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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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갑신정변과 그 주역 김옥균의 삶을 재조명하는 이상훈 작가의 역사소설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한복 입은 남자』로 등단해 『김의 나라』로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한 이상훈 작가는 역사적 자료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김옥균의 출생부터 암살까지의 여정을 생생하게 펼쳐냅니다.


역사 속 김옥균은 늘 논쟁적이었습니다. 그는 개화파의 영웅이자 동시에 친일파의 원조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이상훈 작가는 이중적 평가의 틈바구니 속에서 잊혀가던 한 인물을 되살려냅니다. 영웅화 혹은 매도라는 극단을 걷지 않고,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탐구하며, 조선 말기의 변혁기를 생생하게 재현해냅니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1부에서는 김옥균의 출생부터 갑신정변 실패까지, 2부에서는 일본 망명 생활과 암살, 그리고 후일담을 다룹니다.


1894년 3월 25일, 김옥균이 나가사키 항구에서 상하이행 배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그의 일기인 『갑신일록』의 비밀을 통해 과거로 들어갑니다.


김옥균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이야기는 개화사상에 눈뜨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백옥같이 곱고 희다'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김옥균은 타고난 지성과 열정을 지닌 인물로 그려집니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그는 스승 박규수와 오경석을 만나면서 개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김옥균의 첫사랑 오경화의 이야기입니다. 오경석의 딸 오경화는 김옥균과 동갑으로, 장신인 데다 힘도 세어 여장부의 풍모가 있었던 인물이라고 묘사합니다. 오경석이 딸에게 서양 학문을 가르쳤다는 설정은 그의 진보적 사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김옥균이 개화사상을 펼치려 할 때마다 부딪히는 장애물은 견고했습니다. 흥선대원군과의 대립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더 이상 대원군과 소모적인 논쟁을 한다면 자신의 신상에 해로울 것 같아 대원군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라는 구절은 김옥균의 현실적인 판단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좌절감을 느끼며, "대원군의 집을 나서면서 옥균은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옥균의 마음과 같이 그날 저녁에 비가 내렸다."라는 감정적 묘사가 이어집니다.


스승들의 죽음과 함께 김옥균은 더욱 고립됩니다. 박규수와 오경석, 두 스승의 상실이 김옥균에게 미친 영향이 묘사됩니다. 이후 김옥균은 일본으로 건너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혁명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갑신정변의 준비와 실행, 그리고 좌절입니다. 김옥균과 그의 동지들이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 긴장감 넘치게 묘사됩니다. "홍영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하의 우유부단한 성품을 봐서 언제 또 입장이 바뀔지 모릅니다.'"라는 대화에는 고종의 성격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고종의 변심으로 정변은 실패합니다. "경기감사 심상훈과 민비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고종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로 시작되는 문장을 접하자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게 된 결정적 순간입니다. "고종은 마지막까지 권력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정변 실패의 핵심을 표현합니다.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에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함께 일으킨 역사적 사건입니다. 3일 천하의 짧은 반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개혁 시도였습니다. 근대 헌정 체제를 꿈꿨고, 관료제 개혁과 신분제 철폐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기득권 체제는 그를 도리어 반역자로 몰았습니다.


김옥균은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합니다. 일본 내에서 근대화 이론을 체득하고, 조선을 근대 국가로 만들기 위한 외교 전략을 구상합니다. 한마디로 김옥균의 외교 노선은 외세를 이용한 자주였습니다. 일본을 조선의 후원국으로 삼으려 했지만, 이는 훗날 을사오적과 같은 진짜 친일파들과 구별되지 않는 오해를 남깁니다.


김옥균은 조선 왕실에 큰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립니다. 1894년, 상하이의 어느 객실에서 홍종우의 권총에 쓰러지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너는 역사가 두렵지 않으냐?"라고 외치는 김옥균의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소설은 김옥균의 정치적 활동뿐 아니라 그의 사적인 면모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대비전 궁인이자 혁명동지 오경화, 본처 유씨부인, 그리고 일본 여관의 전직 게이샤 스기타니 다마와의 관계는 김옥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역사적 기록에는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는 인물들에게 작가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스토리의 매력을 높입니다.


