일정이 있다. 아, 이제는 암이 일상이 되는 건가. '고도', '너'란 녀석, 이런 거였어, 흑.

 

*

 

4월 20일, 아이의 온라인 개학이 무척 걱정되었다. 장학사의 저지로(이렇게 높은 선까지?^^), 특수교육대상자인 우리 아이에게 올해(도) 할당된 보조교사를 따로 쓸 수 없어, 그냥 아이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컴퓨터실 선생님(원격수업도우미)의 도움으로, 어제까지는 무사히 지나갔다. '무사히'라 함은 학교 컴실에서 진도를 100% 완료하고, 챙겨간 교과서의 절반 이상을 활용(수학은 문제 다 풀어옴)하고 왔다. 영어공책에 알파벳도 두어줄 써왔다. 아마 가방 챙기는 건 선생님이 도와주신 듯하다. 돌봄에서 점심 (안-_-;) 먹고 1시 귀가, 내가 이른바 숙제-과제를 봐준다. 다른 부모들 생각도 비슷할 것 같은데, 온라인 개학도 썩 나쁘지 않다! 전에도 썼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3월 중순쯤에 해도 됐을 법하다. 하지만 아니라도 또 상관 없다. 역시나, <고도...>는 오묘한 텍스트다.

 

- 이러나저러나 다 좋다!

 

*

 

 

 

 

아이와 함께 하는 이 모든 순간이 '고도-너'가 오면 휙~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니, 죽든 말든 아무 상관 없고 그 덕분에 "너무 안심이 되고 우스운", 그렇게 여겨지는 순간이 꼭 오면 좋겠다, 하! 하지만 나는 여전히 덜 '숙성'된 건가, 공모전에 낸 소설이 본심에는 올라가면 좋겠고 어째저째 정규직 교수가 되면 좋겠고 하는, 그런 알갱들이 있다. 계속 철렁, 철렁, 하다 보면서 이 역시 곧 체념하겠지. -

 

- 이러나저러나 다 좋아, 좋다는 걸 몰라서 안 좋은 거야.

 

키릴로프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것은 광증의 일환이었다. 그럴 밖에. 스물여덟살의 뇌전증을 앓는 청년이다, 키릴로프는. <고도...>는 다르다. 말마나따나 세상 태평해 보이는 '늙은이'다. 모든 '늙은이'가 다 그런 건, 물론,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늙은 자만이 저런 위안을 주는 태평함을 보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극악한 암이라도 괜찮아, 교모세포종도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라도 괜찮아, 그냥 자는 잠에 가도 좋아, 엎어져서 가도 좋아~ 그러나, 다음과 같은, 20대 악성 뇌종양 환자의 말에서는, 아무래도, 어떻게 웃음을 찾겠느냐는 말이다, 하...   

 

- 늙는 게 너무 부러워요, 아줌마나 할머니가. 내가 저렇게까지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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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준비하기가 힘들어서^^; 뺄까 하다가, 오히려 또 역으로, 이 참에 한 번 더 읽어보자 싶어서 강의를 진행했다. 현재 상황상, 읽고 정리하고 강의동영상을 찍는 것이다. 새 번역이 나온 <해피 데이스>를 들춰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이 희곡, 역시나 너무 어려웠다 ㅠㅠ

 

<고도를 기다리며>. 응당 '고도'는 누구인가. 물론 신-구원의 다른 이름일 터. '신'은 또한 '개'이이기도 하다. GOD. DIEU.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포조와 럭키, 1막과 2막의 소년(혹은 그의 형) 등 등장인물은 모두 (카프카의 소설과 비슷하게도) 정체성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신'과 '개'가 언어유희 차원의 대상으로 바뀌는 마당에, 다른 것들이야 말해서 뭐하라. 두 명의 도둑 중 한 명은 구원 받았어, 나머지는 구원 못 받았어, 아니야, 둘 다 팽이야~ 등의 얘기도 그렇다.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

 

- 그렇다, 즐겁게 웃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한바탕 웃음, 희극이다. 딱 올라온 만큼만 드문드문 봤지만, 이런 연출의 분위기일 법하다. 과연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너', 고도는 누구인지.

 

https://www.youtube.com/watch?v=MUXtzkLTABI

 

신분과 계급과 빈부와 남녀와 노소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여기와 저기와 거기와, 너와 나와 그(그녀)와, 등등 모든 '다른' 것들 사이의 경계와 차이를 싹 날려버리는 놀라운 마법이 <고도...>에서 펼쳐진다. 한 학생의 말대로, 이건 너무 유쾌한 건 아닐지라도,,,, 어딘가 나를, 우리를 위로하는 요소를 갖고 있다. 베케트보다 앞서, 체호프의 마지막 드라마 <벚꽃 동산>에서도 그런 것을 본다. 전 재산을 다 날리고도, 아니, 그러고서야 오히려 더 평안을 찾은 것 같은 주인공의 모습!

 

- 거봐, 차라리 팔리고 나니 더 좋잖아? 그 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어?

여기서 "팔리고"는 "죽고"의 동의어로 읽어도 좋을까? ^^;

 

 

 

*

 

 

 

 

 

 

 

 

 

 

<고도...>에서 항상 놓친 것. '기다림'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블-르(디디)와 에-공(고고)이 계속 어딘가로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마찬가지로, 포조와 럭키 역시 어디선가 오는 인물, 또한 어디론가 가는 인물이다. 소년(2)도 마찬가지.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과연 갈 곳은 있는가. 그들의 신발은 왜 그리 낡았는가. 이런 물음으로 가득 찬 신기한, 신통방통한 텍스트!

