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일요일에 회사가 이사갑니다. 서울의 북동쪽 끝인 상계동에서 서쪽 끝인 목동으로 출퇴근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사실 회사 직원들 대부분이 이사 공고에 원성이 대단합니다. 원래 서울역 근처에 회사가 있었던 터라 수도권 어디에선들 교통이 편했고, 이를 믿고 대개의 직원들이 집을 이사하게 되면 외곽에 살림을 많이 꾸린 터라...

게다가 이사를 가면 남대문시장과 멀어진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문구류나 애 옷이나 신발이나 악세사리 등을 거의 소매가로 사는 재미가 솔솔했는데. 수입상가 쇼핑도 낙이었고...

또 지금 회사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같은 층에 출판사 사무실이 있었다는 것. '아카넷'이라고 대우총서와 고전시리즈로 유명한 곳인데, 제가 친분을 좀 쌓은 터라 그동안 도서관 납품가라는 파격적인 할인율(25~30%!!!)로 책을 사왔거든요. 아카넷에서 나오는 책은 대부분 가격이 좀 되는데다가, 알라딘에서도  15% 이상 할인한 적이 없습니다.(사실 이사가기 전에 지금의 잇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압박에 오늘 책 사재기를 좀 했습니다. ㅎㅎㅎ)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다음주까지 제작을 완료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이번달 들어 하루 건너 야근에, 철야에, 주말 출근에... 정말 힘들게 일해왔는데... 토요일 짐싸고, 일요일 이사하고, 월요일 짐 풀고... 사흘을 공치게 된 겁니다!!!

사장님께 목동으로 이사가면 회사 관두겠다, 정 이사가야 한다면 최소한 난 제품 출시후에나 이사하든 말든 하겠다 등등 별별 협박을 다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네요.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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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7-1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갑자기 결정났나 보군요.

정말 힘들고 아쉽겠습니다.
(소곤소곤...어쩐지 마로가 엑세사리도 옷도 예쁘더라니..물론 마로가 인물이 훤하긴 합니다)

starrysky 2004-07-1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계동에서 목동이면.. 후와, 너무 머네요.. 출퇴근 거리 가까운 회사 다니는 것도 정말 큰 복인데.. 요새 목동이 뜨나요? 왜 하필 사장님은 목동으로 회사를 올기시기로 한 건지..
정들었던 공간과 헤어지는 아쉬움에, 이것저것 정리할 수고에, 덕분에 과중해진 업무에, 등등등 너무 고생이시네요.
전 회사가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었기에 그나마 오랫동안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강남으로 이사가면 회사 그만둔다는 씨알도 안 먹힐 협박을 늘 입에 달고 살았었지요..;;;
이사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저 힘 무지 좋은데, 이삿짐 박스라도 날라드릴까요? ^^

panda78 2004-07-1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계에서 목동! 에구,,, 어쩌신대요! 서울역 근처가 참 좋은데.... 남대문 수입상가엔 화장품도 싼데.... 정말 힘드시겠어요... 지난번에 3시도 넘은 시간에 야근중이라도 코멘트 다셔서 진짜 힘드시겠다, 조선인님..그랬었는데.. 에효.. 이런 일까지.
출판사 사무실과 멀어지는 것도 너무 아깝구.. 쩝.. 비라도 안 오기를 빌어 봅니다!

2004-07-14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14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水巖 2004-07-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멀어서 어쩐다죠. 하루 왕복 2시간반을 길에서. 너무 피곤 하시겠네요. 따라서 이사가면 좋은데.

수수께끼 2004-07-1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계동에서 목동이라면 정말 좋은 출퇴근길을 다니시겠군요...어차피 거부하지 못할 일이라면 즐기라고...북한산을 빙 돌아 의정부 외곽으로 빠져 일영과 장흥을 지나는 길(너무 멀기는 하지만 멋진 길이 아닌가요?)을 사색속에 다니신다면...아니라면 지하철을 이용할때는 최소한 1번은 갈아타시면서 자그마치 31개의 지하역을 거쳐야 하는데...역과 역 사이의 소요시간을 2분 30초만 잡아도 1시간 30분...왕복 3시간 이상을 지하철 속에 앉아 있어야 하는군요...하여튼 이만저만한 사건이 아니라..엄청난 사건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군요...왔다리갔다리...고생이 막심하실텐데 뭐라 위안의 말씀을 드릴것인지 찾을 수가 없군요...-_-.....

비발~* 2004-07-1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그런 사정이었군요. ;; 버거운 거리네요. 혹시 순환도로 타는, 뭐 그런 방법은 없을까요? 아무튼 그런 와중에도 챙겨주시느라, 따따따블 감사.

조선인 2004-07-1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수수께끼님. 저도 아직 어떻게 출퇴근할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지하철 역까지 세보시다니... 감동 @.@
그런데 1시간 30분이라굽쇼? 헉... 멀어질 꺼라곤 생각했는데, 시간을 들어보니 정말 막막하네요. ㅠ.ㅠ
참, 님이 추천한 길은 꼭 한 번 드라이브 해보겠습니다. 차 몰고 출퇴근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요. (제가 장롱면허거든요 ㅎㅎㅎ)

2004-07-14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4-07-14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 삼아) 역 사이 거리가 1분이나 1분 30초인 구간도 틀림없이 있을 거예요.

