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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뿌리 ㅣ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1995년 11월
평점 :
꽃잎1 -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 같은 나락의 자태
근래 내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남들은 하루에 12시간씩 말 그대로 숨 돌릴 틈도 없이 일해도 200만원을 겨우 버는데, 나는 일주일에 그 정도 일하고 그 만큼을 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자유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나는 대학로의 방송대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를 하는 시늉을 한다. 실상, 공부보다는 주로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이 전부지만, 그 만큼 여유롭고 한가하다. 말 그대로 일종의 선비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문인지 다소 게을러져서 평소 10시 넘어서 일어나는 건 기본이고, 어쩔 때는 12시 넘어 2~3시까지 잠에 취해 있을 때가 있다. 물론, 늦게까지 잠을 안자는 부엉이 생활패턴이 그 주원인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다음 날 마뜩하게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나는 그 무언가를 상실했다. 10대 후반부터 지금껏 나를 지탱해 주던 그 무언가를.
외로움, 그리움 혹은 공허함, 이런 것들은 사실 이제까지 줄곧 너무나 익숙하게 곁에 있어 와서인지 그리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물론, 때때로 이런 감정들에 휩싸일 때면 주체할 길이 없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나는 그런 주기들을 견디는 법들을 배우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상실감은 무엇 때문일까? 오후 3시 늦게 일어나서, 5시께나 대학로 도서관에 당도하여 하릴없이 산책이나 하는 내 자신의 일과에 대한 무력감? 혹은 그럴 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이제 끝나버린 관계들의 아쉬움? 이 역시 모두 앞에서 말한 범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결정적으로 상실한 것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내가 그 동안 그토록 두려워하며 경계했던 열정이다. 열정.......
십대 후반부터 스무 살까지 품었던 신에 관한 열정, 그리고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한 스무 살 적, 한 여자에게 품었던 열정, 신과 여자 모두 잃고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방황에 품었던 열정, 이런 방황 가운데 훌쩍 서른이 되어 먹고살기 위해 영어에 매달렸던 열정, 끝으로 최근까지 가슴 속에 품었던 막연한 프랑스에 관한 열정 등등. 이제껏 나는 이런 열정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었고, 동시에 많은 것들을 잃어왔다. 신에 관한 열정 때문에 신을 잃었고, 한 여자에 관한 열정 때문에 그 여자를 잃었고, 방황에 대한 열정 때문에 종국엔 방황의 길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떤 열정을 상실했음을 나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왜? 대체 무엇 때문에?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의 하루의 일과 중에서 산책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루에 두 번 정도 하는데, 학교에 당도해서 한 번, 오후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 정도 한 번 할 때 마다 30분 이상 소요되는 산책을 즐기고 있다. 장소는 대학로 방송대와 가까운 낙산공원이다. 그리고 산책을 할 때면 나는 위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때론 무력해지기도 하고, 어쩔 때는 어떤 영감을 받아 시를 쓰기도 하고, 소설에 대한 갈피를 잡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내 화두는 나의 이런 상실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이었다. 아니, 어떤 부름이었다. 산책 코스 중 내가 혼자서 명명한 ‘생각 벤치’라는 곳이 있다. 다른 곳의 벤치와 달리 대학로의 전망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 무언가 탁 막혔던 가슴이 트이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고즈넉해져서 그렇게 명명하였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이런 저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결국엔 숱한 상실감들에 지쳐 생각 벤치에 몸을 기대었다. 그런데 그 때, 가슴 속에서 어떤 시 구절이 울렸다.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같고
김수영의 유명한 ‘꽃잎1’의 마지막 시 구절이었다. 갑자기 왜 그 구절이 떠올랐던 것일까? 그 어떤 시보다도 혁명적인 그 시가 왜 나의 이런 삶 가운데에 문득 떠오른 것일까? 하루, 이틀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 어떤 위로가 되는 미지의 목소리처럼 가슴 속에 남아 글을 써보려 시도해 보았다. 이 또한 거의 10년만이었던 거 같다. 어떤 스터디에서 내준 숙제가 아닌 내 스스로 내밀한 고백을 담아 무언가 평론을 하고 싶다는 기분이 든 건. 그런데 좀처럼 글이 잘 이어져 나가지가 않았다. 지금의 내 상황과 이 혁명적인 시를 도무지 연결할 고리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쓸데없는 내 얘기 뿐. 어디에도 내밀한 고백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장 써내려간 글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며칠 째 그 부름에 응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에브리맨’을 읽게 되었다. 속도를 높여, 페이지를 넘겨갈 수록 확신이 들었다. 부름에 응해야한다는. 그러하기에 지금 이 평은 어쩌면 ‘에브리맨’에 관한 평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꽃잎1’에 관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그저 쓸데없는 내 주절거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죽음이라든가 신이라든가 이런 문제에 대해 나는 그다지 할 말이 있지가 않다. 신의 문제의 경우는 스스로 뿌리를 잘랐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말할 것이 없고, 죽음의 경우엔 실제로 내 경험의 테두리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고작 30대 중반에 내가 감히 어떻게 죽음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그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일도 안 되는 허방을 짚는 짓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최근까지는 분명이 그랬었다. 그런데 근 2년 사이 나는 죽음에 대해 이제는 조금은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 버리게 되었다. 다만 벌써 그 이야기를 발설하는 것이 옳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단순히 대화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건 별 일 아니지만, 이렇게 글로 그 죽음에 대해 표현한다는 것은 사뭇 다른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론 내밀한 글들이란 건 사장되지 않고 되살아나서 칼날을 들이밀기도 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만 한다.
