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하나의 이야기에서 마치 실을 뽑아내듯 연결되는 구조가 아름답고 슬프다. 그의 인생을 있게 한 어머니로부터 그가 벗어날 수 있었던 땅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저자의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도 느낄 수 있듯 솔직하고도 직설적인 표현들은 문장 이해의 혼란을 줄여주고 바로 이야기 속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것이 아마 다른 작가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통과 슬픔은 새로운 문을 찾아나가는 창조의 원천이다. 작가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조차도 한 걸음 내딛는 디딤돌이 되어준다. 한 권의 책을 통해 타인의 인생을 엿보고 그 인생을 통해서 인간의 나약함과 인내력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리베카 솔닛은 우리에게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 이야기를 꺼내놓으라고 끌어당긴다. 그것이 내가 머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구조는 독특하다. 살구로 시작해서 다시 살구로 돌아온다. 어찌 보면 우리가 떠났다고 생각을 했지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지구가 하나의 원인 것처럼 우리는 돌고 돌아 다시 찾아온다. 그것이 생명과 죽음을 반복하며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다. 혼란스러움의 살구는 시간이 지나 마음의 회복을 이루는, 글을 쓰게 만든 원천이 된 것처럼 고통은 삶을 이끄는 또 다른 힘이기도 함을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새삼 느낀다.
책 속에서는 한 장의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에 하나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하나씩 이어 읽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나방과 나비, 눈물과 슬픔, 아름다움과 고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안한 상태의 그 살구 더미는 내게 떨어진 임무인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거의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어머니가 남긴 나의 상속권, 동화 속의 유산처럼 보였다. 그건 가족 나무에서 따낸 과일 더미이자 마지막 수확이었고, 동화에 등장하는 마법의 씨앗, 알 수 없는 방의 문을 여는 열쇠,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처럼 수수께끼 같은 선물이었다."-29쪽
어머니와 살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때로는 감기도 하고 때로는 풀기도 하는 실타래 작업처럼, 작가와 함께 아이슬란드로 인생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비행기 티켓과 같은 책이다. 인생 앞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과 할 수 없는 일들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본다.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내려놓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