책읽는나무 2004-07-1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직장을 세번 다녔는데...두번의 회사는 꼭 이사를 하더군요!!...ㅠ.ㅠ
님처럼 먼곳으로 간건 아니고...윗층,아래층....^^....책상들고 윗층으로 이사했건만...6개월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자고 해서 책상들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죠!..정말 죽는줄 알았습니다...집 이사하는것보다 사무실이 이사하는게 더 힘들더군요!!.....ㅡ.ㅡ;;
거기다 님은 출퇴근시간이 어마,어마해져버리니.......ㅠ.ㅠ
그래도 어차피 결정이 나버렸다면....지하철을 타고 다니시더라도....그안에서 책을 좀더 많이 읽을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안그러면 꾸벅꾸벅 졸기라도??...^^
암튼......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될지 모르겠네요.......ㅡ.ㅡ;;

조선인 2004-07-1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건물 안에서 이사한 건 훨씬 더 많답니다. 5층에서 15층, 17층, 1층, 다시 15층 -.-;;
이사할 때마다 투덜거렸는데, 아예 목동으로 간다니 그동안 투덜댄 건 약과라고 여겨지네요.

비로그인 2004-07-1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상계동에 사시나봐요. 여긴 방학동인데.. 풉.. (갑자기 우리집 위치를 왜 공개하는걸까-_-)
지하철 가격 오르고 나서 정말이지 뷁이더군요.. 예전엔 학교 가는데 700원이면 되었는데, 이대역까지 1,000원이더군요...켁- 어쩌겠어요. 제가 가깝다고 바락바락 우겨도 요금 책정하는 사람이 멀다고 그렇게 해놓은걸...;;; (헛소리만 잔뜩하고 사라집니다)

조선인 2004-07-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60회 정액권이 생긴 게 반가울 뿐입니다. ㅎㅎㅎ

호랑녀 2004-07-15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어쩌누... 난 공릉동에서 살아봤고(상계동 옆), 신도림동에서도 살아봤죠(목동 옆).
그 사이... 좀 머네요. 마로는 어쩌누...목동은 집값도 비싼데...
일산 오쇼. 일산에서 목동 출퇴근하는 사람 많다우.
마로 봐줄 거냐구요? 그럼 그냥 도망가야죠 =3=3=3

sunnyside 2004-07-1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러게요 60회 정기권은 님같은 분을 위해 있는 것이군요! 고생스러우시겠지만, 우짜겠습니까. (역시 난 위로 or 격려에 재주가 없어서... -.-) 아카넷의 양서를 25~30 % 할인된 가격이 살 수 있었다니.. 부럽네요.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하얀 자작나무 숲 그리고 영화 <차이코프스끼>에서 자작나무 숲길을 달리는 마차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봄에는 물 오르는 신록이, 여름에는 그 푸르름이, 가을에는 황금색으로 물드는 그리고 겨울에는 서리 내린 자태가 어찌 그리도 고울 수 있을까요?

자작나무의 수피 내부에는 지방 성분이 많아 추운 지방에서 잘 견딜 수 있고 자작나무 껍질을 태울 때 나는 '자작 자작'에서 자작나무의 우리 이름이 나왔다 합니다.
 

 

북유럽과 러시아 등 추운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자작나무지만 우리나라에도 백두산이나 지리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강원도에서는 가로수로 심기도 한다고 합니다만은 공해에 약하기 때문에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가 없고 추운 지방이 아닌 곳에서의 자작나무는 실제 자작나무가 아니라 은사시나무일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자작나무의 눈같이 하얀 색으로 숲속의 귀족이요 가인이며 여왕으로도 말해지는데 한자로 華 또는 樺로 씁니다. 결혼식을 화촉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예전에는 촛불이 없어서 자작나무의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했다는 건데 그래서 화촉을 밝힌다하면 결혼식을 말하는 것이고 내용인 즉 자작나무껍질의 불로 어둠을 밝혀서 행복을 부른다는 것이라 합니다.

 

소식은 '송객림중화촉향'이라는 구절에서 '그대를 보내는 숲안에서 [화촉]을 밝히고 있는데 타는 불꽃 향기 아름답구나', 백거이의 '풍촉화연향'에서는 '바람앞에 불안하게 타고 있는 촛불에서 그윽한 향기를 맛본다'고 노래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이 나무껍질에 후세에 전할 부처님의 모습이나 불경을 적어 두는 종이 구실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개천'이란는 풍습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장사지년 3년후에 다시 개묘하여 시신이 백골이 된 것을 자작껍질로 빈틈없이 감아 미라처럼 만들어 다시 묻고 분묘를 만들어 부모의 백골을 오래 보존코자한 풍습이라 합니다. 이때 미처 시신이 백골이 되지 못했을 때는 죽도로 붙은 살을 깍아내고 백골에다 자작껍질을 감쌌다고 합니다.

 

자작나무는 거제수와 함께 봄 곡우때 줄기에 상처를 내어 흘러나오는 수액을 받아 마시면 무병장 수한다고 믿어 온 오랜 풍습이 오늘날에도 전래되어 전라도에서는 봄이면 축제를 즐기듯 합니다. 아이누족에게도 있어 산속에서 물이 없을 때면 자작나무 밑에서 불을 피우고 줄기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받아 취사에 썼다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북부산간에는 빈객이 오면 자작나무 수액을 대접하는 관습도 있다고 합니다.