소설의 말미에서는 김옥균 사후의 한국 근대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더불어 그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적합니다. 작가는 한국에서 김옥균이 친일파로 매도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김옥균은 일본의 자유민권 사상가들에 의해 아주 높게 평가된 인물로, 그의 암살이 오히려 일본 사상가들의 반조선적 태도를 강화했다는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김옥균이 북한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는 부분은 한국 사회가 역사 인식에 있어 편향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책에는 작가가 직접 답사한 갑신정변의 우정국, 김옥균의 생가, 묘소, 유배지 등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책상 앞에서 머리로만 쓴 글이 아니라 현장에서 가슴으로 쓴 글로 독자들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실천한 결과입니다.


"나는 묻는다. 다만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시도한 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 자신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를 팔고 국민을 파는 사이비 정치인 그리고 사이비 지식인에게 김옥균의 일생이 작은 울림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구절은 작가의 현실 인식과 역사관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인물 재조명을 넘어,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을 안깁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성공했으나 조선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근대화에 뒤처진 역사적 아쉬움을 되새기며,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개혁 정신을 짚어줍니다.


작가는 김옥균이 그저 운이 나빴을 뿐, 영웅의 자질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친일이 아닌 극일(克日)의 기수 김옥균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역사의 기로에서 나라의 운명과 시대의 소명을 짊어진 그의 삶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가르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지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왜 그는 죽어야 했는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자, 동시에 무엇이 조선을 바꾸지 못하게 했는가에 대한 탐사입니다.


갑신정변과 김옥균에 대한 팩트를 바탕으로 생생한 인물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서사가 매력적인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선택과 책임,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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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 - 나도 모르게 내 삶을 결정하는 24가지 뇌의 습관
이케가야 유지 지음, 김현정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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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적인 고민을 과학적 렌즈로 바라보는 <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 도쿄대 교수이자 뇌과학자 이케카야 유지 저자는 우리가 흔히 겪는 반복되는 실수와 비합리적인 선택의 근원을 뇌의 작동 메커니즘에서 찾습니다.


'왜 나는 이럴까?' 하는 자기비난의 늪에 빠진 경험 있으시죠? 마감 직전까지 미루기, 후회할 줄 알면서도 반복되는 실수, 충동 구매 등 저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동이 있을 겁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뇌의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작동 방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타인과 비교하며 느끼는 불안감은 단순한 열등감이 아니라 뇌의 전대상피질과 편도체가 작동한 결과이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은근한 쾌감을 느끼는 건 '샤덴프로이데'라는 뇌의 고유한 반응 메커니즘 때문인 겁니다.





끊임없는 외부의 영향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잦다보니 더더욱 나다운 삶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는 생각, 감정, 행동을 결정짓는 24가지 뇌의 습관을 소개합니다. 결국 이 책은 나다운 삶을 위한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뇌과학적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메커니즘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풀어냅니다. 뇌의 본능적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 속 사례를 통해 복잡한 뇌의 작동 원리를 쉽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생존 본능부터 짚어줍니다. 우리의 뇌는 매 순간 최적의 생존 전략을 실행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는 즉각적으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몸을 투쟁 또는 도피 모드로 전환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상사의 비판에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시험 전날 유난히 초조해지는 이유입니다.


이 생존 본능은 때로는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불필요한 스트레스 반응이나 비합리적인 두려움처럼 말이죠. 저자는 이런 행동 패턴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더 건강한 방식으로 삶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뇌과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도파민은 보상의 신호로,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하도록 유도합니다. 작은 성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할수록 도파민 분비가 촉진되어 더 큰 동기를 형성하게 되는 겁니다. 이 보상 시스템을 활용해 습관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우리의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뇌의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감정 센터라고 합니다. 하지만 감정만으로 결정한다면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바로 전두엽이 담당합니다. 이 부분이 성숙할수록 우리는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전두엽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선택을 하는 방법 역시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알려줍니다. 감정과 논리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줍니다.


