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nne 1 - 만남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신지식 선생님이 번역한 창조사 완역본을 가지고 있는지라
동서문화사 완역본을 다시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산 창조사 판이 너덜거리기 시작하는 터라,
창조사 판을 보호해야겠다는 목적으로 동서문화사 판을 사기로 결심했다.
동서문화사 판의 가장 큰 미덕은 역자의 부록이 실하다는 것.
1권의 경우 논문 3편을 바탕으로 몽고메리가 인용한 문구를 찾아 미주를 달고 있으며,
역자가 스스로 달아놓은 미주 또한 방대하다.
몽고메리가 앤의 입을 빌어 성경이나 시의 귀절을 자주 인용하는 거야 원래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방대한 인용문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문체가 좀 더 일상어에 가깝다는 것.
하지만 이건 꼭 장점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19세기 말 고풍스런 그린 게이블즈의 앤은 좀 더 옛스런 문체로 읽어야하지 않을까.
물론 김유정 씨의 번역은 훨씬 꼼꼼하고 섬세하며, 누락된 부분도 없다.
가령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창조사-신지식>
내가 퀸 학원을 졸업하고 나올 때는, 내 앞에 길이 똑바로 뚫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어요. 몇 마일 앞까지도 뚫어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지금은 굽어진 모퉁이에 온 거예요. 이 길이 굽어지고 나면,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반드시 나는 좋은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 길이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떠한 빛과 그림자가 있는지, 어떠한 경치가 전개되어 있는지, 어떻게 아름다운 언덕이나 산이, 골짜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동서문화사-김유경>
퀸즈아카데미를 졸업할 때는 내 미래에 똑바로 뻗은 길이 하나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리하여 앞쪽에 멋진 이정표가 여러 개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 그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멋진 세계가 있으리라고 믿어요. 게다가 머릴러, 길모퉁이라는 것에도 마음이 끌려요. 길모퉁이란 그 앞이 어떻게 뻗어나가는지 모르는 데 매력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초록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숲을 빠져나가 나뭇잎 사이로 부드럽게 반짝이는 햇빛이 있을지도 모르고, 본 적도 없는 풍경이며 눈이 번쩍 뜨이는 아름다운 곳이 있을지도 모르고, 에움길이나 언덕 또는 골짜기가 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