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2004년 서재지인의 책선물-(조선인님)편
숨가쁘게 달려온 한 해였습니다. 나름대로 어렵고 힘들지 않았던 때가 없었지만 올 해는 유난히 힘들고 외롭고 고단한 해였습니다. 그럼에도 돌아보니 너무 1년이라는 시간이 허망하게만 크게 느껴짐은 왜 일까요. 아직 못다한 숙제가 쌓여 있는 독촉장처럼 수북해 있는데 한 해는 저물어 갑니다. 우리사회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어린 딸을 둔 한 젊은이가 지금 거리에서 단식투쟁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건장했던 그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여의어 갈때마다 그의 연약한 아내는 점점 강해져야만 합니다. 이런 이상한 모습이 지금 우리곁의 세상이라고 친다면 아, 정말이지 속이 많이 상합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쑥쑥 커가는 '마로' 라는 귀여운 딸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우리만큼 나이를 먹은 세상이 오면 지금 이 어렵고 힘든 일들을 옛이야기의 추억쯤으로 삼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오늘 낮에 책 정리를 하며 살펴보니 모두 3권이나 책을 보내 주셨더군요.
<로마인 이야기1>과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2>는 조선인님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정리할 때 주신 것입니다. 운좋게 제가 선착순으로 두 권을 찜했습니다. 그 중 <로마인 이야기1>과 <중국 신화 이야기>는 리뷰에 올렸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2>는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의 부피는 가볍지만 글자수가 너무 많다는것이 게으른 제 변명입니다. 그러나 내용은 아주 알찹니다. 특히 서양문화와 관련된 총체적인 해설이 필요하신 분은 다양한 정보를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진도 무지하게 안나가더군요...원래 서양 문학에 문외한인 제가 이 책을 완독하는 날은 2천원짜리 시루떡이라도 사다 먹어야 할 지경입니다.
<중국신화 이야기>중에서 한 가지 골라봤습니다. 사진을 클릭해서 보시면 제가 연필로 밑줄을 그은 것이 보일겁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운 꿈을 꾼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뭐 이런 글입니다. 상상력이 힘이 되는 세상이라고 독설가 진중권이 이야기했다지요. 그도 분명 저런 신화 이야기를 숱하게 읽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신화는 단순히 할머니가 전해주는 구수한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신들의 사랑과 전쟁과 죽음이 있습니다. 신은 누구일까요? 신은 바로 우리 자신,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중국사람들이 왜 그토록 신화에 열광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신화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중화(中華)였거든요. 우리의 웅장하고 힘있는 신화는 지금 어디에서 잠자고 있을까요? 참 안타깝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하여 신화가 끼치는 세상의 힘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인님은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각 여의도 천막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에 임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날이 은근하 차가운 날입니다. 그러나 그 가족에게 진정으로 춥고 외로운 것은 칠흑같은 어둠의 추위가 아니라 세상의 외면과 냉대와 무관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세권의 책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우울해졌습니다만 그래도 조선인님 서재에서 씩씩하게 웃고 있는 우리 '마로' 얼굴을 보니 오히려 제가 위로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더군요. 제 서재에 와서 귓속말로 다정하게 속삭이고 가는 조선인님!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희망이란 우리들 가슴에 꺼지지 않았다고 믿고 있어요. 이 책들을 바라 보면서 새해에는 님에게 좋은 일이 많이 많이 있기를 바래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