때로는 선택의 어려움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너무 많은 상품 옵션을 마주할 때 오히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선택의 패러독스. 뇌가 과도한 정보 속에서 어떻게 마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선택의 중요성을 재정립하고,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줍니다.


뇌를 활용한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게 이 책의 핵심입니다. 뇌는 반복 학습을 통해 변화할 수 있습니다. 뇌의 스트레스 반응이 줄어들고 집중력이 향상되는 명상, 정신과 신체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미소 짓기 등 뇌를 내편으로 만드는 다양한 실천법이 소개됩니다. 작은 행동의 반복이 어떻게 뇌의 신경회로를 재구성하고 습관을 형성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뇌에 기억되는 정보는 그 정보가 얼마나 자주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필요한 상황인지, 즉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는 이야기는 출력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미소의 효과처럼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즐거운 것처럼 행동 결과에 걸맞은 심리 상태를 우리 뇌는 만든다는 겁니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반복되는 행동 패턴의 원인을 깨닫고, 이를 통해 나다운 삶을 설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 뇌의 본능을 이용한 더 나은 삶 설계법이라니,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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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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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발터 벤야민이 생전에 쓴 소설, 꿈 기록, 설화, 우화 등 미공개 글을 한 권에 담은 <고독의 이야기들>. 마치 한 세기의 문학적 미로를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동안 철학자이자 비평가로서 학문적 저작으로만 알려졌던 발터 벤야민의 또 다른 얼굴, 바로 문학적 상상력이 빛나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는 책입니다.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사상가 벤야민의 사상과 상상력이 빚어낸 42편의 이야기들은 꿈, 여행, 놀이라는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모더니티의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만화경처럼 현실의 균열과 상상의 세계를 번갈아 비추며 독특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이야기 모음집에 가깝습니다.





파울 클레와의 협주는 문학과 예술의 융합을 오롯이 보여줍니다. <고독의 이야기들> 표지부터 본문 곳곳에는 그가 사랑했던 화가 파울 클레의 작품이 50여 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벤야민의 이야기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1부 꿈과 몽상에서는 벤야민의 내밀한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가까운」 글에서 그가 느끼는 그리움에 대해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사유의 순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한 감정의 그리움이 아니라, 가까이 있으면서도 닿을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갈망에 가까운 그리움. 벤야민은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종종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라는 역설을 탐구합니다.


2부 여행에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을 선보입니다. 공간과 경험의 의미를 재구성합니다. 「북유럽 바다」에서 벤야민은 "시간 창고 안에 들어가 보면 사용되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라며 시간의 은유적 풍경을 그려냅니다.


「마스코테호의 항해」에서는 여행을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과 현실이 탄생하는 공간으로 그려냅니다. "여행은 문턱을 가시화한다"라는 문장은 경계의 유동성을 완벽하게 포착합니다.


여행은 우리가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경계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듭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떠나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됩니다. 벤야민은 이 순간을 단순한 경계 인식이 아니라, 존재와 경험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여행 중에는 익숙했던 일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규칙과 현실이 등장하며, 이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거나 재발견하게 됩니다.


벤야민의 여행은 물리적 이동을 넘어 인식의 변화, 타자와의 만남 그리고 내면의 풍경을 탐험하는 방식이 됩니다. 이동을 통해 익숙함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엽니다.


각 작품은 마치 시적 산문, 철학적 우화, 꿈의 단편처럼 읽히면서도 깊은 사유의 힘을 지니고 있어, 아주 쉬운 글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수월하게 읽은 글은 벤야민의 서평들이었습니다. <고독의 이야기들>에는 프란츠 헤셀의 『내밀한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동요 모음집 등 벤야민의 서평이 몇 편 있습니다. 제 취향상 벤야민 스타일의 서평 문체가 꽤 매력적이더라고요.


3부 놀이와 교육론에서는 벤야민의 급진적인 사유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는 놀이를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식과 창조의 근본적인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어른들은 말장난과 놀이의 즐거움을 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라며 기존의 교육과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전복을 이야기합니다.


「네 가지 이야기」에서는 구술 전통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벤야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단절된 경험의 전달 가능성을 고민하며, 이야기라는 형식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인간 경험의 중요한 기록임을 보여줍니다. 그의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픽션의 집합체가 아닌, 경험의 구슬입니다.