 

자작나무에는 한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자작나무의 새하얀 껍질을 잘 벗겨서 순수한 사랑의 편지를 보낸다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작나무숲을 거닐다 보면 껍질이 벗겨진 자작나무가 눈에 띄기도 합니다.

봄이 오는 길목의 자작나무 잎사귀

자작나무에는 한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자작나무의 새하얀 껍질을 잘 벗겨서 순수한 사랑의 편지를 보낸다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작나무숲을 거닐다 보면 껍질이 벗겨진 자작나무가 눈에 띄기도 합니다.

 

늦가을의 꽃 자작나무 잎사귀

서리 내린 자작나무

                                                    서리 내린 자작나무

출처 : http://blog.naver.com/hispi/40001080910


자작나무와 은사시나무의 구별 : 둘다 몸통이 희지만, 자작 나무는 가로로 띠 같은것들이 많고, 잎은 삼각형 모양입니다. 반면 은사시 나무는 잎이 달걀 모양에 가깝고, 나무가 곧게 올라가는 편입니다. 전 은사시나무도 좋아하는데(사실 자작나무랑 잘 구별을 못해서 ㅋㅋㅋ), 사투리로는 은이사나무라고 합니다. 만약 내년에 마로 동생을 가지는데 성공하고, 딸이라면, 은이사라고 부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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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7-10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앤이 정말 좋아한 그 자작나무로군요. 자작나무의 요정 앤- ^^*

조선인 2004-07-10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님이 즐겨 그리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제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이기도 하구요. ^^

호랑녀 2004-07-10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서리 내린 자작나무... 진짜 멋지네요. 차이코프스키 영화에서 마차달리던 자작나무숲... 알지요. 피아노협주곡 1번이 배경으로 깔렸던가요?
조선인님... 우리 이런 데 함 가보자.
언젠가 한 번은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이던가? 앤의 초록지붕집에 꼭 가보고 싶은데, 그때가 언제나 될까...

조선인 2004-07-1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언니, 나 데려간다는 말씀이시지요? 꺄햐햐햐햐 헤벌쭉하니 좋아요.
러시아의 자작나무숲,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 모두 모두 정말 가보고 싶은 곳 *^^*
 

“C-코리아, 통일조국의 지름길”
 COREA 되찾기 연대회의 첫 포럼 가져
COREA 국호개정운동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29일 오후 2시 서울 경희대 종합강의동 509호에서 열린 ‘통일국호 COREA되찾기연대회의 제1차 포럼’ 참가자들은 국호개정운동이 제국주의 잔재로부터 벗어나 민족적 자주성을 발현시키려는 운동이며 조국의 통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운동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COREA 국호개정운동은 8천만 민족의 운동

박인주 서울 흥사단 대표는 COREA 국호개정운동에 대해 “남과 북이 통일이후 구호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이며 남.북.해외를 아우르는 8천만 민족의 한민족 공동체를 구성하여 통일뿐만 아니라 문화공동체, 역사공동체로서 이 지구촌에 민족적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는 운동이다”고 설명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김승국 평화운동가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옛 국호, 지명 되찾기 운동에 대해 역사청산을 통한 통합, 통일,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의미 있는 운동이라고 평가하고 “북조선을 조센징이라 부르거나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위협감을 담아 ‘북’이라 부르는 등 조선인을 폄하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의도를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칭하는 이름은 일본인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 김승국 평화운동가의 설명이다.

이어 COREA란 명칭이 중립통일국가의 국호로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단일기에 COREA를 새겨 아테네 올림픽에서 사용한다면 멋진 운동이 될 것이라 제안했다.

오정윤 한국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COREA 국호개정문제를 역사회복과 결부지어 발제했다.

오정윤 소장은 일제시대를 살아왔던 역사가들이 사대적인 역사관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해방이후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은 친미세력들에 편승해 북한의 역사를 배제한, 반 쪼가리 역사서를 기술해왔다고 지적하고, COREA 국호개정운동을 시작으로 남북 시대사를 새로이 정리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어 “K-코리아가 과거를 상징한다면 C로 시작하는 코리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새로운 흐름을 주장하는 사람, 즉 미래의 코드”라 설명하고 기존의 친일, 반공, 친미의 역사의식과 그들 세력의 비호아래 누렸던 권력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주류가 국내문제와 주변국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COREA 국호개정운동은 고구려사를 기본 축으로 한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대륙사의 복원을 의미하며 이는 속국의식, 패배주의, 소아주의를 버리는 첫 걸음인 동시에 동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움직임이란 것이 오정윤 소장의 주장이다.

