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의 猫, 

 

 

사람들의 눈을 피해

차 안에서 선잠을 자고서

혼자 걷는 묘지의 산책로

짖어대는 개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돌아서려는 찰나

묘한 고양이 한 마리가

곁으로 다가와 아양을 떤다

묘하다

고양이가 아양을 떠는 모양새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서는 걸음이

하도 귀여운 모습에

차 안에 뱅어포를 가져와

고르게 잘라주니

먹는 모습도 묘하고 귀엽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보고 싶어 자리에 가보니

고양이는 없고 남은 뱅어포만

몇 조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묘지 위에 꽃들은 시들어가고

꽃들의 주인은 아무런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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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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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인칭 단수 하루키적인 소설에 관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본 건 당연히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그 당시에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상당히 재밌게 봤다. 본 시기도 고등학교 때이거나, 대학생 초기였으니, 감수성도 풍부했을 터였다. 그리고서 본 작품이 단편 걸작선을 보고, ‘태엽 감는 새는 보다가 포기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일본 작가들과 비교해 조금 실망했다. 일단, ‘단편 걸작선의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애 이야기거나, 혹은 음악 이야기 같은데, 내 머릿속에 이음새가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태엽 감는 새의 경우는 너무 지겨웠다. 솔직히, 읽다 포기했는지, 1권을 읽었는지조차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하튼 그 이후 그의 베스트셀러 작품인 해변의 카프카‘IQ84’는 보지 않았다. 그 전에 작품이 전부 재미가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첫째는, 한동안 칸트와 키르케고르의 약간은 지루한 자유와 불안에 관한 철학 개념들을 쭉 보다가, 오랜만에 본 문학적 감성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둘째는, 이전과 달리 내가 조금 더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면서, 하루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느 정도 이음새의 연결고리를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소설은 서두가 중요하다. 단편집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돌베개에란 작품이 처음부터 내 가슴을 후벼팠다. 특히 마지막 시구 벤다/베인다/돌베개//목덜미 갖다대니/보아라, 먼지가 되었다란 이 구절은 이 소설의 백미라 생각한다. 다소간의 감정의 빈한함으로 목마른 내게 충분히 아린 통증을 심어주었다. 세 번째 작품인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란 작품이 이전까지 내가 이해하지 못한 하루키식의 음악 소설이었다. 일단, 앞에서 말했듯이 예전에 나는 전혀 이런 음악적 기반이 없었다. 재즈도 잘 몰랐고, 더군다나 보사노바라니, 아마 무슨 헛소리인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십대 중반부터 이런 류의 음악을 제법 들어온 나는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솔직히 재즈와 보사노바가 완전히 안 어울리는 장르는 아니다. Chet Baker 같은 경우, 보사노바의 가장 유명한 연주자인 Stan Gets와 협연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좋은 협연이라 말하기엔 좀 그랬다. 뭐랄까, 둘의 특징이 모두 사라져버린 느낌이랄까. 그런데 찰리 파커라,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찰리 파커의 특유의 경쾌한 트럼펫 소리가 파도 소리를 닮은 보사노바의 음악을 완전히 묻어버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는 건, 작가의 좋은 권력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상상력이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위드 더 비틀스였다. 아마 이 또한 개인적 사정 때문이라 생각한다. 글 속에 나온 여자 친구의 오빠와 비슷한 공포를 내가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이 글이 촘촘히 잘 짜인 구성의 전개로 이루어진 글이라 말하긴 힘들다. 우연의 우연을 더해, 거기에 감성을 더해, 쓰인 글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 무언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이 글이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B급 마이너의 정신으로 읽기에 좋은 글이었다. 나름 유쾌했다. ‘사육제는 다시금 내게 숙제를 안겨준 글이다. 물론, 글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 글에서 나온 교향곡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하지만 역시 내게 있어 교향곡의 벽은 너무 높아서, 못생긴 여자와 주인공의 수준 높은 대화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사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나름 진중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애에 대한 지극한 이상이 표현되었다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게도 한다. 그렇지만 이 고개를 갸웃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글에 매력이라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일인칭 단수는 지독한 자기 성찰의 한 단면으로 쓰인 소설이라 여겨진다. 어떤 면에선 위드 더 비틀즈에서 나온 여자 친구의 오빠와 같은 공포가 작가 내면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전체적으로 이번 단편집을 통해 하루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하루키 소설이 다른 일본 소설보다 잘 팔리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떠올렸다. 첫째는 덜 어둡다는 점이다. 정서적으로 극단적으로 어둡거나 혹은 변태적인, 대표적 일본 소설들과 달리 하루키의 소설은 어조가 담담하고, 나름의 유머가 있다. 그런 점에서 부담이 확실히 덜 하다. 둘째는, 나름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든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또한 나이가 들면서, 점차 무르익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나라 사람이 보기에 가장 정서적으로 안정된 일본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여러 면에서 괴리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특유의 덤덤함과 유머 감각이 이런 부분을 잘 중화시켜서, 우리에게 조금은 더 친숙하게 읽힌다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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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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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너무 짙거나, 숨 막히는