눈을 떴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과 한 친구의 모습이 어리었다. 모두 괜찮으냐며 알아보겠느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내가 하얀 병원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주일간 내가 혼수상태에 있었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밤,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아버지가 문을 열어보니 내가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더란다. 그래서 병원에 급하게 데려왔는데, 의사 말이 뇌종양이라고 했다. 뇌종양....... 이상하게 어떤 울림도 충격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냥 원래부터 나와 한통속으로 존재했던 것처럼 친근한 언어로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의사 말에 따르면 태어날 때부터 난 뇌종양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는 경우 30대 중반에 나와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내 경우에는 빨리 발견되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종양의 진행 속도 또한 급성이 아닌 만성이라 제거하면 바로 완치가능하다고 했다. 비록 8시간의 대수술과 약 1달간의 입원생활을 더 해야 했지만, 실제로 두 달 이후 나는 이 전과 거의 비슷한 상태로 내 몸이 호전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의사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술을 몇 달 후엔 한두 잔씩 마시기 시작하였고, 1년쯤 지나서는 매일 같이 챙겨 먹어야 하는 약도 빼먹기 일쑤였다. 그러다 결국, 한 3개월 전쯤 그 일이 발생했다.
그 날은 사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날 스터디 모임이 있었는데 후배가 발제를 하는 날이었다. 그 당시 스터디의 경우 내 2~3명의 친한 후배와 외부에서 아는 사람의 경로로 들어온 3~4명의 사람들로 구성을 이루고 있었는데, 다들 추구하는 바가 너무 달랐다. 말은 문학 모임이었는데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둘, 셋 정도 됐고, 나머지는 대체 왜 그 모임을 참가했는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여하튼 그러한 간극 때문인지 그 날도 문학이 아닌 영화로 스터디 주제를 삼아 이야기를 했는데, 외부에서 온 멤버들이 가관도 아니었다. 대체 영화는 보고 왔는지도 의심스러운데다, 최소한의 예의로 글을 써오는 것조차 하질 않고서 마구 발제자를 공격해대는 것이었다. 그것도 어떤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의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을 무기로 삼아 허세를 떠는데, 그 때부터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닌 과민해진 나는 심한 두통을 느껴야 했다. 이제까지 평생 처음으로 느껴본 두통이었다. 사실, 난 뇌종양을 달고 태어났음에도 평생 두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탓에 스터디가 끝나고서 돌아오는 전철에서까지 나는 그것이 기분 탓인지 두통 탓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 기분을 전환할 마음으로 후배의 기분도 풀어줄 겸해서, 발제했던 후배에게 술 한 잔을 제의했다. 안주는 석화였고, 술은 소주였다. 한 잔을 들이키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역시, 두통이 아닌 기분 탓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약 20분, 나의 기억은 소실되어 버렸다. 앰뷸런스 실리면서부터 드문드문 기억이 나기는 한다. 계속 구역질을 하고, 고통스러웠던. 그리고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후배와 함께 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두 시간쯤 잠이 든 모양이었다. 놀란 어머니와 아버지는 술을 왜 마셨냐고 다그치기도 하시고, 대체 약을 얼마나 안 먹었으면 약물 기준치가 떨어져서 그 모양이 된 거냐고 말씀하셨다. 그때야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두려움이란 걸. 이제부터 내 몸은 시한폭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약 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작지만 나에게는 크다면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프랑스에 대한 나의 동경을 접었다. 물론 앞으로 5년 정도 지나 완치 판정이 내려지면, 다시 나는 또 프랑스를 꿈꿀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재 내가 프랑스를 꿈꾼다는 것은 그 막연함만큼 먼 이야기처럼만 느껴진다. 아니, 사실 내가 프랑스에 대한 꿈을 접은 이유는 따로 있다. 무엇이냐면, 더 이상 프랑스를 핑계로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염원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지금 쓰지 못하면, 나는 언제 쓸지 알 수가 없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면, 영영 나는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난 프랑스라는 그 막연한 이름을 통해 얼마나 글쓰기를 미뤄왔던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내 눈 앞에, 내 손에,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것을.