COREA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에 맞서기 위한 것

장의균 민예총 남북문화예술교류위원장은 국호 COREA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에 맞서기 위함이라 설명하고 인터넷이 사회전반을 이끄는 ‘신 유목사회’를 맞아 우리 문화의 원류인 유목문화의 바탕에 깔려있는 시스템을 되살리기 위해 먼저, 우리의 본디 영문 표기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현석 COREA 연대회의 실무위원장은 한국사회가 시민들이 주도 하에 민주주의를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운동이 다시 제도권으로부터 편입되면서 ‘위로부터의 민주화운동’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하고 광화문 촛불로부터 다시금 시작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사회의 담론들이 COREA 국호개정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화운동의 발전과정을 잘 계승하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 주체성들을 미래에 맞게끔 재창조하는 과정 속에서 COREA 국호개정운동을 봐라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7천만 겨레가 함께 고민하는 생활 속 운동으로 자리잡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현석 실무위원장은 국호개정 문제를 북측과 함께 논의하기 위하여 북 민화협과 금강산에서 공동행사를 하자고 합의한 바 있으나 룡천역 사고로 중단되었으며, 이후 북측이 이 문제를 오는 8.15 행사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남측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단일기에 COREA를 새기고 함께 응원하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과 북은 COREA 공동행사를 2005년 다시 제안키로 했다.

송 위원장은 이외에 서명운동 등의 일상 캠페인, 정기적인 COREA포럼 개최, COREA운동의 취지를 대중과 교감하는 교육사업, 강연회 등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성근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사무차장은 이에 덧붙여 2003년 8월 남북학자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열고 COREA가 고유 국호였으니 통일국호로 사용하자고 합의한 바 있으나 그 이후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진척되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베이징 등 제3국에서 모여 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대학생 5월 한마당’에 참가중인 학생들과 통일연대 한상렬 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인사 40여명이 참여했으며, COREA 연대회의 첫 포럼을 계기로 이후 포럼을 활성화 시켜 국호개정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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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통도사

통도사를 아는 사람이 많을까?.....모르는 사람이 많을까?......^^

나는 그게 좀 궁금타~~...하긴 관심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테고...관심이 없으면 모를터~~...다행히 나는 관심이 있든,없든....나는 통도사를 알고 있다.....왜냐하면...울친정근처에 있어서..국민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거의 뭐 해마다 이곳으로 소풍을 갔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면 좀 벗어나려나했더니....대학동아리에선 또 해마다 신입생환영회를 이곳 통도사를 장소로 잡는다....ㅠ.ㅠ.....그래서 나같은 경우는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통도사는 아주 유명한 절이다....우리나라 삼대사찰중 하나다..(삼대사찰로는 해인사,송광사....그리고 이곳 통도사다..)...(여기서부터는 전문가의 소개문을 발췌하였슴..^^) 통도사는 《삼국유사》에 있는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唐)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귀국하여 대국통(大國統)이 된 뒤 646년(선덕왕15) 왕명에 따라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의 이름을 <통도사>라 한 것은, 이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인도의 영취산과 통한다는 뜻에서,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통해야 득도할 수 있다는 뜻에서 또한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자장은 이 절에 금강계단을 쌓고 보름마다 설법을 하여 계율종(戒律宗)의 근본도량으로 삼았다. 이 절의 특색은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은 점으로, 이것은 대웅전 뒤쪽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유서 깊고 전통있는 절인 만큼 많은 국보와 보물들의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 아이손을 잡고서 친정에 잠시 들른 틈을 타서 날씨도 좋고하여....통도사에 들렸다...통도사입구에서 입장권을 사서(이것이 나 중학교시절만해도 입장권이 없었다..고등학교때부터 생겼는데....그래도 그때까지는 "저 여기 사는데요!!"이말한마디면 만사 O.K였는데....이제는 그것도 안통한다...무조건 돈을 내란다.쩝~~)내고....우리는 일부러 절입구까지 걸었다...도보로 천천히 걷는다면 한 이십여분이 걸릴것이다...아이에겐 좀 무리한 거리이겠지만...(민이는 이날이후로 몸살이 좀 난듯하다..^^)...산책삼아 걷기에 아주 적소인곳이다....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있어...산림욕이 따로없다....나는 개인적으로 이산책길이 아주 좋다....^^

 

 

 

 

 

 

 

 

 

 

 

 

 



 

 

 

 

 

 

 


 

 

 

 

 

 

 

 

 

 

 


 

 

 

 

 

 

 

 

 

 

 

 

 

 

 

 

 

 

 

 

  절입구까지 가기전에 오른쪽을 유심히 보면 이러한 길이 나 있는데....저쪽길로 올라가면.......중학교때 친했던 내친구집이 나오는 길이다....지금도 이길이 맞는지 모르겠지만....그땐 그랬다....^^....그래서 항상 이러한 길을 걷다보면 저쪽끝에 친구가 웃으며 서있는듯한 착각에 빠진다....^^


 

 

 

 

 

 

 

 

 

 

 

 일주문에 거의 다다르기전에....이렇게 소원을 빌기위한 돌탑을 아기자기하게 쌓아놓은곳이 있었다.....나는 진짜 몇년만에 통도사에 왔는데....이런 돌탑이 있는건 처음 보았다....내가 그렇게 오랫만에 온것이었던가??....누가 저렇게 다 쌓아놓았지??


 

 

 

 

 

 

 

 

 

 

 

 부처님의 유골을 모셔놓은 비석들이다...


 

 

 

 

 

 

 

 

 

 

 

 일주문....절에 들어갈 때 지나는 첫번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일주문은 우리 나라 고유의 양식으로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독특한 일주문의 양식은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진리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로 향하는 마음가짐을 올곧게 다지라는 깊은 뜻을 상징하고 있다.