 

- 나도 가고(가서) 그리고 기다린다.

 

 

 

 

내가 제일 먼저 떴다. 그 직후, 아이들이 들어와서 한창 떠들다가 자, 안녕~ 하면, 정말로 아이들이, 그 얼굴이 하나둘씩 팍팍 꺼진다. 아이들이 꺼져버린다. 50개의 얼굴이 뿅뽕, 사라지는 모습이 참 진풍경이다.

 

놀라운 건, 이 실시간 쌍방 화상 강의에 익숙해져서, 행여 대면으로 전환되면 얼마나 뻘쭘(!)할까 하는 것. 막상 해보니 이런 형식의 강의도 장점이 많다. 우선, 집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강의를 찍어두니 편리하다. 책을 싸들고 가야 할 필요가 없고 예쁜 얼굴의^^; <편집자 K>처럼 그 자리에 앉아 책을 직접 소개할 수도 있다. 수시로 '변신', 녹화를 하는데, 옆에서 아이를 째려보는(!) 것도 한 재미다. 묘한 동시성의 체험이다. 이 재미가 큰 탓인지, 이번 달 카드값이 평소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뭐냐?! ^^; 다른 한편, 동영상을 미리 올려두면 그걸로 시수를 채울 수가 있지 않나. 행여, 나나 아이가 아플 때 휴강하지 않고 강의를 진행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그러게, 호모 사피엔스는 이런 식으로 역병 이후의 시대를 살아왔나 보다. 존재의 양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요컨대, 살아 있음이 중요하다. 하지만, '생사 역시 궁극에는 다 사라진다. 이게 너무 즐겁고 유쾌하다! 라고 (어느 학생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조금은 슬프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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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부터 봄기운을 내보았다. 모직 겉옷 대신 면직 트렌치를 입고, 그러자면 추우니까 속에다가 스웨터나 가(카)디건을 껴입는 식이었다.

 

 

 주말, 상당히 춥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더 그렇다. 왜 컨디션이 안 좋냐 하면, 첫(!) 연구서 교정지가 도착한 탓인 것 같다.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 마음은 급하고 몸은 안 따라주는 상황. 오랜만에 장까지 보고 왔더니 결국 또 약 먹고 드러눕는 신세가 되었다. 중간중간 정신이 돌아올 때 '변신'하여 강의 동영상을 찍는다. 19세기 문학을 빼면, 다른 강의는 (비대면 강의가 이어질 경우 앞으로 찍을 20세기 문학까지) 두번째 연구서를 위한 원고라 할 만하다. 이번 책은 얇다. 애초 원고에서 매우 많이 덜어냈다. 200쪽 좀 넘는다. 잘 한 것 같다!!!! 서문을 써야 하는데, 고민 끝에, 이 역시 아주 짧게 가기로 한다. 20세기러시아문학을 염두에 둔다면, 다 합해서 400쪽이 안 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얇은 책, 모두를 위해 좋다!

500쪽이 넘는 책(번역서) 교정지를 보다가 이 교정지를 보니 살 것 같다, 가벼워서!

 

강의 찍는 데 익숙해져서 한 번에 한 시간 안팎으로 찍을 때도 많다. 아이의 인내(?) 시간도 덩달아 늘고 있다. 먹을 걸 챙겨줘야 하는데, 깜박. 지난 주 수요일이던가, 목요일이던가, 수학 동영상 보다가 간식으로 사온 핫도그 두 개와 치즈볼을 혼자 다 꺼내먹었다. 부스럭부스럭, "어, 이건 뭐지?" 부스럭부스럭, 냠냠 쩝쩝, 킥킥. "엄마, 검색했어! 수학 2학년 ~" "엄마, 베다 나왔어~"

 

 

아주 운신을 못할 정도가 아니면 가급적 아이와 함께 움직이려고 하는데, 오랜만에 마트를 갔더니 아이가 아주 즐거워했다. 놀이감들을 둘러보는 태도도 산만하고(초3 수준이 아니다!) 관심을 보이는 놀이감도 아주 유치하지만, 그럼에도 자기 조절력, 제어력(떼 부리지 않음)은 제법 좋아졌다고 할 만하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왔다.

 

이번주부터는 학교에서 급식이 제공되어 후식만 넣어주었다. 안타깝게도, 급식을 거의 먹지 않고 있다. 다음주부터는 아무것도 싸주지 말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점심을 안 먹고 오니 집에 오자마자 밥을 주어야해서 식비가 더 드는 역설적 상황이 -_-;

 

가령, 화: 생 당근 옆의 것은 족발이다 ㅋㅋㅋ 사과 빼고 다 먹고 옴.

 

아직도 엄마의 허벅지에 머리를 얹고 자는 아이가 점점 더 남자가(-로) 되어 가고 있다. 걱정이 크다. 아이들의 범죄 뉴스를 볼 때마다 더 그렇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우리의 아이들인데 '아이'라는 아름다운 말에 묶어두기에는 참 너무 괴물스럽고, 하지만 그 괴물스러움마저 우리 '어른'에게서 온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우리가 '아이'였을 때를 회상해보자. 과연 우리-아이는 마냥 어렸던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때야말로 세상을, 인간을 다 안다고 자만하지 않았던가. 청소년 강력범죄는 결코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과거의 기록 역시 그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 생각할 수록 머리가 아파서 또 두통약을 하나 먹는다.

 

 

(https://www.ibric.org/myboard/skin/news1/print.php?id=257103&Board=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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