 

 

 처음 들어가는 순간부터 좋았다. 명쾌하고 단호한 정의, 정확한 심리를 꿰뚫는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이 부분이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승우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문제는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너무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다른 글은 사실 잘 모르겠지만, 특히 이 글이 그랬다. 너무 좋았던 첫 부분들이 계속 중첩되다 보니, 무뎌지고, 나중엔 사실 조금 지겨웠다.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로, 작가 스스로 글 속에서도 밝혔지만, 한 번 굳어진 인간의 신념은 쉬 바뀌지 않는다. 그런 이유를 아마 본인 스스로 잘 알았기에 그렇게 말했으리라 본다. 곳곳에 너무 강한 기독교의 박애주의와 사랑에 관한 관념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은 철학이나 종교 서적이 아닌, 소설이라는 점이다. 소설을 빌려 너무 강한 자신의 신념을 집어넣는데, 조금 눈에 거슬렸다. 솔직히 전반적으로 이야기 서사도, 이런 차원에서 약간 빈약하긴 했다.

 

 둘째는, 첫째 이유를 그대로 받아온 서사의 부족함이다. 이 글의 주요 등장인물은 형배, 선희, 영석이다. 거기에 조금 더 덧붙이면 준호와 민영 정도일 것이다. 형배는 사랑을 시작하고, 배워가는 인물로 설정해 놓고서, 선희라는 여자의 영석에 대한 모성과 같은 사랑을 이 이야기는 강조하고 있다. 글에서도 누차 강조한 넝쿨 줄기의 강한 생존력은 아마 영석의 집착적인 사랑을 암시하는 것이고, 자신의 모든 몸을 내어준 참나무는 선희의 사랑을 빗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 글에서 스토리는 거의 이게 전부다. 물론, 문학관 뒤 왕릉에서의 만남이라든지, 형배에 대한 영석에 질투, 우월감에 젖은 형배의 헛다리까지,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영석의 저 집착에 관해 너무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것도 거의 관념적인 언어들로. 솔직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 준호의 각 개인에 대한 고유한 사랑의 관념은 뭐랄까, 약간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냥 너무 은혜로운 사랑으로 가서, 갑자기 미안스러운 마음에 약간의 다른 가능성을 조금 열어두고 싶은 작가의 장난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 대해 대충 느낌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절대 내 개인적으로 이렇게 치열하게 심리를 파고들 수 없기에, 그 부분에 관해선 많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약간의 설정의 변화들이 필요해 보인다. 고아, 이혼한 부모 등, 여전히 다룰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예전 방식을 답사한 그대로 심리 분석을 가져다 쓴 느낌이었다. 그리고 문장의 부피와 밀도는 조금 더 줄일 필요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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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깊이 얽혀있다

아주 먼 옛날 바다에

표류한 누군가가

물고기의 밥이 되어

분해돼서

박테리아가 되고

또 썩고 또 썩어져

짙은 원유가 되어

당신의 날개가 되어서

저 하늘에서 이 하늘로

데려다주는 꿈을

이어준 검처럼

혹 다른 누군가는

나무의 거름이 되어

당신의 의자가 되고

당신의 집이 된 것처럼

나는 언젠가

당신의 등나무가 되어

당신이 잠시 쉴 수 있는

그늘이 되고 싶다

당신이 잠시 바라볼 수 있는

휴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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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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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남동 서점 잠깐 숨 쉬며 꿈꾸는 공간

 

 

 이번이 소위 베스트셀러라 불리는 책을 접하는 두 번째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구내 모든 도서관에서 대출 예약 불가라고 경고 메시지를 날리듯, 빨갛게 물들어 있고, 내 마음도 새빨갛게 타들어 버렸다. 처음,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본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기대보다 실망이 컸던 까닭이다. 물론, 그 책이 나쁜 책이란 말은 아니다. 다만 너무 잘 만들어진 기획 상품적 성격의 책이어서 조금 실망했다고 할까? 그런데 또, 베스트셀러를 빌리지 못해, 사야 한다니, 마음이 새빨갛게 타들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여러 포인트를 긁어모아, 대충 반값에 후려쳐서, 구매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정말 뜻밖이었다. 애초에 기대를 안 한 탓일까? 자꾸 실실거리고, 미소 짓는 나를 보면서,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 뜻밖에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주관적인 이유이고, 하나는 객관적 이유이다.