일주문 정면에 걸린 현판 글씨인 ‘영취산 통도사’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쓴 것으로 영취산의 장엄한 기상에 어울릴 만큼 매우 장중하다.
두 기둥의 주련에는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부처님의 으뜸 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 종찰(宗刹)임을 알려 주는 사격(寺格)을 잘 표방해 주고 있다.



 

 

 

 

 

 

 

  일주문 앞에서...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지날때 좀 긴장을 해야한다...사천왕상들이 꽤나 위압적이고 무섭다....나도 국민학교 고학년이 될때까지는 무서워서 제대로 고개를 못들고 얼른 뛰다시피 도망쳤던 곳이다...^^....울아이는 놀래가지고 울어대었다...^^...들어서면 극락전과 영산전.....그리고 삼층석탑....등등.....오래되어 빛이 바랜 절내를 둘러볼수 있다...나는 우리고장의 문화재라서기보담....몇몇의 절을 둘러보았지만....통도사절만큼 구경거리가 많은곳은 아직 못본듯하다....꽤 괜찮은 절이다...하긴 우리나라 삼대사찰중 하나라는데...안그렇겠는가??...산위에서 내려다보면....통도사는 숲속에 폭 안겨있는듯한 형상이다....뒤로 영취산이 우뚝솟아 있고....주변에 나무들이 많아서 안정감이 있다...


 

 

 

 

 

 

 

 

 

 

 

 

 극락전....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 지붕 건물이다. 초창은 1369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초의 건물 양식을 나타낸다.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추녀의 네 귀는 활주(活柱)로 받쳤다. 내부에는 서방 정토 극락 세계의 주존(主尊)인 아미타불과 그 좌우에 협시 보살로서 관세음 보살과 대세지 보살 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4호이다.



 

 

 

 

 

 

 

 

 

 

 

 

 

 

 

 

 

 

 

 


 

 

 

 

 

 

 

 

 

 

 

 

 극락전에 새겨져 있는 벽화!!......훼손될까봐 아래에 철창이 쳐져있다....아래그림은 내맘도 배에 올라탄듯 둥실둥실대는것같다....^^


 

 

 

 

 

 

 

 

 

 

 

 

 영산전.....하로전(下爐殿)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곳으로서, 부처님이 계신 불국토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영산전(靈山殿)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 지붕으로 전면의 주칸이 다른 건물과 달리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3호이다.

통도사의 전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영산전은 1704년에 건립된 것으로 단청 문양 및 색상도 원래의 모습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았고, 내부 가구 형식도 조선 초기의 품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보탑을 비롯하여 양류 관음, 나한상, 여러 가지 경전의 내용 등을 그린 벽화도 품격 높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처님의 일생을 압축하여 그린 8상도는 보물 제1041호로 지정될 만큼 당시의 불화 화풍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그림이다.(이곳 벽화는 촬영을 못했다..)



 

 

 

 

 

 

 

 

 

 

 

 

 

 

 

 

 

 

 

 

  삼층석탑......양식이나 기법으로 보아 고려초기에 제작한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봄이라 여러가지 색의 꽃이 만발하여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

 

 

 

 

 

 

 

 

 

 

 

 

 

 

 

 

 

 

 

 

 

 

 

 봉발탑....보물 471호


 

 

 

 

 

 

 

 

 

 

 

 

 

  개산조당(開山祖堂)은 해장보각(海藏寶閣)으로 통하는 문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다.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높게 솟아 있어 솟을삼문이라 한다. 3칸 모두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건물 형식은 조선 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의 솟을삼문과 같다. 뒤에 해장보각이 보인다....나는 대웅전도 마음에 들지만...이 개산조당도 마음에 든다.....특히 이런 각도의 모습을..^^



 

 

 

 

 

 

 

 

 

 

 

 대웅전 북쪽으로 적멸보궁의 현판이 있는곳!!.....통도사의 중심 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 지붕 건물이다. 임진 왜란 때 불탄 것을 1645년 인조 23년에 우운(友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른 전각과는 달리 정면의 너비가 측면보다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불이문 쪽과 금강계단을 향하여 이중으로 정면성을 주기 위하여 합각(合閣)을 양 측면, 전면 3곳에 마련한 것이 이채롭다.

조선 중기 불당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 연구 및 목조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받고 있으며, 국보 제290호이다. 사방을 둘러 가며 각각 다른 현판을 걸어 놓았다.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남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중에서 정면에 있는 금당계단(金剛戒壇)이란 글씨는 일주문과 마찬가지로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썼다.

통도사의 대웅전은 내부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불상 대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대웅전 북쪽의 금강계단에 봉안했기 때문에 대웅전은 불상이 없으며 예배를 올리는 배전(拜殿)의 기능만을 갖고 있다. 불당 내부에는 북쪽에 동서로 길게 불단만이 있으며, 그 앞쪽 중앙에 설법상이 있다.


 

 

 

 

 

 

 

 

 

 

 

 

 남쪽의 금강계단의 현판이 있는 방향....통도사의 대웅전의 구조는 북쪽의 적멸보궁쪽이 정면 같지만....돌아서 남쪽의 방향에 서있어도 이곳도 정면이다....지붕의 배치가 특이한 대웅전이다...


