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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엔 대학생이 없다? - 대학 4학년, TV를 볼 수 없는 이유 | 신문,TV, 세상읽기 2003/06/22 22:33
http://blog.naver.com/jaydreaming/80000023413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나는 TV를 잘 보지 않는다. 그러고서 방송전문웹진에서 글을 쓴다니, 자기 모순이다. 아니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TV 보는 것을 생리적으로 꺼려한다기보다 TV를 보는 와중에 TV를 봐선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느낀다고 해야겠다.

그건 아마 어렸을 무렵부터 TV 보지말고 공부하라는 어머님의 엄명에 길들여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머리가 커지면서 TV 대신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내 지적 허영심이 빚어낸 성향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명색이 방송전문 웹진 기자인데 TV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이 대상을 깊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TV를 잘 보지 않는 게 나만의 성향인가 싶어 친구들에게 술자리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한때 열심히 상형문자같은 이론서들을 붙잡고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다. 주로 내 또래의 20대 중반 복학생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은 사극 정도뿐, 역시나 대부분의 친구들의 반응은 TV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TV를 볼 시간이 없다고 대답한다. 정말 이 친구들이 TV를 자주 보지 않는 건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최소한 TV를 자주 본다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우리 또래 사이에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대학 4학년, 졸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TV를 볼 여유는 없다"라고 스스로 외치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TV를 보지 않는 것이 나와 같은 복학생들만의 현상은 아닐 성싶다. 대학 1,2학년 때를 생각해 보아도 TV는 또래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대학생활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지금 그 동안 대학의 가치를 고민하며 느꼈던 TV와의 갈등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나 스스로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TV를 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진짜) 대학생들(자신이 정체성과 진리에 대해서 고민하는)이 TV를 보지 않는 건 TV 속 세계에서 자신들의 '현실'을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의 소위 N세대들과 20대 중반 이후의 경제적 능력을 가진 사회인들을 위한 오락, 대중문화, 광고들만이 존재한다.

현재 이러한 TV 속 세계는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즉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대학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모두들 자신들이 왜 대학을 다니고 있는지를 고민할 공간이 TV 속에는 없다는 말이다. 이는 20대끼리의 세대 차이가 생겨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각각의 다른 우리 속에 격리되어 있는 것이다.


'N세대'의 허구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N세대니 산소 학번이니 하는 말들이 TV를 경유해 우리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허위의식의 대표적인 경우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대 중반 X세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당시 대중문화, TV의 전 영역에서 '규정할 수 없는 세대'니 어쩌니 해가며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X세대라는 이름으로 (역설적이게도) '규정'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말에 어떤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느냐고? 그렇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소비욕구를 극대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너희들은 X세대야, 자 이건 너희들(만)을 위한 물건이라구, 멋지지 않니?" 자, 세월이 흘러 20대 중반이 된 우리 세대들에게 이제는 아무도 X세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부르지 않더라도 기성세대의 소비 패턴에 익숙해졌기(혹은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TV속 세계는 소비욕구가 왕성한 20대의 젊은이들을 열심히 한데 묶어놓으려 하기 때문에 고상한 '대학생'따위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많이 팔아주기만 하면 되지 뭘, 사회가 어쩌니, 진리가 어쩌니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더욱 현란하게, 더욱 화려하게 젊은이들의 오감을 사로잡아버리자! 그래서 TV 속 세계의 주인(?)은 막 소비주체의 단계에 들어선 20대의 젊은이들이다. 20대의 젊은이들은 무궁무진한 천연자원을 가진 신대륙으로 자본 제일주의의 사회에서 솟아난다.


'우리'가 사라져 간다

자, 그렇다면 TV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대학생들의 경우는 어떠할까? 최근 들어 가끔씩 보게 된 '뉴논스톱'을 가지고 얘기해 보는 것이 재미있겠다.

우선 '뉴논스톱'의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박경림의 캐릭터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버는 대학생의 모습을, 양동근의 캐릭터는 유희와 예술을 좋아하는 대학생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조인성의 경우는 모든 젊은 여성들을 만족시켜 줄 만한 이상향을, 장나라의 경우는 조금은 어리버리하고 편안한 친구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성역할에 있어서도 남자같은 여자상(김정화), 여자같은 남자(유빈)상을 드러냄으로써 변화하는 젊은 세대의 성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해도 등장 캐릭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발견해낼 수 있다. 그리고 시트콤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도 이러한 캐릭터화의 성공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여기서 등장인물들의 유치함을 비판하는 건 시트콤이라는 형식적 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관점이다.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 캐릭터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의도하고 있느냐 하는 부분인 것이다.

