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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국성 옮김 / 예하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아인슈타인의 꿈에 비유된 시간에 대한 온갖 화두. 그 중 가장 나의 마음을 끈 것은...시간이 절대적인 세계와 원인과 결과가 일정하지 않은 세계. 시간이 절대적이라면, 정해진 운명이 끔찍할 거 같은데, 작가는 반대로 행복하게 여긴다.
"시간이 절대적인 세계는 위안거리가 있는 세계이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내다볼 수 없지만, 시간의 움직임은 내다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을 의심할 수는 있어도 시간을 의심할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뒤돌아보는 법 없이 앞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찻집에서도, 정부 관청에서도, 제네바 호수에 떠 있는 배에서도 사람들을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자기가 태어난 순간이, 첫 걸음마를 한 순간이, 첫 열정의 순간이, 부모에게 작별을 한 순간이 어디엔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저마다 알고 있는 것이다."
대개 시간이 두려운 건 변화와 망각 때문. 반면 시간이 약이라 함은 도망치고 싶은 과거, 괴로운 현재, 잊지 못할 후회 때문. 모든 것이 남김없이 기록되는 세계에 위안을 얻는다는 건, 아인슈타인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다. 순간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작가의 욕심이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가 일정하지 않은 세계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람들은 대체로 순간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논리적으로 보아 과거가 현재에 분명하게 영향ㅇ르 미치지 않을 때에는 과거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현재가 미래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현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행동은 저마다 시간 속에서 섬처럼 따로 떠 있는 것이어서 그것 자체로만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죽어가는 삼촌을 위로하는 것은 유산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에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원들은 이력서 때문이 아니라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채용된다. 윗사람에게서 억압받는 직원들은 모욕을 당할 때마다 앞일을 걱정하는 일 없이 맞서 싸운다. 순간의 세계이다. 진실의 세계이다. 말로 튀어 나오는 것은 모조리 그 순간에만 해당되는 말이며, 눈길에는 제각기 한 가지 의미만이 있을 뿐이고, 감촉에는 저마다 과거도 미래도 없고, 입맞춤은 모두가 순간의 입맞춤이다."
순간의 세계를 갈망하는 작가를 부럽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불타오르는 바로 그 순간, 절정의 그 순간, 오로지 진실밖에 없는 그 순간을 갈망하는 것은 바로 나임을. 모란이 뚝뚝 떨어지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하던 시인에 호응하여, 내 생애가 바로 그 순간의 연결으로만 이어지길 나는 얼마나 바랬던가. 대학입시에 허덕이며 "하면 된다" 류의 문구를 책상에 붙이던 친구들 모르게 수첩 맨 앞에 써놓은 문구를 은근히 즐기던 게 내가 아니던가. "인생은 순간이 아니다. 그러나 순간은 인생의 일부이다"라는 격구에 매혹되어, 내 20대는 20대일 수 있었다.
아.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20대를 결코 후회하지 않았구나. 지금도 그 시절이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기를 바라며, 그 순간 순간이 모두 진실이었음을 기뻐하고 있구나. 비록 34인 지금, 출생부터 이어지는 가족의 고리에 허덕이고 있지만, 나 자신에게 한없이 충실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오히려 지금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아인슈타인이 갈망했던 시간을 살은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지금이 아무리 괴로워도 결국 꿈과 달리 시간은 지금껏 그랬듯이 흘러가고, 지금은 과거가 된다는 것 역시 절감하게 되었다. 꿈은 꿈인 거니까. 게다가 아인슈타인의 꿈이 아니라 그를 기린 작가의 꿈일 뿐이니까. 소설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