 

 

 

 

 

 

 

 

 

 

 

 

 동쪽으로 대웅전의 현판이 걸려있다....구룡포가 있는곳!!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세기 중반에 처음 축조되었고, 그 뒤 일곱 번에 걸친 수리가 있어서 지금은 원래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현재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석종형의 부도, 각 상들의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17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모습은 바뀌었지만 문헌 기록상 가장 오래된 계단이며, 같은 성격을 띤 금산사나 용연사의 것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조형미도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계단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히는 것이다.
계단 주변에는 석문(石門)과 석조 난간을 둘러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4천왕의 입상이 있고, 기단의 상하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보살상을 배치하였다.
계단의 하층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보살상을 새겨 놓았고, 상층 면석에는 불보살 및 비천상을 부조로 새겨 놓았다. 하층보다는 상층의 양식이 유연한 수법이 월등하다.
두 손은 무기 대신에 천의(天衣) 자락을 쥐고 있는 듯한 신장(神將)의 퉁방울눈이 인상적이다.

계단 상층 중심부에 위치한 석종형 부도는 복련과 앙련의 상하 연화대 위에 위치하며, 그 조각 수법이 다른 조각과는 달리 매우 우수하다. 동서 좌우에는 유연한 비천상을 부조로 나타냈고, 정면인 남쪽에는 구름 속에 보합(寶盒)의 향로를 조각하였다......아쉽게도 지금 현재도 수리중이었다...그래서 간판에 걸려있는 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대웅전의 기둥과 공포모습들!!

 

 

 

 

 

 

 

 

 

 

 

 

 

  대웅전 앞에 있는 탑!!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얽힌 연못이다. 자장 스님이 처음 절을 세우려고 할 때 이 곳에는 큰 연못이 있었고, 아홉 마리의 용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연못을 메워 절을 짓고자, 용들을 구제한 뒤, 한 마리 용만을 이 곳에 남겨 사찰을 수호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현재 금강계단 옆에 있는 이 곳을 구룡지(九龍池)라고 한다.




 

 

 

 

 

 

 

 


 

 

 

 

 

 

 

 

 

 

 

 구룡지연못이 마음에 들었던지.....이곳을 떠날 생각을 않는다.....계속 다리를 왔다,갔다 하기만 하고........얼른 오라고 손짓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들....그리고 그옆에 어쩔수없이 앉아있는 아버지!!^^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며 꼬드겨 겨우 데리고 나왔다....^^


 

 

 

 

 

 

 

 

 

 

 

 

  녀석!! 좋아하기는..^^


 

 

 

 

 

 

 

 

 

 

 

 

  아이스크림 먹고 힘내서.....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지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두가지 느낌.....石과 木의 느낌!!


 

 

 

 

 

 

 

 

 

 

 

 

  통도사절은 구조상 들어갈때는 긴장감을 가지고 들어가게 되지만...나올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나올수 있도록 절내부터 그렇게 배치가 되어있다고 한다....산책길또한 그러한 기분이 들었다.....^^


 

 

 

 

 

 

 

 

 

 

 

  상상이 가는가??......내가 이사진 찍고 저기까지 뛰어가기가 좀 벅찼을꺼란~~~^^


 

 

 

 

 

 

 

 

 

 

 

  결국 녀석은 피곤한탓에 곤하게 잠이 들어버렸다....^^

절내의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하여 좀 아쉬웠지만......그냥 이렇게 짧게 구경을 하고 왔다....이번엔 절구경보다는 주변 경치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나는 몇십번을 이곳에 들르면서도 이렇게 경치가 좋은지 왜 미처 몰랐을까??......진짜 나이들어간다는걸 피부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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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7-09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으셨겠당..
그나저나 ..그 곳 갈만한 곳이었는데..

통도환타지아 땜에 영...(허긴 아이엄마로써는 좋을지도^^;;)

책읽는나무 2004-07-1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이 퍼가신 덕택인지??....수수께끼님이 정정을 해주셨네요..ㅡ.ㅡ;;

< 참고 말씀을 드리자면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곳이라는 설명은 잘못된 설명으로 그 사진의 뒷편은 부도밭으로 부처님이 아닌 스님의 유골(승사리)을 모신 곳입니다. 그리고 앞에 주르륵 서 있는 비석들은 이곳 통도사를 거쳐간 스님들의 입적후 공덕을 적은 공덕비로 나이가 많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자장율사는 선덕여왕의 부름으로 중국에서 돌아오면서 부처의 진신사리 100립을 가져와서 황룡사 등 3곳에 봉안을 하였으며, 불화 중 윗 그림은 인왕상이며 아래그림은 '반야용선'입니다. 그리고 석탑은 고려 초기라고 보기보다는 통일신라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통일신라 하대의 석탑이라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오대산 중대사, 태백산 정암사,설악산 봉정암,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 등을 5대 적멸보궁이라고 하는데 적멸보궁은 숭배의 대상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곳이라 부처를 대신하는 불상이나 불화을 놓지 않음을 말씀 드립니다...>