‘에브리맨’의 주인공은 그 제목처럼 보통남자이다. 예술가이기엔 너무 안정 지향적이고, 그렇다고 안정만을 추구하지는 못하여, 3번의 실패한 결혼을 한. 그래서 말년을 외롭게 병과 싸우다 간 보통남자이다. 이 소설 속에서 죽음이란 건 너무 흔하고 일상적이어서 무겁지도 않고 관념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까닭으로 죽음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저자는 말한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이제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우스워져버림을 깨닫는다. 은퇴 후 그림만 그리겠다는 그 꿈도, 망각의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그 대단한 결심들도, 그가 한 평생 모아온 책들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 앞에서도 각자 주어진 악전고투를 치러간다. 그의 동료 중 어떤 이는 자서전을 쓰려하고, 어떤 이는 그림을 배우는데 열중을 해보고, 주인공은 죽음이란 의미와 맞닥뜨려 그 속에서 동시에 생의 의지를 되새겨 본다. 나는 감히 이렇게 직면한 죽음과 나의 죽음의 문제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나의 죽음의 문제는 이렇게 일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일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되레 희망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러하기에 생명으로 가닿기 위한 느린 걸음이어야만 한다.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대학 때 한 선배가 매 주 열리던 ‘낚시촌’이라는 시낭송 모임에서 이 시를 낭송한 적이 있었다. 평소 워낙 시인 같은 선배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가슴 속에서 묵직하게 끓어오르는 뜨뜻한 감정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 전까지 단순하게 내게 교과서에 나오는 ‘풀잎’, ‘폭포’를 쓴 저항시인으로만 알아왔던 김수영 시인이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저항과 혁명정신은 내가 기존에 알던 저항과 혁명이 아니었다.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가 아닌,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은 느리고 부단하게 흔들리며, 떨리는 불안이었음을 그제야 나는 알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는 괜찮다고 스스로 안위하듯 한 번 더 읊조린다.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이제 두서도 없고 복잡한 이 글을 정리해야만 할 거 같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의 부름에 대한 내 대답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에브리맨’에서의 죽음의 일상화를 통해 깡그리 잃어버린 열정에 관한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실, 처음부터 나는 그 답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마지막 구절이었다.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 같은 나락. 그런 느리고 유려한 흔들림. 많이는 아니고 그렇게 조금. 사실 그러하기에 지금 당장 무언가를 못한다고 해서 그리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당장 엄청난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그리고 지금의 이 선비놀음으로 인해 앞으로 다소 궁색한 삶이 예정되어 있을지라도, 전혀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업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이 있다. 오랫동안 나의 화두의 하나였던 뿌리를 자른 꽃잎이 바람에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의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꽃잎이 어딘가로 날아오르는가와 그리고 어딘가로 흘러들어가는 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어차피 그 꽃잎은 어딘가에서 모르게 썩어질 것이고, 그 자양분을 바탕으로 다른 꽃을 피어낼 것이다. 그러하기에 꽃잎이 어딘가로 가거나 머무는 문제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떨어지는 꽃잎의 자태이다.
언젠가 몰래 담배를 피러 나온 학교 담벼락과 마주한 꽃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봄이면 매일 눈처럼 떨어지는 것이 꽃잎이지만 그날따라 무슨 일인지 그만 두 눈을 적시고 말았다. 그리고 부끄러워 그 거리를 뛰어서 인적이 드문 놀이터로 가, 서럽게 울었다.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에 아무리 눈물을 흘리려 발버둥 쳐도 한 방울도 흘려지지 않는 눈물이 왜 갑자기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는지. 몇 년이 지나고서 문득 그 일을 기억나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 때 나는 그 떨어지는 꽃잎의 자태를 통해서 내 청춘의 절정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비록 그 순간은 짧았지만, 아직도 내게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릿하고 정지한 화면으로써 각인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제와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그 때 그 꽃잎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음을. 그러하기에 아직도 나중에 떨어지는 작은 꽃잎들이 내 가슴속에서 천천히 묵직하게, 그렇지만 절정이란 이름의 유려한 자태로 나락해가는 풍경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