 

 첫 번째 이유는 한 선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새벽이면 매일 만나는 불면 클럽의 인간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 클럽을 넘버 클럽이라고 불렀는데, 그때가 넘버 쓰리라는 영화가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따라 붙인 이름이었다. 그중 그 선배가 넘버 원이었고, 정말 약간은 재떨이처럼 생긴 선배가 넘버 투였고, 내가 넘버 쓰리였다. 학교에 적응도 못 해, 밤에 잠도 안 자고 만나는 백수들이 무얼 하겠는가? 정말 별 볼 일 없는 일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학기를 끝으로 넘버 원 선배는 학고 세 번으로 학교에서 잘리고, 넘버 투는 영화계로 진출하겠다고 자퇴하고, 나보다 두 학번 아래인 넘버 포 후배도 군대를 가버리고, 여전히 별 볼 일 없이 남은 나도 휴학을 하면서, 넘버 클럽은 안녕을 고했다. 애초에 어떤 의미로 우리는 인간쓰레기였고, 또 그 쓰레기임을 자처하면서 즐기는 그런 부류였다. 그런데 넘버 원 선배가 여자를 만나더니 갑자기 변했다. 학교에 다시 복학하여, 기어이 졸업장을 따더니, 신학 대학원을 가고, 우리 중 유일하게 목사가 되었다. , 사실 이런 일이 다반사이기는 하다. 신학대에서 신학생이 목사 되는 일 말고, 다른 일 하는 게 더 문제라면 문제이니까.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변화 중 하나는 그 선배가 갑자기 공동체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공동체? 솔직히 이야기하면, 신학교 시절 여러 공동체를 전전했던 건 선배가 아닌, 나였다. 물론, 방황의 이유도 있었지만, 그만큼 관심도 있었다. 수도원에서 수도 피정도 해보고, 어떤 수도 공동체에서는 1년 가까이 살아도 보고, 유명한 공동체 여러 곳을 탐방했다. 하지만 선배는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고, 실제로 아는 바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공동체를 하겠다면서, 어디 시골 폐가를 빌려다가 보여주는데,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이 대체 공동체가 무언지 알고 이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왜냐하면 공동체란 곳은 어디 피난처가 아닌, 지역과 소통하고 마주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곳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도 몇 년 후 나름 자신을 따르는 젊은 청년들을 모아 카페를 차리고, 그 사업을 통해 공동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땐, 나름의 희망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거의 대학생인 청년들이 그 카페를 유지하면서 공동체 교회를 추구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결국 또 한 번의 실패와 여러 번 현실적 상황에 직면하고서, 선배는 직업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어느새 신앙심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 되었고, 선배는 이제 어엿한 목사가 되어 자신의 공동체를 시작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이라고 하는 국가 지원을 받은 사업이었다. 그 도서관에서 선배는 여기 이 글 휴남동 서점에서 나온 이벤트와 비슷한 소소한 이벤트들을 시작하고 있다. 블로그를 만들고, 강사를 초청하고, 독서 모임까지, 지역과 소통하는 진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런 선배가 때론 너무 거룩한 느낌이 들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론 늘 응원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휴남동 서점이 남 이야기 같지 않고, 내 친구의 이야기 혹은 내가 응원하는 사람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던 까닭은.

 

 둘째로, 내 개인적인 잡설을 떨쳐내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이 글의 장점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이 글의 장점은 진솔하고, 편안하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인물들이다. 물론, 조금은 색다를지도 모르겠다. 이혼한 여자, 공대생 작가, 취업을 포기한 바리스타, 진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등, 어딘가 부족하고,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이 글은 그 부족함에 집착하지 않고, 사연에도 구구절절하지 않다. 각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버려 두고, 각자의 사연은 각자의 사연대로 거리를 조절한다. 그리고 그 무게추를 휴남동 서점이란 공간에 맡겨둔다. 작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추구하려고 하는 휴남동 서점이란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물론, 소설이기에 조금은 미화되어 있고, 조금은 희망적인 건 사실이다. 현실이란 게 여기서 이야기하는 노동과 여가의 문제처럼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닌 탓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로 고민하며, 그 고민을 공유하는 장소로 그들은 휴남동 서점을 선택하여, 자신의 고민을 예치해둔다. 얼마나 좋을까? 만약 이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조금의 그런 여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해보고 싶다.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의 쉼을 갖는다는 그런 느낌으로.

 

 

P.S.

 

 글 속 승우란 인물을 통해 올바른 문장에 관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정말 제대로 된 문장이란 건 무얼까? 어법보다 중요한 건 마음과 솔직함이지만,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을 쓰는 건 대충 감정으로 억지를 부리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조금 더 진솔하게, 그리고 바르게, 문장 하나하나를,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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