저도 통도사홈페이지를 들어가서 복사를 좀 해온것인데....저의 실수였는지??...복사를 잘못한것인지??....암튼....틀린부분이 있어서 좀 부끄럽네요!!...ㅡ.ㅡ;;
좀더 공부를 해야될것 같네요!!.....ㅠ.ㅠ
나는 여지껏 부처님의 진신사리라고 알고 있었는데....스님이라니??....
입구에 세워져있는 비석은 제가 오타를 친걸 이제서야 발견했습니다...저건 부처님이 아니라 스님의 공덕비가 맞습니다....ㅡ.ㅡ;;
통도사에 관한 책도 있었는데.....현재 그책이 없어서....찾아보질 못하겠군요!!
암튼...수수께끼님의 말도 맞는듯하여....확실하고 해박한 지식이 없다보니 반박하기도 그렇고....어째 기분이 좀 묘하네요...^^

암튼.....혹여 제가 지식이 부족하여 잘못 기술하여 다른이들에게 잘못된 상식을 알려드린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착찹하네요......ㅡ.ㅡ;;



 
 전출처 : 로렌초의시종 > 2년 전 석가탄신일 기사인데, 아직도 못 가봤다......-포항 운제산 오어사-동아일보

[여행/한국의 비경]원효대사 전설 깃든 포항 운제산 오어사

 《올해가 불기 2546년. 내 종교가 무엇이든 ‘부처님 오신 날’은 기쁜 날이다. 오는 일요일(19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니 주말에는 산수경계 좋고 신록 우거진 숲속의 사찰을 찾아 봄이 어떠할지. 흔치 않게 물도리동에 자리잡은 비경의 수변 고찰, 경북 포항시 운제산(雲梯山) 오어사(吾魚寺)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포항 오어사 앞의 연못 오어지 

 신라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사이에 설총을 낳고 실계(失戒)한 뒤 대중속에서 노래와 춤으로 교화를 이루던 때, 원효와 함께 신라 불교 10성에 드는 혜공대사 역시 망태기 진채로 거리에 나가 춤추고 노래하며 불교를 알리던 중이었다. 이 두 스님이 하루는 술병차고 냇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 안주삼아 한 잔 하고 있었다. 그 때 혜공스님이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명색이 중인데 물고기를 잡아 먹고 있으니 누가 볼까 두렵소.” 그러자 원효스님의 대답. “다 먹고 난 다음에 그런 소리를 하면 뭐합니까. 정 그렇다면 산 고기를 뱉어 내면 되지 않겠소.” “스님께서 그런 신통력이 있소.” “해봐야 알지.” “원효스님이 한다면 나도 자신있소이다.” “그러면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번 시험해 봅시다.”

●물고기 안주로 술한잔

 이렇게 해서 두 스님의 신통력 대결이 물가에서 벌어졌는데 한 스님은 냇물 상류쪽에서, 또 한 스님은 하류쪽에서 고이춤을 풀고 ‘큰 것’을 보았다던가. 그러자 고기들이 생환, 물안에서 떼지어 몰려 다니는 것이다. 한데 섞인 두 고기떼를 가리키며 두 스님은 서로 내 고기라고 우겼다는 이야기인데, 그 물가에 절이 들어서니 ‘나 오’(吾)자에 ‘고기 어’(魚)자, 오어사가 됐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그 오어사를 찾아 포항을 향했다. 포항시내 오거리에서 포항제철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천(읍)으로 가는 길. 포철 지난 뒤 길은 다리 하나를 건너 하천 둑가로 이어졌다. 그 물, 오어사 앞 오어지에서 흘러내린 냉천. 오천에 당도하니 길은 호젓한 계곡으로 접어들고 한참을 달리다 사하촌에 이르렀다.
 마을 지나 왼편으로 큰 제방에 가로막힌 계곡이 보이고 오르막의 제방 위쪽에 올라서면 큰 연못, 오어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계곡 양편의 숲그늘 탓에 물은 온통 진초록빛 일색. 그 수면에 빠진 5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선경이다.
 연못가로 난 꾸불꾸불한 길, 몇구비나 돌았을까. 막다른 길(주차장)이다. 왼편은 연못, 오른편은 산(운제산), 오어사는 정면에 있었다. 물가로 난 길 하나가 절 건너 저편 계곡을 잇는 유일한 통로다. 절 담장 끼고 연못가로 난 길로 몇발짝을 옮기니 일주문이 나타난다. 오어사는 크지 않았다. 대웅전 응진전 산신각 범종각 등 당우 몇 채뿐. 그 가운데 유물전시관이 보였다. 유서깊은 고찰임을 단박에 알수 있는 대목이다. 원효대사가 쓰셨다는 삿갓도 있었다.
 지금 경내는 만발한 진분홍빛 연산홍으로 꽃대궐을 이뤘다. 이제 며칠후면 부처님 오신 날. 평소 같으면 저녁공양 마친 지금은 말 그대로 ‘절간’일텐데 행사 준비로 부산했다.
 신라 진평왕때 창건된 이 절은 신라 사대조사(원효, 혜공, 자장, 의상)가 수도했던 명찰. 원효 혜공 자장 그리고 의상, 이렇게 큰 스님 네 분을 이름인데 절 주변의 암자(원효암 자장암)가 그런 역사를 말해준다. 원효암은 다리 건너 계곡 깊이, 자장암은 절을 품은 운제산 꼭대기 바위에 있다.
 원효암 가는 길에 지나는 원효교, 이 다리와 다리 건너 물가에서 바라보는 오어사와 연못이 어울림은 빼어나다. 수면에 비친 사찰의 담장과 장독대, 다리에서 감상하는 수많은 방생 물고기의 유영 모습 등등. 가파른 산정의 아슬아슬한 자장암 풍치도 빼놓지 말자.
 그 자장암, 보기보다는 오르기가 쉽다. 주차장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거리가 200m, 넉넉잡고 10분이면 오른다. 한 뼘의 평지가 귀한 옹색한 산정이지만 관음전, 나한전, 산신각에 선방까지 있었다. 여기 연등에 불 밝히면 오어사에서 올려다 뵈는 모습이 기막힐 것 같았다.