그의 저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일방통행로』에서 논의된 아이디어들이 이 문학작품집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벤야민이 풀어내는 짧은 이야기들을 한 편씩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방식을 추천드립니다. 벤야민의 언어가 철학적이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문학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를 넘나드는 벤야민의 독특한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문학 모음집을 넘어, 생전에 출간한 그의 비평과 에세이의 사유와 아이디어의 공명판으로 기능하는 글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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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1 : 관계의 분리수거 - 잘 지내려 애쓸수록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1
김경일 외 지음, 최설민 엮음 / 21세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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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국내 베테랑 심리학자 17인이 전하는 현대인의 관계 처방전 <관계의 분리수거>.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시리즈 첫 번째 책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 수많은 인간관계가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잘 지내려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관계의 분리수거>는 국내 최고 심리학자 17인이 실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24가지 실전 스킬을 알려줍니다. 국내 심리학 1위 채널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의 86만 구독자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았다는 인간관계의 심리학을 집대성했습니다.


요즘은 관계 과잉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관계 외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SNS 팔로워까지. 무례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모르거나, 필요 이상의 감정 노동을 하다 보면 우리는 쉽게 지쳐버립니다. <관계의 분리수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심리학적 대응법을 알려줍니다. 단호하고 건강한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말이죠.





이 책의 첫 번째 파트는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마라'는 주제로 시작합니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착한 사람들입니다.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 보니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경일 교수는 '좋은 사람 같지만 사실은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투사하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박재연 소장은 '나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 방법'에서 자존감을 지키는 법을 짚어줍니다. 저녁에 세수하고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너 오늘 참 수고했어. 잘 살았어'라고 한마디 해주자고 합니다.


내 삶을 돌보는 작은 노력들이 상대방이 내게 뭔가 해줘야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며 건넸던 내 감정의 열쇠를 되찾아 오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작은 습관이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김윤나 소장은 인상적인 비유를 들려줍니다. "만만하다는 것과 편안하다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에요. (중략) 인간관계에서 만만한 사람은 협력자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아요. 같이 시소를 타고 싶지 않은 거죠."라고 합니다. 건강한 관계란 서로 동등한 노력과 존중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책의 두 번째 파트에서는 '관계에도 분리수거가 필요하다'는 주제를 다룹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누구와 거리를 둘 것인지 현명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광성 대표는 '심리상담사가 알려주는 거리 두기 해야 할 3가지 인간 유형'에서 독성 있는 관계를 구분하는 기준을 알려줍니다. 끊임없이 당신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사람, 당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사람, 당신의 자존감을 낮추는 사람이 그 대상입니다.


최명기 원장은 '평생 옆에 둬야 할 사람과 당장 멀어져야 할 사람의 차이'에서 "서로 마음이 잘 맞고 편안한 사이는 아니지만 어떤 이유로든 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절한 대가를 치르는 게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세속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관계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에요."라며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관계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신재현 원장은 '눈치 보며 남들과 잘 지내려 애쓰는 사람들의 특징'에서 과장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문제를 짚어줍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극단적인 상황을 많이 생각한다는 겁니다. 비현실적인 최악으로 생각이 이어지는 겁니다.


이때는 현실적인 최악을 한번 생각해 보자고 조언합니다. 비현실적인 최악은 시도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지만, 현실적인 최악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대처 방법이 많다는 걸 일상 사례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 되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만만하지 않은 인간이 되어라'라는 주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나쁜 관계를 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당한 태도와 적절한 의사소통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줍니다.


장성숙 교수는 지속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지금 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며,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함께 어우러지면 노력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기고, 그 의지가 정서적인 것과 인지적인 것과 잘 융합하면 비로소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관계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헌주 교수는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한마디로 제압하는 법'에서 단호하면서도 공격적이지 않은 의사소통 방법을 알려줍니다. 무례한 행동에 즉각적으로 경계를 설정하고, 상대방의 행동이 불편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재연 소장은 '예민해서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이 당당하게 말하는 방법'에서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감정을 인식하고, 부정하지 않으며, 건설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소통의 첫걸음입니다.