단언하건대 뉴논스톱의 캐릭터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는 '개인주의'이다. 자세히 살펴 보면 등장 인물들의 행동의 제1원칙은 자신의 욕구 해소이다. 본래 시트콤 캐릭터들의 생명력이 과도한 욕구를 잘 표현하느냐에 달려있기는 하다. 하지만 뉴논스톱의 경우 항상 문제의 틀이 개인의 영역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할 일이다.

나는 이러한 경향이 현재의 개인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보지만 또한 이러한 개인주의를 암묵적으로 긍정하는 분위기가 그 배후에 숨어있다고 본다. 즉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원자화된 인간상들을 대학 내에서부터 양성하기 위한 음모가 아닐까 하는 오버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현재 대학이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거창한 학생운동의 틀은 제쳐놓고라도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공부하는 모임들이 사라져가는 것은 대학이 '삼성 사관학교', 'SK 사관학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가 아닐까?


현실을 이야기하자!

유감스럽게도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 인기몰이를 한 '겨울연가'를 한번 보고 전혀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그건 아마 절박한 대학 4학년생의 메마른 감성이 빚어낸 결과이리라. 내가 처한 현실의 고민과 드라마 속의 고민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내가 그 드라마를 비판하기 위해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의 고민을 가진, 토익 점수가 안 나와 고민하는, 졸업을 하고 취업이 안 돼 고민하는, 자신의 종교관으로 군대문제를 고민하는, 무엇이 옳은 것일까 친구들끼리 모여서 고민하는... 이런 사람들을 TV앞에서 마주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갑자기 이런 모습들을 TV로 보는 것은 현실의 괴로움을 자극할 수도 있기에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 나의 현실, 사회, 이 세 꼭지점들을 연결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TV에서 위와 같은 담론(다큐멘터리, 드라마, 뉴스, 어떠한 영역에서든)들을 소화하는 것은 분명 몸에 좋은 보약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나는 이제 오랫동안 동거해온 TV와 화해하고 싶은 것이다.


- 덧붙이며
2002년 3월경인가 zime(http://zime.fbc.or.kr)에 실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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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자살 문제제기   
오픈백과사전 분류 : 건강, 의학 > 정신건강, 스트레스

미국의 경우 매년 1만명의 대학생이 자살을 기도하며, 대략 1천명 정도가 자살에 성공한다. 자살행위가 가장 많은 시기는 학기초와 학기말이다.

대학생의 자살은 학교성적을 포함한 학교 내에서의 여러 가지 일의 수행 정도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집단으로 나누어 본다면 자살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은 대대 주변 사람들로부터 높은 학업성취도에 대한 기대를 받고 있지만 학생들 자신은 학업에 대한 불안 수준이 매우 높다. 그러나 자살을 예견할 수 있는 뚜렷한 스트레스는 보통 석차나 성적 경쟁, 그리고 시험으로 인한 압박감이 아니다. 자살의 실질적 원인은 학업에서의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자존심의 상실이나 부모에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해석이다. 또한 자살하는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친밀한 대인관계 지속에 실패했거나, 대인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음이 보고된 바 있다. 즉 그들은 외로움과 고독감 때문에 죽은 것이다.

자살을 게획한 대학생들은 감정과 행동상의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갑자기 우울해지며, 생활 범위가 위축되고, 자긍심이 크게 감소되며, 정신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저지른다. 모든일에 대한 흥미가 감소될 뿐만 아니라, 앞에서 말한 증상들이 수반되어 나타난다. 수업에 빠지기 일쑤이며 등교나 외출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다. 자살이 임박하면 이들은 적어도 누군가 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자살을 암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할 때는 유서나, 누군가에게 메모를 남긴다.

많은 대학에 스트레스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는 학생들을 돕고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떤 형태의 조직들이 있지만, 자살하는 대학생 중에 전문적인 도움을 청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객관적으로 그리고 겉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내면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모든 학생들은 철저히 자기파악과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사고의 폭을 넓히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출 처 : [인터넷] http://www.gunganghaseyo.com/moma3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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