●굽이굽이 계곡 한눈에

절뒷산 정상의 자장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제산 계곡 풍경. 왼편 숲속에 절 지붕이 보인다. 

 자장암에서 내려다 본 오어사와 계곡의 경치. 실로 압권이었다. 첩첩이 두른 근방 산악의 마루금은 물론 연못을 향해 굽이굽이 흘러드는 계곡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물가의 숲에 살포시 가린 오어사 당우의 지붕. 절벽위에 앉아 이 선경에 빠지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시간의 흐름을 잊고 만다. 이곳서 수도하던 스님들이 계곡의 구름을 사다리삼아 이산 저산을 오갈 수 있었다 해서 이름붙였다는 산이름 ‘운제’(구름 雲, 사다리 梯)는 여기서 보면 딱 그대로다.
 자장암에서 이뤄진 뜻밖의 만남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세존진보탑. 98년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사리인데 봉안후 불가사의한 일이 여러차례 일어났음을 알리는 비문의 글은 한번 쯤 읽어 볼 만하다. 자장암 정염(주지에 해당) 법승(法承)스님은 “관음보살을 모시는 자장암은 예로부터 기도 효험이 높기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빗물이 새는 등 손볼 곳이 많아 개축불사를 계획 중”이라며 “선경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조용한 찻집도 두어 찾는 분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식후경

●단풍나무…찬밥…양푼이 비빔밥

 오어사를 7㎞ 앞둔 문곡초등학교 앞 삼거리. ‘감포 33㎞ 양북 24㎞’라고 쓰인 14번국도 이정표 밑에는 ‘천년고찰 방생도량 오어사’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여기서 3㎞를 더가면 용산주유소 삼거리. 오어사로 가려면 직진하는 14번 국도를 버리고 오른편으로 접어든다. 여기서 부터는 호젓한 산길. 조금 가다 보면 왼편에 장짓문이 달린 전통가옥 앞에 ‘山下村’(산하촌)이라고 새긴 나무간판이 보인다. 그러나 더 눈에 띄는 것은 집 앞에 걸어둔 ‘양푼이 비빔밥’이라는 특이한 메뉴.
 구멍 뻥뻥뚫린 장짓문 열고 들어선 실내는 아늑한 시골집 분위기다. 서까래 대들보 그대로 드러낸 지붕은 온통 초서 예서의 글씨로 뒤덮인 한지로 도배됐고 사방은 온통 황토벽이다. 원목을 잘라 만든 식탁과 긴 의자, 그 가운데 황토를 덧씌운 장작난로가 온기를 풍기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그룹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등 70년대 가요가 줄줄이 이어졌다.
 ‘386세대’에 한 수 뒤처진다해서 숫자를 하나씩 뺐다는 ‘275세대’를 위한 공간이 틀림없었다. 그래 주인(이갑종씨·48)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역시. “30∼50대를 위한 식당겸 찻집”이라는 것이었다. 이 집을 지은 이씨는 직접 생활 도자기를 굽는 도자기 장인. 찻잔 접시 등 산하촌의 모든 그릇은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음식은 여주인 홍정자씨(45)의 작품이다.
 “양푼이 비빔밥은 어릴 적 시골에서 양푼에 찬 밥 넣고 찬장에 남아 있던 반찬 쏟아 부은 뒤 써억써억 맨손으로 비벼주시던 어머니의 그 비빔밥 맛을 내려고 한건데….” 여주인 홍정자씨(45)의 말이다.
 큰 양푼안에는 참나물 단풍나물 치커리 쑥갓 등 생야채와 무채 쇠고기 호박 당근 볶은 것과 참기름이 들어간다. 열무물김치등 곁다리 반찬도 대여섯가지나 된다. 화학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고 집간장과 집된장만 넣어 칼칼한 맛이 달달한 여염집 식당 비빔밥과 다르게 소박하기만 하다. 5000원. 동태찜(5000원)도 특미. 연중무휴. 054-291-2039

◇여행정보

▽찾아가기 △손수운전〓경부고속도로/영천IC∼28번(국도)∼안강∼7번(국도)∼포항(오거리)∼14번(국도)∼오천(이정표 따라 감)∼오어사 △대중교통〓서울(동서울터미널·446-8000)↔포항(시외버스터미널·054-274-2311), 포항↔오천(300번·시내버스). ▼사찰 종무소(054) △오어사 292-9554 △자장암 285-0129 ▼특별행사(자장암 연등터널)〓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등반로(자장암∼주차장)에 연등을 줄지어 매달아 행사 전후 몇 일간은 연등터널을 통해 암자를 오르내리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입력 | 2002-05-15 17:43

 

http://www.donga.com/fbin/output?search=1&n=200205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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