<관계의 분리수거>는 친절하게 상대를 대하면서도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법, 소중한 관계에 집중하고 독성 있는 관계를 정리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알려줍니다.


단순히 나쁜 사람을 피하라는 식의 단편적인 조언이 아니라, 우리가 왜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집착하게 되는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 17명의 베테랑 심리학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조언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관계의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관계의 분리수거라는 개념부터 무척 실용적이지 않나요? 모든 관계가 다 좋을 수는 없고, 때로는 과감하게 정리해야 할 관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마음가짐의 시작입니다. 나에게 해로운 관계를 끊고, 좋은 관계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나와 타인 모두에게 이로운 일입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독성 관계를 분리수거할 시간, 국내 최고 심리학자 17인의 관계 처방전 <관계의 분리수거>. 자신의 관계 패턴을 되돌아보고,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실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한 조언들이어서 일상에서 바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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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세금 이야기
신승근 외 지음, 이영욱 외 그림, 오은강 게임 / 삼일인포마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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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금융 지식이 부족하면 성인이 되었을 때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어른들도 어렵고 부담스러운 주제인 세금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초등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경제 지혜를 심어주는 <똑똑한 세금 이야기>. 만화와 스토리텔링으로 세금의 원리를 즐겁게 습득할 수 있는 경제교육서입니다.


세금은 왜 필요할까요? 아이 눈높이에서 세금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도입부부터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세금의 필요성과 활용도를 굳이 생각해보진 않았거든요.


우리 사회의 공공서비스, 도로, 학교, 병원 등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만약에 세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펼쳐보이니 쉽게 이해됩니다. 세금이 단순히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투자'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며 공공서비스가 중단되고, 사회 기반시설이 무너지는 상황을 그려보니 자연스럽게 세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시키는 방식이 유용했어요.





세금은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뭔가를 살 때 이미 세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도 짚어줍니다. 세금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아이들의 경험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어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금은 누가 결정하고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 과정에 국민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알려줍니다. 국회와 정부의 역할, 세법의 제정 과정을 설명하면서 시민으로서의 책임감도 함께 교육합니다.


경제 교육은 단순히 돈을 벌고 쓰는 것만이 아니라, 올바른 경제 윤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공평한 세금이란 무엇일까라는 주제는 가치관 형성에도 도움을 줍니다. 능력에 따라 부담하는 원칙과 혜택에 따라 부담하는 원칙 등 세금 부과의 기본 원칙을 소개하며, 공평한 세금 제도가 왜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요즘 뉴스에서 논란이 되는 세금 정책에 대해 아이와 대화 나누면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보세요.


세금을 징수하고 관리하는 기관들에 대한 설명도 있어 신선했습니다. 국세청, 관세청 등 세금 관련 기관의 역할과 함께 세무사, 국세공무원 등 세금 관련 직업도 소개합니다.


더불어 조선시대의 공물, 진상품 등 역사 속 세금 제도를 알아보며 세금 제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오늘날의 세금 제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세금의 종류에 대한 설명은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세금의 기본 개념과 특징을 쉽게 풀어냅니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상속세, 증여세 등 주요 세금들을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합니다.


상속세와 증여세는 아이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부모님이 재산을 물려주는 상황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상황에 비유하며 기본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냅니다. 이렇게 복잡한 세금 개념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줍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만나게 될 다양한 세금 상황을 미리 알아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세금 지식을 소개하면서 장기적인 재정 계획의 중요성을 일깨우거든요.


국가 재정과 관련한 현실적인 고민도 다룹니다. 세금 수입이 부족할 때 국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국채 발행이나 예산 조정 등의 방법을 소개하며 국가 재정 운영에 대한 기초 지식을 알려줍니다. 우리나라의 1년간 세금 수입과 같은 구체적인 통계는 현실감 있는 경제 교육답습니다. 아이들이 경제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복잡한 세금 개념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그림과 도표 덕분에 재밌게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세금과 관련한 보드게임도 소개하고 있어 유용했어요.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세금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똑똑한 세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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